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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자가 혼자에게 작가 이병률 출판 hayul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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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19, 강릉에서

    이 책을 도시락처럼 늘 가방에 넣어다니는 습관이 있습니다. 엄마가 중학생때까지 일년에 한두번 싸주던 도시락 같거든요. 늘 알던 편안한 맛이지만, 그날따라 분주했던 엄마의 새벽과 딸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음을 아는 것만으로 내 도시락 가방은 온종일 따스해요. 스물이 넘어가면서 도시락 생각이 날때마다 작가님 책을 넣어다니면, 어렴풋이 도시락 냄새가 납니다. 그리고 책은 온종일, 한달내내 넣어다녀도 쉬지 않으니까 제격이지요.

    <혼자가 혼자에게>- 혼자 여행다니는 것을 즐겨하는 저에게 알맞은 책입니다. 여행을 다니지 않을 때는 여행가는 기분을 담당하고, 여행을 다니는 중일 때에는 닻처럼 구심점이 되어주는 중이죠. 독립책방 한정 에디션을 사서 또 일상 속의 여행을 하던 중, 가방 속의 물에 책이 젖어 버린 적이 있습니다. 종이가 제멋대로 빳빳해지고 구겨지는 양상마저 작가님의 글에는 잘 어울려 그대로 읽기로 했습니다. 어쩌면 강릉이 육지와 바다의 경계이고, 작가님의 글 또한 뭍과 물의 경계에 있기 때문일 거에요. 그래도 아끼는 책을 온전한 모습으로 보고픈 마음도 커서, 여기 강릉의 독립서점에서 아이슬란드 에디션을 덜컥 집어왔습니다.
    오늘은 잠겼다 마른 책을 버스 안에서 종점까지 내내 읽었습니다. 그리고 내린 곳은 주문진 해변이었는데, 사람도 차도 드물어 혼자 여행을 온 것이 새삼 실감나더군요. 해변을 걷다 몇 장 사진을 남기고 커피를 마시고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오던 길, 글을 읽다 문득 울고 싶어졌습니다만, 무엇에 울고 싶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비스듬히 쏟아지는 햇볕에 눈이 부셔서라고 하겠습니다.

    어쩌다 작가님께서 이 글을 읽게 되신다면, 피식 웃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작가님의 뒷모습에서 인간의 냄새를 많이 맡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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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resh Art New York 작가 이나연 출판 켈파트프레스 hayul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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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오랜만에 동네책방에 나들이를 갔다가 마음에 드는 현대미술 책을 발견해서 바로 사들고 온 책이다. 현대 미술에 대한 흥미를 불러 일으킬 만한 책을 접할 기회는 정말 흔치 않다. 여러 예술 중에 가장 다가가기 난해하고 사전 지식이 있어야 하는 분야가 미술이기 때문에, 책들도 아주 전문적이거나 아주 피상적인 정도로 그쳐버릴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현대미술의 대표주자로 평가되는 도시, 뉴욕에서 전시를 열었던 유명 화가 혹은 사진작가, 조각가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아직 제대로 읽은 것은 아니고 관심있거나 알고 있는 몇 인물만의 이야기를 읽었는데, 각 인물이 짧게 서술되어 있지만 흔히 알려진 이야기들이 아닌, 작품에 담긴 주제와 그에 관한 시대상, 인물에 얽힌 일화를 미술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재밌게 읽을 수 있게 풀어내었다. 미술사와 표현기법 등이 서술된 전문적인 책 보다는 예술가 자체에 좀더 초점을 맞추고 쉽게 읽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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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작품은 배경지식이 없으면 다른 장르에 비해 훨씬 어떤 작품인지 알기가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이 책으로 최신 미술에 좀 더 가까워지고 싶네요
  • 제0호(양장본 HardCover) 작가 움베르토 에코 출판 열린책들 hayul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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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저서 <장미의 이름>, 그리고 동명의 영화로 처음 접했던 작가 움베르트 에코의 마지막 장편소설이다. 에코는 다양한 시대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철학과 종교 등의 해박한 지식과 함께 풀어내는 작가라는 평이 많다. <장미의 이름>은 타 전공 수업때 영화로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살인사건을 추리하는 내용이라 상당히 어두운 장면이 많았던 기억밖에 없다. 그러다 우연히 독서모임에서 <제0호>라는 책으로 토론을 해서 읽게 되었는데, 흥미로운 소설이기는 하나 나의 취향은 아니었다. 또 제2차 세계대전의 전개를 인물들이 주로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역사를 알고 있지 않는 보통의 사람이 읽기에는 까다롭기도 하다.
    하지만 신문의 다른 일면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한 사람의 명성을 깎아내려 그 사람이 행하려 하는 일을 막으려고 하는 장면, 진부한 의견과 대비되는 기자의 의견을 넣어 마치 객관적인 것 같이 보이도록 하지만 실은 기자의 의견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이게 하려는 장면.. 신문사나 기자들이 어떻게 사건을 재가공하고 해석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장면들이 많았다. 그러면서 지금의 신문들을 대체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기도 하였다. 다 읽고 나서 찜찜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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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상 읽고나서 교훈을 얻기도 하지만 hayul님처럼 찜찜했다고 솔직하게 써주신게 인상깊네요. 만화에서 등장인물이 말해서 유명한 말이 있죠. 사람이 언제죽는지 아는가? 잊혀질때 죽는다. 사람은 어떻게 보면 명성이란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은데 그 중요한 요소에 대해서 사람들이 공작을 펼치고 하는 내용인것 같군요. 관심이 가는 책이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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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나 드라마, 책을 보다보면 현실과 상상속의 이야기가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생각하게되고 생각보다 비슷했을 때 느꼈던 감정이 떠오르네요. 생각과 글은 쓰기나름으로 목적이 달라지고 다른 영향력을 주게되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서가명강 시리즈 1) 작가 유성호 출판 21세기북스 hayul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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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의학자의, 죽음을 다룬 책이다. 가장 죽음을 많이 접하는 사람이 생각한 죽음이란 어떤 것인지 궁금해서 책을 읽게 되었다. 통상 봐오던 인문학에서 말하는 죽음과는 또 다른, 실체로서의 죽음을 다루었기에 생각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논의도 흥미로웠다.
    형사 사건에서 가해자의 진술이 맞는지, 사망과정이 어땠을지 밝혀내는 것이 법의학자의 대표적인 이미지이다. 형사사건이 아니더라도, 사망원인을 알아내고 사체의 신원을 구분하거나 사체에게서 검출된 DNA만으로 이사람의 인종, 신체적 특징 등을 알수 있는지 연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아가서 법의학이란, 법에 의학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지 연구하는 학문을 통칭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뜨거운 화두인 연명의료와 죽음의 문제, 그리고 생명의 시작에 대한 문제에도 개입하는 사람이 바로 법의학자이다. 그래서 다양한 에피소드와 함께 작가의 죽음과 삶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흔히 접해오던 관점과는 다른 관점에서 우리의 삶과 죽음을 바라볼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다양한 이야기들 속에서의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을 다루면서 우리가 어떻게 죽음을 마주하면 좋을지 풀어낸다.
    깊지도 얕지도 않고 적당히 우리 모두가 겪을 미래를 담담하게 대했고, 또 의학계와 법에서 바라보는 죽음이 어떤지를 알 수 있는 책이다. 그런대로 흥미로웠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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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 시체는 일반적인 사람이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보기 힘들게 됐죠. 요한 하위징아는 \'중세의 가을\'에서, 근대에 이르러 거리에서 어둠과 시체가 사라진 것이 중세와는 구별되는 중요한 요소이고, 이것이 근대인의 정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주장하는데, 매일 시체를 보며, 그것과 관계하며 사는 삶이란 무엇일지 가늠이 잘 안되네요. 법의학자의 경험 역시 중세의 경험과는 사뭇 다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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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과 가장 가까운 직업을 가졌지만, 그만큼 더 삶에 이끌리게 되고 무게를 두게 된다고 저자가 말했습니다. 또 이런 개인적인 영향 뿐만이 아니라, 여러 자살과 타살 사례들을 보다보면,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고 해요. 사뭇 여러모로 새로운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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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주 시체를 보러가는’ 사람인 법의학자의 이야기라니 제목에 이끌려 서평을 읽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인간이 살아가면서 노골적으로 시체와 마주할 일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리고 전공자가 아닌 이상 시체 앞에서 냉정하고 과학적으로 따지는 관점을 가지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인데, 이렇게나마 책으로 간접경험을 할 수 있다니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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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인자의 기억법 작가 김영하 출판 문학동네 hayul 님의 별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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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이 얇은 책으로 김영하 라는 작가를 처음 접했다. 이년 전쯤엔 각색되어 영화로도 나왔으나 나는 책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듯하다. 문장이 짧고 평이하기 때문에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빠른 책이지만 속도에 집중해 질주하다 보면 어딘가에 추돌해 일그러지고 만다. 주인공과 함께. 망각에 부딪힌 우리의 기억들은 파편처럼 부서지고, 부서진 가운데는 공(空) 밖에 남지 않는다.
    주인공이 연쇄살인마라는 설정부터 이미 독자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지만, 가장 공포스러운 부분은 치매로 부서져가는 주인공의 기억이다. 주인공 병수는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메모를 하고 녹음기를 들고 다닌다. 하지만 점차 녹음을 해야한다, 메모를 해야한다는 생각조차 잊게 된다. 사실 있었던 것이 없어지고, 없어졌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되는 일만으로도 무서운 일이지만, 병수와 독자를 가장 공포에 떨게 만드는 것은 병수의 모순되는 기억이다. 자신의 기억조차 믿을 수 없는 상황. 나의 감각과 인지가 어쩌면 완전한 허상일지도 모른다는 경악. 지금의 ‘나’가 ‘나’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기억과, 이를 바탕으로 한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인지,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계획과 의지 같은 것들인데 치매는 이를 한번에 날려버린다. 그래서 존재는 더 이상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고립에 고립이 계속되다 완전히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의 상태가 될 때까지 서술은 이어진다. 신이 연쇄살인마에게 내린 가장 가혹한 형벌일 것이다.
    중간의 반야심경 등에서의 인용구와, 다소 무미건조한 문체, 인물들의 설정이 잘 어우러져 여운이 오래 남는 책이었다. 책을 읽은지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서평을 쓰기 위해 펼쳐본 구절에서마저도 압도적인 분위기를 풍겨오는 글이다. 조만간 다시 읽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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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쁜 페미니스트 작가 Gay, Roxane 출판 사이행성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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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사상이든 극단적인 것은 좋지 않습니다. 세계사, 한국사를 조금만 공부해 봤더라도 이 빠와 까가 얼마나 세상을 난장판으로 만들 수 있는지 목격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를 보노라면 "한남소추와 쿵쾅메갈이 넷상에서 서로에게 총질을 하고 있는 우스꽝 스러우면서도 처연한 광경"이 눈에 많이 띕니다. (이 말은 김거니 씨의 82년생 김지영 영화 리뷰에서 따온 구절입니다. 현 상황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기억에 남아 인용합니다.) 페미니즘은 분명 암묵적으로 존재하던 문제들을 수면위로 올리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이 사상을 이용하는 일부에 의해 그들의 입맛에 맞게 곡해됩니다. 그리고 이 래디컬 페미니즘 추종자들에게 '공격받았다' 생각하는 또 다른 일부는 저 다른 극단으로 모여 페미니즘 전체를 까내리기 바쁘죠. 그래서 수면 위로 떠올랐던 문제들조차 논의가 되지 못한 채로, 결국 우리 모두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재갈을 물려버립니다.

    저 또한 한명의 여자로서, 엄마와 외할머니와 할머니를 보고 큰 사람으로서, 페미니즘에 무관심할 수 없습니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확실히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은 느끼지만, 아직 체계의 변화가 세대의 변화를 따라오고 있지는 못합니다. 아마 체계의 변화는, 각자의 상처와 희생들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공감하고자 대화하려는 모든 과정 후에 따라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처럼, 자신의 상처와 희생을 훈장처럼 내세우고 으스대려는 일부의 태도들은 시대착오적일 뿐이고, 어쨌든 이루어져야 할 논의들을 늦출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제목인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참 와닿습니다. 작가가 말하듯이 ‘나쁘다’라는 말은 일정 기준에 완벽하게 부합하지 않는다는 말을 의미합니다. 설령 사상이 완벽한 것이다 하더라도, 인간이기에, 그리고 자신의 삶이 아닌 이상 완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없기에 사상을 이용하는 우리는 모두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완벽한 페미니스트가 되기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처한 환경과는 모순되는 말입니다. 그리고 ‘완벽한 페미니즘’이라는 기준 자체가, 그 사상의 극단으로 치닫을 수 있는 위험성이 있는 말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책을 읽다 말고 갑자기 쓰고 싶어진 글이어서 다소 정리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책을 끝까지 읽고 다시 서평을 쓰고 싶네요.

    성별이, 진영과 한계가 아닌 또다른 가능성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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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식주의자 작가 한강 출판 창비 hayul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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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여름이 막 지난, 선선한 날에 읽었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친칸타 향이, 탬버린즈 고체향수 324의 차가운 풀향과 잘 어울리던 날이었고, 냉정의 열정‧열정의 냉정 같은 향과 날 속의 책이었다.

    한강 이라는 작가를 많이 들어보았으나 이 작품으로 처음 접하였다. 이 책으로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타며 유명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전에 맨부커 수상작을 감명깊게 읽었던 경험이 있어 이번 책도 기대하며 읽었는데, 두 작품의 느낌은 다소 다르지만 이 책 또한 흥미로웠고 울림이 깊었다.

    소설은 특이하게 작가가 다른 시기에 쓴 세 단편 소설을 다듬어 이어지는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었다고 한다. 각 단편은 다른 인물의 입장에서 쓰였고, 전체적인 이야기는 시간순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읽는 데에 혼란스러움은 없었다. 구성방식부터 신선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용은 신선하다 못해 파격적이었다. 사실 소설만 읽어서는 소설에 대한 이해가 힘들었으나 해설을 읽으며 짜임이 훌륭하고 표현력도 상당하구나 싶었던, 마치 잘 짜인 그림을 보는 듯했다.
    이 책은 보통의 여자 영혜가 채식주의자로, 그리고 결국 음식을 거부하는 사람이 되어 정신병원에 갇히는 일련의 사건을 주변 인물의 서술로 풀어내고 있다. 육식이 아닌 채식을 선택하고, 결국에는 음식을 거부하는 영혜의 선택은 온전히 그녀 자신의 선택이다. 연이어 따라오는, 화장을 하지 않고 브라를 하지 않겠다는 선택 역시 그녀 자신의 선택이다. 영혜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짤막한 구절을 보다 보면, 사실 이 선택에 엄청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해설에서와 같이 그녀는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부가적인 것들을 지워나가며 ‘팽창의 시대에 축소를 택했을 뿐’이다. 이 선택은 그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 주변의 인물들은 영혜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채식주의자’로-‘그녀의 행위를 이해하기 쉬운 속성으로 환원한 호칭으로’- 명하며 끊임없이 본인들의 이해범위 내로 돌아올 것을 요구하고 강제한다.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모습을 그대로 놔두지 못하는, 타인의 습성과 문화를 이해하려 노력도 하지 않는’ 대다수의 사람들의 모습을 극명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특성이 정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종의 ‘특혜’를, 자신의 상황과 위치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이 무지가 소수에게 얼마나 폭력적인지는 영혜가 얼마나 극단적인 상황으로 자신을 몰아가는지를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집단의 몰이해는, 영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지속적으로 행해진다. 가족이라는 굴레 내에서 끊임없이 행해지는 정신적인 폭력으로부터 영혜는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언니인 인혜는 이에 응답하지 않는다. 몰이해가 지속되지만 않았어도, 단 한 명만이라도 영혜를 이해했더라면 혹은 그럴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그녀를 대했더라면 영혜가 ‘살아있는 화석’처럼 야위었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일생동안 폭력을 견뎌내던 영혜는 결국 모든 배척된 것들의 집합으로, ‘미친’ 속성의 합으로, 고독한 실체로 존재하며 혼자서 경계 저편으로 넘어간다. 인혜는 진창의 삶을 남겨두고 혼자 떠난 영혜의 무책임함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영혜를 돌보며 스스로 감추었거나 잊었던 트라우마와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끊임없이 영혜와 자신의 과거를 다시 가정하며 가능성의 역사를 새로 쓴다. 결국 인혜는, 어쩌면 영혜가 겪는 모든 일들이 자신의 미래였어야 했을 수도 있다고, ‘그녀의 삶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고, 우리의 운명은 뒤바뀐 것이라고 말한다. ‘무덤처럼 지쳐있는’ 자신도 이미 오래전부터 죽어있었으며 영혜와 자신은 ‘서로의 상처를 나눠진 운명의 공동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언젠가 나는 ‘collecting our death, 산다는 건 그런게 아닐까’라고 적은 적이 있다. 우리에게 선택받지 못한 가치들이나 순간들이 달고 왔을 미래와 가능성들은 우리의 손에 죽었다. 그런 죽음들을 모아서 쌓아오다 보면 죽음의 무게는 삶을 짓누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린 매순간 죽어간다. 삶의 과정은 죽음에 다가가는 과정이고, 죽음을 모으는 일인 것이다. 수많은 죽음 속에 살아남는 나의 실체라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죽음으로 점철되어 있고, 나에 대한 타인의 몰이해의 집합이기도 하다. 개인의 근원적인 고독감은 여기서 연유한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에게서 자신의 상처를 보기도 한다. 또 ‘타인이 대신 앓은 나의 상처’를 뒤늦게 볼 때도 있다. 우리는 몰이해로 인한 고독에 아파하면서도 서로의 상처를 나눈 한 배를 탄 존재들이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세계의 고통을 자신의 몸으로 앓는 자의 현실’, 가해자는 보이지 않고 피해자들만 무수한 사회 속 개인인 것이다. 그래서 우린 이 현실에 화가 나면서도 냉소를 띠고, 체념한 가운데에도 서로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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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기 다른 인물이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이 내용을 전달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을 것 같네요. 대단하다는 말을 듣는 것들은 정말 대단한가 봅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해라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개인은 결국 스스로가 만들어낸 하나의 관점 밖에 채택할 수 없는 것이고, 자신도 타인을 똑바로 볼 수 없으니, 타인이 나를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은 이룰 수 없는 욕심이 아닐까요. 주인공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냉소적이며 체념하지만 그래도 생을 살아가는, 존재 자체가 모순인 우리는 앓아가며 죽어가겠지요. 그 속에서 누군가는 죽어감에 눈을 두고, 누군가는 문득의 희망에 힘을 쏟습니다. 가능성이나 위계는 말하지 않겠지만은 생이 주어진 이 상황에, 긍정 또한 해볼만 한 것을 아닐런지요. 물론 저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느 날에는, 행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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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마도 이해라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의 일이어서, 쓰신 말씀처럼 완전한 이해를 받을수는 없을 겁니다. 거기서 기인하는 고독과 슬픔이 가장 깊은 감정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해요. 이 소설이 하나의 주인공을 내세우지 않는 것도 바로 각자의 처지를 제대로 조명하기 위해서이겠죠. 하지만 영혜의 비극이 몰이해에 근거하는 만큼, 자신의 처지와 아픔에 빠져 타인을 경계로 몰아세우는 일 역시 있어서는 안된다고 작가는 말하는것 같습니다. 비록 온전한 이해는 아니어도, 타인의 존재방식을 \'그럴 수 있구나\' 하고 인정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런 체념 속에서도, 우리는 또 우리와 어떤 부분에서 닮은 사람들을 만나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되겠죠. 한 사람에게 나의 모든 부분을 이해받으려 하는 것보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면을, 또 다른사람에게는 다른 면을 이해받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고, 또 한 개인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 굳이 사람에게서가 아니더라도, 글, 음악, 그림을 접하며 이해받는다는 느낌을 받는 것도 소중한것 같습니다. 모쪼록 모순 속에서 웃고 울더라도 적당한 온도의 괜찮은 삶을 살아내게 되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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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적어도 너의 삶을 너의 뜻대로 살라는 최소한의 존중의식이 영혜의 주변 인물에게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네요. 주변에 해가 되지 않는 선택이고, 한 사람의 성인으로 자신의 행동을 선택했지만 정신적인 폭력이라고 느낄 정도의 몰이해를 받았던 영혜의 상황이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한 번쯤 꼭 읽어보고 싶은 소설이에요.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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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elancholia(멜랑콜리아) Vol. 1 작가 전인수 출판 멜랑콜리아 hayul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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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증, 공황장애 등에 대한 매거진이다. 우울증이라는 것이 사회에 만연한 정신질환이지만, 아직 대부분에게 생소한 이야기이고 편견이 많은만큼 털어놓기 어려운 병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반인들도 이 정신질환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하고, 또 실제로 이 병을 가진 환자들도 병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만들어진 매거진이 바로 멜랑콜리아다. 나 또한 우울증이라고 의심되는 증상이 있지만,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해서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선뜻 병원에 진료나 상담을 받으러 가기 힘들다. 실제로 우울증 환자들도 실제로 병원에 가는 환자 수보다 드러나지 않은 환자가 훨씬 많다고 측정되기도 하기 때문에, 이 잡지가 그런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우울증이라는 게, 꼭 어떤 큰 일 직후에 발생하는 질병은 아니다. 어릴때의 일들, 부모와의 관계 같은 여러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쌓이다가, 어느날 문득 걸릴수 있는게 우울증이기도 하고, 학창 시절부터 아주 오래오래 지니고 있었기에 자신이 우울증인줄 모르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다양한 강도의 우울증 속에서 사람들이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이겨내고 있는지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우울증이 왜 의지의 문제가 아닌지, 병에 걸리면 약을 먹는 것처럼 우울증도 약을 먹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등이 겪는 사람의 입으로 정말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그리고 우울증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다채롭게 하는지도 보여준다. 기존 사회에 널린, 우울증은 무조건적으로 좋지 않고 치료받아야 한다는 인식을 깨버리는 내용이 많다. 우울증은 완치되는 병이 아니라, 평생 달고 가야할 질환의 일종이기 때문에(시기상 좀더 나아지는 때도, 악화되는 때도 있을 뿐) 오히려 이 우울로 생겨나는 반대급부의 장점을 누리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울증, 참 남의 얘기 같지만 어느날 여러분도 덜컥 마주하게 될 병일지도 모른다. 사실 누구든 우울증과는 다르지만 단순 우울감을 느끼는 때가 있지 않은가. 다만 우울감은 감기처럼 왔다 갈뿐. 우울증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었지만, 우울감을 마주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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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혹 스스로가 잠식되는 날에는 정말 큰일인가 싶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힘이 있으니까 아니겠지 생각하고 맙니다.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글이네요. 이 책으로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우울증도 강도가 다양한 만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넘기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저또한 그런 부류인것 같고요. 시간이 되고 여건만 되신다면 전문 기관에서 상담을 받아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여건이 안되어 미루고 있습니다만.. 언젠가 상담은 받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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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은 우을증이 현대인의 감기라고 불릴 정도로 우울증 증상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적절한 책인 것 같네요.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 가만히 있으면 수렁으로 빠져드는 느낌. 그것이 제 우울감이에요. 그래서 애써 무엇이든 하기 위해 플래너를 채워넣어요. 다만 이것이 언제나 나를 잡아 끄는 것이 아니라 기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이 책의 내용도 비슷한 것 같네요. 정신질환이라고 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주해야 함을 다시금 새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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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도 조울증이 있고 주변에 각종 우울증이나 정신 질환으로 힘든 사람이 많은데 이 책 꼭 읽어봐야겠어요. 실질적으로 많은 도움을 줄 거 같아요.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
  • 예민함이라는 무기 작가 롤프 젤린 출판 나무생각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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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읽었던 책들 중 가장 나에게 도움이 됐던 책을 꼽으라면 이책이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예민함’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는 히스테릭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예민하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사실 예민하다는 건, 파란 눈, 흰 피부처럼 이미 자신에게 주어졌고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특성이자, 세상을 지각하는 방식일 뿐이다. 다만 예민한 사람들이 자신의 특성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숨기고자 애를 쓰다 결국 어떤 계기로 폭발하게 될 때, 그것은 신체의 아픔일 수도 있고, 히스테릭일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예민한 사람들은 자신의 ‘축복받은’ 특성을 잘 이해하고 이를 잘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좋은 지침서이다.
    ‘예민함’이라는 특성이 분류되어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에 들어서의 일이다. 그래서 이에 관한 책들도 예민함을 한탄하거나 미화하는, 또 주로 예민한 지각을 버리고 둔감해지는 것에 대한 내용이 많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예민함이라는 성향에 건설적,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을 논하고 있다.
    예민한 사람은 남들이 지각하지 못하는 것을 지각할 수 있고, 섬세하고 감수성이 높다. 모순적인 상황을 지각하는 동시에, 타인의 생각과 기대도 정확하게 읽어낸다. 하지만 눈으로 보이는 것 이면의 것을 언급하였을 때 몰이해를 받는 경우도 많으며, 그래서 타인의 생각과 기대에 최대한 맞추어 자신의 지각을 억누르려고 한다. 자신의 훌륭한 특성인 자기지각능력을 잃어버린 예민한 사람들은 결국 타인의 관심사와 이해관계에 휘둘리고 스스로에게 과중한 부담을 주다가, 결국 히스테리를 부리거나 신체가 망가지고 만다.
    예민한 사람에게 가장 부족할 수 있는 능력은 경계 설정 능력이다. 자신이 지각하는 수많은 것들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경계를 설정하고 자신의 신체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능력, 자신의 지각과 생각을 타인의 그것과 구별하는 경계를 설정하는 능력이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책에서는 이 능력을 기르는 방법을 주로 설명해 두었다. 그리고 성인이건 아이건, 운동과 예술활동을 병행하는 것이 예민함을 유지하며 생활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특히 운동 중 태극권, 요가, 유도 같이 스스로 정신적인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운동이 좋으며, 예술활동은 그림그리기, 글쓰기, 악기연주 같은 자신(혹은 자신이 받아들인 자극들)을 표현할 수 있는 활동이 좋다.
    나 또한 이 책의 여러 방법을 꾸준히 실행 중이며, 내 예민함을 지키면서 생활을 유지하는 데에 큰 도움을 받았다. 자신의 예민함이 생활에 걸림돌이 된다면 꼭 읽어보았으면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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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민, 민감함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요즘입니다. 어느 때는 좋다가도, 공연히 싫은 날이 있죠. 축복이라고 한다면 조금 편해집니다. 도움이 될 것 같은 책입니다.
    • \'예민함\'은 엄청 특이할 것 없이, 결국 관점에 따라서 장점도 단점도 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어요. 다른 많은 성격 특성들 처럼요. 이 예민한 성향에 대해서 단순히 한탄하고 버리려 하는 방향이 아니라, 이를 받아들이고 예민함을 이용해서 건설적으로 살자는 책의 목소리가 마음에 듭니다.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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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에게 꼭 필요한 책인 것 같아요. 자신의 지각과 생각을 타인의 그것과 구별하는 그 경계, 를 기르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하니 당장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리뷰 감사합니다.
    • 저는 예민함이라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이 단어를 사용할 때는 저도 모르게 부정적으로 사용하고 있더라구요.. 이 책을 읽어보면서 좋은 예민함을 기르고 현명한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좋은 서평 감사해요
  • 나를 보내지마(모던 클래식 3)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출판 민음사 hayul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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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보내지 마>
    * Keane의 Stupid Things, I’m not Leaving (모두 sea fog session) 이라는 두 곡을 들으며 서평을 썼다. 서평과 곡이 일맥상통하니, 꼭 들어보았으면 좋겠다.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가즈오 이시구로였다. 그 즈음에 서점에서는 이 작가의 책을 많이 전시해 두었었는데, 그중 가장 눈에 띄었던 책이 <나를 보내지 마>라는 책이었기에 사서 읽게 되었다. 사실 노벨문학상 수상자라고 해서 기대를 많이 하고 읽었는데, 내 취향과는 맞지 않았다.
    복제인간들이 모인 헤일셤이라는 곳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의 일련의 성장과, 클론인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 이들이 기증자와 간병인이 되어 다시 만나서 나누는 대화와 생각들이 이 책의 주 내용이다. 사실 복제인간이라는 요소를 진부하다고 생각해서 서사적인 면에서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성장하며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클론들의 모습, 클론이라는 제한 때문에 결국 엇나가는 인물들의 인연들을 보다 보면, 인간적인 면들과 고뇌를 복제인간이라는 제한사항 속에서 더 극적으로 섬세하게 그려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을 복제된 인간 속에 담아내었기 때문에 진정한 인간성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라는 기본적인 구조와 도덕규범을 공유하며, 그림자 속에 머무르는 존재들처럼 대중 속의 한 명으로 살아간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이상향으로 삼고 추구한다. 누군가는 이상향에 너무나 집착한 나머지, 이상향의 모든 것을 따라하려 한다. 반대로 책의 복제인간들은, 자신의 주형에 대해 궁금해 하지만 과연 자신도 주형과 같은 삶의 방식을 갖게 될 것인지, 그렇다면 자신들의 주체성이란 있는 것인지 끊임없이 고뇌한다. 간병사로 살아가는 주인공 캐시의 모습은 이미지 속에서 살아가는-그리고 이미 이미지를 잊고 달리기만 하는-현대인들의 모습과 닮아있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충분한 기회가 결코 주어지지 않는다. 늘 시간에 쫓기든가 그렇지 않을 때는 극도로 지쳐서 제대로 대화를 나눌 수 없는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긴 근무시간과 여행, 수면 부족은 존재의 내면으로 슬며시 들어와 당신의 일부가 되어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태도와 시선과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에서 그 사실을 알아채게 된다. …다만 이런 것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웠다는 것뿐이다.” 그렇게 달리다 문득 이 모든 것이 늦었다는 느낌이 들 때에야, ‘이상향의 이미지들은, 마치 단 한 번밖에 없는 우리의 삶 속에서, 왔다가 가버리는 유행과 같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캐시 역시 기증자를 돌보는 간병인의 역할을 언젠가 끝내고 기증자로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림자 속의 서로를 돌보는 우리도 실상 비슷한 아픔을 가졌으나 절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독립적인 존재일 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결여가 아파서 ‘마치 서로 안고 있는 것이 우리가 어둠 속으로 휩쓸려 가는 것을 막을 유일한 방법이기라도 한 듯’ 부둥켜안지만 결국 시간과 사회의 거친 물살 속에 손을 놓친다. 또 손을 놓쳐 잃고야 마는 것은 비단 타인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자신의 것들, 정체성들도 잃어버린다.
    책에서는 문화(글과 예술)를 개인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되찾고 드러내는, 그래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연결하는 요소이자, 복제인간이 자신의 영혼을 입증하기 위해 사용하는-가장 인간적인 것으로 표현한다. 예술은 소비되는 이미지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개인이 이미지를 생산할 수 있도록, 그래서 단 한 번뿐인 삶이 유행에 소비되지 않도록 한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잃고 잊어버리는 우리에게 예술이란, ‘혹시 귀중한 뭔가를 잃어버렸다 해도-애써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해도 노퍼크에 가서 그것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일말의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망각의 존재들은 파도에 밀려 노퍼크에 쌓여서, 우리를 끊임없이 부른다. “나는 떠나지 않아… 나를 보내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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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학년 때 고전읽기와 토론 교양 수업에서 이 책을 가지고 수업했어서 그때 읽어 봤던 책이에요. 복제인간으로 태어나 정해진 운명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자신을 찾고자 하는 이야기의 흐름 동안 인간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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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코그니토 작가 데이비드 이글먼 출판 쌤앤파커스 hayul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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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생 때 도서관에서 두 번 읽은 이후 이 책을 따로 샀을 정도로 나에게 영향을 준 책이다. 일반인이 재밌게 읽을 정도로 쉽게 쓰여져 있는 책이지만 기억에 남을 만한 책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신경외과 쪽의 꿈을 갖게 되기도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책은 뇌과학, 인지과학에 좀더 가깝겠지만.

    우리가 과연 나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내 이성과 사고만이 나를 움직이는 것일까. 데카르트의 사상에서부터 이어져오던 이것에 뇌과학이 반기를 드는 내용이다. 우리의 뇌는 의식 아래에서 많은 일들을 수행하고, 그것이 이성과 사고에 걸리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 정확하게는 지각하는 것들이 모두 사실이고 객관적일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환청이나 착시 같은 현상들은 이를 부정한다. 눈만으로는 앞을 볼 수 없다. 눈과 귀 같은 곳으로 받아들여진 감각기관은 뇌를 거쳐 해석되어야 한다. 또 이와 달리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앞은 볼 수 있다. 뇌가 특정 감각을 다른 감각으로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또 우리가 아는 것과 뇌가 아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습관이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하는 일, 아주 단순하게 숨쉬는 일부터 차선변경하는 일까지, 우리가 의식적으로 그 일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 행동이 매우 부자연스럽고 느려지게 된다. 이런 습관이 속해있는 무의식적인 것이 암묵기억이고, 우리가 의식적으로 어떠한 사건을 기억한다고 의식하는 기억은 외현 기억이 된다.

    우리는 ‘매력’이나 ‘맛있다’는 느낌에 익숙하지만, 이런 것들이 진화적인 목표와 깊게 관련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좋게’ 인식한다. 그리고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생물학적인 뇌에 의해 제한된다. 사람들 중에는 공감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 사람들은 요일을 색으로 인식하고 맛을 촉각으로도 느낄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의 사람들이 이렇게 느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도 그들이 인식하는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전부라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개인마다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세계를 ‘움벨트’라고 이름붙인다. 이 움벨트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이 아니고, 진화하며 뇌가 생존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물리적인 뇌에 프로그램이 생기게 되었고 이 때문에 움벨트가 형성된다. 이러한 선행 프로그램은 뇌가 백지 상태였다면 일어났을 문제나 사건들을 피할 수 있게 돕는다. 선행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예가 본능이다. 우리는 본능이 사유, 학습과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19세기의 윌리엄 제임스라는 심리학자는 오히려 인간이 동물보다 더 본능적이기 때문에 인간의 지적 능력이 동물보다 유연하다고 보았다. 본능을 많이 가질수록 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정보를 자동으로 더 빨리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뇌 깊숙한 곳에 여러 본능들이 모여 인간의 ‘본성’을 형성한다. 하지만 본성과 본능은 우리의 코어에 거의 근접해 있기 때문에, 기계가 자신의 코어에 접근하지 못하듯이, 우리도 본능을 거의 인지할 수 없다. 이것을 ‘본능맹’이라고 부른다. 여태 우리는 인간 고유이 활동(고차원적 인지)나 잘못된 상황(정신장애)만 집중했기 때문에 내재된 본능이 조명을 받지 못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장 자동적이고 손쉬운 활동(본능이나 자동화된 행동)일수록 특수화되고 복잡한 신경회로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의 ‘의식’은 뇌에서 가장 작은 부분밖에 차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내 안에는 수많은 군중이 있다. 우리의 뇌는 구성원들의 ‘갈등’으로 운영된다. 뇌는 라이벌들로 구성된 하나의 팀이고, 갈등을 일으킬지라도 동일한 목표(개체의 생존과 번식)를 추구하게 된다. 우선 가장 생각하기 쉬운 구성원은 이성과 감정이다. 이런 구별이 아니더라도 학자마다 분류방법은 다양하지만, 이 책에서는 내부를 모니터하는 시스템과 외부를 모니터하는 시스템으로 분할하여 논의를 진행한다. 이성이 외부 세상을 분석하는 데 신경을 쓰고 외부사건들을 포함한다면, 감정은 내보상태를 모니터하고 상황이 좋은지 나쁜지를 걱정한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순간 우리는 중요한 일을 그르칠 수도 있고, 멀리 있는 수백명의 삶을 몰살시킬 수도 있다(감정적인 요인이 배제되어서.). 이 두 시스템은 균형을 이루어야 하며, 이런 균형은 자연선택에 의해 이미 최적화되어 있다. 즉 우리 모두가 원하는 것은 양당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민주주의 상태이다.
    하지만 아까 말했듯이 팀은 더 다양하게 나뉠 수 있다. 한 사건에 대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뇌의 각 부분에서 기억되고, 여러 전략들이 뇌의 다양한 영역에서 실행된다. 우리의 뇌는 한가지 해결책에 안주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는 뇌가 라이벌로 이루어진 팀을 설계하는 데에 꼭 필요한 조건이다. 우리의 뇌가 비록 다양한 의견을 내놓지만 보통 자연스럽게 의견일치에 성공한다. 그래서 시스템의 일부 혹은 전체가 사라지게 되더라도 아무런 문제없이 돌아가게 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외계인 손 증후군’이다. 뇌분할 수술로 인해 한 손은 어떤 일을 하려고 하고 다른 손은 그것을 막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 병은, 우리가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자동화된 프로그램이 통제되어 한 번에 한 가지 행동만을 한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그래서 뇌의 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를 알기 위해서는 약간의 구조적인 손상이 필요하다. 우리 뇌의 팀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는 뇌의 ‘스토리텔링, 꾸며내기’능력이다. 뇌는 갈등이 너무 심각한 상태, 이해하기 힘든 상황에서 이 능력을 발동시킨다. 또 비연속적이고 무관해보이는 데이터를 그럴듯한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능력이기도 하다.

    이렇게 꾸려나가던 팀이 미쳐서 날뛰게 된다면, 그리고 더 이상 이성이 그것을 통제할 수 없을 때가 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텐가. 뇌의 종양들만 하더라도 폭력적 충동을 많이 느끼게 할 수도 있고, 소아성애자로 사람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두려움을 느낄 수 없게 될 수도, 감정이 폭발하고 과잉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사회의 한 범죄자가 뇌의 구조적인 문제로 이런 특성을 갖게 되었다면, 그리고 본래는 성실하고 모범적인 사람이었다면 사회는 이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 이렇게 변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 사람이 저지른 죄는 나쁘고, 잊힐 수 없는 일이겠지만 무조건 그사람을 비방하는 것 역시 옳지 않은 것 같다. 이런 뇌 자체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자라나는 환경에 따라 뇌가 많은 영향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누군가의 잘못을 비난하기 전에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발달 경로를 선택할 수는 없으므로 무조건적 비난은 가하지 않아야 한다. 핵심은 모든 사람들의 출발점이 제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법은 인간이 최소한의 실천이성을 갖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이에 의거해서 범죄행위뿐 아니라 범행동기까지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앞에서 여태껏 다루었듯이 우리의 결정은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유전자든 환경이든 이런 요소들은 의식상의 ‘나’가 결정을 내리는 데 어느 정도 관여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범죄자들을 처벌하는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
    범죄자는 언제나 다른 식으로는 행동할 수 없었던 사람으로 접근해야 한다. 즉 범죄 자체를 뇌가 이상하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범죄자를 처벌하는 방식은 개인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의도가 짙게 깔려 있다. 하지만 법적 시스템은 어떻게 해야 사회가 발전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리고 수감기간은 처벌이라는 욕망 대신 재범을 저지를 위험성을 더 고려해야 한다. 이것은 정신과 의사가 판단하는 것보다 통계적인 자료로 보는 것이 훨씬 확실하다고 이미 연구를 통해 증명된 바가 있다. 만약 범죄자가 다시 사회로 복귀하게 된다면 생물학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맞춤형 사회복귀를 제안하자는게 작가의 주장이다. 그리고 해결책으로서 전전두엽 단련운동을 제시한다. 전전두엽에 문제가 생긴 사람들은 충동을 제대로 조절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범죄자들은 자신의 행동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고, 처벌의 무서움도 알지만 충동을 잘 억제할 수 없을 뿐이다. 그러니까 충동만 잘 조절하게 된다면 범죄자들은 사회에 복귀하더라도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전전두엽 단련운동에서는 전두엽이 단기적인 욕구를 억제하도록 연습시킨다. 이 운동은 점검과 균형이라는 시스템을 발전하게 해 뇌가 구성원들 간 토론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게 돕는다. 이것이 바로 ‘성숙’이다.

    이 책은 뇌에 대한 논의와 무의식의 세계를 일반인 수준에서 풀어내었다. 무의식이 구성되는 방식과, 뇌가 결정을 내리는 단계들을 설명하고,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범죄자들의 뇌에 대해 이해해 보고자 한다. 뇌에 대해서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더 많지만, 이미 알려진 내용과 가설들로 이를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적용시키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이것이 앞으로 의사들이 가져야 할 태도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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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덕 심리학자인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에서는 본능적 감정이 이성을 지배한다고 했습니다. 그 책이 결과적인 인간의 행동을 분석한다면 이 책은 뇌과학의 입장에서 원인에 집중하는 것 같네요! 좋은 책 추천 감사드려요! 두 책을 비교하며 읽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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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른 책과의 좋은 비교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저도 책을 구해 읽어봐야겠어요
  • 실패한 시작과 열린 결말 / 프란츠 카프카의 시적 인류학(주제들 2)(양장본... 작가 게르하르트 노이만 출판 에디투스 hayul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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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 서점에서 구한 책이었는데, 카프카에 대한 관심으로 이 책을 골랐다. 관심만으로 읽기는 내용이 어려운 책이었고, 논문 같은 느낌이어서 읽는 것이 딱딱하고 지루했지만 이번 책은 읽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려고 한다. 또 독후감상문도 내가 이해한 내용 안에서 써 보려 한다.

    카프카의 생애는 그렇게 좋지 못했다. 박봉이지만 보람을 느끼는 직장을 다녔고, 그의 창작 생활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가족들이 조용해지는 밤에 조금씩 창작을 하였다. 그는 전업작가로 전향하고 싶어했지만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하고 폐결핵으로 사망하게 되며, 생전에 자신의 글을 불태우라 하였으나 친구가 글을 엮어 출판하게 된다. 카프카는 활동하던 당대에 거의 무명작가에 가까웠다. 하지만 후대에 다시 검토되어 시대에 앞서갔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현대 작가 중 걸출한 작가로 꼽히는 사람이다.

    내가 읽은 책의 작가는 게르하르트 노이만 이라는 대표적인 카프카 해석자이자, 괴테와 리히텐베르크, 시학과 방법론에 관한 많은 성과를 낸 연구자이다. 그래서 이 책도 무언가를 밝히려고 하는 책이다. 작가는 카프카의 문학을 연구한 발터 벤야민의 연구를 분석하고 재구성하여, 카프카에게서 전통적 서술의 종말로 이어진 새로운 인류학적 사상이 왜 필연적인가를 탐구하고자 한다. 그리고 어떠한 새로운 형식의 단편 산문이 전통적 서술을 대체하는지 보여주려고 한다.
    우선 작가는 카프카에 대해 논하기 전 발터 벤야민의 자서전적 인류학을 먼저 다룬다. 벤야민의 대표적인 글 <베를린 유년시절>의 단문 ‘전화기’를 가지고 패러다임의 전환을 설명한다. 그와 함께 새로운 방식으로 인간 공동체를 조직하는 한 매체(전화기)의 문화적 경력을 살펴본다. 벤야민은 매체의 혁신으로, 주체는 목소리로 축소되고 매체에 의해 기각된다고 말한다. 이 때, [몰래 귀 기울여 듣는 아이] 와 [전화기], 즉 [개인적, 유기적인 몸의 경력] 과 [기술매체의 경력]은 쌍둥이처럼 함께 발전한다. 이 짧은 단편의 내용을 설명한 뒤 작가는 벤야민이 전화기를 표현할 때 어떤 구절들을 인용했는지, 그런 인용이 앞으로의 논의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논한다. 우선 첫 번째로 인용된 마이어의 <밤의 소리>에서는 밖의 소리를 듣는 것부터 시작해 자기 안의 소리를 지각하는 내면화의 과정과, 결국 세상의 소리가 사라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하여 현실의 소리는 몸의 소리에 대한 은유가 된다. 꿈과 에로스, 죽음을 한데 엮는 것은 유기적인 몸의 세계이고, 이러한 지각의 매개체는 기술이 아니라 뮤즈이다. 그리고 뮤즈의 매체는 시다. 이 부분에서 벤야민은 마이어의 시를 인용한다. 전화기의 탄탄대로 한참 뒤에 남겨진 자연적 소통 모델을 완벽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매체인 전화기는 양면성을 지니는데, 통화 중인 사람을 몸의 세계로부터 쫓아내어 고독을 느끼게도 하고, 이 고독을 치유해 주기도 한다. 즉 외로움의 원인이자 치유수단인 것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되어 글의 첫 장면은 카프카의 <황제의 메시지>를 암시하고, 두 번째 장면은 구약성서에 대해 암시하고 있다.
    작가는 통합적으로 이 글에 대해서, 인류학적 주체 개념에 나타난 패러다임의 변화를, 소통 구조 면에서 세 가지 숨은 인용문으로 서술한다고 말한다. 첫 번째로 자연의 유기적 흐름에 속한 인간이 있고, 인간의 몸과 자연의 매개체는 (시의) 목소리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유없는 죄’의 세계, 이해할 수 없는 제도(법)의 세계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기술적’ 목소리는 몸에서 분리되지만, 배제된 몸은 망아적 황홀경을 통해 존재를 적극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짧은 글에 대한 이해를 마치고 작가는 본격적으로 카프카의 인류학에 대해 알아본다. “죄”는 카프카 작품의 핵심 모티프이자, 벤야민에게는 지대한 관심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카프카는 이성으로 없앨 수 없는 ‘이유 없는 죄’의 문화에서 글을 썼고, 수치가 죄를 나타내는 감정으로 기능하는 범주를 세가지로 구분한다. 성적 수치, ‘성’을 제대로 쓰지 않은 데 대한 수치, 인간 존재를 포기한 것과 관련된 수치이다. 칸트는 인간타락, 죄라는 되물림된 저주를 이성을 통한 계몽의 기회로 바꾸는, 아주 낙관적인 인류학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낙관은 카프카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 즉 이유없는 죄로 바뀌게 되고, ‘희망없는 희망’을 향한 시지프스적 고통스러운 인식으로 바뀌게 된다. 이 이유없는 죄는 종교적인 개념인데, 아담이 창세기 선악과를 먹어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지만, 신과 같아지는 데 필요한 능력, 즉 인식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서 죽은 것은 인간이 아니라 낙원의 인간이며, 인간이 신이 되지는 않았으나 신적인 인식이 되었다. 하지만 인간은 선악의 인식을 역행시켜 애초부터 없던일로 하고싶어 한다.

    카프카의 문학에서는 두가지 경력의 실패가 있다. 인생경력에서의 실패와 문학경력에서의 실패가 그것이다. 우선 문학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인생경력에서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카프카 자신은 문학적 형식에서 실패하는 모습을 보인다. 카프카는 본래 고전적인 소설을 계승하고자 했으나 실패한 시작과 열린 결말 탓에 좌초하게 된다. 카프카는 교양소설 이야기를 위해 상보적으로 구상된 두 모델(유기적 성장 모델, 건축적 구성 모델)을 불러낸다. 그리고 그의 미완성 장편들의 각 모델을 분석하며, 결국 마지막 미완성 장편은 나머지 반생을 위한 건축적 전략을 찾고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위에서 살펴본 이력(성적 경력, 사회적 경력, 경제적 경력)에서의 실패를 벤자민은 카프카 인류학의 핵심으로 보았다. 이 실패의 근저에는 세계인식의 패러다임 변화가 있으며, 이 변화가 충격을 야기한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방향 설정의 충격을 야기하고 결국 이력을 실패로 이끈다. 벤야민은 카프카의 문학은 신비주의적 경험(전통에 관한), 살아있는 물리학과의 동시대성 두 초점을 가진 타원이라고 설명한다. 이 두 초점의 분열로 인한 충격 속에서 카프카는 세상을 인식한다. 충격은 다시 네가지로 분류될 수 있는데 1. 이유 없는 죄에서 깨어남 2. 생물학적 이력에서 동물 발견 3. 낯선 제도 4. 유기체와 기술코드 간의 비정상적 관계 이다. 그리고 카프카의 문학 형식 역시 장편소설과 비유담으로 구별되는데 이를 벤야민은 인류학적 서사로 이러한 형식을 만드려는 두 상보적인 시도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벤야민은 여기서도 이중의 실패를 본다. 카프카는 장편 소설뿐 아니라 비유담 장르에서도 실패한다. 카프카가 연출하는 것은 이야기할 수 없는 기원의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작가는 카프카의 장편들과 벤야민의 저술을 바탕으로 카프카의 인류학을 구체화해 나가고 사실 이부분은 학과생인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앞부분의 논의들도 따라가기 힘들었다 보니 끝까지 집중해서 책을 읽는 것도 어려웠지만 카프카의 글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접하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다음에 인문학을 좀더 잘 알게 되었을 때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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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떻게 죽을 것인가 작가 Gawande, Atul 출판 부키 hayul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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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별적인 의사들은 개별적인 분야의 질병은 잘 해결한다. 하지만, 복합적인 병을 가진 할머니가 찾아왔을 때에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오히려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노화 전문의들이 노인들을 치료했을 때, 장애를 일으킨 사람도 적었고, 우울증에 걸린 사람도 적었다. 물론 사망률은 비슷했지만 말이다. 이 말은 좀 더 나은 죽음을 맞이했다는 말일 것이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죽음 말이다. 덜 두렵고 덜 고통스러운 죽음. 죽음이 아름다울 수는 없지만 우리 모두는 삶의 마지막까지 인간적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아툴 가완디는 현대 의학은 환자를 살리는 데에 급급하고 있다고 말한다. 어느 의사든 환자에게 죽으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 최대한 환자를 살릴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환자가 마지막에 다가가는 순간만큼은 의학이 의학이 아니라 생명연장술 같이 느껴지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정말 이것이 의학이 추구하던 바였을까? 가완디는 인도 사람이고, 인도의 시골에서 할아버지의 죽음이 어떠했는지 잘 기억한다. 할아버지는 늙어가면서 공동체 사이에서 경험이 많은 사람으로서 가지는 일종의 권위를 가지고 있었고 모든 구성원들은 할아버지를 존경했다. 그리고 구성원들이 둘러싼 가운데 할아버지는 임종을 맞이했다. 가완디가 미국으로 의사생활을 와서 접한 노화와 죽음은 다른 것이었다. 가완디는 그녀 아내의 할머니를 통해 이를 설명한다. 아마 인도와 미국 간 문화의 차이가 큰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느껴진다. 그녀의 할머니는 가족들에게 ‘얹혀사는’ 것을 싫어했고 정말 많이 아프기 전까지는 혼자서 살며 많은 일들을 혼자 해결하셨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혼자 설 수 없어지는게 사실이고 우리는 차츰 허물어지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의존하게 된다. 우리의 배우자와 자식들에게. 이 말은 주도권을 잃는다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요양원에 가면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게 될것이고 내가 모르던 사람들이 밥을 먹여주고 씻겨줄 것이다. 아마 그때부터 나의 사생활이란 없는 것이 될 것이다. 나의 신체적 정신적 능력이 없어지는 것도 모자라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의존해야 한다면 비참할 것 같다. 그리고 모두가 겪어보진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알듯이, 요양원의 직원들은 보통 노인을 한 사람이 아니라 단순한 환자로서 대하는 경우가 많다. 난 이점에서 내가 배웠던 의료인문학의 내용이 떠올랐다. 의사가 환자를 단순히 환자로 대한다는 문제이다. 환자는 다양한 사회에서의 문제들을 질병과 함께 안고 오지만 보통의 의사들에게 환자는 그저 질병이 있는 개체일 뿐이다. 두 문제 다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기 때문이라는 큰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공급을 늘리기 위한 사회적 지원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아마 이런 문제들은 청년층과 중년층은 이런 문제를 잘 느끼지 못한다는 데에서 올 것이다. 우리에게는 삶이 영원할 것 같으니까. 당장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것도 아니고, 근처의 죽음을 경험하기도 어린 나이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그저 막연하고 작을 뿐이다. 하지만 노인들은 다르다. 그들은 노화로 인한 직접적 문제로 언제든 죽음 근처에 갈 수 있는 병을 가질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은 흔히 비전이 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 젊음은 현재보다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그래서 현재를 포기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한다. 하지만 노인들이 삶을 보는 시점은 다르다. 그들에게는 당장 코앞의 미래도 불확실하기 때문에 현재, 여기서 내가 무엇을 하고 느끼는지가 중요하다. 가완디는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가지고 이를 다시 한 번 말한다. ‘톨스토이는 생명의 덧없음과 씨름해야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관점 사이에 얼마나 깊은 틈이 있는지를 본 것이다.’ 그리고 톨스토이는 이런 깊은 틈을 좁힐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저 옆에 있어주고 손을 잡아주는 것이다.

    노화로 인해 우리가 쇠약해지고 의존적이 되었을 때, 아이러니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일상의 소소한 일(머리를 어떻게 하고 무엇을 먹을지 같은)에 대해 직접 선택을 하고, 자신의 우선순위에 따라 세상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즉 삶에서 자율성을 갖기를 원하는 것이다. 가완디는 자율성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한다. 한 사례에서, 요양원의 의사는 요양원의 3대 문제(무료함, 외로움, 무력함)를 해결하기 위해 생명이 필요하다는 결단을 내린다. 그리고 요양원에 꽃들과 동물들을 들여오는 데에 성공한다. 이 뒤로 노인들은 생명력을 되찾기 시작한다. 예전의 삶과 자율성을 조금씩 찾아온 것이다.
    아마도 의료인문학이 중요한 이유는 의학계에서의 인문학적 관점이 부재한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의료전문가들과 학계는 마음과 영혼의 안녕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인 건강을 복구하는 데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우리는 삶이 기울어가는 단계에 우리가 삶을 영위할 방법을 결정할 권한을 그들에게 맡겨 버렸다. 결국 책의 다양한 사례들이 보여주듯이 나이든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뿐이다.

    앞까지가 노화에 대한 이해와, 기존 의학계의 관점을 비판하고자 하는 내용이었다면, 이 다음부터는 우리 모두가 노화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다루고 있다. ‘내려놓기’, ‘용기’이다.
    우리는 혹시 우리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그 확률을 믿어보고자 한다. 미미한 확률일지라도. 그리고 의사들 또한 비슷한 충동을 느낀다. 그런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우리 모두가 바라지만, 노화나 질병 때문에 삶을 고통스럽게 유지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의학적인 충동을 자제해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당연히 우리 모두는 죽는다. 그리고 이 죽음을 더 고통스럽고 길게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평온한 환경에서 인간적인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가 우리에게 남겨진 문제이다.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당장은 후자를 택하겠지만, 막상 내가 환자가 되어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다면, 난 며칠이라도 내 삶을 더 늘리고 싶지 않아할까. 이해할 수 있는 심정이지만 나 또한 이런 선택을 할까봐 두려워진다. 작가도 비슷하게 말한다. ‘환자는 자신이 치명적인 질병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만, 죽어가고 있다는 것까지는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호스피스 케어는 죽음의 방법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공하려고 했고 모든 사람들이 그것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환자와 주변인들의 희망 때문이기도 하고, 의학계의 관성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내려놓기’를 위해서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대화를 나눠야만 한다. 젊은 사람들은 나이 많은 사람들과, 자녀들은 부모들과 이런 얘기를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무거운 주제이지만, 서로 이해하는 폭도 넓어질 것이고, 부모가 나이가 들었을 때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더 잘 알고 실행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의사와 환자와의 기존의 관계들도 재고되어야 한다. 기존의 관계들은 가부장적 관계, 정보를 주는 관계 두가지가 있다. 하지만 환자는 이 관계에서 만족감과 동의를 갖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관계가 등장한다:해석적 관계이다. 이 관계에서 환자와 의사는 충분히 의사결정을 공유할 수 있고, 그래서 환자는 자신이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고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이런 내용은 우리가 의료인문학 수업부터 꾸준히 다뤄왔던 관계이지만, (작가도 자신의 학생시절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이상적인 관계인 동시에 전적으로 이론적인 관계처럼 학생들이 느꼈다. 사실 나도 이런 관계가 가장 좋을 것이라는 생각은 갖고 있었지만 이것을 의사로서 어떻게 실행시킬지 항상 모호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양한 사례들과 의사의 태도를 보고 기준점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다. 떠오른 좋은 비유가 있다-영화 ‘케빈에 대하여’이다. 에바는 케빈을 낳지만 아기를 돌볼 준비가 되지 않았었고, 케빈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그렇게 태어난 케빈은 남들과는 약간 다르고 에바는 자신의 아이를 가혹한 무관심으로 대한다. 케빈은 엄마의 관심과 애정을 위해 머리를 써서 에바를 괴롭힌다. 케빈을 애정으로 대했던 아빠와 케빈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만, 에바와는 늘 크고 작은 다툼이 생기고, 작은 악마는 사이코패스로 성장하게 된다. 나에게 인상깊었던 대사는 이것이다-단지 살짝 안아주면 되는데. 에바가 안으면 울기만 하던 아기가 에바의 남편이 안으면 울지 않고, 그 때 남편이 말한 대사이다. 우리가 좀더 사랑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으면 되는데.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작가는 마지막 장에서 ‘용기’에 대해 말한다. 작가는 용기를 ‘무얼 두려워하고 무얼 희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식을 직면할 수 있는 힘’이라고 정의내린다. 그리고 나이들어 병드는 과정에서는 두 가지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나는 삶은 유한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찾아낸 진실을 토대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용기이다. 용기를 가지는 데에 발목을 잡는 것은 삶이 얼마나 남았을지의 불확실성이 아니라, 자신의 두려움과 희망 중에 무엇을 택하느냐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용기를 존중하는 사람들은 ‘존엄사’라는 개념을 더 지지한다. 누군가가 의미없는 생명 연장을 거부할 때 이를 존중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환자들이 안락사에 의존하게 될까봐이다. 작가는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좋은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좋은 삶을 사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도 가장 가까운 사람을 죽음으로 잃어본 사람으로서 책의 많은 부분이 공감이 되었다. 아마 내가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그 일을 계기로 해서였던 듯하다.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플라톤은 죽음이 축복이라고 말했지만 우리 모두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서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두렵다. 그 두려움으로 고통스러운 생명을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연장시킬 것인가, 아니면 현재를 소중히 다루며 가장 인간다운 삶을 살다 죽을 것인가. 이 책은 의사에게도 환자에게도, 끝을 맺을 우리 모두에게도 필요한 책이 아니었나 싶다. 이번 책을 계기로 의료인문학의 내용을 잘 이해하게 되었고, 나 스스로도 기준을 명확히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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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별의 푸가(양장본 HardCover) 작가 김진영 출판 한겨레출판사 hayul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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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 이별은 시간과 문화를 불문하고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 소재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관련된 글도, 음악도, 미술작품도 많지만 자칫 진부해 보일 수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아무리 삶의 양식이 다를지라도 사랑과 이별을 거치며 겪는 감정들은 모두가 닮아 있으니까. 그래서 영상 매체처럼 직접적으로 사건과 감정을 보여주는 방식이 아닌 이상, 이 감정을 다루고 표현하는 일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특히, 글 중에서 사랑과 이별을 잘 다룬 글은 흔하지 않아서 어쩌다 접하게 되면 그 글이 오래 기억에 남곤 한다. 그리고 이 책이 그런 책이다.

    책의 부제는 ‘철학자 김진영의 이별일기’인데, 과연 문학이 아닌, 철학이 바라본 이별은 어떤 것일지 궁금해서 책을 샀던 기억이 난다. 철학자가 쓴 책인 만큼, 여러 책들의 인용으로 표현한 감정이 많다. 아니 어쩌면 작가가 이별을 겪으며 재해석한 구절일지도 모른다. 사실 철학적인 논의를 기반으로 한 글들은, 난데없는 상황에 던져졌을 때 난해한 경우가 많다. 적시에 읽혀야만 이해가 가는, 타이밍이 중요한 글들인데, 작가는 이별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겪는 감정의 스펙트럼 속에서 각 구절에 공감을, 때론 반발을 하며 감정을 표현한다. 사실 이별을 한지 며칠 되지 않아 이 책을 접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표현할 수 없다 생각했던 감정들이 섬세하게 표현된 것에 경이로움을 느꼈고 또 누군가가 이 감정을 표현해냈다는 생각에 응어리가 풀리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매 구절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표현의 깊이와 작가가 경험한 사랑과 이별의 깊이에 감탄하며 읽었다. 마치 이별 속 감정들의 사전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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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별을 다룬 글을 저도 문학에서만 본 것 같은데, 철학자가 경험하고 바라본 이별은 어떤지 궁금해지네요. 흥미로운 책인 것 같아요!! 리뷰 감사합니다. !!
      • 같은 감정을 풀어낸 깊이가 달라 기억에 오래 남는 책입니다. 기회 되신다면 꼭 읽어보세요!
    • 그 감정들을 어떻게 섬세하게 풀어냈을지 정말 궁금하네요.. 철학자의 이별일기라 소재가 독특하지만 흔히 겪는 상황이라 더 와닿을 것 같아요. 좋은 책 추천 감사드려요!😊
    • 사랑에대한 책을 찾고있었는데 이 책을 읽어봐야겠어요. 저도 얼마전 겪은 이별에 대한 응어리가 조금 풀리길 기대하며..슬프네요
      • 앗... 저는 이 책에 공감하는 것 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잘 이겨내시길 바라요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CD1장포함) 작가 박민규 출판 예담 hayul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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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모임 때문에 사서 읽었던 책이다. 결국 독서모임은 가지 못했지만, 항상 추천도서 목록에 있었고 유명했기 때문에 한번은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읽는 동안 울컥하는 순간이 많았고, 다 읽고 나서는 한동안 마음이 아리고 먹먹해서 감기처럼 앓았었다.

    표면적으로는 외모지상주의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이 책은 세상의 주인공이 아닌 모두를 위해 쓰인 글이다. 그러니까 물질만능주의, 능력주의 같은 사회의 모든 평가기준이 개인을 얼마나 삶의 바깥으로 내몰수 있는가를, 그리고 이 내몰린 사람들이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내는 모습을 비추며, 이런 삶의 모습들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우리의 곁에 혹은 우리의 안에 들어와있음을 일깨운다.
    사회가 아름답다고 숭배하는 몇몇 가치있는 요소들, 그리고 그와 반대되는 요소들은 이 책에서 아주 시각적으로 미와 추의 대립으로 형상화된다. 미를 향해 달리는 인간의 무리들 속에서, 추의 요소를 가진 인간들은 시녀들, 아웃사이더와 같은 존재가 된다. 단 한가지의 추만 가져도 얼마나 극심하게 사회로부터 추방당할 수 있는지, 개인의 가치가 얼마나 폄하되는지 책은 거리낌없이 보여준다. 사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우리나라의 입시판을 겪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잔혹함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의 평가에 따라 가치가 매겨지고 이사람이 성공작인지, 실패작인지 평가되는 일들은 언제나, 인류의 역사와 함께 있어왔다. 이런 평가는 직설적일 때도 있지만 암묵적일 때가 많고 또 개인의 무의식에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아웃사이더들은 스스로 내쳐진 자신의 위치를 인정하고 더욱 자신을 바깥으로 내몰기도 한다. 그렇게 자신마저 존재를 부정하게 되면 그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한가지다. 자신을 죽이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몰린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에게 기대어야 한다. 그것이 연인의 형식이든 가족의 형식이든 친구의 형식이든-사실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에게 기대어 자신의 존재를 어떠한 방식으로든 인정받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방식이다.

    사회가 만든 미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한 공동체의 가치체계에 반하는 것은, 그러나 중요한 일이고 자신과 타인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한다. 결국 사회의 기준들은 평범한 보통의 인간을 도구로, 사회가 운영되기 위해 필요한 부품으로, 혹은 소수의 주인공들을 빛내줄 들러리로 전락시킬 뿐이다. 도구에서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는 방법은, 상처입은 사람들이 서로를 돌보고 그래서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 있다고 믿게하는 것이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 옆에 잠시 멈춰서, 호흡을 고를 수 있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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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옆에 있는 사람(문고판)(리커버 에디션) 작가 이병률 출판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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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생 2학년 때였나, <눈사람 여관>이라는 시집으로 이병률 시인을 처음 접했다. 읽은지 오래되어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단어를 깔끔하게 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다른 시인들과는 다르게, 일상의 단어만으로 평소 스쳐지나가는 감정과 느낌을 표현을 잘한다, 읽히기 좋은 시이다 싶었다. 그러고 대학생이 되어 시인의 이름이 가물가물해 졌을 때, 동네 책방에서 책 구경을 하다 익숙한 이름을 보고 책을 열었다. 여행 산문집이었고, 글만큼 많은 사진이 있었다. 에세이라는게, 재미없으려면 한도 끝도 없이 재미없을 만한 글인데 그 책만큼은 손에서 떨어지지가 않았다. 불필요한 글자는 단 하나도 없는데 표현은 정말 풍부한 글이었다. 그렇게 선 자리에서 몇 장을 넘기다가 바로 산 책이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 <바림이 분다 당신이 좋다> 이다. 이 책들을 안고 방에 와서 책장을 정리하다가 <눈사람 여관>을 보고서야, 아 이 분이셨구나, 어쩐지 정말 남다르더라 하고 생각했다.



    시를 쓰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연습하는 것이 불필요한 말을 없애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단어들이 정교하고 섬세하지만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다. 낯익은 단어들로 이루어진 문장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겪어보았을 감정을 진부하지 않게 표현하고 있다. 정말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말 같은데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고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글이 결코 쉽게 쓰이지는 않기 때문에(오히려 가장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글에 애정이 가는 것을 넘어서 이병률 작가님을 존경한다.



    문체도 문체지만, 이 책들의 내용도 마음을 녹인다. 여행산문집인 만큼 여행지에서의 일화, 여행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은데 그 모든 이야기에서 사람을 바라보는 따스함이 묻어난다. 사람이 싫어질 때 이 책을 읽으면, 아직 사람들은 따뜻하구나, 정말로 사람은 자신에게 관련이 없는 사람에게도 애정을 가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 이런 시선은 책 속의, 작가님이 직접 찍은 필름사진에서도 보인다. 아무렇지 않은 일도 아무런 일이 될 수 있는 여행 속의 사진과 글을 보다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무엇을 놓치고 잃어버리며 사는지-그런 일들이 얼마나 가치있는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진정한 위로가 되고 지도가 되는 글이었다. 이 책을 읽는 모두가 양파 볶는 냄새를 좋아하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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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병률 작가님의 책을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는데 이 글을 보니 꼭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사람에게 상처도 받지만 또 사람을 통해 위로 받는 것 같아요. 일상에 지치거나 위로가 필요할 때 이 책을 읽어보겠습니다. !!
      • 사실 힐링글, 위로를 위한 글이 서점에만 가도 널려 있지만 이책만큼 마음이 따뜻해 지는 책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좋은 책이에요.
    • 개인적으로 이병률 작가의 책을 여러번 읽었는데 저도 말씀하신 것처럼 시인이니만큼 말을 잘 덜고 간결한 글을 쓰는 작가라고 느꼈어요. 저도 양파볶는 냄새로 여행을 기억하게 되길 바라곤합니다 ㅎㅎ..
      • 취향이 비슷한 분이신 것 같아 반갑네요! 원래도 양파볶는 냄새를 좋아했지만, 이 책을 읽고 더 좋아하게 된 것 같습니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국내 출간 30주년 기념 특별판 작가 밀란 쿤데라 (지은이), 이재룡 (옮긴이) 출판 민음사 hayul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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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서평
    제목부터 다가가기 힘들어 보이는 이 책은 언젠가 철학과 수업을 듣다가 교수님께서 추천하셨던 책이다.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앞부분의 내용 전개가 지루하다고 느껴졌으나 중반부로 넘어갈수록 흥미진진해 지니, 앞부분을 읽다가 책을 덮고 싶다면 꼭 참아보길 바란다. 아마 끝까지 읽고나면 다시 제일 처음부터 읽고 싶어질 테니까.
    저자는 네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 각 인물의 인생을 통해 여러 철학적인 논제들과 당대의 사회상(러시아의 체코점령)을 소설의 형식으로 풀어낸다. 크게 다루어지는 논제로는 니체의 영원회귀, 영혼과 육체의 이원성에 관한 질문, 무거움과 가벼움, 키치, 그리고 실존주의가 있고 개별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듯하지만 각 논제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저자는 이 주제들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각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 하나의 관점만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있는지 질문하며 상식적인 가치체계에 의문을 던진다. 이 책을 보다 보면, 인물들의 상식적이지 않아 보이는 행동에 대해서도 세밀하게 해설했기 때문에 표면적으로 어떤 사람의 행동만 보고 판단을 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진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그들 나름의 경험에서 비롯된 무의식의 결과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게 되고, 그래서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위의 여러 논제들 중 인상 깊었던 논제들을 꼽으라면 무거움과 가벼움이 되겠다. 우리는 흔히 무거움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가벼움보다 더 ‘좋다’고 여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가치판단을 비틀고, 무거움과 가벼움을 다양한 논제에서의 대립으로 심화시키며 ‘상식적인 가치’를 부정한다. 우선 이 책 자체도, 철학과 시대상을 담은 방대한 내용을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풀어내어 가볍게 읽히도록 쓰였기 때문에 모순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우연과 필연에 대해서는, 여섯 우연이 겹쳐 생겨난 사랑은 물론 단 하나의 우연이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나, 여섯 번의 우연에 얽힌 사건인만큼 더 중요하고 많은 의미가 담겨있지 않냐고 반문한다. 필연과는 달리 우연에는 주술적 힘이 있으며, 그것이 바로 아름다운 것이고 유의미한 것이 아니냐는 구절에서, 나의 가치체계가 붕괴되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는 거의 모든 대립되는 속성의 삶의 양상을 이러한 자세로 논하고 있고, 한쪽이 더 가치있거나 좋다는 생각을 버리고 그냥 그 자체로 봐 달라고, 그 자체의 의미와 장단점을 더 집중해서 보라고 책 전반에 걸쳐 말한다.
    아마 저자의 이와 같은 자세는 키치kitsch라는 논제와 연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미학 용어였던 키치는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로 이 책에서 새롭게 정의된다. 풀어 설명하자면, ‘사람이라는 존재/어떠어떠한 존재라면 당연히 “A”해야 한다’라는 문장에서 A에 해당하는 속성이 키치라는 말이다. A에는 가령 종교라던가, 우리가 당연하다 생각하는 가치들, 사회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가치들 같이 수많은 것들이 들어갈 수 있다. 키치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감수성에 기반을 두고 있고(개인에게 아름다운 이미지로서 감동을 불러 일으킬 수 있어야 이미지 속의 무언가가 키치가 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유대감은 키치 위에 존재한다(우리 모두가 키치라는 이미지를 아름답다 느끼고 키치에 동의하기 때문에, 유대감을 가질 수 있다). 그러니까 엄밀히 키치는 한 공동체나 사회가 공유하는 감정과 가치인 것이다. 하지만 앞 논제에서 보았듯 우리의 가치체계는 존립근거가 미약하고, 그래서 키치는 ‘편견, 오해, 이미지’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사회의 기득권은 구성원 간의 유대감을 얻기 위해 키치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책에서 다뤄지는 시대상도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나치의 홀로코스트에서도 극명하게 볼 수 있으며, 현대사회에서도 공공연하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때문에 수많은 키치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무엇이 키치인지를 분명히 구별하는 지녀야 하고 나아가 키치에 반항할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삶의 주제에 대해 가치판단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는 자세는 바로 키치를 식별하고 저항하기 위해 필요한 자세인 것이다.
    무거움과 가벼움에 대한 논제는 키치라는 논제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실존주의의 개념에 대한 논의로 넘어간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실존주의의 개념을 잘 설명했다는 평을 받고있는 만큼, 실존주의에 대한 간략한 설명 또한 곁들여야 할 것 같다. 실존주의의 핵심 주장은 인간에 있어서 ‘실존은 본질에 선행(先行)한다’, 즉 인간은 주체성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실존’은 이념적인 ‘본질’ 밖의 현실적인 존재이고, 이 현실적 존재 중에서도 “지금, 여기에, 이렇게 있는” 현실의 ‘자기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특징, 속성’인 본질을 갖기 이전에 이미 인간으로서 존재(=실존)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실존을 기반으로 지금, 여기를 직시하고 주체적으로 행하고 선택해가며 우리의 본질을 결정하는 주체가 바로 ‘자기자신’이다. 현실적 존재는 자신의 유한성을 인식하고 무력함을 직시하지만, 이 현실의 일상적 자기를 넘어서 ‘초극, 초월’하려 노력하고, 이것이 바로 인간의 존재방식이라고 실존주의는 설명한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인간의 본질에 대한 논의를 접한다. 하지만 인간의 본질 역시 사회에 의해 키치로 얼룩져 있으며, 모두에게 통용되는 인간으로서의 본질 또한 있다고 단언하기 힘들다. 역사 속에서 키치에 의해 당대의 ‘본질’에 배척되는 사람들의 죽음을 수없이 목도해오지 않았나. 또 이 소설 속에서도 저자는 너무나도 다른 네 사람을 보여주며 무엇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묻는다. 다만 네 인물은, 자신의 한계와 키치를 인식하고 이 한계 속에서 지금, 여기 있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뇌할 뿐이다. 저자는 소설 처음부터 니체의 영원회귀를 부정하며 ‘지금, 여기’의 연속인 인생은 반복되지 않는 단 한 번 뿐인 것이고, 그래서 덧없고 가벼운 것이지만, 이러한 유한성 속에서도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본질을 꽃피우는 것이라 말한다. 요컨대, 그러므로 지금, 여기의 존재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한계를 ‘참을 수 없’다.
    인간과 사회의 내면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이 친절하게 쓰인 소설은, 두께보다 더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프라하의 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지만 여전히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은 변하지 않았고, 우리가 이 혼란스러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많은 조언을 던지는 책이다. 아마 한번만 읽어서는 이야기의 깊이를 마주하기 힘들 것이다. 몇 달이 지날 때마다 다른 상황 속에서 이 책을 접할 때, 훨씬 책이 매끄럽게 읽힐 것이고 책을 읽고난 후의 생각과 여운이 커질 것이며 나아가 현재를 살아가는 자세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이상 20세기의 걸작이라 불리는 작품에 대한 짧은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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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의 삶에 대한 사색인 철학과 인간의 삶에 대한 내용인 소설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네요
      • 단순한 소설의 형식이 아니라, 소설의 극한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기회가 되면 꼭 읽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