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패한 시작과 열린 결말 / 프란츠 카프카의 시적 인류학(주제들 2)(양장본... 작가 게르하르트 노이만 출판 에디투스 hayul 님의 별점
    3
    보고 싶어요
    (1명)
    보고 있어요
    (1명)
    다 봤어요
    (0명)
    동네 서점에서 구한 책이었는데, 카프카에 대한 관심으로 이 책을 골랐다. 관심만으로 읽기는 내용이 어려운 책이었고, 논문 같은 느낌이어서 읽는 것이 딱딱하고 지루했지만 이번 책은 읽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려고 한다. 또 독후감상문도 내가 이해한 내용 안에서 써 보려 한다.

    카프카의 생애는 그렇게 좋지 못했다. 박봉이지만 보람을 느끼는 직장을 다녔고, 그의 창작 생활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가족들이 조용해지는 밤에 조금씩 창작을 하였다. 그는 전업작가로 전향하고 싶어했지만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하고 폐결핵으로 사망하게 되며, 생전에 자신의 글을 불태우라 하였으나 친구가 글을 엮어 출판하게 된다. 카프카는 활동하던 당대에 거의 무명작가에 가까웠다. 하지만 후대에 다시 검토되어 시대에 앞서갔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현대 작가 중 걸출한 작가로 꼽히는 사람이다.

    내가 읽은 책의 작가는 게르하르트 노이만 이라는 대표적인 카프카 해석자이자, 괴테와 리히텐베르크, 시학과 방법론에 관한 많은 성과를 낸 연구자이다. 그래서 이 책도 무언가를 밝히려고 하는 책이다. 작가는 카프카의 문학을 연구한 발터 벤야민의 연구를 분석하고 재구성하여, 카프카에게서 전통적 서술의 종말로 이어진 새로운 인류학적 사상이 왜 필연적인가를 탐구하고자 한다. 그리고 어떠한 새로운 형식의 단편 산문이 전통적 서술을 대체하는지 보여주려고 한다.
    우선 작가는 카프카에 대해 논하기 전 발터 벤야민의 자서전적 인류학을 먼저 다룬다. 벤야민의 대표적인 글 <베를린 유년시절>의 단문 ‘전화기’를 가지고 패러다임의 전환을 설명한다. 그와 함께 새로운 방식으로 인간 공동체를 조직하는 한 매체(전화기)의 문화적 경력을 살펴본다. 벤야민은 매체의 혁신으로, 주체는 목소리로 축소되고 매체에 의해 기각된다고 말한다. 이 때, [몰래 귀 기울여 듣는 아이] 와 [전화기], 즉 [개인적, 유기적인 몸의 경력] 과 [기술매체의 경력]은 쌍둥이처럼 함께 발전한다. 이 짧은 단편의 내용을 설명한 뒤 작가는 벤야민이 전화기를 표현할 때 어떤 구절들을 인용했는지, 그런 인용이 앞으로의 논의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논한다. 우선 첫 번째로 인용된 마이어의 <밤의 소리>에서는 밖의 소리를 듣는 것부터 시작해 자기 안의 소리를 지각하는 내면화의 과정과, 결국 세상의 소리가 사라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하여 현실의 소리는 몸의 소리에 대한 은유가 된다. 꿈과 에로스, 죽음을 한데 엮는 것은 유기적인 몸의 세계이고, 이러한 지각의 매개체는 기술이 아니라 뮤즈이다. 그리고 뮤즈의 매체는 시다. 이 부분에서 벤야민은 마이어의 시를 인용한다. 전화기의 탄탄대로 한참 뒤에 남겨진 자연적 소통 모델을 완벽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매체인 전화기는 양면성을 지니는데, 통화 중인 사람을 몸의 세계로부터 쫓아내어 고독을 느끼게도 하고, 이 고독을 치유해 주기도 한다. 즉 외로움의 원인이자 치유수단인 것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되어 글의 첫 장면은 카프카의 <황제의 메시지>를 암시하고, 두 번째 장면은 구약성서에 대해 암시하고 있다.
    작가는 통합적으로 이 글에 대해서, 인류학적 주체 개념에 나타난 패러다임의 변화를, 소통 구조 면에서 세 가지 숨은 인용문으로 서술한다고 말한다. 첫 번째로 자연의 유기적 흐름에 속한 인간이 있고, 인간의 몸과 자연의 매개체는 (시의) 목소리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유없는 죄’의 세계, 이해할 수 없는 제도(법)의 세계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기술적’ 목소리는 몸에서 분리되지만, 배제된 몸은 망아적 황홀경을 통해 존재를 적극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짧은 글에 대한 이해를 마치고 작가는 본격적으로 카프카의 인류학에 대해 알아본다. “죄”는 카프카 작품의 핵심 모티프이자, 벤야민에게는 지대한 관심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카프카는 이성으로 없앨 수 없는 ‘이유 없는 죄’의 문화에서 글을 썼고, 수치가 죄를 나타내는 감정으로 기능하는 범주를 세가지로 구분한다. 성적 수치, ‘성’을 제대로 쓰지 않은 데 대한 수치, 인간 존재를 포기한 것과 관련된 수치이다. 칸트는 인간타락, 죄라는 되물림된 저주를 이성을 통한 계몽의 기회로 바꾸는, 아주 낙관적인 인류학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낙관은 카프카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 즉 이유없는 죄로 바뀌게 되고, ‘희망없는 희망’을 향한 시지프스적 고통스러운 인식으로 바뀌게 된다. 이 이유없는 죄는 종교적인 개념인데, 아담이 창세기 선악과를 먹어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지만, 신과 같아지는 데 필요한 능력, 즉 인식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서 죽은 것은 인간이 아니라 낙원의 인간이며, 인간이 신이 되지는 않았으나 신적인 인식이 되었다. 하지만 인간은 선악의 인식을 역행시켜 애초부터 없던일로 하고싶어 한다.

    카프카의 문학에서는 두가지 경력의 실패가 있다. 인생경력에서의 실패와 문학경력에서의 실패가 그것이다. 우선 문학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인생경력에서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카프카 자신은 문학적 형식에서 실패하는 모습을 보인다. 카프카는 본래 고전적인 소설을 계승하고자 했으나 실패한 시작과 열린 결말 탓에 좌초하게 된다. 카프카는 교양소설 이야기를 위해 상보적으로 구상된 두 모델(유기적 성장 모델, 건축적 구성 모델)을 불러낸다. 그리고 그의 미완성 장편들의 각 모델을 분석하며, 결국 마지막 미완성 장편은 나머지 반생을 위한 건축적 전략을 찾고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위에서 살펴본 이력(성적 경력, 사회적 경력, 경제적 경력)에서의 실패를 벤자민은 카프카 인류학의 핵심으로 보았다. 이 실패의 근저에는 세계인식의 패러다임 변화가 있으며, 이 변화가 충격을 야기한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방향 설정의 충격을 야기하고 결국 이력을 실패로 이끈다. 벤야민은 카프카의 문학은 신비주의적 경험(전통에 관한), 살아있는 물리학과의 동시대성 두 초점을 가진 타원이라고 설명한다. 이 두 초점의 분열로 인한 충격 속에서 카프카는 세상을 인식한다. 충격은 다시 네가지로 분류될 수 있는데 1. 이유 없는 죄에서 깨어남 2. 생물학적 이력에서 동물 발견 3. 낯선 제도 4. 유기체와 기술코드 간의 비정상적 관계 이다. 그리고 카프카의 문학 형식 역시 장편소설과 비유담으로 구별되는데 이를 벤야민은 인류학적 서사로 이러한 형식을 만드려는 두 상보적인 시도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벤야민은 여기서도 이중의 실패를 본다. 카프카는 장편 소설뿐 아니라 비유담 장르에서도 실패한다. 카프카가 연출하는 것은 이야기할 수 없는 기원의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작가는 카프카의 장편들과 벤야민의 저술을 바탕으로 카프카의 인류학을 구체화해 나가고 사실 이부분은 학과생인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앞부분의 논의들도 따라가기 힘들었다 보니 끝까지 집중해서 책을 읽는 것도 어려웠지만 카프카의 글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접하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다음에 인문학을 좀더 잘 알게 되었을 때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