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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 | 1 | 0 | ▼a유학자의 동물원 /▼d최지원 지음▲ |
246 | 1 | 3 | ▼a조선 선비들의 동물 관찰기 그리고 인간의 마음▲ |
260 | ▼a서울 :▼b알렙,▼c2015▲ | ||
300 | ▼a358 p. :▼b삽화 ;▼c23 cm▲ | ||
653 | ▼a유학사상▼a조선유학▲ | ||
999 | ▼a김진영▼c안정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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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공모전 우수작
제목: 인간이 우등하다고 할 수 있는가
학과: 국제학부, 이름: 변*윤, 선정연도: 2017
내용: 영화 ‘혹성탈출’을 보면 인간보다 지혜로운 침팬지가 등장한다. 말을 하고 생각을 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가족을 죽인 인간을 용서하는 지혜까지 겸비한 이 침팬지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이 낳은 동물실험의 결과물이다. 우리는 동물실험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오히려 동물에게 약물을 투여해서 결과를 보아야 검증되었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실험을 행하는 과학자들을 비난하고, 잔인하다고 규명하는 것은 정말 위선적이기 짝이 없는 일이다. 연구자들이 내놓은 결과를 적용시키고, 소비하는 주체는 바로 우리들이지 않은가? 동물실험을 반대한다고 시위하고, 저녁 반찬에 불고기를 내놓는 것은 정말 소름끼치지 않는가?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까닭은 인간이 동물보다 우등하다고 여기는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채식주의자가 된 지 일 년이 흘렀는데, 사람들은 매번 내게 같은 질문을 한다. “가축용은 먹어도 되는 고기잖아? 그러려고 키웠는데 먹는 게 잘못 된 거야?”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체 누가 그런 기준을 정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개는 애완용이라는 이름으로 오냐오냐하며 키우고, 소나 돼지는 가축용이라며 가둬놓고 키우다가 도살해야 한다는 규칙은 누가 세운 것인가? 인간이 정말 다른 동물을 먹을 자격이 있기는 할까? ‘유학자들의 동물원’을 읽으며 이런 철학적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몇 백 페이지를 읽으면 찾은 가장 근접한 답은 유학자들이 스스로를 벌레와 같이 여겼다는“만물평등주의”에서 찾았다.
현대인들은 조금이라도 남들보다 우등하게 보이려고 안간힘을 쓴다. 저자 최지원은 인간들의 인정받으려는 욕구를 선천적인 것으로 보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남을 “열등하게”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진화에서‘적합도’도 중요하지만, 기회가 주어지려면 누군가는‘실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들끼리 인정받기 위해 피비린 내 나는 다툼을 하는데, 이 사이에 동물이 낄 틈은 없다. 동물이 열등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면에서 동물이 훨씬 우등하기 때문이다.
유학자들이 관찰한 동물들의 면모를 살펴보자. 일단, 동물들은 재해를 피하는 특수한 능력이 있다. ‘예측 동력’으로 일컫어 지는 동물들의 지혜에 감탄한 실학자 성대중이 ‘청성잡기’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옥당의 수각이 불어난 물 때문에 무너지기 하루 전 큰 뱀이 처마를 타고 내려왔는데 수많은 뱀들이 뒤따라 내려와 시내를 따라 가버렸다. 이튿날 밤 폭우가 쏟아져 궁궐의 도랑이 넘쳐흘러 수각이 마침내 떠내려가고 말았다.”이런 뱀의 슬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만약 기술적 진보를 이루지 못했더라면 어떠했을까? 조선시대 발명품인 자격루나 측우기에 의지해서 현재를 살 수도 있었을 것이고, 별을 보며 점쳐서 날씨를 예측해야 했을 수도 있다. 만약에 그러했다면 우리 인간도 동물들과 같은 감각이 조금은 더 발전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빠른 기술적 진보가 좋았다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공위성까지 띄우는 등 온갖 기술을 이용하는 지금도 재해를 피하지 못하진 않은가. 일본의 대재앙과도 같았던 지진이 오기 전에 동물들의 움직임을 관찰했더라면 피해를 조금은 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동물들이 어떻게 상처를 치유하는 지 관찰하면 배울 점이 정말 많다. 실학자 이수광은 감탄하며“새끼 쥐가 뱀에게 물리면 어미 쥐가 콩잎을 씹어 물린 곳에 발라주면 모두 살아난다. 일찍이 꿩이나 숭어는 상처가 생겼을 때 모두 송진을 그 상처에 붙인다”라고‘지붕유설’의‘식물부’에 기록했다. 이덕무 역시‘청장관전서’에서 “동물들은 병이 들면 재빨리 어떤 것이 약이 된다는 것을 자연히 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런 것을 본능이라고 하는데, 그 본능은 환경에 의해 발현되는 게 아닐까? 인간이 기술에 의지해서 재해를 피하는 감각이 발달하지 못한 것과 같이, 의학자들과 그 연구에만 의지하기 때문에 고치지 못하는 병이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자연에 몸을 맡기기에는 위험부담이 큰 면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산 속에 들어갔다가, 몇 년 후에 암이 나은 환자들도 있고, 목초액에 매일 목욕해서 만성 피부질환을 치유한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이 살기 좋은 환경이 정말 살기 좋은 환경인지, 보편적인 인식에 무감각해 진 것인지 모르겠다. 나 또한 아토피라는 피부 질병을 앓고 있는데, 동물들과 같은 지혜가 없어서 인공적인 약에만 의지한지 십년이 다 되어 간다. 한약이 자연적 힘을 빌려서 약초로 병을 다스린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나는 그 한의사라는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닌가. 어째서 인간은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고 시도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걸까. 도전하는 인간상을 추구하는 우리가 동물에게 배워야 할 점인 것 같다.
위의 두 가지 면에서 동물이 감각적으로 인간보다 우등하다는 것은 검증되었다. 그렇다면 인간임에 자부하는 ‘사고’의 힘이 동물보다 얼마나 고차원적인지 책에서 살펴보자. 우리는 흔히 동물들은 사고의 힘이 부족하다고 여기고,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덕무는 동물의 지능에 대해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의 저서 ‘청장관전서’ 제 48권에 기록된 쥐가 계란을 옮기는 이야기를 보면 동물이 하는 생각의 힘을 보여준다. “한 마리 쥐가 닭장에 침입하여 네 발로 계란을 안고 누우면 다른 쥐가 그 쥐꼬리를 물어 당겨서 닭장 밖으로 덜어진다. 그리고는 그 쥐꼬리를 다시 물어 당겨서 쥐구멍으로 운반한다.”이를 보면 쥐가 본능적으로 생각이라는 것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배우지 않아도, 보고 듣지 않아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생각이 아닐까. 이런 쥐의 지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행동심리학자 바탈과 그 외의 연구에서 쥐들이 얼마나 의리가 강한지 볼 수 있다. 두 마리의 쥐가 서로를 마주보고 작은 감옥에 갇혀있는데, 한 마리는 묶여 있고, 한 마리는 풀려있는데 감옥문은 밖에서 열 수 있게 되어있다. 우리가 열등하다고 여기는 이 쥐들은 눈앞에 있는 초콜릿 칩을 선택할까, 아니면 초콜릿을 포기하는 대신 갇혀있는 동료를 구할까? 놀랍지 않게도 실험결과는 후자였다. 인간을 대상으로 이 실험이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만약 실험집단에 속했더라면 인간들은 자신의 배부터 채우고 상대방을 도왔을 것 같다. 인간이 고차원의 사고를 하긴 하지만, 그 능력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쓰진 않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인간이 동물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가 더 우등하지 않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실학자 김성일은 자신의 아버지가 불행한 제비 가족사에서 교훈을 얻어 자신의 가족을 지킬 수 있었던 이야기를 ‘학봉집’에 기록했다. “수놈 한 마리가 다른 암놈을 데리고 와서 두 마리가 함께 제비집으로 들어갔는데, 제비 새끼들이 모두 먹이를 달라고 입을 벌리다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버지께서 가서 살펴보니, 새끼들이 모두 부리에 쪼여져 있었다. 뒤에 데리고 들어온 제비가 새끼들을 해친 것이다.”그의 아버지는 어미니 민씨가 병으로 죽은 후 첩을 들였는데, 그 광경을 목격하고 혹여나 자식들을 해칠까 걱정하여 즉시 시 한 수를 지어 좌우에 걸어 놓아 계모들이 감복하게 하고, 더욱 부지런히 자식들을 보호했다고 한다. 인간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최소의 단위가 가족인데, 하찮은 동물에게 가족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배울 수 있었던 것을 보면 동물들이 인간과 평등한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실학자들이 동물을 관찰한 것부터 시작해서 지혜를 얻고, 삶에 적용시켰다는 사실이 감격스럽다. 인간임에 자만하지 않고 자신보다 작은, 약한 존재로부터 배움을 얻었다는 것은 현대 사회의 맥락으로 봤을 때,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이 초심을 잃지 않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것과 같다.
분명 모든 동물들이 이렇게 현명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인간들이 훌륭한 사고를 하는 것 또한 아니다. 대학생이 되고 난생 처음으로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을 만났는데, 일반화를 시키는 오류를 많이 범했다. 돈을 아끼는 독일인 친구를 보면 “역시 독일인이네”라는 말이 나오기도 하고, 사생활을 중시하는 스위스 친구를 보면 책에서 본 거랑 똑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독일인과 스위스인의 티끌만큼도 관찰하지 않고서 일반화시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동물들 마다 행동 방식이 다르기 마련인데 이 동물 집단은 멍청하고, 저 동물 집단은 의리가 없다는 섣부른 판단을 하는 것은 인종 간에 범하는 실수와 같은 것이다.
저자 최지원이 적은 바와 같이 유학자들은 스스로를 벌레에 불과한 존재로 인식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인간이 동물을 다스려야한다는 엘리트주의를 공고히 했기에 오늘날 우리가 동물 도살과 실험을 아무 죄책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쯤에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동물이 인간보다 열등함을 내세우는 것은 인간이 동물과 경쟁했을 때 분명히 질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물보다 못하다’는 말을 욕으로 쓰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게 맞을 수도 있다. 우리가 뱀보다 날씨 예측을 잘하는가? 꿩이나 숭어처럼 본능적으로 상처를 치유할 약을 찾을 수 있는가? 혹은 배고픔을 견디고 동료를 구하는 쥐보다 의리가 있는가? 인간은 동물보다 못할 때가 많다. 그리고 우리가 자부하는 그 사고의 힘이 우리를 더 열등하게 한다. 만약 고차원의 사고력이 축복이었다면 인간들은 다툼도 분쟁도 없이 평화로웠어야한다. 그런데 지금 21세기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핵무기라는 살상무기를 눈 앞에 두고, 그 고차원의 사고력으로 ‘전쟁’이라는 언어를 쉽게 내뱉지 않는가. 우리 인간들은 동물이 더 열등하다는 증거를 조사하기 이전에, 우리가 어느 부분을 보완해야 더 나은 고차원 동물이 될지를 고민해야한다. 진정한 발전은 상대를 깎아 내림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발전은 우리가 더 우등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할 것이다.
학과: 국제학부, 이름: 변*윤, 선정연도: 2017
내용: 영화 ‘혹성탈출’을 보면 인간보다 지혜로운 침팬지가 등장한다. 말을 하고 생각을 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가족을 죽인 인간을 용서하는 지혜까지 겸비한 이 침팬지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이 낳은 동물실험의 결과물이다. 우리는 동물실험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오히려 동물에게 약물을 투여해서 결과를 보아야 검증되었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실험을 행하는 과학자들을 비난하고, 잔인하다고 규명하는 것은 정말 위선적이기 짝이 없는 일이다. 연구자들이 내놓은 결과를 적용시키고, 소비하는 주체는 바로 우리들이지 않은가? 동물실험을 반대한다고 시위하고, 저녁 반찬에 불고기를 내놓는 것은 정말 소름끼치지 않는가?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까닭은 인간이 동물보다 우등하다고 여기는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채식주의자가 된 지 일 년이 흘렀는데, 사람들은 매번 내게 같은 질문을 한다. “가축용은 먹어도 되는 고기잖아? 그러려고 키웠는데 먹는 게 잘못 된 거야?”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체 누가 그런 기준을 정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개는 애완용이라는 이름으로 오냐오냐하며 키우고, 소나 돼지는 가축용이라며 가둬놓고 키우다가 도살해야 한다는 규칙은 누가 세운 것인가? 인간이 정말 다른 동물을 먹을 자격이 있기는 할까? ‘유학자들의 동물원’을 읽으며 이런 철학적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몇 백 페이지를 읽으면 찾은 가장 근접한 답은 유학자들이 스스로를 벌레와 같이 여겼다는“만물평등주의”에서 찾았다.
현대인들은 조금이라도 남들보다 우등하게 보이려고 안간힘을 쓴다. 저자 최지원은 인간들의 인정받으려는 욕구를 선천적인 것으로 보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남을 “열등하게”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진화에서‘적합도’도 중요하지만, 기회가 주어지려면 누군가는‘실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들끼리 인정받기 위해 피비린 내 나는 다툼을 하는데, 이 사이에 동물이 낄 틈은 없다. 동물이 열등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면에서 동물이 훨씬 우등하기 때문이다.
유학자들이 관찰한 동물들의 면모를 살펴보자. 일단, 동물들은 재해를 피하는 특수한 능력이 있다. ‘예측 동력’으로 일컫어 지는 동물들의 지혜에 감탄한 실학자 성대중이 ‘청성잡기’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옥당의 수각이 불어난 물 때문에 무너지기 하루 전 큰 뱀이 처마를 타고 내려왔는데 수많은 뱀들이 뒤따라 내려와 시내를 따라 가버렸다. 이튿날 밤 폭우가 쏟아져 궁궐의 도랑이 넘쳐흘러 수각이 마침내 떠내려가고 말았다.”이런 뱀의 슬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만약 기술적 진보를 이루지 못했더라면 어떠했을까? 조선시대 발명품인 자격루나 측우기에 의지해서 현재를 살 수도 있었을 것이고, 별을 보며 점쳐서 날씨를 예측해야 했을 수도 있다. 만약에 그러했다면 우리 인간도 동물들과 같은 감각이 조금은 더 발전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빠른 기술적 진보가 좋았다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공위성까지 띄우는 등 온갖 기술을 이용하는 지금도 재해를 피하지 못하진 않은가. 일본의 대재앙과도 같았던 지진이 오기 전에 동물들의 움직임을 관찰했더라면 피해를 조금은 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동물들이 어떻게 상처를 치유하는 지 관찰하면 배울 점이 정말 많다. 실학자 이수광은 감탄하며“새끼 쥐가 뱀에게 물리면 어미 쥐가 콩잎을 씹어 물린 곳에 발라주면 모두 살아난다. 일찍이 꿩이나 숭어는 상처가 생겼을 때 모두 송진을 그 상처에 붙인다”라고‘지붕유설’의‘식물부’에 기록했다. 이덕무 역시‘청장관전서’에서 “동물들은 병이 들면 재빨리 어떤 것이 약이 된다는 것을 자연히 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런 것을 본능이라고 하는데, 그 본능은 환경에 의해 발현되는 게 아닐까? 인간이 기술에 의지해서 재해를 피하는 감각이 발달하지 못한 것과 같이, 의학자들과 그 연구에만 의지하기 때문에 고치지 못하는 병이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자연에 몸을 맡기기에는 위험부담이 큰 면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산 속에 들어갔다가, 몇 년 후에 암이 나은 환자들도 있고, 목초액에 매일 목욕해서 만성 피부질환을 치유한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이 살기 좋은 환경이 정말 살기 좋은 환경인지, 보편적인 인식에 무감각해 진 것인지 모르겠다. 나 또한 아토피라는 피부 질병을 앓고 있는데, 동물들과 같은 지혜가 없어서 인공적인 약에만 의지한지 십년이 다 되어 간다. 한약이 자연적 힘을 빌려서 약초로 병을 다스린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나는 그 한의사라는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닌가. 어째서 인간은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고 시도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걸까. 도전하는 인간상을 추구하는 우리가 동물에게 배워야 할 점인 것 같다.
위의 두 가지 면에서 동물이 감각적으로 인간보다 우등하다는 것은 검증되었다. 그렇다면 인간임에 자부하는 ‘사고’의 힘이 동물보다 얼마나 고차원적인지 책에서 살펴보자. 우리는 흔히 동물들은 사고의 힘이 부족하다고 여기고,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덕무는 동물의 지능에 대해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의 저서 ‘청장관전서’ 제 48권에 기록된 쥐가 계란을 옮기는 이야기를 보면 동물이 하는 생각의 힘을 보여준다. “한 마리 쥐가 닭장에 침입하여 네 발로 계란을 안고 누우면 다른 쥐가 그 쥐꼬리를 물어 당겨서 닭장 밖으로 덜어진다. 그리고는 그 쥐꼬리를 다시 물어 당겨서 쥐구멍으로 운반한다.”이를 보면 쥐가 본능적으로 생각이라는 것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배우지 않아도, 보고 듣지 않아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생각이 아닐까. 이런 쥐의 지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행동심리학자 바탈과 그 외의 연구에서 쥐들이 얼마나 의리가 강한지 볼 수 있다. 두 마리의 쥐가 서로를 마주보고 작은 감옥에 갇혀있는데, 한 마리는 묶여 있고, 한 마리는 풀려있는데 감옥문은 밖에서 열 수 있게 되어있다. 우리가 열등하다고 여기는 이 쥐들은 눈앞에 있는 초콜릿 칩을 선택할까, 아니면 초콜릿을 포기하는 대신 갇혀있는 동료를 구할까? 놀랍지 않게도 실험결과는 후자였다. 인간을 대상으로 이 실험이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만약 실험집단에 속했더라면 인간들은 자신의 배부터 채우고 상대방을 도왔을 것 같다. 인간이 고차원의 사고를 하긴 하지만, 그 능력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쓰진 않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인간이 동물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가 더 우등하지 않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실학자 김성일은 자신의 아버지가 불행한 제비 가족사에서 교훈을 얻어 자신의 가족을 지킬 수 있었던 이야기를 ‘학봉집’에 기록했다. “수놈 한 마리가 다른 암놈을 데리고 와서 두 마리가 함께 제비집으로 들어갔는데, 제비 새끼들이 모두 먹이를 달라고 입을 벌리다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버지께서 가서 살펴보니, 새끼들이 모두 부리에 쪼여져 있었다. 뒤에 데리고 들어온 제비가 새끼들을 해친 것이다.”그의 아버지는 어미니 민씨가 병으로 죽은 후 첩을 들였는데, 그 광경을 목격하고 혹여나 자식들을 해칠까 걱정하여 즉시 시 한 수를 지어 좌우에 걸어 놓아 계모들이 감복하게 하고, 더욱 부지런히 자식들을 보호했다고 한다. 인간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최소의 단위가 가족인데, 하찮은 동물에게 가족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배울 수 있었던 것을 보면 동물들이 인간과 평등한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실학자들이 동물을 관찰한 것부터 시작해서 지혜를 얻고, 삶에 적용시켰다는 사실이 감격스럽다. 인간임에 자만하지 않고 자신보다 작은, 약한 존재로부터 배움을 얻었다는 것은 현대 사회의 맥락으로 봤을 때,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이 초심을 잃지 않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것과 같다.
분명 모든 동물들이 이렇게 현명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인간들이 훌륭한 사고를 하는 것 또한 아니다. 대학생이 되고 난생 처음으로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을 만났는데, 일반화를 시키는 오류를 많이 범했다. 돈을 아끼는 독일인 친구를 보면 “역시 독일인이네”라는 말이 나오기도 하고, 사생활을 중시하는 스위스 친구를 보면 책에서 본 거랑 똑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독일인과 스위스인의 티끌만큼도 관찰하지 않고서 일반화시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동물들 마다 행동 방식이 다르기 마련인데 이 동물 집단은 멍청하고, 저 동물 집단은 의리가 없다는 섣부른 판단을 하는 것은 인종 간에 범하는 실수와 같은 것이다.
저자 최지원이 적은 바와 같이 유학자들은 스스로를 벌레에 불과한 존재로 인식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인간이 동물을 다스려야한다는 엘리트주의를 공고히 했기에 오늘날 우리가 동물 도살과 실험을 아무 죄책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쯤에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동물이 인간보다 열등함을 내세우는 것은 인간이 동물과 경쟁했을 때 분명히 질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물보다 못하다’는 말을 욕으로 쓰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게 맞을 수도 있다. 우리가 뱀보다 날씨 예측을 잘하는가? 꿩이나 숭어처럼 본능적으로 상처를 치유할 약을 찾을 수 있는가? 혹은 배고픔을 견디고 동료를 구하는 쥐보다 의리가 있는가? 인간은 동물보다 못할 때가 많다. 그리고 우리가 자부하는 그 사고의 힘이 우리를 더 열등하게 한다. 만약 고차원의 사고력이 축복이었다면 인간들은 다툼도 분쟁도 없이 평화로웠어야한다. 그런데 지금 21세기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핵무기라는 살상무기를 눈 앞에 두고, 그 고차원의 사고력으로 ‘전쟁’이라는 언어를 쉽게 내뱉지 않는가. 우리 인간들은 동물이 더 열등하다는 증거를 조사하기 이전에, 우리가 어느 부분을 보완해야 더 나은 고차원 동물이 될지를 고민해야한다. 진정한 발전은 상대를 깎아 내림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발전은 우리가 더 우등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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