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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공모전 우수작
제목: 유전자를 극복하는 능동적 주체로서의 삶
학과: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전공, 이름: 김*경, 선정연도: 2020
내용: 타고난 유전자는 극복 가능한가?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는 친구들이 늘어날수록 유전자의 힘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친구들의 아들, 딸들은 친구의 작은 분신처럼 닮았다. 얼굴 생김뿐만 아니라 표정, 습관도 닮았다. 우리 선조들이 자녀를 결혼시키면서 상대방의 집안과 부모의 됨됨이를 본 것은 아마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유전자는 힘이 세다. 타고 난 유전자가 나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 내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학창시절 ‘리차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를 읽으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정말 유전자의 운반체에 불과한 존재라면 왜 살아야 할까? 유전자가 내 육신을 희생시켜서라도 자신의 자손을 남기려는 이기적 행위를 한다면 나의 결혼이나 출산도 유전자의 명령에 따른 행위에 불과할까? 그렇다면 나의 삶은 너무 허무한 게 아닐까? 유전자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부모의 선택에 따라 나에 게 주어진 것일 뿐인데, 내 삶에서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가? 내가 처음부터 유전자에 의해 프로그램 된 기계에 불과하다면 왜 살아야 할까? 리차드 도킨 스는 사춘기의 나에게 존재에 대한 근원적 회의를 불러 일으켰다.
이후 ‘유전자는 극복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은 마음 깊은 곳에 화두로 자리 잡았다. 부모님의 모습 중에 닮고 싶지 않은 부분을 닮은 나의 모습이 불편했다. 유전자는 힘이 몹시 세어 보였고, 미약한 나에게 유전자를 극복할 힘은 부족해 보였다. 때로는 이것이 자신에 대한 부정이나 자학의 근원이 되기도 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그로부터 십 수 년이 더 흐른 뒤에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으면서 였다.
유전자는 딸 아들에서 손자로, 다시 그 딸의 아들과 손자로, 인류가 존재하는 한 끝까지 죽지 않는 ‘불멸의 코일’이다. 그러나 유전자의 영생은 생물학적으로 의미가 있을 뿐 철학적 가치 는 없다. 유전자는 기억하지 않으며 사유하지 않는다. 유전자가 영생한다고 해도 자기 자신을 ‘나’로 인식하면서 살아가는 삶의 주체, 지성을 가진 자아는 언제나 단 한번만 존재한다. 유전자는 유전자일 뿐 ‘나’가 아니다.
언젠가는 죽어야 하고 잊혀질 수밖에 없는 것이 숙명이라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 이다. 살아 있는 동안, 지금 바로 여기에서, 나를 ‘나’로 인식하는 철학적 자아가 삶의 기쁨 을 누리는 것이다. ‘나는 왜 자살하지 않는가? 무엇을 할 때 살아 있음을 황홀하게 느끼는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내가 진정하고 싶은 것인가? 내 삶은 나에게 충분한 의미가 있는가?’ 스스로 이렇게 물어야 한다.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면 인생의 의미도 존엄도 없는 것 이다.
나는 유시민 작가의 답이 마음에 들었다. ‘나를 ‘나’로 인식하는 철학적 자아가 삶의 기쁨을 누리는 것’. 그것을 위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내가 언제 행복한지 고민하면서 나에게 주어진 생을 누리는 것이 좋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사실, 유전자의 불변성과 기결정성, 극복 불가능한 강력한 힘을 인정하면서, 나에게 주어지는 작은 행복을 찾는 일에 불과하다. 마치 구입 불가능한 주택 가격과 좁은 취업문, 작은 월급 앞에서 결혼도, 연애도, 출산도 포기한 우리 젊은 세대들이 ‘소확행’을 즐기기로 결심하는 것 마냥 임시변통인 것이다.
그러나 드디어, 화두에 대한 답에 가까이 온 것 같다. ‘네사 캐리’의 『 유전자는 네 가 한 일을 알고 있다 』 를 읽으면서, 우리의 경험이 유전자의 스위치를 반대로 돌릴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다. 즉, 우리가 태초에 - 어머니의 난자와 아버지의 정자에 무한 대 분의 1의 확률로 조합된 그들 각각의 유전자의 결합으로 수정란이 되었을 때 – 그 찰나의 결합이 이후의 전 생애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위가 우리의 유전자 에 역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길이 아직 열려 있다는 희망을 본 것이다.
비로소 나는 ‘유전자의 운반체로서 프로그램 된 기계’가 아닌, 삶을 능동적으로 선 택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주체가 된 것이다. 물론 이미 물려받은 DNA 자체를 바꿀 수 는 없다. 그러나 DNA의 일부를 메틸화 시키거나, 메틸화를 풀어냄으로써 유전자 명령서의 어느 부분이 발현될지, 또 어떤 부분을 암호화 시킬지 조절할 수 있다는 변화의 가능성을 본 것이다. 우리는 생물학이나 발생학이나 유전학 시간에 동일한 DNA를 물려받은 개체라 할지라도 발생 과정에서 유전자 교차에 의해 무한대의 확률로 다양한 조합의 개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이미 배웠다. 여기에 다시 그 개체의 생애 동안 메틸화를 통한 발현 부위의 조절이라는 놀라운 변수가 생긴 것이다. 결국, 일란성 쌍둥이라 할지라도 동일한 개체는 하나도 없으며, 또 우리의 경험과 삶이 유전자에 역으로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통해 다른 개체로 거듭날 수 있다.
사실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지배한다는 믿음 아래서 나의 전공인 교육학은 쓸 모없는 학문이 되어 버린다. 이미 타고 나버린 DNA를 교육이 무슨 수로 바꾼단 말인가. 이 후성유전학의 기조 아래에서야 비로소 교육이든, 교정이든, 종교든, 바르게 살아 보려는 인간의 미약한 노력들이 작은 가능성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나는 또 다른 숙제를 발견했다.
임신 초기 3개월 이내에 모체 내에서 겪었던 태아의 영양실조와 스트레스는 태아의 생애 전반에 전 생애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임신 3개월 이후 영양이 회복된 경우라고 하더라도, 이 아기들은 생후 평균보다 높은 비만율을 보였다. 더욱 놀라운 일은 임신 초기 석 달 동안 영양실조를 겪은 여성의 손자들도 이러한 경향성을 보인다.
어린 시절에 학대나 방임을 경험한 사람은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해 또는 자살, 약물 남용에 빠질 위험이 매우 높다. 어른이 된 후, 학대나 방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평생 동안 정신적, 정서적으로 후유증을 앓는다.
즉, 우리가 의도하지 않게 경험한 것들이 우리의 다음과 그 다음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소름끼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후성유전학은 더 나아질 가능성을 보여주는 희망의 학문인 동시에, 우리가 우리 다음 세대의 삶에 불행을 추가할 수도 있다는 책임감도 부여한다.
유전자는 신이 내린 불변의 고리가 아니라, 태초부터 선조들이 경험한 기억들이 알알이 새겨진 역사서로 내 안에 존재하고 있다. 유구한 역사 동안 몽고의 침입으로부터, 왜적의 침입으로부터, 또 식민지 시대에, 6.25 전쟁에 겪었던 선조들의 공포와 고통들 또한 나의 유전자에 아로 새겨져 있을 것이다. 나의 선조들이 배고픔 없이 먹고 입게 된 것은 불과 50년도 되지 않았다. - 인류의 역사에서 배고픔과 전쟁이 없는 시기는 거의 없었다. - 바로 우리 조부모 세대와 부모 세대가 겪었을 식민지 말기의 혼란과 전쟁 이후의 배고픔을 상상해 보면, 부모님의 이해하지 못할 행위들에도 동정 어린 시선이 생긴다. 그들도 어쩌면 어머니의 뱃속에서 영양실조를 경험한 태아였을지 모른다. 나의 경험이 아니었던 일들이었지만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면 나는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아로 새겨진 선조들의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또 후손들에게 상처 없는 삶을 물려줄 수 있을까?
첫째, 자책하거나 자학하지 않고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자 한다. 이미 결정되 어 내 안에 존재하는 유전자를 부정할 수 없다. 조부모나 부모들도 스스로 불행한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상황과 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 안에서 고군분투 하며 미숙함 속에서 나를 낳고 길렀다. 그들의 노력과 노고에 감사하며, 나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둘째,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고 싶다. 남들보다 잘 키워보려는 부모의 의지가, 내 자식이 제일이었으면 하는 부모의 기대가, 자녀에게는 상처와 부담이 될 수 있다. 부모도 신이 아닌 사람이었으므로, 때로 감정적이었을 것이며, 밖에서 노동에 시달리다 돌아온 그들이 늘 자상하고 온화한 모습만으로 우리를 대하기 어려웠음을 이해한다. 자녀들이 ‘학대와 방임’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생각하는 부모의 모습이 진정 부모의 의도였던 경우는 많지 않다. 부모는 그들이 겪은 방식으로 우리에게 행동할 뿐이며, 경 제적으로 갑작스레 유복해진 평화의 시대에 태어난 우리에게 부모의 치열하고 전투적인 삶의 배경이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우리의 부모 세대는 우리가 겪은 것보다 훨씬 힘들고 격동적인 삶을 살아왔음을, 그리고 그들의 부모는 생사를 오 가는 위기를 겪었음을 기억하며, 내가 상처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준 사람은 없고 받은 사람만 있는 무상한 것임을 자각하고자 한다.
셋째,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타고난 것이 천성이라지만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고 싶다.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살고 싶다. 감사한 마음 으로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일회용품을 덜 쓰고, 쓰레기를 줄이는 작은 노력을 하는 지구인이 되고 싶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하게 자랐으나, 꽃이 피고 새가 우는 모습 에 행복해 하는,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 되고 싶다. 흥청이고 화려한 삶보다, 고요한 명 상 속에서 스스로를 바라보고 반성하며, 오늘 하루 세 끼 밥을 먹을 만큼 세상에 도움 되는 일을 하였는가 돌아보며 살고 싶다. 더 오래 사는 일에 집착하지 않고 담담하게 인연 따라 몸을 맡기고 조용히 머물다 가는 여행자가 되고 싶다. 다가오는 인연에 순 응하고, 떠나가는 인연에 집착하지 않는 평화로운 나그네가 되고 싶다.
나의 경험들이 내 유전자에 작은 기록들을 남긴다니. 조금씩 변한 나의 유전자들이 혹여 있을지 모를 후손들에게도 더 나은 삶을 선물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나는 거대한 유전자의 힘 앞에서 조용하게 한 걸음을 내딛어 본다. 내가 사는 매일 매 일이 실록의 한 페이지가 되어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내 행위의 영향을 생각해 보면, 하루도, 한 순간도 허투루 살아서는 안 될 것 같다. 지금도 나의 유전자는 내가 하는 일을 기록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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