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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비참하게 버려진 조선 마지막 황녀의 삶을 기억하라.”
학과: 불어불문학과, 이름: 이*희, 선정연도: 2017
추천내용: 고종과 면밀한 관계를 가진 인물을 떠올리라면, 흔히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한 소설책을 읽은 후, 나는 다른 인물을 떠올리게 되었다. 고종의 사랑스러운 막내딸, 덕혜옹주가 그 주인공이다. 권비영 작가의 소설 ‘덕혜옹주’는 그동안 우리가 관심 갖지 않았던 조선왕실의 삶을 살펴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모르던 덕혜옹주란 인물의 존재를 알리는데 큰 기여를 한 작품이다. 학창시절동안 다양한 역사교과서를 통해 조선시대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과거를 배웠지만, 그 어느 선생님께서도 덕혜옹주에 대해서 가르쳐 주신적도, 언급하신적도 없었다. 익숙하지 않던 덕혜옹주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어쩌면 덕혜옹주의 비극적 일생이 시작되었을 무렵, 그녀는 너무나 어린 소녀였기에 상황들이 더 안타깝게 와 닿았을지도 모른다. 덕혜옹주는 1912년, 고종의 막내딸로 덕수궁에서 태어나 1925년 일본 학습원으로 강제 연행되어, 1931년 대마도백작 다케유키와 강제 정략결혼을 했다. 외동딸인 정혜의 자살과 계속되는 정신병동 감금생활, 조국의 외면 등 너무나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낸 그녀는, 1962년 37년 동안의 유랑생활 끝에 조국, 대한민국 귀환하였다. 대략적인 사건들만을 나열했을 뿐인데도 그녀가 겪었던 수모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려온다.
덕혜옹주는 왕실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였다. 존재감이 사라진 왕실이었지만, 덕혜옹주에 대한 백성들의 사랑은 대단했다. 특히 어린 나이에 아버지 고종까지 잃고 난 그녀에 대한 백성들의 마음은 남달랐다. 일본은 이 점을 가장 두려워했다. 그녀에 대한 동정여론이 반일운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란 점이 일본이 그녀에게 가혹했던 이유였다. 또한 그녀가 여자란 이유도 왜 다른 왕족들에 비해 덕혜옹주에게 더 가혹한 일들이 많았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답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내성적인 성격에 따뜻한 사랑으로 귀하게만 자라온 옹주에게 아버지와 오빠 그리고 어머니의 연이은 죽음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특히 어머니 양귀인의 장례에 행해졌던 일본인의 행동은 만행이라고 밖에 말 할 수 없다. 그녀의 정신병은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개인적인 절망감과 정치적 희생양으로 전략한 고뇌가 합쳐져 생긴 병이라고 생각된다. 또 밖으로 그 슬픔과 답답함을 표출하지 않고 침묵으로 자신의 의지를 표현했던 덕혜의 소극적인 태도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덕혜는 일본 학습원에서 학교 식수를 사용하지 않고 매일 끓인 물을 보온병에 담아 다녔다고 한다. 식수에 독이 있을까봐, 그녀의 오빠인 순종처럼 독을 마셔 죽을까봐. 덕혜가 가족들의 죽음을 보며 얼마나 불안해하고 조심스럽게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일본에 함께 있었던 오빠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 두 사람이 옹주에게 큰 힘이 되지 못했다고 한다. 10살 나이에 일본으로 간 이은은 이방자 여사와의 결혼생활과 일본 생활에 잘 적응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많이 의지하기까지 했다. 피를 나눈 형제지만, 오랜 세월 다른 환경에서 생활한 남매 사이에 특별한 정은 없었던듯하다. 어쩌면 오히려 이방자 여사는 덕혜옹주의 심리적 변화를 파악했을 지도 모른다. 이방자 여사는 “몇 년 전 처음 그녀를 봤을 때 나를 매료시켰던 생기발랄한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일본말로 인사했으나 그녀는 말이 없었다. 내가 다시 한국말로 ”먼 여행 오시느라 피곤하신가 봐요?” 했으나 옹주는 미소조차 띠지 않았다.”라고 말하였다.
덕혜옹주는 고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도 순탄하지 않았다. 1950년 고종의 심복 김황진의 조카 김을한이 도쿄특파원으로 파견되어 덕혜옹주를 찾기 시작했고 정신병원에 있는 덕혜옹주를 찾아냈다. 한국의 정부관계자와 연락해 덕혜옹주 귀국을 요청했으나 이승만 정부의 반응은 지극히 냉담했다. 박정희 또한 “덕혜옹주가 대체 누구요?”질문했다고 한다. 마침내 덕혜옹주는 1962년 1월 26일 귀국하였다. 그러나 귀국 20년이 지나서 1982년에 호적이 만들어졌고, 실어증과 지병으로 고생하다 결국 1989년 4월 21일 낙선재에서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불과 몇 십 년 전, 1989년에 조선의 마지막 황녀가 세상을 떠난 사실에 권비영 작가는, 자신이 조금 더 일찍 덕혜옹주를 알았더라면 직접 만났을 수도, 위로를 전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덕혜의 이 한마디를 통해 그동안 그녀가 겪은 아픔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된 것 같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지만 유독 덕혜옹주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높은 몰입의 정도를 보였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그 당시 어린 소녀에게는 생각하기도 끔찍할 만큼의 악몽이 되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랑을 다짐하는 혼인도, 소소한 가정의 행복도 덕혜는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꼿꼿이 조국을 떠올리고 견뎌준 이덕혜라는 여성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 소설이 역사를 왜곡했다, 잘못된 사실을 전달했다며 비난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덕혜를 알지 못하던 많은 이들에게 역사적 인물을 소개해준 것만으로도, 그녀가 겪었던 고통의 일부를 우리에게 전달해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으며 동시에 크나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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