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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원인 감동공유 추천글
제목: 절망, 그 속에서 피어난 희망
학과: 경영학과, 이름: 김*욱, 선정연도: 2017
추천내용: 한국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유행어 중에는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있다. 한국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을 지옥에 비유한 신조어이다. 이 책을 추천하게 된 계기는 이렇도록 현실이 지옥같이 힘든 사람을 위해 정말 도움이 되는 책이기 때문이다.
저자 빅터 프랭클은 유태인 출신의 정신과 의사이며 지옥에서 살아온 사람 중 한명이다. 이 책의 시작부분은 그 잔혹했던 세계 2차 대전의 나치의 학살에 대한 그의 경험을 생동감 있고 사실적으로 서술해준다. 그 절망적이고, 힘들었던 그의 경험담 속에서는 그러면서도 책을 꼭 완성시키겠다는 그의 의지가 절실하게 담겨있어 오히려 독자를 더 몰입시키면서도 안타깝게 만든다.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그는 이런 지옥 속에 갇혀있는 사람들을 심리상태를 기준으로 분류 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빅터 플랭클이 한 것은 그 사람들의 생존율을 구한 것이다. 놀랍게도 절망 속에서 살아남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희망을 버리지 않고 목표를 가지고 동기를 가진 사람만이 고통을 이겨냈다는 점이었다.
자기 계발서 중에서는 여러 가지 책들이 있다. 보통 그런류 책들은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식의 내용이 많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그의 경험이 담겨있는 수필이지만, 자기 계발서 측면에서 본다면 동일한 느낌과 교훈을 좀 더 현실적으로 전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책을 추천한다.

효원인 감동공유 추천글
제목: 죽음의 수용소에서 느낀 인간의 존엄
학과: 정치외교학과, 이름: 김*하, 선정연도: 2019
추천내용: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처음 접했을 때 책표지에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책이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에 엄청 어렵고 지루한 책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저자가 설명을 잘 해주고 한 개인의 체험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에 읽기에 막막하거나 어렵지 않았다. 이 책은 나치 수용소에서 3년간 수감생활을 한 빅터 프랭클이 그 당시에 수용소 안에서 벌어지던 일들을 정신의학적으로 풀어나간 책이다. 역지사지해서 생각해보면,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의 한 정신의학자가 서대문 형무소에 갇혀 있는 동안 있었던 일들을 썼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책의 내용 곳곳에서 친일파와 일제에 대한 분노가 보일 것이라 예상된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책은 그런 모습을 잘 보이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의 친일파와 같은 카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그저 사실만을 언급하거나 자신의 감정 상태에 대해 서술할 뿐, 적대심을 진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과거사 문제를 다루는 책 중에서 이렇게 중립적인 책은 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첫 번째 파트는 수용소 생활에 대한 수감자의 반응을 3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의 일화들을 이어나가는 것이 주를 이룬다. 첫 번째 반응은 수용소에 처음 들어갈 때 느끼는 충격이다. 처음 기차를 타고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향할 때 사람들은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희망은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충격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줄을 지어 서서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가도록 판정받고 있었는데, 그것은 아프거나 어리다는 등의 이유로 일을 할 수 없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나누는 것이었다. 전자의 사람들은 샤워를 시켜주는 줄로만 알고 순순히 따라가 곧바로 학살을 당했다. 두 번째 반응은 수용소 안에서 너무 똑같은 일들만 반복되어 상대적으로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매일 아침 누군가 카포에게 맞고 있거나 죽어간다 해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세 번째 반응은 수용소에서 해방되었을 때 느끼는 이인증이다. 해방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닌 것 같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느낀 바를 가지고 정신치료의 한 방법인 로고테라피를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과 로고테라피에 대한 내용을 이 책 속에 담았다. 이런 흔치 않은 내용을 다룬 책은 모두가 꼭 한 번 읽어 봤으면 좋겠다.
독후감 공모전 우수작
제목: 죽음의 수용소에서
학과: 무역학과, 이름: 김*선, 선정연도: 2011
내용:
1. 서론
왜 사는지 아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도 견딜 수 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나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고 있는 것이라고. '인생' 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고민을 시작해보는 8살 무렵부터 어렴풋이 나는 나의 길이 거의 정해져 있음을 알았다. 생각해보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내 가 갖고 있던 선택지는 2~3개 정도였다. 나는 수많은 기회를 가지고 있었지만 동 시에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나는 끊임없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 대 중 매체와 교육을 통해 선택지의 우선순위를 강요받았다. 삐에르 뷔리뎅은 이렇게 말했다. '취향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 되어지는 것이다.'라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취업, 결혼, 아이. 퇴직 그리고 얼마 후의 죽음. 너무도 당연한 이 길을 아무 의심 없이 대학교에서 취업으로 가는 길을 걷고 있던 나는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만났다. 이 책의 저자, 빅터 프랭클이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사나요?

2. 본론 2.1 당신은 얼마 입니까 ?
“인간의 가치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유용성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히틀러의 계획에 따라 자행된 안락, 즉 나이가 들어서, 불치의 병에 걸려서, 사회적으로 쓸모없게 된 사람들을 죽였던 '자비로운 행위에 대해 변명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유용한 사람이 되길 강요한다. 외모적으로 더 뛰어나게, 더 똑똑하게, 더 강하게, 좀 더 많은 기술을 갖도록, 이런 자본주의 즉 물 질적인 것이 신이 되서 숭배 받는 사회를 일찍이 마르크스는 "보편적 매춘의 시 대"라고 규정한 바 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인간으로 존중받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으로 적합한 재능으로서 그 사람의 가치를 평가받는다. 그래서 자본주의 하에서 사람들을 조금 더 높은 평가를 얻기 위해, 조금 더 높은 가격으로 자신을 팔기 위해서 노력한다. 학벌, 학점, 영어 성적, 자격중을 따기 위 한 노력은 우리 자신을 좀 더 높은 가격에 팔기 위한 노력에 지나지 않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들은 조금 더 비싼 값에 자신을 팔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물론 모든 사람들이 이 질문에 No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만 정작 '당신은 왜 사나요? 혹은 왜 존재합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선 뜻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고통에 허우적대고 있던 자신의 환자에게 프랭클은 질문을 바꿔 묻는다. “당신은 왜 자살하지 않나요?"
2.2 너무도, 너무도 상대적인 고통
“일정한 양의 기체를 빈 방에 들여보내면 그 방이 아무리 큰 방이라도 기체가 아주 고르게 방 전체를 완전히 채울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고통도 그 고통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인간의 영혼과 의식을 완전하게 채운다. 따라서 고통의 '크기'는 완전히 상대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몇 년 전에 친구 한 명을 잃었던 일을 아직도 후회한다. 친구는 나에게 죽고 싶다고 말했다. 사회적으로 훨씬 많은 혜택을 받고 자랐던 친구 - 중산층의 가정 에서 유명 대학의 의대에 들어갔고 이미 미래가 '보장' 된 - 가 자신의 삶을 살고 싶지 않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인 즉 자신의 부모님이 이혼을 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나는 화가 났다. 나는 훨씬 시골에서 살다가 어렵게 대학을 들 어왔고, 미래를 불확실한데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어머니는 내가 어린 시절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청소년 시절 내내 나의 소원은 어머니를 다시 한 번만 볼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친구가 내게 말했던 그 때에는 고통이라는 것이 상대적인 것임을 몰랐다. 나는 그 때 마치 교통사고 당해 누워 있는 사람에게 손가락이 다쳤다고 위로해 달라고 말 하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진심으로 화를 냈고 친구는 죽지는 않았지만 내 삶의 길목 어딘가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 책을 통해 뒤늦게 나는 깨달았다. 고 통은 절대적인 아픔과 크기에 상관없이 영혼을 가득 채워 그 사람을 지배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2.3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찾다
| “사람은 자기가 해야 할 사명이 있는 때까지는 절대 죽지 않는다."
초등학교 고학년 우연히 읽었던 명언 모음집에서 발견한 말이다. 리빙스턴의 이 말은 내가 어머니의 죽음을 맞고 나서 내 머리를 가득 채웠던 말이다. 좋은 의미에서가 아니라 나쁜 의미에서. 이 말이 나에게는 이렇게 들렸다. "어머니는 세상 에서 더 이상 할 게 없어서 일찍 돌아가신 것이다." 라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1000번을 다시 그 때로 돌아가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면 나는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1000번 모두 그 때로 돌아가 상 황을 바꾸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임을 알았다. 고민. 고민. 고민, 계속된 고민 끝에 나는 이러한 질문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어머니의 죽음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어머니의 삶과 죽음을 의미 있게 만들 수는 있었다.
이형기의 낙화라는 시의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라는 구절처럼 남들보다 일찍 맞게 된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는 일찍 성숙해졌다. 커가면서 점점 어머니가 세상에 살았다는 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내 삶을 통해서 증명해 보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2.4 의미 있는 삶. 그리고 행복. 참 쉽죠?
“삶의 세 가지 방식을 통해 우리는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빅터 프랭클은 자신이 만든 '로고테라피'라는 이론을 통해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인생에 대해 위의 세 가지 방식을 취할 것을 권한다.
2.4.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인간 존재의 자기 초월 : 인간은 항상 자기 자신이 아닌 어떤 것을 지향하거나 그 쪽으로 주위를 돌린다. 자기 자신을 잊을수록 그는 더 인간다워지며, 자기 자신을 더 잘 실현시킬 수
|있게 된다.”
재미있게도 프랭클은 자아실현을 갈구하면 할수록 더욱 더 그 목표에 이르지 못 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의 말은 자아실현은 자아초월의 부수적인 결과로만 얻어진 다는 말이다. 책의 첫 부분에서도 밝혔듯이 프랭클은 젊은이들에게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말라고 말한다. 그것을 표적으로 할수록 그것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이 원하는 대로 확실하게 행동 한다면 성공은 ‘찾아오게 되어 있다고 말한다.
앞서 나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보편적 매춘의 시대'로 매도해버렸지 만, 적어도 그 속에도 우리가 물질적인 가치를 이 사회에서 행복의 본질이라고 착 각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행복하게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쉽게 말하면 돈을 위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노동력을 파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과 내 적 가치- 재미, 보람, 사명의 실현과 같은 - 를 실현하기 위해 일을 한다면 충분히 그 일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4.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인간에 대한 사랑처럼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생존에 대한 책임과 그것을 계속 지켜야 한다는 책임이 아주 중요한 의미로 부각된다.
우리 사회는 '사랑' 이라는 말로 넘쳐난다. 하지만 우리가 믿고 있는 '사랑'이 진짜 사랑일까? 얼마 전에 읽었던 카프카의 “변신" 이라는 작품은 다시 한 번 나에게 이에 대한 의문을 던져 주었다. 집안의 가장이었던 그레고리라는 세일즈맨은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벌레로 변한다. 그 동안 그의 수입을 통해 생활을 영위하던 가족 들은 - 심지어 그 착했던 여동생까지도 - 벌레로 변한 그레고리를 더 이상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가 외적인 모습 이 벌레로 변했던 것처럼 그 역시 집에 있는 벌레에 지나지 않게 된다.
우리는 가끔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그 사람에게 기대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을 헷갈리고는 한다. 만약 자신의 연인이 있다면 질문해보자. 이 사람이 장애인이 된 다거나, 직장을 잃는다거나, 잘생긴 얼굴이 흉측하게 변해도 나는 그 사람을 그 전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솔직히 이 말에 자신이 없다. 그레고리의 가족들 이 그랬듯, 이 사람이 내가 허용할 수 있는 범위 이상으로 망가져버린다면 그 전 처럼 그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빅터 프랭클은 내가 어떤 유용함을 갖는 자신의 자리를 대체할 수 없는, 오로지 나 자신이어야만 되는 그런 존재가 어떤 사람에게 되는 것, 혹은 그 런 존재를 갖는 것을 통해서 우리의 삶은 의미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일반적으 로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이런 관계를 가장 잘 설명해준다. 그래서 많은 부모님들 은 자식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 때문에 산다."고.
2.4.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사람이 자기 운명과 그에 따르는 시련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그에게 자기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 삶이 용감하고, 품위 있고, 헌신적인 것이 될 수 있다. 혹은 자기 보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에서 존엄성을 잃고 동물과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뒷부분에서는 이런 일화가 소개된다. 불치병에 걸린 젊은이가 찾아와 자신이 본 영화 이야기를 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 아주 용감하고 품위 있게 죽음을 기다리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린 영화였는데, 그 영화를 보면 서 그렇게 의연하게 죽음을 맞는 것이 인간으로서 참으로 위대한 성취였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제 운명이 자기에게 그와 똑같은 기회를 주었다."
누구도 나쁜 상황이 자신에게 오지 않기를 바란다. 빅터 프랭클도 자신이 유대인 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우슈비츠에 끌려가길 원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을 살다보면 너무도 자주 우리는 원치 않은 상황에 빠진다. 프랭클은 말한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는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는 것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프랭클은 아우슈비츠에서 3년간 복역하면서 수많은 죽음의 목격했고 동시에 자기 자신도 매일 매일 죽음에 대한 공포에 짓눌려 있었다고 한다. 한 가지 자신이 흥미롭게 생각한 것은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성자 같이 살았던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짐승보다도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 다. 그는 성자와 짐승을 나누는 것은 삶에 대한 자신의 태도와 행동이라고 말한다.
2.5 죽음은 삶의 가장 아름다운 선물
“이 땅에서 영원히 사는 것은 없는 것과 같다. 스트럴드 블록은 영원히 살 수 있었지만 추함과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다. 이것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를 보면 흥미로운 사람들이 나온다. 스트럴드 블록이라는 이 사람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이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때가 되면 죽는 일반적인 사람들이다.
인생에서 한번뿐이라는 의미는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하게 다가온다. 우리가 인생에서 한 두 번 갈까 말까 한 외국 어느 나라에 가게 된다면 더욱 그 의미가 특별해진다. 사람들은 그것이 인생에서 마지막이 될 수 있는 것을 알기에 그 시간들을 소중히 여긴다. 그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현실에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매일 비슷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가끔 우리는 우리가 죽음과는 아주 멀찍이 떨어져 있다는 착각을 하곤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흘려보내게 된다.
3. 결론
누군가 사람은 언제 죽는 것이냐고 나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나는 깊게 생각해 본 후 이렇게 말했다. “더 이상 내가 살았다는 흔적이 세상에 남지 않게 되었을 때"라고, 아무도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고, 내가 살고 갔다는 흔적을 아무도 알지 못할 때 사람은 그때 진정으로 죽는 것이 아닐까 싶다.
동시에 살아 있어도 살아 있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지 못하고 삶이 주는 많은 질문을 듣고도 흘려버린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라 는 책을 읽고 느낀 내용을 담은 이 글을 한 재미있는 담화를 소개하는 것으로 마 치고 싶다.
한 남자가 내 친구 제이미 코언에게 물었다. “사람의 가장 우스운 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코언이 대답했다.
“모순이죠.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되고 싶어 안달하다가도,
막상 어른이 되면 잃어버린 유년을 그리워해요. 돈을 버느라 건강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가도, 훗날 건강을 되찾는데 전 재산을 투자합니다. 미래에 골몰하느라 현재를 소홀히 하다가, 결국 현재도 미래도
놓쳐버리고요. 영원히 죽지 않을 듯 살다가 살아보지도 못한 것처럼 죽어가죠.”
독후감 공모전 우수작
제목: 죽음의 수용소에서
학과: 법학과, 이름: 윤*환, 선정연도: 2011
내용:
올해 상반기를 보내다 독서에 대한 생각이 든 것은 “문득”이라는 단어가 적절하다고 생각될 만큼 갑작스러웠다. 개인적인 고민, 장래에 대한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나는 학교 홈페이지를 뒤적이던 중 독서치료프로그램이 개설되었다는 공지사항을 접하자마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신청을 하게 되었다. 독서와 치료라는 단어의 조합이 생소한 것도 있지만 치료라는 측면에 희망을 품었기 때문이었다. 3달이 흐른 지금 결론을 말하자면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가족, 인생, 사랑 등 여러 가지의 내용을 다룬 책 들은 자기 계발서적에 편중한 나에게 접하기 어려울 책들이었지만 책을 읽고 나 면 무언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사색을 하게 해주었기에 프로그램에 참가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멘토, 멘티라는 단어가 화두가 된 지 오래지만 나 는 그리 적극적인 사람은 아니기에 이처럼 책들이 나의 멘토가 되어주었다. 멘토가 사람이 아닌 활자라는 점에서 소통을 할 수는 없지만 책의 내용으로 작가와 만나고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가져 보니 책만큼 부담없는 멘토도 없었다.
좋은 이별이라는 김형경 작가의 책을 읽고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기간이었다.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들을 잘 풀어낸 책이었기에 이번에도 나를 뒤돌아 보며 책을 읽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이 거론되었다. 나치아래 수용소에서 고생한 저자의 이야기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번에 독후감 목록을 보면서 이 책이 나오자 바로 선정하여 독후감을 쓰기에 이르렀다. 쉰들러 리스트 등 나치가 유태인을 학살하고 핍박했던 이야기는 누구나 알 것이 다. 이 책의 제목 자체도 강렬했지만 죽음과 맞닿아 있던 저자가 수용소에서 어떠한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었는지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가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도 대단하지만 불확실한 미래앞에서 어떤 정신을 가지고 버티어 내었는지가 나에겐 실로 중요했다. 20대를 88만원세대라고 할만큼 힘든 요즘 세상에 점점 지쳐 쓰러져 가는 나에게 그의 생각이 좋은 자극이 되기를 바랬다. 수용소에서는 사람다운 생활이 불가능하다. 음식도 적게 주고 노동을 시키고 자 는 것이 하루 일과인 만큼 사람이 피폐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책을 읽어가면서 도 수용소의 삶이 절망적이고 어두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물론 억압과 감시 속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힘든 생활을 계속해 나갔지만 그 안에서도 다양한 인간과 생활이 존재했다. 감시자에게 아부를 떠는 사람, 다른 사람이 죽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배식보다 음악을 택해 밤에 작은 음악회를 열어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 자신이 곧 죽을 것을 알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배식을 나누어 주는 사람, 다친 사람을 돌보아 주는 사람 등이 있었다. 끝이 있다는 것을 알면 그나마 이겨내는데 좋은 동기가 되겠지만 수용소에 서는 그 끝을 알 수 없기에 일상화된 싸움 혹은 생기없는 분위기를 상상했던 나 는 무언가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나름 저자는 운이 좋게도 의사라는 직업으로 일반사람들과는 다른 혜택을 누릴 수가 있었지만 그 역시도 부종으로 고생하고 적은 배식과 노동에 혹사당하는 수용소안의 사람이었기에 연민의 감정이 들었다. 그러나 수용소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자신은 동료들과 남겠다는 또한 탈출을 계획한 시점에서 죽음이 코 앞에 다가온 고향사람을 차마 두고 가지 못해 탈출을 하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절대적으로 힘든 상황 에서도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그의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내용 중에 이런 일화가 있다. 죽음을 앞둔 여인이 죽음을 두려워 하기는 커녕 자신의 운명이 자신에게 이러한 엄청난 타격을 가한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고, 정 신적인 성취 같은 것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며 창 밖의 나 무가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준다며 죽음을 덤덤히 받아들였다. 그러한 모습에서 저자는 극한의 상황속에서 내면적 자아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은 심리적, 육체적 요 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자유의사에 따른 결정에 있다고 말했다. 수용소에서의 다른 소소한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이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는 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을 앞에 두고 세상을 비난한다거나 스스로를 비하할 수도 있었지만 그 여인은 순전히 자유의사로 그 상황을 감사해하고 있었다. 나는 이러한 상황을 나에게도 투영해 보았다. 최근의 나는 불확실한 미래로 세상 탓도 해 보고,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을 원망도 해 보았으며 스스로를 자학하기도 했다. 그 여인처럼 죽음에 직면한 것은 아니나 힘든 현실앞에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러나 이야기를 읽으며 느낀 것은 상황이야 어찌됐던 결국은 내 의사가 모든 걸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힘든 상황에서도 아직 집과 식사를 할 수 있는 생활을 누리고 있다고 감사하는 것도 내 의지이고 세상을 탓하며 부정적으로 사 는 것도 나의 의지인 것이다. 단지 나는 안 좋은 쪽으로 안 좋은 면만 보았고 그러한 색안경을 끼었다. 쉽지는 않았지만 좋은 쪽으로도 생각해 보니 상황이 그리 암울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한순간에 모든 것을 감사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면을 보려고 하니 그렇게 보아지고 또한 비판적으로 살던 그 전보다는 조금은 살기가 숨통이 트이게 된 것이다. 오늘까지만 살지 덤으로 내일 까지 살지 한치 앞도 모르는 이가 보여준 의연한 모습과 교훈은 현재에 허덕이고 있는 나에게 작은 파장을 던져 주었다. 당연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을 찾아 서 읽지 않았더라면 이런 단순한 진리도 깨닫지 못한 채 방황만 거듭할 수도 있 었다고 생각하니 내 멘토(?)가 새삼 고마웠다. 과거 지하철만 타면 습관적으로 엠피쓰리를 켜서 음악을 들었었다. 그러다 보니 자투리시간에 무언가를 생각하기 보단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그냥 시간을 흘러보냈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었던 그들은 틈이 나면 어떠한 생각을 했을까하는 두근거림이 내 머릿속에서 흘러나왔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수용소내에서는 다양 한 모습이 존재한다. 먹고 자는 것만 생각한 이도 있었고 저자와 그의 친구처럼 탈출을 계획한 이도 있었으며 이타적인 사람도 있었고 자유의사를 지닌 여인도 있었다. 그 중에서도 저자는 부인을 떠올렸다. 자신보다도 사랑하는 부인에 대한 생각을 품었던 저자, 생사보다도 그 찰나의 순간에 사랑을 선택한 그의 모습은 많 은 걸 시사하게 해 주었다. 최근 들은 말 중에서 기억나는 말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보람이라는 우석훈 교수의 말이었다. (이 보람이라는 말은 뒤에 나올 가치관이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할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제 사회로 나가려 는, 여러 가지 선택을 앞둔 나에게 있어 선택은 고통이었다. 뚜렷한 가치관이나 기준이 없었기에 고통이라기 보다는 주구장창 망설이고 있었다는 표현이 아마 적 절할 것이다. 돈, 사회적 시선, 명예, 내가 좋아하는 것 , 나만의 가치 등등 여러 가지 기준들 앞에서 선뜻 발을 내딛지 못했었다. 죽음을 앞둔 그들에게서도 나를 움직일 보람을 찾지 못한 불안한 내 모습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그냥 감시자에게 맞지 않는 것, 오늘 배식에 대한 생각, 내일 하루도 무사히 살아남게 해달라는 기도, 주위 사람들에 대한 둔해짐 같은 것들을 말이다. 그러나 내가 한참 모자라고 어리숙한 탓일까? 수용소에서의 그들은 모두가 그러하지 않았다. 오히려 저자처럼 자신만의 무언가를 품고 살았던 이들이 살아남을 수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방송에서 보았던 강의가 불현듯 떠올랐다.
고도원 씨가 했던 말인데 꿈너머 꿈을 가져란 말이었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꿈을 물어보면 요즘은 대부분 직업을 말한다. 공무원, 대기업취업, 변호사, 의사 등등 말이다. 그런데 고도원 씨가 이런 말을 했다. 그 꿈을 이루고 나면 어떠할까라고, 공무원이 꿈이라고 하자. 어렵게 노력하여 공무원이 되고 난 사람들이 인터넷에 쓰는 후기를 보면 영어 만점 받고 쓰레기통을 치운다고 불평을 한다. 그걸로 끝이다. 안정 된 생활을 할 수 있기에 공무원이 되는 아무개씨는 그럭저럭 산다. 고도원 씨는 그러한 것을 염려했다. 공무원이 꿈이라면 그 너머의 것을 꿈꾸라는 것이다. 가령 시민에게 봉사하는 공무원이라는 꿈을 가진 사람이라면 공무원이 되어 쓰레기통 을 비우는 데서 불만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에게 봉사하는 것이 첨가 되었 기에 쓰레기통을 비우더라도 어떻게 하면 시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활력을 가지게 된다는 말이었다. 단순한 꿈을 가지기 보단 꿈너머의 꿈을 가지라던 고도원 씨의 말이 책을 읽으면서 고구마처럼 엮여져 나왔다. -수용소에 서 살아 남은 이들은 생존에의 단순한 꿈이 아닌 그 너머의 것들을 꿈꾸었기에 살아 남았지 않았을까?- 나의 꿈너머 꿈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안게 되었지만 고민했던 부분들에 대한 약간의 해답을 스스로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 기뻤다. 내가 위에서 한 말들에 대해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거 누구나 가 다 아는 이야기고 나도 그런 겉멋이 든 말은 지어낼 수도 있다고 말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콜럼버스의 달걀을 떠올려 보면 쉬워진다. 누구나 생각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하는 데에는 누구나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꿔 말하자면 세상 천지에 깔려 있는 말이기는 하지만 내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흔해빠진 명언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예비역들은 다 알 수 있는 말이 하나 있다. 군대는 빨리 갔다와야 한다라는 말, 남자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을 법한 이것 의 의미는 예비역이 아니면 이해하지 못한다.
군대에 가서 빨리 나와야 예비군 훈련을 빨리 끝낼 수 있다는 의미와 더불어 군대에 일찍 가야 그곳에서 사회경험을 할 수 있고 사회에 대한 준비를 미리 할 수 있으며 자신에 대해 뒤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참의미가 담겨 있는 말이다. 과연 이런 의미를 군대를 가보지 않은 친구들이 느낄 수가 있을까? 나는 누군가 옆에서 뭘 해라고 하면 잘 하지 않는다. 청개구리는 아니지만 그것이 잘 와 닿지 않아서이다. 그러다가 나 스스로 무언가를 깨닫고 나면 하지 말라고 해도 그 일을 하고 만다. 이는 나의 멘 토와도 연결이 되는데 책을 그냥 읽고 덮는 데에 그치면 책을 읽고 난 전후가 달 라질 것이 없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난 후 책 속의 내용에 대해 몇 가지라도 생각 해 보고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보면 한 가지라도 얻을 수가 있다. 이것이 적극적인 책읽기인데 이렇게 읽어야지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 참고로 이런 적극적인 책읽기 는 독서프로그램을 통해 자연스레 읽힐 수가 있었다. 이야기가 너무 다른 곳으로 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속에서 그들은 어떠한 생각과 생활을 했는지가 나의 관심사였다.
나의 단순무식한 생각과는 달리 다양한 인간들이 존재했으며 다양한 생각들이 있 었다. 자아가 무너진 이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인간의 고귀함을 몸소 보여준 이들도 있었고 생에 대한 교훈적인 태도를 보여준 이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자유 의사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 윤리시간에 단순히 암기했던 자유의사가 아닌 그 참의미에 대해서 말이다. 상황앞에서 나는 자유의사에 따라 상반된 선택을 할 수가 있다. 흔해 빠진 말로 물이 반이나 남았다고 볼 수도 있고 물이 반밖에 안 남았다고 볼 수도 있다. 이렇듯 여러 가지 선택을 목전에 둔 나에게 자유의사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 안에 나의 가치관이 없으면 내 삶은 힘든 생활의 연속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나의 가치관
을 키워주는 데에는 책만한 멘토도 드물다고 본다.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뭔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이 멘토는 나에게 별다른 조언도 하지 않고 부담을 주지 않는다. 수감자들이 생의 끝자락에서 허덕였지만 그들은 자유의사로 각자 자신들의 삶을 챙겨 나갔고 그러한 모습들을 미사여구를 제거한 꾸밈없는 상황묘사로 저술한 저 자는 보는 이로 하여금 생생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이 독후감은 적극적인 책읽기가 도움이 된다는 선배의 넋두리와 아울러 책읽기의 길을 찾고 싶으면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해 보라는 권유를 계
기로 쓰게 되었다. (물론 도서관의 사주를 받은 것은 아니다.) 나의 이 좁은 식견이 어떠한 도움이 될 지는 모르지만 단 한명이라도 올해가 가기 전 책 한 권을 읽고 인생의 진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바가 없을 것 같다. 애초에 책을 출판하기전 실명을 비공개로 하려다가 독자들에게 솔직하고 진정성있는 의미를 부여해 주기 위해 실명으로 출판하기로 마음을 바꾼 저자 빅터 프랭클의 바램이 이러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하며 여기서 마무리를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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