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to post to this user's Wall.

  • 노래의 책(열린책들 세계문학 234)(양장본 HardCover) 작가 하인리히 하이네 출판 열린책들 김쿠키 님의 별점
    4
    보고 싶어요
    (0명)
    보고 있어요
    (0명)
    다 봤어요
    (1명)
    외국시 중에서도 제일 아끼는 시집. 시의 특성상, 아무리 번역을 매끄럽게 한다 한들 한계가 분명히 존재해 원어가 아닌 이상 따로 돈을 주고 구매해 읽지는 않는데 그런 내 철칙(?)을 깨게 해준 책. 사실 번역된 외시 자체를 즐기지 않는데도 사지 않고선 도저히 베길 수가 없는 시였다.

    영어라면 어떻게든 비벼(?)보겠는데 안타깝게도 독일어라 원문 해석은 구경도 못해보았다. 때문에 원래의 언어로 쓰여진 글도 이만할지 감이 잘 오지 않는데, 여튼 번역된 시가 너무 훌륭해서 자꾸 생각난다. 시의 형식이니 운율이니 하는 이론적인 것은 하나도 모르지만 읽다보면 거짓말처럼 글에서 리듬이 느껴진다. 특히 <젊은 날의 아픔> 연작 시에서는 정말 나를 가운데 두고 반투명의 유령들이 빙글빙글 죽음의 춤을 추는 것 같고, 아름다운 장면들이 폴싹 순식간에 거품처럼 꺼져버리는 어둑한 환상 같은 것이 자꾸만 연상된다. 글만 읽었는데 자연스럽게 시인이 말하고자 했던 이미지와 영상이 머릿속으로 재생된다. 글을 씀으로서 글을 그리고 영상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죽음과 유령, 무덤과 사랑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기괴하다기보단 오싹하면서도 아름답고 판타지처럼 흥미로운 요소가 있어서 자꾸만 책장을 넘기게 된다. 3시간을 내리 공연하는 근사한 뮤지컬을 관람하는 것 같은 기분. 하나같이 비극적인 사랑이라 눈을 뗄 수가 없다. 인정받지 못한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불행한, 어떻게든 몸부림쳐보지만 결코 닿을 수 없는 그런 류의 이야기가 내내 상영된다.

    찬가적, 신화적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시다. 때문에 뮤지컬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극호일 것이고, 평상적이고 일상적인 언어, 대중적인 언어를 선호하시거나 외국어 번역체 특유의 뉘앙스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께는 추천드리지 않는다.
    더보기
  •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필립 K. 딕 걸작선 12)(양장본 HardCover) 작가 필립 K. 딕 출판 폴라북스 김쿠키 님의 별점
    4.5
    보고 싶어요
    (1명)
    보고 있어요
    (0명)
    다 봤어요
    (1명)
    작가도 작가인데 번역가가 정말 훌륭한 책. 글을 모두 읽으신 후에 역자 후기를 보시면 더 풍부한 독서와 감상이 가능하실 것 같다.

    제목을 잘 지은 작품들을 각별히 사랑하는데 이 책의 경우, 이보다 더 완벽한 제목을 지을 수 있을까 감동적일 정도로 잘 지었다. 책을 덮고 난 후에도 계속 계속 제목의 의미를 곱씹게 된다. 특이하기 그지 없으면서도 날림으로 짓지 않아 여러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의 조합들.

    읽어보면 “이 작가 취향 참 꾸준하네…” 싶다. 필립 K 특유의 물음. 페이지를 넘기던 독자들은 곧 무엇이 인간과 비인간을 가르는가에 대한 질문과 마주한다. 어떤 것이 현실인가에 대한 물음 역시도 뒤따라온다. 상반된 두 갈래의 세계가 엎치락 뒤치락 다투다 허물어져, 종국엔 의문을 남기곤 아스라이 사라진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안드로이드들과 인간성이 거세된 인간들의 대환장 콜라보를 바라보다 보면 작품에서 내내 이야기하는 '인간성'이란 단어에 대해 새로운 정의가 내려져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전 명작이 고전 명작인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 세월의 흐름이라곤 느낄 수 없었던, 되려 근래의 SF보다 세련된 글. 모든 작품에서 언뜻 언뜻 내비치는 작가의 신념과 뚝심있는 관심사엔 웃음마저 난다. 영화화된 작품도 꽤 많으니 장르에 대한 벽이 높다면 영화로 먼저 접근해보셔도 즐거우시리라 생각된다. 영화 역시 잘 만든 수작으로 평가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텍스트의 성격상 그만한 깊이를 담아내긴 어려우므로, 소설 역시 모두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린다.
    더보기
    좋아요 1
    댓글 2
    • 1 person 좋아요 님이 좋아합니다.
    •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안드로이드와 인간성이 거세된 인간이라... 항상 효율성과 편의성의 향상을 위해 그리고 진보된 사회를 위해 인공지능 개발에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무엇이 인간성인지에 대한 고찰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거 같아 반성이 되네요. 추천해주신 책을 읽어보면서 저만의 정의를 내려보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봐야겠어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더보기
    •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안드로이드와 인간성이 거세된 인간\"이라는 표현이 인상깊었습니다. AI가 인간과 점점 유사해질수록 인간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안드로이드의 인간성을 인정할까를 넘어서 인간이 인간과 유사한 인공지능을 대할 때 느끼는 감정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인간과 비인간을 다른 소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추천해주신 책을 읽고 인간성의 무엇인지 생각해봐야겠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더보기
  • 도착(THE ARRIVAL)(Dear 그림책)(양장본 HardCover) 작가 숀 탠 출판 사계절 김쿠키 님의 별점
    4
    보고 싶어요
    (0명)
    보고 있어요
    (0명)
    다 봤어요
    (1명)
    글 없는 그림책. 싸늘한 바람이 부는 이 계절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책이다. <숀 탠 시리즈>는 아는 이들 사이에선 꽤나 유명한 시리즈물이다. 종종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의 연관성과 각각이 끼치는 영향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즐기는데, 이 책의 경우 텍스트가 없어 더욱 좋았던 대표적인 예시가 아닐까 한다.

    뭉툭하고 밀도가 높지 않은 것으로 그린 듯한 몽글몽글한 그림체는 수십장의 페이지를 넘겨가며 차근히 의미를 쌓아올린다. 어둑하고 채도 낮은 그림체처럼 우울한 이야기인가 하면, 완독 후엔 파스텔처럼 보드랍고 따스한 이야기었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내용은 단순하다. 제목과 같이 <도착>을 위한 여정을 비일상인듯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약속과 이별, 고난과 역경, 새로운 만남과 희망, 친절이 친절을 낳고 사랑이 번져나가는 이야기를 넌지시 건넨다.

    글자가 없기에 주인공에 누구를 대입할지는 온전한 독자의 몫이다. 이방인, 나 자신, 괴로운 삶의 항해자, 혹은 이 사회까지.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나 환경에 맞게 대입하여 보고 그에 맞는 적절한 답과 위로, 또 다른 깨달음을 얻어가면 된다.

    글이 없어 더 완벽했던 책이라고 생각한다. 다같이 읽고 모여 앉아 감상을 나누었을때 가장 다양한 이야기가 논의거리가 나올 수 있는 책이라, 독서 모임의 책으로도 좋을 것 같다. 나 역시도 개인적인 감상은 잔뜩 지니고 있으나 혹시나 후에 읽을 계획을 가지신 예비 독자분들이 선입견을 갖고 책을 읽게 되실까 저어되어 말을 아낀다. 글 없는 그림책의 가장 큰 장점을 내가 채어가버리는 꼴이 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함이다.

    대신에, 마지막 페이지의 장면이 정말 오래도록 가슴에 깊이 남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6년 전쯤 읽었던 책인데 아직까지도 타인과 세상을 대하는 나의 기본적 태도로 삼겠다 매번 다짐하게 되는 장면이다. 따뜻한 사랑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고 싶은 분들께도 추천드리고 싶다. 겨울과 정말 잘 어울리는 책. 따뜻한 차나 핫초코 한 잔을 쥐어들고 찬찬히 음미하며 페이지를 넘기시면 좋을 것 같다.
    더보기
    좋아요 1
    댓글 1
    • 1 person 좋아요 님이 좋아합니다.
    • 어릴 때 이후로 그림책을 본 적이 없어, 글 없는 책이란 말이 너무 생소하게 와닿네요. 그림책이란 말을 너무 오랜만에 들어서 반갑기도 합니다. 그리고 글 없이도 장면장면 마다 무언가를 얻어갈 수 있다고 하시니 더욱 이 책이 궁금해졌어요. 꼭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따뜻한 코코아와 함께요 : ) 좋은 서평감사합니다.
      더보기
  • 팩트풀니스. 2(큰글자책) 작가 한스 로슬링 출판 김영사 김쿠키 님의 별점
    4
    보고 싶어요
    (1명)
    보고 있어요
    (0명)
    다 봤어요
    (3명)
    빌 게이츠는 오만 책을 다 추천하고 다닌다. 베스트-스테디 셀러 코너에 진열된 책을 뒤집어보면 영락없이 그의 추천서가 기록되어있다. 늘 그의 추천이 나를 만족시켰던 것은 아니었기에, 이번에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가 긴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주변인의 추천으로 읽어보게 되었다. 드물게 만족스러웠던 책.

    말하자면 인류애가 뿜뿜 생겨나는 책이다.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한다. 꽤 두꺼운데 질릴 틈 없이 후루루룩 읽었다. 무의식중에 우리가 세상을 얼마나 비뚤게 바라보고 있는지(더 정확히는 얼마나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객관화된 수치와 통계, 줄줄이 나열된 증거들로 후두려패주신다.

    왜 인류애가 생기느냐는 물음이 있을 수 있다. 쏟아부은 노력에 대한 결과나 대가가 가시적으로 드러나기까지엔 시간이 걸린다. 상대가 아주 작은 과업이라도 그럴텐데, 세상과 사회를 대상으로 한 투쟁과 신념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신념을 갖고 싸우는 이들에겐 반드시 허망해지는 순간이 온다. 우리는 매일같이 포털 사이트 메인에 걸리는 살인, 강간, 정책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글, 대기업의 횡포에 대한 기사를 읽고, 기울어진 세상의 저울을 보며 탄식한다. 대다수의 이들은 '저런 삶을 살지 말아야지.', '돈이 생긴다면 기부를 해서 힘든 사람들을 도와야지.' 등등의 생각을 하고 실제로도 행동에 옮긴다. 하지만 세상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변화는 더디고 결과는 느리게 나타나며 뉴스는 여전히 자극적인 이슈만 앞다퉈 내보내기 때문이고, 변화의 물결 가운데에서는 그 추이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시간동안 우리의 행동과 신념으로 인해 분명 예전과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작가가 제시하는 통계와 수치가 그를 증명한다. 더 많은 여자들이 교육을 받고 더 많은 아이들이 굶지 않으며 극빈곤층이 매우 줄어들어 당장 먹고 살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들이 많아졌다. 세상은 점점 나아지고 있다. 우리의 변화된 의식과 행동을 통해. 꾸준하게 지켜나가고 실천하는 신념을 통해. 그러니까, 실망하거나 좌절할 필요 없이 이렇게만 나아가면 된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느리지만 분명하게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자신의 삶과 사회에 대한 단단한 믿음이 생긴다.

    동시에 편견 없이 명확하게 진실과 그 상태 자체를 직시할 수 있는 힘 또한 생긴다. 요즘같은 세상에서 특히 갖기 어려우며, 그래서 가장 귀히 여겨지는 덕목이기도 한 요소다. 작가는 어떻게 하면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이슈 속에서 객관성을 잃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 역시 제시한다.

    조금 지쳤던 분들, 엉망진창이라고 생각했던 세상에 환멸을 느끼던 분들, 좀 더 분명하고 객관적인 세상을 깨닫고 싶은 분들께 추천한다.
    더보기
    좋아요 2
    댓글 2
    • 2 people 좋아요 님이 좋아합니다.
    • 저도 친형이 꼭 읽어보라고 건내줘서 팩트풀니스를 받았지만 뭔가 지루할거 같아서 놔두고 있었는데 이 서평을 읽고나니 흥미가 생기네요 특히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자극적인 기사들과 통계들이 우리 생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고 싶어졌습니다.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더보기
    • 저는 책을 읽으면서 세상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그릇된 시선을 깨줘서 좋았던 거 같아요.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 그림과 그림자(양장본 HardCover) 작가 김혜리 출판 앨리스 김쿠키 님의 별점
    4
    보고 싶어요
    (0명)
    보고 있어요
    (0명)
    다 봤어요
    (1명)
    작가님이 글을 참 잘 쓰신다. 일목요연한 논리정연함이 특징이라기보단 글을 정말 매혹적으로 쓰신다.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호로록 빨려들어가게 된달까?

    사실 수필이란 장르를 그리 썩 좋아하지 않는다. 베스트 셀러 칸에 있는 모든 수필은 반절을 채 넘지 못하고 도로 덮었다. 작가가 가진 생각이 얄팍하면 얄팍할수록 더 싫다. 여타의 장르에선 잘 드러나지 않던 작가란 개인이 적나라한 날것으로 드러나는 게 그렇게 싫었다. 삼계탕과 후라이드 치킨은 좋아하지만, 마트의 육류코너에 보이는 분홍빛 생닭을 보면 울컥 고개를 돌리는 혐오감과 닮았다. 나도 종종 필명 뒤에서 세상에 내보일 글을 쓰곤 하지만, 글은 근사하되 글을 쓰는 사람은 후지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해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책은, 모르겠다. 글쓴이가 엄선한 수십개의 작품들을 보면서 그가 어떤 취향과 감성으로 이루어져있는지 그래서 지금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가 뻔하게 보인다. 그럼에도 싫거나 꺼려지지가 않다. 오히려 그의 감상을 들으며 가만가만 고개를 끄덕이고, 그에게 기대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진다. 단순히 취향이 비슷해서라기엔 나와는 감성이 다른데도 이상하게 귀를 기울이고 괜히 눈길이 한 번 더 가게 하는 힘이 있다. 남들보다 한 꺼풀 더 아래에 있는 것을 캐치할 줄 아는 시선을 가지고 있다. 그 매력을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훌륭한 필력 역시 보유하고 있다.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분. 그래서 작품을 마주했을 때의 벅차오르던 감정을 어딘가에 내뱉고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데 마땅한 이가 없어 외로웠던 분. 혼자 전시와 공연을 보러 다니는 분들께 강력 추천한다. 본업이 영화 평론가이신 듯 한데, 당연히 평론도 무척이나 잘 쓰신다. 책을 살까말까 고민된다면 먼저 평론의 글부터 읽고 구매하셔도 될 것 같다.
    더보기
    좋아요 2
    댓글 1
    • 2 people 좋아요 님이 좋아합니다.
    • 평소에 혼자서 전시회를 구경다니면서 취미가 같은 친구가 없어 얘기를 나눌 수가 없었는데요. 한 번 읽어보면서 강력 추천하신 이유를 직접 느껴보고 싶네요.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 보건교사 안은영(특별판)(양장본 HardCover) 작가 정세랑 출판 민음사 김쿠키 님의 별점
    3.5
    보고 싶어요
    (1명)
    보고 있어요
    (0명)
    다 봤어요
    (1명)
    우리의 친절이 오염된 세계에 단호히 맞설 거라는 작가의 강력한 메시지. 읽고 나면 나도 마구잡이로 다정해지고 싶어지는 글. 독자에게 이런 마음이 들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성공한 글이 아닐까. 선의보단 악의가, 관심과 친절보단 외면이 더 쉬운 세상이지만 굳이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해 가는 사람들의 강함을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다. 심오하고 난해한 언어로 진리를 이야기하기보다는 다소 삼삼하고, 또 어쩌면 가벼울 수도 있는 어조로 이런 이야기를 내뱉는 편이다.

    정통문학(구분 짓는 기준이 꽤 모호하고, 오만하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이라기보단 차라리 인터넷 소설이나 미국의 그래픽노블과 결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세상을 구하는 멋진 히어로가 등장하는 그런 유치하고 뻔한 이야기. 그렇지만 그 뻔한 이야기에도 가슴 뛰게 하는 힘이 보건교사 안은영에게도 있다. 누구나 쉽게 스스로를 대입해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소시민 영웅이 나오고, 그가 대단히 뛰어나서 영웅이 된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하는 다정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기꺼이 영웅을 되어 가시밭길을 건넌다. 보는 내내 어쩐지 어린시절 챙겨보았던 무수히 많은 판타지 소설이 스쳐 지나갔고, 이제는 너무 유명해져버린 스파이더맨이 떠올랐다. “너도 스파이더맨이야!” 하고 관객들에게 외치는 작고도 큰 영웅. 어딘가에서 몰래 장난감칼을 휘두르는 보건교사와 거미줄을 내뿜으며 사람들을 구하는 영웅들이 있을 것 같아 이후로부터 나를 둘러싼 세상은 조금 특별해진다.

    그리고 그로부터 더 자라고 나면, 내게 반짝이는 장난감 칼이나 거미줄이 없어도 세상을 구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스파이더맨과 안은영이 특별한 힘이 있어 영웅이 된 게 아니니까. 그들을 특별하게 만든 건 방사능 거미나 물컹한 젤리들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사랑이니까. 그건 모두를 구하고야 마는 다정함이다. 이렇듯 책 속의 이야기에서 책 밖으로, 그리고 나 자신의 변화로 확장되는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간을 경험할 수 있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가볍고 유쾌하게 읽어나갈 수 있는 글이다. 완독에 세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책을 가까이 하지 않았거나, 질색하던 이들도 부담감 없이 읽을 수 있는 글이라 그런 분들께 추천하고 싶다. 심심풀이 땅콩처럼 읽히다가 후반부엔 지잉, 하고 마음을 울리고 지나가 취미독서에 입문하기 좋은 대중적인 취향의 책이라고 생각된다. 진득하고 묵직한 글을 좋아하는, 혹은 마이너한 취향을 지닌 분들껜 그다지 추천드리고 싶지 않다.
    더보기
    좋아요 2
    댓글 3
    • 2 people 좋아요 님이 좋아합니다.
    • 요새 정말로 유명한 보건교사 안은영을 책으로 읽을까 넷플릭스 영상물로 먼저 접할까 고민했는데, 책으로 먼저 읽어봐야겠어요! 안은영을 특별하게 만든 게 타인에 대한 사랑, 다정함이라는 구절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네용
    • 넷플릭스로 재미있게 본 작품인데 원작 소설이 있다니 너무 설레네요. 서평을 읽어보니 책으로 봐도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꼭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 넷플릭스로 재미있게 보고 원작 소설까지 구매해서 읽었는데, 작가님의 통통튀는 상상력에 재미있게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좋은 서평감사합니다.
  • 나는 죽음이에요(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91)(양장본 HardCover) 작가 엘리자베스 헬란 라슨 출판 마루벌 김쿠키 님의 별점
    5
    보고 싶어요
    (0명)
    보고 있어요
    (0명)
    다 봤어요
    (1명)
    동화책.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 그런 거 아니고 정말 1-7세의 어린이가 읽는 동화책. 어린아이가 읽기에 무척 좋은 내용일 것 같은데 사실 어른이 읽어도 무방하다. 헤어짐은 누구에게나 아픈 이야기라, 몇 번을 반복해도 도통 익숙해질 생각을 않는다.



    시작을 했으면 끝이 있고, 책을 펼쳤으면 덮는 순간이 오고야 말며, 태어났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은 당연한 진리이고 우주의 순리이다. 이 당연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괴로워하는 이들을, 우리는 이미 너무나 많이 만나왔다. 어쩌면 우리 자신일 수도 있겠고.







    눈을 뜨면 그 자리에 있던 이가 없다. 좋은 아침, 하고 웃으며 맞아주던 이도 없고, 정답게 떡볶이를 나눠먹던 이도 간데없다. 오늘의 기쁨과 괴로움을 조잘거리며 나눌 대상이 없어지고 공허한 흰 벽을 바라보며 이미 떠난 이의 흔적을 더듬어본다. 네가 사라져도 세상은 그대로다. 사람들은 일을 나가고, 밥을 먹고, 새로운 정책이 발표되며 해는 지고 달이 뜬다. 내 세상은 이미 무너져내렸는데, 바깥은 전과 같이 굴러간다는 사실에서 오는 괴리감. 지속되는 고통.



    살만큼 살았다고 생각했다. 여름이면 짙게 물드는 초록 이파리가 알록달록 색동옷을 갈아입었다가 빼빼 마르고 헐벗은 나뭇가지가 되는 과정을 수십번도 넘게 지켜봤다. 원없이 사랑을 했고 매 끼 식사와 곁들인 술 한잔은 근사했으며 기꺼이 이름을 댈 만한 친구도 서넛 있다. 이만하면 후회없는 인생이라고 생각했는데, 흔쾌히 또 다른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느 날부터 잠들기가 무섭고 찾아오는 밤이 두렵다. 후회없이 살아왔던 것들이 되려 발꿈치 뒤를 채가며 진득한 후회를 남긴다. 더 살고 싶다. 생명력 넘치는 삶을 갈구하면 할수록 점점 더 커져가는 불행.



    불로장생을 꿈꿨던 진시황은 객사했으며 부활을 갈망했던 볼드모트는 결국 갈래갈래로 영혼이 쪼개져 죽느니만도 못한 삶을 살았다. 죽음을 인정하지 못한 자들이다. 죽음 따위에 굴복하지 않으리라, 죽음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 내가 죽을 수는 없다. 하는 그런 오만함에서 벌어진 일들. 그러니 극복의 첫 걸음은 죽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노라, 이 아름다운 여행이 끝나면 그가 천천히 마른 나뭇가지 같은 손을 내밀 것이리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 너무 두려워하거나 오랜 슬픔에 빠져있지 말라는 그런 이야기.



    사랑하는 이와의 헤어짐에 아프지 않을 도리 없다. 없었던 일처럼 슬퍼하지 않을 방법 따윈 없다. 고통스럽지 아니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어서 우리의 삶을 살아야한다. 충분히 아파하고,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가끔 그리워하고 여전히 사랑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간단명료한 진리로 제시한다. 오갈 데 없는 눈물의 구렁텅이에 무방비로 내던져졌을때, 한 줄기 내려온 실낱같은 책. 다가올 이별과 다가온 이별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고 싶으신 분들께 좋을 것 같다.
    더보기
  • 예술가의 항해술 작가 화이트 리뷰 [편] 출판 유어마인드 김쿠키 님의 별점
    4.5
    보고 싶어요
    (1명)
    보고 있어요
    (2명)
    다 봤어요
    (1명)
    예술가들과 나눈 인터뷰 내용을 모은 책.
    유일한 단점은 절판이라는 사실 하나뿐이다.

    예술가라니, 듣기만 해도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직업이다. 어떨 때는 의식주를 영위하기 위한 직업이 아니라 숭고한 사명을 지고 태어난 이들인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 지기도 한다. 물론 미술관이라는 장소가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나, 배경지식이 없다면 이해하기 힘들어 보이는 현대미술의 책임도 일정부분 있겠지만, 일반적인 루트-기초교육, 고등교육, 대학, 취직, 결혼-를 밟는 이들에겐 쉬이 마주칠 수 없는 존재이니만큼 전설 속 종족처럼 인식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어떤 시각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삶과 예술이라는 망망대해를 어떻게 헤쳐나가고 있을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 어떤 대답을 할까. 그런 궁금증에 집어 들었던 책이다.

    예술가를 동경하고 사랑하며 그들에게서 영감과 에너지를 얻는 이들의 품에 꼭 안겨주고 싶은 책. 작품을 넘어 작가와 더 내밀하게 교류하게 되는 또 하나의 방법을 제시한다. 누구나 던질 수 있는 식상한 물음이라곤 한 줄도 없는 질문과 그 관심과 애정에 보답이라도 하듯 기꺼이 내놓는 풍미 가득한 답변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동안 내가 얼마나 세상을 얄팍하게 바라봐 왔었는지 깨닫게 된다. "아니, 이런 생각을 한다고?" 눈을 비비며 마주한 타인의 사고에 내 세계를 둘러싼 보잘것없는 울타리가 허물어지고 더 넓게 확장되는 순간은 인생에서 그리 많지 않은 귀중한 경험이다. 우아하고 유쾌한 어조로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생들을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리 쉽지만은 않았던 내용인지라 풍부한 교양지식을 가지고 있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다. 또는 한 줄 한 줄 느릿하게 곱씹으며 다른 영역으로의 확장을 희망하는 분들에게도 좋은 시간이 될 것 같다.

    가장 인상깊었던 대목은 쥘리아 크리스테바가 장애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프랑스에서는 ‘장애를 가진 사람’ 대신 ‘장애의 상황에 처한 사람’이라는 말을 쓴다. 어떤 사람을 그가 처한 상황과 동일시하기를 거부하기 위해서다. 아직도 장애우와 장애인의 차이를 구분 짓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상황에겐 너무 앞서나간 문장일 수 있겠지만, 어쨌든 나는 이 책을 만난 이후로 꾸준히 장애의 상황에 처한 사람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단순한 언어적 차원을 넘어선 문제라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술가들의 항해술이라 하여 장엄한 예술의 역사와 우아한 미학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사람, 지나온 길과 앞으로의 걸음에 대한 깊은 사유를 엿볼 수 있는 글이다. 또한 우리의 삶과 그리 간격이 넓지도 않아, 타인보다 한 뼘 더 내다볼 수 있는 시야와 사고력도 얻어갈 수 있다.
    더보기
    좋아요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