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갑오개혁 이후 「陸軍懲罰令」과 「陸軍法律」의 제정과 의의
Document Type
Dissertation/ Thesis
Author
Source
Subject
육군징벌령
육군법률
군사법
군법
갑오개혁
대한제국
Language
Korean
Abstract
1894년 甲午改革 당시 이루어진 군사부문의 개혁은 1897년 大韓帝國 성립 이후에도 富國强兵의 실현과 황제권 강화라는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 이에 전국의 군은 중앙군인 親衛隊와 侍衛隊, 지방군인 鎭衛隊와 地方隊로 새롭게 재편되었다. 이처럼 軍이 새로운 형태로 편제되고 그 규모도 확대되자 조선 정부는 軍司法制度의 정비를 통해 군을 효과적으로 관리·통제하려 하였다. 그 결과 1896년 1월 24일 勅令 제11호로 「陸軍懲罰令」이, 1900년 9월 14일 法律 제4호로 「陸軍法律」이 각각 반포되었다. 「육군징벌령」은 1896년을 전후하여 지방제도의 개혁으로 인한 지방 군사조직의 해체, 을미의병의 봉기 및 친위·진위대로 구분되는 전국적인 軍 再編이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반포되었다. 조선 정부는 「육군징벌령」을 통해 지방제도의 개혁으로 해방된 지방군사력이 의병에 가담하는 것을 막고, 이들을 이후 새롭게 재편되는 군조직에 보다 용이하게 흡수하고자 하였다. 「육군징벌령」은 메이지 14년 일본의 「육군징벌령」을 적극적으로 참고하여 제정되었으나, 징계권자의 징계처분에 대한 재량범위가 넓고 태벌과 같은 신체적 제재의 벌목 등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일본의 「육군징벌령」보다 군인을 통제하는 강도가 좀 더 강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1897년에 대한제국이 성립된 이후 元帥府와 함께 황제가 친총하는 군이 등장하게 되자 그 위용에 상응하도록 군제가 개편되면서 군의 규모도 더욱 확대되었다. 하지만 군제의 개편과 함께 군인의 범죄 또한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발생하게 되었으며, 군징계법인 「육군징벌령」만으로는 이러한 군인의 범죄행위를 통제하기 어려웠다. 이에 1900년에 군인의 범죄에 대한 형사처벌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군형법, 즉 「육군법률」이 제정·반포되었다. 「육군법률」은 1897년 이후 舊本新參의 기치아래 약 2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제정된 독자적인 사법제도의 정비노력의 산물로서 총 4개편 317개의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1881년에 반포된 일본의 「陸軍刑法」 및 「大明律」, 「大典會通」과 같은 기존법률과 비교해보면 「육군법률」에는 군인이 結黨作亂하거나 외국에 附和하는 행위, 出使한 군인이 각 지방에 있어 타인의 직사를 간섭하거나 사법관이 아닌데 소송을 수리하는 행위에 대해 처벌하는 조항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조항이 「육군법률」에 명시된 배경에는 1895년 을미사변을 시작으로 개화파세력이 주도하는 政變에 군인이 개입되어 정변의 물리적 기반을 제공하였고, 군사지휘관이 더 이상 사법관이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갑오개혁 이전의 관례와 의식으로 인하여 이들이 종종 民訟을 수리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官報」에서는 軍務상의 문서를 위조한 것으로 인해 군인들이 「육군법률」에 근거하여 처벌받은 사례가 빈발하게 등장하고 있다. 이는 지방의 여러 郡들이 갑오개혁 이전과 동일한 방식으로 직접 지방군 부대로 부대 운영경비를 납부한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주로 지방군 소속 군인들이 軍務상의 문서를 위조, 부대 운영경비를 횡령한 사례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육군징벌령」은 형법에 해당하지 않는 군인의 비행을 처벌하는 ‘군징계령’으로, 「육군법률」은 징계차원으로는 부족한 군인의 범죄를 처벌하는 ‘군형법’으로 상호 보완적으로 운용되었다. 「육군징벌령」과 「육군법률」이 가지는 역사적 위상과 의의는 일본의 지원 아래 개화세력이 추진한 ‘갑오개혁’과 자주독립국이자 황제국임을 선포한 ‘대한제국의 수립’이라는 정치적 변동 가운데에서 보다 온전하게 드러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