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한일 기독교 지식인의 간토대지진 인식과 대응
Document Type
Academic Journal
Source
한국기독교와 역사. 2024-03 (60):45-81
Subject
간토대지진
기독교 지식인
천재
인재
유언비어
자경단
학살
심판
참회
關東大震災
基督敎知識人
天災
人災
流言蜚語
自警?
虐殺
審判
慙悔
Language
Korean
ISSN
1598-7256
2713-6108
Abstract
간토대지진은 ‘천재(天災)’로 인한 사망자 약 10만 명뿐만 아니라 학살 등의 ‘인재(人災)’로 인한 희생자가 약 6천 명 발생한 이중적 성격을 지닌다. 이 사태에 대하여 당시 한일 양국의 기독교인의 인식과 대응 양상을 고찰함으로써, 기독교 신앙과 관념, 종교적 양심 등이 두 종류의 참극 상황에서 어떻게 연관되어 드러났는지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천재’로서의 간토대지진 재난에 대해서도 주류 기독교 지식인은 인명에 대해 경시하는 듯한 ‘낙관적, 관망적 천견론’과 현장의 절규에 집중하는 ‘비애적, 참회적 천견론’으로 크게 나뉜다. 이러한 천재에 관한 이해는 학살이라는 인재에 대한 인식과 대응 태도에도 연결되는 경향을 보인다. 한편 ‘인재’로서 발생한 학살에 대해서는 그 원인이 된 유언비어나 이후 군경 및 자경단 활동에 대한 태도를 기준으로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유언비어를 적극 신뢰하며 자경단 활동에도 참여한 ① ‘적극적 긍정형’, 학살 만행과 참상에 대해 침묵하며 관념적 메시지속에서 인도적 대응을 외면한 ② ‘소극적 긍정형’이 있다. 하지만 민중과 현장에서 함께 했던 일부 기독교인은 참회적 태도를 보였는데 이는 ③ ‘소극적 부정형’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진으로 인한 학살 사태에 대해 적극적으로 분노하고 문제 제기하며 정책적 대안까지도 요구하는 ④ ‘적극적 부정형’이 존재한다. 이 유형에는 좌파나 우파 인물을 막론하여 다수의 한일 기독교 지식인이 포함돼 있었다. 이는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대의 민주주의적 경향과 인명존중 풍조의 확산이 기독교 지식인 층에서도 폭넓게 수용된 결과이다. 동시에 이들 다이쇼 데모크라시 세대가 ③과 ④의 저항적 목소리에 활약한 반면, 우치무라, 우메무라 등 초기에 기독교로 개종한 이른바 메이지 세대는 ①과 ②의 보수적, 배타적 태도를 취했다. 간토대지진은 이들 기독교인의 시대적 사명이 그 역할을 다하고 새롭게 전환되는 분기점이 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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