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칸트의 <새로운 해명>에서 자유의 문제 / The Problem of Freedom in Kant's New Elucidation
Document Type
Dissertation/ Thesis
Source
Subject
칸트
자유
볼프
크루지우스
새로운 해명
Language
Korean
Abstract
이 논문의 주제는 칸트의 자유론이다. ‘비판기’ 저작을 중심으로 칸트의 자유론을 연구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논문은 칸트의 초기 자유론을 연구 대상으로 한다. 칸트의 초기 저작에 대한 관심은 그의 철학을 전체로서 넓고 깊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이 논문은 칸트의 초기작인 󰡔형이상학적 인식의 제1원리들에 관한 새로운 해명󰡕에 나타난 자유의 문제를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당시 독일 철학계의 주요 쟁점 중 하나는 볼프가 제시한 근거율이 자유의지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볼프는 근거율과 자유가 조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 반면 경건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크루지우스는 볼프의 근거율이 절대적인 필연성을 초래하는 탓에 자유의지와 도덕성을 파괴할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칸트는 자유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처음 제시한 󰡔새로운 해명󰡕에서 볼프와 크루지우스의 대립된 견해를 나름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이 문제에 대한 칸트의 견해를 살피는 것이 이 논문의 과제이다. 2장에서는 예비적 논의로서 󰡔새로운 해명󰡕이 반영하고 있는 볼프학파 형이상학의 기본 구조를 살펴보고, 이 텍스트가 보여주는 고유한 특색이 무엇인지 알아본다. 여기서 칸트의 자유론이 경건주의자 크루지우스의 비판에 응답하기 위해 씌어진 것임이 드러날 것이다. 이러한 문제 상황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할레 대학에서 볼프와 경건주의자들이 자유의 문제를 둘러싸고 대립했던 사건을 개관한다.3장과 4장에서는 볼프와 크루지우스의 자유론을 차례로 살펴본다. 볼프는 라이프니츠를 따라 필연성을 두 종류로 나누는데 절대적 필연성과 조건적 필연성이 그것이다. 그는 근거율이 모종의 필연성을 초래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단지 특정한 조건에 기반한 필연성일 뿐 모순율이 함축하는 것과 같은 절대적인 필연성은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조건적 필연성은 자유와 양립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볼프는 근거율을 모순율로부터 증명하려는 시도를 함으로써 실은 근거율조차 논리적 원리로 환원시키는 위험을 드러내는데, 이것은 크루지우스의 비판 대상이 된다(3장). 크루지우스는 절대적 필연성과 조건적 필연성을 구분하는 볼프의 해결책이 자유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을 지적한다. 동시에 그는 볼프의 근거율이 논리적 원리에 불과하기에 실재의 영역에서 통용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경건주의자로서 자유의지에 따른 실천을 강조하는 그는 자연세계에는 규정근거율이 통용되지만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는 그러한 원리에서 예외라고 주장함으로써 도덕적 실천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려 했다(4장).5장에서는 볼프와 크루지우스의 대립되는 견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칸트의 자유론을 살펴본다. 칸트는 볼프 형이상학의 기본 입장에 따라 규정근거율을 옹호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는 크루지우스의 비판을 받아들여 볼프의 이론이 가진 난점들을 인정하고 이를 교정하려 한다. 이를 위해 칸트는 규정근거를 존재근거와 인식근거로 구분하는 크루지우스의 관점을 수용하고, 모순율로부터 근거율을 증명하는 볼프의 견해를 비판한다. 이로써 그는 자유의 문제를 논리적 영역에서 실재적 영역으로 끌어낸다. 칸트는 이에 그치지 않고 크루지우스의 자유론에 대해 도덕철학적 비판과 형이상학적 비판을 가하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한편으로 볼프 학파 특유의 지성 우위론적 자유관을 재확인하고, 다른 한편 세계로부터 고립된 독자적 영역에서 존재하는 크루지우스의 자유의지론을 비판하면서 자유는 세계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생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어서 칸트는 자신의 입장을 더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두 가상인물의 대화를 통해 규정근거율에 따르는 자유 개념을 옹호하고 크루지우스 식의 ‘무차별적 자유’ 개념을 비판한다. 이 대화는 두 입장을 대등하게 중재하기보다는 규정근거율과 자유 개념이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변호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는 탓에 크루지우스의 입장을 다소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