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노반의 전설(鲁班的传说)≫ 중한번역 연구 / A Study on Chinese Korean Translation of ≪The Legend of Noban≫
Document Type
Dissertation/ Thesis
Source
Subject
Language
Korean
Abstract
중국은 1970년 후반 이후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도입하며 주로 정부주도로 경제성장을 추진하다가, 1990년대 후반에는 시장경제체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특히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의 회원국으로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국내경제를 세계자유무역체제로 편입하며 2015년에는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진입하였다. 2016년 제13차 5개년 계획을 통해서는 서비스업 비중 확대, 도시화율상승, 고부가 제조업 육성을 위한 기초여건 강화를 통한 성장전략을 제시했다. 중국은 교육의 확대와 상업과 공업의 발달로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농촌 사람들이 대도시로 이동하면서 대도시는 주택난으로 인하여 고층 상가건물과 고층아파트를 짓는 붐이 일었다. 또한 인력의 부족으로 인건비가 상승하는 추세이다. 우리 회사는 한국에서 특수자동차인 사다리차雲梯車를 판매하며 서비스센터를 두고 수리를 전문으로 하고 있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중국에 사다리차를 수출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지만, 당시 중국은 인건비가 낮았기 때문에 고가의 장비를 사용하는 것은 인건비에 비해 높은 경비가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2015년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인터넷과 모바일 폰의 발달로 세계는 하나로 움직이는 시대가 되었다. 인터넷상에서 사다리차는 신속하고 안전하게 작업을 완수할 수 있고, 작업공정의 단축은 곧 경비절감의 장점이 된다는 꾸준한 홍보는, 결국 한국산 사다리차를 중국 산동성에 수출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공교롭게도 춘추전국시대에 이미 ‘노반鲁班’이라는 장인匠人에 의해 사다리차의 원조격인 운제雲梯를 산동성 사람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에서 역으로 그 본고장에 사다리차를 수출하고 있으니 매우 흥미롭게 생각되어 접근하게 되었다. 그래서 노반의 고향을 찾아서 ‘노반 기념박물관’을 방문하게 되었으며, 놀랍게도 노반은 운제뿐만 아니라 목공기술과 건축·토목 생활도구 전쟁도구 등의 많은 유산을 남긴 장인匠人임을 알게 되었다. 본문 제1장 서론 부분은 연구대상인 노반에 대한 소개와 번역으로 선정한 『노반의 전설鲁班的传说』의 저자 왕중을 소개하였으며, 이것을 번역하게 된 연구동기를 기술하였다. 제2장은 본론 부분으로 저자 ‘왕종’의 『노반의 전설鲁班的传说』을 번역하였다. 『노반의 전설』은 대부분 구전되어 오던 것을 ‘왕더차오’ ‘왕허’가 중국 전통이야기책 형식으로 그림을 그려서, 누구든지 감상하기 적합하며 전통 문화의 향토적인 느낌이 나는 매우 좋은 교재이다. 노반의 전설의 첫 부분 ‘영산의 무지개灵山彩虹’에서는 대부분의 성인이 태어날 때의 모습처럼 상서로운 기운과 기이한 자연현상을 묘사하였다. 노반이 1살이 되었을 때 목수였던 아버지 공수현은 아들이 "조승(돌잡이)" 의식에서 문방사우를 잡아 이후에 글을 읽는 사람이 되어 출세하기를 바랐으며, 자신처럼 평생 나무를 만지며 근근이 먹고 살아가길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린 노반이 목재를 잡는 것을 묘사하며 앞으로 훌륭한 목공장인으로 성장함을 예시하였다. 노반은 성장하여 여러 가르침을 받기 위해 머나 먼 곳까지 스승을 찾아다녔다. 한 스승이 물었다. "1명의 스승이 2명의 제자를 가르쳤다. 1명은 도끼로 큰돈을 버는 것을 했고, 1명은 다리를 놓고 길을 닦는 것을 했다. 어떤 것을 배우겠느냐?" 노반이 대답했다. "다리를 놓고 길을 닦겠습니다." 스승은 기뻐하였다. 여기에서 노반은 자신이 만드는 발명품은 결코 큰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에 이로움을 주기 위한 인류애를 보여주었다. 노반이 살았던 춘추전국시대초기는 소국이 서로 앞다투어 도시를 건설하였고 침략으로 인하여 대규모로 토목공사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 노목수는 실력이 뛰어나고 인간관계가 좋아서 한 번에 세 나라에서 모셔가며 총 책임을 맡게 되었다. 노반은 부친을 따라 벌목을 하러갔다. 도끼로 나무를 찍으니 일에 진척이 없었다. 벌목 일을 마치고 내려오던 노반은 톱니풀에 발을 베이고, 그 풀을 보려고 손을 내밀다가 이번에는 버마재비의 톱니 같은 앞발에 손을 베였다. 이것을 보고 노반은 ‘톱’을 발명하게 되었으며, 이후 사람들은 벌목을 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곱자 그림쇠 사각형원형规矩方圆’ ‘반모·반처班母班妻’에서 ‘곱자’는 부인이 쓰다버린 종이를 접다가 직각의 자를 발명하였고, ‘묵두3)’역시 어머니와 아내가 이불을 만들 때 분선을 긋는 것을 보고 발명하였다. 이때 만들어진 곱자, 그림쇠, 묵두는 작은 물건이지만 현재까지도 토목·건축업에서는 매우 중요한 기초도구로 쓰이고 있다. ‘돌이 맷돌이 되다点石成磨’에서는 소의 되새김질을 보고 넓적하고 둥근돌모양 주둥이 도구를 발명하였다. 신선한 것을 갈면 즙이 나오고, 건조한 것을 갈면 가루가 된다. 새하얀 가루에 물을 붓고 주무르면 만두가되고, 빚어내면 전병煎餠이 되고, 자르면 면이 되고, 잘 감싸주면 물만두가 된다. 가난하던 부자이던 간에 이전에는 전혀 이렇게 부드러운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수동식의 방아는 가축을 이용하여 더 편리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중국 음식문화에 지대한 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노반은 자연에서 모티브를 찾았고, 노모와 자신의 처가 하는 가사노동을 보고 힘들고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하는 것에서 많은 실생활용품을 발명하였다. 노반은 또 신에 가까운 기술을 발휘하였는데 어리석은 사람이 대들보를 끊어 놓았지만 이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아귀를 맞추었다. 그래서 지금도 집을 지을 때는 상량대길上梁大吉을 붙이는 풍습이 전해지고 있다. 후반 부분에서 ‘노반의 문 앞에서 초나라를 가지고 놀다班门弄“楚”’에서는 초나라는 송나라를 공격하기 위해서 필요한 전쟁도구를 노반에게 요청하자 운제雲梯라는 구름사다리를 만들었다. 이것은 높은 성을 넘어 적을 공격하기 용이하게 만든 신무기이다. 그러나 이 소식을 전해들은 묵자는 한 걸음에 달려와서 노반에게 ‘겸애兼愛사상’을 주창하며, 묵자는 자신이 만드는 것은 공격용 무기가 아니라 평화를 지키기 위한 방어용임을 보여주었다. 후에 노반은 묵자의 사상을 이해하고 운제를 전쟁무기로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리고 노반은 자신의 발명품으로 인하여 양부모를 잃게 되는 슬픔을 겪는다. 아버지는 솔개모형 연을 타고 날다가 그만 이웃나라로 넘어가서 요괴로 오인 받아서 맞아서 죽고, 어머니는 목마차를 타고 아들의 작품을 시운전해주겠다더니 돌아오지 못했다. 노반이 이때 가장 큰 아픔을 겪는 대목이다. 이것은 ‘오늘날 첨단과학의 발전이 인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는 사용자의 바른 식견에 달려있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후에 노반이 묵자의 겸애사상에 입각하여 전쟁무기를 만들지 않았듯이 인문학과 첨단과학은 함께 공존해야 진정 인류의 평화가 보존되리라고 본다. 마지막 부분은 ‘구주를 돌에 새기다刻石九州’이다. 노반은 노년에 석대에 기대어 망치와 정으로 높은 산, 굽어있는 하천, 아치형 다리, 길게 뻗은 도로를 새기고 있었다. 노반이 조각한 것은 "구주도8)"였다. 매우 정확하고 분명했으며 후대에 사람들은 그것을 모방해서 지형도를 만들었다. 노반은 도끼를 품은 채 세상에 내려와 세상 사람은 노반을 존경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노반의 기술을 전수받은 사람들은 설이나 명절을 맞을 때 화선을 받치고 장대에 올라 걷거나 춤을 추는 놀이를 하며 항상 2박자로 노래를 부른다. 세상에 돌다리를 성인이 수리해 주시니 노반의 명성은 영원하리....... 제3장은 번역에 나타난 문제점으로 사례분석을 하였고, 제4장은 결론을 맺으며 부록으로 프레젠테이션으로 사용했던 파일을 첨부하였고, 마지막 참고문헌으로 마무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