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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원인 감동공유 추천글
제목: 아무것도 쓰지 않고 살아 온 날들도 소중하다
학과: 경제학과, 이름: 김*우, 선정연도: 2017
추천내용: 쓰기는 읽기와 다르다. 읽기는 어떤 단어를 정확히 모르더라도, 몇 문장 정도 온전히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맥락을 파악해 어떤 글을 읽었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떤 부분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쓰기는 그렇지 않다. 쓸 수 없는 것은 화면 속 여백으로 나타날 뿐이다. 쓰지 못한 문장은 그냥 쓰지 못한 것이다. 오래전부터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지만 정작 (순전히 개인적이고 자발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체계적인) 글은 잘 쓰지 않는다. 이런저런 이유를 떠올려 보지만 결국 게으른 탓이 크다. 실제로 쓰는 글에 비해 글쓰기 자체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커서 글쓰기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다. 이번에 읽은 『쓰기의 말들』도 여전히 글을 잘 쓰지 않는 와중에 읽은 여러 글쓰기 책 중 하나다. 쓰기에 대한 기술뿐 아니라 쓰기를 불러일으키는 여러 ‘말’들을 담은 책이다.

써야 하는 글이 써지지 않을 때 나는 심한 고통을 겪는다. 몇 분째 텅 빈 화면 속에서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는 일은 전혀 유쾌하지 않다. 지난 학기 중간 기말 별도의 시험 없이 오로지 레포트로 성적을 평가하는 수업을 두 개 들었다. 처음엔 시험이 없어 좋아했지만, 아무 소득 없이 텅 빈 모니터를 바라보다 집에 오기를 며칠째 반복하자 걱정이 됐다. 그 뒤로 온갖 논문과 자료를 짜깁기해 누더기 같은 글을 겨우 작성하긴 했지만, 전혀 뿌듯하지 않았다. 나의 고유한 생각과 관점은 그 글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조잡하게 형식만을 갖춘 활자 뭉치였다.

몇 달 전 인문학 공부 모임에서 “내 삶을 아름답게 하기 위한 일상 속 작은 실천”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다. 그때 난 하루에 책을 한쪽 이상 읽고, 글을 한 문장 이상 쓰겠다고 다짐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스물두 살 군대에 있던 시절 결심한 뒤로 사십여 년을 지켜온 약속에서 영감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지키지 못했다. 책 한쪽 읽지 않은 날이 많았고, 그보다 더 많은 날을 한 문장도 쓰지 않은 채로 보냈다.

초조했다.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고, 영영 글 쓰는 능력을 상실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페이스북에 간혹 짧은 생각을 문장으로 긁적이기도 했고, 블로그를 운영해 볼까 봐 마음도 먹었지만, 도무지 글다운 글은 쓸 수가 없었다. 왜 나는 한 문장도 쓰지 않았을까. 변명하자면 쓰고 싶은 게 없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구도 있었고, 꾸준히 쓰다 보면 글쓰기가 늘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을 써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언젠가 누군가의 물음에 "글쓰기는 무언가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부끄러운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무언가를 사랑한다면 그것에 대해 더 알고 싶고, 그렇게 알게 된 파편적인 정보, 인식, 떠다니는 정념 등을 표현하고 싶을 것이다. 그것이 글을 쓰는 유일한 동기는 아니겠지만, 나에겐 제법 중요한 동기인 것 같다.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무엇을 어떻게 사랑할지.

지난 몇 달은 한 문장 쓰기가 지독하게 어려운 시간이었다. 마음의 문제였을까. 책을 읽기도 글을 쓰기도 힘들었다. 그 대신 많은 시간을 들여 (이전처럼) 자신을 돌아봤다.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욕망하는지, 무엇에 분노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지. 지금까지의 글쓰기를 생각한다. 어찌어찌 완성된 꼴을 갖추었지만 정말 나의 글이었을까. 나의 문장이었을까. 온전히 나를 담은 글이었을까. 내 것이 아닌 열망과 세계감, 이해 밖의 그럴듯한 표현들을 적당히 조합한 조립품은 아니었을까. 온전히 나에게 충실한 진실한 문장이었는가 자문한다. 자신이 없다. 그 한 문장을 쓰기 위해 겪어야 하는 부끄러움과 고민이 두려워 거푸집만 요란한 글 뭉치로 나를 숨긴 건 아니었는지. 그리고 정작 나를 사랑하지 않고 무엇을 사랑하려 했던 건지.

당장 글을 쓸 수는 없었지만, 다시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써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진실한 한 문장을. 한 문장이라도 오로지 내가 이해하고 느낀 그만큼만 담겠다고. 지난 몇 달은 앞으로 차고 넘치게 남은, 써야 하는 ‘진실한 한 문장’을 위한 방황의 시간이었다고 믿는다. ‘쓰는 삶’을 살지 못해 괴로운 이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박완서의 말을 빌려 전한다. “쓰지 않고 그냥 살아왔던 시간도 중요하다고 말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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