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자료

원문 등 관련정보

독후감 공모전 우수작
제목: 열하일기
학과: 한문학과, 이름: 박*태, 선정연도: 2013
내용: 연암 박지원이 중국에서 경험한 만남과 소통의 미학

여행은 현실의 벽에 치여 경험하지 못했던 자유로움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 또한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나를 데려가는 것이다. 사회적 지위나 역할 그리고 체면이란 방호벽을 뚫고 떠난 여행 그 내면에는 기분 좋은 놀라움이 공존한다. 즉,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풍경들로부터 경험하는 신선한 충격은 그야말로 놀라울 뿐이며 이것이 여행의 첫 번째 미덕이다. 하지만 여행의 미덕이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여행 속에는 바로 '소통' 이 존재한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소통 자연과의 소통 그리고 자신과의 소통 등 다양한 소통형태가 나타날 수 있다 일상이 이미 소통으로 가득하지 않으냐고 반문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열띤 소통으로 채워 나가는 여행 속에는 새로움의 향연으로 가득한 무대가 우리 앞에 끊임없이 나타날 것이라고.
이렇듯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이유라면 [열하일기(熱河日記)] 에서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이 보여준 진정한 소통의 참맛을 몸소 체감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만난 사람 자연 동물 등 무엇이든 접하고 들러붙어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박지원의 면모 그리고 만남과 소통으로부터 얻는 그의 감흥들을 직접 보고 몸소 느껴본 독자라면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이라 했던가. [열하일기]가 조선 후기 문학이 거둔 최고의 성취라는 말만 듣고서 감탄만 연발하는 피동적 인간이 되지 말자 연암이 두 달간 청나라를 여행하며 기록한 방대한 텍스트의 연행록 [열하일기] 그곳에 담긴 연암의 방대한 소통을 찾아 여행을 떠나볼 때이다.

첫 번째, 자기 내면과의 만남과 소통

[열하일기]에서 박지원은 자기 내면과 소통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거대함과 화려함으로 둘러싸인 중국을 바라보며 자신이 얼마나 작고 낯선 존재인지 절감하기도 하고 달빛 아래서 함께 구경할 사람이 없다는 것에 애석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기와의 소통을 아주 잘 보여주는 대목이 있었으니 바로 '도강록(渡江錄)'에 실려 있는 7월 8일 자 일기이다. 압록강을 건너 넓디넓은 요동 벌판에 선 연암과 그의 일행들 연암은 문득 뜬금없이 황당한 발언을 한다. "한바탕 통곡하기 좋은 곳이로구나." 모두가 화려한 장관 앞에서 감탄하며 혼을 빼앗기고 있을 때, 좋은 울음 터를 연상하다니 연암의 특이한 사유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연암은 울음이 나오는 감정의 근원이 '슬픔' 에서만 비롯된다고 생각하지 않
는다. 대신 연암은 칠정 모두가 울음을 유발하는 통로라고 말한다. 기쁨, 분노, 즐거움, 사랑, 미움, 욕심, 그리고 슬픔이 극에 이르렀을 때 울음이 날 만하다는 것이다. 특히, 연암은 갓난아이가 우는 이치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갓난아이가 어머니 태중에 있을 때 캄캄하고 막히고 좁은 곳에서 웅크리고 부대끼다가 갑자기 넓은 곳으로 빠져나와 손과 발을 펴서 기지개를 켜고 마음과 생각이 확 트이게 되니, 어찌 참소리를 질러 억눌렸던 정을 다 크게 씻어 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도강록 )
연암은 갓난아이가 태어나 우는 것은 어두컴컴하고 좁은 곳에 있다가 넓은 곳에 나왔을 때의 기쁨이 지극해서라고 말한다. 또한 자신이 넓은 요동 벌판을 보며 우는 것 또한 갓난아이가 우는 이치와 같음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문득 의문이 생긴다. 드넓은 요동 벌판에 서고 나서야 한바탕 통곡할 수 있겠다는 연암의 말로 미루어 보건대 자신은 여태껏 어두컴컴하고 갑갑한 태중에 있던 아기의 심정과 다를 바가 없었음을 은연중에 밝히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 말이다. 한 때 홍국영 의 권세를 피해 연암골로 잠적해야만 하는 처지와 가정 형편의 어려움 그리고 2년이 흐른 후 다시 서울로 돌아왔을 때 친구들의 부재로 무상감에 젖었었던 나날들 그때의 지극한 슬픔이 다시 벅차올랐던 것일까 아니면 그동안 중국 여행을 꿈꾸었지만 억눌려야만 했던 욕구가 해소된 것에 대한 기쁨의 표출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요동 벌판의 드넓음을 보며 지금껏 자신이 얼마나 좁고 답답한 세계에 갇혀 있었던가를 몸소 실감한 것에 대한 놀라움의 표출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통곡에 담겨있는 진정한 의미를 찾는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울음을 통해 자신의 억압된 자아를 재인식할 수 있다는 점에 주안을 두고 싶다. 연암이 요동 벌판이라는 넓은 세상과의 소통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울음 내면에는 갓난아이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감당해야만 했던 억압과 답답함이 본인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즉, 요동벌판은 연암에게 한바탕 통곡하기 좋은 곳이며 그가 억압된 자아를 재인식할 수 있는 성찰의 장이 된 것이다.
'억압된 자아의 재인식', 이것은 자신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신의 억압된 욕망과 상처를 마음에 꾹 담은 채 묵묵히 살아감으로써 고통 받는 사람이 늘고 있다. 심리치료 관련 책이 시중에 쏟아져 나오고 정신과 의사의 수요가 증가하는 현상이 정신적으로 상처받는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방증 이다. 심리치료 관련 서적에서 자신을 치유하는 첫걸음은 자신의 자아를 파악하고 인식하는 데 있으며 이것을 위해 자신과 소통하는 시간이 필수적이라고 입 맞춰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과 진실한 대화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자신의 문제를 알게 된다. 아무리 밖으로 꺼내기가 꺼려지고 힘든 문제라도 전문가나 가족 친구와의 소통을 통해 자신의 내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냥 놔두면 언제 곪아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타인과의 소통에만 주력할 뿐 시간을 따로 내어 자신과의 소통에 소홀한 모습을 보인다. 타자의 시선에 맞춰 나의 겉모습에만 치장할 뿐 정작 자신의 본모습에는 관심이 없다. 이제는 바쁜 일상에서 벗어 나 자신의 진정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볼 때이다 갑자기 "마음이 울적하고 답답할 땐 산으로 올라가 소릴 한번 질러봐." 라는 노랫말이 문득 떠오른다 가끔 뒷산에 오르며 진정한 나와 소통을 하는 것은 어떨까? 그 뒷산이 연암이 마주한 요동 벌판이 되어 훌륭한 울음 터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두 번째,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과 소통

우정의 마음으로 나눈 중국의 상인들과의 소통
연암이 중국에서 만나고 소통한 사람 중에는 심양 의 예속재 와 가상루 에서 만난 상인들을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은 중국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한낱 상인에 불과하지만 󰡔열하일기󰡕에서는 밤새도록 함께 우정을 나눈 연암의 소중한 친구들이다. 물론 조선인인 연암이 그들과 접선하는 코드라 한다면 붓글씨와 음악 그리고 필담을 통한 담화라고 볼 수 있는데 이것만으로도 그들의 밤을 채우기엔 충분하다. 연암은 친구들에게 뛰어난 붓글씨를 선사하기도, 비파를 연주하기도, 그리고 후출사표 를 쭉 읽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연암과 친구들의 끊임없이 주고받는 필담까지 이 모든 것들은 그들이
허물없는 우정을 쌓아나가게 하는데 충분했다. 특히 연암은 촉 지방에 대한 물음
과 대답 음식 장만 및 음식의 맛에 대한 품평 골동품의 진가를 판별하는 문제
등을 논하면서 중국에 관한 지식을 구체화하는 첫걸음을 놓는다. 이렇게 필담과
비파 연주 그리고 글 낭송을 통한 교유를 거쳐 밤새 노닐다 어느새 연암과 친구
들은 의자에 걸터앉은 채 꾸벅꾸벅 졸다가 코를 골며 잠이 들게 되고 이로써 그
들의 소통은 매듭을 짓게 된다.
그런데 참 의아하다 학식이 높고 명망 있는 연암이 중국에서 많고도 많은 중국 상인과 소통하려 하다니 그것도 연암이 주체적으로 말이다. 연암은 상인들에게 있어 절대 자신을 권위적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연암은 최대한 눈높이 를 낮추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의 이야기들을 통해 그들의 인생살이를 듣고 삶의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다. 다음의 예를 보자.
고향 우물을 떠나지 않고 죽더라도 제자리를 지키며 마치 여름 벌레가 겨울 얼음을 모르듯 한 군데 갇혀 산다면 이는 일찌감치 죽느니만 못할 것입니다 점포를 열어 물건을 놓고 파는 것을 비록 인생의 하류로 돌아갔다고들 말하지만 장사란 하늘이 아름다운 극락세계 하나를 열어 준 것이고 땅이 지상낙원을 열어 준 것입니다. 우리가 벗에 대해서는 지극 정성을 하고 있습니다. 세 사람이 가면 그중에 한 명의 스승이 있다고 했고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도 자를 수 있다고 했으니 세상에 이보다 지극한 즐거움은 없습니다. 사람이 나서 평생 친구를 사귀는 일이 없다면 도대체 재미난 흥취가 없을 것이니 옷이나 잘 입고 먹는 것이나 밝히는 자들은 이런 맛을 모른답니다. 성경잡지 위의 대목은 "고향으로 돌아가 몸소 밭이랑을 갈아 부모와 처자를 돌볼 것이지 어째서 오로지 장사꾼의 이익을 쫓아 멀리 고향과 이별하는가?" 라는 박지원의 질문에 대한 상인들의 답변이다.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장사꾼이 되지 않을 경우 늙고 병들어 죽을 때까지 고향을 한 걸음도 떠나지 못한 채 여름 벌레가 겨울 얼음을 모르듯 이 세상을 마칠 테니, 그렇다면 차라리 일찌감치 죽느니만 못할거라고 남들은 비록 장사하는 것을 인생의 하류로 취급하지만 유유히 사방을 다녀도 거치적거리는 것이 없고 뜻에 맞는 대로 편하게 지낼 수 있으니 장사치로 떠돈다는 것이다.
특히 돋보이는 건 장사치들 간의 우정이다. 가족과 고향을 떠난 그들에게 친구보다 더 소중한 것도 없으며 이보다 지극한 즐거움은 없다고 말한다. 그들이 연암과 나이, 국경, 신분을 넘는 진한 우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정서적으로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것도 인생의 최고 덕목을 친구와의 사귐으로 여기는 그들의 끈끈한 우정 덕분은 아니었을까 그들의 정서적 소통이야말로 열하일기에서 소통의 진면목을 일깨워주는 첫 번째 대목으로 기억된다 박지원의 소통 상대에 있어 상 하의 논리는 적용되지 않는다 허물없는 우정과 순수함으로 똘똘 뭉친 영락없는 단짝 친구들만 존재할 뿐.

필담을 통해 나눈 중국 사대부들과의 소통
타지에 있다 해서 연암이 지닌 청 왕조의 학술과 문예에 관한 상당한 식견이 어디로 가겠는가. 연암은 북경과 열하에서 사귀게 된 중국 사대부들과의 필담을 통해 중후한 사상가로서의 면모를 십분 발휘한다. 연암은 당시 자신이 알고 있던 중국의 학풍과 문예사조를 진단함에서 열하 체류 중에 매일 만나다시피 하면서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던 곡정 왕민호 와 형산 윤가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특히 연암이 왕민호와 벌인 토론의 내용은 우주와 천체에 대한 자연 과학적인 주제 철학적 주제로 끝나지 않는다. 종교 정치 역사 역사인물에 대한 평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포괄하고 있으며 이는 곡정과 장시간 동안 필담을 나누며 기록한 곡정필담 에서 잘 드러난다.
[곡정필담] 속 수많은 주제 중에서 친숙하면서도 흥미를 끌었던 주제라면 그 유명한 '지구자전설(地球自轉說)' 이다 연암은 곡정과의 필담에서 달이나 별 태양 등 다른 천체에서 지구를 바라본다는 관점을 설정하여 기존의 지구 중심적인 사고로부터 탈피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연암은 달 안에 세계와 생명체가 존재하리라는 상상을 뒷받침하고자 만물이 먼지로부터 생겨났다는 가설을 제기하기도한다. 이러한 연암의 관점은 인식의 상대성을 자각하고 관점의 대담한 전환을 통해 지구 중심 인간 중심 중국 중심의 고정된 관점에 얽매인 기존 사고를 뒤엎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연암의 천문학적 세계관에서 시작해 만물의 기원은 먼지라는 것을 일컫는 만물진성설 이 [열하일기]에 기록되기까지 보이지 않는 기막힌 우연이 있다면 어떨까? 곡정필담 의 앞부분에 쓰인 '지구자전설' 은 앞서 연암이 열하의 태학에 머물며 중국학자들과의 대화를 기록한 태학유관록 의 8월 13일 자 일기에서 이미 언급된 바가 있다 그 대목에서 연암은 우연히 달을 보고 친구 홍대용 이 생각나 독백처럼 지구 자전설 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날 밤 달빛이 더욱 밝았다." 로 시작해 "어찌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에 이르기까지 연암은 끝까지 묻는 형식을 취하며 지전설 에 대한 생각을 기풍액 에게 피력하고 있다. 하지만 연암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지구 자전설에 대해 구구절절 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곡정필담 의 덧붙이는 말에서 알 수 있는데 한 번 들어보자.
내가 한양을 떠나서 여드레 만에 황주에 도착하였을 때 말 위에서 스스로 생각해 보니 학식이라곤 전혀 없는 내가 적수공권으로 중국에 들어갔다가 위대한 학자라도 만나면 무엇을 가지고 의견을 교환하고 질의를 할 것인가 생각하니 걱정이 되고 초조하였다. 그래서 예전에 들어서 아는 내용 중 지전설과 달의 세계 등을 찾아내 매양 말고삐를 잡고 안장에 앉은 채 졸면서 이리저리 생각을 풀어내었다. (곡정필담鵠汀筆譚)
위의 대목에서 연암은 중국의 위대한 학자와의 소통에서 무슨 주제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이미 마음에 준비해 두고 있었다. 지전설과 달의 세계에 관한 주제 이것이 연암이 준비한 비장의 카드라고 할 수 있겠다. 연암의 철저한 준비성 그의 또 다른 면모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수없이 생각해 본 주제였기에 지전설에 대해 마치 폭포수처럼 혼자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기풍액 은 같이 태학에 묵고 있던 곡정에게 연암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전하였고, 이에 따라 곡정의 요청으로 연암과 곡정은 우주와 천체에 대한 문제 물체의 본질 생물의 기원 등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게 된다. 연암의 사상이 기록되는데, 기막힌 우연한 시작 그것은 역시 사람과 사람의 소통에서 시작한 것이다 절친했던 홍대용과 달을 나란히 쳐다보며 무심코 나눈 담화는 명륜당 아래에서 연암의 연출된 독백으로 독백을 들은 기풍액의 추천으로 연암과 곡정과의 필담에 이르기까지 소통의 연결고리가 마치 일부러 끼워 맞춘 듯 이어지고 있었다. 소통이 만드는 기막힌 우연의 힘 그야말로 대단하다.

세 번째, 낯선 자연물과의 만남과 소통

소통이라 해서 일차원적으로 인간과 인간과의 소통만을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
산이다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은 언제나 소통의 주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접적이며 외적인 의사소통은 물론이며, 내면의 감정을 전달하는 과정인 간접적
의사소통 또한 하나의 소통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주변의 자연물로부터 자신의
내면에 감쳐져 있던 감성을 재발견하고 그 사이에서 공명 하는 요소를 찾아
내어 소통하는 일은 우리에게 또 다른 사유를 하게 만든다. [열하일기]에서 박지원이 보여준 자연물과의 소통과 이에 뒤따른 그의 색다른 사유 속으로 한번 빠져
보자.
연암은 특히 동물에 각별한 관심을 둔다. 물론 열하로 가는 길에 온갖 진기한 동물들을 두루 접하기도 했다. 연암은 동물이 있는 곳이라면 어떤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달려가서 세심히 관찰하기도 하고 온갖 정보를 상세히 기록했으니 말이다. 연암은 동물들을 객관적인 시선에서 단순히 관찰하는 것을 넘어 깊은 교감을 나누며 소통했음을 알 수 있는데 바로 [산장잡기] 에 기록돼 있는 [상기]에서 그것이 두드러진다. 연암은 [황도기략(黃圖紀略)] 에서도 코끼리의 명석함과 재주 그리고 충성심 등의 외적인 모습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 물론 코끼리에 대한 연암의 관심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연암의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어느덧 코끼리를 통해 천지자연의 원리를 사유하기에 이른다. 더 자세히 알아보자.
아하 털끝같이 작은 세상의 물건도 모두 하늘이 내지 않은 것이 없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하늘이 어떻게 일일이 다 명령을 했겠는가 하늘이란 형체로 말한다면 천 이요. 성정으로 말한다면 건 이요. 중심이 되어 맡아서 처리하는 면으로 말한다면 상제 요 묘한 작용으로 말 한다면 신 이라고 말하니, 그 이름 붙이는 것이 여러 가지요 또 호칭이 너무 난잡하다. 코끼리가 범을 맞닥뜨리면 코로 때려눕혀 즉사시키니 그 코로 말한다면 천하무적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코끼리가 쥐를 만나면 코를 둘 자리가 없어서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섰을 뿐이.다. 그렇다고 쥐가 범보다 무섭다고 말한다면 앞에서 말한 하늘이 낸 이치는 아닐 것이다. (상기)
하늘이 작은 세상의 모든 물건을 낸다고 한다. 그러나 이때 하늘이란 형체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천 건 상제 신 과 같이 어떤 각도로 보느냐에 따라서 무수히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우주의 변화는 고정적이지 않아 하나의 단일한 척도로 수렴될 수 없다는 말로 해석된다. 연암은 그 후 코끼리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해 나간다. 코끼리가 범을 맞닥뜨리면 코로 쳐서 범을 죽이므로 그 코는 천하무적이다. 그러나 그 코는 쥐를 만나면 어떤 가치도 없는 즉 무용 한 것으로 전락해버린다. 그렇다고 쥐가 범보다 무섭다고 궤변을 늘어 놓는 사람은 없다. 결론은 간단하다.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단일한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각기 다른 만물 사이에는 역시 각기 다른 방식의 기준과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암이 [상기] 를 통해 지금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끊임없이 변하는 세계적 무대 앞에서 일체의 선입견을 버리고 개방적인 자세로 임하라는 것. 그리고 고정불변의 법칙은 무상하게 변하는 세상 앞에 존재하지 않으니 다양한 경험과 시도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이것 또한 연암과 코끼리의 교감과 소통이 만들어낸 값진 산물일 터, 연암은 자연과의 교감과 소통에서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는 또 다른 메시지를 전해 주고자 한 것은 아닐까?

네 번째, 눈부신 중국 문명과의 만남과 소통

[열하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라면 박지원이 중국 청조의 문명을 객관적으로 저술한 내용일 것이다. 연암은 단순히 관광객으로서 자신이 본 새로운 중국 문명에 감탄사만 연발하지 않는다. 청조 중국의 실상에 비추어 당시 조선의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고 개혁 방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다음 연암의 말을 보자.
천천히 걸어서 문을 나서니 번화하고 화려한 모습이 비록 황성에 도착하더라도 이보다 더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이 이처럼 번성했을 줄을 생각지도 못했다. (도강록)
연암의 중국 문물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 대목이다. 연암이 중화문명을 바라보는 잣대는 무슨 일이 있었고 그곳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주를 이룬다. 남들이 북벌론 에 영향을 받아 청 왕조를 오랑캐라고 떠들 때 이들의 편협한 사고에 빠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 중화문명을 정확히 파악했다는 것이다. 연암이 바라본 청의 문명과 조선 사회의 낙후성에 대한 인식 그리고 그것을 타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살펴보자.
기와를 이는 법은 더더욱 본받을 만하다. 기와의 모양은 통 대나무를 네 쪽으로 쪼갠 것 중 하나와 같은데, 흡사 두 손바닥을 합한 것과 같은 정도의 크기이다. 민가에서는 원앙기와를 사용하지 않으며 ....... 우리나라의 기와 이는 법은 이와는 매우 다르다. 지붕에 진흙을 두텁게 깔아 위가 무겁고 담벼락은 벽돌을 쌓지 않아서 네 기둥이 의지할 수 없으므로 아래가 허하다 ........ 요컨대, 집을 짓는 데는 벽돌을 쓰는 것이 가장 훌륭하다 비단 담을 높이 쌓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실내외를 모두 벽돌을 깔고 넓은 뜰을 모두 벽돌로 깔아서 눈에 보이는 것이 반듯반듯 바둑판 줄을 그어 놓은 것 같다. (도강록)
위와 같이 연암은 객관적으로 청의 문명을 진단한 후 조선 사회의 낙후된 문명에 대한 인식과 그에 대한 타개방안을 내놓는 방식으로 글을 전개해 나간다. 연암은 중국처럼 벽돌을 널리 활용함으로써 시설비용을 절감하자는 벽돌 사용론에 그치지 않는다. 열하일기 중에서 잘 알려진 수레 통용론 또한 연암의 주장에 해당하는데 연암은 조선의 산업발전을 저해하는 주요인이 상품 유통의 부진에 있으므로 중국과 같이 수레를 전국적으로 통용하자고 역설한다. 이상과 같이 연암이 제시한 북학론은 청조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나라를 강성하게 만들자는 이상이 담겨있었다. 연암의 벽돌 수레 등 다양한 청조 문물과의 소통은 단순히 자신만을 위한 소통이 아니다 청조 문물을 받아들여 조선 시대의 낙후된 문명을 타개함으로써 부국강병 한 나라가 되길 간절히 기원하는 진정한 백성의 마음이 있었기에 연암의 소통이 더욱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만남과 소통, 끝나지 않은 이야기

[열하일기]에 축약된 박지원의 방대한 소통들을 세노라면 끝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보여준 소통의 진정한 묘미를 일일이 묘사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그러나 박지원이 보여준 소통을 향한 끝없는 열정 그리고 만남과 소통으로부터 울려 퍼지는 연암의 웃음소리는 아직도 선명히 기억에 남아있다 그렇기에 박지원의 마음이 되어 [열하일기]를 여행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음에도 지금 이처럼 뿌듯한 이유가 아니겠는가.
소통 이란 단어는 필자에게 아주 소중한 단어이다. 입시를 준비하며 지쳐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소통은 그 자체로 큰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가족 친구 선생님과의 소통 그리고 때로는 뒷산이나 바다로 떠나며 즐긴 자연과의 소통과정 이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일으켜 세운 원동력이며, 성장의 촉매제가 되었음에 확신한다. 올해 대학에 들어와 각양각색의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하며 정신없이 한 학기를 보냈다. 한자의 갑골문을 익히며 서로 머리를 감싸 쥐었던 순간도 있고 교수님의 대학 시절을 들으며 함께 웃음꽃을 피웠던 순간도 있다. 물론 저녁마다 과제를 끝마치고 친구와 달빛을 맞으며 기숙사로 터벅터벅 올라간 기억도 있지만 말이다.
새로운 환경에서의 새로운 사람들과의 소통은 언제나 처음에는 난관에 봉착한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개성에 처음 직면하게 되면 각자의 개성을 이해하고, 자신과의 개성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를 아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각의 개성을 이해하고 서로 융화를 마친 후 거리낌 없는 소통의 꽃을 피울 때의 짜릿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다시 동기들과 만날 학기가 더 기다려지는지도 모르겠다 따사로운 햇살이 비춰들어 오는 인문대의 유리창 바깥 풍경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보인다. 친구들과 함께 농구를 하는 대학생의 모습도 있고,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나온 아이의 모습도 보인다. 그들도 내가 모르는 그들만의 소통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일이 더 기다려지는지도 모르겠다. 색다른 소통을 하고 있을 나를 상상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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