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자료

원문 등 관련정보

관련 파일
해제
이것은 小訥 盧相稷의 紫巖書堂 講學日誌이자 小訥 盧相稷의 日記이다. 小訥 盧相稷은 한말 혼란기에 과거시험을 통한 출사의 길을 포기하고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힘을 쏟았다. 그는 性齋 許傳의 嫡傳으로 일컬어질 정도로 학자로서 대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출사의 길을 포기하는 대신 일찍부터 후진양성을 위한 서당교육을 행하였다. 1883년(고종20)부터는 창녕군 이방면 동산리 菊洞의 일족 光州盧氏 문중재실 追遠齋에서 강학하였으며, 1888년(고종25)부터는 같은 국동의 일족 光州盧氏 문중재실 克己齋로 장소를 옮겨 강학하였으며, 1894년(고종31)에 동학란으로 밀양시 산외면 금곡리로 피난한 뒤 1895년(고종32)에는 그곳에 錦山書堂을 열어 강학하였으며, 1896년(고종33)에는 같은 밀양시 단장면 국전리 蘆谷으로 거처를 옮겨 紫巖草廬를 짓고 강학하였으며, 1914년에는 같은 노곡에 紫巖書堂을 신축해서 강학하였으며, 1919년에는 밀양시 단장면 사연리 秣方으로 거처를 옮겨 泗南書庄을 짓고 강학하였으며, 1926년에는 다시 蘆谷의 紫巖書堂으로 돌아와 강학을 하다가 서거하였다. 중간에 1911년 형 大訥 盧相益을 뒤따라 중국 남만주[서간도]로 일시 망명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1883년 29세 이후부터 서거한 1931년 77세까지 계속해서 서당교육을 행하였다. 특히 1910년 망국 이후 일제강점기 내내 교육구국의 기치를 높이 내걸고 서당교육을 계속 행하였다. 그러한 사실은 1910년 망국 이후 그가 葛軒 韓東愈(1885∼1961)에게 답한 한 서찰에서 “우리들은 운명이 박복하여 우리의 옛 나라를 지키지 못하였으므로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고, 학문을 해도 학문이 될 수 없습니다. 이미 죽을 자리를 얻지 못하였으니, 오히려 마땅히 우리 선왕께서 교육으로 자강을 꾀한 방책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라고 한 것으로 분명하게 확인이 된다. 1910년 망국 이후 노상직의 이와 같은 현실대처방식은 毅菴 柳麟錫(1842∼1915)이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유림의 현실대처방식으로 제시한 ‘處變三事’의 ‘무장투쟁[擧義掃淸]’, ‘은둔 또는 망명[去之守舊]’, ‘자결[致命遂志]’ 중 두 번째 ‘은둔 또는 망명[去之守舊]’하는 현실대처방식을 택한 것이다. 은둔 또는 망명, 곧 세상을 멀리 떠나서 자신의 옛 것을 지키겠다는 ‘去之守舊’의 입장과 행동에는 ① 중국대륙, 만주, 불라디보스토크 등 국외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종사하는 경우, ② 국내에서 경전을 싸 가지고 산으로 들어가 은둔하는 경우와 바다 속 섬으로 들어가 자신을 지키는 경우가 있다. 小訥 盧相稷이 紫巖書堂 등에서 은거 강학한 것, 곧 서당교육을 행한 것은 바로 ②의 경전을 싸 들고 산으로 들어가 은둔한 경우에 해당된다. 小訥 盧相稷의 서당일지 󰡔紫巖日錄󰡕과 書堂에 대한 기문 「紫巖書堂記」[盧相稷, 󰡔小訥集󰡕, 卷27] 등을 살펴볼 때, 그는 서당의 일지를 기록하는 제자들에게 그 일지에는 서당 밖의 세상사, 특히 시국문제에 대해서는 일체 기록하지 말 것을 엄명하였고, 紫巖書堂으로 건너오는 다리를 ‘斷塵橋’, 紫巖書堂으로 올라오는 입구에 있는 시내를 ‘洗心澗’으로 명명해서 세속과 완전 절연된 세계 속에서 오로지 舊學에만 전념하는 학문공동체[학문결사체]를 지향하였다. 그러나 그 학문의 목표가 엄연히 교육구국에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길러낸 인재의 다수가 그와 함께 파리장서[한국독립청원서]에 서명하고, 또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사들도 많이 나오게 되었다. 이와 같은 小訥 盧相稷의 서당교육정신, 곧 강학정신은 新山書院 창건 이후 김해지역에 맥맥히 계승되어 오던 新山書院의 강학정신과 한말에 그것을 되살려낸 性齋 許傳의 강학정신을 근대 망국의 위기상황에 현실에서 구현한 것이었다. 紫巖書堂 등 小訥 盧相稷의 서당이 김해가 아닌 밀양[단장]에 위치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김해지역유림의 정신을 계승한 것, 김해지역유림의 전통 속에 있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서당을 일반적인 대도회가 아닌 서원처럼 학자가 세속을 멀리한 채 조용하게 학문에 전념할 수 있는 곳에 두기 위해, 그래서 스승과 제자가 하나의 학문공동체[학문결사체]로써 서당마을을 이루어 강학해 나가기 위해 그 적지로 밀양[단장]으로 택한 것일 뿐이었다. 이곳에는 밀양과 김해와 창녕 등 경상남도 동부지역의 많은 선비들 찾아와서 학문을 익혔고, 그들은 스승과 제자가 하나의 학문공동체[학문결사체]로써 서당마을을 이루어 생활하였다. 그 때문에 서당에 소속된 구성원들은 儒契會[學契], 곧 紫巖學契 등을 조직하고 그 契金을 조성하고 운용해서 서당을 유지해 나갔다. 서당의 건물을 짓는 것에서부터 그 서당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그 서당에 소속된 구성원으로 조직된 儒契會[學契]와 그곳에서 거둬들인 契金으로 꾸려나갔다. 그리고 서당에 소속된 구성원, 곧 선생[主丈]과 제자[諸生]의 일상을 그곳의 주 구성원인 제자들이 당일의 당번 直日이 되어 매일 돌아가면서 서당일지 형태로 기록하였다. 따라서 이 서당일지 󰡔紫巖日錄󰡕 또는 󰡔紫巖日記󰡕는 서당의 日誌이면서, 서당 구성원의 日記, 그중에서도 매일 거의 빠짐없이 기록되는 선생[主丈]의 일상을 기록한 小訥 盧相稷의 日記이기도 하다. 원래는 1896년(고종33) 小訥 盧相稷이 밀양시 단장면 국전리 蘆谷으로 거처를 옮겨 紫巖草廬를 짓고 강학한 이후 1899년(광무3)부터 그가 서거한 1931년까지 33년 동안 매일매일 기록한 서당일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1899년(광무3)부터 1901년(광무5)까지의 권1, 권2, 권3, 권4, 권8, 권9, 권10, 권11, 권12, 권13, 권14, 권15, 권16, 권17, 권18, 권31, 권32, 권33, 권34의 모두 19권을 5책으로 묶어놓은 것, 그리고 󰡔紫巖日錄󰡕, 󰡔紫巖日記󰡕, 󰡔方齋日錄󰡕, 󰡔方齋日記󰡕, 󰡔泗南日錄󰡕, 󰡔日記󰡕 등이 부산대학교도서관 소장 小訥文庫와 개인소장[盧圭鉉] 등으로 더 전하고 있다. 그중 이 󰡔紫巖日記󰡕는 1927년 4월 25일부터 7월 13일까지 약 4개월 동안의 紫巖書堂日誌이다. 不分卷 1책이다. 그 내용을 앞의 󰡔紫巖日錄󰡕의 경우와 동일하게 紫巖書堂의 일상을 기록한 紫巖書堂日誌이면서 그 書堂의 선생의 일상도 소상하게 기록하여 小訥 盧相稷의 일상도 아울러 살펴볼 수 있게 기록한 小訥日記이기도 하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1927년 4월 25일(기미) 맑음
直日은 李炳祺. ○ 夙興은 在丞. ○ 李炳祺는 󰡔論語󰡕를 배웠다. 3월 초6일에 와서 읽기 시작하였다. ○ 河在丞은 󰡔小學󰡕을 배웠다. 이달 22일에 와서 글을 읽었다.[字 子相, 甲辰生, 晉陽人, 昌寧 大合面 茅田里 居住] ○ 石炳悌는 󰡔書傳󰡕을 배웠다. 3월 21일[이날이 바로 강회]부터 와서 글을 읽었다.[字 景友, 庚戌生, 忠州人, 昌寧 梨房面 草谷 居住, 작년에 도 와서 泗南書庄에서 글을 읽었다.] ○ 盧在爀[字 而發, 壬子生]은 󰡔詩傳󰡕을 배웠다. ○ 盧在燁[在爀의 從弟]󰡔論語󰡕를 배웠고, 盧祉容은 󰡔千字文󰡕을 배웠다.[居 密陽 蘆谷, 先生의 三從姪, 지난겨울부터 비로소 글을 읽었다.] ○ 盧重漢[字 □□, 豐川人, 咸陽 介坪 居住, 玉溪先生 禛의 後孫]이 하직하고 물러갔다. 어제 來謁하여 그 先祖 雲皐公의 墓碣文을 청하였다. 대개 일찍이 墓碣文이 있었지만, 글자가 마모되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새 비석을 세우려고 하여 先生이 撰하여 주셨다. ○ 先生이 書籍을 살펴보시고는 炳祺와 在爀으로 하여금 차례차례 정돈해서 착오나 혼란이 없게 하라고 하셨다. ○ 丹亭의 李鍾燁[字 吉三, 慶州人]이 來謁하여 말하기를 “아이의 학비를 대기 어렵기 때문에 제조한 丸藥과 膏藥 및 人蔘 半封을 가지고 諸家와 主丈家에 두루 청하여 약간의 돈을 요구한 다음 拜退하였다.
◎ 4월 26일(경신) 맑음
直日은 河在丞. ○ 夙興은 炳悌. ○ 主丈家에서 부리는 奴僕이 石灰를 써서 書堂 앞의 작은 우물을 修築하였다. 지난해 紫巖書堂을 重建할 때 庭除를 改築하면서 땅을 파다가 이 샘을 얻었는데, 물이 깨끗하고 차서 맛이 있었다. ○ 活川의 李述九[字 善夫]와 竹東의 孫泳秀[字 孟涵]가 來謁하고는 午後에 拜退하였다. ○ 慶州의 朴主事 泰鎭이 先生께 서찰을 보내 말하기를 “本郡의 郡守가 부임한 지 8년에 무더운 달에 止宿할 곳이 없는 것을 걱정하여 臨海殿의 옛 터 옆에 정자 하나를 짓고 臨海亭이라고 편액을 달았습니다. 지난달 先生께 記文과 詩를 청하여 先生께서 지어서 부쳐주셨는데, 記文 중에 誤字와 難解한 곳이 있기 때문에 다시 질정을 드립니다.”라고 하였다. ○ 昌原의 裵主事 炳元이 先生께 서찰을 보냈다.
◎ 4월 27일(신유) 맑음
直日은 石炳悌. ○ 夙興은 在爀. ○ 佳仁의 朴正熙[字 淳夫, 密陽人]이 來謁하였는데, 눈이 먼 지 이미 오래되었다. 문을 들어서자 先生은 在爀으로 하여금 인도하게 하고 계단 앞에서는 계단이라고 하고, 대청에 오를 때는 아무가 이곳에 있다고 하고, 음식을 앞에 두고는 아무 반찬 아무 채소라고 하였다. ○ 大邱 枝底의 李逌雨[字 雲伯, 慶州人]이 來謁하여 그 大人[鍾浩]과 漆溪 崔鍾應 丈의 서찰을 전하며 그 王考 耕叟公[圭執○止軒 崔孝述의 門人]의 墓誌를 청하였다. ○ 淸道面 九奇里의 禹在宗[字 漢汝, 乙亥生, 丹陽人]이 來謁하여 그 四從祖 惺窩公[秉鍾]의 遺墟碑閣[在昌寧 桂八]의 上樑文을 청하였다. ○ 炳祺 집에 손님이 와서 炳祺에게 심부름꾼을 보냈기에 炳祺는 저물녘에 집으로 갔다.
◎ 4월 28일(임술) 맑음
直日은 盧在爀. ○ 夙興은 炳悌. ○ 在爀이 아침 일찍 일어났다가 다시 누웠다. ○ 朴正熙가 拜退하였다. ○ 先生이 慶州의 朴泰鎭과 昌原의 裵炳九에게 답장을 보내셨다. ○ 禹在宗이 拜退하였다. ○ 巴西의 閔晶植이 來謁하여 先生이 전날 지으신 三江儒契의 序文 중 알기 어려운 곳에 대해 질의하였다.[엣날 三浪津에 書院을 두어 그 先祖 諱 九齡 형제 五先生을 제향하고 三江이라고 현판을 걸었다가, 先皇帝(高宗) 무진년(1868)에 훼철되어 子孫들이 五友亭을 그 터에다 옮겨지었다. 지난해 고을의 諸公들이 마침내 契金을 醵出해서 儒契를 만들어 三江儒契라고 하였다.] ○ 安仁의 孫洛鉉[字 □□, 密陽人]과 新安의 孫柄鉉이 肇極殿에 우리 太祖大王과 先皇帝(高宗) 隆熙皇帝 세 분의 影幀을 봉안하려고, 先皇帝(高宗)는 갑자년(1864)에 登極하신 이후 官爵을 받은 사람에게 單子를 보내는 일[單金 1元50錢는 肇極殿 建立費用]로 來謁하여, 先生은 伯從祖父와 伯父 양대의 單子를 초해서 주셨다. ○ 午後에 李逌雨가 墓誌를 받아서 하직인사를 하고 갔다. ○ 在丞이 설사로 지쳐 누웠다. ○ 孫洛鉉과 孫柄鉉이 拜退하였다. ○ 在爀이 󰡔詩傳󰡕 第4卷을 배웠다.
◎ 4월 29일(계해) 맑음
直日은 河在丞. ○ 閔晶植이 拜退하였다. ○ 炳祺가 돌아왔다. ○ 先生이 星州 茶山의 西洛堂 會中에게 서찰을 보내셨다. 西洛書堂은 故 晩求 李先生의 杖屨所이다. 일찍이 堂長 圈薦이 왔지만 숨이 차고 기침이 심하여 직접 갈 수 없었기에 辭單을 보냈다.
◎ 4월 30일(갑자) 맑음
直日은 李炳祺. ○ 夙興은 炳悌. ○ 在丞이 설사로 며칠 누웠다가 오늘 조금 나았다. ○ 德谷의 孫兌錫[字 仲說, 乙巳生, 密城人]이 󰡔書傳󰡕을 배웠다. 2월 초에 와서 읽었고, 이달 13일에 歸覲하였다가 이제 돌아왔다. ○ 在爀이 網巾을 벗고 있었으니, 대개 網巾이 망가져서 修繕을 맡겼기 때문이다.

◎ 1927년 5월 초1일(을축) 맑음
直日은 孫兌錫. ○ 夙興은 炳悌. ○ 高靈의 崔國述이 오랫동안 孤雲先生의 遺文 2책을 수집해서 판각하고 泗南書庄에서 출간작업을 마쳤다. 頒秩한 것이 이미 지난가을인데 지금 또 다시 인쇄하여 세상에 널리 전하여고 이곳에다 刊役所를 차려 지금 거의 다 마쳐간다. 그라나 아직 실로 묶지 못하였기 때문에 諸生들이 반나절 힘을 합쳤다. ○ 정오에 先生은 頭痛으로 呻吟하셨다. ○ 台洞의 安珪遠이 來謁하였다. ○ 昌寧 游漁 漁村의 楊鍾仁이 來謁하여 그 曾王考 南皐公의 遺集을 보여주며 墓文을 청하였다. ○ 崔國述이 來謁하였으니 대개 󰡔孤雲集󰡕을 가지고 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 5월 2일(병인) 맑음
直日은 石炳悌. ○ 夙興은 在丞. ○ 楊鍾仁이 하직하고 물러갔다. ○ 先生의 頭痛이 평상으로 회복되셨다. ○ 丹亭丈은 午前에 諸生들과 책을 매는 것을 마쳤다. ○ 午後에 崔國述氏가 秣方으로 갔다가 왔다. ○ 昌寧 月未의 盧秉鍾氏가 德谷에서 來謁하였다. ○ 昌寧 菊洞의 盧邵容이 來謁하였다.
◎ 5월 3일(정묘) 맑음
直日은 盧在爀. ○ 夙興은 炳祺. ○ 盧秉鍾 氏와 盧邵容이 拜退하였다. ○ 察容이 大邱 智妙의 崔鍾達에게 답장을 보내면서 先生이 지으신 三樂亭[三樂亭은 鍾述 大人 在敎氏가 세운 것이다.] 記文을 부쳤다. ○ 崔國述이 冊子를 모두 보내고 하직인사를 한 다음 물러갔다. ○ 在丞이 頭痛으로 곤하여 누웠다. ○ 馬山 萬町의 李相玉이 先生께 서찰을 보냈다. ○ 高靈 茶山面 上谷의 李炳魯[字 樂三, 全義人]이 來謁하여 그 外祖 碧塢公[鳳喜]의 遺集 3卷의 교정과 墓碣을 청하였다. ○ 花洞의 孫台憲[字 台汝, 辛卯生, 安東人]氏가 來謁하여 그 王考[珍遠]와 先考[亮喜]의 行狀을 청하였다. ○ 先生이 李相玉에게 답장을 보내셨다. ○ 炳祺가 󰡔退溪先生文集󰡕을 第13卷을 베끼기를 마쳤는데, 한 글자의 획도 허투루 흘려 쓴 곳이 없었다. ○ 馬屹의 石在禎[字 □□, 庚子生, 忠州人]이 來謁하여 그 先祖 雲圃齋[雲圃는 그 10代祖 諱 汝信]의 重修記文을 청하였다. ○ 저녁에 諸生들이 각기 絶句 1首씩을 지었다.
◎ 5월 4일(무진) 흐림
直日은 李炳祺. ○ 夙興은 炳悌. ○ 아침에 가랑비가 왔다. ○ 李炳魯가 拜退하였다. 그 外祖 󰡔碧塢遺集󰡕을 지금 막 인쇄하려고 하는데, 오직 草本과 許可本의 許可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諸生들이 草하였다. ○ 午後에 孫台憲이 拜退하였다.
◎ 5월 5일(기사) 흐림
直日은 河在丞. ○ 夙興은 炳悌. ○ 石在禎이 拜退하였다. ○ 오늘은 端陽節이다. 벼루를 열어 시를 지었다. 題目 古詩 ‘자암에서 단오에 처음 시사를 만들다[紫巖端陽始設詩社]’. 嵬等은 直日. ○ 東萊의 鼎冠과 禮林里의 金琫珪가 來謁하여 그 10代祖 錦溪公의 墓碣銘을 청하고는 인하여 받아서 갔다. ○ 昌寧 大池 石制[一名龜尾]의 金在烈[安東人]과 그 族弟 在勳이 來謁하여 그 先祖 三世의 殉忠碑銘을 청하였다.[部將 諱傑, 아들 主簿 諱大壽, 손자 學生 諱厚生이다. 임진년(1592, 선조25)의 왜란을 당하여 部將이 子孫들을 데리고 晉州城의 軍陣으로 가서 누차 勝戰을 하였다. 계사년(1593, 선조26)에 왜적에 붙잡혀 매도하기를 그치지 않다가 殉死하였다. 主簿公은 남은 병력을 데리고 왜적을 추적하다가 殉死하였고, 學生公은 조부가 殉死하는 것을 보고는 구차하게 살고자 하지 않아 또 殉死하였는데, 지금까지도 오히려 榮恩을 받지 못하여 士林들이 偉蹟이 점차 湮沒되는 것을 애석해 하여 비용를 醵出하여 비석을 세웠다.]
◎ 5월 6일(경오) 흐리다 저녁에 가랑비
直日은 孫兌錫. ○ 夙興은 在燁. ○ 金在烈과 金在勳이 청했던 글을 받아서 하직인사를 하고 떠났다. ○ 諸生들이 함께 󰡔碧塢遺集󰡕 草本을 베꼈다. ○ 日課 題目 ‘中華民國時事古詩’. 嵬等은 炳祺.
◎ 5월 7일(신미) 흐림
直日은 石炳悌. ○ 先生이 大邱 漆溪의 崔希永에게 서찰을 부치셨다. ○ 美村의 金喪人 聲濟[碧塢의 손자이다.]가 碧塢公이 지은 名紙 2張을 가지고 와서 다른 글과 함께 인쇄할지 여부에 대해 문의하고는 곧 하직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 日課. 題目 ‘樗櫟歎古詩’. 嵬等은 炳祺. ○ 固城 巨流面 松山里의 許哲[字 子亨, 甲辰生, 陽川人]이 來謁하였다. ○ 竹西의 孫□□氏가 來訪하였다.
◎ 5월 8일(임신) 맑음
直日은 盧在爀. ○ 夙興은 炳悌. ○ 許哲이 그 王考 松澗[銓]公의 墓碣銘을 청하였다. ○ 固城 九萬面 華林里의 許洪[字 箕仲, 癸巳生, 哲의 三從兄이다.]이 來謁하여 그 王考 枕溪[鎭]公의 墓碣銘을 청하고, 또 松山 許坰[字 原珍, 丁酉生, 洪의 三從弟이다.]의 서찰을 전하며 坰의 王考 兩顧軒[鋌]公의 墓碣銘을 청하였다. ○ 孫□□氏가 하직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 先生은 哲이 청한 墓碣銘을 지으셨다. ○ 日課 題目 ‘이충무공 사당을 알묘하다[謁李忠武祠(古詩)]’. 嵬等은 炳祺, 哲도 또한 함께 지음. ○ 午後에 개 한 마리와 술 한 동이를 마련해서 마시며 즐겼으니, 대개 예기치 않은 開硯日이었기 때문이다. ○ 兌錫이 先生이 지으신 서찰과 제문 1책을 베꼈다. ○ 在丞은 󰡔雅頌󰡕을 배웠으며, 兌錫과 炳悌는 󰡔古文眞寶󰡕 前集을 前集을 배웠으며, 在爀은 杜詩를 배웠으며, 在燁은 󰡔古文眞寶󰡕 前集을 배웠다. ○ 先生은 전날 菊田의 李圭章이 청한 襄平公[鐵堅, 圭章의 先祖이다.]의 祠堂奉安文[祠堂은 菊田에 있다.]을 지으셨다. ○ 先生은 洪이 청한 墓碣銘을 지으셨다.
◎ 5월 9일(계유) 맑음
直日은 李炳祺. ○ 夙興은 兌錫. ○ 先生은 兩顧軒 墓碣銘을 찬하셨다. ○ 桐花田 孫參奉 永五가 來訪하였다가 午後에 하직하고 물러갔다. ○ 許洪과 許哲이 함께 契案에 가입하였다. 또 그 三從兄 坰[바로 兩顧軒의 손자이다.]의 이름도 契案에 썼다. 또 白苧 半疋과 白紙 9卷, 文魚 1軸, 銀貨 3元을 主丈家에 올렸다. 午後에 하직인사를 드리고 물러갔다. ○ 陜川 栗谷 林北의 李東燮이 先生께 올리는 서찰이 왔다. 지난해 先生이 그 6대조 明窩公의 行狀을 지어주었는데, 그중 누락된 곳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서찰을 보내 문의한 것이었다. ○ 西佳亭의 李元祺氏[字 達三, 碧珍人]이 來訪하여 󰡔眉叟先生年譜󰡕를 인쇄해서 여러 곳에 頒秩하기 위해서였다. ○ 日課 題目 ‘織染署[古詩]’. 嵬等은 兌錫. ○ 菊田의 李章圭가 來謁하였다. 일전에 先生이 그 先祖 襄平公의 祝文을 撰하였는데, 받들고 하직한 다음 돌아갔다. ○ 午後에 直日이 歸覲하였다.
◎ 5월 10일(갑술) 맑음
直日은 河在丞. ○ 夙興은 兌錫. ○ 桶巖의 安副尉 鳳洙가 來謁하여 그 世父 石荷의 遺稿를 전날 先生에게 校正을 청하였는데, 지금 또 附錄의 여러 글을 가지고 와서 校正해달라고 청하고 아울러 行狀도 지어줄 것을 청하고는 午後에 하직하고 돌아갔다. ○ 炳祺가 돌아왔다. ○ 李元祺 氏가 拜退하였다. ○ 菊田 李鶴圭가 來謁하였다. 장차 그 先祖 □□公의 奉安하려고 하야 奉安設饌圖를 받아서 돌아갔다. ○ 日課 題目 ‘題靑邱氏譜[古詩]’. 嵬等은 兌錫.
◎ 5월 11일(을해) 맑음
直日은 孫兌錫. ○ 夙興은 在丞. ○ 淸道 冷井의 李圭塽[字 景淑, 慶州人]이 來謁하여 그 先祖 襄平公의 奉安笏記를 받들고 하직한 다음 물러갔다. ○ 朴泰鎭이 來謁해서 臨海亭의 記文의 미진한 곳을 고쳐줄 것을 청하여 先生이 즉시 고쳐주셨다. ○ 金海 安仁의 許鉑은 本家에서 電報가 왔는데, 대개 그 王大人 參奉[烜]이 別世했기 때문이었다. 先生은 슬퍼하면서 哭을 하셨다. ○ 儉世의 朴樹鳳[字 □□, 密陽人]이 來謁하였다. ○ 承旨 朴永琪가 來訪하였다. ○ 日課 題目 ‘次柳龍城聞黃鸝詩[古詩]’. 嵬等은 炳祺.
◎ 5월 12일(병자) 맑음
直日은 石炳悌. ○ 夙興은 直日. ○ 菊田의 李圭章이 가마를 보내 先生을 청하였으니, 그 先祖 襄平公의 奉安日이 오늘이었기 때문이었다. 대개 여러 해 經營하여 이제 일을 마치고 잔치를 열어 손님을 청하니, 先生이 그 뜻에 따라 마침내 길을 나서시기로 하였다. 炳祺, 在丞, 兌錫, 炳悌가 陪從하고 朴永琪, 朴泰鎭, 朴樹鳳 諸氏가 함께 가서 襄平公의 사당에 謁廟하고 인하여 李鍾煥의 집에 定座하였는데, 모인 손님은 수백 명이었다. 午後에 先生은 돌아오시고, 諸生은 李鍾貴의 喪에 조문하고 인하여 돌아왔다. 朴永琪와 朴泰鎭이 돌아오는데 諸生들이 모시고 오다가 중도에 炳祺 在丞 兌錫은 陵洞을 거쳐서 돌아왔다.
◎ 5월 13일(정축) 맑음
直日은 盧在爀. ○ 夙興은 在丞. ○ 朴主事 泰鎭이 拜退하였다. ○ 新安의 崔耕山[耆述]公의 文集刊所의 都監薦圈이 왔다. 耕山은 바로 止軒 崔[孝述]公의 門人이고 子孫은 新安에 있다. ○ 午後에 承旨 朴永琪氏가 하직하고 물러갔다. ○ 日課 題目 ‘李襄平公不祧廟[四律]’. 嵬等은 炳祺. ○ 지난 11일의 ‘題目 次柳龍城聞黃鸝詩[古詩]’을 批考하였다. 嵬等은 炳祺.
◎ 5월 14일(무인) 맑음
直日은 李炳祺. ○ 夙興은 直日. ○ 先生이 禹在宗이 청한 「惺窩遺墟碑閣上樑文」과 石在楨[禎?]이 청한 「雲圃齋重修記」를 지으셨다. ○ 日課 題目 ‘竹笋[律詩]’. 嵬等은 直日.
◎ 5월 15일(기묘) 흐림
直日은 河在丞. ○ 夙興은 炳悌. ○ 金海 安仁의 許鉑 家에서 啓期를 보내왔다. 내달 7일인데, 그 王考 襄禮日이었다. 先生은 자제를 대신 보내 致祭하려고 祭文을 지으셨다. ○ 午前 에 가랑비가 내렸다. ○ 日課 題目 ‘題蘆山圖[律詩]’. 嵬等은 炳祺.
◎ 5월 16일(경진) 비
直日은 孫兌錫. ○ 夙興은 炳悌. ○ 先生이 金海 安仁의 許[玉]에게 서찰을 보내셨다. 또 挽會賢 許希仲에 대한 挽詩를 지으셨다. ○ 察容은 安仁으로 갔으니, 대개 許參奉[烜]의 襄禮가 내일이었기 때문에 先生이 대신 보내신 것이다. ○ 淸道 虎溪의 李東基[字 英叔, 固城人]이 來謁하였는데, 전년에 수업을 받은 사람으로, 곧 하직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 先生이 靈山 玄谷의 金昌顯[字 文卿, 安東人]의 墓碣銘을 지으셨다. ○ 日課 題目 ‘德山書院[古詩]’. 嵬等은 在爀. ○ 炳祺가 歸覲하였다.
◎ 5월 17일(신사) 흐림
直日은 石炳悌. ○ 夙興은 直日. ○ 先生이 日記를 批整하셨다. ○ 安仁의 許玉 家의 啓期였기에 紫巖書堂 僉中에게 연락이 왔다. ○ 日課 題目 ‘비를 바라다[望雨(四律)]. 嵬等은 孫兌錫.
◎ 5월 18일(임오) 맑음
直日은 盧在爀. ○ 夙興은 在丞. ○ 先生은 楊鍾仁이 청한 墓碣銘을 지으셨다. ○ 日課 題目 ‘오월의 농가[五月田家(四韻)]’. 嵬等은 在丞. ○ 先生이 楊鍾仁에게 서찰을 보내셨다. ○ 陽村의 李暢基가 來謁하였다. 지난해 봄에 歸覲하여 병을 앓아 누웠다가 금년 봄에야 비로소 일어났다.
◎ 5월 19일(계미) 맑음
直日은 河在丞. ○ 夙興은 炳悌. ○ 在丞은 本家에 서찰을 보냈다. ○ 漆谷 枝川面 新洞의 李周厚가 先生께 서찰을 보냈는데, 대개 그 族丈 東阿公의 行狀을 청하기 위해서였다. ○ 下西 馬屹의 石在禎이 先生께 서찰을 보내 그 先祖 雲圃齋의 記文을 청하였다. 그 先祖의 事蹟은 지난번 왔을 때 다 말씀드리지 못하였기 때문에 다시 서찰로 아뢴 것이었다. ○ 咸安郡 郡北面 東村里의 趙馥圭[字 泰五, 貫咸安], 同郡 舍村里의 趙仁奎[字 文瑞, 貫咸安], 昌原郡 昌原面 內洞의 甘濟鉉[字 聖福, 本貫 昌原]이 함께 趙錦溪의 遺稿을 가지고 와서 校正을 청하고 겸하여 그 墓碣을 청하였다. 馥奎가 시를 짓기를 “斯世斯文屬暮天 鱣堂惟闢紫巖邊 江路山程三百里 心香一瓣拜函前”라고 하였다. ○ 沙村의 孫台基[字 舜九, 安東人]가 來謁하였다. ○ 靑雲의 朴尙允이 來謁하여 昌寧 梨房 馬首의 盧正山[佑容]의 碑文을 청하였다. 正山의 光州盧氏로 孝行이 독실한 사람이었다. 士林이 비용을 醵出하여 비석을 세워 그 묘소에 표시를 하려고 한 것이다. 아울러 辛氏 婦人의 殉烈事蹟도 함께 가지고 왔는데, 辛氏는 바로 玄風 台峯 成耆悳氏의 맏며느리이다. 先生은 그 偉蹟을 칭송하여 일찍이 傳을 지었다. ○ 慶北 盈德郡 寧海面 元邱洞의 南孝九가 先生께 서찰을 보냈다. ○ 日課 題目 ‘기차[鐵輪(律詩)]’. 嵬等은 暢基. ○ 台基와 朴尙允이 함께 拜退하였다. ○ 全羅道 南平 鐵也의 鄭最源이 安東 酉谷에서 來訪하여 權相翊[字 贊叟, 安東人]이 先生께 부친 서찰을 전하였다. 서찰에는 󰡔朝鮮王朝實錄󰡕 중의 墨齋 盧先生의 遞職錄 1篇이 들어 있었다. ○ 丹亭의 李紹衡[字 公述, 驪州人]이 來謁하고 인하여 그 外叔 永川 弓橋 鄭道榮[字 □□, 延日人]이 先生께 부친 서찰을 올렸다. 대개 道榮은 전년 겨울에 來謁하여 그 先府公의 「龜龍亭記」를 청하려고 하다가, 마침 先生이 아프실 때를 만나 그렇지 못하였기 때문에 先生이 조금 나으시기를 기약하였다. 지어놓은 것이 이미 오래되었지만 미처 부치지 못하였는데, 이 서찰이 도중에 지체한 것이 네댓 달이나 되었다. 先生이 直日에게 명하여 베끼게 하고 또 서찰을 써서 우편으로 부치셨다. ○ 家伯[宇錫, 伯維]이 먼저 泗淵에 도착하여 炳祺와 함께 來謁하였다. ○ 日課 題目 ‘파리[蒼蠅]’. 嵬等은 直日. ○ 察容이 옻독 때문에 東萊 溫泉에서 목욕을 하고 돌아왔지만 일단은 낫지 않았다.
◎ 5월 21일(을유) 맑음
直日은 石炳悌. ○ 夙興은 直日. ○ 美村의 金喪人 聲濟가 전날 와서 그 王考 碧塢公의 文集 寫本에 대해 말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심부름꾼에게 돈 20원을 보냈다. ○ 安東郡 一直面 遠湖洞 金泰東氏[公震, 己巳], 同郡 同面 蘇湖洞 李駿求[字 君逸, 生戊寅, 小山先生의 6대손]이 來謁하여 權鶴林이 撰한 󰡔闡揮錄󰡕을 가져다주고, 또 小山 李先生의 龜川書院 上樑文을 청하였다. ○ 日課 題目 ‘호떡[胡餠(詩와 論)]’. 詩 嵬等은 兌錫, 論 嵬等은 在丞. ○ 孫宇錫과 炳祺가 拜退하였다. ○ 李暢基가 拜退하였다. ○ 鄭最源氏가 하직하고 물러갔다.
◎ 5월 22일(병술) 맑음
直日은 盧在爀. ○ 夙興은 在丞. ○ 權泰東과 李駿求가 拜退하였고, 󰡔闡揮錄󰡕은 베끼려다가 놓아두었는데, 내달 초순 안으로 보낼 계획이다. ○ 金海郡 金海面 會峴里 許重[字 原哉, 生□□]이 來謁하여 紅蔘 1斤을 先生께 올렸다. ○ 先生이 李周厚가 청한 李東阿[濟永]公의 行狀을 지었다. ○ 日課 題目 ‘木假山論’. 嵬等은 在爀.
◎ 5월 23일(정해) 맑음
直日은 河在丞. ○ 夙興은 炳悌. ○ 許重이 하직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 達城 解顔 漆溪의 崔□敎丈[字 子三]이 來訪하였다가 떠났다. ○ 漆溪 崔鍾奭丈[字 宣伯, 子三의 堂姪]과 新安의 崔雲聲[字 學文, 耕山의 아들이고 子三의 조카]이 來謁하여 耕山의 墓誌를 청하였다. ○ 金海 金谷의 盧國淵丈이 왔다. ○ 忠淸道 璉山 □□의 金宅洙가 來謁하였다. ○ 金海 主簿洞의 曺東淳이 來謁하였다가 곧 拜退하였다. ○ 日課 題目 ‘朱郎中傳]. 嵬等은 在丞.
◎ 5월 24일(무자) 비
直日은 孫兌錫. ○ 夙興은 在爀. ○ 盧國淵丈이 銑湖亭에 가셨다. ○ 崔鍾奭과 崔雲聲이 가랑비를 무릅쓰고 떠났다. 이윽고 金宅洙가 하직하고 물러났다. ○ 日課 題目 ‘梅花說’. 嵬等은 直日.
◎ 5월 25일(기축) 맑음
直日은 石炳悌. ○ 夙興은 兌錫. ○ 下南 金浦의 安廈鎭[字 士初]가 來謁하고 午後에 拜退하였다. ○ 日課 題目 ‘寫眞說’.
◎ 5월 26일(경인) 맑음
直日은 盧在爀. ○ 夙興은 直日. ○ 炳悌歸覲 直日往丹亭 ○ 安東一直龍角李庭晩[字鶴羽 固城人]來謁 ○ 機張內洞金濃洞[字允遠]來謁 ○ 盧丈國淵還 ○ 題口[詩] 嵬等兌錫
◎ 5월 27일(신묘) 맑음
直日은 河在丞. ○ 夙興은 直日. ○ 在爀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 日課 題目 ‘奢儉說]. 嵬等은 兌錫.
◎ 5월 28일(임진) 맑음
直日은 孫兌錫. ○ 夙興은 直日. ○ 金濃洞이 하직하고 물러가려는데, 先生이 말씀하시기를 “그 이름이 이상하니 禮東으로 지어주겠네. 대개 禮라는 글자는 元亨利貞과 仁義禮智의 禮이네.”라고 하셨다. 그 사람이 칠형제의 막내였기 때문이었다. 東이라는 글자는 그 音이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예, 예.”하면서 물러갔다. ○ 盧丈[國淵]이 하직하고 떠났다. 先生이 拜送하셨다. ○ 盧在爀이 돌아와서 지은 시 1편을 보여주었는데, 題目은 바로 ‘뜰의 풀을 뽑지 않는다.[庭草不除]’였다. ○ 日課 題目 ‘거성으로 돌아가는 김예동을 보내다[送金禮東歸車城(四韻)]’ 嵬等은 在丞.
◎ 5월 29일(계사) 맑음
直日은 盧在爀. ○ 夙興은 在丞. ○ 先生付書于李周厚、趙馥奎、仁奎、甘濟鉉三斯文及付前所請錦溪趙公墓碣銘 ○ 先生著夕荷安公行狀 ○ 先生付書于安鳳洙、廈鎭兩斯文 書中云 石荷行狀 猝猝構出 謹呈草本而求敎 乞勿以一日云長而恕之 期无他日之悔而整之 如何 輓祭決非拙眼所取捨 諒之如何 ○ 高靈李炳魯有書于先生 ○ 題伐盧在爀上外舅 書嵬等兌錫 絶句嵬等在爀 ○ 咸安郡法守面篁沙里李永基[字子彦 戊寅生 星山人]來謁 請同里李鉉淑[字庠三 載寧人]先考雲樊公墓碣銘 鉉淑有書于先生 󰡔󰡕 「」ㆍ永基有詩曰 幾年勞仰紫巖堂 今日登臨拜瓣香 收拾群英扶正脈 凝東草木庶彌光

◎ 1927년 6월 초1일(갑오) 흐림
直日은 河在丞. ○ 夙興은 直日. ○ 炳祺가 돌아왔다. ○ 李永基가 拜退하였다. ○ 日課 題目‘동아일보에 쓰다[題東亞日報(律)]’. 嵬等은 炳祺. ○ 定容이 邑內에 갔다.
◎ 6월 초2일(을미) 비
直日은 孫兌錫. ○ 夙興은 在爀. ○ 日課 題目 ‘6월 2일 비가 왔는데 지난 3월에 비가 온 것에서 무릇 72일만이다[六月二日雨距三月雨凡七十二日(四韻)]’. 嵬等은 炳祺.
◎ 6월 초3일(병신) 비
直日은 盧在爀. ○ 夙興은 直日. ○ 在丞은 歸覲하였다. ○ 叔父가 돌아와서 蓮桂所에 머무는 安鳳洙가 先生께 올리는 서찰을 가지고 왔다. ○ 日課 題目 ‘창녕의 모전으로 귀근하는 하자상을 보내다[送河子相歸覲夏山之茅田]’. 嵬等은 炳祺.
◎ 6월 초4일(정유) 흐림
直日은 李炳祺. ○ 夙興은 在爀. ○ 先生이 耕山 崔公의 墓誌銘을 撰하셨다. 이제 󰡔耕山集󰡕을 간행하려고 해서 전에 청하였기 때문이다. ○ 日課 題目 ‘잣나무를 심다[種栢(律詩)]’. 嵬等은 兌錫.
◎ 6월 초5일(무술) 맑음
直日은 孫兌錫. ○ 夙興은 直日. ○ 日課 題目 ‘점필재 선생의 묘소에 참배하다[拜畢齋先生墓(律詩)]’. 嵬等은 炳祺. ○ 諸生들이 赤灘에 목욕하러 갔다. 들에서 察容을 만나 함께 갔다가 곧이어 약간 추워서 곧바로 돌아왔는데 몇 시진 아파서 신음하였다.
◎ 6월 초6일(기해) 흐림
直日은 盧在爀. ○ 夙興은 兌錫. ○ 先生이 崔希永과 楊鍾仁에게 서찰을 부치셨다. ○ 昌寧 會溪의 成耆悳이 先生께 서찰을 보냈다. ○ 華洞 孫基丙[字 元建, 丙申生]과 花溪 安在洙[字 伯卿, 庚子生]가 來謁하였다. ○ 日課 題目 ‘迂拙齋朴先生閭表碑[律詩]’. 嵬等은 炳祺. ○ 저녁에 손님과 함께 각기 律詩 1首씩을 지었다. 嵬等은 在洙였다. ○ 午後에 큰비가 내렸다.
◎ 6월 초7일(경자) 비
直日은 李炳祺. ○ 夙興은 在爀. ○ 題是日無題 與客共賦一律 嵬等在洙 ○ 午後 乍晴 在洙拜退 ○ 夕大雨
◎ 6월 초8일(신축) 흐리고 비
直日은 孫兌錫. ○ 夙興은 炳祺. ○ 孫基丙이 先生께 청한 그 曾王考와 王考 양대의 行狀을 공손히 받고서 절하고 물러갔다. ○ 先生이 權相翊에게 서찰을 부치셨다. ○ 日課 題目 ‘秧歌[古詩]’. 嵬等은 直日.
◎ 6월 초9일(임인) 흐리고 비
直日은 李在爀. ○ 夙興은 兌錫. ○ 下西 雲汀 柳基秀 집에서 訃告가 도착하였다. 그 再從弟 泳秀의 夫人이 초2일에 別世했다고 한다. ○ 達城郡 解顔面 枝底의 李逌雨가 先生께 上書하였다. 또 紫巖書堂 詩 原韻에 次韻한 작품을 보냈다. 그 시에 “營室降精台峀東 巖堂高闢紫輝通 曾書講座承前訣 吕約崇楣警下風 白晝爐燻開卷坐 紅塵路斷誓雲同 □斯更欲菁莪賦 閱歲榮華雨露中”라고 하였다. ○ 先生이 지금 󰡔闡揮錄󰡕을 抄하시고 계셨는데, 諸生들이 그 顚末을 묻자, 先生이 莊獻世子의 事實로써 답하시고 눈물을 글썽이셨다. ○ 日課 題目 ‘닭[鷄(絶句 3首)]’. 嵬等은 兌錫. ○ 兌錫은 手容이 不恭하였다.
◎ 6월 초10일(계묘) 비
直日은 李炳祺. ○ 夙興은 在爀. ○ 統營 道山面 德村의 河成洛[字 禹範, 晉陽人]이 角山에서 來謁하였다. 晦堂의 祥朞가 지난 7일이었기 때문에 가서 靈筵에 곡하였다고 하고, 또 말하기를 “여러 해 선생께 問候를 드리지 못했기 때문에 지나는 길에 잠시 들렸습니다.”라고 하였다. ○ 日課 題目 ‘移山[律詩]’. 嵬等은 炳祺.
◎ 6월 11일(갑진) 비
直日은 孫兌錫. ○ 夙興은 炳祺. ○ 日課 題目 ‘新武陵行[古詩]’. 嵬等은 炳祺.
◎ 6월 12일(을사) 비
直日은 盧在爀. ○ 夙興은 炳祺. ○ 잠깐 개다. ○ 河成洛이 拜退하였는데 泗水의 여러 시냇물이 몹시 불었기 때문에 荏田嶺을 넘어서 갔다. ○ 諸生들이 󰡔碧塢遺稿󰡕를 베끼는 일을 마쳤다. ○ 이날 諸生들이 󰡔闡揮錄󰡕을 베끼기 시작하였다.
◎ 6월 13일(병오) 흐림
直日은 李炳祺. ○ 夙興은 兌錫. ○ 兌錫이 歸覲하였다. 어제 陵洞의 李斗衡과 서로 약속을 하였기 때문에 오늘 아침 기별이 와서 함께 간 것이다. ○ 漆谷 上枝의 李周厚가 先生께 上書하고 겸하여 先生이 撰하신 東阿公의 行狀도 아울러 부쳤는데, 그중에 누락되고 오류가 난 곳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고쳐 써주기를 청하였다. ○ 永川 臨皐面 仙源의 鄭淵壹가 先生께 올리 서찰이 도착하였다. 昌原의 承旨 朴永琪 氏가 지금 󰡔嶺誌󰡕를 간행하려고 하는데 서책을 출간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달에 先生이 서찰을 보내 청하였다. 처음에는 지난달 20일로 날짜를 잡았지만 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다시 이달 20일로 날짜를 물려서 잡았다. ○ 全北 南原郡 山東面 木洞의 廉致洙[字 敬學, 坡州人]이 來謁하여 전날 수집한 󰡔東賢號錄󰡕을 교정해줄 것을 청하였는데, 지금 간행하려 한다고 한다.
◎ 6월 14일(정미) 비
直日은 盧在爀. ○ 夙興은 直日. ○ 昌原 內洞의 甘濟鉉이 先生께 올린 서찰이 왔다. ○ 諸生들이 󰡔闡揮錄󰡕을 베꼈다. ○ 先生이 漆谷의 李周厚에게 답장을 하시고 東阿公의 行狀 중 누락되고 잘못된 곳을 고쳐서 부치셨다
◎ 6월 15일(무신) 비
直日은 李炳祺. ○ 夙興은 在燁. ○ 諸生들이 󰡔闡揮錄󰡕을 베끼고 있었기 때문에 며칠 동안 日課를 정지하고 있었다. 어제 다 베끼고 오늘 日課를 열었다. 題目 ‘당포에서 술을 마시다.[飮酒唐浦(律)]’.
◎ 6월 16일(기유) 흐림
直日은 盧在爀. ○ 夙興은 直日. ○ 廉致洙가 󰡔東賢號錄󰡕을 받아서 하직하고 떠났다. ○ 日課 題目 ‘영남루에 올라[登嶺南樓(律詩)]’.
◎ 6월 17일(경술) 맑음
直日은 李炳祺. ○ 夙興은 在爀. ○ 丹亭의 李鍾燁이 來謁하였다가 곧바로 물러갔다. ○ 日課 題目 ‘태화루에 올라 시판의 시에 차운하다[登太和樓次板上韻(律詩)]’.
◎ 6월 18일(신해) 맑음
直日은 盧在爀. ○ 夙興은 炳祺. ○ 日課 題目 ‘삼랑정에서 시판의 시에 차운하다[三浪玉友亭次板上韻(律詩)]’. ○ 炳祺가 歸覲하였는데, 바로 그 大人의 生辰이 내일 아침이었기 때문이다.
◎ 6월 19일(임자) 맑음
直日은 盧在爀. ○ 先生이 新安 崔雲聲에게 서찰을 쓰시고 전날 부탁한 墓誌를 부치셨다. ○ 先生이 馬屹 石在禎에게 서찰을 쓰시고 전날 부탁한 「雲圃齋記」를 부치셨다. ○ 炳祺의 집에서 饌品 몇 종을 보냈다.
◎ 6월 20일(계축) 맑음
家容 氏가 邑內에 갔다. ○ 金海郡 生林面 金谷里에서 訃告가 왔는데, 바로 先生의 葛田 從叔母가 이달 16일에 別世했다고 한다. ○ 來進의 李斗杓[字 建夫]가 來謁하였다. ○ 先生이 碧塢 金公의 行狀을 지으셨다.
◎ 6월 21일(갑인) 맑음
諸生이 斗杓와 목욕하러 갔다가 돌아왔다.
◎ 6월 22일(을묘) 맑음
李斗杓가 왔다가 물러갔다. ○ 先生이 高靈 李炳魯에게 서찰을 보내셨다. ○ 達城郡 漆溪의 崔希永가 先生에게 올리는 서찰이 왔다. ○ 先生이 丹亭의 進士 許埰에게 서찰을 보내셨다. ○ 九田 禹在宗이 先生께 보내는 서찰이 왔다. ○ 昌寧 桂八의 金熙琫 大夫人이 이달 27일에 別世하셨다는 訃告가 왔다. ○ 安仁의 孫洛鉉이 先生에게 서찰을 올렸다. ○ 永川 臨皐面 仙源里의 鄭淵壹가 來謁하였다. ○ 珠山亭에서 심부름꾼을 보내 諸生들의 오늘 日課 題目 ‘馬肝’으로 지은 8首를 올려서 批整을 청하고 돌아갔다.
◎ 6월 23일(병진) 흐림
金浦의 安廈鎭이 蓮桂所에서 찾아와 뵙고는 石荷 安公 行狀의 오류가 난 곳을 고쳐주기를 청하고, 午後에 받아서 하직하고 물러갔다.
◎ 6월 24일(정사) 맑음
鄭淵壹가 󰡔大嶺誌󰡕 刊本을 베꼈다. ○ 達城郡 瑜珈面 佳泰里의 郭東鎬 大人이 이달 14일에 別世했다는 訃告가 왔다. ○ 漆谷郡 枝川面 上枝里의 李大榮의 答慰狀이 왔다.
◎ 6월 25일(무오) 맑음
家容 氏가 邑에서 돌아왔다.
◎ 6월 26일(기미) 맑음
在爀과 在燁이 함께 珠山亭에 갔다. ○ 德谷의 孫兌錫이 來謁하고 인하여 珠山亭에 갔다.
◎ 6월 27일(경신) 맑음
昌原의 承旨 朴永琪가 來謁하였다.
◎ 6월 28일(신유) 맑음
朴永琪 氏가 拜退하였다. ○ 泗淵의 李炳祺가 來謁하였다. ○ 尙州 愚川의 柳道慤 氏가 來訪하였다.
◎ 6월 29일(임술) 맑음
李炳祺가 拜退하였다. ○ 在爀이 설사병 때문에 돌아왔다. ○ 소나기.
◎ 6월 30일(계해) 흐림
武陵의 李弼寔 氏가 來訪하였다. ○ 柳道慤 氏와 李弼寔 氏가 하직하고 물러갔다.

◎ 1927년 7월 초1일(갑자) 맑음
◎ 7월 초2일(을축) 맑음
金海 金谷의 大訥丈이 還駕하시는데 右容이 모시고 왔다. ○ 孫兌錫이 돌아왔다. ○ 金谷[이하 缺落]
◎ 7월 초3일(병인) 맑음
先生은 本生妣 諱辰이 오늘이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셔서 세수하고 머리를 빗고 風雷亭에 가셨다. ○ 李炳祺가 돌아왔다. ○ 諸生들이 風雷亭에 가서 大訥丈를 뵙고 인하여 물러났다. ○ 金谷의 安鍾達이 來謁하였다. ○ 先生은 風雷亭에서 주무셨다. ○ 炳祺가 말하기를 “愚川의 柳道慤 氏가 어제 밤 설사병으로 鏡湖亭에서 돌아가셨다.”라고 하였다.
◎ 7월 초4일(정묘) 흐림
乙鉉이 제사음식을 諸生들에게 먹게 해주었다. ○ 先生은 本生曾祖妣 諱辰이 오늘이기 때문에 그대로 風雷亭에 머물고 계셨다.
◎ 7월 초5일(무진) 흐림
直日은 李炳祺. ○ 夙興은 在爀. ○ 大訥丈이 金海 金谷으로 출발하심에 右容이 모시고 갔고, 安鍾達도 함께 떠났다. ○ 泗淵의 李炳坤[直日의 從兄] 氏가 來謁하고 곧 떠났다. ○ 星州 沙月의 金昌甲이 先生에게 올리는 서찰이 왔다. ○ 丹溪 朴正善이 楡林驛을 지나면서 先生께 서찰을 보냈다. ○ 日課 題目 ‘紫薇花[律詩 3首]’. 嵬等은 炳祺. ○ 저녁에 가랑비.
◎ 7월 초6일(기사) 흐림
直日은 孫兌錫. ○ 夙興은 在爀. ○ 日課 題目 ‘讀家禮說’. 諸生이 모두 󰡔家禮󰡕를 읽었다.
◎ 7월 초7일(경오) 비
直日은 盧在爀. ○ 夙興은 炳祺. ○ 日課 題目 ‘冠禮論’. 在爀은 草瘧 때문에 결석하였다.
◎ 7월 초8일(신미) 흐림
直日은 李炳祺. ○ 夙興은 兌錫. ○ 日課 題目 ‘昏禮論’. ○ 炳祺가 歸覲하였다. ○ 定容이 제사음식을 諸生들에게 먹게 하였다. ○ 昌原의 承旨 朴永琪 氏가 來訪하였다.
◎ 7월 초9일(임신) 맑음
直日은 孫兌錫. ○ 夙興은 直日. ○ 日課 題目 ‘喪禮論’. ○ 在燁과 鍤浦의 申晟圭가 珠山亭에서 와서 알현하였다. ○ 가랑비. ○ 朴永祺 氏가 떠났다. ○ 在爀이 병으로 누웠다.
◎ 7월 초10일(계유) 맑음
直日은 盧在爀. ○ 日課 題目 ‘祭禮論’. ○ 在燁과 晟圭가 珠山亭으로 갔다.
◎ 7월 11일(갑술) 맑음
直日은 孫兌錫. ○ 直日이 歸覲하였다. ○ 蔚山郡 下北面 弓根丁里 鄭槽朝가 5월 12일에 別世했다는 訃告가 왔다.
◎ 7월 12일(을해) 비
밤에 큰비가 와서 시냇물이 몹시 불었다.
◎ 7월 13일(병자) 흐림
先生이 東萊의 溫泉으로 출발하시고 하였지만, 泗水의 여러 시냇물 몹시 불어나서 왕래하는 길이 통하지 않아 중지하였다.
◎ 7월 14일(정축) 맑음
6) 석문:
[丁卯四月]
◎ 丁卯四月二十五日己未 晴
直日李炳祺
夙興在丞
李炳祺受論語 三月初六日來讀
河在丞受小學 今月二十二日來讀[字子相 甲辰生 晉陽人 居昌寧大合面茅田里]
石炳悌受書傳 三月二十一日[是日卽講會也]來讀[字景友 庚戌生 忠州人 居昌寧梨房面草谷 去年亦來讀于泗南書庄]
盧在爀[字而發 壬子生]受詩傳
盧在燁[在爀從弟]受論語, 盧祉容受千字[居本里 先生三從姪 去冬始讀]
盧重漢[字□□ 豐川人 居咸陽介坪 玉溪先生禛后也]拜退 昨日來謁 請其先祖雲皐公墓碣文 蓋曾有碣文 而字刓不見 故更竪新碣 先生撰而與之
先生閱書籍 使炳祺、在爀 更整秩次 使勿錯亂
丹亭李鍾燁[字吉三 慶州人]來謁言 難給兒子學費 故以所制丸藥、膏藥及人蔘半封 遍請諸家以及主家 要若干金而拜退

◎ 二十六日庚申 晴
直日河在丞
夙興炳悌
主家使奴僕用石灰 修築堂前小井 去歲巖堂重建時 改築庭除 堀地得此泉 淸洌有味
活川李述九[字善夫]、竹東孫泳秀[字孟涵]來謁 午後拜退
慶州朴主事泰鎭 抵書于先生曰 本郡主倅 莅政八載 悶暑月止宿 建一亭於臨海殿舊址之傍 扁以臨海亭 前月請記及韻于先生 先生著而付之 記中有誤字及難曉處 故更質也
昌原裵主事炳元有書于先生

◎ 二十七日辛酉 晴
直日石炳悌
夙興在爀
佳仁朴正熙[字淳夫 密陽人]來謁 眼盲已久 纔入門 先生使在爀導之 當階曰階 升堂曰某在斯 臨飯曰某饌某蔬
大邱枝底李逌雨[字雲伯 慶州人]來謁 袖致其大人[鍾浩]及漆溪崔丈鍾應書 請其王考耕叟公[圭執○止軒崔孝述門人]墓誌
淸道面九奇里禹在宗[字漢汝 乙亥生 丹陽人]來謁 請其四從祖惺窩公[秉鍾]遺墟碑閣[在昌寧桂八]上樑文
炳祺家有客來 送使炳祺 因乘暮去

◎ 二十八日壬戌 晴
直日盧在爀
夙興炳悌
在爀早起而復臥
朴正熙拜退
先生答書于慶州朴泰鎭、昌原裵炳九
禹在宗拜退
巴西閔晶植來謁 質問先生前日作三江儒契序文難曉之處[昔三浪津有書院 享其先祖諱九齡晜季五先生 揭之以三江 先皇帝戊辰毁 子孫以五友亭移築于其址 去歲州之僉公遂醵金設契 曰三江儒契]
安仁孫洛鉉[字□□ 密陽人]、新安孫柄鉉 以肇極殿奉我太祖及先皇帝及隆熙三聖影幀 而先皇帝甲子登極以後有官爵者授單[單金一元五十錢 爲建殿之費]事來謁 伯從祖父及伯父兩代單子鈔呈
午後 李逌雨受墓誌而拜退
在丞泄利困臥
孫洛鉉、孫柄鉉拜退
在爀受詩傳四卷

◎ 二十九日癸亥 晴
直日河在丞
閔晶植拜退
炳祺還
先生有書于星州茶山西洛堂會中 西洛 故晩求李先生杖屨之所也 曾有堂長圈薦 喘嗽不能躬造 送辭單

◎ 三十日甲子 晴
直日李炳祺
夙興炳悌
在丞以泄利 數日委臥 是日少瘳
德谷孫兌錫[字仲說 乙巳生 密城人]受書傳 二月初來讀 以今月十三日歸覲 至是還
在爀終日脫網 蓋破網修繕故也

[丁卯五月]
◎ 五月初一日乙丑 晴
直日孫兌錫
夙興炳悌
高靈崔國述 積年蒐輯孤雲先生遺文二冊而付剞劂氏 訖役于泗南書庄 頒秩者已去年秋 而今又再印 欲廣諸世 設役于此 今幾至畢 而但未結絲 故諸生同力半日
午間 先生頭痛呻囈
台洞安珪遠來謁
昌寧游漁漁村楊鍾仁來謁 而示其曾王考南皐公遺集 因請墓文
崔國述來謁 蓋欲輸去孤雲集故也

◎ 二日丙寅 晴
直日石炳悌
夙興在丞
楊鍾仁辭退
先生頭痛復常
丹亭丈午前 與諸生結冊而畢之
午後 與崔國述氏往秣方而還
昌寧月未盧秉鍾氏 自德谷來謁
昌寧菊洞盧邵容來謁

◎ 三日丁卯 晴
直日盧在爀
夙興炳祺
盧秉鍾氏、盧邵容拜退
察容答書于大邱智妙崔鍾達 付先生所著三樂亭[三樂亭 鍾述大人在敎氏所築也]記文
崔國述盡輸冊子而拜退
在丞以頭痛困臥
馬山萬町李相玉有書于先生
高靈茶山面上谷李炳魯[字樂三 全義人]來謁 請其外祖碧塢公[鳳喜]遺集三卷勘校及墓碣
花洞孫台憲[字台汝 辛卯生 安東人]氏來謁 因請其王考[珍遠]考[亮喜]行狀
先生答書于李相玉
炳祺鈔退溪先生文集第十三卷而畢 無一字放畫處
馬屹石在禎[字□□ 庚子生 忠州人]來謁 請其先祖雲圃齋[雲圃 其十代祖諱汝信]重修記文
夕 諸生各賦一絶

◎ 四日戊辰 陰
直日李炳祺
夙興炳悌
朝細雨
李炳魯拜退 其外祖碧塢遺集方欲登梓 而惟草本及許可本未許可 故屬諸生以草
午後 孫台憲拜退

◎ 五日己巳 陰
直日河在丞
夙興炳悌
石在禎拜退
是日端陽節 開硯作詩 題古詩紫巖端陽始設詩社 嵬等直日
東萊鼎冠、禮林里金琫珪來謁 請其十代祖錦溪公墓碣銘 因受而退
昌寧大池石制[一名龜尾]金在烈[安東人]及其族弟在勳來謁 請其先祖三世殉忠[一曰部將諱傑、子主簿諱大壽、孫學生諱厚生 丁壬辰 部將率子若孫 適晉陽陣 屢獲捷 癸巳被執 罵不絶口而殉 主簿率殘兵追賊亦殉 學生見祖父殉死 不欲苟生亦殉 于今猶未榮恩 士林悼偉蹟漸湮 醵金竪石]碑銘

◎ 六日庚午 陰夕細雨
直日孫兌錫
夙興在燁
金在烈及金在勳受其所請文而拜退
諸生共抄碧塢遺集草本
題中華民國時事古詩 嵬等炳祺

◎ 七日辛未 陰
直日石炳悌
先生付書于大邱漆溪崔希永
美村金喪人聲濟[碧塢之孫也] 以碧塢公所著名紙二張而來 問其與他文共登梓可否 俄而拜退
題樗櫟歎古詩 嵬等炳祺
固城巨流面松山里許哲[字子亨 甲辰生 陽川人]來謁
竹西孫□□氏來訪

◎ 八日壬申 晴
直日盧在爀
夙興炳悌
許哲請其王考松澗[銓]公墓碣銘
固城九萬面華林里許洪[字箕仲 癸巳生 哲之三從兄也]來謁 請其王考枕溪[鎭]公墓碣銘 又袖致松山許坰[字原珍 丁酉生 洪之三從弟也]書 請坰王考兩顧軒[鋌]公墓碣銘
孫□□氏辭退
先生作哲之所請墓碣銘
題謁李忠武祠[古詩] 嵬等炳祺 哲亦同賦
午後 備犬一隻、酒一樽而飮樂 蓋以不備開硯日之故也
兌錫抄先生所著書及祭文一冊
在丞受雅頌 兌錫、炳悌受古文前集 在爀受杜詩 在燁受古文前集
先生作前日菊田李圭章所請襄平公[鐵堅 圭章先祖也]祠堂奉安文[祠堂在菊田]
先生作洪所請墓碣銘

◎ 九日癸酉 晴
直日李炳祺
夙興兌錫
先生撰兩顧軒墓碣銘
桐花田孫參奉永五來訪 午後辭退
許洪、許哲同入契案 又以其三從兄坰名書契案[乃兩顧軒之孫也] 又以白苧半疋及白紙九卷、文魚一軸、銀貨三元呈于主家 午後拜退
陜川栗谷林北李東燮 上先生書來到 去年先生撰其六世祖明窩公行狀 其中有漏言處 故更以書稟之
西佳亭李元祺氏[字達三 碧珍人]來訪 欲印眉叟先生年譜以頒諸處
題織染署[古詩] 嵬等兌錫
菊田李章圭來謁 日前先生爲其先祖襄平公撰祝文 仍奉而拜退
午後 直日歸覲

◎ 十日甲戌 晴
直日河在丞
夙興兌錫
桶巖安副尉鳳洙來謁 其世父石荷有遺稿 前日請校正于先生 今又持附錄諸文而校正 兼請狀文 午後拜退
炳祺還
李元祺氏拜退
菊田李鶴圭來謁 將奉安其先祖□□公 抄奉安設饌圖而退
題題靑邱氏譜[古詩] 嵬等兌錫

◎ 十一日乙亥 晴
直日孫兌錫
夙興在丞
淸道冷井李圭塽[字景淑 慶州人]來謁 奉其先祖襄平公 奉安笏記而拜退
朴泰鎭來謁 請改臨海亭記文未盡處 先生卽改之
金海安仁許鉑 致電書于本家 蓋其王大人參奉[烜]別世也 先生悲而哭之
儉世朴樹鳳[字□□ 密陽人]來謁
朴承宣永琪來訪
題次柳龍城聞黃鸝詩[古詩] 嵬等炳祺

◎ 十二日丙子 晴
直日石炳悌
夙興直日
菊田李圭章 以轎子請先生 其先祖襄平公奉安在是日 蓋積歲經營 今已功訖 設宴請客 先生從其意 遂啓駕 炳祺、在丞、兌錫、炳悌陪從之 朴永琪、朴泰鎭、朴樹鳳諸氏同往 謁襄平公廟 因定座于李鍾煥家 會客數百餘人 午後 先生反 諸生唁李鍾貴喪因返駕 朴永琪、朴泰鎭反 諸生陪來 中路炳祺、在丞、兌錫 歷陵洞而還

◎ 十三日丁丑 晴
直日盧在爀
夙興在丞
朴主事泰鎭拜退
新安崔耕山[耆述]公文集刊所都監薦圈來 耕山乃止軒崔[孝述]公門人 子孫在新安
午後 朴承宣永琪氏辭退
題李襄平公不祧廟[四律] 嵬等炳祺
批考十一日題次柳龍城聞黃鸝詩[古詩] 嵬等炳祺

◎ 十四日戊寅 晴
直日李炳祺
夙興直日
先生撰禹在宗所請惺窩遺墟碑閣上樑文及石在楨[禎?]所請雲圃齋重修記
題竹笋[律] 嵬等直日

◎ 十五日己卯 陰
直日河在丞
夙興炳悌
金海安仁許鉑家 送啓期來 來七日 其王考襄日也 先生將欲替送子弟致祭 作祭文
午前 少雨 題題蘆山圖[律] 嵬等炳祺

◎ 十六日庚辰 雨
直日孫兌錫
夙興炳悌
先生修書于金海安仁許[玉] 又著挽會賢許希仲之詩
察容作安仁行 蓋許參奉[烜]襄禮在明日 故先生替送焉
淸道虎溪李東基[字英叔 固城人]來謁 前年受業人也 仍拜退
先生作靈山玄谷金昌顯[字文卿 安東人]墓碣銘
題德山書院[古詩] 嵬等在爀
炳祺歸覲

◎ 十七日辛巳 陰
直日石炳悌
夙興直日
先生批整日記
安仁許玉家啓期 來到紫巖僉中
題望雨[四律] 嵬等孫兌錫

◎ 十八日壬午 晴
直日盧在爀
夙興在丞
先生作楊鍾仁所請墓碣銘
題五月田家[四韻] 嵬等在丞
先生有書于楊鍾仁
陽村李暢基來謁 去年春歸覲 因以病臥 今春始起

◎ 十九日癸未 晴
直日河在丞
夙興炳悌
在丞付書本第
漆谷枝川面新洞李周厚有書于先生 蓋請其族丈東阿行狀
下西馬屹石在禎有書于先生前 有請其先祖雲圃齋記 而其先祖事蹟 前來有未盡白 故更以書白
咸安郡郡北面東村里趙馥圭[字泰五 貫咸安]、同郡舍村里趙仁奎[字文瑞 貫咸安]、昌原郡昌原面內洞甘濟鉉[字聖福 本昌原] 幷持趙錦溪遺稿請校正 兼請其墓碣 馥奎有詩曰
斯世斯文屬暮天 鱣堂惟闢紫巖邊
江路山程三百里 心香一瓣拜函前
沙村孫台基[字舜九 安東人]來謁
靑雲朴尙允來謁 請昌寧梨房馬首盧正山[佑容]碑文 正山光州盧氏 有孝行篤古人也 士林醵金竪石 以表其墓 兼持辛氏婦人殉烈事蹟 辛氏乃玄風台峯成耆悳氏長婦也 先生稱美其偉蹟 曾有傳
慶北盈德郡寧海面元邱洞有南孝九有書于先生
題鐵輪[律] 嵬等暢基
台基、朴尙允幷拜退
全羅南平鐵也鄭最源 自安東酉谷來訪 呈權相翊[字贊叟 安東人]付先生書 書中有抄國朝實錄中墨齋盧先生遞職錄一篇
丹亭李紹衡[字公述 驪州人]來謁 因呈其外叔永川弓橋鄭道榮[字□□ 延日人]付先生書 蓋道榮前年冬來謁 欲請其先府公龜龍亭記 適値先生疾病時未果 故先生以小瘳爲期 作置者已久 而未暇付送 以此有書 而滯在中路者 四五月矣 先生命直日寫之 且修書而付郵
家伯[宇錫 伯維]先到泗淵 與炳祺來謁
題蒼蠅 嵬等直日
察容以漆毒 沐東萊溫泉還 姑未快

◎ 二十一日乙酉 晴
直日石炳悌
夙興直日
美村金喪人聲濟 嚮日來設[說?]其王考碧塢公文集寫本而歸家 以使者送紙貨貳拾元
安東郡一直面遠湖洞金泰東氏[公震 己巳]、同郡同面蘇湖洞李駿求[字君逸 生戊寅 小山先生六代孫]來謁 袖致權鶴林所撰闡揮錄 又請小山李先生龜川書院上樑文
題胡餠[詩、論] 詩嵬等兌錫 論嵬等在丞
孫宇錫與炳祺拜退
李暢基拜退
鄭最源氏辭退

◎ 二十二日丙戌 晴
直日盧在爀
夙興在丞
權泰東、李駿求拜退 而闡揮錄欲鈔而置之 來月初旬內送之計
金海郡金海面會峴里許重[字原哉 生□□]來謁 以紅蔘一斤呈于先生
先生著李周厚所請李東阿[濟永]公行狀
題木假山論 嵬等在爀

◎ 二十三日丁亥 晴
直日河在丞
夙興炳悌
許重拜退
達城解顔漆溪崔丈□敎[字子三]來訪仍退
漆溪崔丈鍾奭[字宣伯 子三堂姪]、新安崔雲聲[字學文 耕山之子、子三之族]來謁 請耕山墓誌
金海金谷盧丈國淵來
忠淸道璉山□□金宅洙來謁
金海主簿洞曺東淳來謁 仍拜退
題朱郎中傳 嵬等在丞

◎ 二十四日戊子 雨
直日孫兌錫
夙興在爀
盧丈國淵往銑湖亭
崔鍾奭、崔雲聲冒細雨而退 旣而金宅洙辭退
題梅花說 嵬等直日

◎ 二十五日己丑 晴
直日石炳悌
夙興兌錫
下南金浦安廈鎭[字士初]來謁 而午後拜退
題寫眞說

◎ 二十六日庚寅 晴
直日盧在爀
夙興直日
炳悌歸覲 直日往丹亭
安東一直龍角李庭晩[字鶴羽 固城人]來謁
機張內洞金濃洞[字允遠]來謁
盧丈國淵還
題口[詩] 嵬等兌錫

◎ 二十七日辛卯 晴
直日河在丞
夙興直日
在爀未還
題奢儉說 嵬等兌錫

◎ 二十八日壬辰 晴
直日孫兌錫
夙興直日
金濃洞將拜退 先生謂其名怪異 命之以禮東 蓋禮字元亨利貞仁義禮智之禮也 其人七兄弟之末故也 東字取其同音也 唯唯而退
盧丈[國淵]辭去 先生拜送之
盧在爀還 仍示所著詩一篇 題乃庭草不除也
題送金禮東歸車城[四韻] 嵬等在丞

◎ 二十九日癸巳 晴
直日盧在爀
夙興在丞
先生付書于李周厚、趙馥奎、仁奎、甘濟鉉三斯文及付前所請錦溪趙公墓碣銘
先生著夕荷安公行狀
先生付書于安鳳洙、廈鎭兩斯文 書中云 石荷行狀 猝猝構出 謹呈草本而求敎 乞勿以一日云長而恕之 期无他日之悔而整之 如何 輓祭決非拙眼所取捨 諒之如何
高靈李炳魯有書于先生
題伐盧在爀上外舅 書嵬等兌錫 絶句嵬等在爀
咸安郡法守面篁沙里李永基[字子彦 戊寅生 星山人]來謁 請同里李鉉淑[字庠三 載寧人]先考雲樊公墓碣銘 鉉淑有書于先生 永基有詩曰
幾年勞仰紫巖堂 今日登臨拜瓣香
收拾群英扶正脈 凝東草木庶彌光

[丁卯六月]
◎ 六月初一日甲午 陰
直日河在丞
夙興直日
炳祺還
李永基拜退
題題東亞日報[律] 嵬等炳祺
定容往邑內

◎ 初二日乙未 雨
直日孫兌錫
夙興在爀
題六月二日雨距三月雨凡七十二日[四韻] 嵬等炳祺

◎ 初三日丙申 雨
直日盧在爀
夙興直日
在丞歸覲
叔父還 袖致蓮桂所留安鳳洙上先生書
題送河子相歸覲夏山之茅田 嵬等炳祺

◎ 初四日丁酉 陰
直日李炳祺
夙興在爀
先生撰耕山崔公墓誌銘 方營刊耕山遺集 前時有請故也
題種栢[律] 嵬等兌錫

◎ 初五日戊戌 晴
直日孫兌錫
夙興直日
題拜畢齋先生墓[律] 嵬等炳祺
諸生往浴于赤灘 遇察容於野中同往 旋以微寒徑還 呻吟數餉

◎ 初六日己亥 陰
直日盧在爀
夙興兌錫
先生付書于崔希永及楊鍾仁
昌寧會溪成耆悳有書于先生
華洞孫基丙[字元建 丙申生]、花溪安在洙[字伯卿 庚子生]來謁
題迂拙齋朴先生閭表碑[律] 嵬等炳祺
夕 與客各賦一律 嵬等在洙
午後大雨

◎ 初七日庚子 雨
直日李炳祺
夙興在爀
題是日無題 與客共賦一律 嵬等在洙
午後 乍晴
在洙拜退
夕大雨

◎ 初八日辛丑 陰雨
直日孫兌錫
夙興炳祺
孫基丙拜受其所請曾王考及王考兩世行狀而拜退
先生付書于權相翊
題秧歌[古詩] 嵬等直日

◎ 初九日壬寅 陰雨
直日李在爀
夙興兌錫
下西雲汀柳基秀家訃告來到 其再從弟泳秀夫人 以初二日別世云
達城郡解顔面枝底李逌雨上書于先生 又次紫巖書堂原韻詩曰
營室降精台峀東 巖堂高闢紫輝通
曾書講座承前訣 吕約崇楣警下風
白晝爐燻開卷坐 紅塵路斷誓雲同
□斯更欲菁莪賦 閱歲榮華雨露中
先生方抄闡揮錄 諸生問其顚末 先生以莊獻世子事實答之 而泫然含淚
題鷄[三絶] 嵬等兌錫
兌錫手容不恭

◎ 初十日癸卯 雨
直日李炳祺
夙興在爀
統營道山面德村河成洛[字禹範 晉陽人]自角山來謁 晦堂祥朞在去七日 故往哭靈筵 又言積歲闕先生之候 故歷路暫拜
題移山[律] 嵬等炳祺

◎ 十一日甲辰 雨
直日孫兌錫
夙興炳祺
題新武陵行[古詩] 嵬等炳祺

◎ 十二日乙巳 雨
直日盧在爀
夙興炳祺
乍晴 河成洛拜退 泗水諸流甚漲 故踰荏田嶺
諸生抄碧塢遺稿畢
是日諸生抄闡揮錄

◎ 十三日丙午 陰
直日李炳祺
夙興兌錫
兌錫歸覲 昨日與陵洞李斗衡相約 故今朝有奇而同往
漆谷上枝李周厚上書于先生 兼付先生所撰東阿公行狀 其中有漏誤處 故更以書請改
永川臨皐面仙源鄭淵壹上先生書來到 昌原朴承宣永琪氏方營刊嶺誌 而以刊書之無人 故前月先生致書請之 而初以去月二十日爲期 又有碍端 故更以今月二十日退期
全北南原郡山東面木洞廉致洙[字敬學 坡州人]來謁 請其前日所蒐輯東賢號錄勘校 方營刊云

◎ 十四日丁未 雨
直日盧在爀
夙興直日
昌原內洞甘濟鉉上先生書來
諸生抄闡揮錄
先生答書于漆谷李周厚及東阿公行狀漏誤處改之而付云

◎ 十五日戊申 雨
直日李炳祺
夙興在燁
諸生抄闡錄 故數日闕課 昨日畢抄 而是日開課 題飮酒唐浦[律]

◎ 十六日己酉 陰
直日盧在爀
夙興直日
廉致洙受其東賢號錄而拜退
題登嶺南樓[律]

◎ 十七日庚戌 晴
直日李炳祺
夙興在爀
丹亭李鍾燁來謁仍退
題登太和樓次板上韻[律]

◎ 十八日辛亥 晴
直日盧在爀
夙興炳祺
題三浪玉友亭次板上韻[律]
炳祺歸覲 乃其大人生辰在明朝也

◎ 十九日壬子 晴
直日盧在爀
先生有書于新安崔雲聲及付前日所請墓誌
先生有書于馬屹石在禎及付前日所請雲圃齋記
炳祺家來饌品數種

◎ 二十日癸丑 晴
家容氏往邑內
金海郡生林面金谷里訃告來 乃先生葛田從叔母 今月十六日別世云
來進李斗杓[字建夫]來謁
先生作碧塢金公行狀

◎ 二十一日甲寅 晴
諸生與斗杓往浴而還

◎ 二十二日乙卯 晴
李斗杓來退
先生有書高靈李炳魯
達城郡漆溪崔希永上先生書來
先生有書于丹亭許進士埰
九田禹在宗上先生書來
昌寧桂八金熙琫大夫人 今月二十七日別世訃告來
安仁孫洛鉉上先生書來
永川臨皐面仙源里鄭淵壹來謁
珠山亭送伻 以諸生今日日課題馬肝進八首 請批整而去

◎ 二十三日丙辰 陰
金浦安廈鎭自蓮桂所來謁 請改石荷安公行狀誤處 午後受而拜退

◎ 二十四日丁巳 晴
鄭淵壹寫大嶺誌刊本
達城郡瑜珈面佳泰里郭東鎬大人 今月十四日別世訃告來
漆谷郡枝川面上枝里李大榮答慰狀來

◎ 二十五日戊午 晴
家容氏自邑還

◎ 二十六日己未 晴
在爀、在燁同往珠山亭
德谷孫兌錫來謁 而因往珠山亭

◎ 二十七日庚申 晴
昌原朴承宣永琪來謁

◎ 二十八日辛酉 晴
朴永琪氏拜退
泗淵李炳祺來謁
尙州愚川柳道慤氏來訪

◎ 二十九日壬戌 晴
李炳祺拜退
在爀以泄利還
驟雨

◎ 三十日癸亥 陰
武陵李弼寔氏來訪
柳道慤氏、李弼寔氏辭退

[丁卯七月]
◎ [七月]初一日甲子 晴

◎ 初二日乙丑 晴
金海金谷大訥丈還駕 右容陪來
孫兌錫還
金谷[以下缺落]

◎ 初三日丙寅 晴
先生以本生妣諱辰在今 故早起盥櫛 往于風雷亭
李炳祺還
諸生往于風雷亭 謁大訥翁仍退
金谷安鍾達來謁
先生宿于風雷亭
炳祺言 愚川柳道慤氏 昨夜以泄利 卒于鏡湖亭

◎ 初四日丁卯 陰
乙鉉以餕餘饋諸生
先生本生曾祖妣諱辰在今 故仍留風雷亭

◎ 初五日戊辰 陰
直日李炳祺
夙興在爀
大訥翁啓駕于金海金谷 右容陪往 安鍾達偕退
泗淵李炳坤[直日從兄]氏來謁仍退
星州沙月金昌甲上先生書來
丹溪朴正善過楡林驛 有書于先生
題紫薇花[律三首] 嵬等炳祺
夕小雨

◎ 初六日己巳 陰
直日孫兌錫
夙興在爀
題讀家禮說 諸生皆讀家禮

◎ 初七日庚午 雨
直日盧在爀
夙興炳祺
題冠禮論 在爀以草瘧闕

◎ 初八日辛未 曇
直日李炳祺
夙興兌錫
題昏禮論
炳祺歸覲
定容以餕餘饋諸生
昌原朴承旨永琪氏來訪

◎ 初九日壬申 晴
直日孫兌錫
夙興直日
題喪禮論
在燁、鍤浦申晟圭自珠山亭來謁
細雨
朴永祺氏退
在爀以病臥

◎ 初十日癸酉 晴
直日盧在爀
題祭禮論
在燁、晟圭往于珠山亭

◎ 十一日甲戌 晴
直日孫兌錫
直日歸覲
蔚山郡下北面弓根丁里鄭槽朝 五月十二日別世訃告來

◎ 十二日乙亥 雨
夜大雨 溪水甚漲

◎ 十三日丙子 陰
先生欲啓駕于東萊溫泉 而泗水諸流甚漲 不通往來乃止

◎ 十四日丁丑 晴

소장정보

도서예약
서가에없는책 신고
보존서고신청
캠퍼스대출
우선정리신청
자료배달신청
문자발송
청구기호출력
소장학술지 원문서비스
등록번호 청구기호 소장처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서비스

북토크

자유롭게 책을 읽고
느낀점을 적어주세요
글쓰기

청구기호 브라우징

관련 인기대출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