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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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 | 4 | ▼a이것은 월고(月皐) 조성가(趙性家, 1824∼1904, 字 直敎, 號 月皐, 本貫 咸安)가 지와(芝窩) 정규원(鄭奎元, 1818∼1877, 一名 冕敎ㆍ漢敎, 字 國喬, 號 芝窩, 本貫 海州)에게 보낸 서찰이다. 상대방에게 향교(鄕校)에서 여러 벗들의 모임을 주선해 줄 것을 권하는 내용이다.▲ | |
541 | ▼a월고문고▼b조몽(경상남도 양산시, 부산대의학과 교수)▼c기증▼d2020.6.26.▲ | ||
546 | ▼a한국한자임▲ | ||
650 | 4 | ▼a고문서▲ | |
653 | ▼a간찰▼a월고문고▼a月皐6-49▲ | ||
700 | 1 | ▼a조성가, ▼d1824-1904▼e발신▲ | |
700 | 1 | ▼a정규원, ▼d1818-1877▼e수신▲ |
[簡札]
자료유형
국내고서
서명/책임사항
[簡札] / 趙性家 發信 ; 鄭奎元 受信
판사항
筆寫本
발행사항
[刊寫地未詳] : [刊寫者未詳] , 高宗 7(1870)
형태사항
1張 ; 31.8 x 48.2 cm
일반주기
行草書임
發信日: 1870년(고종 7) 2월 16일[기망(旣望)]
탈초 및 해제 : 정석태(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
發信日: 1870년(고종 7) 2월 16일[기망(旣望)]
탈초 및 해제 : 정석태(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
요약주기
이것은 월고(月皐) 조성가(趙性家, 1824∼1904, 字 直敎, 號 月皐, 本貫 咸安)가 지와(芝窩) 정규원(鄭奎元, 1818∼1877, 一名 冕敎ㆍ漢敎, 字 國喬, 號 芝窩, 本貫 海州)에게 보낸 서찰이다. 상대방에게 향교(鄕校)에서 여러 벗들의 모임을 주선해 줄 것을 권하는 내용이다.
언어주기
한국한자임
주제(일반주제명)
청구기호
5-1
원문 등 관련정보
관련 파일
해제
이것은 월고(月皐) 조성가(趙性家, 1824∼1904, 字 直敎, 號 月皐, 本貫 咸安)가 지와(芝窩) 정규원(鄭奎元, 1818∼1877, 一名 冕敎ㆍ漢敎, 字 國喬, 號 芝窩, 本貫 海州)에게 보낸 서찰이다. 상대방에게 향교(鄕校)에서 여러 벗들의 모임을 주선해 줄 것을 권하는 내용이다. 먼저 영문(榮問)이 이번 봄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또 공경하는 후배를 기다리도록 하는 것이냐고 묻고, 상대방의 아량(雅量)으로는 비록 급급해 하지 않더라도 지구(知舊)들의 평소 바람에는 몹시 실망이 되었다고 하고는, 요사이 듣자니 상대방은 자신이 이번에 이렇게 다시 탄솔(坦率)하게 된 것은 근년에 조금 마음을 풀어놓은 소치라고 생각하여 다시 풍부(馮婦)의 용기를 내어 당고(唐皐)의 뜻으로 더욱 매진하여 촌음(寸陰)도 아껴 시문(詩文)을 짓기에 힘을 써서 부지런히 쉬지 않고 노력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제 육십이 된 나이는 시문(詩文)을 지어서 과거시험에 응시할 때는 아니라고 한 다음, 이어서 그 대신 여름에 벗들의 좋은 모임을 향교에서 가질 수 있도록 상대방이 주선해 달라고 하였다. 지난해 연정(蓮亭)에서의 모임은 비방을 얻은 것이 많았지만, 이번에 만약 각자 양식을 싸들고 간다면 누가 다시 비방을 하겠느냐고 하고는, 향교(鄕校)는 몹시 넓으니 피서하기에 가장 좋고 벗들이 사방에서 모이기도 편하고 또 상대방이 앞서 주도한다면 모임은 원만하게 이루어질 것이니 꼭 도모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자신처럼 못난 사람은 그때 회포를 풀 수 있기를 간절하게 소망한다는 말로 서찰을 끝맺고 있다. 이 서찰은 경오년(庚午年, 1870, 고종7) 2월 16일에 발송한 것이다. 조성가의 월고집(月皐集) 권7에 「여정국교 경오(與鄭國喬 庚午)」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것은 원본(原本)이고, 문집(文集)에 실린 것은 수록하는 과정에 내용 중 일부가 수정(修訂) 또는 산삭(刪削)되었다.
번역서
본문(本文), 일찍이 영문(榮問) 영문(榮問): 예전에, 새로 과거에 급제한 사람을 찾아보고 축하하는 일을 이르던 말이다.
이 이번 봄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노형(老兄)께서는 또 공경하는 후배들을 기다리도록 하신 것인지요? 노형의 아량(雅量)으로는 비록 급급해 하지 않으시더라도 지구(知舊)들의 평소 바람에는 몹시 실망이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돌아오신지 이미 오래되었는데 피로함이 사라지고 체후 강건해지셨는지요? 만나고 싶은 일념(一念)은 걸려 있는 깃발처럼 펄럭거리지만 백 리 길을 수레에 멍에 하여 달려갈 수 없으니 벗 사이의 도리에 고인(古人)에게 부끄러운 것이 많습니다. 근자에 듣자니 노형은 스스로 이번에 이렇게 다시 탄솔(坦率)하게 된 것은 근년에 조금 마음을 풀어놓은 소치라고 생각하여 다시 풍부(馮婦) 풍부(馮婦):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용사이다. 맨손으로 범을 곧잘 때려잡다가 그런 광포한 짓은 그만두겠다고 생각하고는 마침내 선량한 선비가 되었다. 하루는 들을 지나는데 많은 사람들이 범을 쫓고 있었다. 범이 산모퉁이를 등지고 앉으니 누구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였다. 그때 풍부가 오는 것을 보고는 달려가 맞이하자 풍부는 옛 버릇이 되살아나 그 범을 잡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수레에서 내렸다. 사람들은 모두 기뻐했으나 선비들은 이를 비웃었다고 한다. 《孟子 盡心下》
의 용기를 내어 당고(唐皐) 당고(唐皐): 명(明)나라 흡현(歙縣) 출신이다. 자는 수지(守之), 호는 심암(心菴)이다. 어려서 공부를 할 때 여자들이 그 공부방 문에 구멍을 뚫고 유혹하여도 흔들림 없이 독서하였다고 한다. 누차 낙방하였으나 늘 장원하리라 다짐하여 부지런히 독서한 끝에 무종(武宗) 정덕(正德) 9년(1514)에 장원급제하였다. 1520년 무렵 중종(中宗) 연간에 우리나라에 사신으로 오기도 하였다.
의 뜻으로 더욱 매진하여 촌음도 아껴 시문(詩文)을 짓기에 힘을 써서 부지런히 쉬지 않고 노력하시니 그 굳건한 뜻은 저로 하여금 감복하게 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하건대 육십 세의 나이는 이러한 시문을 지을 때가 아니니 후진(後進)의 비웃음을 받지는 않을는지요? 또 이번 과거시험을 말하자면 평소 지은 것이 50수(首)가 되지 않아도 능히 장원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작품 수의 다과(多寡)가 과거시험의 합격여부와는 무관한 것은 이것이 또한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가 노형의 고견(高見)이 오히려 분수(分數)에 분명함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만두지 못한다면 마음으로 잊지 못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제 생각은 이와 같은데 노형은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지난해 연정(蓮亭)에서의 모임은 비방을 얻은 것이 주발에 가득하였습니다. 만약 각자 양식을 싸들고 간다면 누가 다시 비방을 하겠습니까. 향교(鄕校)는 몹시 넓으니 피서하기에 가장 좋고 벗들이 사방에서 모이기도 편합니다. 노형께서 만약 앞서 주도하신다면 모임은 원만하게 이루어질 것이니 꼭 도모해 주심이 어떨는지요? 제는 늙으신 부모님을 모시고 지내는 외에 용렬하고 아둔한 모습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만 부끄럽게도 숙사(塾舍)에 깃들어 외로운 회포를 풀 수 없는 처지를 바로 이렇게 풀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살펴주십시오. / 착서(着署), 경오년(庚午年, 1870, 고종7) 2월 16일[기망(旣望)]. 제(弟) 조성가(趙性家) 배수(拜手).
이 이번 봄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노형(老兄)께서는 또 공경하는 후배들을 기다리도록 하신 것인지요? 노형의 아량(雅量)으로는 비록 급급해 하지 않으시더라도 지구(知舊)들의 평소 바람에는 몹시 실망이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돌아오신지 이미 오래되었는데 피로함이 사라지고 체후 강건해지셨는지요? 만나고 싶은 일념(一念)은 걸려 있는 깃발처럼 펄럭거리지만 백 리 길을 수레에 멍에 하여 달려갈 수 없으니 벗 사이의 도리에 고인(古人)에게 부끄러운 것이 많습니다. 근자에 듣자니 노형은 스스로 이번에 이렇게 다시 탄솔(坦率)하게 된 것은 근년에 조금 마음을 풀어놓은 소치라고 생각하여 다시 풍부(馮婦) 풍부(馮婦):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용사이다. 맨손으로 범을 곧잘 때려잡다가 그런 광포한 짓은 그만두겠다고 생각하고는 마침내 선량한 선비가 되었다. 하루는 들을 지나는데 많은 사람들이 범을 쫓고 있었다. 범이 산모퉁이를 등지고 앉으니 누구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였다. 그때 풍부가 오는 것을 보고는 달려가 맞이하자 풍부는 옛 버릇이 되살아나 그 범을 잡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수레에서 내렸다. 사람들은 모두 기뻐했으나 선비들은 이를 비웃었다고 한다. 《孟子 盡心下》
의 용기를 내어 당고(唐皐) 당고(唐皐): 명(明)나라 흡현(歙縣) 출신이다. 자는 수지(守之), 호는 심암(心菴)이다. 어려서 공부를 할 때 여자들이 그 공부방 문에 구멍을 뚫고 유혹하여도 흔들림 없이 독서하였다고 한다. 누차 낙방하였으나 늘 장원하리라 다짐하여 부지런히 독서한 끝에 무종(武宗) 정덕(正德) 9년(1514)에 장원급제하였다. 1520년 무렵 중종(中宗) 연간에 우리나라에 사신으로 오기도 하였다.
의 뜻으로 더욱 매진하여 촌음도 아껴 시문(詩文)을 짓기에 힘을 써서 부지런히 쉬지 않고 노력하시니 그 굳건한 뜻은 저로 하여금 감복하게 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하건대 육십 세의 나이는 이러한 시문을 지을 때가 아니니 후진(後進)의 비웃음을 받지는 않을는지요? 또 이번 과거시험을 말하자면 평소 지은 것이 50수(首)가 되지 않아도 능히 장원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작품 수의 다과(多寡)가 과거시험의 합격여부와는 무관한 것은 이것이 또한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가 노형의 고견(高見)이 오히려 분수(分數)에 분명함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만두지 못한다면 마음으로 잊지 못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제 생각은 이와 같은데 노형은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지난해 연정(蓮亭)에서의 모임은 비방을 얻은 것이 주발에 가득하였습니다. 만약 각자 양식을 싸들고 간다면 누가 다시 비방을 하겠습니까. 향교(鄕校)는 몹시 넓으니 피서하기에 가장 좋고 벗들이 사방에서 모이기도 편합니다. 노형께서 만약 앞서 주도하신다면 모임은 원만하게 이루어질 것이니 꼭 도모해 주심이 어떨는지요? 제는 늙으신 부모님을 모시고 지내는 외에 용렬하고 아둔한 모습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만 부끄럽게도 숙사(塾舍)에 깃들어 외로운 회포를 풀 수 없는 처지를 바로 이렇게 풀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살펴주십시오. / 착서(着署), 경오년(庚午年, 1870, 고종7) 2월 16일[기망(旣望)]. 제(弟) 조성가(趙性家) 배수(拜手).
원서
曾謂榮問必不越今春 老兄又使之待來式耶 雅量雖不汲汲 知舊之素望甚觖然 灞回旣久 不審憊祛而體健否 握手一念 懸旌搖搖 百里不能命駕 友道愧古人多矣 近聞老兄自以爲今番之復此坦率 由於邇年少縱之致 更奮馮婦之臂 益勵唐皋之志 批白髭角寸陰 矻矻不已 志帥堅確 令人可服 然竊恐六十光陰 似非做此文時節也 得無後進之獻笑哉 且以今榜言之 平生所作 不滿五十首 而能嵬捷者有之 首數多寡 不關於得失 此亦可驗 孰謂老兄高見 尙欠了了於分數耶 無不已 則心勿忘焉是矣 鄙見如此 老兄以爲何如 去年蓮飮 獲謗盈椀 若各自贏糧 誰復雌黃 黌軒甚敞 避暑最宜 朋簪之四集亦易 兄若先倡 會可圓矣 千萬圖之 如何如何 弟奉老外 闒茸間樣 但愧坐寄塾孤襟難聊之狀 卽此懇可想矮暢不能盡底 伏希巍照
庚午二月旣望
弟 趙性家 拜手
庚午二月旣望
弟 趙性家 拜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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