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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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 | 4 | ▼a이것은 월고(月皐) 조성가(趙性家, 1824∼1904, 字 直敎, 號 月皐, 本貫 咸安)가 동문(同門)의 벗 신호(莘湖) 김녹휴(金祿休, 1827∼1899, 字 穉敬ㆍ穉章, 號 莘湖, 本貫 蔚山)가 보낸 서찰에 답한 서찰이다. 먼저 상대방의 서찰이 재를 넘어 와서 천 리 밖에서 간절하게 그리워하던 마음을 충분히 위로해 주었다고 하고 또 새해 초하루에 상대방은 덕(德)을 기르는 생활이 더욱 좋으며 온갖 복(福)이 번갈아 모여들기를 몹시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한다고 하고는, 자신은 가난한 살림에 부모님을 모시고 지내는 생활과 벗들을 떠나와 홀로 쓸쓸하게 지내는 회포(懷抱)는 한결같이 지난번에 보낸 서찰에서 말한 것과 다름없지만 다만 근심스러운 것은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는데 뜻을 두고 있는 학업(學業)이 더는 진보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 다음, 이어서 어찌하면 상대방과 같이 곧고 성실하고 견문이 많은 벗[直諒多聞]과 조석(朝夕)으로 함께 어울려 지내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비루(鄙陋)하고 인색(吝嗇)한 것을 없애서 한 치 한 푼의 진보를 구할 수 있을 모르겠다고 하였다. 자신은 그렇게 할 수 없어서 바람을 마주하고 더욱 깊이 크게 탄식하고 있으니 풍편(風便)에 서찰로써 자신을 면려(勉勵)해 주기를 간절하게 바란다고 하였다. 나머지는 원대한 학업에 힘쓰기를 바란다는 말로 서찰을 끝내고 있다▲ | |
541 | ▼a월고문고▼b조몽(경상남도 양산시, 부산대의학과 교수)▼c기증▼d2020.6.26.▲ | ||
546 | ▼a한국한자임▲ | ||
650 | 4 | ▼a고문서▲ | |
653 | ▼a간찰▼a월고문고▼a月皐6-56▲ | ||
700 | 1 | ▼a조성가, ▼d1824-1904▼e발신▲ | |
700 | 1 | ▼a김녹휴, ▼d1827-1899▼e수신▲ |
[簡札]
자료유형
국내고서
서명/책임사항
[簡札] / 趙性家 發信 ; 金祿休 受信
판사항
筆寫本
발행사항
[刊寫地未詳] : [刊寫者未詳] , 哲宗 11(1860)
형태사항
1張 ; 31.7 x 48.0 cm
일반주기
行草書임
發信日: 1860년(철종 11) 1월 1일[곡조(穀朝)]
탈초 및 해제 : 정석태(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
發信日: 1860년(철종 11) 1월 1일[곡조(穀朝)]
탈초 및 해제 : 정석태(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
요약주기
이것은 월고(月皐) 조성가(趙性家, 1824∼1904, 字 直敎, 號 月皐, 本貫 咸安)가 동문(同門)의 벗 신호(莘湖) 김녹휴(金祿休, 1827∼1899, 字 穉敬ㆍ穉章, 號 莘湖, 本貫 蔚山)가 보낸 서찰에 답한 서찰이다. 먼저 상대방의 서찰이 재를 넘어 와서 천 리 밖에서 간절하게 그리워하던 마음을 충분히 위로해 주었다고 하고 또 새해 초하루에 상대방은 덕(德)을 기르는 생활이 더욱 좋으며 온갖 복(福)이 번갈아 모여들기를 몹시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한다고 하고는, 자신은 가난한 살림에 부모님을 모시고 지내는 생활과 벗들을 떠나와 홀로 쓸쓸하게 지내는 회포(懷抱)는 한결같이 지난번에 보낸 서찰에서 말한 것과 다름없지만 다만 근심스러운 것은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는데 뜻을 두고 있는 학업(學業)이 더는 진보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 다음, 이어서 어찌하면 상대방과 같이 곧고 성실하고 견문이 많은 벗[直諒多聞]과 조석(朝夕)으로 함께 어울려 지내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비루(鄙陋)하고 인색(吝嗇)한 것을 없애서 한 치 한 푼의 진보를 구할 수 있을 모르겠다고 하였다. 자신은 그렇게 할 수 없어서 바람을 마주하고 더욱 깊이 크게 탄식하고 있으니 풍편(風便)에 서찰로써 자신을 면려(勉勵)해 주기를 간절하게 바란다고 하였다. 나머지는 원대한 학업에 힘쓰기를 바란다는 말로 서찰을 끝내고 있다
언어주기
한국한자임
주제(일반주제명)
청구기호
5-1
원문 등 관련정보
관련 파일
해제
이것은 월고(月皐) 조성가(趙性家, 1824∼1904, 字 直敎, 號 月皐, 本貫 咸安)가 동문(同門)의 벗 신호(莘湖) 김녹휴(金祿休, 1827∼1899, 字 穉敬ㆍ穉章, 號 莘湖, 本貫 蔚山)가 보낸 서찰에 답한 서찰이다. 먼저 상대방의 서찰이 재를 넘어 와서 천 리 밖에서 간절하게 그리워하던 마음을 충분히 위로해 주었다고 하고 또 새해 초하루에 상대방은 덕(德)을 기르는 생활이 더욱 좋으며 온갖 복(福)이 번갈아 모여들기를 몹시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한다고 하고는, 자신은 가난한 살림에 부모님을 모시고 지내는 생활과 벗들을 떠나와 홀로 쓸쓸하게 지내는 회포(懷抱)는 한결같이 지난번에 보낸 서찰에서 말한 것과 다름없지만 다만 근심스러운 것은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는데 뜻을 두고 있는 학업(學業)이 더는 진보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 다음, 이어서 어찌하면 상대방과 같이 곧고 성실하고 견문이 많은 벗[直諒多聞]과 조석(朝夕)으로 함께 어울려 지내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비루(鄙陋)하고 인색(吝嗇)한 것을 없애서 한 치 한 푼의 진보를 구할 수 있을 모르겠다고 하였다. 자신은 그렇게 할 수 없어서 바람을 마주하고 더욱 깊이 크게 탄식하고 있으니 풍편(風便)에 서찰로써 자신을 면려(勉勵)해 주기를 간절하게 바란다고 하였다. 나머지는 원대한 학업에 힘쓰기를 바란다는 말로 서찰을 끝내고 있다. 이 서찰 말미(末尾)에는 “강장(姜丈)과 이형(李兄)은 평안한지요?”라는 내용의 추신(追伸)이 달려 있다. 이 서찰은 경신년(庚申年, 1860, 철종11) 1월 1일[곡조(穀朝)]에 발송하였다. 조성가의 월고집(月皐集) 권8에 「답김치경 경신(答金穉敬 庚申)」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것은 원본(原本)이고, 문집(文集)에 실린 것은 수록하는 과정에 내용 중 일부가 수정(修訂) 또는 산삭(刪削)되었다.
번역서
본문(本文), 그대의 덕음(德音)이 재를 넘어 와서 천 리 밖에서 간절하게 그리워하던 마음을 충분히 위로해 주었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새해 초하루에 덕(德)을 기르는 생활이 더욱 좋으며 온갖 복(福)이 번갈아 모여들기를 몹시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저는 가난한 살림에 숙수(菽水) 숙수(菽水): 가난한 살림에도 어버이를 정성껏 봉양하는 것을 말한다. 공자(孔子)의 제자 자로(子路)가 집안이 가난해서 효도를 제대로 못한다고 탄식하자, 공자가 “콩죽을 끓여 먹고 물을 마시더라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을 극진히 행한다면 그것이 바로 효이다.[啜菽飮水盡其歡, 斯之謂孝.]”라고 했던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禮記 檀弓下》
로 부모님을 봉양(奉養)하며 지내는 생활과 벗들을 떠나와 홀로 쓸쓸하게 지내는 이삭(離索) 이삭(離索): 이군삭거(離群索居)의 준말로서 벗들과 떨어져 외로이 사는 것을 말한다. 공자(孔子)의 자하(子夏)가 노년에 서하(西河)로 물러가 살다가 아들을 잃고 실명하였는데, 증자(曾子)의 꾸지람을 받고는 자책하여 말하기를 “내가 벗을 떠나 쓸쓸히 홀로 산 것이 오래되었다.[吾離群而索居, 亦已久矣.]”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禮記 檀弓》
의 회포(懷抱)는 한결같이 지난번에 보내드린 서찰에서 말한 것과 다름없습니다만, 근심스러운 것은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는데 뜻을 두고 있는 학업(學業)이 더는 진보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찌하면 노형(老兄)과 같이 곧고 성실하고 견문이 많은 벗 곧고……벗[直諒多聞]: 자신에게 유익한 세 벗을 말한다. 공자가 유익한 벗과 해로운 벗을 각각 셋씩 들면서 유익한 벗으로는 곧고[直] 신실하고[諒] 견문이 많은[多聞] 벗을 들었다. 《論語 季氏》
과 조석(朝夕)으로 함께 어울려 지내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비루(鄙陋)하고 인색(吝嗇)한 것을 없애서 한 치 한 푼의 진보를 구할 수 있겠는지요? 진실로 이렇게 할 수 없어서 바람을 마주하고 크게 탄식하는 것이 더욱 깊어집니다. 바라기는 혹 풍편(風便)에 서찰로써 서로 면려(勉勵)해 주시는 것이니 바라는 것은 단지 이것뿐입니다. 나머지는 원대한 학업에 힘쓰기는 것입니다. 다 말씀드리지 못하고 이만 그칩니다. / 착서(着署), 경신년(庚申年, 1860, 철종11) 1월 1일[곡조(穀朝)]. 손제(損弟) 손제(損弟): 서찰 끝 착서(着署)에 쓰는 투식(套式)으로서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겸칭(謙稱)이다. 부족한 벗이라는 뜻이다.
조성가(趙性家) 재배(再拜). / 추신(追伸), 강장(姜丈) 강장(姜丈)과 이형(李兄): 미상.
과 이형(李兄)은 평안한지요?
로 부모님을 봉양(奉養)하며 지내는 생활과 벗들을 떠나와 홀로 쓸쓸하게 지내는 이삭(離索) 이삭(離索): 이군삭거(離群索居)의 준말로서 벗들과 떨어져 외로이 사는 것을 말한다. 공자(孔子)의 자하(子夏)가 노년에 서하(西河)로 물러가 살다가 아들을 잃고 실명하였는데, 증자(曾子)의 꾸지람을 받고는 자책하여 말하기를 “내가 벗을 떠나 쓸쓸히 홀로 산 것이 오래되었다.[吾離群而索居, 亦已久矣.]”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禮記 檀弓》
의 회포(懷抱)는 한결같이 지난번에 보내드린 서찰에서 말한 것과 다름없습니다만, 근심스러운 것은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는데 뜻을 두고 있는 학업(學業)이 더는 진보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찌하면 노형(老兄)과 같이 곧고 성실하고 견문이 많은 벗 곧고……벗[直諒多聞]: 자신에게 유익한 세 벗을 말한다. 공자가 유익한 벗과 해로운 벗을 각각 셋씩 들면서 유익한 벗으로는 곧고[直] 신실하고[諒] 견문이 많은[多聞] 벗을 들었다. 《論語 季氏》
과 조석(朝夕)으로 함께 어울려 지내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비루(鄙陋)하고 인색(吝嗇)한 것을 없애서 한 치 한 푼의 진보를 구할 수 있겠는지요? 진실로 이렇게 할 수 없어서 바람을 마주하고 크게 탄식하는 것이 더욱 깊어집니다. 바라기는 혹 풍편(風便)에 서찰로써 서로 면려(勉勵)해 주시는 것이니 바라는 것은 단지 이것뿐입니다. 나머지는 원대한 학업에 힘쓰기는 것입니다. 다 말씀드리지 못하고 이만 그칩니다. / 착서(着署), 경신년(庚申年, 1860, 철종11) 1월 1일[곡조(穀朝)]. 손제(損弟) 손제(損弟): 서찰 끝 착서(着署)에 쓰는 투식(套式)으로서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겸칭(謙稱)이다. 부족한 벗이라는 뜻이다.
조성가(趙性家) 재배(再拜). / 추신(追伸), 강장(姜丈) 강장(姜丈)과 이형(李兄): 미상.
과 이형(李兄)은 평안한지요?
원서
德音踰嶺 恰慰千里翹企之懷 伏惟新正 養德益茂 百福交集 至禱至禱 弟菽水之節 離索之懷 一如前書 而所可憂者 一齒加長 志業不加進耳 安得與直諒多聞如老兄輩 朝夕遊處 消磨鄙吝於不知不覺 以求分寸之進也 而此固不可得矣 臨風浩歎 於斯益深 庶或因風以書交勖 則所望只此 餘冀用懋遠業 不宣
庚申正月穀朝
損弟 趙性家 再拜
姜丈與李兄得其安耶
庚申正月穀朝
損弟 趙性家 再拜
姜丈與李兄得其安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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