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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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1 | ▼a월고문고▼b조몽(경상남도 양산시, 부산대의학과 교수)▼c기증▼d2020.6.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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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3 | ▼a간찰▼a월고문고▼a月皐6-6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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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 1 | ▼a기우만, ▼d1846-1916▼e수신▲ |
[簡札]
자료유형
국내고서
서명/책임사항
[簡札] / 趙性家 發信 ; 奇宇萬 受信
판사항
筆寫本
발행사항
[刊寫地未詳] : [刊寫者未詳] , 高宗 28(1891)
형태사항
1張 ; 25.8 x 115.8 cm
일반주기
行草書임
發信日: 1891년(고종 28) 11월 20일
탈초 및 해제 : 정석태(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
發信日: 1891년(고종 28) 11월 20일
탈초 및 해제 : 정석태(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
요약주기
이것은 월고(月皐) 조성가(趙性家, 1824∼1904, 字 直敎, 號 月皐, 本貫 咸安)가 동문(同門)의 벗인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1846∼1916, 字 會一, 號 松沙, 本貫 幸州)에게 보낸 서찰이다.
언어주기
한국한자임
주제(일반주제명)
청구기호
5-1
원문 등 관련정보
관련 파일
해제
이것은 월고(月皐) 조성가(趙性家, 1824∼1904, 字 直敎, 號 月皐, 本貫 咸安)가 동문(同門)의 벗인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1846∼1916, 字 會一, 號 松沙, 本貫 幸州)에게 보낸 서찰이다. 먼저 하사(下沙)의 종이 영남(嶺南)으로 와서 각처(各處)에 두루 고하지 않고 돌아가서 입부(立夫, 奇宰, 1854∼1921)가 마침 병이 났는데도 오히려 편지 한 장 부치지 못하니 인편이 없는 것과 다름없거늘 그 입으로 전해준 것이 어찌 능히 상세하게 말해 준 것이겠느냐고 하고, 또 형제가 함께 지내는 기거(起居)가 화평하고 온 가족이 모두 평안하다고 하니 얼마나 위로되고 기쁜지 모르겠다고 하고, 또 그곳이 흉년을 면한 것은 심부름꾼도 알고 있고 새로 거둔 것은 얼마인지는 상세하게 알 수 없지만 대략 상상해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하고는, 근래 살림을 꾸려가는 것은 어떤지, 돌보아야 할 식구들이 많은데 대단히 곤궁한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는지, 또 옛날 익혔던 것을 되새기는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공부는 했다말았다 하는 것이 가장 꺼져지거늘 이미 일이 많을 것인데 부지런하고 돈독한 뜻은 방해를 받고 있지는 않는지 물은 다음, 이어서 상대방은 맡고 있는 책임이 막중하니 가만히 공을 위해 근심하고 있지만 근래에 서문(序文)과 발문(跋文) 등의 글을 많이 짓는다고 하고 호남과 영남 지역에서 글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도 몹시 많다고 하니 이것은 참으로 좋은 소식이라 사문(師門)에 계승할 사람이 있어서 우리 유가(儒家)는 근심할 것이 없다고 하였다. 입으로 칭송하는 것은 옛 현인(賢人)이 경계하신 것이지만 참으로 마음으로 좋아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입으로 칭송하는 것이라고 하고는 상대방을 위해 한 마디 면려하는 말을 하자면 궁구하지 못한 것을 더욱 궁구하고 이미 정밀하게 한 것을 더욱 정밀하게 하는 이것이 자신이 가장 소망하는 것이라고 한 다음, 이어서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자신은 올해 6월 지난해 죽은 중제(仲弟) 아들의 죽음에 또 곡을 하였는데 그 죽은 조카는 본래 형제로서 혼자 남은 그 형은 나이가 겨우 서른둘인데 효우(孝友)와 재학(才學)은 다만 저희 집안에서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고을에서도 또한 추중(推重)을 받았지만 하늘은 집안의 운명을 어찌 이와 같이 적막하게 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하고는, 돌아보건대 이렇게 일흔이 된 나이에 이처럼 험악한 경우를 만났으니 애간장이 녹거늘 몸뚱이가 어찌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몸뚱이가 무너지거늘 정신이 어찌 없어지지 않겠느냐고 한 다음, 이어서 정신이 사라지니 약간의 건성으로 읽은 보잘것없는 학업조차 어찌 능히 다시 익혀서 새것을 알아갈 생각을 할 수 없으니 이 생(生)을 헛되이 버리는 죄(罪)를 속죄할 수 없어 비탄(悲歎)한 심정 어떠하겠느냐고 한 다음, 이어서 근래에 스스로 잘못을 저질러 상대방에게 용서조차 구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것은 을유년(乙酉年, 1885, 고종22) 이후로 황산(凰山)의 선사(先師, 奇正鎭, 1798∼1879, 字 大中, 號 蘆沙, 本貫 幸州, 諡號 文簡) 묘소(墓所) 묘소에 성묘(省墓)하지 못한 것이 첫 번째 죄(罪)이고 선사의 저술 답문유편(答問類編)을 간행하는 일에 한 차례도 가서 참여하지 못한 것이 두 번째 죄이며, 여러 해 동안 한 심부름꾼을 보내 안부편지를 부치지 못한 것이 첫 번째 잘못이고 지난가을 신호(莘湖, 金祿休, 1827∼1899, 字 穉敬, 號 莘湖, 本貫 蔚山)와 하간(河間) 두 형(兄)이 돌아와서 며칠 동안 유상(遊賞)하였지만 끝내 서찰을 보내지 못한 것이 두 번째 잘못이고 이번 가을 후윤(厚允)이 한 차례 갈 때 바쁜 일을 제쳐두고 서찰을 부치지 못한 것이 세 번째 잘못이라고 하고는, 이것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고 한 다음, 이어서 내년 봄에는 노쇠한 몸을 부축해서 한 번 상대방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하고 있다고 하였다. 끝으로 답문유편에 대해 자신이 마음속의 생각을 대략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함께 보내는 별지(別紙)에 적었다고 하였다. 이 서찰은 신묘년(辛卯年, 1891, 고종26) 11월 20일에 발송하였다. 조성가의 월고집(月皐集) 권11 「여기회일 신묘(與奇會一 辛卯)」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것은 원본(原本)이고, 문집(文集)에 실린 것은 수록하는 과정에 내용 중 일부가 수정(修訂) 또는 산삭(刪削)되었다. 이 서찰에서 언급한 답문유편(答問類編)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은 별지는 현재 전하지 않는다.
번역서
서두(書頭), 송사(松沙) 경궤(經几) 경궤(經几): 학문을 닦는 궤안이라는 뜻으로 학자인 상대방을 지칭하는 말이다.
/ 본문(本文), 하사(下沙) 하사(下沙):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 하사리를 말한다.
의 종이 영남(嶺南)으로 와서 각처(各處)에 두루 고하지 않고 돌아가서 입부(立夫, 奇宰, 1854∼1921) 입부(立夫): 기재(奇宰, 1854∼1921)의 자이다.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1846∼1916)의 족제(族弟)이다.
가 마침 병이 났는데도 오히려 편지 한 장 부치지 못하니 인편이 없는 것과 다름없거늘, 그 입으로 전해준 것이 어찌 능히 상세하게 말해 준 것이겠습니까? 형제가 함께 지내는 기거(起居)가 화평하고 온 가족이 모두 평안하다고 하니 얼마나 위로되고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그곳이 흉년을 면한 것은 심부름꾼도 알고 있고, 새 가지에서 거둔 것은 얼마인지는 상세하게 알 수 없다고 하지만, 대략 상상해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무릇 근래의 살림을 꾸려가는 것은 어떤지요? 그대 가족은 돌보아야 할 식구들이 많은데 대단히 곤궁한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는지요? 반드시 금절(禁絶)함이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찍이 듣자니, 옛날 익혔던 것을 되새기는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공부는 했다말았다 하는 것이 가장 꺼져지거늘, 이미 일이 많을 것인데 부지런하고 돈독한 뜻은 방해를 받고 있지는 않는지요? 공(公)은 맡고 있는 책임이 막중하니 가만히 공을 위해 근심합니다. 듣자니 근래에 서문(序文)과 발문(跋文) 등의 글을 많이 짓는다고 하고 호남(湖南)과 영남(嶺南) 지역에서 글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도 몹시 많다고 하니 이것은 얼마나 좋은 소식인지요? 사문(師門)에 계승할 사람이 있으니 우리 유가(儒家)는 다시 어찌 근심하겠습니까. 마음으로 좋아하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입으로 칭송하는 것이지만, 입으로 칭송하는 것은 옛 현인(賢人)이 경계하신 것이니, 그만두지 말라고 하면 받들어 면려하는 것이 가할는지요? 궁구하지 못한 것을 더욱 궁구하고 이미 정밀하게 한 것을 더욱 정밀하게 하는 이것이 우러러 가장 소망하는 것입니다. 저 성가(性家)는 올해 6월에 지난해 죽은 중제(仲弟) 아들의 죽음에 또 곡을 하였습니다. 그 죽은 조카는 본래 형제로서 혼자 남은 그 형은 나이가 겨우 서른둘인데 효우(孝友)와 재학(才學)은 다만 저희 집안에서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고을에서도 또한 추중(推重)을 받았는데 하늘은 집안의 운명을 어찌 이와 같이 적막하게 한 것인지요. 돌아보건대 이렇게 일흔이 된 나이에 이처럼 험악한 경우를 만났으니 애간장이 녹거늘 몸뚱이가 어찌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몸뚱이가 무너지거늘 정신이 어찌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정신이 사라지니 약간의 건성으로 읽은 보잘것없는 학업조차 어찌 능히 다시 익혀서 새것을 알아갈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생(生)을 헛되이 버리는 죄(罪)를 속죄할 수 없으니 비탄(悲歎)한 심정이 어떠하겠습니까. 또 근래에 스스로를 이미 망친 것을 살펴봄에 가히 공에게 용서를 구할 수 없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을유년(乙酉年, 1885, 고종22) 이후로 황산(凰山) 황산(凰山): 전라남도 장성군 동화면 남산리 황산마을을 말한다. 이곳에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묘소(墓所)가 있었다.
의 선사(先師, 奇正鎭, 1798∼1879, 字 大中, 號 蘆沙, 本貫 幸州, 諡號 文簡) 묘소(墓所) 묘소에 성묘(省墓)하지 못한 것이 첫 번째 죄(罪)이며, 선사의 저술 답문유편(答問類編) 답문유편(答問類編):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이 제자들과 학문적인 문제로 문답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15권 6책이다. 1891년(고종28) 목활자(木活字)로 초간(初刊)하였고, 1902년(광무6) 목판본(木板本)으로 중간(重刊)하였다.
을 간행하는 일에 한 차례도 가서 참여하지 못한 것이 두 번째 죄입니다. 여러 해 동안 한 심부름꾼을 보내 안부편지를 부치지 못한 것이 첫 번째 잘못이며, 지난가을 신호(莘湖, 金祿休, 1827∼1899, 字 穉敬, 號 莘湖, 本貫 蔚山)와 하간(河間) 하간(河間): 미상.
두 형(兄)이 돌아와서 며칠 동안 유상(遊賞)하였지만 끝내 서찰을 보내지 못한 것이 두 번째 잘못이며, 이번 가을 후윤(厚允) 후윤(厚允): 정재규(鄭載圭, 1843∼1911)의 자이다. 다른 자는 영오(英五), 호는 노백헌(老柏軒)ㆍ애산(艾山),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에 거주하였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이다. 1894년 갑오경장 이후 친일파의 개혁에 거의통문(擧義通文)을 내기도 하였고,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호남ㆍ영남에 포고문을 내어 세계 여러 나라에 호소하여 일본과 담판하기를 촉구하는 한편, 노성(魯城) 궐리사(闕里祠)에서 최익현(崔益鉉)과 거의하기로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저서로는 노백헌집(老柏軒集)이 있다.
이 한 차례 갈 때 바쁜 일을 제쳐두고 서찰을 부치지 못한 것이 세 번째 잘못입니다. 이것은 자범(子犯)이 이른바 “신은 오히려 스스로 지은 죄를 알고 있다.[臣猶自知之]”라고 한 것입니다. 자범(子犯)이……것입니다: 자범은 춘추시대 진(晉)나라 문공(文公)의 외삼촌 호언(狐偃)의 자이다. 그는 문공이 공자(公子) 신분으로 망명 중일 때 “제가 말고삐를 잡고 주군을 따라 천하를 돌아다니는 동안 저지른 죄가 매우 많습니다.[臣負羈紲, 從君巡於天下, 臣之罪甚多矣.]”라고 한 말을 끌어다 쓴 것이다. 《春秋左氏傳 僖公24年》
내년 봄에는 노쇠한 몸을 부축해서 한 번 찾아가서 공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하고 있을 뿐입니다. 답문유편의 일은 제 마음속의 생각을 대략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어서 함께 보내는 별지(別紙)에 적었습니다. 서찰을 보내는 법식(法式)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 착서(着署), 신묘년(辛卯年, 1891, 고종26) 11월 20일. 조성가(趙性家) 배(拜).
/ 본문(本文), 하사(下沙) 하사(下沙):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 하사리를 말한다.
의 종이 영남(嶺南)으로 와서 각처(各處)에 두루 고하지 않고 돌아가서 입부(立夫, 奇宰, 1854∼1921) 입부(立夫): 기재(奇宰, 1854∼1921)의 자이다.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1846∼1916)의 족제(族弟)이다.
가 마침 병이 났는데도 오히려 편지 한 장 부치지 못하니 인편이 없는 것과 다름없거늘, 그 입으로 전해준 것이 어찌 능히 상세하게 말해 준 것이겠습니까? 형제가 함께 지내는 기거(起居)가 화평하고 온 가족이 모두 평안하다고 하니 얼마나 위로되고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그곳이 흉년을 면한 것은 심부름꾼도 알고 있고, 새 가지에서 거둔 것은 얼마인지는 상세하게 알 수 없다고 하지만, 대략 상상해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무릇 근래의 살림을 꾸려가는 것은 어떤지요? 그대 가족은 돌보아야 할 식구들이 많은데 대단히 곤궁한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는지요? 반드시 금절(禁絶)함이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찍이 듣자니, 옛날 익혔던 것을 되새기는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공부는 했다말았다 하는 것이 가장 꺼져지거늘, 이미 일이 많을 것인데 부지런하고 돈독한 뜻은 방해를 받고 있지는 않는지요? 공(公)은 맡고 있는 책임이 막중하니 가만히 공을 위해 근심합니다. 듣자니 근래에 서문(序文)과 발문(跋文) 등의 글을 많이 짓는다고 하고 호남(湖南)과 영남(嶺南) 지역에서 글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도 몹시 많다고 하니 이것은 얼마나 좋은 소식인지요? 사문(師門)에 계승할 사람이 있으니 우리 유가(儒家)는 다시 어찌 근심하겠습니까. 마음으로 좋아하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입으로 칭송하는 것이지만, 입으로 칭송하는 것은 옛 현인(賢人)이 경계하신 것이니, 그만두지 말라고 하면 받들어 면려하는 것이 가할는지요? 궁구하지 못한 것을 더욱 궁구하고 이미 정밀하게 한 것을 더욱 정밀하게 하는 이것이 우러러 가장 소망하는 것입니다. 저 성가(性家)는 올해 6월에 지난해 죽은 중제(仲弟) 아들의 죽음에 또 곡을 하였습니다. 그 죽은 조카는 본래 형제로서 혼자 남은 그 형은 나이가 겨우 서른둘인데 효우(孝友)와 재학(才學)은 다만 저희 집안에서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고을에서도 또한 추중(推重)을 받았는데 하늘은 집안의 운명을 어찌 이와 같이 적막하게 한 것인지요. 돌아보건대 이렇게 일흔이 된 나이에 이처럼 험악한 경우를 만났으니 애간장이 녹거늘 몸뚱이가 어찌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몸뚱이가 무너지거늘 정신이 어찌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정신이 사라지니 약간의 건성으로 읽은 보잘것없는 학업조차 어찌 능히 다시 익혀서 새것을 알아갈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생(生)을 헛되이 버리는 죄(罪)를 속죄할 수 없으니 비탄(悲歎)한 심정이 어떠하겠습니까. 또 근래에 스스로를 이미 망친 것을 살펴봄에 가히 공에게 용서를 구할 수 없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을유년(乙酉年, 1885, 고종22) 이후로 황산(凰山) 황산(凰山): 전라남도 장성군 동화면 남산리 황산마을을 말한다. 이곳에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묘소(墓所)가 있었다.
의 선사(先師, 奇正鎭, 1798∼1879, 字 大中, 號 蘆沙, 本貫 幸州, 諡號 文簡) 묘소(墓所) 묘소에 성묘(省墓)하지 못한 것이 첫 번째 죄(罪)이며, 선사의 저술 답문유편(答問類編) 답문유편(答問類編):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이 제자들과 학문적인 문제로 문답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15권 6책이다. 1891년(고종28) 목활자(木活字)로 초간(初刊)하였고, 1902년(광무6) 목판본(木板本)으로 중간(重刊)하였다.
을 간행하는 일에 한 차례도 가서 참여하지 못한 것이 두 번째 죄입니다. 여러 해 동안 한 심부름꾼을 보내 안부편지를 부치지 못한 것이 첫 번째 잘못이며, 지난가을 신호(莘湖, 金祿休, 1827∼1899, 字 穉敬, 號 莘湖, 本貫 蔚山)와 하간(河間) 하간(河間): 미상.
두 형(兄)이 돌아와서 며칠 동안 유상(遊賞)하였지만 끝내 서찰을 보내지 못한 것이 두 번째 잘못이며, 이번 가을 후윤(厚允) 후윤(厚允): 정재규(鄭載圭, 1843∼1911)의 자이다. 다른 자는 영오(英五), 호는 노백헌(老柏軒)ㆍ애산(艾山),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에 거주하였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이다. 1894년 갑오경장 이후 친일파의 개혁에 거의통문(擧義通文)을 내기도 하였고,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호남ㆍ영남에 포고문을 내어 세계 여러 나라에 호소하여 일본과 담판하기를 촉구하는 한편, 노성(魯城) 궐리사(闕里祠)에서 최익현(崔益鉉)과 거의하기로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저서로는 노백헌집(老柏軒集)이 있다.
이 한 차례 갈 때 바쁜 일을 제쳐두고 서찰을 부치지 못한 것이 세 번째 잘못입니다. 이것은 자범(子犯)이 이른바 “신은 오히려 스스로 지은 죄를 알고 있다.[臣猶自知之]”라고 한 것입니다. 자범(子犯)이……것입니다: 자범은 춘추시대 진(晉)나라 문공(文公)의 외삼촌 호언(狐偃)의 자이다. 그는 문공이 공자(公子) 신분으로 망명 중일 때 “제가 말고삐를 잡고 주군을 따라 천하를 돌아다니는 동안 저지른 죄가 매우 많습니다.[臣負羈紲, 從君巡於天下, 臣之罪甚多矣.]”라고 한 말을 끌어다 쓴 것이다. 《春秋左氏傳 僖公24年》
내년 봄에는 노쇠한 몸을 부축해서 한 번 찾아가서 공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하고 있을 뿐입니다. 답문유편의 일은 제 마음속의 생각을 대략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어서 함께 보내는 별지(別紙)에 적었습니다. 서찰을 보내는 법식(法式)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 착서(着署), 신묘년(辛卯年, 1891, 고종26) 11월 20일. 조성가(趙性家) 배(拜).
원서
松沙 經几
沙隷不以嶺行遍告各處而來 立夫適有疾 尙不寄一字 與無便无異 其吻所傳 豈能詳乎 韡床震艮冲裕 渾節泰平云 何等慰喜 那邊免歉 伻所知也 新枝所收 盈朒未詳云 然大可想矣幸也 大凡近來調度何如 華庇多眷 不至大段窘速否 必多禁絶 而嘗聞溫理工夫 作輟最忌 旣多事矣 勤篤之志 得無爲其所妨敓乎 公之擔夯重矣 竊爲公憂焉 如聞近來多做序跋文字 而湖嶺間受來者甚多 此何等好消息 師門繼述有人矣 吾黨復何憂焉 心好故不覺口譽 而口譽昔賢所戒 無已則奉勉可乎 益究其所未究 益精其所已精 是所第一仰望者也 性家今年六月 又哭去年所哭仲弟之子 本以兄弟 其兄獨存而年纔三十二者 孝友才學 非但私門所仗 亦鄕曲所推 天乎家運 胡如是索也 顧此七十 遭此噩境 腸寸蝕矣 形殼安得不敗 形殼敗矣 精神安得不耗 精神耗矣 如干呻佔薄業 豈能有燖溫之念哉 虛負此生之罪 無以贖矣 悲歎奈何 且省邇來自已敗闕 不可蒙見恕於公者 乙酉以後 未省凰山師墓 罪一也 答問類編印出之役 一未往參 罪二也 多年未走一伻問信 過一也 去秋莘河兩兄之回 數日遊賞 竟未付書 過二也 今秋厚允一行未能撥忙付書 過三也 此子犯所謂臣猶自知之者也 明春丕擬扶衰一進 而聽洪罏而已 類編事 不可不略暴私衷 錄在幷幅 不宣
辛卯至月二十日
趙性家 拜
沙隷不以嶺行遍告各處而來 立夫適有疾 尙不寄一字 與無便无異 其吻所傳 豈能詳乎 韡床震艮冲裕 渾節泰平云 何等慰喜 那邊免歉 伻所知也 新枝所收 盈朒未詳云 然大可想矣幸也 大凡近來調度何如 華庇多眷 不至大段窘速否 必多禁絶 而嘗聞溫理工夫 作輟最忌 旣多事矣 勤篤之志 得無爲其所妨敓乎 公之擔夯重矣 竊爲公憂焉 如聞近來多做序跋文字 而湖嶺間受來者甚多 此何等好消息 師門繼述有人矣 吾黨復何憂焉 心好故不覺口譽 而口譽昔賢所戒 無已則奉勉可乎 益究其所未究 益精其所已精 是所第一仰望者也 性家今年六月 又哭去年所哭仲弟之子 本以兄弟 其兄獨存而年纔三十二者 孝友才學 非但私門所仗 亦鄕曲所推 天乎家運 胡如是索也 顧此七十 遭此噩境 腸寸蝕矣 形殼安得不敗 形殼敗矣 精神安得不耗 精神耗矣 如干呻佔薄業 豈能有燖溫之念哉 虛負此生之罪 無以贖矣 悲歎奈何 且省邇來自已敗闕 不可蒙見恕於公者 乙酉以後 未省凰山師墓 罪一也 答問類編印出之役 一未往參 罪二也 多年未走一伻問信 過一也 去秋莘河兩兄之回 數日遊賞 竟未付書 過二也 今秋厚允一行未能撥忙付書 過三也 此子犯所謂臣猶自知之者也 明春丕擬扶衰一進 而聽洪罏而已 類編事 不可不略暴私衷 錄在幷幅 不宣
辛卯至月二十日
趙性家 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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