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자료
LDR | 00000nwb a2200000 k | ||
001 | 0100430705▲ | ||
005 | 20211122131930▲ | ||
007 | oi ▲ | ||
008 | 190910s1929 x 0 kor ▲ | ||
040 | ▼a221016▲ | ||
041 | ▼achi▲ | ||
085 | 5 | ▼a간찰▲ | |
090 | ▼a5-1▼b4220564▲ | ||
245 | 0 | 0 | ▼a簡札 /▼d周基鎰(損弟, 1862∼1930, 字 致珍, 號 玉峯, 本 尙州)[發信] ;▼e李鍾弘(族叔, 1879∼1936, 字 道惟, 號 毅齋ㆍ求溪, 本 驪州)[受信]▲ |
250 | ▼a筆寫本▲ | ||
260 | ▼a慶尙南道 :▼b周基鎰(損弟, 1862∼1930, 字 致珍, 號 玉峯, 本 尙州), ▼c기사년(1929) 11월 20일▲ | ||
300 | ▼a1張 :▼b古文書 ;▼c24.1×46.0㎝▲ | ||
500 | ▼a筆體: 行草書▲ | ||
500 | ▼a紙質:韓紙▲ | ||
500 | ▼a發信者:周基鎰(損弟, 1862∼1930, 字 致珍, 號 玉峯, 本 尙州)▲ | ||
500 | ▼a發信日:기사년(1929) 11월 20일▲ | ||
500 | ▼a受信者:李鍾弘(族叔, 1879∼1936, 字 道惟, 號 毅齋ㆍ求溪, 本 驪州)▲ | ||
500 | ▼a탈초 및 해제 : 정석태(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 | ||
520 | 4 | ▼a이것은 옥봉(玉峯) 주기일(周基鎰)이 의재(毅齋) 이종홍(李鍾弘)에게 노년에 지구의 죽음에 따른 소회를 언급하고, 자신이 지은 제문(祭文)을 수정해 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의 편지이다. 1929년 기사년 11월 20일에 발송하였다. 먼저 상대방을 찾아가 만나지도 못하고 있고 병이 깊어서 보내준 편지에 답장을 하지 못한 것이 이미 7년이나 되었다고 하고는, 자신의 벗 춘계(春溪) 류용기(柳龍起)의 죽음에 따른 소회를 언급하고 있다. 춘계(春溪) 류용기(柳龍起)가 세상을 떠난 지 이미 1년이 지나도 슬픔은 조금도 줄지 않고 고독한 심사가 더해지기는 상대방이나 자신이나 다를 것이 없을 것이라고 하고는, 자신은 이미 1년이 지나도록 칠팔 개월 동안 병으로 생사를 넘나드느라 달려가 조문(吊問)하지 못하고 있으니, 정례(情禮)로 보아 유명(幽明) 간에 저버린 것이 너무도 크다고 하였다. 그래도 죽을 날이 멀지 않아 곧 황천에서 만날 것이라 굳이 나쁜 마음을 갖지 않는다고 하고는, 머지않아 봄이 되면 한 번 가서 조문(吊問)할 계획인데 조물주가 방애하지 않을지 모르겠다고 한 다음, 이어서 우선은 억지로 제문(祭文)을 1통 지어서 황우(黃友)를 통해 대신 영전(靈前)에 고하려고 상대방에게 먼저 자신이 지은 제문(祭文)을 보내니 수정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런 다음 상대방의 안부와 근황을 묻고는, 자신은 가지 못하지만 상대방이 찾아오면 함께 노니는 것이 자신의 소원이라는 말로 편지를 끝맺고 있다.▲ | |
520 | 4 | ▼a躬造而緯繣面晤 疾痼而逋謝惠存 事事爲病于心者已七年矣 今則其不可得而止 雖悔何及 呻囈唿呪之中 無時不沿泝於同志之衰昏者 而種種晨星 寧欲無吪而不忍聞也 春溪之不于世 奄忽過期矣 凡在知舊 猶不禁益孤之歎 况乎如尊兄者 其所痛悼 豈以喪之過期而少降哉 鎰一自南爲之後 偶得奇疾 出沒鬼關者七八朔 而僅得不死 然重以咳喘作日課 而累纊于鼻 特未及泉矣 寧可復論於人事上道理耶 鎰之於此友 自謂得曠世而神交 而人亦不以爲妄也 承實之后 宜爲匍匐之不暇 而迄今未爲 心非不勤 奈筋力之不能爲禮何 負負之矣 靈其謂何 從岱之日 不遠伊邇 又不必苦苦作惡於眼前 須臾也 俟寒盡春回 另圖慰唁之行 而造物者之分劇 又預未可必 故强構祭文一度 托黃友爲之替告 可取看而裁之如何 謹詢冬令 棣床啓居淸謐 座頭在丌 心目昭然 必有不能問人道者 而英秀之信從 有堪誘入佛智者否 艶仰且祝 縱我不往 噬肯來遊 是區區之願也 可另諒也 未臨紙 不任忉忉 餘不備書禮 己巳十一月二十日 損弟 周基鎰 拜拜 ▲ | |
541 | ▼a于溪文庫▼b李炳赫(부산시 대연동) ▼c기증 ▼d2007.1.30▲ | ||
546 | ▼a漢文▲ | ||
650 | 4 | ▼a고문서▲ | |
653 | ▼a간찰▼a고문서 ▼a우계문고▼a우640▼a우640-1▲ | ||
700 | 1 | ▼a周基鎰(損弟, 1862∼1930, 字 致珍, 號 玉峯, 本 尙州)▼e발신▲ | |
700 | 1 | ▼a李鍾弘(族叔, 1879∼1936, 字 道惟, 號 毅齋ㆍ求溪, 本 驪州)▼e수신▲ |
簡札
자료유형
국내고서
서명/책임사항
簡札 / 周基鎰(損弟, 1862∼1930, 字 致珍, 號 玉峯, 本 尙州)[發信] ; 李鍾弘(族叔, 1879∼1936, 字 道惟, 號 毅齋ㆍ求溪, 本 驪州)[受信]
판사항
筆寫本
발행사항
慶尙南道 : 周基鎰(損弟, 1862∼1930, 字 致珍, 號 玉峯, 本 尙州) , 기사년(1929) 11월 20일
형태사항
1張 : 古文書 ; 24.1×46.0㎝
일반주기
筆體: 行草書
紙質:韓紙
發信者:周基鎰(損弟, 1862∼1930, 字 致珍, 號 玉峯, 本 尙州)
發信日:기사년(1929) 11월 20일
受信者:李鍾弘(族叔, 1879∼1936, 字 道惟, 號 毅齋ㆍ求溪, 本 驪州)
탈초 및 해제 : 정석태(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
紙質:韓紙
發信者:周基鎰(損弟, 1862∼1930, 字 致珍, 號 玉峯, 本 尙州)
發信日:기사년(1929) 11월 20일
受信者:李鍾弘(族叔, 1879∼1936, 字 道惟, 號 毅齋ㆍ求溪, 本 驪州)
탈초 및 해제 : 정석태(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
요약주기
이것은 옥봉(玉峯) 주기일(周基鎰)이 의재(毅齋) 이종홍(李鍾弘)에게 노년에 지구의 죽음에 따른 소회를 언급하고, 자신이 지은 제문(祭文)을 수정해 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의 편지이다. 1929년 기사년 11월 20일에 발송하였다. 먼저 상대방을 찾아가 만나지도 못하고 있고 병이 깊어서 보내준 편지에 답장을 하지 못한 것이 이미 7년이나 되었다고 하고는, 자신의 벗 춘계(春溪) 류용기(柳龍起)의 죽음에 따른 소회를 언급하고 있다. 춘계(春溪) 류용기(柳龍起)가 세상을 떠난 지 이미 1년이 지나도 슬픔은 조금도 줄지 않고 고독한 심사가 더해지기는 상대방이나 자신이나 다를 것이 없을 것이라고 하고는, 자신은 이미 1년이 지나도록 칠팔 개월 동안 병으로 생사를 넘나드느라 달려가 조문(吊問)하지 못하고 있으니, 정례(情禮)로 보아 유명(幽明) 간에 저버린 것이 너무도 크다고 하였다. 그래도 죽을 날이 멀지 않아 곧 황천에서 만날 것이라 굳이 나쁜 마음을 갖지 않는다고 하고는, 머지않아 봄이 되면 한 번 가서 조문(吊問)할 계획인데 조물주가 방애하지 않을지 모르겠다고 한 다음, 이어서 우선은 억지로 제문(祭文)을 1통 지어서 황우(黃友)를 통해 대신 영전(靈前)에 고하려고 상대방에게 먼저 자신이 지은 제문(祭文)을 보내니 수정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런 다음 상대방의 안부와 근황을 묻고는, 자신은 가지 못하지만 상대방이 찾아오면 함께 노니는 것이 자신의 소원이라는 말로 편지를 끝맺고 있다./躬造而緯繣面晤 疾痼而逋謝惠存 事事爲病于心者已七年矣 今則其不可得而止 雖悔何及 呻囈唿呪之中 無時不沿泝於同志之衰昏者 而種種晨星 寧欲無吪而不忍聞也 春溪之不于世 奄忽過期矣 凡在知舊 猶不禁益孤之歎 况乎如尊兄者 其所痛悼 豈以喪之過期而少降哉 鎰一自南爲之後 偶得奇疾 出沒鬼關者七八朔 而僅得不死 然重以咳喘作日課 而累纊于鼻 特未及泉矣 寧可復論於人事上道理耶 鎰之於此友 自謂得曠世而神交 而人亦不以爲妄也 承實之后 宜爲匍匐之不暇 而迄今未爲 心非不勤 奈筋力之不能爲禮何 負負之矣 靈其謂何 從岱之日 不遠伊邇 又不必苦苦作惡於眼前 須臾也 俟寒盡春回 另圖慰唁之行 而造物者之分劇 又預未可必 故强構祭文一度 托黃友爲之替告 可取看而裁之如何 謹詢冬令 棣床啓居淸謐 座頭在丌 心目昭然 必有不能問人道者 而英秀之信從 有堪誘入佛智者否 艶仰且祝 縱我不往 噬肯來遊 是區區之願也 可另諒也 未臨紙 不任忉忉 餘不備書禮 己巳十一月二十日 損弟 周基鎰 拜拜/
언어주기
漢文
주제(일반주제명)
청구기호
5-1 4220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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