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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小訥 盧相稷의 紫巖書堂 講學日誌이자 小訥 盧相稷의 日記이다. 小訥 盧相稷은 한말 혼란기에 과거시험을 통한 출사의 길을 포기하고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힘을 쏟았다. 그는 性齋 許傳의 嫡傳으로 일컬어질 정도로 학자로서 대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출사의 길을 포기하는 대신 일찍부터 후진양성을 위한 서당교육을 행하였다. 1883년(고종20)부터는 창녕군 이방면 동산리 菊洞의 일족 光州盧氏 문중재실 追遠齋에서 강학하였으며, 1888년(고종25)부터는 같은 국동의 일족 光州盧氏 문중재실 克己齋로 장소를 옮겨 강학하였으며, 1894년(고종31)에 동학란으로 밀양시 산외면 금곡리로 피난한 뒤 1895년(고종32)에는 그곳에 錦山書堂을 열어 강학하였으며, 1896년(고종33)에는 같은 밀양시 단장면 국전리 蘆谷으로 거처를 옮겨 紫巖草廬를 짓고 강학하였으며, 1914년에는 같은 노곡에 紫巖書堂을 신축해서 강학하였으며, 1919년에는 밀양시 단장면 사연리 秣方으로 거처를 옮겨 泗南書庄을 짓고 강학하였으며, 1926년에는 다시 蘆谷의 紫巖書堂으로 돌아와 강학을 하다가 서거하였다. 중간에 1911년 형 大訥 盧相益을 뒤따라 중국 남만주[서간도]로 일시 망명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1883년 29세 이후부터 서거한 1931년 77세까지 계속해서 서당교육을 행하였다. 특히 1910년 망국 이후 일제강점기 내내 교육구국의 기치를 높이 내걸고 서당교육을 계속 행하였다. 그러한 사실은 1910년 망국 이후 그가 葛軒 韓東愈(1885∼1961)에게 답한 한 서찰에서 “우리들은 운명이 박복하여 우리의 옛 나라를 지키지 못하였으므로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고, 학문을 해도 학문이 될 수 없습니다. 이미 죽을 자리를 얻지 못하였으니, 오히려 마땅히 우리 선왕께서 교육으로 자강을 꾀한 방책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라고 한 것으로 분명하게 확인이 된다. 1910년 망국 이후 노상직의 이와 같은 현실대처방식은 毅菴 柳麟錫(1842∼1915)이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유림의 현실대처방식으로 제시한 ‘處變三事’의 ‘무장투쟁[擧義掃淸]’, ‘은둔 또는 망명[去之守舊]’, ‘자결[致命遂志]’ 중 두 번째 ‘은둔 또는 망명[去之守舊]’하는 현실대처방식을 택한 것이다. 은둔 또는 망명, 곧 세상을 멀리 떠나서 자신의 옛 것을 지키겠다는 ‘去之守舊’의 입장과 행동에는 ① 중국대륙, 만주, 불라디보스토크 등 국외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종사하는 경우, ② 국내에서 경전을 싸 가지고 산으로 들어가 은둔하는 경우와 바다 속 섬으로 들어가 자신을 지키는 경우가 있다. 小訥 盧相稷이 紫巖書堂 등에서 은거 강학한 것, 곧 서당교육을 행한 것은 바로 ②의 경전을 싸 들고 산으로 들어가 은둔한 경우에 해당된다. 小訥 盧相稷의 서당일지 󰡔紫巖日錄󰡕과 書堂에 대한 기문 「紫巖書堂記」[盧相稷, 󰡔小訥集󰡕, 卷27] 등을 살펴볼 때, 그는 서당의 일지를 기록하는 제자들에게 그 일지에는 서당 밖의 세상사, 특히 시국문제에 대해서는 일체 기록하지 말 것을 엄명하였고, 紫巖書堂으로 건너오는 다리를 ‘斷塵橋’, 紫巖書堂으로 올라오는 입구에 있는 시내를 ‘洗心澗’으로 명명해서 세속과 완전 절연된 세계 속에서 오로지 舊學에만 전념하는 학문공동체[학문결사체]를 지향하였다. 그러나 그 학문의 목표가 엄연히 교육구국에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길러낸 인재의 다수가 그와 함께 파리장서[한국독립청원서]에 서명하고, 또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사들도 많이 나오게 되었다. 이와 같은 小訥 盧相稷의 서당교육정신, 곧 강학정신은 新山書院 창건 이후 김해지역에 맥맥히 계승되어 오던 新山書院의 강학정신과 한말에 그것을 되살려낸 性齋 許傳의 강학정신을 근대 망국의 위기상황에 현실에서 구현한 것이었다. 紫巖書堂 등 小訥 盧相稷의 서당이 김해가 아닌 밀양[단장]에 위치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김해지역유림의 정신을 계승한 것, 김해지역유림의 전통 속에 있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서당을 일반적인 대도회가 아닌 서원처럼 학자가 세속을 멀리한 채 조용하게 학문에 전념할 수 있는 곳에 두기 위해, 그래서 스승과 제자가 하나의 학문공동체[학문결사체]로써 서당마을을 이루어 강학해 나가기 위해 그 적지로 밀양[단장]으로 택한 것일 뿐이었다. 이곳에는 밀양과 김해와 창녕 등 경상남도 동부지역의 많은 선비들 찾아와서 학문을 익혔고, 그들은 스승과 제자가 하나의 학문공동체[학문결사체]로써 서당마을을 이루어 생활하였다. 그 때문에 서당에 소속된 구성원들은 儒契會[學契], 곧 紫巖學契 등을 조직하고 그 契金을 조성하고 운용해서 서당을 유지해 나갔다. 서당의 건물을 짓는 것에서부터 그 서당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그 서당에 소속된 구성원으로 조직된 儒契會[學契]와 그곳에서 거둬들인 契金으로 꾸려나갔다. 그리고 서당에 소속된 구성원, 곧 선생[主丈]과 제자[諸生]의 일상을 그곳의 주 구성원인 제자들이 당일의 당번 直日이 되어 매일 돌아가면서 서당일지 형태로 기록하였다. 따라서 이 서당일지 󰡔紫巖日錄󰡕 또는 󰡔紫巖日記󰡕는 서당의 日誌이면서, 서당 구성원의 日記, 그중에서도 매일 거의 빠짐없이 기록되는 선생[主丈]의 일상을 기록한 小訥 盧相稷의 日記이기도 하다. 원래는 1896년(고종33) 小訥 盧相稷이 밀양시 단장면 국전리 蘆谷으로 거처를 옮겨 紫巖草廬를 짓고 강학한 이후 1899년(광무3)부터 그가 서거한 1931년까지 33년 동안 매일매일 기록한 서당일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1899년(광무3)부터 1901년(광무5)까지의 권1, 권2, 권3, 권4, 권8, 권9, 권10, 권11, 권12, 권13, 권14, 권15, 권16, 권17, 권18, 권31, 권32, 권33, 권34의 모두 19권을 5책으로 묶어놓은 것, 그리고 󰡔紫巖日錄󰡕, 󰡔紫巖日記󰡕, 󰡔方齋日錄󰡕, 󰡔方齋日記󰡕, 󰡔泗南日錄󰡕, 󰡔日記󰡕 등이 부산대학교도서관 소장 小訥文庫와 개인소장[盧圭鉉] 등으로 더 전하고 있다. 그중 이 󰡔紫巖日錄󰡕은 1900년(광무4) 7월, 8월, 윤8월의 3개월 동안의 일지 권16[7월], 권17[8월], 권18[윤8월]의 3권의 小訥 盧相稷의 紫巖書堂日誌로, 5책으로 묶어놓은 것과는 별개의 本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紫巖書堂의 일상을 기록한 紫巖書堂日誌이면서 그 書堂의 선생의 일상도 소상하게 기록하여 小訥 盧相稷의 일상도 아울러 살펴볼 수 있게 기록한 小訥日記이기도 하다. 그 내용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紫巖日錄 卷16, 庚子(1900) 7月]
◎ 경자년(1900, 광무4) 7월 1일(경자) 맑음
오늘은 중복이다. 在廷이 夙興. ○ 제생들이 개를 잡아 文昌齋에서 조촐한 술자리를 열어 술을 마셨다. ○ 日課는 古詩 題目 ‘서책을 훼손하지 말 것을 경계함[戒勿毁書冊]’. 優等은 建弘, 中齋 優等은 命周. ○ 愚相이 어제 赤壁灘에서 놀다가 수건을 잃어버렸는데, 오늘 아침마을의 더벅머리 총각 朴癸文이 수건을 주워가지고 와서 말하기를 “이것은 필시 서재의 선비가 잃어버린 것일 텐데 제가 주워왔습니다.”라고 말하니, 그 심성을 알 수 있었다. ○ 銜은 요즈음 다래끼로 고생하고 있고 또 설사병을 앓고 있음에도 오히려 글짓기 공부를 부지런히 하였다. ○ 愚相과 鍾周은 謹身. ○ 夕講은 「夙夜箴」. ○ 上鉉은 謹身. ○ 이날 直日은 李厚明.
◎ 7월 2일(신축) 맑음
鍾周가 夙興. ○ 日課는 古詩 題目 ‘古鏡重磨方’. 優等은 銜, 中齋 優等은 基守. ○ 午後 古詩 題目 ‘운출을 대신해 기쁘게 그 부친에게 배례하다[代運出喜拜其大人]’. 優等은 愚相. ○ 夕講은 「四勿箴」. ○ 이날 直日은 盧在廷.
◎ 7월 3일(임인) 맑음
在廷이 夙興. ○ 海宗이 돌아왔다. 上鉉의 옷이 왔다. ○ 이날 主丈은 先妣 諱辰의 正齋 날이라서 主丈은 蘆花亭에서 致齋하였다. ○ 彦達이 來謁하다. 主丈의 從叔 穆淵 씨가 왔다. 咸陽의 盧童子 淳容[主丈의 族姪로 나이는 20세]이 來謁하였다. ○ 日課 古詩 題目 ‘苦熱行’. 默漢丈이 考選하였다. 優等은 愚相, 中齋 優等은 基守. ○ 諸生이 大訥丈에게 가서 問候하였다. ○ 夕講은 전례에 따라 정지하였다. ○ 이날 直日은 李基守.
◎ 7월 4일(계묘) 맑은
鍾周가 夙興. ○ 아침에 大訥丈이 제사 지낸 음식을 諸生이 먹도록 보내와 直日이 절하고 받았다. 山岳은 술을 이기지 못하였다. ○ 海宗은 청소를 부지런히 하였다. ○ 在廷은 謹身. ○ 基洛은 謹言笑. ○ 厚明과 命周는 讀書를 부지런히 하였다. ○ 孟文이 누웠다. ○ 銜은 병이 조금 나았다. ○ 愚哲은 謹身. ○ 主丈은 祖妣의 諱辰의 제사로 또 蘆花亭에서 致齋하였다. ○ 日課는 古詩 題目 ‘髻美人詞’. 黙漢丈이 考選하였다. 優等은 建弘, 中齋 優等은 基守. ○ 午後의 古詩 題目 ‘四皓奕碁圖’. 黙漢丈이 考選하였다. 優等은 基洛, 中齋 優等은 承立. ○ 夕講은 전례에 따라 정지하였다. ○ 이날 直日은 孫上鉉.
◎ 7월 5일(갑진) 맑음
鍾周가 夙興. ○ 彦達이 하직하고 물러갔다. ○ 厚明은 謹身. ○ 日課는 古詩 題目 ‘談孺人伏虎圖’. 優等은 基洛, 中齋의 優等은 孟文. ○ 午後의 古詩 題目 ‘新豐行’. 優等은 銜, 中齋 優等은 特容. ○ 夕講은 「消人慾銘」. ○ 이날 直日은 金鍾周.
◎ 7월 6일(을사) 맑음
鍾周가 夙興. ○ 基守가 누웠다. ○ 諸生이 모두 文昌齋에 가서 묵는데 在廷 鍾周 孟文 세 사람이 大訥丈을 모시고 잤다. ○ 日課는 古詩 題目 ‘정한조에게 부치다[寄鄭漢朝]’. 優等은 愚直, 中齋 優等은 海宗. 또 다른 題目 ‘7월 6일에 나무에서 까치가 지저귀는 것을 보고 은하수 다리 이야기가 근거 없음을 탄식하다[七月六日見園樹鵲噪嘆河橋之說無據]’. 優等은 建弘, 中齋 優等은 承立. 夕講은 「心箴」. ○ 이날 直日은 盧明煥.
◎ 7월 7일(병오) 낮에 가랑비
愚相이 夙興. ○ 이날 諸生은 말과 웃음을 삼가지 않았다. ○ 日課는 古詩 題目 ‘이태백의 호승가에 차운하다[次太白胡僧歌]’. 優等은 銜. 또 다른 古詩 題目 ‘項王墓’. 優等은 銜과 基洛. ○ 夕講은 「長天理銘」. ○ 이날 直日은 許銜.
◎ 7월 8일(정미) 맑음
在廷이 夙興. ○ 基守가 독서를 부지런히 하였다. ○ 運出은 應對에 민첩하였다. ○ 建弘이 낮잠을 잤다. ○ 日課는 古詩 題目 ‘기해년(1899, 광무3) 전례에 따라 소학을 강하다[依己亥例講小學]’. 優等은 弼良, 中齋 優等은 命周. ○ 夕講은 「克己銘」. ○ 이날 直日은 李愚相.
◎ 7월 9일(무신) 맑음
在廷이 夙興. ○ 日課는 古詩 題目 ‘범노공이 조카를 경계한 시를 보충해 짓다[足范魯公戒從子詩]’. 優等은 李愚相, 中齋 優等은 命周. ○ 夕講은 「布衾銘」. ○ 이날 直日은 李愚哲.
◎ 7월 10일(기유) 맑음
海宗이 夙興. 昌寧의 심부름꾼이 돌아갔다. 中洞은 進士 盧應祜 씨가 主丈께 서찰을 보냈다. 菊洞의 盧秀實[字 士成]과 盧燾容[字 天汝]이 主丈에게 서찰을 올렸는데, 그 서찰에 “在直의 大人 禧容 씨가 지난달 25일에 별세했다.”라고 하였다. ○ 文昌齋의 諸生이 謹愼하지 않다. ○ 살내[箭川]의 심부름꾼이 와서 特容의 再行을 청하였다. ○ 日課는 古詩 題目 ‘函谷關’. 優等은 建弘, 中齋 優等은 基守. ○ 이날 直日은 李愚直.
◎ 7월 11일(경술) 비
鍾周가 夙興. ○ 特容이 살내[箭川]로 감에 主丈 형제가 서찰을 써서 李鍾珏丈에게 답장을 하였다. ○ 直容이 하직하고 물러갔다. ○ 大訥丈이 술과 음식을 차려 諸生들에게 먹였다. ○ 日課는 古詩 題目 ‘차를 마시다[飮茶]’. 優等은 厚明, 中齋 優等은 命周. ○ 午後의 題目은 ‘구백촌의 금광[九白村金鑛]’. 優等은 銜. ○ 夕講은 「蒙齋銘」. ○ 이날 直日은 金基洛.
◎ 7월 12일(신해) 비
承立이 夙興. ○ 愚相 愚哲 愚直 愚甸 厚明이 文昌齋에서 비에 막혀 오지 못하자, 主丈이 仙禮로 하여금 朝飯을 가져다주게 하였다. ○ 日課는 古詩 題目 ‘義馬塚’. 優等은 銜, 中齋의 優等은 基守. ○ 午後의 題目은 ‘공자묘를 알묘하다[拜夫子廟]’. 優等은 愚相. ○ 寔容이 그 姑母를 모시고 金谷에 갔다. ○ 夕講은 「心經贊」. ○ 이날 直日은 李愚甸.
◎ 7월 13일(임자) 비
孟文이 夙興 ○ 孟文이 海宗에게 붓을 빌리고 또 지은 작품도 빌렸기 때문에 主丈은 直日에게 명하여 특별히 매를 치는 벌을 주게 하였다.[海宗은 3대, 孟文은 5대] ○ 文昌齋 諸生이 말을 조심하지 않았다. ○ 在廷은 謹身. ○ 基守가 제사음식을 가져와서 有司가 절하고 받아서 諸生에게 나누어 먹게 하였다. ○ 日課는 古詩 題目 ‘행당의 동자[杏堂童子]’. 優等은 海宗, 中齋 優等은 命周. ○ 夕講은 「敬銘」. ○ 詩帖 「霽塢幽逕」 “오솔길 열고 그 곁에다 한 그루 오동 심어, 둥지 찾는 봉황이 쉽게 찾게 하고파라. 밤낮으로 사양 않고 부지런히 왕래하니, 무엇보다 갠 날 밤 달 뜬 때가 가장 좋네.[開逕傍裁梧一枝 尋捿易使鳳凰知 不辭夙夜勤來往 最好塢頭霽月時]” 이것은 建弘의 시이다. ○ 이날 直日은 李厚明.
◎ 7월 14일(계축) 맑음
在廷이 夙興. ○ 山岳과 承立이 아침에 자려고 누웠다. ○ 上鉉은 석 달 여름 내내 한 번도 누운 적이 없었다. ○ 日課는 古詩 題目 ‘浮島’. 優等은 建弘, 中齋의 優等은 海宗. ○ 家容이 부지런히 독서하였다. ○ 孟文이 󰡔字會󰡕를 부지런히 공부하였다. ○ 夕講은 「太極圖說」. ○ 이날 直日은 盧在廷.
◎ 7월 15일(갑인) 맑음
鍾周가 夙興. ○ 文昌齋에서 庭揖禮를 행하였다. 約正은 黙漢丈, 一有司는 許銜, 二有司는 李愚相, 直日 李基守는 曺司가 되었기 때문에 孫上鉉이 贊行하고, 贊唱은 李愚哲, 曺司는 李基守, 中讀은 盧在廷, 左讀은 李愚直, 右讀은 李厚明, 執約은 盧特容, 執案은 金建弘, 司筵은 李承立, 司繩은 盧家容과 愚哲, 善唱笏은 姜麒麟. ○ 蘆花亭의 使喚 아이가 九思, 九容, 「陋室銘」에 통하였다. ○ 日課는 古詩 題目 ‘黃花祭伯夷火作’. 優等은 弼良. ○ 主丈이 仙禮로 하여금 文昌齋에서 사람들에게 점심을 대접하게 하였다. ○ 庭揖禮를 마치자 大訥丈이 술을 사서 諸生들을 먹였다. ○ 午後에 大訥丈이 諸生으로 하여금 聯句를 짓게 하였다. ○ 基洛, 命周, 在廷, 厚明은 謹身. ○ 愚相과 愚甸은 謹言笑. ○ 夕講은 「主一齋銘」. ○ 이날 直日은 李基守.
◎ 7월 16일(을묘) 맑음
基洛과 孟文이 夙興. ○ 雲田 尹成弼[字 衡殷, 나이 26세, 본관 坡平]이 來謁하였다. ○ 山岳이 上鉉에게 청하여 말하기를 “내가 지금 그대의 책을 베껴 줄 것이니, 그대는 나를 위해 日課 1首를 지어주면 어떻겠는가?”라고 하여 上鉉이 허락하였다. 主丈이 알고서 上鉉에게 벌을 주며 말하기를 “어찌 자신을 이롭게 하느라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이냐?”라고 하시고, 또 直日로 하여금 山岳을 面責하게 하셨다. ○ 日課는 古詩 題目 ‘山天齋’. 優等은 銜, 中齋 優等은 海宗. ○ 夕講은 「尊德性齋銘」. ○ 詩帖 「心澗飛瀑」. “미친 물결 옥을 뿜어 연애를 날리는데, 강 언덕엔 안개 짙고 비치던 해 돌아가네. 끝내는 바다로 가 파도가 될 것인데, 누가 알랴 원두에서 활수가 흘러옴을.[狂波噴玉動涓埃 兩岸烟凝日照回 終能注海波濤作 誰識源頭活水來]” 이것은 上鉉의 시이다. “시내에 비 막 걷히어 먼지를 적셨는데, 미친 물결 작은 폭포 울리는 소리 돌아오네. 부서진 옥 흩날리니 하늘에서 떨어진 듯, 낱낱의 가벼운 옥 바위 위에 구른다오.[澗雨初晴浥澗埃 狂流小瀑吼聲回 飛飛淬玉如天落 個個輕珠轉石來]” 이것은 愚相의 시이다. “쏟아지는 흰 물결이 티끌먼지 끊었는데, 하늘 위론 참으로 은하수 돌고 있네. 만류문 그 앞에 우레 홀연 내려치니, 그 큰 소리 밤이라 자암에 들려오네.[飛流白浪絶塵埃 天上□如銀漢回 萬柳門前雷忽動 雄聲夜入紫巖來]” 이것은 基洛이 지은 시이다. ○ 이날 直日은 李基守.
◎ 7월 17일(병진) 맑음
在廷이 夙興. ○ 厚明과 愚甸은 謹言. ○ 在廷은 여름 석 달 동안 한 번도 눕지 않았다. ○ 日課는 古詩 題目 ‘紫玉山’. 優等은 銜. ○ 夕講은 「陋室銘」. ○ 詩帖 「盥巖涷溜」. “시내의 눈 급류에 녹아 얼음 뼈가 생기는데, 쩡쩡 파고 부수니 쟁그랑 옥 울린다오. 날 깨워 여러 벗들 새벽에 관암에 나와, 은물결 손을 담가 속세의 맘 씻는다오.[澗雪和溜氷骨生 冲冲鑿破玉錚鳴 警我諸朋晨出盥 銀波着手滌塵情]” 이것은 愚相의 시이다. ○ 이날 直日은 鍾周.
◎ 7월 18일(정사) 맑음
命周가 夙興. ○ 銜이 낮잠을 잤다. ○ 愚甸과 孟文이 누웠다. ○ 基守가 낮잠을 잤다. ○ 日課는 古詩 題目 ‘미리정에서 장절공 신숭겸의 옛일을 추억하다[美理井憶申壯節古事]’. 優等은 愚相, 中齋 優等은 海宗. ○ 德法里 蔣洪珠[字 明爾, 나이 21세, 本貫 牙山]가 來謁하다. ○ 善山 庫基의 崔善熙[字 在文, 나이 28세, 本貫 慶州]가 來謁하였다. ○ 甲哲이 來謁하였다. ○ 夕講은 「座右銘」. ○ 詩帖 「柳門碧陰」. “선생의 문 앞 버들 푸르기가 연기 같고, 가지와 잎 하늘하늘 문 건너에 연이었네. 꾀꼬리도 손님을 맞을 줄을 아는지, 소리소리 한낮의 그늘 가로 보내오네.[先生門柳碧如烟 枝葉依依隔水連 黃鳥亦知迎客意 聲聲啼送午陰邊]” 이 시는 善熙가 지은 것이다. ○ 이날 直日은 盧山岳.
◎ 7월 19일(무오) 맑음
在廷이 夙興. ○ 洪珠가 하직하고 물러갔다. ○ 愚哲은 談論을 잘하였다. ○ 上鉉은 꾀를 써서 사람을 부렸다. ○ 日課는 古詩 題目 ‘함화암에 올라 일출을 보다[擬登含花菴觀日出]’. 優等은 愚相. ○ 夕講은 「求放心箴」. ○ 이날 直日은 許銜.
◎ 7월 20일(기미) 맑음
銜이 夙興. ○ 上鉉이 文昌齋에서 아침 일찍 세수하고 왔다. ○ 銜은 옷이 맞지 않았다. ○ 在廷은 혼미하고 가라앉은 기색이 있었다. ○ 日課는 古詩 題目 ‘자암초려의 경자년 동강록[紫巖草廬庚子同講錄]’. 優等은 上鉉, 中齋 優等은 基守. ○ 夕講은 「調息箴」. ○ 釜谷의 심부름꾼이 와서 愚相 愚哲 愚直 愚甸이 家書를 받았고, 각각의 집에서 어물과 흰 버선 한 족씩을 主丈께 보냈다. 愚相과 愚哲은 각각 돈 15냥을 容衆所에 납부하고, 愚直과 愚甸은 각각 돈 5냥을 容衆所에 납부하였다. ○ 詩帖 「東山秀松」. “만 그루 솔 우뚝하게 자암 동쪽에 솟았는데, 고사가 서성이니 기미 서로 통한다오. 푸른 파도 날마다 거문고 소리 울리나니, 무리지어 깃든 학과 같음을 뽐낸다오.[萬株杰聳紫巖東 高士盤桓氣味通 翠濤日日鳴琴韻 借許群棲野鶴同]” 이것은 建弘이 지은 것이다. “외솔은 우뚝하게 자암 동쪽에 솟았는데, 사계절 창창한 것 한 기로 통한다오. 풍상이 백 번 쳐서 굳은 절개 지키나니, 세모에야 한 해 농사 같음을 알게 되네.[孤松特立紫巖東 四序蒼蒼一氣通 風霜百變持堅節 歲暮方知歲事同]” 이것은 上鉉이 지은 것이다. ○ 이날 直日은 李愚相.
◎ 7월 21일(경신) 맑음
愚直이 夙興. ○ 釜谷의 심부름꾼이 돌아감에 愚相 등이 각각 家書를 부쳤다. ○ 오늘은 末伏이고, 또 본 書堂의 夏課의 硏鑽을 마치는 날이다. 書堂의 하인에게 개를 잡고 술을 거르게 하고, 또 밀가루로 면을 뽑아 국수를 먹었는데, 이것은 愚哲의 집에서 보낸 것이다. ○日課 古詩 題目 ‘시를 동지들에게 부쳐 9월 6일에 만나기로 약속함[寄詩諸同志約九月六日相逢]’. 優等은 愚直, 下齋 優等은 家容. 主丈이 술 한 동이를 사서 壯元禮를 행하였다. ○ 詩帖. “서쪽 하늘 서늘한 기운 모정을 파고드니, 이날은 우리들의 하과 마친 날이라오. 높은 솔은 동산 위에 울창하게 자라 있고, 푸른 버들 시냇가에 가지가지 늘어졌네. 층층의 닭 울음소리 지는 해는 뉘엿뉘엿, 서늘한 매미소리 하늘은 말갛다오. 석 잔 새로 마시고 자리를 파하고는, 서안의 책 마주한 채 세속 생각 막는다오.[西天凉氣穿茅亭 是日吾儕夏課停 喬松鬱鬱東山上 碧柳垂垂小澗汀 鷄語層生遲日影 蟬聲寒動淨天形 三杯新傾罷□□ 敬對床書俗慮屛]” 이것은 在廷의 시이다. “청산의 정자에는 갓 쓴 선비 가득한데, 긴 여름의 하과를 이 날에 마쳤다오. 만 그루의 매미 소리 작은 동산에 들려오고, 한 가닥 풀피리 소리 안개 낀 물가 지난다오. 서풍 부는 들의 주막 사람은 술을 사고, 남국이라 백일장에 손님 모습 청수하네. 노닐던 맘 다 못한 채 모인 이들 흩어지고, 천태산의 문월만이 주렴 병풍 비춘다오.[儒冠簇簇碧山亭 長夏課詩此日停 萬樹蟬歌來小苑 一聲蔥笛過烟汀 西風野店人沽酒 南國詩場客瘦形 未盡遊情回屐散 天台文月照簾屛]” 이것은 愚相이 지은 것이다. ○ 이날 直日은 李愚直.
◎ 7월 22일(신유) 맑음
在廷이 夙興. ○ 主丈은 병환이 있으셨다. ○ 崔善熙가 하직하고 물러갔다. ○ 弼良이 삼베적삼을 善熙에게 주었다. ○ 厚明이 丹亭에 갔다. ○ 夕講은 「四勿箴」. ○ 이날 直日은 李愚直.
◎ 7월 23일(임술) 맑음
在廷이 夙興. ○ 盧山岳과 李承立이 歸覲하다. 主丈은 글을 중정하고, 諸生은 시를 증정하였다. ○ 大訥丈이 닭국과 기장밥을 마련하여 諸生에게 점심을 대접하였다. ○ 命周가 歸覲하다. ○ 夕講은 「金人銘」. ○ 이날 直日은 金基洛.
◎ 7월 24일(계해) 맑음
純容이 夙興. ○ 鍾周, 純容, 運出이 하직하고 물러가자, 主丈은 글을 증정하고, 諸生은 시를 증정하였다. ○ 厚明이 돌아왔다. ○ 炳務가 주장께 上書하였다. ○ 夕講은 「西銘」. ○ 詩帖 「細谷叢竹」. “빽빽하게 자란 초목 앞뜰 에워쌌는데, 그중에서 푸른 대를 가장 사랑한다오. 속세의 티끌먼지 너희 능히 막아주어, 귀에 들려오는 것은 오로지 맑은 바람.[叢叢草樹擁前庭 最愛其中竹色靑 爾能遮得塵埃氣 只有淸風到耳聽]” 이것은 在廷이 지은 것이다. “백 마디의 용손이 바위 뜰에 가득하니, 무성한 대 그림자 나를 향해 푸르다오. 회억하니 산창에서 눈보라 치던 밤에, 쟁그랑 옥소리가 고요 속에 들린다오.[百節龍孫滿石庭 扶疎枝影向人靑 回憶山窓風雪夜 鏗鏘玉瑟靜中聽]” 이것은 愚相이 지은 것이다. ○ 이날 直日은 李愚甸.
◎ 7월 25일(갑자) 비
厚明이 夙興. ○ 愚相, 愚哲, 愚直, 基守 등이 文昌齋에서 비에 막혀 오지 못하였다. ○ 主丈이 書齋의 하인에게 아침과 점심 찬합을 가져가게 하였다. ○ 夕講은 「消人慾銘」. ○ 이날 直日은 李厚明.
◎ 7월 26일(을축) 맑음
上鉉이 夙興. ○ 基守가 낮잠을 잤다. ○ 厚明와 上鉉은 謹言. ○ 寔容이 돌아왔다. ○ 在憲이 主丈께 上書하였다. ○ 夕講은 「心銘」. ○ 이날 直日은 盧在廷.
◎ 7월 27일(병인) 맑음
在廷이 夙興. ○ 台洞의 安都事, 安承旨, 進士 安鍾奭이 蘆花亭 大訥丈의 患候를 문병하러 왔다. ○ 武陵洞의 李弼圭, 李弼秀, 李斗衡이 蘆花亭 大訥丈을 찾아뵙고 갔다. ○ 台洞 安鍾湜은 바로 愚相의 매부인데, 여자 하인을 보내 편지, 그리고 愚相이 여행 중에 신을 신발과 먹을 음식 두 가지를 보내자, 愚相이 鍾湜에게 답장을 썼다. ○ 在廷이 자못 행동거지를 삼갔다. ○ 愚哲의 설사 증세가 조금 나았다. ○ 命周가 돌아왔다. ○ 基守가 낮잠을 잤다. ○ 夕講은 「長天理銘」. ○ 이날 直日은 李基守.
◎ 7월 28일(정묘) 맑음
上鉉이 夙興. ○ 諸生이 가서 籠巖의 樹石을 완상하고 佔畢齋 선생의 옛 자취를 찾고 싶다고 하여 곧바로 主丈께 아뢰었다. 主丈이 말씀하시기를 “籠巖은 비록 완상할 만한 곳이기는 하지만, 여기서 籠巖까지는 20여 리나 떨어져 있어서 하루 만에 갔다가 돌아올 수 없고, 또 지나는 곳에는 일찍이 旅店도 없었으니, 제군들은 10여 명은 사방 어디에도 親知가 없으면서 어떻게 留宿하고 끼니를 해결하려 하느냐? 지난 갑오년(1894, 고종31)에 錦山의 寓舍에서 古琴 孫丈을 따라 길을 돌아서 이곳에 들어갔는데, 길을 가는 도중에 우연히 굶주리게 되어 泉石을 배회하면서 몹시 곤란하고 민망한 일을 당하였네. 지금 제군들은 경솔하게 출발하는 것은 불가하고, 또 제군들은 아직 遊賞할 나이가 아니니, 천천히 훗날 기회를 기다리는 것이 가하네.”라고 하셨다. 愚哲이 말하기를 “愚哲 등은 각기 백 리 밖에 살고 있으니, 이처럼 단란한 모임은 쉽게 이루어지기 어려울 듯합니다. 또 동행 가운데 東道의 主人이 있어서 10여 인이 留宿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합니다. 청하옵건대 동지 여러 군자들과 하루 이틀 遊賞하고 시를 읊다가 돌아오겠습니다.”라고 하였다. 主丈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참으로 허락하기 어려우니, 蘆花亭에 가서 여쭙는 것이 좋겠다.”라고 하셔서, 愚哲과 基洛이 蘆花亭의 大訥丈에게 가서 여쭙고 허락을 받았다. 銜, 愚相, 愚哲, 愚直, 基洛, 厚明, 在廷, 愚甸, 基守, 上鉉이 籠巖에 놀러가게 되었다. 龍包의 安熙洙와 台洞의 安鍾湜이 來謁하였다. 主丈이 말씀하시기를 “이제는 제군들이 籠巖을 잘 유람할 계획을 할 수 있겠다. 安熙洙와 함께 간다면, 골짜기의 길에 매우 익숙하고 留宿할 방도도 절로 군색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시고는, 인하여 그 자리에서 安熙洙에게 諸生들과 함께 가달라고 부탁하니, 安熙洙가 말하기를 “감히 제 마음대로 할 수는 없고 집의 어른께 여쭈어본 뒤에 여러 군자들과 함께 가는 것을 약속할 수 있겠습니다.”라고 하였다. 諸生들은 인하여 그와 함께 가게 되었는데, 主丈이 말씀하시기를 “銜, 愚相, 愚哲은 가서 安熙洙의 大人을 뵙는 것이 좋겠다.”라고 하셨다. ○ 炳務와 鉀이 來謁하였다. ○ 午後에 炳務, 鉀, 鍾湜이 하직하고 물러갔다. 鉀이 말하기를 “내일 宜寧으로 길을 떠나려고 합니다.”라고 하니, 主丈은 安英濟와 安銓에게 서찰을 쓰시고, 겸하여 󰡔克齋集󰡕 2질은 그 편에 부치셨다. ○ 主丈이 몸이 편찮아서 아직도 싹 낫지 않으셨다. ○ 李炳駿이 主丈께 上書하였다. ○ 夕講은 「克己銘」. ○ 이날 直日은 孫上鉉.
◎ 7월 29일(무진) 비
命周가 夙興. ○ 오늘은 寔容 大夫人의 생신이었다. 命周와 海宗은 蘆花亭에서 朝飯을 먹었다. ○ 昌寧의 成璨永[字 武玉]이 來訪했다가 이어서 武陵으로 갔다. ○ 夕講은 「布衾銘」. ○ 詩帖 「題憶籠巖遊伴」. “농암을 오늘에야 유상을 하였으니, 사백 전 점필 선생 향기를 남기셨네. 부럽구려, 제현들 진경을 찾아가서, 티끌먼지 모래섬에서 말끔히 씻어낸 게. 아이라서 함께 놀 인연을 못 가진 채, 바람결에 가을날 재약산만 가리켰지. 등불 켜고 홀로 앉아 시름에 잠 못 이루는데, 오경에 뿌리는 비 긴 모래섬 지나가네.[籠巖今日辦遨遊 佔畢遺芬四百秋 却羨諸賢眞境做 痛將塵滓洗長洲 童稚無緣共與遊 臨風指點藥山秋 獨坐寒燈愁不寐 五更疎雨過長洲]” 이것은 建弘의 시이다. “지금 사람 옛 사람의 유상을 이었나니, 네 고을 선비들이 칠월에 떠났다오. 부끄럽네, 못난 나는 참으로 연분 없어, 서글피 성연의 첫째 모래섬 바라보네.[今人擬續古人遊 四郡衣冠七月秋 却慚愚陋無眞分 悵望星淵第一洲]” 이것은 海宗의 시이다. ○ 이날의 直日 黃命周.
◎ 7월 30일(기사) 비
建弘이 夙興. ○ 召音의 李主事가 主丈께 서찰을 보냈다. ○ 甘勿의 玄童子가 表忠寺에서 돌아왔다. 스스로 말하기를 “그저께 紫巖의 諸賢 11명과 함께 절집에서 留宿하였는데, 밥을 먹고난 뒤에 諸賢들은 內院 西菴으로 갔고, 자신은 오늘 비를 무릅쓰고 이곳에 왔습니다.”라고 하였다. 主丈이 들으시고는 建弘 등에게 말하기를 “籠巖의 유람도 내가 오히려 허락하지 않았거늘, 더구나 절집까지 갔으니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무리 지어 遊山하는 禍는 이미 옛날 謝氏 집안에 그 증거가 있는데다, 또 승려들은 손님 대접을 좋아하지 않고, 바위산의 좁은 길은 더운 철에 오를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이것은 작은 일이다. 반걸음 한걸음 옮기는 동안에 이미 어른의 뜻을 살피지 않았으니 이러한 버릇이 점차 자란다면, 어찌 거리낌이 없는 지경에 이르지 않겠는가.”라고 하셨다. ○ 詩帖 「표충사에 짝지어 함께 노닌 것을 경계하다[戒表忠遊伴]」. “절집에 올라가서 함께 완상하였는데, 명승 중 몇 가지가 눈 안에 들어왔나. 한하나니, 평소에 진실하던 그 마음, 스승 말씀 돌연 어기고 멋대로 다닌 것이.[僧舍登臨賞玩同 名區幾物入眸中 竊恨平生眞實意 忽違師訓任南東]” 이것은 建弘의 시이다. “스승의 가르침을 함께 복응해온지라, 조심조심 언제나 법도 안에 있었다오. 무슨 맘에 농암으로 놀러간 그 발걸음, 분분하게 곧바로 재약산의 동쪽을 향해 갔나.[函筵謨訓服膺同 屬屬常存規矩中 那意籠巖遊子屐 紛紛直向藥山東]” 이것은 海宗의 시이다. ○ 이날의 直日은 黃命周.

[紫巖日錄 卷17, 庚子(1900) 8月]
◎ 경자년(1900, 광무4) 8월 1일(경자) 비
建弘이 夙興. ○ 銜의 집안 하인이 왔는데, 銜의 부인이 아프다고 하였다. ○ 主丈은 「小心集」을 교정하기 시작하였다. ○ 夕講은 「蒙齋銘」. ○ 이날 直日은 黃命周.
◎ 8월 2일(신미) 흐림
海宗이 夙興. ○ 銜과 愚相 등 10인이 돌아와서, 그들이 遊賞하며 지은 여러 시를 考選하였다. ○ 夕講은 「心經贊」. ○ 이날 直日은 黃命周.
◎ 8월 3일(임신) 흐림
基洛이 夙興. ○ 基洛과 銜이 歸覲하면서 古詩 1수를 上鉉에게 증정하였다. ○ 炳濩와 載가 來謁하였다. ○ 召音의 심부름꾼이 갔다. ○ 夕講은 「敬銘」. ○ 詩帖. “책 짐 매고 남으로 온 이 모두 다 소년인데, 푸른 등불 밤마다 자암을 밝혔다오. 버들 도랑 가을바람 매미소리 진동하고, 국화철의 좋은 약속 기러기가 전한다오. 며칠을 부질없이 표충사에 함께 놀다, 내일 아침 헤어짐에 강의 배를 사모하네. 서남쪽의 길이 멀다 말하지 마시게나, 백 년 인생 천진을 즐기기를 늘 원하네.[負笈南來盡少年 碧燈夜夜紫巖前 柳港新凉蟬語動 菊秋佳約雁聲傳 數日空携忠寺屐 明朝相別慕江船 莫謂西南程遠隔 百年長願樂眞天]” 이것은 上鉉의 시이다. ○ 이날 直日은 李愚相.
◎ 8월 4일(계유) 맑음
建弘이 夙興. ○ 炳濩와 載가 하직하고 물러가고, 愚相 愚直 基洛 愚甸 厚明 上鉉 海宗이 歸覲하니, 主丈이 濟濟橋 머리에서 전별하고, 諸生은 台洞의 시내 밖까지 가서 전별하였다. ○ 基守가 󰡔古文眞寶󰡕 後集을 배웠다. ○ 主丈이 金德文 基洙[基洛의 兄]의 예전에 보낸 서찰에 이제 답장을 보냈다. ○ 夕講은 「太極圖說」. ○ 이날 直日은 盧在廷.
◎ 8월 5일(갑술) 맑음
建弘이 夙興. ○ 建弘이 梁山에 省墓를 갔다. ○ 夕講은 「主一齋銘」. ○ 이날 直日은 李基守.
◎ 8월 6일(을해) 맑음
在廷이 夙興. ○ 龍包의 安弼遠이 來謁하였다. ○ 台洞의 參奉 安璋遠과 安建猷 徽遠, 黃澗의 朴達甫 燦根이 來訪하였다. ○ 金谷의 盧在憲과 安彦達이 來謁하였다. ○ 甲哲이 歸覲하였다. ○ 夕講은 「尊德性齋銘」. ○ 이날 直日은 黃命周.
◎ 8월 7일(병자) 맑음
命周가 夙興. ○ 安璋遠이 하직하고 갔다. ○ 夕講은 「陋室銘」. ○ 이날 直日은 盧在廷.
◎ 8월 8일(정축) 낮에 비
在廷이 夙興. ○ 在憲과 彦達이 하직하고 물러갔다. ○ 宅容이 來謁하였다. 夕講은 張思叔의 「座右銘」. ○ 詩帖. “하늘이 사람에게 인과 의를 주었나니, 욕망 막아 성 간직해 한 몸의 주인 되라. 바라건대 어진 스승 가르침을 공경히 들어, 허물 서로 고쳐주어 참으로 일신하라.[天受斯民義與仁 存誠窒慾主乎身 願言敬聽賢師訓 過惡相規苟日新]” 이것은 在廷의 시이다. “사람의 떳떳한 바로 인에 있나니, 극기복례 힘을 써서 경으로 몸을 세워야지. 둘로 셋으로 하지 말고 마음을 오로지 집중해서, 밤낮으로 온습하면 필히 새것 알게 되리.[人之常德在於仁 克復孜孜敬立身 勿貳勿參心主一 暮朝溫故必知新]” 이것도 在廷의 시이다. ○ 匪賊 29인이 銃劍을 가지고 台洞에 들어와 安承旨를 잡아서 武陵 李敏九 丈의 집에 머물렀다. 淸道 仙巖의 朴參奉도 또한 잡혀왔다. ○ 이날 直日은 李基守.
◎ 8월 9일(무인) 흐리다 비
家容이 夙興. ○ 台洞의 安都事, 李秉九 丈, 李尙碩, 生員 孫瑢憲이 來訪하고 갔다. ○ 匪賊 29인이 安承旨를 잡아갔다. ○ 詩帖. “번뇌를 끊으려고 단진교로 홀로 가니, 다리 아래 남은 물엔 버들가지 잠겼다오. 긴 여름 김해에선 더위를 걱정했고, 중추에 밀양에선 맑은 밤을 보낸다오. 서안에 쌓인 읊은 시들 함께 지낸지 오래되고, 바위 곁에 지은 서당 세상 근심 사라지네. 우매한 이 갈림길로 달려들 가든 말든, 내일 아침 멀리 가려 사공을 부리리라.[休煩獨向斷塵橋 橋卞殘溜蘸柳條 長夏金陵愁病暑 中秋凝峽度淸宵 吟詩積案群居久 架屋依巖世慮消 愚陋任他歧路走 明朝遠涉舟人招]” 이것은 宅容의 시이다. ○ 이날 直日은 黃命周.
◎ 8월 10일(기묘) 아침에 비
孟文이 夙興. ○ 在廷은 歸覲하였다. ○ 家容은 부지런히 독서하였다. ○ 이날 直日은 盧在廷.
◎ 8월 11일(경진) 맑음
家容이 夙興. ○ 主丈이 台洞에 가셨다가 돌아왔다. ○ 江林齋의 하인이 와서, 洛濱書堂 儒生들이 張四未軒 襄禮가 1□일에 있으니 祭文을 지어줄 것을 청하는 서찰을 主丈께 보냈다. ○ 建弘이 돌아왔다. ○ 이날 直日은 黃命周.
◎ 8월 12일(신사) 맑음
孟文이 夙興. ○ 宅容과 命周가 歸覲하였다. ○ 江林齋 하인이 돌아감에 主丈이 江林齋 儒生들에게 답장을 보내고 四未軒에 대한 祭文도 지어서 보내셨다. ○ 主丈이 盧德必에게 宗中에 납입해야 할 돈을 찾아가라는 내용의 서찰을 보냈다. ○ 建弘과 孟文이 主丈을 모시고 잤다. ○ 이날 直日은 盧寔容.
◎ 8월 13일(임오) 비
主丈의 從叔 國淵이 菊洞에서 찾아왔다. ○ 孫上鉉이 主丈께 上書하면서 북어 한 축, 조기 다섯 마리를 드시도록 올렸다. 夏海宗이 主丈께 上書하면서 북어 열네 마리, 조기 다섯 마리, 조개 다섯 꿰미를 드시도록 올렸다. 弼良이 조기 세 마리를 드시도록 올렸다. 孟文이 북어 한 축을 드시도록 올렸다. ○ 主丈께서 海宗에게 답장을 보내셨다. ○ 主丈께서 「頭流精舍記」를 지으셨다. ○ 建弘과 孟文이 主丈을 모시고 잤다. ○ 元淳은 主丈 兄弟와 默漢丈에게 上書하고 또 諸生들에게 서찰을 보냈다. ○ 李允夫 承九가 主丈께 서찰을 보내 主丈께서 답장을 하셨다. ○ 이날 直日은 盧寔容.
◎ 8월 14일(계미) 저녁에 큰비
信喆과 信赫 형제가 主丈께 上書하면서 소고기 한 근, 북어 열 마리, 조기 세 마리를 드시도록 올렸고, 또 소고기 한 근을 大訥丈에게 드시도록 올렸다. 主丈은 信喆과 信赫 형제가 보내온 것을 봉해서 蘆花亭에 祭需로 보냈다. 또 과일과 고기를 봉해서 金谷[主丈의 仲父와 누님이 계신다]에 보냈다. 金谷에서는 또 생선 3종을 花坪의 喪家에 보내면서 黃舜明에게 서찰을 보냈다. ○ 이날 南道의 군대가 火賊을 熊川 夫人堂에서 물리쳤다는 말을 들었다. 台洞의 安承旨와 仙巖의 朴參奉도 夫人堂 앞바다의 배 안에 억류되어 있어서 安承旨의 子姪들이 오늘 그곳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主丈이 기뻐서 말하기를 “邪氣가 어찌 오래도록 기승을 부릴 수 있겠느냐. 일전에 내가 安都事를 만났더니, 법을 담당하는 이들이 반드시 조처할 것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렇게 되었구나.”라고 하셨다. ○ 喜道가 조기 세 마리를 드시도록 올렸다. 建弘이 쇠고기 한 근을 드시도록 올렸다.
◎ 8월 15일(갑신) 맑음
추석 제사를 마쳤다. ○ 主丈은 默漢丈 및 舜與와 蘆花亭에서 종일 계셨다.
◎ 8월 16일(을유) 맑음
李炳務와 李炳來가 來謁하였다. 主丈은 安承旨가 巨濟島에서 풀려나 돌아오셨는지 묻고, 默漢丈과 함께 가서 위로하였다. 대개 統營의 군대 100명이 匪賊들을 利水島로 몰아내서 安承旨가 풀려나 돌아오신 것이다. 이것은 安承旨를 알고 아끼는 사람들이 함께 경하할 일인지라, 鄕內에서 와서 하례하는 사람들이 문에 가득하였다. 參奉 朴在馨 씨는 어지럽게 쏘아대는 총탄에 해를 입었는데, 사람들은 듣고 간담이 서늘해졌다. 64세로 林下에서 몸가짐을 바르게 했던 선비가 萬頃蒼波 외로운 배 안에서 재앙으로 죽음을 당하였으니, 하늘이 善人에게 보답하는 것이 어찌 이처럼 어긋난 것인가. ○ 午後에 主丈이 돌아오셨다. ○ 寔容이 그 죽은 누님의 장례가 19일에 있어서 新安에 가면서 台洞에 들러 安承旨를 위로해드리고는 국전(菊田)을 떠났다. ○ 李致洪이 와서 묵었다. ○ 主丈의 從弟 相卨이 왔다.
◎ 8월 17일(병술) 맑음
主丈이 安承旨께 서찰을 보내셨다. ○ 退老의 李翊九 丈이 蘆花亭에 와서 묵으셨다. ○ 丹亭의 李益五가 來訪하였다.
◎ 8월 18일(정해) 맑음
退老의 李丈이 돌아가셨다. ○ 大訥丈이 밤에 설사를 앓아 종일토록 혼미하셨다. ○ 金海 上東에 寓居하는 盧相達[主丈의 再從弟]과 正容이 來謁하였다. ○ 法山의 孫校理 達遠이 來訪하였다.
◎ 8월 19일(무자) 맑음
大訥丈의 患候가 조금 차도가 있었다.
◎ 8월 20일(기축) 맑음
李炳務가 왔다.
◎ 8월 21일(경인) 비
◎ 8월 22일(신묘) 맑음
許鉦이 하직하고 물러갔다. ○ 上鉉이 돌아왔다. ○ 直容이 그 再從兄 眞容과 來謁하였다. ○ 淸道 楡川의 許燁[字는 春可, 나이 19세, 本貫은 金海]이 來謁하였다. ○ 詩帖. “남으로 와 비로소 자암서당에 들어오니, 등불 아래 고담은 경계하는 방책이라. 좌우명 읽으면서 정직의 요체 알게 되고, 시첩을 질정함에 자상한 말에 감격하네. 밤 깊어지자 네 벽에는 벌레가 울러대고, 백 년이라 궁벽한 마을 나무는 푸르다오. 부끄럽네, 내 뱃속에 세상 티끌 가득한 게, 바라노니 이것 비워 천도를 회복하길.[南來始入紫巖堂 燈下高談警術方 讀座銘知要正直 質詩帖感語精詳 四壁更深虫啷啷 百年村僻樹蒼蒼 愧我塵埃惟滿腹 願言備此復天常]” 이것은 許燁의 시이다. ○ 이날 直日은 孫上鉉.
◎ 8월 23일(임진) 맑음
孟文이 夙興. ○ 炳駿이 하직하고 물러갔다. ○ 家容과 孟文은 부지런히 글을 읽었다.
◎ 8월 24일(계사) 흐림
直容이 夙興. ○ 家容은 부지런히 글을 읽었다. ○ 許燁이 하직하고 물러갔다. ○ 大訥丈은 뺨 옆에 난 종기 낫지 않아 침으로 땄다. ○ 孟文이 그 從祖母의 小祥 날이었기 때문에 저녁에 와서 主丈께 禮를 묻기를 “小祥에도 오히려 魂帛을 埋安하는지요?”라고 하자, 主丈이 말씀하시기를 “小祥에 魂帛을 埋安하는 것은 불가하네.”라고 하였다. 孟文이 또 묻기를 “小祥의 冠服은 어찌하는 것이 가한지요?”라고 하자, 主丈이 말씀하시기를 “冠은 검은 갓을 쓰고, 網巾은 緇布를 쓰는데, 또 網巾에 흰 線을 두르는 것도 또한 무방하네.”라고 하셨다. 孟文이 가르침을 받고 물러갔다. ○ 夕講은 정지되었다. ○ 이날 直日은 孫上鉉.
◎ 8월 25일(갑오) 큰비
시냇물이 크게 불어서 사람들이 건너다닐 수 없었다. ○ 孟文은 비에 막혀 오지 못하였다. ○ 上鉉이 夙興. ○ 建弘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였다. ○ 家容은 부지런히 독서하였다. ○ 이날 直日은 盧直容.
◎ 8월 26일(을미) 흐림
建弘이 夙興. ○ 直容은 청소를 부지런히 하였다. ○ 主丈은 上鉉으로 하여금 󰡔小心齋集󰡕을 다시 베껴 쓰게 하셨다. ○主丈이 直容이 가르침을 받은 것을 읽지 않는다고 책망하였다. ○ 家容은 부지런히 독서하였다. ○ 이날 直日은 孫上鉉.
◎ 8월 27일(병신) 흐림
孟文이 夙興. ○ 金海 上北의 童子 李權一[나이 19세, 본관은 碧珍]이 來謁하였다. ○ 淸道 明臺의 先達 李德叔이 來訪하였다. ○ 主丈이 말씀하시기를 “夕講을 하지 않은 것이 이미 오래되었고 또 上鉉도 내일 떠나려고 하니, 오늘 저녁부터 夕講을 다시 여는 것이 좋겠다.”라고 하셨다. ○ 夕講. 上鉉은 「夙興夜寐箴」, 建弘은 「金人銘」, 孟文은 「陋室銘」. ○ 이날 直日은 盧直容.
◎ 8월 28일(정유) 큰비
權一이 夙興. ○ 直容은 청소를 부지런히 하였다. ○ 孟文은 독서를 부지런히 하였다. ○ 權一은 󰡔古鏡重磨方󰡕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다. ○ 家容은 강독을 부지런히 하였다. ○ 夕講. 上鉉은 四勿箴, 直容은 「敬齋箴」, 建弘은 「心箴」, 權一은 「席四端銘」, 孟文은 「求放心齋銘」. ○ 이날 直日은 孫上鉉.
◎ 8월 29일(무술) 비
直容이 夙興. ○ 直容은 󰡔古鏡重磨方󰡕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다. ○ 建弘은 허물을 지적하는 말을 듣기를 좋아하였다. ○ 上鉉은 서책을 抄하는 것을 부지런히 하였다. ○ 家容과 孟文은 독서를 부지런히 하였다. ○ 夕講. 直容은 「金人銘」, 上鉉은 「心經贊」, 建弘은 「敬齋箴」, 孟文은 「夙夜箴」, 權一은 「夙夜箴」. ○ 이날 直日은 盧直容.
◎ 8월 30일(기해) 맑음
孟文이 夙興. ○ 家容은 독서를 부지런히 하였다. ○ 直容은 청소를 부지런히 하였다. ○ 上鉉은 󰡔小心齋集󰡕을 베끼는 것을 마쳤다. ○ 建弘은 밤[栗] 10개를 諸生에게 먹도록 나누어주었다. ○ 밤에 主丈이 󰡔節酌通編󰡕을 上鉉에게 보여주셨다. ○ 夕講. 上鉉은 「西銘」, 直容은 張思叔의 「座右銘」, 建弘은 「陋室銘」, 權一은 「金人銘」, 孟文은 「敬齋箴」. ○ 이날 直日은 孫上鉉.

[紫巖日錄 卷18, 庚子(1900) 閏8月]
◎ 윤8월 1일(경자) 맑음
孟文이 夙興. ○ 上鉉은 󰡔節酌通編󰡕의 「記林黃中辯易」과 「西銘」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다. ○ 上鉉은 청소를 부지런히 하였다. ○ 直容, 權一, 寬容은 독서를 부지런히 하였다. ○ 夕講. 直容은 「消人慾銘」이나 誦讀하지 못하여 上鉉으로 하여금 대신 誦讀하게 함, 直容은 「敬齋箴」, 建弘은 「求放心齋銘」, 權一은 張思叔의 「座右銘」. ○ 이날 直日은 盧直容.
◎ 윤8월 2일(신축) 맑음
上鉉이 夙興. ○ 上鉉은 歸覲하였다. ○ 直容은 金海에 갔다. ○ 權一은 󰡔論語󰡕 첫 권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다. ○ 安承旨가 쇠고기 1근을 蘆花亭에 드시라고 보냈는데, 대개 大訥丈이 종기가 더욱 악화되었기 때문이었다. ○ 台洞 隣里契에서도 또한 쇠고기 1근을 蘆花亭에 드시라고 보냈다. ○ 夕講은 「心箴」. ○ 이날 直日은 李基守.
◎ 윤8월 3일(임인) 맑음
家容이 夙興. ○ 主丈은 󰡔小心齋󰡕과 盧公 遺集의 교정을 마치셨다.[本稿 3권을 刪節하여 1권으로 만들었다.] ○ 建弘은 󰡔詩傳󰡕 제2권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다. ○ 加佐의 朴□□이 來謁하였다. ○ 夕講은 「長天理銘」. ○ 이날 直日은 李基守.
◎ 윤8월 4일(계묘) 맑음
孟文이 夙興. ○ 盧相達이 來謁하였다. ○ 家容은 독서를 부지런히 하였다. ○ 夕講은 「克己銘」. ○이날 直日은 李基守.
◎ 윤8월 5일(갑진) 맑음
孟文이 夙興. ○ 相達이 하직하고 물러갔고, 朴□□이 하직하고 물러갔다. ○ 靈山 月嶺의 金在龍[나이는 19세, 본관은 瑞興, 󰡔孟子󰡕를 읽음]이 來謁하였다. ○ 震玉과 在元이 來謁하였다. ○ 在憲이 主丈께 上書하였다. ○ 機張 新坪의 金洙安[나이는 20세, 본관은 安東]이 來謁하였다. ○ 夕講은 「布衾銘」. ○ 이날 直日은 李基守.
◎ 윤8월 6일(을사) 맑음
家容이 夙興. ○ 夕講 「學古齋銘」. ○ 이날 直日은 李基守.
◎ 윤8월 7일(병오) 맑음
洙安이 夙興. ○ 炳濩가 來謁하였다. ○ 孫振演이 來訪하였다. ○ 在龍은 󰡔古鏡重磨方󰡕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고, 洙安은 󰡔通鑑󰡕 제12권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다. ○ 夕講은 「蒙齋銘」. ○ 이날 直日은 柳震玉.
◎ 윤8월 8일(정미) 맑음
建弘이 夙興. ○ 金海 盧紀容이 來謁하였다. ○ 羅田의 盧薰容이 主丈께 上書하였다. ○ 直容이 돌아왔다. ○ 震玉과 在元이 하직하고 물러갔다. ○ 夕講은 「心經贊」. ○ 이날 直日은 盧直容.
◎ 윤8월 9일(무신) 맑음
洙安이 夙興. ○ 龍北의 孫聖則과 崇眞의 衛將 蔣亨玉이 來訪하였다. ○ 主丈 형제분은 어려 賓客들을 따라 武陵에 가셨다가 主丈은 돌아오시고 大訥丈은 武陵齋에서 주무셨다. ○ 大訥丈은 5월 17일부터 지금까지 아프셨는데, 이날 억지로 망건을 쓰고 조금 빗질을 하시고 나들이를 하셨다. ○ 禮林의 申永瑀丈, 新基의 晉汝漢, 靈山 馬川의 宋圭一, 堤岱의 李乃聖, 安都事, 安承旨, 安漢章, 孫殷瑞, 李國一이 來訪하셨다. ○ 夕講은 「敬齋銘」. ○ 이날 直日은 盧直容.
◎ 윤8월 10일(기유) 맑음
在龍이 夙興. ○ 直容이 하직하고 물러갔다. ○ 命周가 돌아왔다. ○ 昌原 北桂의 李東煥[자는 泰仲, 나이는 22세, 본관은 載寧]이 來謁하였다. ○ 在廷과 相迪이 돌아왔다. ○ 寔容이 蘆花亭의 大訥丈과 紫巖의 主丈께 上書하였다. ○ 盧燾容[자는 天汝, 나이는 18세, 거주는 菊洞, 主丈의 族姪], 金震東[자는 雷卿, 나이는 16세, 거주지는 菊洞, 바로 燾容의 外叔이다]이 來謁하였다. ○ 大訥丈은 武陵에 患候가 더해져서 돌아오셨다. ○ 昌寧 雁洞의 河大龍[자는 正中, 나이는 19세, 본관은 晉陽]이 主丈께 上書하였다. ○ 孫聖則과 蔣亨玉이 하직하고 떠났다. ○ 詩帖. “노곡 위의 높은 문이 객을 위해 열렸는데, 사방 산은 첩첩이 다시 주위 둘렸다오. 몇 해 동안 용중소를 익숙히 들었더니, 석양 무렵 비로소 자암대에 오른다오. 차곡차곡 쌓인 시서 옛 자취에 통하였고, 빈빈한 문물로써 영재를 기른다오. 그 안의 참된 공부 있는 곳 알려거든, 백 번 절로 예 갖추고 한 잔 술을 올린다오.[蘆上高門爲客開 四山重疊更周回 數歲慣聞容衆所 斜陽始上紫巖臺 帙帙詩書通古蹟 彬彬文物育英才 欲知箇裡眞工處 禮百拜成酒一杯]” 이것은 燾容의 시이다. “깊고 깊은 길 하나가 동쪽 향해 열렸는데, 제현들과 의관을 함께 하길 원한다오. 이제야 유수 따라 즐겁게 집을 찾아, 수양버들 지나자 홀연 대가 보인다오. 서안 가득 도서는 모두가 옛 전범들, 선비들 문 메우니 인재 양성하고 있네. 벽 등지고 조용조용 끝내 게을리 아니 하니, 이 몸 흡사 진한 순을 마신 듯하네.[深深一路向東開 諸子冠裳願共回 始隨流水所尋戶 纔過垂楊忽見臺 圖書滿案皆前範 衿珮塡門認養才 負辟淳淳終不倦 此身殆似飮醇杯]” 이것은 東煥의 시이다. “만류문 서쪽 바라보니 저녁 안개 걷히는데, 누런 잎 질 때에 먼 곳 손님 돌아오네. 아득한 나루 건너느라 나그네 분주하였더니, 좋은 밤에 손 맞잡고 서당 대에 오른다오. 좌중의 선비들은 속되지 않음 알겠나니, 한 편의 시부로써 누가 재주 날리려나. 이제부터 살피리니 그대는 노력하게, 동쪽 기둥에 바야흐로 헌수 잔이 놓여 있네.[柳門西望暮烟開 黃葉蕭蕭遠客回 遙津揭厲勞巾屐 良夜提携步社臺 四座衣冠知不俗 一篇詩賦擅誰才 自是相看君努力 東楹方有獻酬杯]” 이것은 建弘의 시이다. ○ 夕講은 「太極圖說」. ○ 이날 直日은 黃命周.
◎ 윤8월 11일(경술) 맑음
在廷이 夙興. ○ 紀容이 하직하고 물러갔다. ○ 主丈께서 宗中에 서찰을 보내셨다. ○ 洙安과 在龍이 하직하고 물러갔다. ○ 夕講. 在廷은 「主一齋銘」, 東煥은 柳玭의 戒子書, 命周는 「西銘」, 震東은 張思叔의 「座右銘」, 燾容은 四勿箴, 相迪은 「金人銘」, 建弘은 「夙夜箴」, 孟文은 「敬齋箴」, 權一은 「心箴」. ○ 이날 直日은 盧在廷.
◎ 윤8월 12일(신해) 가랑비
在廷이 夙興. ○ 東煥, 在廷, 震東, 燾容, 相迪은 󰡔古鏡重磨方󰡕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다. ○ 大訥丈은 腫氣가 낫지 않아서 이날 코에 향기를 쐬었다. ○ 夕講. 震東은 「尊德性齋銘」, 東煥은 諸葛武侯의 戒子書, 命周는 「陋室銘」, 在廷은 「學古齋銘」, 燾容은 「心箴」, 建弘은 「金人銘」, 權一은 張思叔의 「座右銘」. ○ 詩帖. “푸른 등불 한 점이 자암초려 밝히는데, 정좌하여 󰡔古鏡重磨方󰡕 서로 함께 논한다오. 바라기는 평생토록 마음의 주일 이루어서, 스스로의 조행이 성현과 같아지길.[靑燈一點紫巖廬 靜坐相論古鏡書 秪願生平心主一 自期操約聖賢如]” 이것은 在廷의 시이다. “밝은 달이 노산의 서당을 비추는데, 옷깃을 여미고서 옛 서책을 음미하네. 부럽나니 그대의 아름다운 그 자태가, 성글은 내 재주가 같지 못함 한탄하네.[明月蘆山社 整衿溫古書 可羨君姿美 踈才歎不如]” 이것은 震東의 시이다. “동쪽으로 바라보고 노산 초려 찾아가서, 등불 밝히고 서안 가득 서책을 강마하네. 짝을 이룬 좋은 벗들 때맞춰 찾아오니, 묻노니 오늘밤의 흥취가 어떠한가?[東望蘆山訪草廬 挑燈講討滿床書 兩兩良朋時適到 問君今夜興何如]” 이것은 命周의 시이다. ○ 이날 直日은 金震東.
◎ 윤8월 13일(임자) 맑음
孟文이 夙興. ○ 夕講. 燾容은 「陋室銘」, 東煥은 「夙夜箴」, 命周는 「學古齋銘」, 在廷은 「敬銘」, 震東은 「敬齋箴」 權一은 「金人銘」 建弘은 崔子玉의 「座右銘」, 孟文은 「求放心齋銘」. ○ 詩帖. “달빛이 곱게 물에 떠서, 티끌 한 점 없이 날 비추네. 서재에서 뜻이 새로우니, 󰡔古鏡重磨方󰡕을 읽길 마쳤네. 밤이 오래되자 동구에는, 적적하여 마치 사람이 없는 듯.[月華泛艶 無塵照我 芸窓意新 讀罷重磨 夜久洞門 寂若無人]” 이것은 建弘의 시이다. “濟濟橋 흐르는 물 티끌먼지 씻어내니, 그 속의 새로워 별다른 맛 넘친다오. 스승에게 가르침 받아 마음을 놓지 않고, 때때로 공경히 서책 속의 고인 대한다오.[濟橋流水滌紅塵 剩得其間別味新 受炙師筵心不放 時時敬對卷中人]” 이것은 在廷의 시이다. “옅은 구름 외로운 달 아득히 티끌 없는데, 허령불매 그 경지에 점차 새로 들어가네. 활발한 천기가 흘러 움직이는 곳, 시정은 이 산 사람들에게는 배나 더 절절하네.[淡雲孤月浩無塵 不昧虛靈漸入新 活潑天機流動地 詩情倍切此山人]” 이것은 東煥의 시이다. “만 그루 버들 창창하게 속세의 티끌 막아, 두어 칸 초옥이 저절로 새롭다오. 광풍제월 그 금회는 조금의 누도 없나니, 좌중의 선비들은 모두가 옥인이라.[萬柳蒼蒼遮俗塵 數間山屋自新新 光風霽月無些累 四座衣冠摠玉人]” 이것은 命周의 시이다. ○ 이날 直日은 盧燾容.
◎ 윤8월 14일(계축) 맑음
東煥이 夙興. ○ 主丈께서 菊洞에 사람을 보내 寔容에세 서찰을 부치고, 또 族弟 秀實에게 서찰을 부치셨다. 河大龍의 서찰에 답장을 하셨다. 또 族叔 進士 應祜에게 서찰을 써서 「頭流精舍記」와 「紙牌焚香儀」를 보내셨다. ○ 在廷과 燾容이 각기 家書를 부쳤다. ○ 살내[箭川]의 李允夫가 來訪하였고, 昌寧 桂八의 金敬五 奎炳이 來訪하였다. ○ 金星五 奎洛이 主丈께 서찰을 보냈고, 成一慶도 또한 上書하여 모두 답장을 하셨다. ○ 夕講. 東煥은 張思叔의 「座銘」 命周은 「求放心齋銘」, 在廷은 「克己銘」, 震東은 「心箴」, 燾容은 「消人欲銘」, 相迪은 「學古齋銘」, 建弘은 「調息箴」, 權一은 「夙夜箴」, 孟文은 「主一齋銘」. ○ 이날 直日은 李東煥.
◎ 윤8월 15일(갑인) 흐림
東煥이 夙興. ○ 孟文과 權一이 장난을 쳤다. ○ 東煥, 燾容, 命周, 在廷, 震東, 建弘, 權一, 孟文이 大訥丈을 찾아뵙고 병문안을 하였다. ○ 東煥은 독서를 부지런히 하였다. ○ 燾容은 말하는 것을 삼갔다. ○ 信喆이 來謁하여 미꾸라지 한 삼태기를 蘆花亭에 드시도록 올렸다. ○ 夕講. 命周는 「求放心齋銘」, 東煥은 「學古齋銘」, 信喆은 「消人欲銘」, 在廷은 「心經贊」, 震東은 四勿箴, 燾容은 「長天理銘」, 相迪은 范益謙의 「座右銘」, 建弘은 張思叔의 「座右銘」, 權一은 「心箴」, 孟文은 「金人銘」. ○ 詩帖. “서당 앞은 흐르는 물 물 앞에는 산이나니, 물독 안고 책을 펴니 마음 절로 한가하네. 주장께선 나에게 참된 공부 권하시며, 도서를 손수 써서 벽에 걸어 놓으셨네.[堂前流水水頭山 抱甕開篇心自閑 主翁勸我眞工做 手寫圖書揭壁間]” 이것은 在廷의 시이다. “흐르는 물 둘러두고 청산 베고 누웠나니, 주장의 높은 의취 절로 맑고 한가하네. 빈빈한 먼 곳 선비 많이들 찾아오니, 유풍은 이로부터 세상에 가득하리.[橫帶流川枕碧山 主翁高趣自淸閑 遠士彬彬來濟濟 儒風自此滿人間]” 이것은 燾容의 시이다. ○ 이날 直日은 黃命周.
◎ 윤8월 16일(을묘) 아침에 비, 낮에 맑음
在廷이 夙興. ○ 權一은 청소를 부지런히 하였다. ○ 相迪은 독서를 부지런히 하였다. ○ 夕講. 在廷은 「調息箴」, 東煥은 「夙夜箴」, 信喆은 「主一齋銘」, 命周는 四勿箴, 震東은 「金人銘」, 燾容은 「西銘」, 相迪은 「尊德性齋銘」, 建弘은 「陋室銘」, 孟文은 張思叔의 「座右銘」, 權一은 「夙夜箴」. ○ 詩帖. “서안 가득 시서로 의리를 깊이 하며, 때때로 분석하고 또 마음을 논한다오. 좋은 밤 산속 서재 그 즐거움 어떠한가, 대여섯 생도들이 강송하는 소리 있네.[滿案詩書義理深 時時分析且論心 良宵山塾知何樂 五六生徒講誦音]” 이것은 在廷의 시이다. ○ 이날 直日은 盧在廷.
◎ 윤8월 17일(병진) 맑음
東煥이 夙興. ○ 震東의 燾容의 옷이 왔다. ○ 信喆이 하직하고 물러갔다. ○ 東煥이 退陶書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다. ○ 寔容이 돌아왔다. ○ 夕講. 震東은 「夙夜箴」, 東煥은 「西銘」, 命周는 「敬齋箴」, 在廷은 「勿齋箴」, 燾容은 「克己銘」, 孟文은 「陋室銘」, 權一은 「金人銘」. ○ 이날 直日은 金震東.
◎ 윤8월 18일(정사) 맑음
東煥이 夙興. ○ 在廷이 󰡔尙書󰡕 第1卷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다. ○ 在龍이 돌아왔다. ○ 靈山 腰江의 林童子[奇道, 나이는 20세, 본관은 羅州]가 來謁하였다. ○ 夕講. 燾容은 四勿箴, 東煥은 「布衾銘」, 命周는 「心箴」, 在廷은 呂與叔의 「克己銘」, 震東은 「學古齋銘」, 建弘은 四齋銘, 孟文은 「夙夜箴」, 在龍은 「金人銘」, 權一은 張思叔의 「座右銘」, 奇道는 「心箴」. ○ 이날 直日은 盧燾容.
◎ 윤8월 19일(무오) 맑음
燾容이 夙興. ○ 奇道는 󰡔古鏡重磨方󰡕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다. ○ 直日이 고단하여 누웠다. ○ 夕講. 東煥은 「金人銘」, 命周는 「布衾銘」, 在廷 東鉉 震東은 「陋室銘」, 燾容은 「學古齋銘」, 建弘은 「求放心齋銘」, 在龍은 「西銘」, 孟文은 「敬齋箴」, 權一은 「心箴」, 奇道는󰡔中庸󰡕 鬼神章. ○ 이날 直日은 李東煥.
◎ 윤8월 20일(기미) 맑음
燾容이 夙興. ○ 奇道와 權一이 하직하고 물러갔다. ○ 台洞 安都事가 來訪하였다. ○ 主丈께서 進士 盧應祜 氏에게 서찰을 보내셨다. ○ 盧申容이 來謁하였다. ○ 申容 大人 秀貞이 主丈께 서찰을 보냈다. ○ 夕講. 命周는 「西銘」, 東煥은 「消人慾銘」, 在廷은 「太極圖說」, 震東은 「敬銘」, 燾容은 「蒙齋銘」, 相迪은 四勿箴, 建弘은 「敬齋箴」, 孟文은 「金人銘」, 在龍은 魏下蘭의 「座右銘」. ○ 이날 直日은 黃命周.
◎ 윤8월 21일(경신) 맑음
相迪이 夙興. ○ 純容이 來謁하였다. ○ 江林齋의 하인 편에 盧鎭宏丈, 振容, 參奉 錫困, 秀貞, 秀燁이 登林에 비석을 세우려고 글을 청하는 일로 主丈께 서찰을 보냈다. ○ 夕講. 在廷은 「消人慾銘」, 東煥은 「西銘」, 純容은 「夙夜箴」, 建弘은 張思叔의 「座右銘」, 孟文은 「求放心齋銘」, 在龍은 「布衾銘」. ○ 申容, 震東, 相迪은 蘆花亭에서 留宿하였다. ○ 이날 直日은 盧在廷.
◎ 윤8월 22일(신유) 맑음
東煥이 夙興. ○ 申容이 하직하고 물러가니, 主丈께서 그 大人에게 답장을 보내셨다. ○ 江林齋의 하인이 돌아간다고 하여 主丈께서 江林齋 여러분들에게 답장을 보냈다. ○ 純容이 옴이 올라 조리하려고 金海 北谷으로 갔다. ○ 夕講. 震東은 「心箴」, 東煥은 「克己銘」, 命周는 「心經贊」, 在廷은 四勿箴, 燾容은 「調息箴」, 相迪은 「金人銘」, 孟文은 「主一齋箴」, 在龍은 白居易의 「座右銘」. ○ 詩帖. “오막살이 깊은 곳은 지내기에 괜찮은데, 몸과 마음 공경히 세워 강송을 해간다오. 바라기는 평생에 공부를 독실이 해, 존성과 주일로써 옛 성현을 기약하네.[衡門深處可棲遲 敬立身心講誦時 秪願生平工業篤 存誠主一古賢期]” 이것은 在廷의 시이다. “나의 용모 경계하여 느긋하길 바라나니, 시서 공부 많이 쌓아 때때로 익힌다오. 푸른 등불 한 점이 노산 서당 밝히는데, 전현의 서책 읽어 기약함이 있다오.[戒我容貌欲舒遲 詩書多積習時時 靑燈一点蘆山屋 披閱前賢有所期]” 이것은 燾容의 시이다. ○ 이날 直日은 金震東.
◎ 윤8월 23일(임술) 맑음
東煥이 夙興. ○ 禹在道가 來謁하였다. ○ 大邱 角谷의 朴光浩[자는 孟善, 나이는 23세, 본관은 密陽]가 來謁하였다. ○ 金海 九朗의 尹奎仁[자는 道益, 나이는 20세, 본관은 坡平], 金童子[寬培, 나이는 17세, 본관은 金海]가 來謁하였다. ○ 禹在道의 大人 楨熙가 主丈께 서찰을 보내고 북어 한 축을 드시도록 올렸다. ○ 大訥丈은 종기가 조금 나으시자 文昌齋에 가서 命周와 弼良으로 하여금 대청과 방을 치우게 하셨다. ○ 夕講. 燾容은 「長天理銘」, 東煥은 「夙夜箴」, 命周는 「學古齋銘」, 在廷은 「蒙齋銘」, 震東은 「布衾銘」, 相迪은 「西銘」, 在度는 「心箴」, 建弘은 「主一齋銘」, 孟文은 「陋室銘」, 在龍은 「敬齋銘」. ○ 이날 直日은 盧燾容.
◎ 윤8월 24일(계해) 맑음
在廷이 夙興. ○ 奇道가 돌아왔다. ○ 尙州 山陽 道村의 黃浩周[자는 養叔, 나이는 15세, 본관은 長水]가 來謁하였다. ○ 光浩, 奎仁, 寬培가 󰡔古鏡重磨方󰡕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다. ○ 夕講. 東煥은 「克己銘」, 命周는 「長天理銘」, 在廷은 「尊德性齋銘」, 震東은 「學古齋銘」, 燾容은 「布衾銘」, 相迪은 「心箴」, 在度는 「敬齋箴」, 建弘은 「金人銘」, 奇道는 󰡔中庸󰡕 第30章, 在龍은 「主一齋銘」, 寬培는 󰡔孟子󰡕 第3 「滕文公」 首章. ○ 在廷, 浩周, 燾容, 奎仁, 光浩, 東煥, 建弘, 在度, 在龍, 奇道, 寬培, 命周, 震東 등이 시를 지었다. ○ 이날 直日은 李東煥.
◎ 윤8월 25일(갑자) 맑음
奎仁이 夙興. ○ 東煥이 하직하고 물러갔다. ○ 主丈이 來進의 李元淳에게 서찰을 보내셨다. ○ 光浩가 하직하고 물러갔다. 在度도 또한 하직하고 물러감에 主丈께서 그 大人에게 답장을 보내셨다. ○ 命周는 󰡔孟子󰡕 第2卷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고, 奇道는 󰡔詩傳󰡕 第1卷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다. ○ 靈山 靑巖의 裵相奎[자는 文五, 나이는 22세, 본관은 盆城]이 來謁하였다. ○ 權一이 돌아왔다. ○ 夕講. 命周는 「布衾銘」, 相奎는 󰡔尙書󰡕 第4卷 首篇, 在廷은 「長天理銘」, 震東은 「尊德性齋銘」, 燾容은 「消人慾銘」, 奎仁은 「夙夜箴」, 建弘은 張思叔의 「座右銘」, 奇道는 󰡔中庸󰡕 第31章, 權一은 「金人銘」, 在龍은 「敬齋箴」, 寬培는 󰡔大學󰡕 經文. ○ 이날 直日은 黃命周.
◎ 윤8월 26일(을축) 맑고 밤에 비
奎仁이 夙興. ○ 奎仁은 󰡔大學󰡕을 지도받았다. ○ 심부름꾼이 돌아왔다. ○ 中洞의 進士 盧應祜가 主丈께 서찰을 보냈다. ○ 石洞의 申容이 主丈께 上書하였다. ○ 燾容의 叔父 秀實이 燾容에게 서찰을 보냈다. ○ 在廷과 震東의 옷이 왔다. ○ 夕講. 在廷은 「學古齋銘」, 相奎는 󰡔尙書󰡕 「說命」, 燾容은 「金人銘」, 奎仁은 󰡔詩傳󰡕 淸廟章, 建弘은 「陋室銘」, 奇道는 󰡔中庸󰡕 第15章, 權一은 張思叔의 「座右銘」, 在龍은 「敬銘」, 寬培는 󰡔大學󰡕 傳2章. ○ 命周, 震東, 相迪은 蘆花亭에 가서 留宿하였다. ○ 詩帖. “벽 사이의 촛불이 반짝이는데, 하늘가의 별빛은 희미하다오. 고요한 밤 현가 소리 그쳤나니, 찬 서리가 지붕 끝에 날린다오.[壁間燭火耿 天畔星光微 夜靜絃聲歇 寒霜屋角飛]” 이것은 在廷의 시이다. ○ 이날 直日은 盧在廷.
◎ 윤8월 27일(병인) 비
權一이 夙興. ○ 夕講. 震東은 「蒙齋銘」, 命周는 「克己銘」, 相奎는 󰡔論語󰡕 第3卷 顏淵季路侍章, 在廷은 「布衾銘」, 燾容은 「敬銘」, 奎仁은 「大學篇題」, 相迪은 「學古齋銘」, 奇道는 󰡔中庸󰡕 第11章, 權一은 「心箴」, 在龍은 「消人慾銘」, 寬培는 「夙夜箴」. ○ 詩帖. “가을비 쓸쓸하고 가을물 흐르는데, 유인은 근심스레 푸른 물가에 서 있다오. 아득히 알겠나니, 구랑산 앞의 집에, 경림의 토란을 아직 못 거둔 것을.[秋雨蕭蕭秋水流 遊人悄倚碧溪頭 遙知九朗山前屋 梗林菱芋收未收]” 이것은 寬培의 시이다. ○ 이날 直日은 金震東.
◎ 윤8월 28일(정묘) 아침에 비 낮에 흐림
在廷이 夙興. ○ 主丈이 浩周와 燾容에게 명하여 󰡔小心齋集󰡕을 쓰게 하셨다. ○ 夕講. 燾容은 「」心經贊 相奎曾子一貫章 在廷調息箴 奎仁大學經文 建弘藍田鄕約 權一夙夜箴 在度四勿箴 寬培는 「金人銘」. ○ 이날 直日은 盧燾容.
◎ 윤8월 29일(무진) 맑음
權一이 夙興. ○ 竹東의 孫□敎가 來訪하였다. ○ 命周가 歸覲하였다. ○ 相奎가 하직하고 물러갔다. ○ 雲田의 尹成弼이 來謁하였다. ○ 淸道 大峴의 千□□과 그 아들 斗成[나이는 15세, 본관은 潁陽]이 來謁하였다. ○ 夕講. 奎仁은 「敬銘」, 在廷은 「主一齋銘」, 震東은 「求放心齋」.
6) 석문:
[紫巖日錄 卷16]
[庚子(1900)七月]
◎ 七月一日庚子 晴[是日中伏也]
在廷夙興
諸生宰狗 酬小酌于文昌齋
日課 古詩題戒勿毁書冊 嵬等建弘 中齋嵬命周
愚相昨日 遊赤壁灘失手巾 今朝村竪朴癸文 拾手巾而來曰 此必齋士所遺 余持而來 可見其心性也
銜方苦眼疒+童 又有河魚之痛 而猶勤著述之功
愚相、鍾周謹身
夕講夙夜箴
上鉉謹身
直日李厚明

◎ 二日辛丑 晴
鍾周夙興
日課 古詩題古鏡重磨方 嵬等銜 中齋嵬基守
午後 古詩題代運出喜拜其大人 嵬等愚相
夕講四勿箴
直日盧在廷

◎ 三日壬寅 晴
在廷夙興
海宗還 上鉉衣件來
是日主丈先妣諱辰正齋也 主丈致齋于蘆亭
彦達來謁 主丈從叔穆淵氏來 咸陽盧童子淳容[主丈族侄 年二十]來謁
日課 古詩題苦熱行 默漢丈考之 嵬等愚相 中齋嵬基守
諸生往候于大訥丈
夕講例停
直日李基守

◎ 四日癸卯 晴
鍾周夙興
朝 大訥丈以餕餘饋諸生 直日再拜受之
山岳不勝盃酌
海宗謹灑掃
在廷謹身
基洛謹言笑
厚明、命周勤讀
孟文臥
銜少瘳
愚哲謹身
主丈以祖妣諱事 又致齋于蘆亭
日課 古詩題假髻美人詞 黙漢丈考之 嵬等建弘 中齋嵬基守
午後 古詩題四皓奕碁圖 黙漢丈考之 嵬等基洛 中齋嵬承立
夕講例停
直日孫上鉉

◎ 五日甲辰 晴
鍾周夙興
彦達辭退
厚明謹身
日課 古詩題談孺人伏虎圖 嵬等基洛 中齋嵬孟文
午後 古詩題新豐行 嵬等銜 中齋嵬特容
夕講消人慾銘
直日金鍾周

◎ 六日乙巳 晴
鍾周夙興
基守臥
諸生皆往宿文昌齋 在廷、鍾周、孟文三人陪宿
日課 古詩題寄鄭漢朝 嵬等愚直 中齋嵬海宗 又題七月六日見園樹鵲噪嘆河橋之說無據 嵬等建弘 中齋嵬承立
夕講心箴
直日盧明煥

◎ 七日丙午微雨
愚相夙興
是日諸生 不謹言笑
日課 古詩題次太白胡僧歌 嵬等銜 又古詩題項王墓 嵬等銜、基洛
夕講長天理銘
直日許銜

◎ 八日丁未 晴
在廷夙興
基守勤讀
運出敏應對
建弘晝寢
日課 古詩題依己亥例講小學 嵬等弼良 中齋嵬命周
夕講克己銘
直日李愚相

◎ 九日戊申 晴
在廷夙興
日課 古詩題足范魯公戒從子詩 嵬等李愚相 中齋嵬命周
夕講布衾銘
直日李愚哲

◎ 十日己酉 晴
海宗夙興
昌寧伻還 中洞盧進士應祜氏修書于主丈 菊洞盧秀實[字士成]、盧燾容[字天汝]上書于主丈 書中云 在直大人禧容氏 今月卄五日別世云
文昌齋諸生不謹身
箭川伻來 請特容再行
日課 古詩題函谷關 嵬等建弘 中齋嵬基守
直日李愚直

◎ 十一日庚戌 雨
夙興鍾周
特容往箭川 主丈兄弟修書謝李丈鍾珏
直容辭退
大訥丈具酒饌以饋諸生
日課 古詩題飮茶 嵬等厚明 中齋嵬命周
午後 題九白村金鑛 嵬等銜
夕講蒙齋銘
直日金基洛

◎ 十二日辛亥 雨
承立夙興
愚相、愚哲、愚直、愚甸、厚明在文昌齋滯雨 主丈使仙禮饋朝飯
日課 古詩題義馬塚 嵬等銜 中齋嵬基守
午後 題拜夫子廟 嵬等愚相
寔容陪其姑母往金谷
夕講心經贊
直日李愚甸

◎ 十三日壬子 雨
孟文夙興
孟文借筆於海宗而又借作 故主丈命直日 特行笞罰[海宗三度、孟文五度]
文昌齋諸生不謹言
在廷謹身
基守以餕餘來 有司拜而受之 分饋諸生
日課 古詩題杏堂童子 嵬等海宗 中齋嵬命周
夕講敬銘

詩帖 霽塢幽逕
開逕傍裁梧一枝 尋棲易使鳳凰知
不辭夙夜勤來往 最好塢頭霽月時
右建弘

直日李厚明

◎ 十四日癸丑 晴
在廷夙興
山岳、承立朝眠臥
上鉉三夏未有一臥
日課 古詩題浮島 嵬等建弘 中齋嵬海宗
家容勤讀
孟文勤於字會
夕講太極圖說
直日盧在廷

◎ 十五日甲寅 晴
鍾周夙興
行庭揖于文昌齋 約正黙漢丈 一有司許銜 二有[司]李愚相 直日李基守爲曺司 故以孫上鉉贊行 贊唱李愚哲 曺司李基守 中讀盧在廷 左讀李愚直 右讀李厚明 執約盧特容 執案金建弘 司筵李承立 司繩盧家容、愚哲 善唱笏姜麒麟
蘆亭使喚之兒通九思、九容、陋室銘
日課 古詩題黃花祭伯夷火作 嵬等弼良
主丈使仙禮 饋午饒于昌齋
庭揖訖 大訥丈沽酒饋諸生
午後 大訥丈使諸生作聯句
基洛、命周、在廷、厚明謹身
愚相、愚甸謹言笑
夕講主一齋銘
直日李基守

◎ 十六日乙卯 晴
基洛、孟文夙興
雲田尹成弼[字衡殷 年二十六 貫坡平]來謁
山岳請上鉉曰 吾今寫君之冊子 君能爲我作日課一首如何 上鉉許之 主丈知之 罰上鉉曰 何以利吾身 賊夫人之子 又使直日面責山岳
日課 古詩題山天齋 嵬等銜 中齋嵬海宗
夕講尊德性齋銘

詩帖 心澗飛瀑
狂波噴玉動涓埃 兩岸烟凝日照回
終能注海波濤作 誰識源頭活水來
右上鉉

澗雨初晴浥澗埃 狂流小瀑吼聲回
飛飛淬玉如天落 個個輕珠轉石來
右愚相

飛流白浪絶塵埃 天上□如銀漢回
萬柳門前雷忽動 雄聲夜入紫巖來
右基洛

直日李基守

◎ 十七日丙辰 晴
在廷夙興
厚明、愚甸謹言
在廷三夏未有一臥
日課 古詩題紫玉山 嵬等銜
夕講陋室銘

詩帖 盥巖涷溜
澗雪和溜氷骨生 冲冲鑿破玉錚鳴
警我諸朋晨出盥 銀波着手滌塵情
右愚相

直日鍾周

◎ 十八日丁巳 晴
命周夙興
銜晝寢
愚甸、孟文臥
基守晝寢
日課 古詩題美理井憶申壯節古事 嵬等愚相 中齋嵬海宗
德法里蔣洪珠[字明爾 年二十一 貫牙山]來謁
善山庫基崔善熙[字在文 年二十八 貫慶州]來謁
甲哲來謁
夕講座右銘

詩帖 柳門碧陰
先生門柳碧如烟 枝葉依依隔水連
黃鳥亦知迎客意 聲聲啼送午陰邊
右善熙

直日盧山岳

◎ 十九日戊午 晴
在廷夙興
洪珠辭退
愚哲善談論
上鉉舞智御人
日課 古詩題擬登含花菴觀日出 嵬等愚相
夕講求放心箴
直日許銜

◎ 二十日己未 晴
銜夙興
上鉉自文昌齋早盥而來
銜不稱其服
在廷有昏潛之氣
日課 古詩題紫巖草廬庚子同講錄 嵬等上鉉 中齋嵬基守
夕講調息箴
釜谷伻來 愚相、愚哲、愚直、愚甸承家信 各有魚屬及白襪一件于主丈 愚相、愚哲各以錢十五兩 納于容衆所 愚直、愚甸各以錢五兩 納容衆所

詩帖 東山秀松
萬株杰聳紫巖東 高士盤桓氣味通
翠濤日日鳴琴韻 借許群棲野鶴同
右建弘

孤松特立紫巖東 四序蒼蒼一氣通
風霜百變持堅節 歲暮方知歲事同
右上鉉

直日李愚相

◎ 二十一日庚申 晴
愚直夙興
釜谷伻去 愚相等各付家書
是日末伏也 又本社夏課停硏之日也 使齋奴宰狗醑酒 又以麥屑麵分饋麵 是愚哲家所送也
日課 古詩題寄詩諸同志約九月六日相逢 嵬等愚直 下齋嵬家容 主丈以一楡沽酒爲壯元禮

詩帖
西天凉氣穿茅亭 是日吾儕夏課停
喬松鬱鬱東山上 碧柳垂垂小澗汀
鷄語層生遲日影 蟬聲寒動淨天形
三杯新傾罷□□ 敬對床書俗慮屛
右在廷

儒冠簇簇碧山亭 長夏課詩此日停
萬樹蟬歌來小苑 一聲蔥笛過烟汀
西風野店人沽酒 南國詩場客瘦形
未盡遊情回屐散 天台文月照簾屛
右愚相

直日李愚直

◎ 二十二日辛酉 晴
在廷夙興
主丈有患節
崔善熙辭退
弼良以麻衫遺善熙
厚明往丹亭
夕講四勿箴
直日李愚直

◎ 二十三日壬戌 晴
在廷夙興
盧山岳、李承立歸覲 主丈以書贈之 諸生贈詩
大訥丈具鷄黍 午饋諸生
命周歸覲
夕講金人銘
直日金基洛

◎ 二十四日癸亥 晴
純容夙興
鍾周、純容、運出辭退 主丈贈以書 諸生贈以詩
厚明還
炳務上書于主丈
夕講西銘

詩帖 細谷叢竹
叢叢草樹擁前庭 最愛其中竹色靑
爾能遮得塵埃氣 只有淸風到耳聽
右在廷

百節龍孫滿石庭 扶疎枝影向人靑
回憶山窓風雪夜 鏗鏘玉瑟靜中聽
右愚相

直日李愚甸

◎ 二十五日甲子 雨
厚明夙興
愚相、愚哲、愚直、基守等滯雨文昌齋
主丈以齋奴饋朝飯與午饁
夕講消人慾銘
直日李厚明

◎ 二十六日乙丑 晴
上鉉夙興
基守晝寢
厚明、上鉉謹言
寔容還
在憲上書于主丈
夕講心銘
直日盧在廷

◎ 二十七日丙寅 晴
在廷夙興
台洞安都事、安承旨、安進士鍾奭往問蘆亭患候
武陵洞李弼圭、李弼秀、李斗衡來謁蘆亭而去
台洞安鍾湜 卽愚相妹婿也 送女伻以書訊、愚相旅履兼饋饌二器 愚相答鍾湜書
在廷頗謹行止
愚哲泄症小愈
命周還
基守晝寢
夕講長天理銘
直日李基守

◎ 二十八日丁卯 晴
上鉉夙興
諸生欲往賞籠巖樹石 推尋畢翁經蹟 而傋白主丈 主丈曰 此處雖是可翫 然此距籠巖二十餘里 不可一日經還 且所過曾無旅店 君等十餘人 四無親知 而何以經宿供饋也 往在甲午 自錦山寓舍 從古琴孫丈 轉入此處 道間偶遇飢 徘徊泉石 而甚見艱悶 今諸生不可輕發也 且諸君尙未及遊賞之年 徐待後期可也 愚哲曰 愚哲等各居百里之外 如此團會 似難容易 且同行中有東道主人 而不難十餘人留宿云 請與同志諸君子 一二日遊詠而歸 主丈曰 吾固難許 往稟蘆亭可也 愚哲、基洛往稟蘆亭大訥丈見諾 銜、愚相、愚哲、愚直、基洛、厚明、在廷、愚甸、基守、上鉉往遊籠巖 龍包安熙洙、台洞安鍾湜來謁 主丈曰 今而後 諸君有善遊籠巖之計 與安熙洙偕往 則峽路甚慣 經宿之道 自不窘迫 因語安熙洙 諸生附請聯笻 安熙洙曰 不敢自擅 往白家大人 然後許與僉君子同履 諸生因偕往 主丈曰 銜、愚相、愚哲往謁安熙洙大人可也
炳務、鉀來謁
午後 炳務、鉀、鍾湜辭退 鉀曰 明將啓發宜春之行 主丈修書于安英濟、安銓 兼賚寄克齋集二帙
主丈愼候 尙不快穌
李炳駿上書于主丈
夕講克己銘
直日孫上鉉

◎ 二十九日戊辰 雨
命周夙興
是日寔容大夫人生朝也 命周、海宗朝飯于蘆亭
昌寧成璨永[字武玉]來訪 仍往武陵
夕講布衾銘

詩帖 題憶籠巖遊伴
籠巖今日辦遨遊 佔畢遺芬四百秋
却羨諸賢眞境做 痛將塵滓洗長洲
童稚無緣共與遊 臨風指點藥山秋
獨坐寒燈愁不寐 五更疎雨過長洲
右建弘

今人擬續古人遊 四郡衣冠七月秋
却慚愚陋無眞分 悵望星淵第一洲
右海宗

直日黃命周

◎ 三十日己巳 雨
建弘夙興
召音李主事 修書于主丈
甘勿玄童子從表忠還 自言昨昨與紫巖十一賢 同宿僧舍 飯訖 諸賢向內院西庵去 渠則今冒雨至此云 主丈聞之 語建弘輩曰 籠巖之游 吾尙不許 況僧舍乎 作隊遊山之禍 已有謝家舊驗 且緇流不喜供客 巖徑又非暑節所攀躋 然此亦細故 跬步之間 已不省長者之意 此習漸滋 其不至於無所忌憚乎

詩帖 戒表忠遊伴
僧舍登臨賞玩同 名區幾物入眸中
竊恨平生眞實意 忽違師訓任南東
右建弘

函筵謨訓服膺同 屬屬常存規矩中
那意籠巖遊子屐 紛紛直向藥山東
右海宗

直日黃命周

[紫巖日錄 卷17]
[庚子(1900)八月]
◎ 八月一日庚子 雨
建弘夙興
銜家奴來 銜有閤憂云
主丈始校小心集
夕講蒙齋銘
直日黃命周

◎ 二日辛未 陰
海宗夙興
銜、愚相等十人還 以其所作諸詩就考
夕講心經贊
直日黃命周

◎ 三日壬申陰
基洛夙
洛、銜歸覲 以古詩一首贈上鉉
炳濩、載來謁
召音伻去
夕講敬銘

詩帖
負笈南來盡少年 碧燈夜夜紫巖前
柳港新凉蟬語動 菊秋佳約雁聲傳
數日空携忠寺屐 明朝相別慕江船
莫謂西南程遠隔 百年長願樂眞天
右上鉉

直日李愚相

◎ 四日癸酉 晴
建弘夙興
炳濩、載辭退 愚相、愚直、基洛、愚甸、厚明、上鉉、海宗歸覲 主丈餞于濟濟橋頭 諸生往餞于台洞之川外
基守受古文後集
主丈追謝金德文基洙[基洛之兄]書
夕講太極圖說
直日盧在廷

◎ 五日甲戌 晴
建弘夙興
建弘省墓梁山
夕講主一齋銘
直日李基守

◎ 六日乙亥 晴
在廷夙興
龍包安弼遠來謁
台洞安參奉璋遠、安建猷徽遠、黃澗朴達甫燦根來訪
金谷盧在憲、安彦達來謁
甲哲歸覲
夕講尊德性齋銘
直日黃命周

◎ 七日丙子 晴
命周夙興
安璋遠辭去
夕講陋室銘
直日盧在廷

◎ 八日丁丑午雨
在廷夙興
在憲、彦達辭退
宅容來謁
夕講張座銘

詩帖
天受斯民義與仁 存誠窒慾主乎身
願言敬聽賢師訓 過惡相規苟日新
右在廷

人之常德在於仁 克復孜孜敬立身
勿貳勿參心主一 暮朝溫故必知新
上同
匪類卄九人持銃劍入台洞 劫安承宣 宿武陵李丈敏九家 淸道仙巖朴參奉亦在劫中而來
直日李基守

◎ 九日戊寅 陰雨
家容夙興
台洞安都事、李丈秉九、李尙碩、孫生員瑢憲來訪而去
匪類卄九人劫安令而去

詩帖
休煩獨向斷塵橋 橋卞殘溜蘸柳條
長夏金陵愁病暑 中秋凝峽度淸宵
吟詩積案群居久 架屋依巖世慮消
愚陋任他歧路走 明朝遠涉舟人招
右宅容

直日黃命周

◎ 十日己卯 朝雨
孟文夙興
在廷歸覲
家容勤讀
直日盧在廷

◎ 十一日庚辰 晴
家容夙興
主丈往台洞還
江林齋奴來 洛濱儒生以張四未襄禮在十□日 請撰祭文 修書于主丈
建弘還
直日黃命周

◎ 十二日辛巳 晴
孟文夙興
宅容、命周歸覲
江林齋奴歸 主丈答江林書 撰送祭四未文
主丈修書于盧德必 請覓去其納宗条
建弘、孟文陪宿
直日盧寔容

◎ 十三日壬午 雨
主丈從叔國淵自菊洞來
孫上鉉上書于主丈 以北魚一桴、石魚五尾饋獻 夏海宗上書于主丈 以北魚十四尾、石魚五尾、蛤子五串饋獻 弼良以石魚三尾饋獻 孟文以北魚一桴饋獻
主丈答海宗書
主丈撰頭流精舍記
建弘、孟文陪宿
元淳上書于主丈兄弟及默漢 且修書于諸生
李允夫承九修書于主丈 主丈答
直日盧寔容

◎ 十四日癸未 夕大雨
信喆、信赫上書于主丈 以黃肉一斤、北魚十尾、石魚三尾饋獻 且以黃肉一斤饋獻于大訥丈 主丈封祭需于蘆亭 且以果肉封送于金谷[主丈仲父及姊氏在] 金谷且以魚尾三種送花坪喪家 仍修書于黃舜明
是日聞南道兵隊 逐火賊于熊川夫人堂 台洞安承宣及仙巖朴寢郞 縶留于夫人堂前洋舟中 承宣子姪今日馳向其地云 主丈喜曰 邪氣豈能久肆 日前余見安金吾 爲言按法者必有措處矣 果然
喜道以石魚三尾饋獻 建弘以黃肉一斤饋獻

◎ 十五日甲申 晴
節祭訖
主丈與默漢及舜與 終晷于蘆亭

◎ 十六日乙酉 晴
李炳務、李炳來來謁 主丈問安承宣自巨濟島中解圍而還 與默漢同往而慰 蓋統營兵隊百人 驅非類於利水島 承宣得脫而歸 此是知愛之所共賀也 鄕內來賀者塡門 朴參奉在馨氏 爲亂砲所害 聞之令人膽栗 以六十四歲林下禔躬之士 枉死于萬頃滄波孤舟之中 天之報善人 何如是之舛也
午後 主丈還
寔容以其亡姊寃窆之在十九日往新安 歷入台洞 慰安令而發菊田
李致洪來宿
主丈從弟相卨來

◎ 十七日丙戌 晴
主丈修書于安承宣
退老李丈翊九來宿蘆亭
丹亭李益五來訪

◎ 十八日丁亥 晴
退老李丈還去
大訥丈夜患泄瀉 終日澒洞
金海上東寓盧相達[主丈再從弟]及正容來謁
法山孫校理達遠來訪

◎ 十九日戊子 晴
大訥丈患節小差

◎ 二十日己丑 晴
李炳務來

◎ 二十一日庚寅 雨

◎ 二十二日辛卯 晴
許鉦辭退
上鉉還
直容與其再從兄眞容來謁
淸道楡川許燁[字春可 年十九 金海貫]來謁

詩帖
南來始入紫巖堂 燈下高談警術方
讀座銘知要正直 質詩帖感語精詳
四壁更深虫啷啷 百年村僻樹蒼蒼
愧我塵埃惟滿腹 願言備此復天常
右燁

直日孫上鉉

◎ 二十三日壬辰晴
孟文夙興
炳駿辭退
家容、孟文勤讀
直日盧直容

◎ 二十四日癸巳 陰
直容夙興
家容勤讀
許燁辭退
大訥丈頰傍腫氣不仁 針破
孟文以其從祖母小祥之日故 夕來問禮於主丈 曰 小祥猶爲魂帛埋安否 主丈曰 小祥魂帛埋安不可 孟文又問 小祥冠服 何如爲之可也 主丈曰 冠用緇笠 網用緇布 而又以網巾 用白線爲之亦無妨 孟文奉敎而退
夕講停
直日孫上鉉

◎ 二十五日甲午 大雨
溪水大漲 人不能渡
孟文滯雨不來
上鉉夙興
建弘未歸家
家容勤讀
直日盧直容

◎ 二十六日乙未陰
建弘夙興
直容勤灑掃
主丈使上鉉更書小心齋集
主丈責直容不受讀
家容勤讀
直日孫上鉉

◎ 二十七日丙申 陰
孟文夙興
金海上北李童子權一[年十九 貫碧珍]來謁
淸道明臺李先達德叔來訪
主丈曰 夕講之闕已久 且上鉉明日欲去 自今夕更設夕講可也
夕講 上鉉夙興夜寐箴 建弘金人銘 孟文陋室銘
直日盧直容

◎ 二十八日丁酉 大雨
權一夙興
直容勤灑掃
孟文勤讀
權一受重磨方
家容勤講
夕講 上鉉四勿箴 直容敬齋箴 建弘心箴 權一席四端銘 孟文求放心齋銘
直日孫上鉉

◎ 二十九日戊戌 雨
直容夙興
直容受重磨方
建弘喜聞過
上鉉勤抄
家容、孟文勤讀
夕講 直容金人銘 上鉉心經贊 建弘敬齋箴 孟文夙夜箴 權一夙夜箴
直日盧直容

◎ 三十日己亥 晴
孟文夙興
家容勤讀
直容勤灑掃
上鉉書小心集終
建弘以栗數十顆饋諸生
夕 主丈以節酌通編示上鉉
夕講 上鉉西銘 直容張座銘 建弘陋室銘 權一金人銘 孟文敬齋箴
直日孫上鉉

[紫巖日錄 卷18]
[庚子(1900)閏八月]
◎ 閏八月一日庚子 晴
孟文夙興
上鉉受通編記林黃中辯易、西銘
上鉉勤灑掃
直容、權一、寬容勤讀
夕講 直容消人慾銘 不成誦 使上鉉替誦 直容敬齋箴 建弘求放心齋銘 權一張座銘
直日盧直容

◎ 二日辛丑 晴
上鉉夙興
上鉉歸覲
直容往金海
權一受論語初卷
安承旨以黃肉一斤饋蘆亭 蓋以大訥丈腫患彌苦也
台洞隣里契 亦以黃肉一斤饋獻蘆亭
夕講心箴
直日李基守

◎ 三日壬寅 晴
家容夙興
主丈校正小心齋、盧公遺集畢[本稿三卷 刪爲一卷]
建弘受詩傳第二卷
加佐朴□□來謁
夕講長天理銘
直日李基守

◎ 四日癸卯 晴
孟文夙興
盧相達來謁
家容勤讀
夕講克己銘
直日李基守

◎ 五日甲辰 晴
孟文夙興
相達辭退 朴□□辭退
靈山月嶺金在龍[年十九 貫瑞興 讀孟子]來謁
震玉、在元來謁
在憲上書于主丈
機張新坪金洙安[年二十 貫安東]來謁
夕講布衾銘
直日李基守

◎ 六日乙巳 晴
家容夙興
夕講學古齋銘
直日李基守

◎ 七日丙午 晴
洙安夙興
炳濩來謁
孫生振演來訪
在龍受重磨方 洙安受通鑑十二卷
夕講蒙齋銘
直日柳震玉

◎ 八日丁未 晴
建弘夙興
金海盧紀容來謁
羅田盧薰容上書于主丈
直容還
震玉、在元辭退
夕講心經贊
直日盧直容

◎ 九日戊申 晴
洙安夙興
龍北孫聖則、崇眞蔣衛將亨玉來訪
主丈兄弟 從諸賓客往武陵 主丈還 大訥丈宿武陵齋
大訥丈自五月十七日至今吟症 是日强加巾 少焉櫛而作遊
禮林申丈永瑀、新基晉汝漢、靈山馬川宋圭一、堤岱李乃聖及安都事、安承旨、安漢章、孫殷瑞、李國一來訪
夕講敬齋銘
直日盧直容

◎ 十日己酉 晴
在龍夙興
直容辭退
命周還
昌原北桂李東煥[字泰仲 年二十二 貫載寧]來謁
在廷、相迪還
寔容上書于蘆亭及紫巖
盧燾容[字天汝 年十八 居菊洞 主丈族姪]、金震東[字雷卿 年十六 居菊洞 乃燾容內舅也]來謁
大訥丈自武陵患節更添
昌寧雁洞河大龍[字正中 年十九 貫晉陽]上書于主丈
孫聖則、蔣亨玉辭去

詩帖
蘆上高門爲客開 四山重疊更周回
數歲慣聞容衆所 斜陽始上紫巖臺
帙帙詩書通古蹟 彬彬文物育英才
欲知箇裡眞工處 禮百拜成酒一杯
右燾容

深深一路向東開 諸子冠裳願共回
始隨流水所尋戶 纔過垂楊忽見臺
圖書滿案皆前範 衿珮塡門認養才
負辟淳淳終不倦 此身殆似飮醇杯
右東煥

柳門西望暮烟開 黃葉蕭蕭遠客回
遙津揭厲勞巾屐 良夜提携步社臺
四座衣冠知不俗 一篇詩賦擅誰才
自是相看君努力 東楹方有獻酬杯
右建弘

夕講太極圖說

直日黃命周

◎ 十一日庚戌 晴
在廷夙興
紀容辭退
主丈修書于宗中
洙安、在龍辭退
夕講 在廷主一齋銘 東煥柳玭戒子書 命周西銘 震東張座銘 燾容四勿箴 相迪金人銘 建弘夙夜箴 孟文敬齋箴 權一心箴
直日盧在廷

◎ 十二日辛亥 細雨
在廷夙興
東煥、在廷、震東、燾容、相迪受重磨方
大訥丈腫氣未穌 是日熏鼻
夕講 震東尊德性齋銘 東煥諸葛武侯戒子書 命周陋室銘 在廷學古齋銘 燾容心箴 建弘金人銘 權一張座銘

詩帖
靑燈一點紫巖廬 靜坐相論古鏡書
秪願生平心主一 自期操約聖賢如
右在廷

明月蘆山社 整衿溫古書
可羨君姿美 踈才歎不如
右震東

東望蘆山訪草廬 挑燈講討滿床書
兩兩良朋時適到 問君今夜興何如
右命周

直日金震東

◎ 十三日壬子 晴
孟文夙興
夕講 燾容陋室銘 東煥夙夜箴 命周學古齋銘 在廷敬銘 震東敬齋箴 權一金人銘 建弘崔座銘 孟文求放心齋銘

詩帖
月華泛艶 無塵照我
芸窓意新 讀罷重磨
夜久洞門 寂若無人
右建弘

濟橋流水滌紅塵 剩得其間別味新
受炙師筵心不放 時時敬對卷中人
右在廷

淡雲孤月浩無塵 不昧虛靈漸入新
活潑天機流動地 詩情倍切此山人
右東煥

萬柳蒼蒼遮俗塵 數間山屋自新新
光風霽月無些累 四座衣冠摠玉人
右命周

直日盧燾容

◎ 十四日癸丑 晴
東煥夙興
主丈送人于菊洞 寄書寔容 又寄書于族弟秀實 答河大龍書 且修書于族叔進士應祜 以頭流精舍記、紙牌焚香儀送之
在廷、燾容各付家書
箭川李允夫來訪 昌寧桂八金敬五奎炳來訪
金星五奎洛修書于主丈 成一慶亦上書 皆答之
夕講 東煥張座銘 命周求放心齋銘 在廷克己銘 震東心箴 燾容消人欲銘 相迪學古齋銘 建弘調息箴 權一夙夜箴 孟文主一齋銘
直日李東煥

◎ 十五日甲寅 陰
東煥夙興
孟文、權一作戲
東煥、燾容、命周、在廷、震東、建弘、權一、孟文 往問大訥丈患候
東煥勤讀
燾容謹言語
信喆來謁 以秋魚一苴饋獻蘆亭
夕講 命周求放心齋銘 東煥學古齋銘 信喆消人欲銘 在廷心經贊 震東四勿箴 燾容長天理銘 相迪范座右銘 建弘張座右銘 權一心箴 孟文金人銘

詩帖
堂前流水水頭山 抱甕開篇心自閑
主翁勸我眞工做 手寫圖書揭壁間
右在廷

橫帶流川枕碧山 主翁高趣自淸閑
遠士彬彬來濟濟 儒風自此滿人間
右燾容

直日黃命周

◎ 十六日乙卯 朝雨午晴
在廷夙興
權一勤灑掃
相迪勤讀
夕講 在廷調息箴 東煥夙夜箴 信喆主一齋銘 命周四勿箴 震東金人銘 燾容西銘 相迪尊德性齋銘 建弘陋室銘 孟文張座銘 權一夙夜箴

詩帖
滿案詩書義理深 時時分析且論心
良宵山塾知何樂 五六生徒講誦音
右在廷

直日盧在廷

◎ 十七日丙辰 晴
東煥夙興
震東、燾容衣件來
信喆辭退
東煥受陶書
寔容還
夕講 震東夙夜箴 東煥西銘 命周敬齋箴 在廷勿齋箴 燾容克己銘 孟文陋室銘 權一金人銘
直日金震東

◎ 十八日丁巳 晴
東煥夙興
在廷受尙書第一卷
在龍還
靈山腰江林童子[奇道 年二十 貫羅州]來謁
夕講 燾容四勿箴 東煥布衾銘 命周心箴 在廷呂克己銘 震東學古齋銘 建弘四齋銘 孟文夙夜箴 在龍金人銘 權一張座銘 奇道心箴
直日盧燾容

◎ 十九日戊午 晴
燾容夙興
奇道受重磨方
直日困臥
夕講 東煥金人銘 命周布衾銘 在廷、東鉉、震東陋室銘 燾容學古齋銘 建弘求放心齋銘 在龍西銘 孟文敬齋箴 權一心箴 奇道中庸鬼神章
直日李東煥

◎ 二十日己未 晴
燾容夙興
奇道、權一辭退
台洞安都事來訪
主丈修書于盧進士應祜氏
盧申容來謁
申容大人秀貞修書于主丈
夕講 命周西銘 東煥消人慾銘 在廷太極圖說 震東敬銘 燾容蒙齋銘 相迪四勿箴 建弘敬齋箴 孟文金人銘 在龍魏座銘
直日黃命周

◎ 二十一日庚申 晴
相迪夙興
純容來謁
江林齋奴盧丈鎭宏、振容、參奉錫困、秀貞、秀燁 以登林修碑請文事 修書于主丈
夕講 在廷消人慾銘 東煥西銘 純容夙夜箴 建弘張座銘 孟文求放心齋銘 在龍布衾銘
申容、震東、相迪宿蘆亭
直日盧在廷

◎ 二十二日辛酉 晴
東煥夙興
申容辭退 主丈答其大人書
江林齋奴告歸 主丈答僉座書
純容以疥瘡調理次 往金陵北谷
夕講 震東心箴 東煥克己銘 命周心經贊 在廷四勿箴 燾容調息箴 相迪金人銘 孟文主一齋箴 在龍白座銘

詩帖
衡門深處可棲遲 敬立身心講誦時
秪願生平工業篤 存誠主一古賢期
右在廷

戒我容貌欲舒遲 詩書多積習時時
靑燈一点蘆山屋 披閱前賢有所期
右燾容

直日金震東

◎ 二十三日壬戌 晴
東煥夙興
禹在道來謁
大邱角谷朴光浩[字孟善 年二十三 貫密陽]來謁
金海九朗尹奎仁[字道益 年二十 貫坡平]、金童子[寬培 年十七 貫金海]來謁
禹在道大人楨熙修書于主丈 以北魚一桴饋之
大訥丈腫患稍穌 到文昌齋 使命周、弼良 輯治堂室
夕講 燾容長天理銘 東煥夙夜箴 命周學古齋銘 在廷蒙齋銘 震東布衾銘 相迪西銘 在度心箴 建弘主一齋銘 孟文陋室銘 在龍敬齋銘
直日盧燾容

◎ 二十四日癸亥 晴
在廷夙興
奇道還
商州山陽道村黃浩周[字養叔 年十五 貫長水]來謁
光浩、奎仁、寬培受重磨方
夕講 東煥克己銘 命周長天理銘 在廷尊德性齋銘 震東學古齋銘 燾容布衾銘 相迪心箴 在度敬齋箴 建弘金人銘 奇道中庸第三十章 在龍主一齋銘 寬培孟三滕文公首章
在廷、浩周、燾容、奎仁、光浩、東煥、建弘、在度、在龍、奇道、寬培、命周、震東等有詩
直日李東煥

◎ 二十五日甲子 晴
奎仁夙興
東煥辭退
主丈寄書于來進李元淳
光浩辭退 在度亦辭退 主丈答其大人書
命周受孟子第二卷 奇道受詩傳第一卷
靈山靑巖裵相奎[字文五 年二十二 貫盆城]來謁
權一還
夕講 命周布衾銘 相奎尙書第四卷首篇 在廷長天理銘 震東尊德性齋銘 燾容消人慾銘 奎仁夙夜箴 建弘張座銘 奇道中庸第三十一章 權一金人銘 在龍敬齋箴 寬培大學經文
直日黃命周

◎ 二十六日乙丑 晴夜雨
奎仁夙興
奎仁受大學
伻人還
中洞盧進士應祜修書于主丈
石洞申容上書于主丈
燾容阮府秀實寄書于燾容
在廷、震東衣件來
夕講在廷學古齋銘 相奎尙書說命 燾容金人銘 奎仁詩傳淸廟章 建弘陋室銘 奇道中庸第十五章 權一張座銘 在龍敬銘 寬培大學傳二章
命周、震東、相迪往宿蘆亭

詩帖
壁間燭火耿 天畔星光微
夜靜絃聲歇 寒霜屋角飛
右在廷

直日盧在廷

◎ 二十七日丙寅 雨
權一夙興
夕講 震東蒙齋銘 命周克己銘 相奎論語第三卷顏淵季路侍章 在廷布衾銘 燾容敬銘 奎仁大學篇題 相迪學古齋銘 奇道中庸第十一章 權一心箴 在龍消人慾銘 寬培夙夜箴

詩帖
秋雨蕭蕭秋水流 遊人悄倚碧溪頭
遙知九朗山前屋 梗林菱芋收未收
右寬培

直日金震東

◎ 二十八日丁卯 朝雨午陰
在廷夙興
主丈命浩周、燾容 書小心齋集
夕講 燾容心經贊 相奎曾子一貫章 在廷調息箴 奎仁大學經文 建弘藍田鄕約 權一夙夜箴 在度四勿箴 寬培金人銘
直日盧燾容

◎ 二十九日戊辰 晴
權一夙興
竹東孫□敎來訪
命周歸覲
相奎辭退
雲田尹成弼來謁
淸道大峴千□□與其子斗成[年十五 貫潁陽]來謁
夕講 奎仁敬銘 在廷主一齋銘 震東求放心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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