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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원인 감동공유 추천글
제목: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도 없다
일반인, 이름: 김*혁, 선정연도: 2015
추천내용: 이 희곡 중의 한 장면이다
“메리 : 또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구나.
사실은 혼자 있고 싶었으면서.
저들이 보이는 경멸과 혐오감 때문에 함께 있는 게 싫었으면서.
저들이 나가서 기쁘면서. (절망적인 웃음을 흘린다.)
성모님. 그런데 왜 이렇게 쓸쓸한 거죠?”
유진 오닐을 읽기 전 나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심취해있었다. 당시 내가 직면했던 문제를 내 마음을 직접 살펴보고 글을 적은 것 같은 놀라움, 그리고 한 작가의 책을 다 읽는 습관도 있기 때문에 그 둘의 책만을 계속해서 읽었다. 나는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이에게 힘들다고, 도와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내 슬픔을 말하면 듣는이도 내 슬픔을 느끼기 때문에, 내 짐을 받아들여야 때문에 나는 그것을 말할 수 없다. 얼마나 아픈지 알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아픔을 내가 지고 싶고, 다른 사람의 아픔까지 받아들이고 싶지 다른 사람까지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나는 책을 읽으며 그 조언에서 스스로를 위로하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것은 상처로 가득찬 내면에 있는 나와 희극적인(페르소나) 나로 분리됨을 가속화시켰을 뿐이다. 점점 해리가, 불안한 상태에 이르렀을 때 나는 쇼펜하우어의 글을 마주하였다. ‘인간은 다만 수난과 무기력, 동경과 비틀거림이라는 네 생애의 시기를 반복할 뿐이다’. 그렇다. 인생이라는 것은 헛된 희망을 지닌 채 비틀비틀 걸어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후로 나는 철저히 ‘나’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가벼운 것은 좋은 것이고 무거운 것은 좋지 않다고’, 나의 감정, 다른 사람들과의 진심어린 소통을 거부했다. 어차피 여기가 천국이 아니라면 어디든 마찬가지라고, 진지함을 거부했다. 이것이 그른 것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나에겐 싸울 힘이, 명분은 남아있지 않고 냉소만이 남아있었다. 존재는 ‘참을 수 없이 가볍고’, 나는 반복되는 삶을 반복할 뿐이고, 안개 속에 갇혀 서로를 보지도 못하며 소통하지도 못한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 과정은 서서히 일어났다. 단 한 사람은 가능 하지 않을까. 라는 기대 속에 반복되는 만남과 실패가 나를 둔하게 했다. 단지 나는 누군가와 소통을 하고 싶을 뿐 이었다. 그 때문인지 ‘밤으로의 긴 여로’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나와 관련이 있다, 이 책은 꼭 읽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슬픔으로의 긴 여로, 어둠으로의 긴 여로. 이 책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또다시 나는 ‘동경’의 시기를 반복했다. 이 책을 세 장쯤 읽을 무렵 나는 무서웠다. 이 가족에 가면이 있음을 느꼈고 그것은 지금 애써 만든 나, 그리고 이 가족의 평온을 산산조각 낼 것임을 짐작했다. 이 분위기가 언제 깨질지, 절망이 언제 시작될지 나는 무서웠다. 이야기는 계속해서 불안감을 조성하고 결국 ‘화기애애’해 보이는 가족은 서로 절망하고 울부짖기 시작한다. 이 절망을 나는 알고있다. 간절한 희망이 무너질 때, 아니, 더 이상 무너질 곳이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때, 무(無)가 두려워서 과장을 즐길때의 그 절망이었고 책을 읽으면서 내 가면은 점점 무너져버렸다. 메리가 성모님을 부를 때 나는 절망했고, 제이미가 가정에서 악역을 맡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나는 절망했고, 제임스가 메리를 진심으로 사랑함에도 , 가족 모두를 사랑함에도 ‘운명’ 때문에 돈을 아끼는 것에 나는 절망했고, 에드먼드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고 비관할 때 나는 절망했다. 무엇보다 가장 슬펐던 것은 유진 그는 나의 절망보다 더 깊은 절망을 했었음을 깨달았을 때, 너무나 거대한 고통의 감정을 느껴(단지 글 뿐임에도 불구하고) 숨도 못 쉬고 헐떡댔던 그 대사 ‘유진은 죽었어, (생략) 그 앤 단 한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어요.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거고.’ . 맞다 이 희극은 유진 오닐 그 자신의 가정사를 모티브로 쓴 것이다. 작중에서는 실제 어릴 적 죽은 오닐의 동생과 오닐 자신을 바꾼 것이다. 단지 고통만 가득찬 세상에서 차라리 유진이 죽어버린다면 이라는 가정을 할 정도로 그의 마음은 쇠약하였고 실제로 이 희극을 집필하는 동안 “들어갈 때보다 10년은 늙은 듯한 수척한 모습으로, 때로는 울어서 눈이 빨갛게 부은”상태로 작업실에서 나오는 것을 부인이 목격했다고 한다. 이 희극은 지극히 사적이며 절망을 기록한 이야기이며 그것으로부터 나는 그의 진실한 고통을 이해하고 나 또한 그의 고통을 감내하였다. 그 고통이 무서워서 오닐과 그의 가족, 그리고 나 모두 안개 속을 떠돌고 있다.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가려주고 세상을 우리로부터 가려주는 ‘안개’에 ‘우리’를 맡긴채 방황한다. 안개는 ‘아무도 우리를 찾아내거나 손을 대지 못하게’한다. 하지만 작품속에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있다만 또 다른 것을 나는 보았다. 서로를 향한 원망속에 담긴 눈물, 성녀의 추락, 파괴속에서 나는 재생, 성모님을 통한 구원을 보았다. 아무리 비관하고 서로를 원망하더라도 그들에겐 ‘가족애’가 남아 있고 ‘소통의 가능성’이 남아있는 한 구원의 길은 열려 있다. 템페스트의 언덕에서 셰익스피어는 미움과 힘보다 더 강하고 절대적인 것은 바로 용서, 그리고 사랑이며 아무리 얼룩진 인생이라도, 그래도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이제야 템페스트에서 모든 것을 버린채 용서하는 주인공에게 수긍이 간다. 인생이 무의미하더라도 시지프스는 계속해서 꼭대기까지 돌을 굴려 신에게 계속 저항한다. 왜? 인생은 저항이기 때문이다.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 안개속에서 길을 잃고 떠돌고 있더라도 계속하여 한 줄기의 빛을, 구원을, 소통의 가능성을 찾아 다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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