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도서관 독후감 공모전

2013.12.31

선정도서 상반기: 41종(부산대학교 선정 고전 99선 중 금오신화 외 40선)

하반기: 58종(부산대학교 선정 고전 99선 중 삼국유사 외 57선)

참가대상 부산대학교 대학(원)생
참여방법 대상도서 중 1권을 읽고 방문 및 이메일 제출
참여기간 2013년 5월 1일 ~ 2013년 7월 8일(상반기)

2013년 11월 1일 ~ 2014년 1월 6일(하반기)

시상내역 총 10편(부산대 총장상, 총상금 120만원)

 

2013년도 공모전 선정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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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독후감 선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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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상 제*우 바이오정보전자공학과 도서: 성학집요
독후감: 성학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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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학문이란 무엇일까? 또한 이 시대에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율곡의 성학집요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생각했다. 400여 번이 넘는 계절의 뒤바뀜을 건너 현시대의 ‘학문’을 배우는 ‘사람’들 중 한명으로써 율곡이 선조에게 올린 글을 읽는 순간순간, 그의 글귀 하나하나들은 나도 의식치 못하는 새 딱 딱히 굳어만 가던 내 생각과 마음가짐을 매서운 죽비로 내려치는 것과 같았다. 너무 가슴 아팠으며 또한 감사했다. 그리고 너무나 안타까워 가슴이 먹먹했다. 제왕학의 입문서라 할 수 있는 성학집요에서는 율곡이 선조를 성인의 길로 이끌기 위해 그리고 그를 통한 유가적 이상정치의 실현과 조선의 안녕을 얼마나 염원하는지 생생히 나타나 있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글로 쓰인 모든 것들 중에서 나는 오직 피로 쓰인 것만을 사랑한다.”라고 했던가? 율곡이 선조에게 보내는 이 책 역시 그 무엇에 비견할 바 없이 그의 혼이 오롯이 들어있는 저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논어, 맹자, 대학을 포함하는 사서 그리고 육경 등, 성학집요에는 “성인이 갖 추어야 할 배움의 모든 것”이 압축되어 들어있다 할 수 있다. 동양철학, 사상의 절대고전이라 할 수 있는 위와 같은 저서들을 한권한권 독파하기에는 현대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옛 조선의 많은 선비들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율곡은 선조가 참된 성군이 되길 바라는 절실한 마음에서 성학집요를 엮어 올렸다. 구체적으로 통설(統說) 수기(修己)[자기수양] 정가(正家)[집안을 바로잡음] 위정(爲政)[정치를 행함] 성현도통(聖賢道統)[성현의 계통과 진리의 전승] 이렇게 5절로 구분해 편집되어 있는 성학집요는 각 절에도 여러 종류의 장들로 구분하여 성리학에서 얘기하는 여러 철학적 이론들과 사상들을 친절히 설명하고 있다. 그 무엇보다 수기를 강조한 율곡은 성인이 되기 위해 자기수양이 얼마나 요구되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율곡이 하나하나 덧붙인 주석은 자신의 관점을 바탕으로 제시된 입장을 다시금 해석함으로써 딱딱할 수 있는 내용을 한결 부드럽게 만드는 효과를 가진다.
군자란 무엇인가? 성인은 또한 무엇인가? 율곡은 성학집요에 성인이 갖추어야할 자질과 덕목을 하나하나 제시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 때문에 선조를 성군의 길로 향하게 하려 그토록 노력한 것일까? 조선 중기 선조가 왕위에 올랐을 때는 왕위에 대한 철저한 준비과정도 그리고 그를 지지할 확고한 세력도 뒷받침 되지 않은 불안정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왕권을 강화하려는 선조와 유가적 이념을 바탕으로 왕권을 견제하려는 관료집단과의 긴장관계로 군신간의 원활한 소통이 어려운 시대였다 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온전히 상대방의 생각과 마음을 귀 기울여 듣지 못함에 따라 발생하는 빈번한 갈등에 서로 간 실망만 쌓였다. 이는 다음과 같은 율곡의 말에서 간접적으로 들어나는 바이다. “예로부터 임금과 신하가 서로 마음을 알지 못하면서도 공적을 이루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랬기에 율곡은 유교적 이념에 충실해 군주를 성군으로 이끌기를 바라는 마음 에서 성학집요를 엮었다. 조선 역시 군주를 중심으로 구성된 국가로써, 신하의 역할은 때로 제한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결국엔 군왕의 역할이 다시금 강조되는데, 율곡은 옛 요순임금과 같이 선조가 성인의 길을 따름으로써 국가와 백성을 위하게 이끄려 애썼다. 철인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플라톤식 이상국가와 대등하게 유교적 사회에서 역시, 왕의 도덕적 자질이 나라의 안녕과 백성의 복리에 직결된 사회 시스템이기에 그 무엇보다 왕의 수양이 중요했다. 그렇기에 율곡은 유교적 이념을 기반으로 하여 몸가짐을 단속하는 법에서부터 덕을 높이는 법, 정치의 근본과 절차, 그리고 인사관리 등 다방면으로 국왕이 다양한 자질을 지니길 바라고 또한 요구하였다.
그렇다면 율곡이 생각한 성인, 혹은 현 시대의 말로 바꾸어 볼 때에 ‘인재’란 누구이며 어떤 자질을 지닌 사람을 말하는 걸까? 결과적으로 국가의 정치, 경제, 민생, 국방을 안정시킨다면 군주를 성군이라 일컫을 수 있는 것일까? 결과지상주의에 빠진 현 사회에서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성리학은 자기수양을 중요시했다. 성리학은 언제나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사람과 세상 그리고 자신을 경계하고 두려워하라 요구한다. 또한 자신을 굽히는 것을 부끄러워도 말고 남을 이기려는 사사로운 마음 역시 내려 놓으라 말한다. 게으름 또한 그 무엇보다 나쁜 기질이라 말하며 온 마음을 다해 아름다운 자질을 완성하라는 성리학. 이런 인간상을 율곡은성인이자 시대의 ‘인재’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과정보다는 결과, 하나의
행동보다는 화려한 언변에 쉽게 현혹되는 우리네 사회에서는 이러한 유교적 개념이 고루하고 따분함에 넘어 답답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생각한다. 아니, 고민해 볼 필요가 반드시 있다 생각한다. 과연 우리가 배우고 있는 것은 ‘학문’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배우는 학생의 입장에서 ‘학생’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과연 제대로 잘 배워나가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가 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율곡이 말하는 배움의 자세와 지금의 학생들의 자세는 너무나 큰 간격이 있는 것 같았다. 무엇 한쪽을 일방적으로 맞다 틀리다하기 전에 이 차이가 무엇에서 기인하는지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생각했다.
많은 학생들은 오래전부터 자신도 모르게 가슴 한 켠에 불안을 담고 생활하고 있다. 좁디좁은 취업난, 이를 위해 요구되는 학점, 대외활동, 그리고 각종 영어점수들. 우리는 불안하기에 혹은 너무 두렵기에 현실을 외면하기도 하고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급급해 문제의 본질에서는 눈을 돌려버린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런 시대 상황에 순응하여 사회가 요구하는 규격화된 ‘인재’가 되기 위해 하루 하루 노력하고, 또 누군가는 학교를 취업양성소라 비난하며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비전보다는 가슴팍에 불안과 더 가까우며, 자신의 신념과 철학보다는 미디어의 견해에 쉽게 휩쓸린다. 사회는 학생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 역설하지만 정작 사회는 그들에게 그럴 기회와 여유를 제공하는지 의문이었다.
그렇다면 한 국가를 이끄는 군주가 아닌, 현 시대를 살고 있는 학생의 한명으로써 율곡의 성학집요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하는 많은 고민을 해보았다. 비단 이 글은 선조 즉 군주만을 위한 글이 아니라 400여년이 지난 지금 이 시대에도 누구에게나 적용되어 활용할 수 있는 훌륭한 삶의 지침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생각했다. 누군가는 이를 고리타분한 철학적 담론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목표와 성과, 효율성에 초점화 되어 폭넓은 주의를 잃어버린 현 대인들에게 율곡의 성학집요는 단지 삶의 의미와 진리 탐구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데 넘어 자아탐색과 자기실현 그리고 그로인한 궁극적인 행복감까지 우리에게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서양의 관점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동양문화의 핵심인 “노력”의 가치를 중요시 한 것 역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 덕목은 누구보다 배우는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자질 중 하나라 생각한다. 이 뜻은 다음과 같은 글귀에서 더욱 생생히 나타난다. “…행하지 않을지언정 행한다면 독실하지 않고서는 그만두지 않는다. 남이 한 번 만에 할 수 있다면 나는 백 번이라도 해서 할 수 있게 하고 남이 열 번 만에 할 수 있다면 나는 천 번이라도 해서 할 수 있게 한다.”
그 누구보다 자기수양에 철저했던 율곡의 자세와 태도 그리고 생각 역시 이 책에서 엿볼 수 있었다. 그가 학문에 임하는 자세는 정말 감탄 밖에 나오지 않았다. 율곡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경전이 생겨난 이래 선비라면 누구나 글을 읽었을 터이지만 참 유학자가 일어나기는 드물었고, 임금이라면 누구나 글을 읽었을터이지만 좋은 정치가 흥하기는 드물었는데,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 글을 읽은 것 이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는 자료가 되었을 뿐 쓸모 있는 도구가 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사실상 율곡의 이 말은 화려하지도, 우리가 알기 힘든 심오한 철학적 개념이 들어 있는 것도 아닌 단순하고도 너무나도 단순한 말이다. 하지만 진리는 당연한 것이라 하였던가? 배우는 자의 입장에서 무엇을 배우는 것이 자신의 지식과 앎의 수준을 뽐내기 위해, 그리고 최악의 경우에는 타인을 멸시하고 자신의 출세의 도구로만 쓰이는 것을 율곡은 경멸했다. 그리고 지식과 앎이 나와 세상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진정한 ‘도구’가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 워함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수시로 흐트러지는 자신의 생각과 마음 그리고 몸가짐을 바로잡기 위해 항시 얼마나 치열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나타나 있었다. 또한 사람과의 관계적 측면과 인사의 중요성 역시 유교적 이념에 기반하여 상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소인을 멀리하고 군자를 가까이 즐겨하라.”는 말 역시 현실 정치에서도 그리고 우리네 인간관계에서도 여전히 적용 가능한 말일 것이다.
누군가는 이야기한다. “공자(유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과연 그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처럼 생각하도록 한 것일까. 대한민국의 산업화 과정 및 그에 파생된 핵가족화 문제 등 다양한 사회 현상들을 겪는 동안 유교적 문화의 부작용이 그토록 심각했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이전엔 비슷한 입장을 지녔었다. “지나치게 번잡한 예절이란 형식에 치우쳐 중요한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지, 그리고 효율성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수천 년 전의 이런 철학이론이 그 어떤 가치를 지닐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고 그것들이 가질 수 있는 가치에 대해서 역시 상당히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율곡의 글을 읽고 난 후 그동안 나의 생각들이 너무나 편협했다는 것을 느꼈다. 무언가를 제대로 비판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을 먼저 충분히 공부해 볼 필요가 있었는데, 사실 그런 과정 없이 무작정 비난에 가까운 정도의 비판을 쏟아낸 과거의 모습들에 부끄러웠다. 사람들은 흔히 그 이유, 즉 본질을 쉽게 놓친다는 느낌을 받았다. 공자가 말하는 ‘예(禮)’와 ‘인(仁)’이란 유학의 핵심개념이 과거와 현시대에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로 잘못 적용되는 현상만을 바라보고 사람들은 무작정 비판한다. 하지만 그 이론과 개념이 잘못 적용된 현상 때문에 그 사상 혹은 정신적 토대까지 매도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 당시 공자가 왜 그러한 개념을 필요로 했는지, 그것이 제대로 적용되는 상황과 조건은 어떠했는지, 또한 그 개념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에 대해 숙고하지 않고 피상적인 결론은 내는 것이 얼마나 아둔하고 위험한 생각인지 느꼈다.
이상을 쫓아가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무엇이 예(禮), 인(仁), 충(忠)인지도 모르는 채, 무작정 옛 철학적 이론을 따르는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봤을 때도 너무 슬펐다. 옛 조선의 선비들이 추구하고 꿈꾼 성리학적 이념에 기반을 둔 이상적 사회에 대한 갈망이 소멸된 현재 사회를 바라볼 때에 또 다시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또한 성리학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이러한 대중의 오해와 멸시를 바라보았을 때, 성리학의 진정한 의미를 호도하게 만드는 여러 조건과 환경들이 너무 불 합리하다 여겨졌다.
물론 성리학을 비판하는 그들의 의견 역시 무조건 반박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안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뜻과 같이, 과거로부터 튼튼한 뿌리를 지닌 다음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생각하였다. 또한 과거에 아무리 훌륭한 사상 혹은 개념이라도 그것을 그대로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옛 성인의 글이라 해서 무작정 감탄하며 받아들여 자신과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상황과 조건들에 대한 충분한 숙고를 거친 후, 어떻게 지금에 맞추어 적용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 성학집요와 같은 옛 경전을 볼 때 역시 주의할 부분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군자가 학문을 하는 까닭은 기질을 변화시키기 위해서일 뿐이다.”라는 글귀를 읽을 때에, 무작정 옛 이론을 현실에 적용시켜 “우리가 공 부하는 유일한 이유는 자기극복을 위함 때문이다.”라고 섣불리 판단하는 것을 조 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이유는 여기서 말하는 군자란 일반적인 사람이라 치환될 수 없으며, 학문이란 것도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것이라 단순히 바꾸어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에 ‘군자’가 학문을 하는 까닭
과 지금의 학생들이 학문을 하는 이유는 얼마간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모든 것은 그 당시의 시대상황과 각종 제약조건하에서 같은 내용이라도 충분히 다르게 해석되고 적용될 수 있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율곡은 말하고 있었다. “네가 배우는 것은 어떠한 ‘학문’이냐”고, 그리고 또한 의문을 던졌다. “네가 생각하는‘배움’이란 무엇이냐”라고. 사실 우리 모두는 요순과 같은 역사적인 성군이 될 수도 없을 뿐더러, 모두가 그처럼 되어야할 필요 역시 없다. 하지만 새로운 인재의 필요성이 더욱 간절히 대두되는 시대에 있어, 우리는 성학집요를 통해서 율곡이 생각하는 성인 즉, 옛 조선의 인재상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생각이 든다. 또한 이러한 다양하고도 깊은 위대한 생각과의 만남은 우리네의 지식과 앎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 줄 뿐더러, 더 깊은 원초적인 질문을 이끈다. “율곡이 꿈꾸던 동양적 유토피아는 과연 어떠한 사회였을까? 또한 그를 실현시키기 위해 지금의 우리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율곡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며, 생각을 이어본다.
입상 이*은 문헌정보학과 도서: 국화와 칼
독후감: 국화와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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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칭한다.그리고 각국의 다른 나라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일본을 무시하는 유일한 나라’라고도 한다. 이렇게 지리적으로 가깝게 위치한 우리나라와 일본은 오래전부터 다양한 관계를 맺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갈등을 가지며,오늘날까지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미묘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일본과 관련한 역사를 배우고 일본의 역사왜곡,위안부 문제,독도 영유권 주장 등에 대한 행보와 우리나라의 일본에 대한 사회분위기들을 지켜봐 오면서 일본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과 약간의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적에게 이기려면 적을 가장 잘 파악해야 한다는 옛말을 떠올리며 일본사람들도 인정한 ‘일본을 다룬 가장 객관적인 고전’으로 불린다는 『일본 문화의 틀,국화와 칼』을 읽어보게 되었다.
<국화와 칼>은 1946년 완성된 책으로 미국이 일본과 제2차 세계대전을 치루면서 일본 민족의 이해를 필요로 하여 자국의 인류문화학자 루스 베네딕트에게 연구를 맡겨서 만든 보고서이다.군사적 목적으로 쓰여 졌지만,세계 각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일본학의 효시가 되었다.
이 책의 제목 ‘국화와 칼’은 그 자체로 참 인상 깊었다.일본을 확실하게 이 두 단어로 표현한 것이다. 국화는 일본의 황실을 상징한다. 일본인들은 벚꽃보다는 국화를 좋아하는데,그 이유는 다른 꽃들이 피지 않는 차가운 가을에 홀로 피는 국화는 깨끗하고 청결하고 조용하고 엄숙하고 고귀하다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칼은 일본 사무라 이 계층과 그 정신적 지주인 무사도의 상징이다. 저자는 일본 민족의 영혼 깊숙이 숨어 있는 전혀 다른 특징 두 가지를 표현하기 위해 국화와 칼이라는 상반되는 이미지의 사물을 제시했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일본인은 예의바르며 온순하고 겸허하지만 거칠고 야만스러우며,국화를 재배하는 일에 깊이 심취하는 것처럼 아름다움을 추구하길 좋아하지만 무사도와 칼의 명예에도 집착한다. <국화와 칼>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그렇게 예의바르고 착하고 겸손하고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일본 사람들 속에 무서운 칼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어느 부분 공감은 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이는 ‘부산사람들은 성질이 급 해.’,‘한국인들은 근면성실해.’라는 식의 비유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예외를 인정하지 않고 어떤 민족이나 국가를 이러한 일반화를 통해 이야기 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 않나 싶었다. 문화 인류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일본인들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행동한다.’라고 정의를 내리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이러한 시각으로 볼 때 이 책은 어떤 중요한 점들을 빠트린 것 같아 보이지만 대외 정책이 국가단위 혹은 민족단위로 이뤄지고 있는 만큼 상대방을 단순화해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당시의 집필목적과 더불어 저자가 서양인 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대단한 저작임이 분명하다.
우리는 의리를 쉽게 이해하지만 서양인들은 의(義),충(忠)과 같은 것들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서양 사람들은 동양의 상하 질서,종횡 구조를 잘 이해하지 못 한다.또한 서양 사람에게는 형제라는 개념이 없고 우리 역시 서양의 평등 개념이 없다.물론 서양인에게도 로열티(royalty)라는 것이 있지만 우리의 충(忠)이란 인간 개념과는 다르다.서양인들의 인간관계는 완전한 기브 앤 테이크(giveand take)이다.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따라서 베네딕트가 충과 효, 의리,은혜 사상을 밝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동양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려면이 은혜 사상을 이해해야 한다.
저자인 베네딕트는 책을 쓸 당시 현지 조사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자료들,예컨대 영화, 소설, 잡지나 일본 포로들과의 대화만을 통해 일본의 민족성을 구체적으로 이해했다.이를 계기로 인류학의 연구 대상이 대중 문화,잡지,신문,영화에 까지 미치게 되었는데 이 또한 저자가 남긴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은 일본의 ‘온’에 대한 설명이었다.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한국 역시 일본의 상당한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비슷한 걸까 아니면 같은 유교권이라서 비슷한 걸까 일본과 완전 똑같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도 분명히 과거에, 윗사람에, 주위사람에 대한 부채의식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일본만큼 심한 것은 아니지만 ‘고맙다.’라는 말과 함께 ‘미안하다.’라는 말을 나란히 사용하는 일이 빈번한 것도 그런 차원의 문제일 것이다.그런데 일본에서의 이 ‘온’이 때로는 ‘내가 친절을 베풀면 상대방이 나에게 빚을 지게 되니까 위험하다.’혹은 ‘내가 친절을 베푸는 것은 상대방에게 모욕을 주는 일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새로웠다.이와 관련하여 책의 본문에서는 아래와 같이 서술하고 있다.개인적으로 책을 덮은 후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이다.
일본인은 이웃 사람이나 예부터 정해진 계층적 관계에서는,‘온’을 받는 번거로움을 알면서도 기쁘게 그 번거로움을 받아들인다.그러나 상대가 단순히 아는 사람이거나, 자신과 대등한 사람인 경우에는 ‘온’을 받는 것을 매우 불편하게 생각한다.일본의 거리에서 무슨 사고가 일어났을 때,모인 군중이 수수방관하는 것은 단지 자발성이 없어서가 아니다.그것은 경찰이 아닌 민간인이 제멋대로 참견하면,그 사람에게 ‘온’을 입히는 행위가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p.145)
이 책이 꽤 오래전에 쓰인 책이고 세월이 흐르면서 문화와 정서는 바뀔 수밖에 없으므로 지금의 일본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읽어 내려갔지만, 이 부분은 나의 경험에 비추어 공감되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더 인상 깊게 다가왔다.몇 년 전,일본인과 한 조가 되어 같이 수업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하루는 그 친구가 수업자료를 가져오지 않아 내 자료를 빌려주었던 적이 있었다.그 이후로 일본인 친구는 고맙다며 매시간 마다 나에게 과자와 음료수 등을 건네주었다. 당시에는 그 친구를 마냥 착한 친구라고 생각하며 넘어갔었는데,그것이 바로 이러한 ‘온’을 갚고자 했던 일이 아니었나 싶다.
‘온’의 반대의무인 ‘기리’에 대한 내용은 아직까지도 유효한 과거사 반성에 관한문제와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었다.‘기리’는 자신이 받은 은혜와 같은 수량만을 갚으면 되고,또 시간적으로도 제한된 부채를 말한다.그 중 ‘이름에 대한 기리’는 명예의 일본식 변형이라고 하는데,자신의 실패나 전문적인 일에 대한 무지를 인정하지 않는 의무를 포함한다.
예를 들면 한 교사는 ‘나는 이름에 대한 기리 때문에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없다.’라고 말하며,외교관은 자신의 이름에 대한 기리 때문에 외교정책이 실패 하더라도 그것을 인정하지 못한다.이처럼 일본에서 기리를 통해 한 인간과 그가 한 일은 극단적으로 동일시되고 있다.따라서 사람의 행위나 능력에 대한 비판은 그 자신에 대한 비판이 된다.이는 곧 일본인들이 과거를 정당화하려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자기 자신과 과거의 행동을 동일시하는 일본인은 자기 자신을 바꿔야할 필요가 생겼을 때에만 과거의 행동 양식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수정한다는 것이다.
막부 말기 사쯔마 지방이 영국 군함의 공격을 받았을 때,그들은 적들의 강대함에 압도당했다.그들은 적에게서 배워야만 자신을 적과 같이 훌륭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그들은 쇄국 정책을 포기하고 적과 당장 우호관계를 맺어 그들의 문물을 받아들였다.또한 일본은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에게 패배하자,자신들이 추 구했던 군국주의 노선을 버려야 함을 깨달았다.그들은 자기 자신을 바꾸어야만 했다.따라서 그들은 미국과 우방이 되어 그들이 제시한 모든 변화를 받아들였다. 또한 과거의 일본해군을 격파한 이순신 장군을 제단에 모시고 참배하며 자신들의 군신으로 모시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역사적 사실로 미루어볼 때,일본이 자신의 사고방식이나 행동 양 식을 바꾸는 것은 단 한 가지 경우밖에 없다.자신들보다 훌륭한 상대방에게 크게 압도되었을 경우.그러니 만일 우리가 일본의 태도를 바꾸고자 한다면 목소리만 높이기보다 각자의 분야에서 실력으로 그들을 압도하는 방법밖에는 없다.즉 국력의 강화나 국격을 높이는 일은,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기 위한 필요조건이 아니라 충분조건인 셈이다.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진정성이 담긴 사과는 그들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날-에 이르러서야 되어서야 받을 수 있을 것이다.언뜻 그런 조건에 의한 사과는 진정성이 담긴 것이라고 보기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마지못해 하는 거라고,분명 속으로는 인정을 하는 게 아닐 거라고.
하지만 2차 대전의 패전국인 일본은 연합군의 상륙에 전혀 저항을 하지 않았다. 도리어 자신들에게 패배를 선사한 적이었던 그들을 환송해주는 분위기였다고 한다.전쟁 중에는 자폭공격도 서슴지 않았던 나라에서,연합군들은 전에 없이 안전한 점령기를 보냈을 것이다.일본인들의 환송은 연합군의 어떤 방심을 유도하기 위한 전략도,구밀복검하고 절치부심하는 분노도 없는 그야말로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동인 것이다.
<국화와 칼>이라는 이 책의 제목만큼이나 이중적이고 상반된 그들의 변모는 이 해하기 힘들긴 했지만,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을 비판하면서도 국격을 상승시 키는 것보다 권력 또는 이익을 취하기 위한 싸움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듯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떠올리며 경각심이 들었다.
그리고 한 가지 인상 깊게(혹은 아니꼽게)보았던 점은 ‘모든 것을 제자리에 두고자’하는 일본인들의 태도를 서술하는 루스 베네딕트의 관점이었다.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모든 것을 계층화 시켜 각기 제자리에 두는 것이 옳다는 자신들의 생각을 세계에 강요하고자 했다고 한다.그들의 ‘제자리’에서 일본은 가장 위에 존재하였으며 그들의 기준에 따라 다음 나라들이 위치해 있었다.저자는 이에 대해서 그들이 다른 나라에 이런 것을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었고 때문에 다른 나라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말한다.당연한 얘기이다.그런데 내가 이 부분이 아니꼽게 느껴졌던 점은,저자는 이것을 서술하면서 평등과 자유를 추구하는 미국인들이 볼 때 이것은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서술했는데 그런 행동을 현대의 미국 역시 하고 있기 때문이다.70년대에 겪은 두 번의 오일쇼크와 베트남전쟁 패전 등으로 자신들의 패권이 흔들릴 위기에 처하자 미국은 국제질서가 안정하려면 패권국인 미국을 잘 따르라는 ‘패권안정론’이라는 이론을 급하게 만들었다.이는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생각과 다른 것이 없다.비록 이것은 책이 발간된 시기보다 이후의 일이지만,‘미국인들은 그렇지 않은데 일본인들은 그러하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저자의 서술이 이러한 점들을 모두 숙지하고 있는 지금의 내 입장에서는 신뢰가 가지 않았고,책의 곳곳에 서양이 동양보다 우월하다는 뉘앙스를 많이 담고 있어 아쉬웠다.물론 저자가 서양인이고,이 책은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이 일본을 완벽히 분석하여 정복하기 위한 용도로 집필되었다는 점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이번 학기 수업시간에 들었던 고전의 가치에 대해 되짚어보면서,비록 적의 입장에서 군사적인 용도로 만들어졌고 개인적으로 비판적인 관점에서 바라봤던 부분도 있었지만,읽는 내내 오늘날까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이렇게 국민성의 세세한 항목까지 구체적으로 서술해놓은 대표적인 고전이 있다는 점에서 일본에 대한 부러운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일본인들도 이 책의 내용을 인정하며 자국의 역사연구에 참고한다는 점을 보면 그들도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리라.그리고 비약일지는 모르지만 이런 부분에서 나온 그들의 자부심은 요즘 국제사회에서 일본이 보이고 있는 굳건한 자신감의 토대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실 대부분의 고전이 그러하듯 시대가 변하면 그 시대에 걸맞은 해석이 필요하다.오늘날에는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지기 힘들어 과거의 명성으로, 또는 일부분의 공감으로 읽히는 고전들도 있다.‘국화와 칼’이라는 고전은 분명 당시의 일본을 철저한 자료를 바탕으로 최대한 객관적으로 평가한 훌륭한 책이다. 다만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제하더라도 급속히 발전하는 오늘날의 모습에 완전히 접목시키기에는 한계가 따른다.그렇다고 해서 고전의 가치가 퇴색 된다기보다 다른 각도에서,다른 부분에서 공감대를 찾아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오늘날 ‘국화와 칼’을 제대로 읽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입상 이*진 간호학과 도서: 군주론
독후감: 군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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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입학하면 고등학교의 커리큘럼보다 자유로운 시간이 많아 더 많은 책들을 읽고 다양하고 깊이 있는 사고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대학에 들어오니 책을 읽기는커녕 대학교에 적응하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놀다 보니 오히려 고등학교 문학시간 보다 책 읽을 기회는 적었다. 게다가 이과계열이었던 나는‘군주론’이 어떤 내용이며‘마키아벨리즘’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교양 과목 중‘고전읽기와 토론’의 레포트 주제로 군주론이주어져 군주론을 읽게 되었다.
책의 시작은 군주론의 저자인 마키아벨리에게서 파생된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옮긴이의 설명을 담고 있었다. 마키아벨리즘은 흔히‘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라는 뜻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도덕적, 사회적 사상과 벗어난다는 이유로 비판적인 용도로 자주 쓰이곤 한다. 하지만 그 당시 마키아벨리가 살고 있던 상황을 고려하면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마키아벨리즘의 의미는 왜곡되고 편향된 경향이 있다. 내가 읽은 책은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군주론을 처음 접하는 나는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보편적인 거부반응보다는 그 단어가 왜 나오게 되었는지 당시 상황에서는 무슨 의미로 쓰였는지를 알아보고 싶었다.
‘군주론’은 한마디로‘군주는 어떻게 하면 권력을 획득하고 또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으로‘정치란 도덕과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당대 르네상스 시대의 지배계층이었던 교황과 성직자들의 권위를 위협하는 혁명적인 사상이었고 1559년 교황청에 의해 선량한 기독교인에게는 적당치 않은 ‘악마의 사상’이라며 금서조치를 당했다. 그렇다면 바티칸의 금서였던 군주론이 발간 이후 지금까지 500여 년간 전 세계 사람들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마키아벨리와 그의 저서 ‘군주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이탈리 아의 상황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군사적 상황으로 이탈리아는 내 전과 비슷한 혼란의 상황을 겪고 있었다. 밀라노와 베니스, 피렌체, 교황국, 나폴 리왕국의 5개 나라로 분열되어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랑스와 신성 로마제국, 스페인과 같은 강력한 나라들의 침입도 있었다.
두 번째, 정치적 상황으로 중세 유럽의 사회 질서는 교회의 권위에 의존하는 기독교 왕국 사상과 봉건제도로 이루어져 있었다. 기독교 왕국이란 교회와 그 우두머리인 교황이 유럽 전체를 다스린다는 사상이고, 봉건제도는 군주와 신하가 서로 충성 계약을 맺는 정치제도이다. 군주는 신하들에게 영토를 떼어주어 영주가 되게하고 충선을 맹세 받는다. 하지만 영주들은 스스로 군대를 조직하고, 재판하고, 세금을 거두며 자기 땅을 왕처럼 마음대로 통치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주들은 힘이 없었다. 교회와 교황이 도덕적 영향력을 넘어 정치권력까지 손에 넣으면서 무자비하게 권력을 휘둘렀고 교황과 교회의 타락에 사람들은 더 이상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다.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의심이 일어나면서 자기 민족에 대한 의식이 싹트게 되었다. 군주들은 이러한 민심의 변화를 읽어내고 민족성을 내세우며 자신의 영향력을 키워 갔다.
세 번째, 문화적 상황으로 당시는 후기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고 있었다. 도시와 상공업의 발달로 관심의 중심이 인간에게로 이동함에 따라 고전의 부활도 이어졌다. 그리스 철학과 로마의 철학ㆍ문화가 재 발굴되고, 고전 예술과 문학, 철학이 부활했다. 특히 마키아벨리의 저서들에서는 정치의 부활이 많이 목격된다. 그 예로 5개 나라로 분열되어 불안한 정세가 계속됐던 이탈리아의 상황에서 과거의 좋았던 시기를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것과 로마이야기가 자주 나오는 것이 있다.
네 번째, 사회적 상황으로 고대의 문물을 부활시킨 이 시기에 사람들의 삶은 중세적인 방식에서 근대적인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경제 부흥과 인구 증가가 그 원인이었는데 수도원과 농토에서 도시로 삶의 중요 공간이 바뀌고, 자급자족에 의존하던 경제 구조는 초과 생산으로 변모했다. 금욕과 종교적인 생활을 중시했던 사람들이 세속 문화를 발전시켰고, 국가와 조국의 개념이 크게 자리 잡았다. 종교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이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심지어 교황의 영토 침입에 맞서 전쟁까지도 불사했던 피렌체의 역사적 사건도 있을 정도로 중세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처럼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기의 피렌체는 근대 사회로 변화하고 있었다.
이처럼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기에 피렌체는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혼란과 변화의 진통을 겪고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부패가 심했고 곳곳에 사악함과 이기주의를 목격할 수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퇴폐한 나라에서 선한 것을 찾으려는 노력은 헛되다고 생각했고 이탈리아가 이렇게 부패한 이유는 국가의 통일을 유지하는 한 명의 절대 군주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그는 구세주와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 이탈리아를 통일하고 강력한 나라를 만들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키아벨리가‘군주론’에서 주목한 이들은 정치적 분열과 대립, 외세의 개입 속에서도 이탈리아 각지에서 등장하는 중세 봉건시대에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유형의 지도자들이었다. 이들은 전통적인 세습군주와는 달리 오로지 자신의 재능 에 의해 권좌에 오른 자들이며, 위험을 감수하면서라도 과감하고 혁신적 방식으로 새로운 통치 질서를 수립하려던 자들이었다. 그리하여 마키아벨리는 이 새로운 유형의 지배자에게는 무엇보다도 이해관계에 대한 냉철한 타산과 현실의식이 필요하며 때에 따라서는 탈법과 악행도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마키아벨리는 행운이나 우연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 그들을 보면서 정치란 당위가 아니라 현실이며, 종교와 도덕과는 분리된 영역이라 생각했다.
많은 사상가들이 이상적인 군주에 대해 말했지만 현실은 이상과 너무나 달랐다. 마키아벨리는 ‘정치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고 실제적인 현상을 다루어야 한다.’는 현실주의적 정치 이념을 가지고 있었고 군주가 현실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이상만을 좇는다면 결국 망하고 말 것이라 생각했다. 때문에 군주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악당이 되는 법을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주변국들의 역사적 사건이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 책에서 좋은 군주가 되기 위한 행동 덕목, 통치 전략 등을 제시하고 있다. ‘군주론’을 이해하는 데 특히 도움이 되는 마키아벨리의 세 가지 인생경험이 있다.
첫 번째는 피사 정복 실패의 경험이다. 당시 피사는 피렌체가 지배하고 있던 지 역이었는데 1495년 피사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4년의 전쟁 끝에 피렌체가 피사를 포위했고 피사는 거의 항복할 시점이었다. 그런데 피렌체군 대장이 갑자기 퇴각 명령을 내렸다. 다 잡은 고기를 일부러 놓아 준 셈이었다. 결국 그는 처형됐지만 왜 그가 점령을 앞두고 갑자기 퇴각을 명령했는지는 의견이 분분했다. 마키아벨리는 그가 용병이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다. 용병은 돈을 받고 전쟁을 대신하는 군인으로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을 고용한 사람을 팔아넘길 수도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 사건으로 자국 군대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두 번째는 당시 외교관으로 활동했던 마키아벨리가 프랑스에서 당했던 수모이다. 피렌체는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 중 가장 강했지만 국제 정치 무대에서는 전혀 힘이 없었다. 그가 외교관으로 4차례나 프랑스를 방문했지만 그때마다 그는 모욕과 무시를 당했다. 그가 이를 통해 느낀 점은 군사력도 중요하지만 경제력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다. 경제력이 있어야 군사력을 키울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체사레 보르자라는 사람과의 만남이다. 그는 아버지의 도움을 등에 업고 이탈리아 동쪽과 중부 지역의 영토들을 정복하기 시작했고 중부 이탈리아 지역에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계획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마키아벨리가 체사레 보르자가 하는 행동을 잘 지켜보니 그는 이 계획을 사자가 지니는 힘과 여우가 지니고 있는 약사빠름을 적절하게 배합하면서 실행에 옮겼다. 즉, 적 앞에서 약속을 하고, 돌아서서는 자신이 했던 약속을 저버리고 그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체사레 보르자는 마키아벨리의 정치이념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보르자를 표본으로 삼아 위대한 군주의 모습을 그려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의 7장에서 체사레 보르자를 ‘신생 군주의 모범’으로, 나아가 미래 이탈리아의 강력한 새로운 군주로서 제시하고 있다. 그는 체사레 보르자의 행위를 보면서 국가는 ‘정치적 도덕’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했다. 즉, 그는 국가를 성공적으로 방위하고 국민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개인적 도덕과 군주가 행해야 하는 도덕의 기준을 구분하면서 군주가 개인적 도덕의 기준에 의해 행동하는 것은 국가를 위해서는 바람직 못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모든 인간들이 다 선하게 행동한다면, 군주가 굳이 정치적 도덕을 가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인간이란 자신들이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비열한 존재이기 때문에 군주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 정치적 도덕’을 가져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에게 강력한 행동을 할 것을 권고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폭군 정치를 옹호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국가는 그 자체의 자율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정치적 행위는‘국가 이성’에 호소함으로써 그 가치 여부가 결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컨대 국가는 종교에서 말하는 도 덕에 의해서가 아니라‘국가 이성’에 의해 자국의 이익을 위한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군주에게 제시하는 통치 전략이나 행동 지침을 보면 그 전제에는 인간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견해가 놓여 있다. 인간은 개인으로서 오로지 자신의 이기심만을 추구하며, 그 외의 다른 행동 동기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고립적 존재로 묘사되어 있다. 즉,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럽고, 위선적이며 비겁하고, 탐욕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에 군주가 자신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동안에만 충성을 바친다. 또, 위험이 별로 존재하지 않을 때는 마치 군주를 위해 그들의 재산과 생명을 다 바칠 것처럼 행동하지만 군주가 정작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는 그가 베풀었던 은혜를 망각하고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군주와 시민들의 관계는 위대하고 숭고한 이념에 의해서가 아니라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진정한 우호 관계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단, 여기서 이기주의란 인간 행위의 일반적 동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당대 이탈리아에 널리 만연되어 있는 사회적 퇴폐의 징조로서 사악함이나 이기주의를 말하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군주론’은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적 정치이념에 따라 집필되었다. ‘ 군주론’의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현실주의 사상은 정치가 명예와 권력의 추구를 제 1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군주는 국가를 통치함에 있어 종교적, 윤리적 규범에 구속될 필요가 없고, 오직 냉정한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리적 규범에 어긋나 비판론자들이 꼽는 대표적 조항으로는 ‘제 15장, 상황을 불문하고 선하게 행동할 것을 고집하는 사람이 무자비한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있다면 그의 몰락은 불가피하며, 군주가 권력을 유지하고자 할 경우 부도덕하게 행동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한다.’ 와 ‘제 18장,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 군주는 자신이 한 약속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들을 능수능란하게 혼란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물’이 있다. 그가 이러한 조항을 넣은 이유는 역사적으로도 이러한 군주가 신의를 지키는 자들에 대항하여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군주론이 바티칸의 금서였지만 500년이 넘도록 인문고전 필독서로 자리 잡은 이유도 오늘날의 시대에 그의 현실주의적 생각이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오늘날 ‘군주론’에 대한 지배적인 비판적 관점과 달리 나는 그의 현실적인 진단과 대책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만연하는 현대 사회에서 혼자만 ‘선’을 찾는다고 해서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기란 어렵다. 예를 들어 한 팀의 리더가 다른 팀과 다르게 정직하고 투명하게만 일을 하면 이미 편법이 만연해있는 사회에서 이 팀은 가장 뒤쳐질 것이다. 때문에 조직원들은 약간의 편법을 쓰더라도 그들이 제일 앞서나가길 원한다. 만약 일정한 소수만 편법을 쓴다면 그 행위는 ‘악’으로 강조되겠지만 이미 사회가 편법으로 물들어 있는 상태에서 편법을 선택하는 것은 사회 흐름을 따라가기 위한 방법이라 생각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마키아벨리의 급진적인 생각을 비판하지만 5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의 생각이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다. 잔인하고 악한 방법이라도 원하는 목표에만 닿는다면 과정을 묻어둘 수 있는 결과 중심적 생각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았다. 사람들은 결과 중심적 사고를 비판하지만 이미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것들은 결과만으로 판단되어 진다. 이런 사회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한다면 과정이 아닌 사회가 원하는 결과로 보여주어야 한다. 따라서 나는 거의 모든 것이 결과중심적인 현대사회에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결과주의만 생각하는 무자비한 책이라 비판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나는 ‘군주론’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그들이 지향하는 곳은 같다고 생각한다. ‘군주론’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반윤리적이고 반종교적인 잔인한 행동들을 지침으로 삼으라고 하냐고 주장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그 당시 사회상황은 이미 부패하고 이기주의가 만연했기에 그 사회에서 그 탐욕적인 시민들보다 우위에 서서 그들을 통치하려면 군주는 그들보다 더 잔혹해 질 수 밖에 없었다. 즉, 비판론자들이 비판해야 할 것은 마키아벨리의 급진적 사상보다도 ‘군주론’의 내용대로 통치해야 훌륭한 군주라 할 정도로 부패한 현실이다. 또, ‘군주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부패한 현실을 인지하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권모술수를 사용하는 군주가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나라를 통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패한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면 윤리를 찾을 것이냐 말 것이냐의 논쟁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즉, 비판자와 옹호자 모두가 지향해야 할 것은 선한 사회이다.
마키아벨리의 사상이 급진적이고 ‘악’에 가까운 것도 있지만‘군주론’을 통해 부패한 당시 중세 유럽 현실을 돌아볼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500년이 지난 오늘날에 읽어도 크게 다르지 않은 이기적인 우리 사회에 대한 반성을 해 보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의의라 나는 생각한다
입상 박*옥 사학과 도서: 미생물 사냥꾼 이야기
독후감: 미생물 사냥꾼 이야기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이 크림 전쟁에서 병사들을 간호하러 갔다가, 불결하기 그지없는 위생환경을 보고 충격 받았다는 이야기는 정말 유명하다. 제대로 세탁하지도 않은 침구 위에 내던져진 부상병들은 제때 치료받지도 못한 채 방치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청소도 제대로 하지 않아 쓰레기나 기타 오물이 병상에 쌓여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병원에서 오히려 상처가 악화되기 일쑤였고, 병원에서 속절없이 죽어나간 병사들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적군 포로 수용소였다고 해도 기막힐 판국인데, 자국 부상병을 수용하고 의사도 파견된 병원의 현실이 그랬다. 나이팅게일은 이 참상을 목도한 뒤, 세탁과 청소에도 많은 신경을 써서 병사들이 먼지 없는 방에서 깨끗한 시트 위에 누울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냈다. 나이팅게일이 돌본 많은 병사들이 눈에 띄게 호전된 것은, 비단 정성 어린 간호뿐만 아니라, 이전보다 훨씬 청결해진 환경에서 지낼 수 있었던 것도 한몫했다는 이야기가 많을 정도다. 그런데 나라를 위해 싸우다 다친 병사들이 그런 불결한 환경에 내던져졌다는 것보다 더 충격적인 것이 있으니, 바로 나이팅게일이 목도한 병사들이 당시 기준에서 딱히 홀대받거나 외면당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당시 의학의 표준은 실제로 그랬기 때문이다.
백여 년 전까지만 해도, 유럽 의학에서는‘의사가 환자를 진찰하거나 수술하려면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라는 개념이 전혀 없었다. 젬멜바이스라는 의사가 손을 의사가 손을 씻어야 한다고 주장하자 오히려 죽을 때까지 헛소리꾼 취급만 받았을 정도였다. 아득한 옛 시절 옛이야기가 아니라, 1865년에 죽은 사람의 이야기다. 젬멜바이스의 주장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죽고 나서도 수십 년이 더 흘러야했다. 1900년의 언저리에서 파스퇴르가 등장한 뒤에야, 젬멜바이스는 비로소 헛소리꾼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전까지는 수술을 받다가 죽는 환자가 속출했고, 병원에서 오히려 병이 악화된 경우도 수두룩했는데, 당시 병원 환경과 위생관념을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였다. 다른 환자의 상처부위나 시신을 만진 손으로 환자를 돌보는데, 상처가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의사가 환자를 돌보기 전에 먼저 손을 씻어야 하는 것은, 미생물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의 몸과 옷에는 수많은 미생물들이 들러붙어 있으며, 이 미생물들은 허약한 사람들에게는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다른 환자의상처나 시신에 있다가 옮겨 온 미생물이라면,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환자가 미생물에 감염될 여지를 가급적 최소한으로 줄여야 하며, 수술도구와 환자용 침구 등을 소독하고 청결하게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파스퇴르가 이런 관습을 도입한 뒤, 병원에서 상처가 악화되거나 사망하는 환자는 부쩍 줄었다. 미생물학자들의 연구가 비단 학술적 진전에만 그치지 않고, 사람들을 살리게 된 것이다. 파스퇴르가 병원 위생이라는 관념을 도입한 뒤에도, 보다 많은 사람을 구 하기 위해 다종다양한 미생물을 다각도로 연구하는 연구자가 그 뒤를 이었으며, 그들의 노력과 업적에 힘입어 오늘날의 우리들은 예전보다 훨씬 안전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소설처럼 읽는 미생물 사냥꾼 이야기>는 바로 그 사람들에 대해, 마치 소설의 한 장면처럼 박진감넘치고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는 책이다. 유명한 의학자의 일생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이 책은 추천하기 애매할 것이다. 언제 어디서 태어나 어디서 어떤 공부를 했는지, 어떤 인물과 만나고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아주 간략하게만 다루고 있다. 하지만 미생물 분야에서의역사적인 발견과 관련 연구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은 추천 1순위 도서가 될 것이다. 유명한 미생물 연구사례에 대해 방대하고 알기 쉽게 풀어놓고 있으며, 당시 시대상황이나 의학계의 동향, 사회의 관습 등에 대해서도 폭넓게 다루고 있어,보다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독자를 이끌어준다.
<소설처럼 읽는 미생물 사냥꾼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생소한 분야에서 과거에 펼쳐진 일들을 다루고 있는데, 낯설지만은 않더라는 것이었다. 혼자서 꾸준히 한 우물을 파다가 마침내 금자탑을 쌓을 수 있었던 이야기, 기술적 어려움을 발상의 전환으로 해결하는 이야기, 연구소와 현장을 긴밀하게 연계하여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이야기, 유망한 과학자에게 많은 사람들이 십시일반 후원하며 마침내 성공한 이야기, 생소한 분야에 거의 백지 상태로 뛰어들어 실패를 거듭하지만 마침내 새로운 발견을 해내는 이야기, 유명한 스승의 연구와 방식을 이어받은 제자가 또 다른 분야에서 업적을 쌓은 이야기 등은, 누가 과학자를 주제로 소설을 쓰라고 하면 흔히 생각할 수 있을 법한 패턴이다. 하지만 이들의 드라마는 결코 뻣뻣한 패턴을 답습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열정, 노력, 끈기 등의 단어 몇 개로는 도저히 형용하지 못할, 치열하고 극적인 드라마가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미생물이라는 존재를 처음 발견한 레벤후크는, 홀로 탐구를 거듭하여 역사적인 발견을 해냈다. 레벤후크는 말 그대로 자기 연구의 알파에서 오메가까지를, 오로지 혼자서 수행했다. 직접 만들고 개량한 망원경을 사용했고, 직접 구상한 새로운 실험을 주문제작한 실험도구로 수행했고, 새로운 것이 발견되면 정리했다. 실험을 구상하고, 실행하고, 이론으로 만드는 것을 모두 혼자서 해낸 것이다. 새로운 영역에 발을 디디고, 선행되고 축적된 지식이 없는 백지 상태로 척박한 환경을 개척하는 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업적까지 남겼다. 황무지를 홀로 개간하고, 꽃까지 피워낸 것이다. 외부의 도움 없이 홀로 모든 것을 수행한 건 둘째 치고, 정식으로 의학이나 과학 분야의 수업을 받은 적도 없는 사람이 이런 업적을 쌓을 수 있다니, 존경스럽다 못해 경이로운 일이다. 백지 상태로 시작했어도, 끈기 있고 능력 있는 위인이 한 우물만 꾸준히 파면 어떤 경지까지 다다를 수 있는지 몸소 보여주는 사례로 손꼽을 만하다.
개인적으로는 레벤후크가 스스로의 힘만으로 이룩한 연구성과에 못지않게, 당대석학들의 반응도 흥미로웠다. 제대로 학교에 다닌 적도 없는 직공이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를 한다며 무시할 거라고 지레짐작했는데, 레벤후크의 글을 진지하게 읽은 뒤 연구를 인정하고 찬사를 보낸 것이 의외였다. 생각해보면 지극히 온당한 행 보이다. 연구자의 프로필이 어떻건, 연구를 위조한 전적이 없는 이상에야, 발표한 연구내용 자체만을 평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관련학과가 개설된 적도 없는, 전혀 새로운 분야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직공 출신이라고 무시당했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다니, 연구 자체가 아닌 프로필의 학력과 소속단체의 성격을 보고, 이러저러한 경력도 없는 사람의 연구를 어떻게 신뢰하느냐는 식으로 폄하부터 하는 것을 너무나 많이 접했더니, 어느새 그 논리에 익숙해져버린 모양이다. 그런 논리로 폄하하는 것을 볼 때마다 비논리적인 트집잡기라고 생각했는데, 워낙 많이 접하다 보니 익숙해져버린 것을 보면, 보고 들은 이야기가 사고관에 미치는 영향은 과연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스팔란차니 역시 레벤후크처럼, 제도교육 없이 스스로 배우고 연구한 사람이 금 자탑을 쌓아올린 사례이다. 제도교육을 받은 적 없다는 것은 해당 분야의 기본적인 지식조차 익히지 못했다는 의미도 되지만, 동시에 당대 학설이 틀렸을 경우 틀린 학설을 배우지 않고 고정관념도 없다는 의미도 된다. 후자의 경우, 틀린 기존 학설에 발목잡히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밝히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스팔란차니가 그랬듯이 말이다.
스팔란차니 시대에는 미생물은 스스로 생겨난다는 것이 상식으로 여겨졌다. 스팔란차니는 면밀한 실험을 통해 외부와 차단된 곳에서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미생물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당시 학자들은 갖가지 경우의 수를 상정하고 기발한 설명을 착상해내며 그 실험결과를 ‘상식’에 끼워 맞추거나, 아예 스팔란차니의 저술을 무시해버렸다. 오컴의 면도날, 가장 간단한 것이 해답인 법이거늘, 기존 이론을 지키기 위해 별의별 무리수를 동원해 기상천외한 해명을 늘어놓는 모습이 황당하기까지 했다. 이런 일은 비단 스팔란차니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혁신적인 이론을 발표했을 때마다 마치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었다. 최종결과를 알고 있는 입장에서 그런 억지를 늘어놓는 모습을 보면, 답답해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 자기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건, 단순히 상대가 자신보다 유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이 믿어온 세계가 진실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리고 그 이야기를 반박할 가망이 아직 보인다면, 그 ‘가망’에 매달리지 않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자기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건, 그것을 진실이라 믿어온 지난 세월을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고, 그렇다면 처절하고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것도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아집은 학문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거나, 오히려 발목을 잡기 마련이다. 본전 생각을 하면서 큰 손실을 본 투자처에 계속 매 달리는 심정과 다름없다. 매몰비용에 매몰되었다가는, 본전은커녕 오히려 추가손 실만 발생하기 일쑤이며, 학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자신이 틀린 이론을 붙잡고 있으며 전전긍긍하고 있는 동안에도, 선구자는 저 멀리 앞질러 가고 있을 테니 말이다.
스팔란차니 챕터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기술적 한계를 발상의 전환으로 극복하는 모습이었다. 당시 기술로는 플라스크를 완전히 밀봉할 수 없었고, 완벽히 밀봉했다고 생각한 플라스크에서 시간이 지나면 미생물이 생기고는 했다. 당시 학계에서는 이것을 미생물이 스스로 생겨난다는 자연발생설의 증거라고 여겼지만, 스팔란차니는 완벽히 밀봉하지 못해서 허점이 생긴 결과라고 생각했다. 스팔란차니는 그저 입구를 꽁꽁 싸매는 방식으로는 플라스크와 외부 공기를 완전히 차단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실제로 옳았다. 하지만 그 가설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당시 기술로는 플라스크를 완전히 밀봉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말이다. 스팔란차니는 발상의 전환과 과감한 시도로 기술적 난제를 해결했다. 플라스크의 입구를 아예 유리를 녹여 땜질해버린 것이다. 플라스크를 개봉해야 할 때에는 유리로 때운 입구를 깨뜨렸다. 예술 분야에서는 발상의 전환이, 재료의 한계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사례가 여럿 있다. 예를 들어 중세 시대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는, 당시 기술로는 큰 유리판을 만들어낼 수 없었기 때문에 작은 유리조각들을 조립하자는 발상에서 출발하며, 작은 색유리 조각들이 영롱한 빛의 형상을 만들어 내는 스테인드글라스 예술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난 이런 일이 기술, 과학 실험 쪽에서는 일어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예술이 기술을 응용하는 것이라면, 실험은 기술 자체의 극한을 추구하는 것이니, 기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스팔란차니의 실험을 보고, 발상의 전환은 과학실험에서의 기술적 한계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레벤후크와 스팔란차니는 사택의 개인연구실에서 혼자서 연구하며 역사적인 발견을 해냈다. 그들도, 그들의 반대자들도 개인이 실험할 수 있는 규모의 실험을하거나, 실험을 하지는 않고 이론만을 착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파스퇴르와 코흐의 시대에 이르러, 미생물 연구의 스케일은 개인 공간의 영역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수많은 실험동물을 대상으로 여러 명의 조수를 진두지휘하며 연구하는 시대, 동시에 개인의 학문세계를 벗어나 사회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연구가 진행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사회의 동향, 당대의 역사적 사건 등은 관련 미생물 연구에 조금씩 영향을 주기 시작했고, 사회의 요구와 미생물 연구의 경향이 긴밀히 맞물리는 데 이르게 된다. 학자 개인이 흥미를 가진 대상을 개인연구실에서 홀로 연구하는 시대가 아니라, 사람들이 두렵게 여기는 병을 미생물학자가 연구하고, 실험과 연구를 거듭하여 그 병을 퇴치하거나, 적어도 효과적인 예방법을 알아내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 첫걸음을 뗀 인물은 파스퇴르였다. 파스퇴르 챕터를 읽으면서, 산학협력과 응용과학의 이상적인 모습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포도주 양조자가 포도주가 시큼해진다고 연락했을 때, 목장주가 탄저병 때문에 가축들이 죽어나간다고 했을 때, 양잠업자가 누에가 집단으로 괴사하는 사태에 대해서 제보했을 때, 파스퇴르는 현미경을 들고 곧장 출동하여 미생물을 관찰했다. 그리고 미생물을 찾아냈고, 미생물의 특성을 파악하여 대처법도 강구했다. 산업현장을 기습한 미지의 사태를 과학으로 해결한 것이다. 파스퇴르가 성공하자, 사람들은 과학이 질병을 해결해줄 수 있다는 기대를 품기 시작했다. 이 기대는 막연한 믿음에서 그치지 않고, 학술적 성취뿐만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라도 과학 연구에 도움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으로 발전했다. 보다 본격적으로 대처법을 강구하기 위해 여러 조수와 학자가 합동해서 연구하게 된 것도,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의 후원금이나 국 고로 과학연구를 후원하게 된 것도 파스퇴르 때부터였다. 그리고 국수주의 정서가 과학연구를 가로막는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파스퇴르와 코흐의 대립, 정확히 말해 파스퇴르와 코흐를 둘러싼 프랑스인과 독일인의 대립은 국수주의 정서가 양날의 칼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자랑스러운 우리 나리의 과학자’를 위해서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과학 연구를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나라가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는 순기능도 있었지만, 역기능도 뚜렷했다. 외국 과학자의 공헌을 인정하는 것을 조국에 대한 배신처럼 여기거나, 외국 과학자를 무턱대고 깎아내리는 것을 애국하는 것처럼 여기는 풍조가 형성되는가 하면, 어떻게든 외국의 라이벌보다 앞선 실적을 내라면서 과학자를 닦달하기도 했다. 이런 식의 풍조는 성급하고 허술하게 실험해서라도 그럴싸한 결과 물을 내라고 강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일정을 앞당긴답시고 부실공사를 강요하면, 안전한 건물을 기대할 수 없는 법이다. 코흐는 제대로 검증하지도 않은 결핵 요법을 성급하게 시도했다가 여러 희생자를 낳았는데, 주변에서 파스퇴르를 의식하며 실적주의식 사고방식을 코흐에게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그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감정은 파스퇴르의 제자인 에밀 루와, 코흐의 제자 격인 에밀 베링에게서도 이어졌다. 루와 베링은 동시기에 같은 주제로 연구를 했는데도, 협력은 고사하고 상대방과 교류하는 것조차 반감을 가질 정도였다. 두 사람이 각각 따로 연구하면서 중복되고 낭비된 것이 얼마나 많았을까? 루와 베링이 서로를 깎아내리려 소모했던 시간과 기력은 또 어떻고? 루와 베링이 같이 협력했다면, 디프테리아 혈청은 훨씬 빨리 발명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말라리아 연구의 공헌도를 두고 로스와 그라시가 벌인 설전에 대해“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상대방에게 조금이라도 명성을 안겨 주느니 차라리 훌륭한 발견을 묻어 두려고 했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표현했는데, 이런 대립각은 로스와 그라시 사이에서만 보인 것이 아니었다. 국수주의 정서가 끼어들면, 로스와 그라시의 신경전은 아이들 장난으로 보일 법한 난장판이 일어나고는 했고, 이런 감정은 종종 나쁜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과학자 개인의 적대감 덕분에 협력할 기회를 놓치거나 멀쩡한 연구 결과를 폄하하는가 하면, 일반인들의 국민감정까지 더해지면 점입가경이 되기 일쑤였다. 국수주의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과학자의 업적을 나라 간의 대결이 아닌 개인의 공헌으로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면, 과학은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과학은 정확하게 실험하고, 그 실험결과를 엄정하게 검증한 뒤에야 발표하는 것이 온당하다. 또한 그럴싸한 추측만으로는 부족하며, 반박할 수 없는 증거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미생물처럼 생명과 직결되는 긴급한 사안에서,이 원칙은 어디까지 적용되어야 할까? 시어벌드 스미스의 텍사스병 챕터와 월터리드의 황열병 챕터는 이 아이러니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 북부의 농부가 남부의 소를 사들여 자기 목장으로 옮기면, 한 달여가 지난 후 소가 쓰러져 죽는 일이 속출했다. 텍사스병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병은 아무리 건강한 소를 사들여도 나타나고는 했다. 스미스는 연구를 통해 텍사스병의 원인이 진드기라고 짐작하게 되었고, 그의 짐작은 옳았다. 하지만 스미스는 진드기를 박멸해야 한다는 발표를 하지 않았다. 정말로 진드기가 원인인 것인지 몇 년 동안 면밀한 실험을 거듭했고, 마침내 진드기가 원인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규명할 수 있게 된 뒤에야, 비로소 발표했던 것이다. 스미스는 진드기를 없애야 한다고 했고, 그의 말대로 진드기를 박멸하자 텍사스병 발병사례는 더 이상 보고되지 않았다.
스미스는 비난받아야 할까, 그 반대일까? 과학원칙이라는 측면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내지는 그래야만 하는 행동이었다. 학문적 증거를 논문 형태로 갖추어 발표하지 않았다면, 아마 증거 없는 낭설 취급을 받았을 테니 말이다. 정황증거밖에 없고 잠정결론밖에 내리지 못했는데, 과연 받아들여졌을까? 밑져야 본전이라면 그랬겠지만, 긁어 부스럼이 될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 텍사스병의 진짜 원인은 진드기가 아닌 다른 미생물이며, 진드기는 그 미생물의 천적으로 미생물을 잡아먹으며 그나마 사태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가정대로라면, 진드기가 진짜 원인이 아니면서도. 진드기가 있는 곳에서만 텍사스병이 나타나는 현상이 충분히 설명된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진드기를 잡았다면, 오히려 텍사스병 원흉의 천적을 없앤 격이 되어 상황을 악화시켰을 것이다. 이미 비슷한 전례가 있었으니, 무시할 수만은 없는 가정이었다.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있는가? 스미스는 가능성이 0%가 아닌 이상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몇 년 동안 지루한 확인실험을 수행했고, 모든 것이 확실해진 뒤에야 마침내 발표했다. 과학적 원칙을 훌륭히 이수한, 흠잡을 데 없는 행보였다. 스미스의 완전무결한 실험 앞에서는 반론을 제기할 여지가 도저히 없었고, 스미스의 방안은 곧바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진드기를 없애야 한다는 잠정결론이라도 진작 발표했다면, 텍사스병은 몇 년 일찍 퇴치되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스미스의 딜레마는 오늘날에도 결코 낯설지 않다. 임상실험 논란의 본질과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질병을 호전시킬 것이 거의 확실하게 기대되지만 아직 완벽히 검증되지는 않은 약이 있다면, 환자에게 그 약을 처방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모든 것이 완벽히 검증될 때까지 미루는 것이 옳은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하는 환자가 후자를 원한다면, 후자를 처방하는 것이 얼마나 온당한 일인가. 후자를 택한 환자의 몸 상태가 오히려 나빠졌다면, 의사에게는 얼마나 책임이 있는 것일까. 생명과 직결되는 곳에서 성급함과 신중함, 신속함과 지지부진함의 경계는 어디에 있을까. 그 사이에 과연 뚜렷한 경계선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아마 이 딜레마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질병이 완전히 박멸되지 않는 한,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월터 리드의 황열병 연구에서는 또 다른 딜레마가 전면에서 드러난다. 아무리 유력한 이론도 실험을 한 뒤에야 수용하는 것은, 원칙적으로는 온당한 일이다. 아 무리 완벽해 보이는 이론도, 통제할 수 없는 변수와 예기치 못한 사태가 일어나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일은 종종 일어난다. 그런데 질병에 관한 학설을 입증하기 위해서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해야 한다면, 즉 건강한 개인을 질병에 걸릴지도 모르는 환경에 밀어 넣어 정말 병에 걸리는지 아닌지를 확인해야 한다면, 이 실험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 수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한 실험일까, 멀쩡한 생명을 희생시키는 실험일까? 월터 리드의 황열병 연구 및 실험은, 질병의 치료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면 목숨이라도 바칠 각오가 된 사람들이 자원했고, 치료제도 상비한 상태에서 진행되었지만, 그렇다고 이 딜레마가 희석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딜레마가 있다고 해서, 그 실험 덕분에 정확히 어떤 환경에서 황 열병에 걸리고, 어떤 환경에서는 황열병이 발발하지 않는지는 면밀히 판별할 수 있게 되었고, 그를 토대로 구체적으로 실제적인 황열병 예방대책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는 의의가 사라지는 것도 역시 아니다.
황열병 환자의 물건을 통해서 황열병이 감염되는 것인지를 확인하는 실험에서, 이 딜레마는 정점을 찍는다. 당시에는 황열병 환자들이 쓰던 물건과 접촉하면 황 열병이 옮는다는 두려움이 널리 퍼져 있어서, 황열병 환자들의 쓰던 물건은 모두 불태웠다. 월터 리드는 이 소문을 검증하기 위해, 자원자들이 황열병 환자들이 쓰던 물건으로만 꾸민 방에서 생활하게 했다. 시간이 지나도 황열병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자, 한 단계 더 나아가 황열병 환자의 침상에서 지내게 했다. 이번에도 황열병에 걸린 사람은 없었다. 황열병 환자들이 쓰던 물건과 접촉해도, 황열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 완벽히 입증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그 두려움을 완전히 떨쳐낼 수 있게 되었다. 수많은 물건들이 무의미하게 폐기처분되는 상황이 중지되었다는 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효과다. 어떤 물건을 보고 이 물건이 혹시 황열병 환자와 접촉한 적 있는 물건인 것은 아닐지, 만약 그렇다면 손이 닿기만 해도 황열 병에 걸리는 것은 아닌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적인 치료법을 찾는 실험도 아니건만, 오로지 사람들의 두려움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본인이 황열병에 걸릴 것을 각오하고 살신성인의 희생정신으로 몸을 내던진 사람들이 몸소 증명해준 덕분에 말이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불철주야 연구를 거듭하며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예방할 대 책도 치료할 방법도 없어 보였던 수많은 질병은 하나씩 정복되고 있다. 파울 에를리히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특정 미생물만 맞춤형으로 공격하는 화학요법을 개발해냈고, 에를리히의 뒤를 이은 후학 연구진들의 분투 덕에 갈수록 정교하고 방대한 화학요법이 새로이 등장하고 있다. 덕분에 우리들은 백여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했을 만큼 평온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황열병, 디프테리아, 공수병, 말라리아 등은 과거에 수많은 사람을 공포로 몰아넣었지만, 오늘날 그런 병은 예방주사를 맞거나 아주 기초적인 안전수칙만 준수해도 발병할 일이 없고, 만약 걸리게 된다고 해도 금세 치료할 수 있다. <소설처럼 읽는 미생물 사냥꾼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이런 환경이 어떤 과정을 위해 조금씩 쌓아올려졌는지, 학자들이 어떤 연구를 통해 온갖 미생물의 공포를 하나씩 극복해왔는지를 눈에 보이듯이 생생하게 그려내며, 그것이 없던 세계가 얼마나 무서웠는지조차 모르는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학자들은, 비단 무턱대고 노력하기만 해서 성공에 다다른 것이 아니었다. 무조건 열정적으로 노력하기만 한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노력 없는 성과는 없어도, 노력이 반드시 성과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거나 선구적인 업적을 쌓는다는 측면에서는 그렇다.
이런 분야에서 노력만 하면 무언가를 해낼 수 있으리라는 것은, 아무 땅이나 골라잡고 끝없이 땅을 판다면 언젠가는 유전이 솟아오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유전을 원한다면, 우선 유전이 있을 만한 장소를 지질학적 조사 등으로 물색한 뒤에 지목된 장소를 파야 하는 것이다. 이쪽이 실패할 수도 있지만 성공할 수도 있고, 기술 수준에 따라서 성공할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면, 전자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방법에 가깝다. 어쩌다가 한 번쯤은 운 좋게 성공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게 좋은 방법이라 진심으로 믿는다면, 수주대토 격밖에 되지 못한다. 그나마 수주대토 고사에서 농부가 한 것이란 토끼가 자기 앞의 말뚝에 부딪혀 죽는 행운이 또다시 일어나기를 고대하며 마냥 기다리기만 한 것밖에 없었기에 품이라도 안 들었지, 무언가를 연구할 때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쏟아 붓고는 막상 제대로 된 결과는 얻지 못하는 사태가 초래될 수도 있다.
이 책의 미생물학자들은 물론 초인적인 노력으로 꾸준히 정진했지만, 그것만으로 업적을 달성한 것은 아니었다. 치밀한 계획을 세웠고, 정확하게 수행했으며, 면밀하게 연구했고, 무엇보다 기존의 이론에 얽매여 연구결과를 끼워 맞추지 않고, 보다 열린 자세로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다른 사람이 발 디딘 적 없는 영역을 개척해낼 수 있었다. 그들은 땅을 파서 유전이 나올만한 곳이 어디인지 파악하거나, 최소한 그럴 가망이 있는 곳을 파악할 여력이 있었고, 그 곳에 자신의 노력을 쏟아 부을 각오가 되어 있었으며, 또한 땅을 파다가 유전이 아니라는 조짐이 보이면 매몰비용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접을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간혹 계획한 적 없이 즉흥적인 기분으로 실험해본 것이나, 오히려 실험계획과 어긋나게 실수한 것이 정답을 가져다준 적이 있는데, 이것을 가만히 있다가 운 좋게 얻어걸린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해이다. 그들은 언제든지 심상찮은 조짐을 포착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예기치 않은 징조가 보이면 그것을 포착해냈을 뿐이다.
실수가 큰 발견으로 이어진 것은, 객관식 문제를 대충 찍었는데 정답을 맞혀버린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그 ‘실수’도 언제든지 다시 재현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면밀히 기록한 사람만이, 실수가 가져다준 행운을 역사적 발견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아무 것도 기록하지 않고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본인 실수로 일어난 그 상황을 다시 재현할 수 없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시적 해프닝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소설처럼 읽는 미생물 사냥꾼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학설이나 발견을 발표했다가 기존 학계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힌 경험을 한 번쯤은 해보았으며, 연구에 매진하는 것 못지않은 기력을 기존 학설에 대항하는 데 쏟아 부은 사례도 있을 정도다. 그 반대자들은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했거나, 구습에 얽매여 선구적 발견을 공박한 시대착오적 인물 정도로만 가끔 회자될 뿐이다. 그 사람들은 게으르고 나태하고 무능했기에, 역사적 업적을 쌓지 못했던 것일까? 앵무새처럼 남의 말을 반복하기만 하니까 그린 된 것일까? 그런 경우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진정성 있고, 성실하고, 자신이 공부하고 실험한 결과 기존 이론이 옳다고 판단하여 진정으로 믿은 학자도 많았다. 그 중에는 이 책의 주인공보다 훨씬 학식 있고 존경 받는 위인이었으며, 그럴 자격이 충분한 인물도 여럿 있었다.
그들의 운명을 가른 것은, 새로운 발견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었다. <소설처럼 읽는 미생물 사냥꾼>들은 실패 한 적 한 번 없이 쭈욱 성공만 하다가, 어느새 업적을 쌓게 된 것이 아니었다. 가만히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학설이 번뜩 떠올라 역사적 발견을 하게 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실험이 지지부진한 상황을 수없이 겪었고, 실패한 적도 많았고, 때로는 실험 실패가 치명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시도가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것을 경험으로 삼았다. 실패하는 길을 제거하며 실패하지 않는 길을 꾸준히 탐색하다가, 마침내 그 길을 찾아내는 데 성공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진정한 성공이란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인정하는 것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절절하게 절감했다. 이 책이 비단 미생물 학자의 업적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노력하는 개인의 성공담으로서도 큰 호소력을 가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입상 김*은 국어교육과 도서: 매천야록
독후감: 매천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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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발적 아웃사이더, 청춘의 자화상
우리시대의 대학생을 생각해 본다. 취업에 목을 매는 청춘들, 이것이 우리의 자화상일까. 나는 진리를 찾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청춘을 꿈꿔왔다. 그런데 스펙을 쌓기 위해 관계를 단절하는 자발적 아웃사이더라니? 어느덧 빚으로 학교를 다니는 생활에 익숙해져 간다는 친구들의 모습이 내 동기이자 선배였다. 아니 나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했다. 대학교라는 곳은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의 장이 아니었던가. 대학생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그 속에서 진리를 구하며, 다른 이들을 위해 따뜻한 봉사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이 아니었던가. 문득 나의 정체성에 혼란스러웠다. 나는 누구인가.
나 역시 언제나 그래왔듯 우리 사회 현실을 외면해 왔다. 눈만 감은 채 모른 척했다. 내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주현우 씨와 같은 사람들이 ‘안녕하십니까’ 벽보를 붙여주니깐. 누군가 이 답답한 사회에 돌 하나 던지지 않겠나 하는 기대를하던 소심한 나에게 매천(梅泉) 황현(黃玹)의 ‘글 아는 사람(識字人)’이란 화두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는 백여 년 전에 나에게 묻고 있었다. 대학생인 너는,이 사회에서 글을 배우고 있고 훗날 누군가를 가르치고자 하는 너는 ‘글 아는 사람’ 노릇을 하고 있느냐?-황현과 ‘글을 아는 사람’
‘글 아는 사람’. 즉 식자인(識字人)이란 지식인이다. 조선시대에 빗대자면 선비(士)가 곧 지식인이다. 황현은 조선시대 당대의 최고의 문인 중 한사람이었다. 그는 소년시절부터 ‘황초립동이’로 명성이 자자했었고 생원시에 합격했어도 정치가 날이 갈수록 잘못되어 감에 서울 걸음을 뚝 끊었다. 서울 친구가 상경하지 않음을 책망하자 당당하게 “그대는 나를 보고 도깨비 나라의 미치광이 속으로 들어가서 함께 도깨비 미치광이 짓을 하란 말이냐고”공박을 하기도 했다. 밖에서는개방이 침탈로 이어지고, 안으로는 개혁이 혼란을 빚어낸 사회상이 그의 눈에는 도깨비 나라의 미치광이 작태와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정계에 물러나 은거를 했지만, 그럼에도 매천야록에 드러난 그의 날카로운 눈은 파란중첩한 조선 사회를 냉철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급진 개화파 관료들과 성리학적 전통질서를 지키려는 유생간의 대립, 망국으로 치닫게 하는 관료들과 최고지도자들의 부패와 혼란, 이런 상황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주체성을 상실하는 선비들, 잃어가는 국권을 수호하려는 지사들과 의병장들의 움직임, 교활한 속임수로 이권을 노리는 외세의 간섭,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악전고투들, 이러한 위태로운 시대를 지켜보고 기록한 것, 이것이 바로 매천야록 이었다. 융희 6년인 1910년 7월, 마침내 일본이 대한제국을 병탄했다. 황현은 경술국치에 비통해하며 16일 뒤 늦은 저녁에 <절명시(絶命詩)>를 짓고 아편을 먹었다. 죽음을 결행하며 남긴 유언에 이런 말이 있었다.
“나는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다만 국가가 선비를 기른 지 오백년인데 나라가 망하는 날 몸을 바친 자가 한 명도 없다면 어찌 통석할 일이 아닌가! 나는 위로 하늘의 병이(秉彛)의 아름다움과 아래로 평소 읽은 책의 의미를 저버릴 수 없다. 눈을 감고 영영 잠들면 참으로 쾌할 것이다.” 그렇다면 망국의 길로 치달아 가는 이 비극을 몸소 지켜본 조선시대의 ‘士’, 황현은 과연 무엇을 보고 들었으며 무엇을 후대에 남기고자 한 것일까. 매천야록에 담긴 내용은 방대하면서도 다양했다. 단순히 국내의 일을 기록한 것을 넘어, 인도의 기근, 남미주의 샴쌍둥이 탄생 등의 나라밖 기사도 보인다. 특히 기해년 이후의 기록에서는 우박과 가뭄, 홍수와 같은 자연 재해에 대한 기록이 끊이지 않는다. 망국의 조짐인 셈이다. 역주 번역본으로 1000페이지가 넘는 이 무수한 기록들을 여기서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다. 다만 이 기록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나의 단상들을 크게 세 갈래-‘근대 문물의 허상’, ‘최고권력자에 대한 비판’그리고 ‘전통 관습과의 단절’로 잡아 보았다. 밖으로 들어오는 근대 문물, 안에서는 좌초된 나라를 더욱 혼란에 빠뜨리는 지도자들, 그리고 근대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버려진 전통, 과거와의 단절이, 육백년이란 오랜 세월을 살아온 조선의 숨통을 끊어놓았던 원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상들을 적어가는 동안, 내 마음 한 구석이 아려왔다. 분명 백여 년 전의 역사인데, 바로 지금 세상을 보는 듯한 착각 속에 마음이 아파왔던 것이다.-근대 문물의 허상: ‘근대 문명이란 무엇인가’
개항과 함께 전기, 철도 서양의술 등 각종 근대 문물이 물밀듯 쏟아져 들어왔다. 근대 시설이 도입되면서 전등이 경복궁의 밤을 밝히고, 전차가 다니고, 철도가 개통되고, 새로운 화폐가 주조되었다. 본디 ‘근대화’라는 말이 그렇듯 근대 문물은 진보하고 세련된 뉘앙스를 갖는다. 하지만 황현은 그 근대 문물의 어두운 허상들을 놓치지 않았다. 근대 시설에 담긴 약탈의 음모와 차관에 의한 경제적 예속화를 낱낱이 고발한 것이다. 눈에 띄는 기사를 적어본다.
○ 양식의 석조건물을 덕수궁에 건립하였는데, 그 비용이 132,299원이었다.
○ 작년 겨울 이후 목포항에서 면화를 수출했는데 그 금액은 100만원에 달하였다. 일본인이 사간 것인데 높은 값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연해 지방의 면화상들이 몰려들기를 장터 사람 모이듯 하여 종종 큰 돈벌이를 하는 자도 있었는데, 끝내 그 면화를 어디에 쓸지도 알지 못했다. 얼마 안 되어 가격이 폭락했다.
○ 서울의 인구…본국인이 161,656명이고 일본인이 26,316…서울의 민호는 본래 4만호 가량인데 집주인이 문건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2000호에 불과…그 나머지는 모두 외국인에게 전당을 잡혔다.
근대식 석조 건물을 건설한다는 명목으로 세워진 덕수궁 석조전, 그것은 당시 어려운 국가 재정 가운데 그것이 무리한 공사였다. 덕수궁 건립에 들인 막대한 비용은 곧 차관, 빚이었다. 이 외에도 경복궁을 절매해서 대공원을 설치한 일도 있다. 무려 인도의 코끼리를 구입해서 동물원에 기르는데, 날마다 드는 사료가 양병 20근, 마른풀 50냥이라고 한다. 일반 백성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던 그 시절, 코끼리를 먹일 여유가 과연 있었던가. 이 동물원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조선이라는 나라를 위한 것이었나 의문이 든다. 철도 건설은 근대식으로 교통수단이 변모하는 반면, 일본이 식민지 건설을 하기 위한 예비 작업이기도 하였다. 선로를 파괴하는 의병장들에 대한 기록들도 있는 것을 보면, 매천은 철도 건설이 식민지배의 일환임을 파악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면화 수출과 관련한 기사를 보면 조선이 일본과의 국제 무역에서 수출의 주도권을 빼앗긴 채 손해만 보는 경제적 아마추어인 모습을 역력히 보여준다. 일본과 외세의 요구에 개항을 하고 무역을 하기 시작했으나, 근대식 무역에 익숙하지 않은 조선 정부는 외국과의 통상에 어설프기만 하다. 매천야록 에 따르면 조선의 수출액은 12,158,885원인 반면 수입액은 21,814,091원이다. 두 배 가까이 되는 무역 적자인 셈이다. 결과적으로 국제무역은 조선에게 득보다 실을 가져왔고, 경제적 종속화를 야기했다.
세 번째 기사에 의하면, 집 소유 혹은 점유권이 외국인에게 4/5 가량이 넘어간 실태를 보여준다. 사실 비단 집 문제만이 아니다. 일본에게 우리나라 해상에서 고기잡이하는 것을 허락해 줌으로써 일본 어민과 그들의 어획량이 급증하는 바람에 어획량마저 점유 당했고, 앞서 언급한 근대 문물의 도입에 의한 비용은 모두 조선 에게 전가되는 바람에 일본에서 차입한 국채가 무려 44,537,958원 89전 7리가 되었다.
가만히 지금을 돌이켜보면 우리도 종종 조선 관료 같이 세상을 바라볼 때가 많다. 매일 같이 신문에 보도되는 IT신기술들에 대한 소식은 장밋빛 미래를 끊임없이 우리에게 강조하면서 구매해서 스마트하고 현명한 소비자가 되라고 유혹한다. 이번 국제 무역 협정을 맺으면 더 싸게 해외 물건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무슨 새로운 제도가 도입할 때마다, 외제 제품이 론칭할 때마다 기사는 늘 몇 천억의 경제효과! 몇 십조의 부가가치 효과! 강조하며 외친다. 이상하다. 정작 내가 먹고 사는 것은 변함없이 똑같은데 말이다.-최고권력자에 대한 비판: ‘지도자란 누구인가’
조선시대의 왕은 지존이다. 지금의 대통령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는 자리가 바로 왕이 아니던가. 그런데 왕과 왕비, 그리고 섭정을 했던 흥선대원군에 대해 황현은 거침없이 평한다. 그는 망국의 원인을 밖의 탓-외세와 급변하는 시류로만 돌리지 않았다. ‘국가는 필시 스스로 자기를 해친 연후에 남이 치고 들어온다.’ 라는 말을 한 그는 조선 내부 역시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뿌리가 썩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매관매직이 성행함으로써 이미 능력 있는 인재의 발탁은 불가능해졌으며, 그 매관매직의 꼭대기에는 바로 고종과 민비, 흥선대원군이 있었다. 고종도 흥선대원군도 자기 사람을 기용하는 데에만 급급했으며 민비 또한 자기 가문의 사람들을 정계에 들이기에만 골몰했다. 사사로운 감정에 따라 사람을 등용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기가 쓰는 경비가 부족해 왕후는 스스로 나서서 수령 자리를 팔고, 왕은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아예 수령의 임기를 짧게 만들어버렸다. 미신에 현혹되고 잡배들의 속임수에 현혹되는 일들을 사례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황현의 필봉은 이들에 대한 긍정적인 면도 빼놓지 않는다. 민비는 총명하고 책략이 많으며 항상 임금의 곁에 있으면서 임금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보좌했다고 했다고 말한다. 흥선대원군의 경우도 아래 두 원문을 통해 비교해 볼 수 있다.
○ 운현(흥선대원군)은 임금의 친부로서 총재의 일을 행사했으니 남면만 안 했을 뿐이지 엄연히 섭정을 한 것이다. 그 10년 동안은 국가가 무사했으니 정히 천 년에 두 번 다시 없는 기회로 크게 일을 할 수 있는 때였다. … 하늘이 상서를 내려 인재들이 배출되고 백성을 잘 살게 하고 불어나게 하며 가르치기를 10년간 했다면 천하에 또한 못할 일이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운현이라는 사람은 장동 김씨의 부귀를 부러워하다가 하루아침에 뜻을 얻자 사치와 교만에 빠져 제멋대로 방자하게 굴었던 것이 장동 김씨에 비교해서 오히려 더한 편이었다. 그리하여 원기를 훼손하고 백성들에게 원망을 샀으며, 한갓 토목공사에 매달리고 색목에 편들기로 10년 사업을 삼았으니, 오호라 이는 시운이었던가? 천년 후에 또한 반드시 이 일에 탄식하고 통한할 자가 있을 것이다.
○ 정묘년 가을, 팔도에 사창을 설치하였다.…백성들이 처음엔 원망하였지만 몇 년 뒤에는 좋은 법으로 인정하였다. 운현이 제도를 만들어 낸 것이 매우 번거로웠는데, 이 세 가지는 조금 나은 것이다.’
인물의 행적을 평가하고 비판함에 있어 황현은 그 잘한 점과 못한 점 모두 지적하고 있다. 비록 흥선대원군이 사사로이 제 권력을 휘두르기도 했으며, 무리한 토목 공사로 민심을 흩트려 나라를 중흥시킬 수 있던 십여 년을 잘못 허비했지만 적어도 삼정의 문란을 개혁하기 위한 사창제는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었음을 인정 하였다.
황현은 고종과 민비, 흥선대원군을 내놓고 비판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행적을 있는 그대로, 보았던 그대로 보여준다. 그 덕분에 우리는 그의 진술에 신뢰를 갖는다. 되도록 편파적이지 않고, 가능하면 공과 과를 같이 읽으려는 그의 모습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눈을 배운다. 그럼에도 나는 당시 최고통치자들에 대한 황현의 언급에서 곧 터질 듯한 분노를 느낀다. 역사를 끌어가는 것은 생산을 담당하는 민중이지만, 당시의 나라를 운영하는 지도자들의 역량에 의해 그 운세의 키가 좌 지우지되지 않았던가. 그래서 위정자들, 그 가운데서도 최고통치자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결코 늦춰서는 안 되는 양심의 목소리인 것이다.-전통관습과의 단절: ‘역사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조선 말기에 갑신정변과 갑오개혁, 을미개혁 여러 사회 개혁들이 잇따라 시작되었다. 기존의 고루한 제도들을 신식 제도로 바꾸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사회가 변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우리가 지켜야 할 전통까지 짓밟는 결과를 야기했다. 민영소가 일본인에게 장서 6만여 권을 팔아서 대가로 1,500원을 챙긴 일, 일본 승좌들이 고려대장경 판목 자체를 실어가려고 하자 전국의 승려들이 격분하면서도 어떻게 대책을 세워야 할지 알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른 일, 울진 망양정에 숙종의 어필이 있는데, 왜인 수등지부가 훔쳐간 일 등에 대한 기록이 매천야록 에 상세히 적혀있었다. 이들은 단순히 문화유산을 훼손하고 약탈하는데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인이 기로소 보첩을 흠문각으로 옮기고, 그곳에 상점을 설치했다는 기록은 단순히 건물을 위치를 바꾸는 것을 넘어서, 기로소 즉 원로를 우대하는 우리의 전통에 분열을 야기하였음을 알려준다. 원로는 역사적 전통이 인간화한 것을 부르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가장 단적인 예로 단발령은 어떠하였는가. 혹자는 머리 자르는 일이 무슨 전통이냐고 할지 모른다. 오히려 낡은 유교적 관습이 아니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당시 관원들을 비롯한 조선 사람들에게 상투를 자르도록 한 단발령은 단순히 ‘근대적 행위’가 아닌, ‘살아있는 신체에 가해지는 심각한 박해이자 불효막심한 폭력’이었다. 조선 사회에서는 머리를 길러 상투를 트는 것이 인륜의 기본인 ‘효’라고 여겼다. 이는 효경 의 “내 몸과 머리카락, 살갗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효도의 시작이다[身體髮膚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는 말을 따른 것이다. 부모에게서 받은 몸을 소중히 여기는 것, 그것이 곧 효의 시작이었다. 물론 단발령으로 인해 단적으로 효의 전통이 흔들렸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이후의 기록들을 보면, 적어도 그것은 효에 담긴 인간다움의 상실로 가는 ‘첫단추’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일도 벌어졌다.
○율곡의 후손 이종성은 석담서원 터에서 금광을 발굴하여 서원 건물이 곧 무너질 지경이었고, 도암 이재의 후손 이천구는 도암의 영정을 팔아먹었다. 사람들은 사물이 짝을 이루지 않는 것이 없다고들 하였다. 그 판서 김영수의 손자 김용호가 자기 아내를 팔려고하다가 일이 드러나서 징역에 처해졌다.-우리시대의 나, 나는 누구여야 하는가
매천야록 이 보여주는 1900년대의 조선의 풍경은 스산하기 그지없다. 수백 년 동안 조선을 이끌어왔던 지식인, 양반들은 전통과 개화, 조선과 외세 사이에서 정체성에 균열이 생기고, 근대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수없는 주체없는 건설과 전통의 파괴는 슬픈 식민지의 모습으로 가는 자기 파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비록 외세에 굴하지 않고 이에 저항하는 의병과 지사들의 모습도 나타나지만 이들 또한 경술국치 이후 하나둘 스러져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황현은 차츰차츰 망국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끝내 역사의 명맥이 끊기는 것을 목격한 뒤, 그는 절망감에 목숨을 끊고야 만다. 역사는 늘 전진하지만은 않는다. 수년간, 수십 년간, 수백 년간 어렵게 걸어온 길을 단숨에 뒤로 돌릴 수도 있다. 시간은 앞으로 흘러가지만 사람의 역사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거꾸로 가기도 한다. 황현이 목격한 조선은 그러했다. 그처럼 황폐하고 삭막하며 어처구니가 없을 수가 없었다. 끝내 자신의 몫과 땅과 형제와 백성을 위해여 항거하지 않는 주체는 자신의 입으로 패망을 선언하고 남에게 주권을 양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순종이 스스로 일황의 신하를 자처했던 칙유처럼 말이다.
2014년 1월 오늘, 나는 매천야록 을 통해 근대문물의 허상 아래 감춰진 제국 열강의 침탈을 읽었고, 최고권력자에 대한 비판 속에서 진정한 지도자의 목소리는 어떤 지를 들었으며, 전통 관습과의 단절에서 역사란 우리에게 무엇인지를 보았다. 특히 죽음을 앞에 두고도 가슴 아픈 현실에 눈물 흘리던 황현의 인간적인 마음은, 수많은 현세적 욕망과 갈등 속에서 방황하며, 내가 누구인지를 되묻기를 게을리하는 나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아, 나는 누구인가, 누구여야 하는가. 새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무궁화 온 세상이 이젠 망해버렸어라.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날 생각하니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기만 하구나.
鳥獸哀鳴海岳嚬, 槿花世界已沈淪
秋燈掩卷懷千古, 難作人間識字人
입상 문*경 치의예학과 도서: 호밀밭의 파수꾼
독후감: 호밀밭의 파수꾼 또 하나의 이름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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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내가 가진 고전에 대한 이미지는 늙음 이고 꼰대 였었다. 기력을 다해가는 노쇠함이 아니라 견고하게 굳혀져 가는 꼰대의 완성이었다. 고전에서는 언제나 가볍지 않은 문체들로 주인공들이 심각하게 세상을 살고 있었다. 텔레비전 속 가 수가 좋고 떡볶이와 수다를 좋아하는 소녀가 펼친 책장 속 세상은 너무나 진지하고 세상 온갖 고민이 모여 있어 어린 시절의 나는 지루한 훈육이라 치부한 적도 있었다.
청소년기, 누구나 그러하듯 나는 고전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작품들을 부모님 선생님 혹은 출판사를 통해 추천받았고 처음 읽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러시아 귀족도 아니었고 프랑스 뒷골목의 빵을 훔치는 사나이도 아니었으니 그들의 인생과 정신적 여정을 함께 하기란 여간 지루한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나에게 ‘그것을 읽어냈다’ 는 성취감과 지적 허영심이 없었다면 나는 그 작품들에게 이내 손을 뗐을 것이다.
그 사춘기적 허세는 시간이 흐를수록 갈피를 못 잡고 여러 가지로 파생되기 마련이다. 불량스러움을 추구하고 세상의 권위를 모조리 부정하고 싶은 반항심이 내 독서세계에도 발을 뻗친 것이다 착실히 읽어가던 고전이라는 모범적인 책에도 반기를 들고 싶었다. 그때, 우습게도 나의 반항심은 아주 진지했고 아이러니하게 책 안에서 동지를 발견하였다 그것이 ‘호밀밭의 파수꾼’ 이었다.
가끔 사람들은 위대한 소설의 엄청난 두께가 단 몇 줄로 전락했을 때 느껴지는 초라함에 냉소를 퍼붓기도 한다만 호밀밭의 파수꾼은 그럴 필요가 없는 작품이다. ‘주인공 홀든이 고등학교에서 쫓겨난 뒤 3일의 생활 아니 3일간의 중얼거림’ 그것이 이 소설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소설은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다른 명작소설과는 달리 존 레논의 암살자인 마크 채프먼이 소지하고 있었던 좋지 않은 유명세를 가진 독특한 이력의 책이다. 사춘기 감성의 냉소적인 소년이 거친 언어로 쏟아내는 독백은 고전이라는 타이틀에 기대를 한 이들을 갸우뚱하게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반겼었다. 위대한 사상이 녹아있지도 않고 휴머니즘과 회개 등 그런 고결한 주제 의식 없이 가끔 이유 없이 불만스럽던 내가 몰래 일기장에 적어두는 그런 혼잣말이 몇백 페이지에 걸쳐 쏟아져 나오던 그 유려함에 동질감을 느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는 주인공 홀든 콜필드보다는 평이하게 살고 있다 그 평이함이 나를 안정시켰는지도 모른다 불만과 비난을 쏟아내기엔 부모님 품속의 나는 자격이 없어 보인다 뭔지 모를 불만이 증폭되기 전 또 한편으로 나는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나를 둘러싸고 있는 체제에 순응하고 살아간다. 나는 홀든 콜필드와 같이 감히 퇴학을 당할 수는 없고 뻔뻔스레 나에게 주어진 조건에 대한 감사함을 아니 느낄 수도 없다. 즉 홀든은 학교에서 같이 수업을 듣고 농담 따먹기를 하는 평범한 우리는 아니었던 것이다. 음침하고 두서가 없는 불만을 주절거리는 이를 10대 소녀가 반길 친구일 리 없다. 그는 홀든 콜필드는 나도 인지하지 못한 내 안의 어두운 부분이었다. 그것이지 않을까 내 삶의 평안함에 이내 꼬리를 내리던 소년기 특유의 가시돋침이 실제 만개할 수 있었다면 홀든처럼 나도 길거리로 방황을 위해 뛰쳐나가지 않았을까 그것이 아니라면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내려가며 그렇게 반겼을 리 없다 나는 홀든 콜필드의 생각보다는 페이지를 꽉꽉 채워놓은 무질서한 비난들에 공감했던 것으로 하니까.
그렇게 나는 이전까지 내가 동경해오던 헤르만 헤세의 세계에서 벗어났다. 구도의 자세로 겸허히 서투르나 그 길을 걸어 성장하고자 하는 바른 주인공이 소설 속 내 또래의 전부였었다. 아픔과 성숙이 수레바퀴처럼 돌아가는 헤세의 소설은 차분했다 처음 나의 삶을 직면하게 된 나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던 데미안 나르치스 그들의 말에 나는 감화되어 있었다 삶의 고뇌가 막 시작되던 시점에 나는 참으로 진지했으나 그 진지함은 시간이 지나자 고루함이 되었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전혀 반갑지도 않은 사람에게 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같은 인사말을 해야 한다는 건 말이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서 계속 살아가려면 그런 말들을 해야만 한다.] 나는 이런 구절에 환장했을 것이다. 헤세에 물들어 있던 내가 홀든의 이런 대사를 보며 불량스런 별세계라 신을 내지 않았을까. 그리고 또 어찌 샐린저는 전쟁터의 죽을 고비를 몇 차례를 넘기고서도 유년기의 치기를 그대로 소설 속에 옮겨다 놓았는지 몇 년 뒤 나는 이 구절을 다시 읽으며 빙그레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의 서툰 반항들을 귀여워지는 나이에 샐린저가 적어낸 홀든은 지금 또 다른 사춘기 동지들을 만났을 테다.
한편으로는 또 우습지 않은가 [그런 곳은 없는 것이다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그곳에 일단 가보면 우리가 보지 못하는 틈을 타서 어떤 자식이 바로 코밑에다 ‘fuck you’이라고 써놓고는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가 죽어 무덤에 묻히고 비석 같은 것에 홀든 콜필드 라는 이름을 새겨 넣으면 출생연도나 사망연도가 쓰인 아래로 누군가가 ‘fuck you’라고 몰래 써놓을지도 모르는일이다. 사실 난 그럴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이런 구절들이 ‘고전 명작’ 이라는 점잖은 이름표를 달고 세상에 나와 있다는 사실이 한때 금서가 되었다는 이 책의 광포함은 홀든의 꿈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아주 서정적인 이름 아래 숨어있다. 위태로운 소년의 정신세계가 욕설도 마다치 않고 혼전 성관계, 술, 매춘 등과 함께 쏟아져나온다.
돌이켜보면 헤세의 진중함과 샐린저의 괄괄함은 성장기간 동안 한 사람 안에서도 번갈아가며 나타난다. 우리는 그 둘 모두를 갖고 있고 또 그 둘 모두에 공명하며 자라 나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싱클레어에게는 데미안이 있었다면 홀든 콜필드는 앤톨리니 선생님을 찾는다. 여기서도 샐린저의 냉소적인 전개는 계속된다. “자주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이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좋은 말씀을 들려주시는 앤톨리니 선생님 그러나 홀든은 잠든 사이 이마를 어루만지는 앤톨리니 선생님을 동성애자로 의심하고는 곧 그곳에서 도망쳐 나온다 홀든은 피비를 만나기까지 안착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그렇다 하여 나는 여동생 피비의 존재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 홀든은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자 하는 소망을 이야기하고 순수한 피비의 모습에 홀든은 조금씩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삼백여 페이지를 걸쳐 홀든이 우리에게 남긴 것이 과연 그 소박한 소망이며 여동생에게 감화되는 오빠의 모습일까.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그곳에서는 귀머거리에 벙어리 행세를 하며 살 참이었다. 그러면 누구하고도 쓸데없고 바보 같은 대화를 하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 를 외치는 홀든의 모습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도 인용되는 이 문구는 비뚤어지고 상처받은 소년의 여물지 못한 정신세계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 작품이 남긴 것은 홀든 콜필드의 나중 행보가 아니다 여동생 피비의 존재는 무엇인지 그가 마지막 정신분석 학자와 마주하는 것은 어떤 결말을 의미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홀든 콜필드는 악도 선도 아닌, 그저 방황하는 청소년이요. 그런 그가 방황을 72시간 동안 독백으로 쏟아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우리가 본 것은 한 편의 이야기가 아닌 방황의 초상화한 점이다.
고전이란 이름을 달게 되면 그 위치에 오르기까지의 추앙만이 명예롭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름 없이 사라져간 작품들보다 억울하게 난도질당하기도 하고 심심풀이 땅콩이 되어 하찮게 취급되기도 한다. 그 작품보다 훨씬 어린 녀석들이 머리가 굵어지면 먹물냄새를 풍기며 한마디씩 하게 되는 것을 수백 년간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 바로 고전 명작의 인생이라 볼 수 있다. 그렇게 고전으로 살아가는 것은 고달프다 그런 구도의 길을 시시껄렁함과 불량함을 잔뜩 안고 있는 홀든 콜필드가 가고 있다는 것은 재미난 아이러니다.
나는 이제 고전이란 명예의 전당이 갖는 가치 있음을 신랄히 깎아내리는 십 대 시 절을 지났다. 고전이란 예의 난해함으로 뭇사람들의 정신적 허영을 채우는 도구가 아님을 견지할만한 나이가 되고 보니 고전이란 것은 이름을 붙여 하나씩 밤하늘의 별자리를 만들어가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얼큰하게 취해 바닷가에서 춤을 추는 누군가는 조르바로 젊은 시절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는 이는 베르테르로 우리는 별자리를 만들 듯 이름을 붙여왔다. 그리고 샐린저를 통해 우리는 스무 살이 되기 직전 위 태로운 사춘기의 소년이 방황하는 모습을 홀든 콜필드라고 이름 붙이게 된 것이다. 우리 부모님이 연애하던 시절에도 북쪽 다섯 별을 가리키며 카시오페이아라 불렀듯 어릴 적 내가 공명한 호밀밭 파수꾼은 계속 그 자리에 그 이름으로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아이가 자라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을 그 어느 때에, 나처럼 홀든 콜필드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고전이란 생명력이란 그런 것으로 나의 아이는 알퐁스 도데의 목동도 되고 한껏 비뚤어져서 샐린저의 홀든 콜필드도 될 것이다. 프로방스의 언덕과 뉴욕 뒷골목을 가지 않아도 그들과 만나며 그들과 함께 자라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고전이라고 이름으로 그 주인공들을 우리 곁에 두는 까닭일 테니까.
입상 박*태 한문학과 도서: 열하일기
독후감: 열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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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이 중국에서 경험한 만남과 소통의 미학

여행은 현실의 벽에 치여 경험하지 못했던 자유로움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 또한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나를 데려가는 것이다. 사회적 지위나 역할 그리고 체면이란 방호벽을 뚫고 떠난 여행 그 내면에는 기분 좋은 놀라움이 공존한다. 즉,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풍경들로부터 경험하는 신선한 충격은 그야말로 놀라울 뿐이며 이것이 여행의 첫 번째 미덕이다. 하지만 여행의 미덕이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여행 속에는 바로 ‘소통’ 이 존재한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소통 자연과의 소통 그리고 자신과의 소통 등 다양한 소통형태가 나타날 수 있다 일상이 이미 소통으로 가득하지 않으냐고 반문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열띤 소통으로 채워 나가는 여행 속에는 새로움의 향연으로 가득한 무대가 우리 앞에 끊임없이 나타날 것이라고.
이렇듯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이유라면 [열하일기(熱河日記)] 에서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이 보여준 진정한 소통의 참맛을 몸소 체감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만난 사람 자연 동물 등 무엇이든 접하고 들러붙어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박지원의 면모 그리고 만남과 소통으로부터 얻는 그의 감흥들을 직접 보고 몸소 느껴본 독자라면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이라 했던가. [열하일기]가 조선 후기 문학이 거둔 최고의 성취라는 말만 듣고서 감탄만 연발하는 피동적 인간이 되지 말자 연암이 두 달간 청나라를 여행하며 기록한 방대한 텍스트의 연행록 [열하일기] 그곳에 담긴 연암의 방대한 소통을 찾아 여행을 떠나볼 때이다.

첫 번째, 자기 내면과의 만남과 소통

[열하일기]에서 박지원은 자기 내면과 소통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거대함과 화려함으로 둘러싸인 중국을 바라보며 자신이 얼마나 작고 낯선 존재인지 절감하기도 하고 달빛 아래서 함께 구경할 사람이 없다는 것에 애석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기와의 소통을 아주 잘 보여주는 대목이 있었으니 바로 ‘도강록(渡江錄)’에 실려 있는 7월 8일 자 일기이다. 압록강을 건너 넓디넓은 요동 벌판에 선 연암과 그의 일행들 연암은 문득 뜬금없이 황당한 발언을 한다. “한바탕 통곡하기 좋은 곳이로구나.” 모두가 화려한 장관 앞에서 감탄하며 혼을 빼앗기고 있을 때, 좋은 울음 터를 연상하다니 연암의 특이한 사유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연암은 울음이 나오는 감정의 근원이 ‘슬픔’ 에서만 비롯된다고 생각하지 않
는다. 대신 연암은 칠정 모두가 울음을 유발하는 통로라고 말한다. 기쁨, 분노, 즐거움, 사랑, 미움, 욕심, 그리고 슬픔이 극에 이르렀을 때 울음이 날 만하다는 것이다. 특히, 연암은 갓난아이가 우는 이치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갓난아이가 어머니 태중에 있을 때 캄캄하고 막히고 좁은 곳에서 웅크리고 부대끼다가 갑자기 넓은 곳으로 빠져나와 손과 발을 펴서 기지개를 켜고 마음과 생각이 확 트이게 되니, 어찌 참소리를 질러 억눌렸던 정을 다 크게 씻어 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도강록 )
연암은 갓난아이가 태어나 우는 것은 어두컴컴하고 좁은 곳에 있다가 넓은 곳에 나왔을 때의 기쁨이 지극해서라고 말한다. 또한 자신이 넓은 요동 벌판을 보며 우는 것 또한 갓난아이가 우는 이치와 같음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문득 의문이 생긴다. 드넓은 요동 벌판에 서고 나서야 한바탕 통곡할 수 있겠다는 연암의 말로 미루어 보건대 자신은 여태껏 어두컴컴하고 갑갑한 태중에 있던 아기의 심정과 다를 바가 없었음을 은연중에 밝히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 말이다. 한 때 홍국영 의 권세를 피해 연암골로 잠적해야만 하는 처지와 가정 형편의 어려움 그리고 2년이 흐른 후 다시 서울로 돌아왔을 때 친구들의 부재로 무상감에 젖었었던 나날들 그때의 지극한 슬픔이 다시 벅차올랐던 것일까 아니면 그동안 중국 여행을 꿈꾸었지만 억눌려야만 했던 욕구가 해소된 것에 대한 기쁨의 표출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요동 벌판의 드넓음을 보며 지금껏 자신이 얼마나 좁고 답답한 세계에 갇혀 있었던가를 몸소 실감한 것에 대한 놀라움의 표출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통곡에 담겨있는 진정한 의미를 찾는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울음을 통해 자신의 억압된 자아를 재인식할 수 있다는 점에 주안을 두고 싶다. 연암이 요동 벌판이라는 넓은 세상과의 소통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울음 내면에는 갓난아이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감당해야만 했던 억압과 답답함이 본인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즉, 요동벌판은 연암에게 한바탕 통곡하기 좋은 곳이며 그가 억압된 자아를 재인식할 수 있는 성찰의 장이 된 것이다.
‘억압된 자아의 재인식’, 이것은 자신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신의 억압된 욕망과 상처를 마음에 꾹 담은 채 묵묵히 살아감으로써 고통 받는 사람이 늘고 있다. 심리치료 관련 책이 시중에 쏟아져 나오고 정신과 의사의 수요가 증가하는 현상이 정신적으로 상처받는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방증 이다. 심리치료 관련 서적에서 자신을 치유하는 첫걸음은 자신의 자아를 파악하고 인식하는 데 있으며 이것을 위해 자신과 소통하는 시간이 필수적이라고 입 맞춰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과 진실한 대화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자신의 문제를 알게 된다. 아무리 밖으로 꺼내기가 꺼려지고 힘든 문제라도 전문가나 가족 친구와의 소통을 통해 자신의 내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냥 놔두면 언제 곪아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타인과의 소통에만 주력할 뿐 시간을 따로 내어 자신과의 소통에 소홀한 모습을 보인다. 타자의 시선에 맞춰 나의 겉모습에만 치장할 뿐 정작 자신의 본모습에는 관심이 없다. 이제는 바쁜 일상에서 벗어 나 자신의 진정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볼 때이다 갑자기 “마음이 울적하고 답답할 땐 산으로 올라가 소릴 한번 질러봐.” 라는 노랫말이 문득 떠오른다 가끔 뒷산에 오르며 진정한 나와 소통을 하는 것은 어떨까? 그 뒷산이 연암이 마주한 요동 벌판이 되어 훌륭한 울음 터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두 번째,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과 소통

우정의 마음으로 나눈 중국의 상인들과의 소통
연암이 중국에서 만나고 소통한 사람 중에는 심양 의 예속재 와 가상루 에서 만난 상인들을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은 중국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한낱 상인에 불과하지만 󰡔열하일기󰡕에서는 밤새도록 함께 우정을 나눈 연암의 소중한 친구들이다. 물론 조선인인 연암이 그들과 접선하는 코드라 한다면 붓글씨와 음악 그리고 필담을 통한 담화라고 볼 수 있는데 이것만으로도 그들의 밤을 채우기엔 충분하다. 연암은 친구들에게 뛰어난 붓글씨를 선사하기도, 비파를 연주하기도, 그리고 후출사표 를 쭉 읽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연암과 친구들의 끊임없이 주고받는 필담까지 이 모든 것들은 그들이
허물없는 우정을 쌓아나가게 하는데 충분했다. 특히 연암은 촉 지방에 대한 물음
과 대답 음식 장만 및 음식의 맛에 대한 품평 골동품의 진가를 판별하는 문제
등을 논하면서 중국에 관한 지식을 구체화하는 첫걸음을 놓는다. 이렇게 필담과
비파 연주 그리고 글 낭송을 통한 교유를 거쳐 밤새 노닐다 어느새 연암과 친구
들은 의자에 걸터앉은 채 꾸벅꾸벅 졸다가 코를 골며 잠이 들게 되고 이로써 그
들의 소통은 매듭을 짓게 된다.
그런데 참 의아하다 학식이 높고 명망 있는 연암이 중국에서 많고도 많은 중국 상인과 소통하려 하다니 그것도 연암이 주체적으로 말이다. 연암은 상인들에게 있어 절대 자신을 권위적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연암은 최대한 눈높이 를 낮추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의 이야기들을 통해 그들의 인생살이를 듣고 삶의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다. 다음의 예를 보자.
고향 우물을 떠나지 않고 죽더라도 제자리를 지키며 마치 여름 벌레가 겨울 얼음을 모르듯 한 군데 갇혀 산다면 이는 일찌감치 죽느니만 못할 것입니다 점포를 열어 물건을 놓고 파는 것을 비록 인생의 하류로 돌아갔다고들 말하지만 장사란 하늘이 아름다운 극락세계 하나를 열어 준 것이고 땅이 지상낙원을 열어 준 것입니다. 우리가 벗에 대해서는 지극 정성을 하고 있습니다. 세 사람이 가면 그중에 한 명의 스승이 있다고 했고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도 자를 수 있다고 했으니 세상에 이보다 지극한 즐거움은 없습니다. 사람이 나서 평생 친구를 사귀는 일이 없다면 도대체 재미난 흥취가 없을 것이니 옷이나 잘 입고 먹는 것이나 밝히는 자들은 이런 맛을 모른답니다. 성경잡지 위의 대목은 “고향으로 돌아가 몸소 밭이랑을 갈아 부모와 처자를 돌볼 것이지 어째서 오로지 장사꾼의 이익을 쫓아 멀리 고향과 이별하는가?” 라는 박지원의 질문에 대한 상인들의 답변이다.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장사꾼이 되지 않을 경우 늙고 병들어 죽을 때까지 고향을 한 걸음도 떠나지 못한 채 여름 벌레가 겨울 얼음을 모르듯 이 세상을 마칠 테니, 그렇다면 차라리 일찌감치 죽느니만 못할거라고 남들은 비록 장사하는 것을 인생의 하류로 취급하지만 유유히 사방을 다녀도 거치적거리는 것이 없고 뜻에 맞는 대로 편하게 지낼 수 있으니 장사치로 떠돈다는 것이다.
특히 돋보이는 건 장사치들 간의 우정이다. 가족과 고향을 떠난 그들에게 친구보다 더 소중한 것도 없으며 이보다 지극한 즐거움은 없다고 말한다. 그들이 연암과 나이, 국경, 신분을 넘는 진한 우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정서적으로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것도 인생의 최고 덕목을 친구와의 사귐으로 여기는 그들의 끈끈한 우정 덕분은 아니었을까 그들의 정서적 소통이야말로 열하일기에서 소통의 진면목을 일깨워주는 첫 번째 대목으로 기억된다 박지원의 소통 상대에 있어 상 하의 논리는 적용되지 않는다 허물없는 우정과 순수함으로 똘똘 뭉친 영락없는 단짝 친구들만 존재할 뿐.

필담을 통해 나눈 중국 사대부들과의 소통
타지에 있다 해서 연암이 지닌 청 왕조의 학술과 문예에 관한 상당한 식견이 어디로 가겠는가. 연암은 북경과 열하에서 사귀게 된 중국 사대부들과의 필담을 통해 중후한 사상가로서의 면모를 십분 발휘한다. 연암은 당시 자신이 알고 있던 중국의 학풍과 문예사조를 진단함에서 열하 체류 중에 매일 만나다시피 하면서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던 곡정 왕민호 와 형산 윤가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특히 연암이 왕민호와 벌인 토론의 내용은 우주와 천체에 대한 자연 과학적인 주제 철학적 주제로 끝나지 않는다. 종교 정치 역사 역사인물에 대한 평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포괄하고 있으며 이는 곡정과 장시간 동안 필담을 나누며 기록한 곡정필담 에서 잘 드러난다.
[곡정필담] 속 수많은 주제 중에서 친숙하면서도 흥미를 끌었던 주제라면 그 유명한 ‘지구자전설(地球自轉說)’ 이다 연암은 곡정과의 필담에서 달이나 별 태양 등 다른 천체에서 지구를 바라본다는 관점을 설정하여 기존의 지구 중심적인 사고로부터 탈피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연암은 달 안에 세계와 생명체가 존재하리라는 상상을 뒷받침하고자 만물이 먼지로부터 생겨났다는 가설을 제기하기도한다. 이러한 연암의 관점은 인식의 상대성을 자각하고 관점의 대담한 전환을 통해 지구 중심 인간 중심 중국 중심의 고정된 관점에 얽매인 기존 사고를 뒤엎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연암의 천문학적 세계관에서 시작해 만물의 기원은 먼지라는 것을 일컫는 만물진성설 이 [열하일기]에 기록되기까지 보이지 않는 기막힌 우연이 있다면 어떨까? 곡정필담 의 앞부분에 쓰인 ‘지구자전설’ 은 앞서 연암이 열하의 태학에 머물며 중국학자들과의 대화를 기록한 태학유관록 의 8월 13일 자 일기에서 이미 언급된 바가 있다 그 대목에서 연암은 우연히 달을 보고 친구 홍대용 이 생각나 독백처럼 지구 자전설 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날 밤 달빛이 더욱 밝았다.” 로 시작해 “어찌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에 이르기까지 연암은 끝까지 묻는 형식을 취하며 지전설 에 대한 생각을 기풍액 에게 피력하고 있다. 하지만 연암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지구 자전설에 대해 구구절절 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곡정필담 의 덧붙이는 말에서 알 수 있는데 한 번 들어보자.
내가 한양을 떠나서 여드레 만에 황주에 도착하였을 때 말 위에서 스스로 생각해 보니 학식이라곤 전혀 없는 내가 적수공권으로 중국에 들어갔다가 위대한 학자라도 만나면 무엇을 가지고 의견을 교환하고 질의를 할 것인가 생각하니 걱정이 되고 초조하였다. 그래서 예전에 들어서 아는 내용 중 지전설과 달의 세계 등을 찾아내 매양 말고삐를 잡고 안장에 앉은 채 졸면서 이리저리 생각을 풀어내었다. (곡정필담鵠汀筆譚)
위의 대목에서 연암은 중국의 위대한 학자와의 소통에서 무슨 주제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이미 마음에 준비해 두고 있었다. 지전설과 달의 세계에 관한 주제 이것이 연암이 준비한 비장의 카드라고 할 수 있겠다. 연암의 철저한 준비성 그의 또 다른 면모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수없이 생각해 본 주제였기에 지전설에 대해 마치 폭포수처럼 혼자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기풍액 은 같이 태학에 묵고 있던 곡정에게 연암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전하였고, 이에 따라 곡정의 요청으로 연암과 곡정은 우주와 천체에 대한 문제 물체의 본질 생물의 기원 등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게 된다. 연암의 사상이 기록되는데, 기막힌 우연한 시작 그것은 역시 사람과 사람의 소통에서 시작한 것이다 절친했던 홍대용과 달을 나란히 쳐다보며 무심코 나눈 담화는 명륜당 아래에서 연암의 연출된 독백으로 독백을 들은 기풍액의 추천으로 연암과 곡정과의 필담에 이르기까지 소통의 연결고리가 마치 일부러 끼워 맞춘 듯 이어지고 있었다. 소통이 만드는 기막힌 우연의 힘 그야말로 대단하다.

세 번째, 낯선 자연물과의 만남과 소통

소통이라 해서 일차원적으로 인간과 인간과의 소통만을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
산이다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은 언제나 소통의 주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접적이며 외적인 의사소통은 물론이며, 내면의 감정을 전달하는 과정인 간접적
의사소통 또한 하나의 소통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주변의 자연물로부터 자신의
내면에 감쳐져 있던 감성을 재발견하고 그 사이에서 공명 하는 요소를 찾아
내어 소통하는 일은 우리에게 또 다른 사유를 하게 만든다. [열하일기]에서 박지원이 보여준 자연물과의 소통과 이에 뒤따른 그의 색다른 사유 속으로 한번 빠져
보자.
연암은 특히 동물에 각별한 관심을 둔다. 물론 열하로 가는 길에 온갖 진기한 동물들을 두루 접하기도 했다. 연암은 동물이 있는 곳이라면 어떤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달려가서 세심히 관찰하기도 하고 온갖 정보를 상세히 기록했으니 말이다. 연암은 동물들을 객관적인 시선에서 단순히 관찰하는 것을 넘어 깊은 교감을 나누며 소통했음을 알 수 있는데 바로 [산장잡기] 에 기록돼 있는 [상기]에서 그것이 두드러진다. 연암은 [황도기략(黃圖紀略)] 에서도 코끼리의 명석함과 재주 그리고 충성심 등의 외적인 모습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 물론 코끼리에 대한 연암의 관심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연암의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어느덧 코끼리를 통해 천지자연의 원리를 사유하기에 이른다. 더 자세히 알아보자.
아하 털끝같이 작은 세상의 물건도 모두 하늘이 내지 않은 것이 없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하늘이 어떻게 일일이 다 명령을 했겠는가 하늘이란 형체로 말한다면 천 이요. 성정으로 말한다면 건 이요. 중심이 되어 맡아서 처리하는 면으로 말한다면 상제 요 묘한 작용으로 말 한다면 신 이라고 말하니, 그 이름 붙이는 것이 여러 가지요 또 호칭이 너무 난잡하다. 코끼리가 범을 맞닥뜨리면 코로 때려눕혀 즉사시키니 그 코로 말한다면 천하무적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코끼리가 쥐를 만나면 코를 둘 자리가 없어서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섰을 뿐이.다. 그렇다고 쥐가 범보다 무섭다고 말한다면 앞에서 말한 하늘이 낸 이치는 아닐 것이다. (상기)
하늘이 작은 세상의 모든 물건을 낸다고 한다. 그러나 이때 하늘이란 형체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천 건 상제 신 과 같이 어떤 각도로 보느냐에 따라서 무수히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우주의 변화는 고정적이지 않아 하나의 단일한 척도로 수렴될 수 없다는 말로 해석된다. 연암은 그 후 코끼리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해 나간다. 코끼리가 범을 맞닥뜨리면 코로 쳐서 범을 죽이므로 그 코는 천하무적이다. 그러나 그 코는 쥐를 만나면 어떤 가치도 없는 즉 무용 한 것으로 전락해버린다. 그렇다고 쥐가 범보다 무섭다고 궤변을 늘어 놓는 사람은 없다. 결론은 간단하다.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단일한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각기 다른 만물 사이에는 역시 각기 다른 방식의 기준과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암이 [상기] 를 통해 지금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끊임없이 변하는 세계적 무대 앞에서 일체의 선입견을 버리고 개방적인 자세로 임하라는 것. 그리고 고정불변의 법칙은 무상하게 변하는 세상 앞에 존재하지 않으니 다양한 경험과 시도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이것 또한 연암과 코끼리의 교감과 소통이 만들어낸 값진 산물일 터, 연암은 자연과의 교감과 소통에서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는 또 다른 메시지를 전해 주고자 한 것은 아닐까?

네 번째, 눈부신 중국 문명과의 만남과 소통

[열하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라면 박지원이 중국 청조의 문명을 객관적으로 저술한 내용일 것이다. 연암은 단순히 관광객으로서 자신이 본 새로운 중국 문명에 감탄사만 연발하지 않는다. 청조 중국의 실상에 비추어 당시 조선의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고 개혁 방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다음 연암의 말을 보자.
천천히 걸어서 문을 나서니 번화하고 화려한 모습이 비록 황성에 도착하더라도 이보다 더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이 이처럼 번성했을 줄을 생각지도 못했다. (도강록)
연암의 중국 문물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 대목이다. 연암이 중화문명을 바라보는 잣대는 무슨 일이 있었고 그곳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주를 이룬다. 남들이 북벌론 에 영향을 받아 청 왕조를 오랑캐라고 떠들 때 이들의 편협한 사고에 빠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 중화문명을 정확히 파악했다는 것이다. 연암이 바라본 청의 문명과 조선 사회의 낙후성에 대한 인식 그리고 그것을 타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살펴보자.
기와를 이는 법은 더더욱 본받을 만하다. 기와의 모양은 통 대나무를 네 쪽으로 쪼갠 것 중 하나와 같은데, 흡사 두 손바닥을 합한 것과 같은 정도의 크기이다. 민가에서는 원앙기와를 사용하지 않으며 ……. 우리나라의 기와 이는 법은 이와는 매우 다르다. 지붕에 진흙을 두텁게 깔아 위가 무겁고 담벼락은 벽돌을 쌓지 않아서 네 기둥이 의지할 수 없으므로 아래가 허하다 …….. 요컨대, 집을 짓는 데는 벽돌을 쓰는 것이 가장 훌륭하다 비단 담을 높이 쌓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실내외를 모두 벽돌을 깔고 넓은 뜰을 모두 벽돌로 깔아서 눈에 보이는 것이 반듯반듯 바둑판 줄을 그어 놓은 것 같다. (도강록)
위와 같이 연암은 객관적으로 청의 문명을 진단한 후 조선 사회의 낙후된 문명에 대한 인식과 그에 대한 타개방안을 내놓는 방식으로 글을 전개해 나간다. 연암은 중국처럼 벽돌을 널리 활용함으로써 시설비용을 절감하자는 벽돌 사용론에 그치지 않는다. 열하일기 중에서 잘 알려진 수레 통용론 또한 연암의 주장에 해당하는데 연암은 조선의 산업발전을 저해하는 주요인이 상품 유통의 부진에 있으므로 중국과 같이 수레를 전국적으로 통용하자고 역설한다. 이상과 같이 연암이 제시한 북학론은 청조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나라를 강성하게 만들자는 이상이 담겨있었다. 연암의 벽돌 수레 등 다양한 청조 문물과의 소통은 단순히 자신만을 위한 소통이 아니다 청조 문물을 받아들여 조선 시대의 낙후된 문명을 타개함으로써 부국강병 한 나라가 되길 간절히 기원하는 진정한 백성의 마음이 있었기에 연암의 소통이 더욱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만남과 소통, 끝나지 않은 이야기

[열하일기]에 축약된 박지원의 방대한 소통들을 세노라면 끝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보여준 소통의 진정한 묘미를 일일이 묘사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그러나 박지원이 보여준 소통을 향한 끝없는 열정 그리고 만남과 소통으로부터 울려 퍼지는 연암의 웃음소리는 아직도 선명히 기억에 남아있다 그렇기에 박지원의 마음이 되어 [열하일기]를 여행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음에도 지금 이처럼 뿌듯한 이유가 아니겠는가.
소통 이란 단어는 필자에게 아주 소중한 단어이다. 입시를 준비하며 지쳐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소통은 그 자체로 큰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가족 친구 선생님과의 소통 그리고 때로는 뒷산이나 바다로 떠나며 즐긴 자연과의 소통과정 이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일으켜 세운 원동력이며, 성장의 촉매제가 되었음에 확신한다. 올해 대학에 들어와 각양각색의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하며 정신없이 한 학기를 보냈다. 한자의 갑골문을 익히며 서로 머리를 감싸 쥐었던 순간도 있고 교수님의 대학 시절을 들으며 함께 웃음꽃을 피웠던 순간도 있다. 물론 저녁마다 과제를 끝마치고 친구와 달빛을 맞으며 기숙사로 터벅터벅 올라간 기억도 있지만 말이다.
새로운 환경에서의 새로운 사람들과의 소통은 언제나 처음에는 난관에 봉착한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개성에 처음 직면하게 되면 각자의 개성을 이해하고, 자신과의 개성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를 아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각의 개성을 이해하고 서로 융화를 마친 후 거리낌 없는 소통의 꽃을 피울 때의 짜릿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다시 동기들과 만날 학기가 더 기다려지는지도 모르겠다 따사로운 햇살이 비춰들어 오는 인문대의 유리창 바깥 풍경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보인다. 친구들과 함께 농구를 하는 대학생의 모습도 있고,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나온 아이의 모습도 보인다. 그들도 내가 모르는 그들만의 소통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일이 더 기다려지는지도 모르겠다. 색다른 소통을 하고 있을 나를 상상하며 말이다.

입상 김*희 의류학과 도서: 이방인
독후감: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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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고 있다. 너무 당연해서 두 번 말하면 우스운 이야기다. 무엇을 살고 있는가? 삶을 살고 있다. 삶은 무엇인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영위하는 순간들의 연속인 전 생애다. 단어의 정의는 잘 알고 있을 테지만 실제로 정의가 가리키는 본질을 체험한 적이 있는가? 살면서 이것이 바로 자신의 삶이라고 인정한 적은? 삶이 자신을 이끄는 만큼 자신도 삶을 살아간 적은? 삶의 기저를 이루는 것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데 그것은 살아가는 것인가, 살아있는 것인가?
살면서 이런 순간이 있다. 자신을 느끼는 순간, 이 시간 이곳에 있는 자신을 적나라하게 인식하는 순간 말이다. 그 순간은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세계와 상관 없게 된다. 그리하여 온전한 자신을 자각한다. 이 순간만큼은 어떤 것도 자신을 비집고 들어올 수 없다. 자신이 온통 자신으로 충만하기 때문이다. 이내 다른 세계가 의식을 잠식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만약 이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긴다면 죽을 때 몇 장이나 움켜쥐고 있을런지.
나는 짧은 소설을 좋아한다. 그냥 짧은 소설이 아니라 한 단어, 한 문장이 허투루 쓰이지 않고 작품의 농도를 더해주어 농밀함이 전해지는 소설 말이다. 대개 그런 작품은 숙련된 글을 쓰는 작가가 남긴다. [이방인]은 연마된 다이아몬드 같은 소설이다. 얇은 책에 담긴 글들은 응축되어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지니며 한없이 빛난다. 표지에는 담배를 입에 문 작가 카뮈가 미간에 주름진 표정으로 한 점을 응시하고 있다. 그의 작품, 세계관, 그 자체에서 어떤 종류의 강한 느낌을 받는다.
[이방인]의 시작은 ‘오늘 엄마가 죽었다.’ 그런데 주인공 뫼르소는 보통 사람의 반응과 다르게 시종일관 무덤덤하다. 엄마의 죽음보다는 장례식에서 만난 사람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그저 관찰하거나 잠을 못 자 피곤해할 뿐이다. 장례식을 마치고 열 두 시간을 잘 수 있어 기쁘기까지 하다. 다음날 만난 여자 친구 마리가 소식을 들었을 때 흠칫하는 반응이 오히려 적절할 것이다. 그가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기이하다. 보통 사람라면 응당 그래야 할 일을 뫼르소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다른 것을 관찰하거나 자신의 욕구를 느낄 뿐, 어떠한 사고나 판단도 내리지 않는다. 그러곤 장례식 후의 나날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하루라 여긴다.
그는 수동적인 인물로 보인다. 포주업자 건달인 이웃 레몽이 친구하자고 하니 친구가 되지 않을 이유가 없으므로 친구가 된다. 근무하는 회사 사장이 향상된 일거리를 제안했을 때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라서 생활을 바꿀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마리의 구애에 사랑이란 말은 아무 의미도 없지만, 그녀가 원한다면 결혼할 것이라 한다. 그러고는 레몽의 일에 휘말려 자신과 아무 관계 없는 아랍인을 총으로 쏴 죽여 버리고 재판을 받는다. 그는 죄를 모른다. 묻는 말에 솔직하게 답하고 사형을 선고받는다. 이만하면 자아가 없는 사람 같다. 여기까지는 [이방인]을 피상적으로 다룬 글이다. 이뿐이면 별것 아닌 의아한 소설이 된다. 그럼 이제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 보자.
이해의 핵심은 뫼르소라는 전무후무한 캐릭터다. 그는 타인에 대한 감정도 의지도 확실치 않으며 의사표현도 거의 안 한다. 살고 있긴 한데 살고 있는 것 같지않다. 뭔가 의아하다. 그의 입버릇은 ‘이러나저러나’, ‘아무 의미 없는’, ‘귀찮아서’ 물론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는다. 말 그대로 귀찮기 때문이다. 소설은 뫼르소의 시각으로 전개되는데 보통사람이 일상을 말하는 것과 확연히 다르다. 상황 속에서 본인의 마음이나 의문을 구체화하지 않는 단편적인 그의 서술에서 독자는 오히려 그가 세상과 동떨어진 이물적인 존재임을 알 수 있다. 동시에 한 치의 가식도 없는 그에게서 신선함을 느낀다.
재판은 사건 그 자체보다 뫼르소의 인물됨에 관해 전개된다. 예심판사, 검사와 변호사, 재판장과 배심원들, 신문기자들은 모두 제 입장에 몰입하여 진실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다. 마치 역할놀이를 하는 것 같다. 피해자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으며, 피고에 대해서는 오직 유죄를 주장하기 위해 증언을 재구성하여 만든 흉악범과 무죄를 호소하기 위해 어설프게 만들어진 성실한 사람밖에 없다. 그로서는 자신을 빼놓고 자신에 관해 이야기하는 재판이 답답하고 따분하기만 하다. 말을 할라치면 변호에 도움이 안 된다며 제지당한다. 겨우 하는 말이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는 말과 일부러 죽일 의도는 없었다는 피고라는 역할에 맞지 않는 그의 진실이다.
그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슬퍼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나이도 모르며 어머니의 얼굴을 보지 않은 채 어머니의 관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밀크커피를 사양하지 않았다. 장례식 다음날 옛 여자 동료와 우연히 만나 희극영화를 보고 정교를 나눴다. 포주 업자 친구가 있으며 그의 치정 사건에 가담했다. 태양 빛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 시체에 네 발의 총알을 마저 박았다. 사회 통념상 인간적이라 불리는 부분이 예와 같이 결여되어 보이면 사이코패스로 간주되기 십상이다.
세상은 규격화되어있다. 여럿이 바쁘게 살아가는 세상에서 규격이란 일정수준 필요하긴 하지만, 왠지 누군가가 편하기 위해 획일화되어가는 느낌이다. 규격을 거부하는 개인과 규격을 필요로 하는 개인의 집단인 세상의 간극에서 갈등이 생기고 이는 양쪽에게 부조리가 된다. 뫼르소는 역할놀이에 동참하지 않고 자신을 고집한다. 피소자로서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사형을 선고받는다. 어떻게 보면 결여된 것은 뫼르소가 아니라 진실을 알지 못하거나 알려 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규격에 맞추려는 재판정의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안다. 그리고 재판정의 사람들은 사회 규격에서 일그러진 부분의 은유다.
뫼르소는 타인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단지 자신에게 자연스러운 사람이다. 찌를 듯한 태양에 대한 불쾌감, 본능에 충실한 정욕, 귀찮음. 아랍인을 죽인 이유도 본능에 충실해서 그렇다. 바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는 온전한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행동한다. 다른 것과 연결되지 않았으므로 그에게는 자신에게서 기인한 것 외의 이유가 없고 어느 것도 두려워야 할 필요가 없다. 흡사 백지상태의 아이, 순수한 본능의 동물, 껍데기를 쓰지 않은 원형과도 같다. 또한,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거나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인습을 필요하게 여기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 그는 세상의 규격에 자신을 맞추지 않아 부조리하게 죽게 된다.
재판을 받는 뫼르소를 보며 어렸을 적 부모님께 혼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릴적 나는 크게 말썽 피우진 않았지만, 고집불통인 부분이 있어서 그 부분은 계속 혼났다. 어련히 혼날만했으므로 혼났겠지만 내가 전적으로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속으로는 절대 수긍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그 부분은 내 중심이 되어 자신을 알기 위한 길잡이가 되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잃지 않게 되었다. 물론 잠재적 흉악범이 될 부분은 아니다. 덕분에 나는 그럭저럭 잘 자란 것 같다.
판결 후 뫼르소는 감옥에서 온갖 생각을 하며 자신은 죽을 수밖에 없다고 마음 먹는다. 그는 인간이라서 교도소에서 느꼈던 억제된 욕구에 대한 괴로움도 있고 판결 후 뜬 눈으로 새벽을 새우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상고와 특별사면 따위를 떠올리지만, 그것은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한 연습이다. 그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상고를 거부한다. 상고 거부 직후 부속사제가 그를 찾아오는데, 늘 그래 왔듯이 자신의 신앙으로 불쌍한 죄인을 교화시키려 한다. 그는 뫼르소를 구슬리며 스스로를 놓고 하느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라는 식이다. 뫼르소는 알량한 신념으로 자신을 회유시키려 하는 부속사제에게 고함친다. <사람은 죽으므로 다른 삶은 무의미하지만, 나에게는 나의 죽음을 확신하는 삶이 있다. 내가 이 삶을 확신하므로 다른 이와 다른 삶은 무의미하다.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도 없는 다른 이가 나의 삶을 부정하는 것은 건방지기 짝이 없다.>며 억눌린 것들을 쏟아낸다.
근본적으로 사람은 결국 죽기 때문에 삶은 부조리하다. 사람은 사형수라는 뫼르소의 생각도 여기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던 그는 부조리에 자신이 사형당할 것이란 삶을 확신함으로서 저항한다. 그는 부조리에 저항하면서 비로소 자신을 똑바로 보고 그 나머지인 세계 역시 똑바로 볼 수 있게 된다. 뫼르소가 갖는 죽음에의 확 신이 안타깝거나 불행한 성질은 아니다.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닌 삶에 종속된 필연적인 과정이다. 어둠이 짙은 만큼 빛이 밝은 것처럼, 죽음을 늘 옆에 두고 의식해야 무의미한 삶을 무의미하지 않게 뜻할 수 있다. 결국, 죽음과 친구가 되어 평생 그것에 저항해야 하는 것이 삶이다. 그리고 그는 죽음을 확신함으로써 삶을 다시 살아볼 마음을 먹는다. 세계와 화해하고 개별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세계와 하나가 된다. 그의 죽음은 필연적이며 숙명적이다. 스스로 필연적이며 숙명적이게 신념을 지녔다. 그의 삶이 그를 이끈 만큼 그도 삶을 선택하여 살아간 것이다. 이 것이 바로 사람마다 유일하게 가질 수 있는 죽음까지 이어지는 단 하나의 삶이다. 카뮈는 자신의 인물을 통해 우리에게 어울릴지 모를 그리스도를 그려보려 했다. 뫼르소는 죽음을 관철하여 세계와 삶의 부조리에 저항했다. 그의 거룩한 순교는 일상 속에 매몰된 삶이란 덩어리를 꺼내어 그것을 돌이켜 보도록 한다. 그가 우리와 동떨어진 존재로서 일절 깨달음을 줄 의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반면 부속 사제의 자세는 안타깝다. 우리는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교류하며 사는데, 사회는 사실관계이므로 정해진 규칙이 있다. 대신 규칙이 정확하지 않은 나머지 관계에 대해서는 타인의 삶에 어떤 것도 요구할 수 없다. 자신의 욕망이나 진리를 원할 수 없다. 스스로 열릴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는 동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후회 없이 노력하는 것이 전부다.
[이방인]을 자아 성장 시기에 잘못 받아들여 맹목적인 반항의 변명으로 쓰이거나 무의미를 오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명 중2병이라 불리는 상태 말이다. 주변인이라 불리는 청소년기는 참 멋지고 위험한 시기다. 아이의 순수함과 어른의 규칙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기 때문이다. 차츰 세상을 알아가면서 순수한 시각으로 온갖 오류를 발견하고 거부감과 실망감에 저항이 생기거나 무기력해진다. 나는 이런 성질의 중2병을 응원하고 싶다. 혹자는 오글거린다는 평을 달지만, 언제 사람이 이 시기만큼 다시 모든 것을 순수하게 고민하고 받아들일 수 있으려나. 사실 이 이야기는 [호밀밭의 파수꾼]에 어울리겠다. 어쨌든 맹목적인 저항은 곤란하며 무의미를 진리의 도달점으로 이해해서도 안 된다. 니체의 초인정신과 허무주의가 해석되는 맥락과 마찬가지로 각성을 위해 부조리에 저항하고 원형으로서의 허무로 향하여 재생하기 위함이다. 그러려면 [이방인] 외의 다른 책을 읽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타인과 교류하고 행동해야겠다.
뭔가를 설명하려면 반대되는 것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어야만 한다. [이방인]은 부조리에의 저항을 그렸지만 카뮈의 부정, 긍정, 사랑 3부작 중 첫 번째인 부정의 소설에 해당할 뿐이다. 뫼르소의 저항은 거룩하되 삶은 우리에게 적당치않다. [페스트]에서는 극한의 절망 속에 고립된 사람들이 비치는 없앨 수 없는 삶에의 긍정을 그렸다. 현실 세상에서 카뮈는 손 놓고 있지 않았다. 더 괜찮은 세상을 위해 창작하고 토론하고 연대했다. 결국, 우리는 철저히 열려있고 또한 철저히 닫혀있는 모순적인 상태여야만 하는 것이다. 자신의 세계를 온전히 보존하면서 나머지 세계와 연대를 형성해 부조리에 저항하는 것 말이다. 어려운 일이나 뭐 어쩌겠는가. 할 수밖에 없다.
고대 그리스 즈음부터 원리를 탐구하기 위한 철학은 형상을 띄게 되어 다양한 질문과 답으로 변모되어왔다. 진리, 이성, 근원, 형이상학, 쾌락, 회의, 신학, 인본, 국가권력, 과학, 계몽, 자연, 사회, 경험, 인식, 관념, 자유의지, 절대정신, 본능, 욕망, 합리 등. 긴 세월 동안 사람들을 거쳐 이러한 언어로 정제되고 여러 분야와 융합되어 역사적 대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리고 근대에 이르러 실존주의가 대두되었다. 철학의 중심을 세상에 견주면 한없이 미미하지만, 자신으로서 사실 그것밖에 없는 본인의 존재에게 집중시킨 것이다. [이방인]에 적용하고 싶은 실존주의는 신의 유무를 떠나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언제나 본인의 존재를 잃지 않고 자신의 삶에 충실하여 후회하지 않기 위함이다. 철학은 점점 섬세하게 다듬어지긴 하지만 언어 차이일 뿐이다. 지레 겁먹지 말고 자신 속 언어 이전의 세계에 존재하는 자신을 움직이는 어떤 원리를 인식해보라.
워낙 내적 의의가 깊은 소설이라 이제야 운을 떼지만 [이방인]은 소설적 기술에서도 빛을 발한다. 모든 것은 첫 줄에 나타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이만큼 짧고 강렬하지만 무미건조하고 당혹스러운 도입부는 본 적이 없다. 작품의 분위기와 주인공의 캐릭터를 단번에 전해준다. 미니멀리즘의 극치이다. 또한 살인까지의 1부와 살인 후의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의 뫼르소는 순간의 욕구를 해소하며 나머지 일은 아무래도 좋은 파편적인 일상을 보낸다. 이러한 습성은 그를 살인으로 이끈다. 그러나 2부에서는 살인 후 욕구에 제약이 걸리면서 이제까지와는 달리 온갖 부조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생의 극한에 도달하여 존재를 각성한다. 간결한 구성 속 극단으로 뒤집히는 상황은 독자를 얼떨떨하게 하면서도 깊숙이 몰입시킨다. 백미는 마지막 부분이다. 극 작가이기도 한 카뮈는 끝에 자신의 사형선고에마저 의미를 두지 않았던 뫼르소의 격양된 모습을 유일하게 보여준다. 소통에 대한 의지라곤 털끝만치도 없었던 서술자의 목소리는 급변하여 소설 전체의 공기가 격동한다. 비로소 마지막 몇 페이지에서 독자는 온몸에 혈류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짧은 소설이지만 군더더기를 쳐낸 만큼 어느 작품보다도 묵직한 울림을 준다.
여러 책을 읽진 않았지만 [이방인]은 양서 중에서도 제법 삶의 원초적인 것을 그린 소설이다. 어떤 사람들은 철학이나 사유 같은 어려운 단어와 친하지 않다. 우리의 시대는 대체로 덜 진지한 시대로서, 하루하루 신 나고 즐겁게 보내면 그만이지만, 욕망을 가지고 사는 한 한 세계는 다른 세계와 언젠가 갈등이 생긴다. 자 신의 욕망을 구현하기 위해 갈등을 해소할 정신적이고 행동적인 노력을 하기보다는 다른 이의 삶에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한다. 다른 이가 의도한 틀 속에 갇히거나 보이지 않는 족쇄를 찬 노예가 된다. 언젠가는 많은 것이 무의미해지고 가짜로 변할 것이다. 또는 그조차 직시하지 않은 채 불만족스러운 삶을 산다. 결국, 삶은 흐지부지되어 남는 것은 흐릿한 자화상뿐이다.
뫼르소는 죽음에 직면하여 삶의 확신을 얻었지만, 우리에게는 시간도 기회도 많다. 그의 죽음에 대한 확신은 우리에게 삶에 대해 재고하도록 한다. 너무 많아서 어디 다 어떻게 써야 할지가 오히려 문제긴 하지만, 없기보다 있는 편이 나음은 말할 것도 없다. 자신이 뭔지 모르며 정말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확신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삶이 많다. 평생동안 자신의 삶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은 채 사는 것은 너무 딱하다. 그것은 산 것인가? 카뮈는 어떤 철학적 질문보다도 ‘왜 자살하지 않는가?’만이 의미 있다고 했다. 질문의 주체가 먼저 존재해야 나머지 질문들이 소용 있기 때문이다. 수용하는 본인 존재가 없다면 다른 모든 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살아있기 때문에 당연하게 살고 있지만, 실은 당연하게 태어나지 않았다. 이유 없이 태어난 후 생각할 수 있을 만큼 머리가 자라고 경험이 쌓이면, 자신을 솔직하게 마주하여 삶을 택하고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본인의 삶은 본인만의 한정판이라서 타인의 것이 될 수 없다. 본인은 자신이 택한 삶을 살기 위해 어떤 것과 얼마나 어떻게 싸울지 스스로 정해야 한다. 남의 말을 따라 외지 말고 자신의 말을 하라. 어디에도 기대하지 마라. 스스로 존재하라.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있다가 가지 마라. 투박하게 적어놓았지만 대단하게 살라는 것이 아니다. 삶의 목적은 스스로 만드는 것으로 ‘그저 그런 삶을 살겠다!’고 확신해도 상관없다. 그것은 온전히 당신의 것이므로 남이 왈가왈부할게 아니다. 카뮈는 우리에게 죽음을 권하는 것이 아니다. 평생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지 일러준 것이다. 껍질을 벗고 원형을 획득하고 매 순간 자신을 자각하며 올바르게 설정한 부조리에 저항하는, 드문드문한 사진이 아니라 죽 이어져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는 영상 같은 삶 말이다.
긴 글의 끝에 와서 말하는 거지만, 삶의 형태는 천차만별이며 나는 당신의 세계에 속해있지 않으므로 내가 하는 어떤 말도 당신에게는 소용없겠다.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이 바랐던 바와 같이 이 글을 읽고 망각 속에 집어 던져라. 자신의 언어로 체득하는 편이 빠르리라. [이방인]은 단숨에 읽는 것이 좋다. 주말 예능을 제쳐 두고 두세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읽고 나면 당신은 여태껏 형성했던 관념의 틀이깨지는 것을 볼지도 모른다. 전에 읽었더라도 고단한 삶 때문에 자각이 마모되어버렸다면 다시 읽어보아라. 바쁜 와중에 곁에 두고 되새길 삶의 지침서란 ‘몇 세에 해야 할 몇 가지’ 같은 책을 읽고 맹목적으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본질을 찌르며 실존할 것을 촉구하는 바로 이 책을 두고하는 말이다. 나와 무관하며 알지도 못하는 당신에게, 마음으로 주고 싶은 나의 확신이다.
입상 정*란 노어노문학과 도서: 변신
독후감:변신〉에서 얻은 몇 가지 단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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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르의 독특한 경험을 다룬 이 책, 〈변신〉에서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공간 – 집 – 과 인물들 – 가족 –을 배경으로 하여 모순적이게도 가장 이상한 경험을 선사한다. 그것은 바로 그레고르가 어느 날 아침잠에서 깨어나 보니, 거대한 ‘벌레’로 변해버렸다는 것인데, 더욱 이상한 것은 그레고르를 포함한 가족들이 보이는 반응들이다. 이 반응은 첫 번째로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해버린 몸뚱이를 하고는 지배인에게 새벽기차를 타지 못한 자초지종을 설명하지 못해 몹시 걱정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벌레로 변해버린 자신보다 더 중한 일이 있단 말인가!)

1. 집
〈변신〉에서 주요 무대가 되는 곳은 바로 ‘집’이다. 집은 어떤 곳인가. 전통적으로 집은 평등한 공간, 사랑에 근거를 둔 조건 없는 공간이었다. 집에서는 상사와 부하가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의 구성원인 우리는 그 자체로서 존재할 뿐이다. 비유하자면, ‘집’이라는 장소에 들어가려면 세속적인 가치관들은 문지방에서 먼지를 탈탈 털고는 헐벗은 그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카프카가 묘사한 <변신>에서 배경으로서의 ‘집’은 그 엄격한 경계가 무너진 곳이다. 물질주의로 대변되는 세상의 가치들은 집에까지 침투해 가족 구성원들의 가치관마저 바꾸어 버리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변신〉의 ‘집’에서는 가치가 전도되어 있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이 벌레로 변했다는 다분히 환상적인 설정과 뒤섞여 매우 기 묘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벌레로 변해버린 자신 앞에서 지배인에게 직장에 늦은 이유를 설명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그레고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레고르에게는 생존의 문제가 이미 실존의 문제보다 앞서는 것이다. 또한, 찰리채플린이 나사를 조이는 것과 같은 굉장한 형식주의적인 면도 드러난다. 그레테는 어머니가 그레고르의 방을 치우자 매우 모욕감을 느끼는데, 그녀가 느끼는 것은 아마도 공장의 A라인 담당자가 자신의 업무를 누구에게도 위임하려 하지 않으려 할 때의 자부심과 비슷할 것이다. 어머니는‘집’의 고유한 가치인 ‘모성애’를 가지고 그레고르 방의 문을 열지만, 이미 ‘집’은 거대한 공장과 같이 위계화되어있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 이야기의 끝에 가서야 알 수 있다. – 자면서까지 제복을 입고 자는 아버지는 마치 ‘제복’이라는 겉치레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하는 듯하다.
앞에서 말한 것들은 ‘실존과 생존의 문제’, ‘겉치레와 본질의 문제’라는 말들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속적 가치에 의해- ‘함락당한’ 집에 대해 더 따져보자. 비유적으로 집은 인간의 정신, 내면, 본질에 비유될 수 있다. 방안에만 5년을 있었다는 아버지의 말처럼 그레고르는 자신의 방의 온전한 주인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찬찬히 훑어보면 비유적 의미에서도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변신〉에서 우리에게 가장 인간적으로 와 닿는 인물은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르다. 나머지 인물들은 이름도 잘 밝혀있지 않거니와 이들의 생각은 물론 대화도 잘 들을 수 없다. 마치 그레고르가 방안에서 웅크린 채 비스듬히 열린 문틈 사이로 가족들을 지켜보듯이 독자 또한 형식적인 것들로 나머지 가족 구성원들을 추측해야 한다. 여기서 ‘실존’이라는 어려운 단어를 쓰고 싶은데, 마치 카프카는 ‘겉모습이라는 별 중요치 않은 것이 흉측스럽게 변해버렸지만 그 내면만은 지극히 인간적인 그레고르’와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정상적이지만 더는 인간의 본질을 잃어버린 가족들’을 대비시키고자 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가족들의 집’을 더 이해하기 위해 하숙인과 가족들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누가 더 주인 같은가? -가족들이 하숙인의 눈치를 보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 이 단락을 통째로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대신할 수 있다. “누가 더 자신 집의 주인인가?”

2. 변신
흥미로운 것은, 그레고르도 벌레가 된 후에 더 인간적으로 변한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아버지는 그를 가리켜 직장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고, 처음에 그레고르는 정말 그래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벽 위의 액자에 더 애착을 갖고 가족들을 끈질기게 바란다. 잠시잠깐 그에게 허락되는 문틈으로 가족들의 모습이 보이는 그 몇 분을 위해서 그는 온종일을 견디는 것 같다. 이 책의 겉표지에 〈변신〉이라고 쓰여 있을 때, 다수는 이 낱말이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해버린 것에 국한할 것이지만, 나는 이것을 그레고르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라고 알아채고 싶다. 그리고 동시에, 이 변화는 가족들이 그레고르를 받아들이는 방식의 변화이기도 하다. 그레테는 처음에는 그레고르를 가엾게 여겨 그에게 상한 치즈 같은 것들을 넣어주고는 그레고르가 식사를 하였는지 살펴보곤 하였지만, 나중에는 그저 쓰레기들을 쑥 집어넣고는 확인조차 하지 않는다. 가족들은 그레고르를 점점 가족 구성원에서 밀어내는데, 처음에는 이들은 ‘가족이기에’ ‘저런 모습을 해도 나의 아들/오빠이기에’ 라는 심정으로 참아낸다. 그러나 그레고르로 인해 하숙인들이 계약을 파기하고 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자 이들의 분노는 극에 치닫는다. 가족들은 이제 그레고르를 ‘변신’한 아들/오빠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레고르는 ‘저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저것이 오빠일 리 없어요.”라는 그레테의 말이 이것을 반증한다. 그레고르는 흉측한 겉모습 안에서 더욱더 가족들을 그리고 있지만, 이제 내면적으로 ‘변신’한 그를 기다리는 것은 그의 존재조차 부정하는 ‘변신’해버린 가족들의 시선뿐이다.

3. 생산 기계
겉으로만 보면, 카프카는 ‘생산적이지 않은 개체는 쓸모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좀 더 찬찬히 보면, 카프카가 역겨워하는 것은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르가 아니라 직장에서 잘릴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그레고르다. 혹은 그를 그런 하찮은 존재로 만든 세상이다. 이때, 그레고르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생산적이지 못하게 된’ 몸뚱이지 ‘벌레가 되어 버린 자신’이 아니다. 카프카는 이러한 설정을 통해 ‘인간 존재’가 ‘생산기계’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풍자한다. 인간이 벌레와 구별되는 점에서 ‘생산력’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카프카는 이것을 ‘벌레’와도 같다며 역겨워한다. 카프카에게 묻고 싶다. 만약, 그레고르가 혐오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벌레의 외모를 하고 심지어 신체를 놀려 직장에도 다닐 수 있고 인간과 대화도 할 수 있다면, 어땠을까? 그레고르는 아마 죽지 않았을지 모른다.

4. 해체
〈변신〉에서 중요한 핵심은 해체다. 내가 언급하고 싶은 것은 특별히 가족의 해체이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집’이라는 공간의 특수성 위에 지어진 것으로서 가장 인간다운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족 구성원들도 세상이 주는 가치관을 받아들임으로써 가족에게서도 해체가 일어난다. 그레고르의 가족을 통해서 이것을 알 수 있다. 그레테는 ‘겉모습’이 변해버린 오빠를 ‘저것’이라고 부른다. 이상적인 가족은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채야만 했을 것이다. 그레고르가 죽은 뒤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는 이들은 아들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모습이 아니라 좋은 예감을 간직한 채 여행길에 오르는 흥겨운 사람들의 모습이다. 이 그레고르의 가족을 전체 사회로 확장해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사람을 이름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담는 것은 그 사람의 연봉, 직업 등등이다. 이때 인간적인 유대에 기반을 둔 전통적인 관계-가족-들은 해체된다. 이 가족은 좀 더 자신들을 윤택하게 만드는 방향을 따라서 변화되어 가고, 잘라낼 것은 잘라내고 옮겨야 할 것은 옮겨버린다. 모성애, 사랑, 연민 같은 것들은 더는 중요치 않아 보이는데, 이들에게는 앞으로의 집세, 생활비가 더 중요하다.

5. 문제제기 – ‘인간’이라는 신화
〈변신〉이 가지고 있는 전제는 분명하다. 인간은 벌레와 같지 않다. 혹은 인간 은 벌레보다 더 나은 상태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첫 번째 질문, 인간이 벌레와 같지 않다는 것은 인간은 벌레보다는 고귀하다는 말로 바꿔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는 ‘인간’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만물의 영장’같은 단어를 즐겨 쓴다. 만물위에 뛰어난 존재라는 뜻의 이런 수식어들을 인간은 당연하다는 듯이 써왔다. 그러나 이 수식어의 기원을 생각해보면 인간의 고귀함 혹은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도 어쩌면 신화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먼저 생각이 나는 것은 ‘성서’이다. 성서야말로, 인간에게 고귀한 지위를 부여하며, 그것도 누구도 감히 대들 수 없는 ‘천부’의 존재로 인간을 단숨에 특별한 위치에 올려놓는 데 성공한 존재이다. 그러나 찬찬히 생각해보면, ‘신’의 존재에 기반을 둔 인간 정체성의 문제는 모래성처럼 가벼운 것이라는 점을 상기할 수 있다. 〈변신〉에서 카프카는 더럽고 추악한 벌레로 인간을 변신시켜 버림으로 ‘고귀한’인간에게 충격적인 짓을 하였지만, 만약, 이 벌레가 인간과 다를 바가 없다면 이때의 충격은 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도발적인 생각에 반기를 들 근거가 ‘신화’에 근거한 것이라면 이 말은 허무맹랑한 것만은 아니다. 인간이 정말 고귀한가? 이 질문에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이 현대사회다. 현대과학은 인간존재의 기원을 밝힌다. 근원이 되는 원자라는 것이 동물이나 아메바나 즉, 우리 인간이나 단세포 생물에나 동일하다. 극단적으로 벌레와 인간도 동일하게 원자로 구성되어 있을 뿐이다. 현대의 지식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치욕스러운’ 지위를 굳이 논하지 않더라도 두 번째 질문 –인간이 벌레보다 나은 환경에서 살아 가냐/혹은 취급 되느냐에 답할 수 있다.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벌레와 같은 지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이제 카프카의 방에서 벗어서 전 지구적인 범위에서 물질주의에 따라 형식주의에 따라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벌레로 변해버렸을 때 깜짝 놀라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해 버렸을 때 반드시 눈여겨보아야 할 ‘인간성’이란 것을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만약 이것이 ‘존엄성’이라면 성서가 신화라는 데서 그 뿌리를 잃고 만다. 만약 이것이 인간 존재의 어떤 ‘복잡성’에 있다면, 현대과학은 우리를 조각조각 분해해 세상 어느 개체와도 동일한 크기의 원자를 내밀 것이다. ‘물질적인 세상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힘’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사람이 도대체 어디 있어?” 라고 반문하고 싶다.
정말로 문제는 우리도 인간 본질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데 있다. 당신과 내가 ‘인간답다’ 라고 할 때, 인간의 본질이 어떤 따뜻한 감성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알아채지 못할 뿐 많은 동물도 서로 사랑한다.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에 우리의 본질이 있다고 한다면, 인류역사의 수많은 비극이 이 ‘본질’에 의해 일어났다고 상기시켜줘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인간이 벌레보다 낫다고 하는 어떤 위안 감은 신화일지 모른다. 아니, 좀 더 순화해서 인간이 다른 어떤 존재보다도 존귀하다고 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현실적으로나 아니면 관념적으로나 –내 생각에는- 앞에서 서술했듯이 인간은 더는 벌레보다 깜짝 놀랄 정도의 존귀함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이 용어를 남발하고 있다. 어쩌면 ‘인간의 본질’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쩌면 신화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이 여기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한 손으로는 환경을 파괴하고 또 다른 한 손으로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웅얼거리고 있다. 어쩌면 이런 상황에 우리는 더 깜짝 놀라야 한다.

입상 허*석 경역학과 도서: 파우스트
독후감: 파우스트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작품 [파우스트]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느낄 수 있는 방대한 분야에 대해 엮어놓은 책이다. 이 책의 저자,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경제, 심리, 정치, 종교, 사랑, 철학, 자연, 사회, 대중, 언론, 역사, 신화 등을 총망라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기력하고 욕망적인 동물이며, 허무한 존재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의 목차만 보더라도 5가지의 비극으로 이루어져 있어 내용의 전개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첫 번째 장면은 이러하다. 성경의 욥기서와 같이 하나님과 천사들 그리고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등장하여 메피스토펠레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파우스트를 시험할 것을 허락받는다. “그는 내 종이니라!” 라는 대사에서 볼 때 파우스트는 신실한 종교인 이였다. 하지만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첫째, 주인공인 파우스트 박사는 우주의 창조원리를 깨닫고자 세상 대부분의 학문을 섭렵하였으나 그 오묘한 진리를 깨닫는데 실패하고 부활절에 데리고 온 삽살개(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내 줄 것을 기약하고 욕망을 충족하고자 한다. 이 부분에서 인간이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지점, 바로 진리(眞理)라는 경지는 땅의 학문인 인학(人學)으로는 도달할 수 없으며,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 비극은 마녀의 약물을 마시고 색욕(色慾)을 느끼게 된 파우스트는 그레첸이라 하는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녀를 좇아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누구보다도 아름다웠던 그녀를 사랑하며 갖은 노력을 다하나, 결국 유아를 태생하게 되고 그 어머니와 유아를 죽인 죄로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그레첸을 보게 된다. 이 장면에서 파우스트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없는 고통을 느끼며 그 존재-죽음을 관장하는신(神)에 대해 절실히 깨닫게 된다.
세 번째 비극은 황제의 명령으로부터 시작되는데, 갖은 권력과 재물을 소유한 황제가 불황의 경제에 처한 나라를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맡긴 것이다. 여기서 파우스트는 지하의 막대한 자원을 담보로 화폐를 발행하여 나라 경제를 일으켜 막대한 부와 명예를 쟁취하나 이는 파우스트가 진정 욕망하고자 하는 차원에 미치지 못하고, 파우스트는 인간적인 무력감을 느끼게 되어 오히려 형이상학적인 존재를 추구하게 된다. 한편 실권을 잃은 황제의 삶이 서술되며 불행한 인간의 내, 외면을 서술하고 있다.
네 번째는 황제의 명령으로 지상 최고의 남녀를 데려오라는 명을 이행하고자 파우스트는 어머니들의 나라로 떠나게 되고 그곳에서 과거 트로이와 스파르타의 전쟁의 꽃이었던 헬레나가 탄생하게 되고, 그는 헬레나가 최고의 여자라고 생각하여 그녀를 찾아 나선다. 갖은 신비한 경험과 모험을 통해 그녀를 찾은 파우스트는 그녀와 결혼하여 에우포리온을 태생한다. 허나 그 아들은 무한의 능력을 얻으려 욕망하며 결국 이카루스와 같이 하늘에서 떨어져 죽음을 맞고 이에 충격을 받은 헬레나 또한 죽음을 맞는다. 다섯째, 좌절한 파우스트는 황제의 전투에 참여해 받은 광활한 바다를 개척하여 백성들의 행복을 추구한다. 근심의 정령으로 인하여 눈이 멀게 됨에도 그는 끊임없이 삶을 개척하려고 고군분투한다. 그는 말년에 악마에게 “너 아름답구나” 의 말과 함께 삶을 마감한다. 그를 위한 찬송이 이어지며 그의 연인 그레첸의 간곡한 기도로 그는 구원 받게 된다. 이와 같은 전개는 괴테의 인생관이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대목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극 중 주인공 파우스트의 고뇌가 극대화되는 곳은 그가 그토록 욕망하였던, 헬레나와 결혼생활 중 에우포리온과의 사별 후 헬레나와의 사별이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와의 여행 중 마녀가 건네준 약물을 통하여 처음 욕망하였던 것이 바로 색욕이었는데 이 또한 죽음이라는 인간의 경지를 초월한 곳에서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 점에서 파우스트는 인간의 무상함과 그 존재의 나약함에 대해 절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이후 비극에서 그는 인류의 행복을 위하여 미개척지의 바다를 간척하여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분투하며 버텨보지만, 그 또한 죽음 앞에서는 유한한 개체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헬레나와의 사별 후 고차원적인 경지에 진입하였지만 뜨거운 햇볕에 추락하는 이카루스와 같이 자연에 순응하는 인간일 뿐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자유를 만끽하고자 하였던 인간, 파우스트는 죽음을 통해 신과 같은 절대적인 존재에 귀의하여 진정한 행복의 차원,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 출생과 동시에 소멸에 직면한 인간이 도달하게 되는 궁극적인 지점인 죽음은 무(無)와 동시에 영원(永遠)의 경지이며 이곳에서 역설적이게도 파우스트는 그가 생각지도 못한 욕망을 ‘완성(完成)’하게 된다. 이 부분은 독자들에게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이 책에서 파우스트는 인간이 추구하고자 하는, 현재 인간이라면 추구하고자 하는 돈, 권력, 색욕 등을 추구하면서 극에 달하는 쾌락을 추구하고 쟁취하였지만, 결국은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는 개척의 삶을 보여준다. 비록 작품의 배경은 과거일지라도 인류의 문명이 발전해온 역사 전반을 통해 보더라도, 인간의 욕망은 끊임없다. 비록 그 과정을 통해 현재 인류는 불편함이 없는 단계에 도달하였더라도, 현대인들 또한 욕망을 가지며 살아간다. 욕망이라는 것은 인간을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만 그 추진력의 한계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필자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이 진정 추구해야 할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상고해 볼 수 있었다. 책의 마지막에는 모성의 힘인 도(道)의 힘으로 구원을 받게 되는 파우스트를 볼 수 있다. 비록 현세에서 이차원적인 욕망을 추구하며 악마의 종으로 살았더라도 기도와 신의 은총으로 구원받는 파우스트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또한, 이 글을 통해 괴테가 현대인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 결국 최신학파의 학자도, 그를 통해 창조해낸 불완전한 인간 호문쿨로스도, 경국지색(傾國之色) 핼레나를 취함도 불황을 해결한 돈도 인생을 끊임없이 개척하고자 했던 파우스트의 노력도 모두 이차원적이며 인간은 그것을 통해 진정한 무엇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인간의 근원은 신에 있으며 신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를 읽을 수 있다. 하늘과 땅을 주관하며 바다와 공기를 이끄는 존재를 깨달으며 그 존재에게 영광과 찬송을 돌리는 것이 인간으로서 해야 할 마땅한 도리, 예(禮)와 의(義)가 아니겠는가? 결국 이 작품을 통틀어 인간의 욕망과 구원은 하나의 절대적인 힘, 곧 사랑으로 수렴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글의 후반부에 파우스트가 그토록 욕망을 추구하며 결여되어 있는 것을 채우려 노력하는 장면에서 악마와 손까지 잡으면서 세상을 좇았으나 이후 구원은 바로 사랑에 있었던 것이다. 나 또한 다양한 신으로의 길을 알려주는 경서(經書)들을 읽어 봤으나, 인간의 탄생과 소멸을, 그리고 예언과 성취를 이룬 책은 성경이었다. 이 책에서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기록되어있다. (요일 4:16) 이 말을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존재는 하나님이시다. (요일 2:25)
이 책 전반을 돌아보았을 때, 또한 고전(古典)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이 책은 인간의 삶 전반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해 줄 수 있는 책이다. 인간의 삶이 오묘하면서도 복잡한 이유는 현재에 직면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한가지뿐이라는 점이다. 그리하여 이런 선택을 하든, 저런 선택을 하든 한 가지의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에 노인들은 청년의 때를 그리워하며, 청년은 현재의 삶에 불안해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괴테의 [파우스트]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치명적인 점인 욕망에 대해 우리가 나아가지 못했던 길에 대해 그만의 인생관을 섞어 현재에 직면한 현대인들에게 보다 나은, 행복한 삶으로의 선택에 기여하고 있다. 행복, 누구나 꿈꾸지만 도달하지 못하는 그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애쓰는 인간의 처절한 삶이란 우리들의 가슴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존재일 것이다. 다만 이러한 본성을 어떻게 풀어내느냐, 절제하느냐, 추구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 또한 그가 바라던 사랑의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참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다. 필자의 전공이 경영이라 그런지 황제의 나라가 불황으로 시달릴 때 파우스트가 화폐를 발행하여 경제를 일으키는 장면은 인상적이었고, 동서고금의 미녀 헬레나와 만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읽을 때는 나 또한 내 연인과 그렇게 되기를 갈망하게 되었다. 파우스트가 다양한 학문을 수학하여 세상의 참 진리를 찾을 때 나 또한 그렇기에 많은 공감이 되었다. 그 과정은 내가 겪어보지 않았었기에 호기심이 생겼고, 그 결말을 보았기에 나는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달을 수 있었다. 참 생명이신 신에게 인생의 중심을 둘 수 있었다. 이 책은 고(古典)으로 많은 사람이 읽었고, 앞으로도 수요가 많은 책일 것임이 틀림없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부분은 분명 다를 것이다. 하나 확실한 것은 이 책을 통하여 자신의 인생에서 무언가 결여되어 있다고 느끼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추구하는 인생이라면 일독을 통하여 귀중한 깨달음을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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