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추천도서

이 주의 사서 추천도서(4월 1주)

우리 몸이 세계라면: 분투하고 경합하며 전복되는 우리 몸을 둘러싼 지식의 사회사

김승섭│동아시아│2018│347 p.
중앙도서관 4층 과학기술자료관 단행본 [SDM 614 김58ㅇ]

추천의 글(법학도서관 황은주)

‘이 책은 역사와 과학을 줄기 삼아, 인간의 몸과 질병에 대해 논하고 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인 주제는 생산되지 않는 지식과 측정되지 않는 고통에 대한 것이었다. 인간을 병들게 하는 가난과 인종차별에 대해서, 표준화된 몸이 되지 못해 아파야 했던 여성의 몸과 가장 절실히 필요한 의약품이 가장 천천히 개발되는 세계의 논리에 대해서 나누려 했다. 그 과정에서 타인의 고통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면서도 이해를 포기하지 않는 길을 함께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고 서문에 적혀있다.

1. 권력: 어떤 지식이 생산되는가 2. 시선: 보는 것과 보지 않는 것 3. 기록: 우리 몸이 세계라면 4. 끝: 죽음의 한가운데 있는 삶 5. 시작: 질문되어야 하는 것들 6. 상식: 지식인들의 전쟁터 로 구성되어 있다.

왜 어떤 지식은 생산되고 어떤 지식은 생산되지 않는가
가장 큰 제약회사 20곳 중 11곳의 제약회사가 응답한 결과를 보면, 저소득 국가에서 주로 발생하는 감염성 질환인 결핵, 말라리아, 샤카스병, 아프리카 수면병, 리슈마니아증에 대해 당시 투자되고 있는 연구 개발 비용의 규모는 전체 연구 개발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연구 개발비가 투자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 질병들을 치료할 수 있는 신약 개발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앞으로도 희박해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인 제약회사가 약을 개발했을 때 거둬들일 수 있는 이윤은 어떤 약을 개발할지와 그 약을 만드는 데 필요한 지식을 생산할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지식은 생산되고 어떤 지식은 생산되지 않는다. 오늘날 지식은 명백히 선별적으로 생산되고 선별적으로 유통된다. 권력과 자본을 가진 나라에 필요한 신약만이 개발되고 그 나라에서 거주하는 사람들만이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받게 되고 그 나라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만이 과학자로서 꿈을 펼칠 수 있는 상황은 결국 지식과 지식인 생산의 불평등이다.

우리 몸이 세계라면
문화인류학자인 김찬호 교수는 한국사회를 분석하는 핵심키워드로 모멸감을 말한다. 모멸감은 상대방이 나를 ‘업신여기고 얕잡아보는 감정’을 뜻한다. 오늘날 직장과 가정에서 서로 모멸감을 주고 받는 일이 잦아지고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 많아지는 이유를 분석할 때 지난 20년간 급격히 악화된 한국사회의 소득불평등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소득불평등이 정도가 심각한 나라에 사는 청소년일수록 학교 폭력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위험이 모두 높게 나타났다. 심각한 소득불평등으로 인해 사람들 사이의 신뢰 수준이 떨어지고 상대방이 나를 무시할까봐 전전긍긍하는 사회적 환경이 청소년들의 삶에도 영향을 준 것이다 라고 말한다. 어떤 사회에서도 소수자에 대한 인권 감수성이 그냥 주어진 역사는 없었다. 다수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사회의 많은 부분이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 세계의 질서가 누군가를 상처 입힐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하지만 때리는 줄 모르고 던진 돌도 맞는 사람 입장에서 아프기는 매한가지이다. 그래서 다수자 입장에서는 과도하다고 생각되는 문제 제기가 계속되어야 한다. 혹시라도 왜 그리 불편한 긴장을 계속 감당해야 하느냐고 묻는 다수자인 한국인이 있다면 한반도만 벗어나면 한국인은 전세계 모든 곳에서 소수자라는 사실을 함께 기억했으면 한다.

지식인들의 전쟁터: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을 만드는 일
수학이나 물리학 같은 순수과학은 비슷한 주제를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논문이 읽히는 것만으로 충분히 가치있고 그 분야 학자들이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논문을 출판하는 일은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의 학자는 한국사회의 문제를 다루는 연구까지도 해외 학술지에 발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사회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결과를 영어로 작성해 발표하고 외국 학자들이 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 내용이 한국사회에서 공유되지 않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읽을 수 없게 되고 그래서 검토하고 논쟁하고 또 활용할 수 없다면 그것을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현재 영어로 출판한 논문의 내용을 한국어로 유통하는 작업을 지원하는 학계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국가에서 교육을 받았는지는 연구자의 사고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한국 지식인을 생산하는 최대 공장은 미국”인 현실은 영어로 출판하는 해외 학술지 논문에 높은 가중치를 부여하는 한국 대학 연구업적 평가와 함께 국내 학계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한국에서 연구하는 학자들이 연구 주제를 선정하면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저명 학술지의 관심 연구 주제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강정인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외국과 한국의 화두가 같다면 좋겠지만, 다르다면 따로 갈 수 밖에 없다. … 이명박 정부 때 정의 문제가 큰 이슈였다. 우리 같은 민주주의 신생국에서 정의는 과거사 청산 문제와 반드시 직결된다. 그러나 롤스나 샌델의 정의론을 봐도 과거사 청산 문제는 나오지 않는다.”

대학이 현 시스템으로 인해 어떤 연구자와 어떤 연구가 배제당하고 있는지는 고민이 필요하다. 한국사회의 고유한 문제를 한국어로 고민하고 쓰는 연구자들이 오늘날 대학에서는 가장 살아남기 어렵다. 이러한 어려움은 특히 한국사회의 사회적 약자에 관해 연구하는 경우 더욱 도드라진다. 전 세계 지식 시장에서 한국이 ‘변방’이기에 생겨나는 지식 생산과 유통의 문제점이 한국사회 내부에서도 발생한다. 한국에서 권력과 자본에 소외된 이들의 삶을 연구할 때에도 비슷한 문제점이 반복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단기적인 성과만을 주목하는 오늘날 대학에서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약자의 몸과 질병에 대한 연구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부조리한 사회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고통을 과학의 언어로 세상에 내놓는 것은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우리 사회에 소외받은 사람들,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아픔을 생각하면서 읽었다. 중간 중간 이해되지 못한 부분들이 있지만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았으며, 현학적이지 않아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었다. 저자의 통찰력 있는 질문과 그에 대한 고민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으며, 결국은 우리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같이 공유해야만 한다. 내가 살아가면서 이런 문제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을 정할 수 있었으며 나의 사고체계에 변화를 주는 성숙한 사고를 할 수 있게 해준 책이다.

저자인 김승섭은 2017년 9월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출간해서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사회적 약자의 따뜻한 시선을 냉철하게 분석한 이 책도 같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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