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추천도서

이 주의 사서 추천도서(3월 2주)

편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권일영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2007│416 p.
중앙도서관 2층 문학예술자료관 단행본 [LDM 813.36 동62ㅅ한]

추천의 글(과학기술자료관 이은해)

살인 사건에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다. ‘삶의 박탈’과 ‘죗값’이라는 이들의 고통은 다수의 매체를 타고 자연스레 노출된다. 그러나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존재 뒤에 가려진 채 또 다른 고통과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가해자의 가족’이다.

사회는 우리에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가해자는 물론, 그 가족 또한 가해자의 죄로 인해 지나친 비난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사회는 가해자의 가족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 가해자와 그 가족은 같은 피로 연결된 혈연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중성에 갇히게 된 우리는 가해자의 가족과 미묘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을 유일한 미덕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그들에게 표면적인 적대감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동시에 그들과 어떠한 관계도 맺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가해자의 가족은 ‘범죄자’와 ‘평범한 시민’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쓸쓸한 이방인이 되어 사회로부터 점차 고립되어 간다.

나오키의 형은 강도살인이라는 죄명으로 지바 교도소에 복역 중이다. 다시 말해 나오키는 ‘가해자의 가족’이다. 형이 나오키의 대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도둑질을 하던 중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이후, 나오키의 삶은 늘 불행에 잠긴 채 머물러 있다. 처음으로 희망을 느꼈던 음악 활동도, 결혼을 꿈꾸었던 여자 친구와의 관계도, 승진을 앞에 둔 직장 생활도 모두 허망하게 끝이 난다. 그는 ‘꿈을 가진 청년 나오키’가 아닌, ‘살인자의 동생 나오키’이기 때문이다. 그런 나오키에게 형은 자신의 죄에 대한 반성과 동생에 대한 애정을 담은 편지를 쓴다. 교도소에서 전송된 형의 편지가 계속되듯 나오키의 고난 또한 계속된다. 교도소 검역을 의미하는 벚꽃 도장처럼 형의 편지는 나오키가 가해자의 가족이라는 낙인을 찍어 간다. 그런 형에게 나오키는 ‘형의 동생으로서’ 마지막 편지를 쓴다. 편지를 받은 형 또한 마지막 편지를 써 내려간다. “동생이 형제의 인연을 끊겠답니다. 제가 출소한 뒤에도 연락하지 말아 달라고 했습니다. 그 편지를 읽을 때 제가 받은 충격을 짐작하실지. 동생한테 절연을 당해서 충격을 받은 게 아닙니다. 오랜 세월 동안 저라는 존재가 동생에게 계속 고통을 주어왔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동생이 이런 편지를 쓸 때까지 눈치채지 못한 저의 어리석음 때문에 죽고 싶을 정도로 제 자신이 혐오스러웠습니다. 저는 편지 같은 걸 쓰지 말아야 했습니다.”

형의 죄로 인해 평범한 일상을 박탈당해가는 나오키의 처절한 삶을 앞세워 작가는 ‘가해자 가족의 불행은 가해자가 지닌 죄의 연장선’이라고 이야기한다. 가해자의 가족이 겪어야 하는 고통은 당연한 것임을 다소 냉정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해자의 가족은 어떠한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까? 안타깝게도 작가는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은 채 소설을 마친다. 그러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가족의 입장에서 사건을 서술함으로써 소설 곳곳에 해답의 실마리를 남겨두고 있다. 범죄 가해자의 가족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며, 또 가해자의 가족에게 어떤 시선을 던져야 할지에 대해 이 책과 함께 한 번쯤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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