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효원인 감동공유

2015.11.16

내용 우리 대학교 학생이 자신이 직접 읽어 본 책을 추천함으로써 책을 통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친구, 선·후배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
추천 대상 도서 만화, 판타지, 선정적 도서, 무협지 등을 제외한 모든 도서
참여대상 부산대학교 학부생(휴학생 포함)
참여방법 온라인 응모(http://onestop.pusan.ac.kr)
– ‘스마트학생지원시스템’ 로그인 > 비교과 > ‘효원인감동공유’ 응모
선정내용 학생들이 응모한 추천서 중 우수 추천서 100건 선정
2015년도 1·2학기 효원인과 함께 읽고 싶은 책 추천도서
도서 위에 마우스를 올리시면 해당 도서의 추천글 바로가기 버튼을 통해 추천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제목: 추리소설과 성장소설의 사이, 소녀
학과: 문헌정보학과, 이름: 손*희, 선정연도: 2015
추천내용: 책의 표지만 놓고 본다면 음산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는 전형적인 추리소설로 밖에 안보였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는, 이 책이 추리소설로 둔갑한 성장소설임을 알 수 있었다.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죽음을 직접 확인하고 싶은 두 여고생 즉, 소녀들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아쓰코와 유키는 죽음에 대한 호기심으로 각자 죽음과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는 장소에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자신의 상처를 직면하고, 스스로 극복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서로에 대한 오해와 편견으로 생긴 아쓰코와 유키 사이의 갈등 또한 해소되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아래의 글은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이다.
“그 보다 검도를 한 덕에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는 게 멋진 일 아닌가? 그래, 난 이날을 위해 검도를 한 것이다. 신께서도 목적 없는 재능은 빌려주지 않으실 테니까. 다 끝나고 나니 이런 거창한 생각도 하게 된다. ”
이 부분은 주인공인 아쓰코가 스스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한층 더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 내내 ‘미나토 가나에’ 라는 작가가 교육계에 종사하는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나이 또래 여고생의 감정표현을 매우 섬세하게 이야기에 담아내었기 때문에 그만큼 감정이입이 쉬웠다. 이를테면, 책의 후반부에 아쓰코와 유키가 각자의 상처를 똑바로 직면하고, 이를 극복하는 장면에서는 마치 내 일 인양 굉장한 희열을 느낄 정도였다. 내 고등학교 시절을 되짚어 보자면, 나는 아쓰코 보다는 유키 쪽에 가까운 아이였던 것 같다. 답답하고 마음속에 응어리가 질 때마다, 노트에 무언가를 끄적이는 모습이 비슷해서, 나도 모르게 유키에게 더 마음이 가고, 그녀의 시점에서 글을 읽게 되었다. 그래서 사춘기를 남들보다 깊게 겪은 이들에게 특히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본질은 성장소설이지만, 추리의 요소도 물론 가지고 있다. 얼핏 보면 서로 다른 두 개의 이야기 속에서 차례로 의심스러운 정황과, 인물들이 등장하고, 결국에는 하나의 이야기로 종결이 되는 신기한 구조를 띈다. 또한 그 안에서 생각지도 못한 짜릿한 반전까지. 무더운 여름, 감동과 소름, 두 가지 다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소설이다.

제목: 사회적 금기와 성적 정체성 사이의 개인, 베네데타 까를리니
학과: 사학과, 이름: 황*봉, 선정연도: 2015
추천내용: 어떤 부분에 있어서나 사람들은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더 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사회적 금기와 규제가 강하면 강할수록 구성원들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깨뜨리려는 욕망을 더 크게 갖는 것이 일반적이고 지금까지 그래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금기와 규제를 깨는 일, 숨겨진 비사를 들추어내는 일,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을 아는 일 등 이러한 것들이 위험한 것임을 알고도 행하는 것은 그 자체가 흥미진진하며 박진감 넘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도서관에 있는 많은 책 중 이처럼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은 내용을 담은 이 책을 뽑아 들었다.
사실 이 책에 대한 표면적인 내용은 인터넷을 통해 어느 정도 접할 수 있었다. 내 관심을 이끈 가장 흥미로운 단어는 부제에 쓰인 ‘레즈비언’이라는 단어였다. 여성의 동성애를 뜻하는 단어로 보아 중세의 여성 동성애를 다룰 내용임을 짐작할 수는 있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알지 못하였다. 지금도 동성애는 사회적으로 그리 좋은 인식으로 자리 잡고 있지 못하며, 나 또한 이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이 있었다. 그런데 르네상스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레즈비언 수녀 이야기라니. 성서의 내용에 가장 충실해야하고 규율이 엄한 중세 수녀원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분명 엄청난 파문을 일으킬 것이었다. 단순히 동성애적 내용만 담긴 것이 아닐 것 같다는 혼자만의 조심스러운 짐작을 하면서 이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저자인 주디스 브라운은 자신이 레즈비언 수녀와 관련된 기록을 어떻게 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가지게 된 의문에 대해 간단히 서술하는 것으로 글을 써내려간다. 그녀는 단순한 의문에 그치지 않고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는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그 노력으로 베네데타 사건기록을 찾았고, 그 속에서 중세 유럽 여성의 성적인 삶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문제를 찾아내었다.
16-17세기는 섹슈얼리티에 있어서까지 남성주의적 관점과 인식 때문에 여성의 동성애나 섹슈얼리티는 아예 무시되거나 입에 담을 수 없던 시기였다. 저자인 브라운은 많은 기록과 사례를 근거로 하여 이러한 사회적 인식에 대해 논하고 있다. 성서 상으로 똑같이 금기시되었던 동성애가 어째서 남성의 경우가 여성에 비해 비교적 잘 수용되고, 여성의 경우는 아주 불결하고 천박한 것으로 취급받는 것인지 쉽게 이해되지는 않았다. 이중 잣대로 보이기에 충분한 당시 인식은 자연스럽게 여성 동성애에 대한 기록의 부재로 이어졌고, 이 때문에 베네데타에 관한 기록은 그 가치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본격적인 베네데타 이야기는 그녀의 탄생으로부터 시작한다. 1590년 줄리아노와 미데아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세상의 빛을 보게 되는 순간부터 중세 여성의 삶을 그대로 밟을 운명에 있었다. 당시의 여성들은 정체성과 자기결정권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그러한 삶을 사는 것을 으레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누구도 이에 대한 의문을 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녀는 1599년 페샤의 테아티노회 수녀원에 입회하여 수녀가 되었다. 새로운 환경은 그녀에게 심리적 불안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했고, 이를 신앙으로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신비로운 현상과 기적 같은 환영을 접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환영은 대중적 지침서나 수녀원에서 듣고 느낀 것을 토대로 만들어진 2차적 경험이었지, 실제로 나타난 환영이 아니었다. 하지만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녀가 경험한 환영이 실제였든 아니든 그 의미는 그녀 스스로 부여하기에 달려있는 것이었다.
환영이 계속될수록 그녀는 육체적 고통을 얻게 되었고, 이에 따라 수녀원 측은 그녀에게 룸메이트를 배정하게 된다. 이것이 평범해 보이는 한 신비주의자 수녀의 이야기를 완전히 뒤바꿔 놓을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교회 당국은 그녀의 신비적인 환영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여성인 베네데타가 사회적으로 명성을 얻고 존경을 받기 시작하면서 이를 제어하기 위해 교회가 이를 통제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기 위해 교회 당국은 베네데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는 2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1차 조사는 1619년 6월과 7월 사이에 총 14번 이루어졌다. 주로 베네데타의 성흔과 반지, 이에 대한 여러 증언에 초점을 맞추었다. 조사단은 베네데타가 겪은 환영이 어느 정도 합당하다고 생각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완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점 때문에 2차 조사가 시행되었다. 2차 조사는 1622년 8월부터 다음해 3월 사이에 행해졌고, 교황 대사의 파견단에 의해 진행되었다. 그녀와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조사단은 그녀의 환영에 대해 1차 조사보다 더욱 철저하게 조사했으며, 그녀의 환영이 거짓이었다는 여러 정황과 증언을 포착했다.
1차 조사와 2차 조사가 그녀의 신비주의적인 환영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일치하였으나, 많은 점에서 달랐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1차 조사에서 수녀들이 베네데타의 성흔과 환영에 대해 적극적이고 옹호적으로 증언한 것과는 다르게 2차 조사에서는 그녀가 거짓으로 성흔을 조작하고, 환영 등을 꾸몄다는 증언을 했다는 것이다. 많은 증언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증언은 바로 이 이야기의 새로운 문제였던 여성 동성애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증언이었다. 그 수녀는 바로 베네데타가 환영으로 고통 받자 수녀원 측에서 붙여준 룸메이트, 바르톨로메아 크리벨리였다. 바르톨로메아의 증언은 지금 듣기에도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온다. 여성 간의 동성애는 그렇다 해도, 여성 간의 성관계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녀의 증언을 바탕으로 기록된 내용은 상당히 자세했고 이 때문에 중세 여성의 동성애와 섹슈얼리티가 기록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어느 정도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결국 그녀에 대한 조사는 1623년 11월 끝이 났다. 조사내용은 베네데타의 성흔과 반지는 모두 사라졌고, 악마에게 속았다는 것은 본인이 인정하였다는 것, 그리고 현재는 순종적인 수녀로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진정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올바로 산다고 결심했다하더라도 그녀의 죄질은 당대에는 어떤 것으로도 씻을 수 나쁜 것이었다. 브라운이 찾은 기록 어디에도 판결문이나 교황 대사의 포고는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녀는 목숨만은 부지하여 감옥에서 35년을 복역하고,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베네데타의 죽음은 속인들에게 큰 화젯거리가 되었고, 수 백 년 동안 잊혀오다가 지금에 와서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그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일까. 중세 유럽의 사회적·종교적 규율과 금기에 의해 개인, 특히 여성은 그 정체성과 성적 결정권을 완전히 무시당하였다. 당시에는 인권, 성적 결정권과 같은 근대적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베네데타는 물론이고, 당대 여성들에게 이런 관점을 적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시대에 의해 매몰된 베네데타라는 개인의 삶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중세를 사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베네데타가 바르톨로메아에게 있어서는 동성 간의 성관계와 성행위를 강제한 가해자라고 볼 수 있겠으나, 한편으로는 남성중심적인 시대의 피해자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여성의 목소리를 표출할 수 없는 시대적 분위기에서 그녀는 신비주의적인 환영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역으로 그녀를 어느 것으로도 씻을 수 없는 죄악이 되어 돌아왔다. 성적 결정권을 말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녀는 신비적인 환영을 통해서 인간적 욕망을 해소하려던 것이다.
이 책 『수녀원 스캔들』은 중세 유럽 여성들의 삶, 그리고 시대적·사회적 상황에서 고뇌하고 저항하였으나, 결국은 좌절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이 시대도 중세 유럽 사회와 크게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싶다. 사회적 규율과 금기에 맞서는 한 개인으로서의 모습이 우리 안에서도 있을 것이다. 단순히 책을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잠시라도 우리 주위를 둘러보고 현재를 조망해보는 데에 의미를 주고 있는 이야기임은 분명하다.

제목: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학과: 지질환경과학과, 이름: 김*일, 선정연도: 2015
추천내용: 파견사원으로 일하던 아마리는 혼자 우울한 스물아홉 생일을 맞이한다. 동네 편의점에서 사온 한 조각의 딸기케이크를 놓고 Happy Birthday to me...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항상 혼자였으니 괜찮다’고 자신에게 최면을 걸어보지만, 바닥에 떨어진 딸기를 주워 먹기 위해 애를 쓰던 중 그만 무너지고 만다. 제대로 된 직장도 없고, 애인에게는 버림을, 못생긴데다가 73kg이 넘는 몸을 가진 외톨이. 절망을 느낀 아마리는 죽으려 하지만 그 용기조차 내지를 못한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있던 그녀의 눈에 우연히 들어온 것은 TV속의 라스베이거스. 황홀하고 휘황찬란하게 아름다운 세계에 전율을 느낀 그녀는 살면서 처음으로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다는 간절함과 설레임을 느끼고 자신에게 1년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한다. 스물아홉 살의 마지막 날, 라스베이거스에서 최고로 멋진 순간을 맛본 뒤에 죽기로 결심한 그녀의 무한질주는 오늘부터 시작이다.
나도 아마리와 같은 삶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저 수능을 위해 수능만을 바라보고 달려왔지만 대학생이 되어 1학년의 삶을 살아보니 그저 단조롭고 남들의 눈치를 보며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나의 삶을 살지는 않았던가!
이러한 지루한 삶을 살던 내가 아마리의 매혹적이고 다부진 결심에 매료되어 나에게도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미친 듯이 즐기고, 뜨겁게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봉사를 하며 1년을 불태울 수 있었던, 나의 일상에 새로운 바람이 되어준 책이 아닌가 싶다.
좌절하고 자괴감에 빠진 이들이 책을 읽고 아마리와 같은 의지로 삶을 살아간다면 이전과 달라진 삶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왜냐하면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기에...

제목: 그럼에도 사랑한다.
학과: 독어독문학과, 이름: 김*은, 선정연도: 2015
추천내용: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짐승으로 까지. 두 사람은 바람 앞에 놓인 촛불과 같이 사랑을 줄다리기 하고 있지만 ‘그 사람’을 경험의 유무는 닮지 않았다. 여전히 그러한 점에서는 그를 소유하고자하는 욕심으로 가득차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은 베르테르처럼 그녀는 자결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욕망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 싶다. 그 질투로 불타오르는 욕망이 불안으로 내게 전해져 왔다.
그가 나의 존재의 이유라는 것은 상대의 입장에서 본다면 두려운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모두에게 파멸을 불러온다. 감정에 복받쳐 마음가는대로 하다가는 여럿 피해입는다는 것을 아침드라마를 통해서도 충분히 깨달을 수 있지 않는 가.
그러나 그녀가 죽음을 거론하기까지 나는 때늦은 청춘의 사랑이라고 수긍했다.
책속에 커플들이 많이 등장했지만 그 중에서도 역시 화자의 경우는 나에게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늦은 해에 진정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 사실 우리가 젊은 날의 청춘사랑에 대해서 다루는 이야기는 많고 아름답게 느끼지만 나이 들어서 외도를 한다던지, 자신의 가정 이외의 사랑을 찾는 것은 문란하여 배척시키고 그리고 당연히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얼굴을 찡그리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을 지워버리고 순전히 그녀의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때는 심란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과연 사랑이란 감정은 정해진 시기가 있는 것인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사람이란 동물은 누구라도 사랑을 하게 될 것인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러한 감정을 많이 잃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아니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러지 않으려 애써 감추는 것이다. 이건 불문법이 정한 것인가? 가정의 안정이라는 미명하에 마음이 다른 곳을 향하는 걸 금하는 그런 법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현실의 연애는 어느 정지기간이 있는 것 같다. 결혼상담사, 결혼업체의 광고가 곳곳에 도배하고 난무해 내는 이때에 정말 사랑하여 결혼하는 경우도 드물거니와 가정을 가지게 된 후 자연적으로 마음이 가게 되는 것을 많이 절제해내고 조절하는 것 같다. 그 일환으로 성인식과 같은 총각파티가 그 마음을 잘 대변해주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그런 점에서 화자의 프란츠에 대한 마음은 좀처럼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집착인 것 같지만 인간으로서 그녀의 사랑을 거침없이 표현해내고 있는 것이었다. 유년시절 그녀로서는 사랑이란 없을 것 같이 느껴진 것은 지나친 나의 염려였고 착각이랄 만큼 그에게 깊이 빠져들었다. 특히나 떠나버린 그를 옛 연인이아니라 ‘내 연인’이라고 칭하는 것은 그를 마음에서 여전히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아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곳곳에 보이는 기이한 시대적 상황이라는 게 읽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 분명 보이지 않는 억압과 슬픔, 상처가 화자의 사랑에 영향을 끼쳤으며 나이가 들어 여기서 벗어나게 되기까지 그 방황 속에서 얼마나 고독하였을 까. 상황은 항상 또 다른 ‘나’를 만들어 내기에 나 스스로도 이해할 수가 없다. 주어진 여성성을 받아들이지 않고 반항하는 그녀는 너무나 평범했을 그녀였지만 자신은 평범하지 않다고 믿고 싶고 그렇게 살아갔기에 나는 그녀의 심장이 왜 그제서야 멈출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는지 알 수 있었다. 짐승이란 제목이 괜히 쓰인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본능에 가까운 우리는 짐승이니까 말이다. 자신의 감정에 지극히 몰입해내는 짐승이었다. 고고해서 슬픈 목이 긴 짐승이여. 반대로 우리는 고고한척해도 짐승이라는 것을 떨쳐버릴 수 없다.
본디 사랑을 해서 늘 행복함을 느끼지는 못 하겠지만 화자의 경우는 질투심과 소유욕으로 범벅이 되어 오히려 사랑을 나누면서 느끼는 행복감보다는 두려움이 많이 느껴졌다. 최초로 진실하게 느껴보는 때늦은 환희이자 쾌락감에 절제하지 못하고 브레이크가 고장난 전력질주하는 자동차와 같았다. 나로서는 문란해 보이기까지한 사랑방식이 온연히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자신을 다주어버리고 남는 것은 무엇일까? 과연 본인을 다 버리고 그 대상이 떠나게 될 때에는 나를 다시 찾을 수 있는 것일까? 모든 것을 다해 사랑하지만 실제로 자기가 사랑하게 되는 그 감정에 빠진 느낌을 영위하고자 프란츠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책을 덮을 때 쯤이 되어서야 야만인과 짐승과 분별없는 마지막 경계에서 그녀는 사라져버린 그를 찾아 소리 없이 울부짓는 것 같았다.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녀가 목숨을 걸었던 갈구하던 사랑이 불러온 결과는 과연 비참했다. 그리곤 처음의 그와 동일시 하고자하는 화자의 극단적인 심리 역시 언제까지나 책임감으로, 아니 죄책감으로 변해버린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죽음을 기다리며 속죄하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외에도 나는 지그린데를 보며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는지가 대단해보였다. 그녀에게서 이성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포용력.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다. 어미 같은 마음도 내가 아직 접해볼 순 없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청춘연애를 고대하고 이를 늘 기대해왔지만 현실은 정말 힘들다는 것을 첫 만남을 통해 알게 되어버렸다. 처음 했던 사랑이라 많이 미숙했지만 또 돌이켜보면 그 때는 미숙함 마저 포용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기에 나의 마음에 정성을 들이지 못 하였던 것 같다. 나는 헤어짐을 너무 가벼히 넘길려고 했던 것 같았다. 그 역시도 나의 감정의 하나인데 사랑해주지 못 했다. 누가 요즘에 헤어지고 우느냐, 다른 사람 만나 잊어라 라는 강박적인 주변의 인식에 휘둘러 나에게 충실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렇게 헤어짐이 있듯이 또 언제까지나 달달하지는 않았지만 사랑이라는 주제는 모든 것들이 지나칠 정도로 빠르고 너무나 똑같은 일상들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는 나의 삶에 바늘로 콕콕 쑤셔내는 느낌이 들었다. 차가운 살덩이에 빨간 핏방울이 번지듯 따뜻하고 열정이며 이를 넘어선 환희감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랑을 한다는 게 불안한 고치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나비가 된다는 표현은 이 늦은 봄의 따뜻함과도 잘 어울려 내 마음을 울렸다.
아직도 나는 누군가의 어머니가 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아마 지금과는 무척이나 다를 것 같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또 희생이라는 것이. 설레이는 사랑말고도 누군가를 보살펴준다는 것 역시 완연한 사랑이 아닐까. 다시 순수한 사랑을 언제도 포기한 적은 없다. 분명 지쳐버린 마음은 있지만 사람 마음이란게 새로운 사랑을 보면 언제나 설레이게 되있는 것 같다. 언제나 두근대고 피어나는 꽃송이를 보고 감탄을 연발하고 상기된 두 볼을 띄게 되는 건 모든 꼬마 아이들을 비롯해서 우리 어르신들까지 다 같이 느낀다. 때늦은 사랑 역시나 똑같았다. 시기, 질투, 순정 이 모든 것이 공존했다. 만남을 가지고도 잊어버린다는 것은 참으로 슬프다. 며칠 전 한 프로그램에서 배우 엄앵란씨가 하셨던 말씀이 있다. 사랑은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 자녀들의 어머니로서, 가정을 지켜내지 못 했던 남자의 한 부인으로서 삶의 포용력이 느껴졌다. 또 다른 깊은 사랑이 살아 숨쉬는 것 같았다. 언젠가 나도 이 모든 것을 다하는 날이 오겠지.
사랑하는 방식은 다양하기에 누군가 나에게 사랑을 해보았냐고 물어본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다. 사랑을 한다는 건 평소보지 못 했던 내 모습의 변화를 마주해야하는 것이고,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기복이 너무 심해서 하루 종일 설레이고 행복하다가도 힘들고, 슬프고 불안하고 아팠다. 금방 지쳐갔다. 잔잔하게 흘러가던 호숫가에 빗물이 일어 파도가 일어나는 것 같이 내 사랑은 그랬다. 봄 햇살과 같이 따뜻하고 꽃들이 싱싱하게 이슬을 머금고 자라나는 것은 아주 순간이었다. 쿨하지 못해서 미안할 것도 없고 마음 가는 대로 내가 놔둘 수 있다면 얼마나 자유로울 까. 잘잘못을 떠나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불문율을 어긴 것에서 떠나서 사랑한다는 자유만은 보살펴주고 싶다.

제목: 무릎을 치게 만드는 경제학 이야기
학과: 정보컴퓨터공학부, 이름: 강*우, 선정연도: 2015
추천내용: 이 책 제목은 ‘승자의 저주’이다. 이 단어를 처음 들어보는 사람에게는 제목부터가 조금 아리송할 것이다. ‘승자인데도 저주를 받는단 말인가?’하고 의아할 수도 있을 것이고, ‘승자가 관대하게 행동하지 못하고, 승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패자에게 저주를 내리는 현상인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이 제목처럼 뭔가 모순되어 보이는 주제도 읽고 나면 무릎을 치게 만든다. 아리송하고 재미있다.
보통, 기존 경제학의 기본 가정 중 하나가 경제활동의 주체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항상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만은 않다. 감정에 휘둘리고, 착각하기도 하며 종종 틀린 선택도 한다. 그러므로, 현실에서는 인간을 이성적이고 최선의 선택을 한다고 보는 관점으로 설명하기 힘든 현상이 생긴다. 이 책은 언듯 보기에 그런 경제학적 고정관념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제학 이야기를 다룬다.
예를 들면 ‘승자의 저주’는 경쟁에서는 이겼으나 이를 위해 과도하게 비용을 치러 큰 후유증을 겪거나 위험에 빠지는 것을 뜻한다. 또, 여러 경매 방식-영국식, 네덜란드 식 등-에서 흥미롭게 생각해볼 수 있는 거리들이나 심리적인 영향 같은 것을 설명하기도 했다. 가치 선택을 할 때 각종 시(時)점에 따라 사람들의 기대 가치나 기준이 바뀌는 현상도 흥미롭다. 나만 이러나 싶다고 생각하기 쉬울법하지만 많은 사람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결정방식도 다룬다.
이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교훈 또한 있다. 사람은 이성적이지만은 않고 감정이나 다른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러니 자신의 결정 또한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또, 해 보고 후회하는 것이 해 보지 않고 아쉬워하는 것보다 훨씬 심리적인 충격이 덜 간 다는 사실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어, 너무 고민만 하지 말고 도전하라는 자극도 받게 되었다.
이렇게 현실세계의 흥미 있는 경제학적 현상을 다루면서도 ‘흥미위주에 빠져 깊이가 지나치게 얕아지는 오류’을 범하지 않았다. 다양한 실험사례와 그래프 등을 적절히 활용하였다. 아이들에게는 다소 딱딱하거나 어려운 책일 수도 있지만 대학생에게 권하기에는 좋은 도서인 것 같다.
제목: 소름 돋는 반전....... 몰아치는 추리
학과: 정보컴퓨터공학과, 이름: 이*우, 선정연도: 2015
추천내용: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필자는 몇 년 전 까지만 하더라도, 국내와 외국은 주로 서양 추리소설을 자주 읽었습니다. 허세 섞인 독서 취향이었지만, 문학적 감성보다 호기심이나 취미가 독서의 주목적이었기에 세부적인 감정묘사보다 주로 전개 쪽에 초점을 맞추어 책을 고른 결과였습니다. 일본 추리소설은 뭐랄까....... 감정찌꺼기 같은 걸 무작위로 섞어 놓고 작품이라고 떠들어 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허나, 몇 가지 작품을 접하고 작가 특유의 필력에 소름이 돋아 애독하는 작가 중 한명이 쓴 역작이 바로 이 책 [신의 로직, 인간의 매직]입니다. 먼저 이 작가의 다른 작품 ‘일곱 번 죽은 남자’를 읽고 다른 작품을 통하여 전통 판타지와는 다른 허구적 소재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또한 제가 좋아하는 작가 댄 브라운의 작품과 히가시고 게이고의 ‘갈릴레오 시리즈’를 읽으며 과학적 논리를 사용한 전개방식을 가장 좋아합니다. 또 다른 필자가 좋아하는 전개 방식은 바로 ‘서술 트릭’입니다. 추리소설에 자주 사용되는 전개 방식으로 이런 경우의 이야기는 대개 후반 50페이지쯤에 가서야 몰아치며 무심코 지나친 추리조각들이 하나로 맞춰져 놀라운 결말을 구성해 냅니다. 이 소설은 그야말로 필자의 취향을 그대로 담아낸 소설이라 생각합니다. 처음 책을 집은 건, 제목에서 느껴지는 뉘앙스가 뭔가 SF적 소재가 섞여 있을 것 같아 기대하며 읽었습니다. 허나 중후반 까지 일어나는 사건과 눈에 보이는 단서들이 난잡하게 섞여, ‘대충 그럴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며 읽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뒤통수를 세게 한 대 후려 맞은 듯 한 결말이었습니다. 마지막 20페이지 쯤 가서야 흘려 넘긴 단서들과 문장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됩니다. 이런 류의 작품은 대개 범인 따위보다, 그 과정이 담아내는 방식이 작품의 질을 결정합니다. 실제로 필자는 결말에 도달하기 전에 범인을 알아냈지만, ‘서술트릭’에 꼼짝없이 낚였습니다. 이 작품의 반전과 결말은 차마 문장으로 다 형용할 수 없습니다. 아니, 형용할 수 없다기보다는 ‘읽어봐라.’한 마디면 족합니다. 특히 소재로 등장하는 심리학에 대해 약간이나마 조예가 있으신 분들이 읽어보면 좋을 듯합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결말에 여운에 잠기면 ‘신의 로직, 인간의 매직’이라는 마치 말장난 같은 제목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제 개인적인 소견으로 이 작가의 작품 중 국내에 출간된 작품은 전부 읽어 보았지만, 아마 제가 읽은 추리소설들을 통틀어 가장 [서술력]이 뛰어 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제목: 안드로이드 프로그래밍의 줄기를 잡아주는 책
학과: 정보컴퓨터공학부, 이름: 강*우, 선정연도: 2015
추천내용: 사실 이 책을 추천하면서 고민하긴 했다. 지난 추천 도서 선정 목록을 보니 일반인들이 두루 읽을 수 있는 일반서, 취미나 흥미로 읽을 수 있는 책이 다수였다. 그래서 나도 이 책보다 그런 책을 한권 더 추천해볼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프로그래밍 서적을 추천하지 말라고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추천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그러니 근래에 읽은 책 중 가장 아끼고 유익하게 본 책 중 하나인 이 책을 과감히 추천해본다. 이 책은 역시 가벼운 흥미로 보는 책보다는 공부를 위한 책에 가깝다. 기껏 추천 글 썼다가 큰 보람 없이 묻히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책이다.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현대사회는 더욱 유비쿼터스에 다가갔다. 옛날에는 컴퓨터에서나 가능하던 작업도 이제는 상당수 스마트 폰으로 대체할 수 있다.
스마트폰이 널리 퍼지면서, 여러 스마트폰 관련 소프트웨어 시장도 급속도로,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각종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구현하고, 복지를 실현하고, 또 단기간에 큰돈을 번 사람들도 많다. 요즘 매우 많은 사람들은 스마트폰과 관련된 관심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 또한 창업을 목표로 하는 사람 중 스마트폰 앱 개발을 하려 하는 사람도 매우 많다. 부산대학교에도 최근 앱 개발 동아리나 앱 개발 창업 동아리 같은 단체가 많으며, 부산대 커뮤니티 상에서도 컴퓨터전공이 아니라도 앱 개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스마트폰 앱 개발, 그 중심에 안드로이드가 있다. 안드로이드는 현대 스마트폰 대다수에 들어간 플랫폼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절대다수에 가깝다. 즉, 스마트폰과 관련해서 앱을 만들려면 거의 무조건 안드로이드 프로그래밍 지식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안드로이드 앱을 개발하고 싶은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강력히 권한다. 나도 안드로이드 프로그래밍에 큰 흥미가 있어 여러 개발 방법을 모색하던 중 이 책을 찾게 되었다.
이 책은 총 두 권으로 구성된, 총 이천 쪽에 육박하는 두꺼운 책이다. 안드로이드 프로그래밍과 관련해서, 얇고 설명이 부족하거나 아쉬운 책도 많다. 이제 쓰이지 않거나 해서 효과를 제대로 기대하기 어려운 기법을 설명해 놓은 책도 있다. 심지어 내가 만들어도 이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책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풍부한 분량으로, 자세하게 안드로이드 프로그래밍을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 개발 도구를 설치하는 과정부터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예제 코드도 다양하고 잘 짜여있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기능을 익히는 것 뿐 아니라 프로그래밍 방식과 프로그래머가 숙지할 것, 자세 같은 것도 배울 수 있었다. 책 구성도 체계적이고 필요한 내용을 찾기도 쉽게 되어있어, 후에 사전식으로 참고하기도 좋은 책이다. 안드로이드 프로그래밍의 기본을 확실히 잡아주는, 교과서 같은 책이다.
나도 안드로이드 앱을 제작할 때마다 이 책을 옆에 두고 많은 도움을 받는다. 비록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보단 공부를 위한 책이긴 하지만, 안드로이드 프로그래밍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도 추천할 수 있는 기본서 같은 책이고, 앱 관련하여 관심이 팽배한 요즘 추천할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제목: 성공적인 리더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학과: 사회학과, 이름: 송*윤, 선정연도: 2015
추천내용: 내가 알렉스 퍼거슨 (Alexander Chapman Ferguson)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우리 나이 때의 많은 축구팬들이 그렇듯이 박지성 선수가 영국의 명문 축구 클럽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Manchester United)에 입단하고 나서부터이다. 그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우리나라 선수가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조차 못했던 세계적인 선수들이 모여 있던 축구클럽이었고 박지성 선수가 입단한다고 하니 박지성 선수를 지도하게 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이 누구인지 저절로 눈길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알렉스 퍼거슨 – 나의 이야기는 무려 27년 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을 맡았으며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 프리미어리그 13회 우승 및 수많은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린 맨유를 성공적인 축구클럽으로 만들어낸 이 시대의 진정한 리더, 알렉스 퍼거슨의 이야기이다.
과연 퍼거슨은 어떻게 성공적인 리더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알렉스 퍼거슨이 맨유(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성공적인 리더로 거듭날 수 있었던 가장 첫 번째는 자기 자신과 가족과 친구, 동료들이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다 자신을 다스리고 집안을 가지런하게 해야 나라와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는 의미이다. 퍼거슨은 우선 축구감독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축구 이외에도 다른 탈출구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축구는 인생과 같다. 잘 풀릴 때는 한없이 잘 풀리지만 잘 풀리지 않을 때는 한 없이 꼬이는 것이 바로 축구이다. 퍼거슨은 축구가 풀리지 않을 때에는 자신의 취미인 경마나 와인 등에 열중했다. 이런 취미를 바탕으로 기분을 새롭게 하고 다시 축구에 열중하면 어느새 문제는 사소한 것이 되어버리고 해결책이 나타난다. 다음으로 퍼거슨의 성공의 원천은 가족이다. 비록 스코틀랜드 국가대표를 지낸 유명한 축구선수였지만 은퇴하고 갈 곳 없던 그는 영국의 글래스고에서 4년 간 펍(Pub)을 운영했다. 그러나 그런 퍼거슨에게 퍼거슨의 아내 캐시는 항상 퍼거슨의 편이 되어주었다. 그가 고민할 때 항상 용기를 주었고 조언을 건내 주었으며 그가 축구에 지쳐서 첫 번째 은퇴를 결심했을 때, 축구계로 다시 돌아오게 된 것도 그녀 덕분이었다. 그녀의 든든한 내조 덕분에 퍼거슨은 집안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축구에만 몰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퍼거슨이 결국 은퇴하게 된 것 역시도 언니를 잃은 아내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으니 아내 캐시는 그의 시작과 끝을 같이한 평생의 동반자였던 것이다. 글래스고에서 일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만나고 있는 소위 ‘불알친구’들도 그의 성공에서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친구들은 항상 그에게 축구를 떠난 해방구를 마련하고 그에게 용기를 불어놓아 주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맨유 동료들, 맨유의 데이비드 길 사장이나 수석코치 케이로스는 그의 든든한 동반자로 그가 무슨 일을 하든지 그의 의견을 존중하고 기꺼이 따라주었다. 이러한 퍼거슨의 취미와 주위 사람들은 맨유에서의 성공적인 감독생활의 배경이 되었다.
퍼거슨의 리더십의 두 번째 성공요인은 ‘라이벌’이다. 그가 맨유라는 거대한 축구클럽의 감독을 하면서 수많은 다른 축구클럽 감독들의 도전을 받았다. 대표적인 감독이 아스날의 아르센 웽거(Arsene Wenger)와 첼시의 조세 무리뉴((Jose Mourinho) 감독이다. 또한 다른 라이벌로 거대한 축구클럽인 FC바르셀로나와 지역 라이벌인 맨체스터 시티를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퍼거슨과 업치락 뒤치락하는 우승경쟁을 벌이면서 퍼거슨에게 의욕을 불러일으켰고 퍼거슨과 맨유가 우승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퍼거슨이 단지 이들을 라이벌로만 생각해 배척한 것만 아니다. 우승경쟁을 벌이면서 퍼거슨은 라이벌들은 동등한 경쟁자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정정당당하게 이기려고 했으며 그들에게 패배했을 때 자신을 반성하며 앞으로 나아갈 것을 다짐했다. 바르셀로나에게 챔피언스리그에서 대패했을 때 퍼거슨은 다짐한다. ‘다음시즌에는 바르셀로나를 대패시키는 것을 벤치에서 지켜보겠다.’퍼거슨에게 라이벌들이 있었기에 퍼거슨은 축구역사상 길이 남을만한 명장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퍼거슨의 성공요인은 끊임없는 변혁이다. 성공을 거둔 자는 자신의 성공에 집착하게 되며 안주한다. 그러나 퍼거슨은 달랐다. 퍼거슨이 소위 92세대로 불리는 선수들과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를 제패했을 때에는 적수가 없어보였다. 그러나 92세대 선수들은 점점 나이가 들어가기 시작하였고 맨유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퍼거슨은 근 10여년 간 같이한 선수들을 과감히 내치고 새롭게 리빌딩을 시작한다. 리빌딩에는 많은 어려움들과 세간에서의 비판이 가득했지만 퍼거슨은 꿋꿋하게 리빌딩을 지속했고 결국 맨유가 웨인 루니(Wayne Rooney), 크리스티아누 호날두(Cristiano Ronaldo)를 주축으로 다시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과연 퍼거슨이 과거의 성공에 안주했다면 맨유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의 과감한 결단이 결국 지금의 맨유라는 거대한 클럽을 만들게 한 원천이 되었다.
퍼거슨의 이야기는 비단 축구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언제나 리더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성공적인 리더가 되고 싶어한다. 누구나 리더는 될 수 있다. 그러나 성공적인 리더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는 법이다. 맨유에서 수많은 성공을 거둔 퍼거슨의 이야기는 단지 축구를 좋아하는 이들 뿐 아니라 성공적인 리더가 되고 싶어하는 우리에게도 큰 시사점을 안겨줄 만한 책이다.

제목: 미국 공교육의 현장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
학과: 사학과, 이름: 박*옥, 선정연도: 2015
추천내용: <야만적 불평등>은 미국의 공교육 현실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이다. 미국 중학생 중에는 구구단을 못 외는 학생이 많고, 미국 고등학생이 인수분해를 할 줄 알면 학교에서 수학천재 대접을 받는다는 풍문이 퍼져 있는데, 미국의 많은 공립학교에서는 이런 현상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사립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하지 못해서, 혹은 사립학교에 입학했어도 학비를 낼 돈이 없어서, 이른바 명문 사립학교에 가지 못하고 공립학교에서 공부하는 미국 학생들이 많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은 사립학교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런 현실은, 고스란히 사회적 학력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 <야만적 불평등>은 이 현실을 직시하면서, 이런 열악한 미국 공교육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와 그 여파를 낱낱이 해부한다.
흔히 사립학교의 사회적 문제점이라고 한다면, 비싼 학비만을 떠올리고는 한다. 비싼 학비를 감당할 수 재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합격한 학생도 사립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가난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제도가 있다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기 힘들고, 재학 중에 장학금 선정조건을 우선 충족시켜야만 하는 가난한 학생과, 그런 걱정 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는 부유한 집안의 자제가 과연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야만적 불평등>은 미국식으로 교육제도가 비싼 사립학교-싼 공립학교로 이원화되었을 경우, 학비가 비싸다는 것보다 훨씬 근본적인 문제 요인이 따로 있다는 것을 통렬하게 지적한다. 사립학교에서는 입학생에게 다양한 경험과 풍부한 정보력을 갖출 것을 요구하는데, 부유하지 않은 가정의 학생은 이런 요소와는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 교육환경에서 가난한 집 아이는 설사 잠재력이 있다고 해도, 그 잠재력을 꽃피울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며, 그런 환경을 만나기도 힘들다.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싼 공립학교에 다니면, 비싼 사립학교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해야만 한다. 이런 과정이 계속되면, 공립학교 학생들은 사립학교에 다니는 부유한 집 출신 학생들과는 점차 격리되는 처지가 되고, 종국에는 완전히 분리된 세계 안에 놓이게 된다.
<야만적 불평등>은 미국 공립학교의 교육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정면으로 직시하며 세세하게 보여준다. 교과서는 낡았고 그나마 숫자도 부족하며, 실험 장비는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서 교과서에서 다루는 실험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 사립학교에서처럼 예술 및 체육 동아리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체험하는 것은 꿈도 못 꾼다. 학교 건물이 낡고 더러운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런 환경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공립학교 환경에서 공부해 보았자 어차피 사립학교 학생들을 이길 수 없다고 체념하게 되며, 이런 분위기는 미국 공립학교의 교육환경을 더욱 나쁘게 만드는 악순환을 낳는다. 작게는 가난하지만 향학열에 넘치는 학생이 공부할 의욕을 꺾게 만들고, 크게는 교육예산이 있다면 ‘평균보다 우수한’ 학생에게 우선 사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사립학교 위주로 정부 지원이 투입되는 상황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서, 공립학교의 환경은 더욱 열악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세상에는 돈이 있어도 할 수 없는 일은 일을지라도, 돈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법이고, 충분한 준비물과 좋은 환경이 갖추어져야 할 교육 부문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환경에서, 비싼 사립학교 등 사교육 기관에 들어간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은, 학교에 입학하고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미 격차가 벌어지게 된다. 미국의 공립중학교와 공립고등학교에서는 자퇴율이 졸업률을 웃도는 경우가 많다. 그 쪽의 공립학교 졸업장을 갖고 있어 보았자, 진학이나 취직에 도움 될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인데, 이런 풍조는 교육 양극화를 더욱 가속시키고 있다. 비싼 사립학교 교육과 싼 공립학교 교육으로 나뉘는 것으로도 모자라, 비싼 사립학교를 졸업한 계층과 공립학교조차 제대로 졸업하지 않은 계층으로 나뉘는 것이다. 그런데 공립학교를 졸업한들 마땅한 진로가 없다는 것은, 비단 체념에서 온 선입견일뿐만 아니라, 각종 통계와 선배 세대의 실제 체험으로 증명되는 엄연한 현실이기도 하다. <야만적 불평등>에서는 한 교사가 안타까움과 냉소를 섞어, 공립학교에서는 사립학교 출신의 고위직 아래에서 하급 실무를 수행하는 교육을 시키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최선인 상황이 되어버렸다고 한탄하는 대목이 있는데,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구절이다.
미국 정부는 공교육의 열악한 실태를 타개하기 위해, 사립학교 형식으로 운용되는 공교육기관을 만든다는 해결책을 내놓았다. 일명 마그넷 스쿨이라고 불리는 공립학교로서, 공교육 학생 중에서 우수한 학생을 따로 뽑아 교육시킨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린 학생의 잠재력을 평가한다는 것은 시험 성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고, 마그넷 스쿨은 사립학교의 폐단을 규모는 작지만 그대로 답습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시험 제도 등에 대해 정보력을 갖춘 학생이 압도적으로 유리하고, 학생의 이 정보력은 부모 세대의 재력과 직결되는 것이다. 결국 부유하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난 학생에게는 부유한 집안 출신 학생보다 열악한 환경과 차등적인 기회가 주어지며, 그 격차가 학생 본인의 실력에 따른 것처럼 통용된다는 현실 자체는 개선하지 못하고 있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개인이 고군분투할 수 있고, 개인이 노력해서 기적 같은 성공 드라마를 일구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야만적 불평등>의 저자는, 개인의 성공 신화를 떠받드는 것이, 시스템의 폐해를 은폐하는 처사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공정한 시스템 때문에 피해본 사람들을, '노력하지 않는 사람'으로 매도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런 움직임은 지금도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고 있다. 어디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아이를 학교에서부터 '나누고', 그 구분을 벗어날 기회를 사실상 박탈하는 상황은 정말이지 '야만적 불평등'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적어도, 일부 사립학교에 집중적으로 교육예산을 지원하고 공립학교에는 '열심히 공부하면 됩니다!'라는 구호로만 일관하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야만적 불평등>은 미국 공립학교의 현실을 다루는 책이자, 돈 있는 집안 자제와 돈 없는 집안 자제를 서로 다른 환경에서 차별대우하면서 교육시키는 것이, 얼마나 차별적이고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에 대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경제력에 따라 다른 환경이 주어지는 것이 차별대우로 이어질뿐만 아니라, 능력에 따라 차별하는 것이라는 프레임까지 덧씌우는 것이, 과연 어떤 사태를 낳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이것은 비단 비단 교육제도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다른 분야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야만적 불평등>은 미국 공립학교에 대한 책인 동시에, 기회의 차등이 곧 실력의 유무라고 규정하는 움직임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서 대대적으로 공표하는 책이기도 하다.

제목: 약을 끊어야 병이 낫는다
학과: 식품영양학과, 이름: 이*영, 선정연도: 2015
추천내용: 제가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와 제 친구들은 진로를 위한 단체 상담을 받고 있었습니다. 명확한 꿈 없이 공부만 닥치는 대로 하던 저는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신약개발연구원’이란 꿈을 만들었고, 그것은 저의 터닝포인트였습니다. 정말 막연한 꿈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구체화되어갔고, 지금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약학에 대한 관심으로 고등학교에서 이과를 택하게 되었고, 대학에 온 지금도 시간이 날 때마다 약학신문이나 책을 찾아보곤 합니다. 지금 제가 추천드리고 있는 이 책도 우연히 대학도서관에서 발견한 책입니다. 처음엔 신약개발에 대한 책을 찾으러 간 것인데, 책을 찾는 도중 특이한 제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약을 끊어야 병이 낫는다’. 응? 처음엔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병이 있어서 약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약이 있어서 병이 있다니. 그럼 약을 먹지 않아도 병을 치료할 수 있단 말인가? 그동안 ‘신약을 개발하여 아픈 사람들을 돕겠다’는 목표를 세워왔던 저에게는 적잖은 충격이었습니다. 만약 이 책의 제목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제가 하려는 일이 오히려 인류를 약하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 책을 반드시 읽고 약과 질병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펴내기 전 많은 연구를 통해 의학계의 통념을 뒤집는 ‘과립구설’을 발표하였고, 인간의 몸은 스스로의 면역만으로도 여러 질병을 이겨내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을 역설했습니다. 이 책도 ‘과립구설‘의 연장으로 보입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우리 몸은 약을 먹지 않고도 충분히 병에 걸리지 않거나 걸려도 쉽게 치료할 수 있다. 둘째, 약을 먹어서 병을 더 치료하기가 어렵다. 이 책을 펴냄으로써 저자가 얻고자 하는 최대 목표는 약에게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혹 이 병이 걸리면 이 약, 저 병에 걸리면 저 약. 이렇게 정형화된 약처방을 하고 계십니까? 의심 없이 무조건 약을 먹는 대신, 우리 몸이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 건 어떨까요? 저자가 약 때문에 병이 더 심해진다고 주장하는 근거를 질병의 근원이 스트레스이며 약의 장기 혹은 남용이 신체에 스트레스를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약 내에 포함되어 있는 성분들이 신체에 작용하여 몸을 치유하는 기전을 돕는다면, 그 약을 장기간 복용할 시 그 기전이 스스로 활성화될 능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원래는 약을 먹지 않고도 스스로 그러나 천천히 활성화시킬 수 있었지만, 빠른 시간 내에 효과를 보기 위해 약을 복용하게 됨으로써 그 반응을 방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항생제 처방에 주의하여야 하는데, 항생제를 장기 복용하게 되면 장 내 유익한 균이 죽고 유해한 균이 군집을 이루어 장 내 균다양성을 감소시킵니다. 살아남은 유해균은 계속된 항생제 처방에 내성을 가지게 되고 슈퍼박테리아로 변질되어 장 내 환경을 더욱 파괴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 몸을 관리하고 있는 호르몬의 90%가 장 내엣 만들어져 뇌로 운반되기 때문에 장 내 세균숲을 잘 관리해주는 것이 건강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한 예로, 유산균의 분포가 적절한 사람의 장은 유산균이 적은 사람보다 기억력, 소화 상태가 좋으며 치매 예방에도 좋다는 것이 연구 결과로 발표되었다고 합니다.
전반적으로 이 책의 바탕이 되고 있는 신념은 ‘인간의 몸은 병을 스스로 치료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시고 약에게 의존하는 대신 식습관을 개선하고 몸을 따뜻하게 하는 등 몸의 면역력을 키우시는 데에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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