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살만한 책을 고르다 홀린 듯 책장을 넘겼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알라딘같은 웹사이트를 이용해서 북쇼핑을 하지 않아서 서점에서 앞부분을 읽어보고 구매를 결정했는데, 이 책은 아무 생각 없이 선 채로 반절을 읽어내렸다. 판타지 소설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인데 동양 판타지는 오랜만이어서 더 그랬고, 책 자체가 가독성이 좋고 쉽게 읽히는 편이었다. 동양의 것이라고는 했지만, 무협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고대 한국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우리나라의 신화나 전설을 이용한 환상적인 이야기. 그만큼 우리의 말과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분위기 자체가 독특한 고유성을 가지는 것 같았다.
천인, 상인, 비인이라는 세 종족으로 분화한 인간과 세 종족에게 각각 세 개씩 주어진 붓. 주인공 ‘갈’은 아홉 감(신)이 만든 아홉 개의 붓을 찾아 여정을 떠난다. 꼭 게임의 퀘스트를 해나가듯이, 붓을 가진 이들이 하나씩 모여드는 모습은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판타지이지만 주인공이 전능한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니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대화하고 타협하며 화합의 장을 만드는 스토리. 그림을 그리는, 혹은 소리를 내는. 나무를 깎거나 실을 뜨는 것들이 모두 붓이라는 설정. 어떤 요소도 흔하거나 지루한 것이 없었다. 양산형 판타지 소설에 질린 사람이라면 한 번쯤 보아도 좋지 않을까, 싶다.
-
아홉 개의 붓 출판 문학수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