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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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자료유형
국내단행본
서명/책임사항
군주론 /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 변용란 옮김.
기타서명
번역표제 : (The) prince
원서명
(Il) principe
발행사항
서울 : 아름다운날 , 2009.
형태사항
238 p. : 삽도, 연보 ; 21 cm.
일반주기
니콜로 마키아벨리 연보와 시대적 배경 : p.234-238
부록: 관련 인물 및 가문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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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88989354994
청구기호
320.1 M149p한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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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등 관련정보
독후감 공모전 우수작
제목: 군주론
학과: 간호학과, 이름: 이*진, 선정연도: 2013
내용: 대학에 입학하면 고등학교의 커리큘럼보다 자유로운 시간이 많아 더 많은 책들을 읽고 다양하고 깊이 있는 사고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대학에 들어오니 책을 읽기는커녕 대학교에 적응하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놀다 보니 오히려 고등학교 문학시간 보다 책 읽을 기회는 적었다. 게다가 이과계열이었던 나는‘군주론'이 어떤 내용이며‘마키아벨리즘'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교양 과목 중‘고전읽기와 토론’의 레포트 주제로 군주론이주어져 군주론을 읽게 되었다.
책의 시작은 군주론의 저자인 마키아벨리에게서 파생된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옮긴이의 설명을 담고 있었다. 마키아벨리즘은 흔히‘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라는 뜻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도덕적, 사회적 사상과 벗어난다는 이유로 비판적인 용도로 자주 쓰이곤 한다. 하지만 그 당시 마키아벨리가 살고 있던 상황을 고려하면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마키아벨리즘의 의미는 왜곡되고 편향된 경향이 있다. 내가 읽은 책은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군주론을 처음 접하는 나는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보편적인 거부반응보다는 그 단어가 왜 나오게 되었는지 당시 상황에서는 무슨 의미로 쓰였는지를 알아보고 싶었다.
‘군주론’은 한마디로‘군주는 어떻게 하면 권력을 획득하고 또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으로‘정치란 도덕과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당대 르네상스 시대의 지배계층이었던 교황과 성직자들의 권위를 위협하는 혁명적인 사상이었고 1559년 교황청에 의해 선량한 기독교인에게는 적당치 않은 ‘악마의 사상’이라며 금서조치를 당했다. 그렇다면 바티칸의 금서였던 군주론이 발간 이후 지금까지 500여 년간 전 세계 사람들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마키아벨리와 그의 저서 ‘군주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이탈리 아의 상황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군사적 상황으로 이탈리아는 내 전과 비슷한 혼란의 상황을 겪고 있었다. 밀라노와 베니스, 피렌체, 교황국, 나폴 리왕국의 5개 나라로 분열되어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랑스와 신성 로마제국, 스페인과 같은 강력한 나라들의 침입도 있었다.
두 번째, 정치적 상황으로 중세 유럽의 사회 질서는 교회의 권위에 의존하는 기독교 왕국 사상과 봉건제도로 이루어져 있었다. 기독교 왕국이란 교회와 그 우두머리인 교황이 유럽 전체를 다스린다는 사상이고, 봉건제도는 군주와 신하가 서로 충성 계약을 맺는 정치제도이다. 군주는 신하들에게 영토를 떼어주어 영주가 되게하고 충선을 맹세 받는다. 하지만 영주들은 스스로 군대를 조직하고, 재판하고, 세금을 거두며 자기 땅을 왕처럼 마음대로 통치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주들은 힘이 없었다. 교회와 교황이 도덕적 영향력을 넘어 정치권력까지 손에 넣으면서 무자비하게 권력을 휘둘렀고 교황과 교회의 타락에 사람들은 더 이상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다.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의심이 일어나면서 자기 민족에 대한 의식이 싹트게 되었다. 군주들은 이러한 민심의 변화를 읽어내고 민족성을 내세우며 자신의 영향력을 키워 갔다.
세 번째, 문화적 상황으로 당시는 후기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고 있었다. 도시와 상공업의 발달로 관심의 중심이 인간에게로 이동함에 따라 고전의 부활도 이어졌다. 그리스 철학과 로마의 철학ㆍ문화가 재 발굴되고, 고전 예술과 문학, 철학이 부활했다. 특히 마키아벨리의 저서들에서는 정치의 부활이 많이 목격된다. 그 예로 5개 나라로 분열되어 불안한 정세가 계속됐던 이탈리아의 상황에서 과거의 좋았던 시기를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것과 로마이야기가 자주 나오는 것이 있다.
네 번째, 사회적 상황으로 고대의 문물을 부활시킨 이 시기에 사람들의 삶은 중세적인 방식에서 근대적인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경제 부흥과 인구 증가가 그 원인이었는데 수도원과 농토에서 도시로 삶의 중요 공간이 바뀌고, 자급자족에 의존하던 경제 구조는 초과 생산으로 변모했다. 금욕과 종교적인 생활을 중시했던 사람들이 세속 문화를 발전시켰고, 국가와 조국의 개념이 크게 자리 잡았다. 종교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이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심지어 교황의 영토 침입에 맞서 전쟁까지도 불사했던 피렌체의 역사적 사건도 있을 정도로 중세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처럼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기의 피렌체는 근대 사회로 변화하고 있었다.
이처럼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기에 피렌체는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혼란과 변화의 진통을 겪고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부패가 심했고 곳곳에 사악함과 이기주의를 목격할 수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퇴폐한 나라에서 선한 것을 찾으려는 노력은 헛되다고 생각했고 이탈리아가 이렇게 부패한 이유는 국가의 통일을 유지하는 한 명의 절대 군주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그는 구세주와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 이탈리아를 통일하고 강력한 나라를 만들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키아벨리가‘군주론’에서 주목한 이들은 정치적 분열과 대립, 외세의 개입 속에서도 이탈리아 각지에서 등장하는 중세 봉건시대에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유형의 지도자들이었다. 이들은 전통적인 세습군주와는 달리 오로지 자신의 재능 에 의해 권좌에 오른 자들이며, 위험을 감수하면서라도 과감하고 혁신적 방식으로 새로운 통치 질서를 수립하려던 자들이었다. 그리하여 마키아벨리는 이 새로운 유형의 지배자에게는 무엇보다도 이해관계에 대한 냉철한 타산과 현실의식이 필요하며 때에 따라서는 탈법과 악행도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마키아벨리는 행운이나 우연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 그들을 보면서 정치란 당위가 아니라 현실이며, 종교와 도덕과는 분리된 영역이라 생각했다.
많은 사상가들이 이상적인 군주에 대해 말했지만 현실은 이상과 너무나 달랐다. 마키아벨리는 '정치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고 실제적인 현상을 다루어야 한다.'는 현실주의적 정치 이념을 가지고 있었고 군주가 현실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이상만을 좇는다면 결국 망하고 말 것이라 생각했다. 때문에 군주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악당이 되는 법을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주변국들의 역사적 사건이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 책에서 좋은 군주가 되기 위한 행동 덕목, 통치 전략 등을 제시하고 있다. '군주론'을 이해하는 데 특히 도움이 되는 마키아벨리의 세 가지 인생경험이 있다.
첫 번째는 피사 정복 실패의 경험이다. 당시 피사는 피렌체가 지배하고 있던 지 역이었는데 1495년 피사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4년의 전쟁 끝에 피렌체가 피사를 포위했고 피사는 거의 항복할 시점이었다. 그런데 피렌체군 대장이 갑자기 퇴각 명령을 내렸다. 다 잡은 고기를 일부러 놓아 준 셈이었다. 결국 그는 처형됐지만 왜 그가 점령을 앞두고 갑자기 퇴각을 명령했는지는 의견이 분분했다. 마키아벨리는 그가 용병이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다. 용병은 돈을 받고 전쟁을 대신하는 군인으로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을 고용한 사람을 팔아넘길 수도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 사건으로 자국 군대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두 번째는 당시 외교관으로 활동했던 마키아벨리가 프랑스에서 당했던 수모이다. 피렌체는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 중 가장 강했지만 국제 정치 무대에서는 전혀 힘이 없었다. 그가 외교관으로 4차례나 프랑스를 방문했지만 그때마다 그는 모욕과 무시를 당했다. 그가 이를 통해 느낀 점은 군사력도 중요하지만 경제력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다. 경제력이 있어야 군사력을 키울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체사레 보르자라는 사람과의 만남이다. 그는 아버지의 도움을 등에 업고 이탈리아 동쪽과 중부 지역의 영토들을 정복하기 시작했고 중부 이탈리아 지역에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계획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마키아벨리가 체사레 보르자가 하는 행동을 잘 지켜보니 그는 이 계획을 사자가 지니는 힘과 여우가 지니고 있는 약사빠름을 적절하게 배합하면서 실행에 옮겼다. 즉, 적 앞에서 약속을 하고, 돌아서서는 자신이 했던 약속을 저버리고 그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체사레 보르자는 마키아벨리의 정치이념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보르자를 표본으로 삼아 위대한 군주의 모습을 그려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의 7장에서 체사레 보르자를 '신생 군주의 모범'으로, 나아가 미래 이탈리아의 강력한 새로운 군주로서 제시하고 있다. 그는 체사레 보르자의 행위를 보면서 국가는 '정치적 도덕'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했다. 즉, 그는 국가를 성공적으로 방위하고 국민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개인적 도덕과 군주가 행해야 하는 도덕의 기준을 구분하면서 군주가 개인적 도덕의 기준에 의해 행동하는 것은 국가를 위해서는 바람직 못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모든 인간들이 다 선하게 행동한다면, 군주가 굳이 정치적 도덕을 가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인간이란 자신들이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비열한 존재이기 때문에 군주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 정치적 도덕'을 가져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에게 강력한 행동을 할 것을 권고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폭군 정치를 옹호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국가는 그 자체의 자율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정치적 행위는‘국가 이성'에 호소함으로써 그 가치 여부가 결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컨대 국가는 종교에서 말하는 도 덕에 의해서가 아니라‘국가 이성'에 의해 자국의 이익을 위한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군주에게 제시하는 통치 전략이나 행동 지침을 보면 그 전제에는 인간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견해가 놓여 있다. 인간은 개인으로서 오로지 자신의 이기심만을 추구하며, 그 외의 다른 행동 동기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고립적 존재로 묘사되어 있다. 즉,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럽고, 위선적이며 비겁하고, 탐욕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에 군주가 자신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동안에만 충성을 바친다. 또, 위험이 별로 존재하지 않을 때는 마치 군주를 위해 그들의 재산과 생명을 다 바칠 것처럼 행동하지만 군주가 정작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는 그가 베풀었던 은혜를 망각하고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군주와 시민들의 관계는 위대하고 숭고한 이념에 의해서가 아니라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진정한 우호 관계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단, 여기서 이기주의란 인간 행위의 일반적 동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당대 이탈리아에 널리 만연되어 있는 사회적 퇴폐의 징조로서 사악함이나 이기주의를 말하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군주론'은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적 정치이념에 따라 집필되었다. ' 군주론'의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현실주의 사상은 정치가 명예와 권력의 추구를 제 1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군주는 국가를 통치함에 있어 종교적, 윤리적 규범에 구속될 필요가 없고, 오직 냉정한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리적 규범에 어긋나 비판론자들이 꼽는 대표적 조항으로는 '제 15장, 상황을 불문하고 선하게 행동할 것을 고집하는 사람이 무자비한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있다면 그의 몰락은 불가피하며, 군주가 권력을 유지하고자 할 경우 부도덕하게 행동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한다.' 와 '제 18장,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 군주는 자신이 한 약속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들을 능수능란하게 혼란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물'이 있다. 그가 이러한 조항을 넣은 이유는 역사적으로도 이러한 군주가 신의를 지키는 자들에 대항하여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군주론이 바티칸의 금서였지만 500년이 넘도록 인문고전 필독서로 자리 잡은 이유도 오늘날의 시대에 그의 현실주의적 생각이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오늘날 '군주론'에 대한 지배적인 비판적 관점과 달리 나는 그의 현실적인 진단과 대책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만연하는 현대 사회에서 혼자만 '선'을 찾는다고 해서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기란 어렵다. 예를 들어 한 팀의 리더가 다른 팀과 다르게 정직하고 투명하게만 일을 하면 이미 편법이 만연해있는 사회에서 이 팀은 가장 뒤쳐질 것이다. 때문에 조직원들은 약간의 편법을 쓰더라도 그들이 제일 앞서나가길 원한다. 만약 일정한 소수만 편법을 쓴다면 그 행위는 '악'으로 강조되겠지만 이미 사회가 편법으로 물들어 있는 상태에서 편법을 선택하는 것은 사회 흐름을 따라가기 위한 방법이라 생각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마키아벨리의 급진적인 생각을 비판하지만 5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의 생각이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다. 잔인하고 악한 방법이라도 원하는 목표에만 닿는다면 과정을 묻어둘 수 있는 결과 중심적 생각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았다. 사람들은 결과 중심적 사고를 비판하지만 이미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것들은 결과만으로 판단되어 진다. 이런 사회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한다면 과정이 아닌 사회가 원하는 결과로 보여주어야 한다. 따라서 나는 거의 모든 것이 결과중심적인 현대사회에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결과주의만 생각하는 무자비한 책이라 비판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나는 '군주론'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그들이 지향하는 곳은 같다고 생각한다. '군주론'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반윤리적이고 반종교적인 잔인한 행동들을 지침으로 삼으라고 하냐고 주장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그 당시 사회상황은 이미 부패하고 이기주의가 만연했기에 그 사회에서 그 탐욕적인 시민들보다 우위에 서서 그들을 통치하려면 군주는 그들보다 더 잔혹해 질 수 밖에 없었다. 즉, 비판론자들이 비판해야 할 것은 마키아벨리의 급진적 사상보다도 '군주론'의 내용대로 통치해야 훌륭한 군주라 할 정도로 부패한 현실이다. 또, '군주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부패한 현실을 인지하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권모술수를 사용하는 군주가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나라를 통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패한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면 윤리를 찾을 것이냐 말 것이냐의 논쟁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즉, 비판자와 옹호자 모두가 지향해야 할 것은 선한 사회이다.
마키아벨리의 사상이 급진적이고 '악'에 가까운 것도 있지만‘군주론’을 통해 부패한 당시 중세 유럽 현실을 돌아볼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500년이 지난 오늘날에 읽어도 크게 다르지 않은 이기적인 우리 사회에 대한 반성을 해 보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의의라 나는 생각한다
학과: 간호학과, 이름: 이*진, 선정연도: 2013
내용: 대학에 입학하면 고등학교의 커리큘럼보다 자유로운 시간이 많아 더 많은 책들을 읽고 다양하고 깊이 있는 사고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대학에 들어오니 책을 읽기는커녕 대학교에 적응하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놀다 보니 오히려 고등학교 문학시간 보다 책 읽을 기회는 적었다. 게다가 이과계열이었던 나는‘군주론'이 어떤 내용이며‘마키아벨리즘'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교양 과목 중‘고전읽기와 토론’의 레포트 주제로 군주론이주어져 군주론을 읽게 되었다.
책의 시작은 군주론의 저자인 마키아벨리에게서 파생된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옮긴이의 설명을 담고 있었다. 마키아벨리즘은 흔히‘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라는 뜻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도덕적, 사회적 사상과 벗어난다는 이유로 비판적인 용도로 자주 쓰이곤 한다. 하지만 그 당시 마키아벨리가 살고 있던 상황을 고려하면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마키아벨리즘의 의미는 왜곡되고 편향된 경향이 있다. 내가 읽은 책은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군주론을 처음 접하는 나는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보편적인 거부반응보다는 그 단어가 왜 나오게 되었는지 당시 상황에서는 무슨 의미로 쓰였는지를 알아보고 싶었다.
‘군주론’은 한마디로‘군주는 어떻게 하면 권력을 획득하고 또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으로‘정치란 도덕과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당대 르네상스 시대의 지배계층이었던 교황과 성직자들의 권위를 위협하는 혁명적인 사상이었고 1559년 교황청에 의해 선량한 기독교인에게는 적당치 않은 ‘악마의 사상’이라며 금서조치를 당했다. 그렇다면 바티칸의 금서였던 군주론이 발간 이후 지금까지 500여 년간 전 세계 사람들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마키아벨리와 그의 저서 ‘군주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이탈리 아의 상황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군사적 상황으로 이탈리아는 내 전과 비슷한 혼란의 상황을 겪고 있었다. 밀라노와 베니스, 피렌체, 교황국, 나폴 리왕국의 5개 나라로 분열되어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랑스와 신성 로마제국, 스페인과 같은 강력한 나라들의 침입도 있었다.
두 번째, 정치적 상황으로 중세 유럽의 사회 질서는 교회의 권위에 의존하는 기독교 왕국 사상과 봉건제도로 이루어져 있었다. 기독교 왕국이란 교회와 그 우두머리인 교황이 유럽 전체를 다스린다는 사상이고, 봉건제도는 군주와 신하가 서로 충성 계약을 맺는 정치제도이다. 군주는 신하들에게 영토를 떼어주어 영주가 되게하고 충선을 맹세 받는다. 하지만 영주들은 스스로 군대를 조직하고, 재판하고, 세금을 거두며 자기 땅을 왕처럼 마음대로 통치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주들은 힘이 없었다. 교회와 교황이 도덕적 영향력을 넘어 정치권력까지 손에 넣으면서 무자비하게 권력을 휘둘렀고 교황과 교회의 타락에 사람들은 더 이상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다.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의심이 일어나면서 자기 민족에 대한 의식이 싹트게 되었다. 군주들은 이러한 민심의 변화를 읽어내고 민족성을 내세우며 자신의 영향력을 키워 갔다.
세 번째, 문화적 상황으로 당시는 후기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고 있었다. 도시와 상공업의 발달로 관심의 중심이 인간에게로 이동함에 따라 고전의 부활도 이어졌다. 그리스 철학과 로마의 철학ㆍ문화가 재 발굴되고, 고전 예술과 문학, 철학이 부활했다. 특히 마키아벨리의 저서들에서는 정치의 부활이 많이 목격된다. 그 예로 5개 나라로 분열되어 불안한 정세가 계속됐던 이탈리아의 상황에서 과거의 좋았던 시기를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것과 로마이야기가 자주 나오는 것이 있다.
네 번째, 사회적 상황으로 고대의 문물을 부활시킨 이 시기에 사람들의 삶은 중세적인 방식에서 근대적인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경제 부흥과 인구 증가가 그 원인이었는데 수도원과 농토에서 도시로 삶의 중요 공간이 바뀌고, 자급자족에 의존하던 경제 구조는 초과 생산으로 변모했다. 금욕과 종교적인 생활을 중시했던 사람들이 세속 문화를 발전시켰고, 국가와 조국의 개념이 크게 자리 잡았다. 종교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이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심지어 교황의 영토 침입에 맞서 전쟁까지도 불사했던 피렌체의 역사적 사건도 있을 정도로 중세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처럼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기의 피렌체는 근대 사회로 변화하고 있었다.
이처럼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기에 피렌체는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혼란과 변화의 진통을 겪고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부패가 심했고 곳곳에 사악함과 이기주의를 목격할 수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퇴폐한 나라에서 선한 것을 찾으려는 노력은 헛되다고 생각했고 이탈리아가 이렇게 부패한 이유는 국가의 통일을 유지하는 한 명의 절대 군주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그는 구세주와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 이탈리아를 통일하고 강력한 나라를 만들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키아벨리가‘군주론’에서 주목한 이들은 정치적 분열과 대립, 외세의 개입 속에서도 이탈리아 각지에서 등장하는 중세 봉건시대에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유형의 지도자들이었다. 이들은 전통적인 세습군주와는 달리 오로지 자신의 재능 에 의해 권좌에 오른 자들이며, 위험을 감수하면서라도 과감하고 혁신적 방식으로 새로운 통치 질서를 수립하려던 자들이었다. 그리하여 마키아벨리는 이 새로운 유형의 지배자에게는 무엇보다도 이해관계에 대한 냉철한 타산과 현실의식이 필요하며 때에 따라서는 탈법과 악행도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마키아벨리는 행운이나 우연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 그들을 보면서 정치란 당위가 아니라 현실이며, 종교와 도덕과는 분리된 영역이라 생각했다.
많은 사상가들이 이상적인 군주에 대해 말했지만 현실은 이상과 너무나 달랐다. 마키아벨리는 '정치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고 실제적인 현상을 다루어야 한다.'는 현실주의적 정치 이념을 가지고 있었고 군주가 현실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이상만을 좇는다면 결국 망하고 말 것이라 생각했다. 때문에 군주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악당이 되는 법을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주변국들의 역사적 사건이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 책에서 좋은 군주가 되기 위한 행동 덕목, 통치 전략 등을 제시하고 있다. '군주론'을 이해하는 데 특히 도움이 되는 마키아벨리의 세 가지 인생경험이 있다.
첫 번째는 피사 정복 실패의 경험이다. 당시 피사는 피렌체가 지배하고 있던 지 역이었는데 1495년 피사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4년의 전쟁 끝에 피렌체가 피사를 포위했고 피사는 거의 항복할 시점이었다. 그런데 피렌체군 대장이 갑자기 퇴각 명령을 내렸다. 다 잡은 고기를 일부러 놓아 준 셈이었다. 결국 그는 처형됐지만 왜 그가 점령을 앞두고 갑자기 퇴각을 명령했는지는 의견이 분분했다. 마키아벨리는 그가 용병이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다. 용병은 돈을 받고 전쟁을 대신하는 군인으로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을 고용한 사람을 팔아넘길 수도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 사건으로 자국 군대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두 번째는 당시 외교관으로 활동했던 마키아벨리가 프랑스에서 당했던 수모이다. 피렌체는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 중 가장 강했지만 국제 정치 무대에서는 전혀 힘이 없었다. 그가 외교관으로 4차례나 프랑스를 방문했지만 그때마다 그는 모욕과 무시를 당했다. 그가 이를 통해 느낀 점은 군사력도 중요하지만 경제력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다. 경제력이 있어야 군사력을 키울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체사레 보르자라는 사람과의 만남이다. 그는 아버지의 도움을 등에 업고 이탈리아 동쪽과 중부 지역의 영토들을 정복하기 시작했고 중부 이탈리아 지역에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계획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마키아벨리가 체사레 보르자가 하는 행동을 잘 지켜보니 그는 이 계획을 사자가 지니는 힘과 여우가 지니고 있는 약사빠름을 적절하게 배합하면서 실행에 옮겼다. 즉, 적 앞에서 약속을 하고, 돌아서서는 자신이 했던 약속을 저버리고 그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체사레 보르자는 마키아벨리의 정치이념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보르자를 표본으로 삼아 위대한 군주의 모습을 그려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의 7장에서 체사레 보르자를 '신생 군주의 모범'으로, 나아가 미래 이탈리아의 강력한 새로운 군주로서 제시하고 있다. 그는 체사레 보르자의 행위를 보면서 국가는 '정치적 도덕'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했다. 즉, 그는 국가를 성공적으로 방위하고 국민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개인적 도덕과 군주가 행해야 하는 도덕의 기준을 구분하면서 군주가 개인적 도덕의 기준에 의해 행동하는 것은 국가를 위해서는 바람직 못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모든 인간들이 다 선하게 행동한다면, 군주가 굳이 정치적 도덕을 가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인간이란 자신들이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비열한 존재이기 때문에 군주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 정치적 도덕'을 가져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에게 강력한 행동을 할 것을 권고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폭군 정치를 옹호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국가는 그 자체의 자율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정치적 행위는‘국가 이성'에 호소함으로써 그 가치 여부가 결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컨대 국가는 종교에서 말하는 도 덕에 의해서가 아니라‘국가 이성'에 의해 자국의 이익을 위한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군주에게 제시하는 통치 전략이나 행동 지침을 보면 그 전제에는 인간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견해가 놓여 있다. 인간은 개인으로서 오로지 자신의 이기심만을 추구하며, 그 외의 다른 행동 동기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고립적 존재로 묘사되어 있다. 즉,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럽고, 위선적이며 비겁하고, 탐욕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에 군주가 자신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동안에만 충성을 바친다. 또, 위험이 별로 존재하지 않을 때는 마치 군주를 위해 그들의 재산과 생명을 다 바칠 것처럼 행동하지만 군주가 정작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는 그가 베풀었던 은혜를 망각하고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군주와 시민들의 관계는 위대하고 숭고한 이념에 의해서가 아니라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진정한 우호 관계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단, 여기서 이기주의란 인간 행위의 일반적 동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당대 이탈리아에 널리 만연되어 있는 사회적 퇴폐의 징조로서 사악함이나 이기주의를 말하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군주론'은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적 정치이념에 따라 집필되었다. ' 군주론'의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현실주의 사상은 정치가 명예와 권력의 추구를 제 1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군주는 국가를 통치함에 있어 종교적, 윤리적 규범에 구속될 필요가 없고, 오직 냉정한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리적 규범에 어긋나 비판론자들이 꼽는 대표적 조항으로는 '제 15장, 상황을 불문하고 선하게 행동할 것을 고집하는 사람이 무자비한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있다면 그의 몰락은 불가피하며, 군주가 권력을 유지하고자 할 경우 부도덕하게 행동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한다.' 와 '제 18장,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 군주는 자신이 한 약속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들을 능수능란하게 혼란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물'이 있다. 그가 이러한 조항을 넣은 이유는 역사적으로도 이러한 군주가 신의를 지키는 자들에 대항하여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군주론이 바티칸의 금서였지만 500년이 넘도록 인문고전 필독서로 자리 잡은 이유도 오늘날의 시대에 그의 현실주의적 생각이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오늘날 '군주론'에 대한 지배적인 비판적 관점과 달리 나는 그의 현실적인 진단과 대책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만연하는 현대 사회에서 혼자만 '선'을 찾는다고 해서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기란 어렵다. 예를 들어 한 팀의 리더가 다른 팀과 다르게 정직하고 투명하게만 일을 하면 이미 편법이 만연해있는 사회에서 이 팀은 가장 뒤쳐질 것이다. 때문에 조직원들은 약간의 편법을 쓰더라도 그들이 제일 앞서나가길 원한다. 만약 일정한 소수만 편법을 쓴다면 그 행위는 '악'으로 강조되겠지만 이미 사회가 편법으로 물들어 있는 상태에서 편법을 선택하는 것은 사회 흐름을 따라가기 위한 방법이라 생각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마키아벨리의 급진적인 생각을 비판하지만 5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의 생각이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다. 잔인하고 악한 방법이라도 원하는 목표에만 닿는다면 과정을 묻어둘 수 있는 결과 중심적 생각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았다. 사람들은 결과 중심적 사고를 비판하지만 이미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것들은 결과만으로 판단되어 진다. 이런 사회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한다면 과정이 아닌 사회가 원하는 결과로 보여주어야 한다. 따라서 나는 거의 모든 것이 결과중심적인 현대사회에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결과주의만 생각하는 무자비한 책이라 비판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나는 '군주론'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그들이 지향하는 곳은 같다고 생각한다. '군주론'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반윤리적이고 반종교적인 잔인한 행동들을 지침으로 삼으라고 하냐고 주장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그 당시 사회상황은 이미 부패하고 이기주의가 만연했기에 그 사회에서 그 탐욕적인 시민들보다 우위에 서서 그들을 통치하려면 군주는 그들보다 더 잔혹해 질 수 밖에 없었다. 즉, 비판론자들이 비판해야 할 것은 마키아벨리의 급진적 사상보다도 '군주론'의 내용대로 통치해야 훌륭한 군주라 할 정도로 부패한 현실이다. 또, '군주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부패한 현실을 인지하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권모술수를 사용하는 군주가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나라를 통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패한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면 윤리를 찾을 것이냐 말 것이냐의 논쟁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즉, 비판자와 옹호자 모두가 지향해야 할 것은 선한 사회이다.
마키아벨리의 사상이 급진적이고 '악'에 가까운 것도 있지만‘군주론’을 통해 부패한 당시 중세 유럽 현실을 돌아볼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500년이 지난 오늘날에 읽어도 크게 다르지 않은 이기적인 우리 사회에 대한 반성을 해 보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의의라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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