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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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 읽는) 미생물 사냥꾼 이야기
자료유형
국내단행본
서명/책임사항
(소설처럼 읽는) 미생물 사냥꾼 이야기 / 폴 드 크루이프 지음 ; 이미리나 옮김.
원서명
Microbe hunters
개인저자
발행사항
서울 : 몸과마음 , 2005.
형태사항
456 p. : 삽도 ; 23 cm.
서지주기
찾아보기: p. 453-456
ISBN
8989418437
청구기호
616.0109 D278m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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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등 관련정보
독후감 공모전 우수작
제목: 미생물 사냥꾼 이야기
학과: 사학과, 이름: 박*옥, 선정연도: 2013
내용: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이 크림 전쟁에서 병사들을 간호하러 갔다가, 불결하기 그지없는 위생환경을 보고 충격 받았다는 이야기는 정말 유명하다. 제대로 세탁하지도 않은 침구 위에 내던져진 부상병들은 제때 치료받지도 못한 채 방치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청소도 제대로 하지 않아 쓰레기나 기타 오물이 병상에 쌓여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병원에서 오히려 상처가 악화되기 일쑤였고, 병원에서 속절없이 죽어나간 병사들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적군 포로 수용소였다고 해도 기막힐 판국인데, 자국 부상병을 수용하고 의사도 파견된 병원의 현실이 그랬다. 나이팅게일은 이 참상을 목도한 뒤, 세탁과 청소에도 많은 신경을 써서 병사들이 먼지 없는 방에서 깨끗한 시트 위에 누울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냈다. 나이팅게일이 돌본 많은 병사들이 눈에 띄게 호전된 것은, 비단 정성 어린 간호뿐만 아니라, 이전보다 훨씬 청결해진 환경에서 지낼 수 있었던 것도 한몫했다는 이야기가 많을 정도다. 그런데 나라를 위해 싸우다 다친 병사들이 그런 불결한 환경에 내던져졌다는 것보다 더 충격적인 것이 있으니, 바로 나이팅게일이 목도한 병사들이 당시 기준에서 딱히 홀대받거나 외면당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당시 의학의 표준은 실제로 그랬기 때문이다.
백여 년 전까지만 해도, 유럽 의학에서는‘의사가 환자를 진찰하거나 수술하려면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라는 개념이 전혀 없었다. 젬멜바이스라는 의사가 손을 의사가 손을 씻어야 한다고 주장하자 오히려 죽을 때까지 헛소리꾼 취급만 받았을 정도였다. 아득한 옛 시절 옛이야기가 아니라, 1865년에 죽은 사람의 이야기다. 젬멜바이스의 주장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죽고 나서도 수십 년이 더 흘러야했다. 1900년의 언저리에서 파스퇴르가 등장한 뒤에야, 젬멜바이스는 비로소 헛소리꾼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전까지는 수술을 받다가 죽는 환자가 속출했고, 병원에서 오히려 병이 악화된 경우도 수두룩했는데, 당시 병원 환경과 위생관념을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였다. 다른 환자의 상처부위나 시신을 만진 손으로 환자를 돌보는데, 상처가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의사가 환자를 돌보기 전에 먼저 손을 씻어야 하는 것은, 미생물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의 몸과 옷에는 수많은 미생물들이 들러붙어 있으며, 이 미생물들은 허약한 사람들에게는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다른 환자의상처나 시신에 있다가 옮겨 온 미생물이라면,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환자가 미생물에 감염될 여지를 가급적 최소한으로 줄여야 하며, 수술도구와 환자용 침구 등을 소독하고 청결하게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파스퇴르가 이런 관습을 도입한 뒤, 병원에서 상처가 악화되거나 사망하는 환자는 부쩍 줄었다. 미생물학자들의 연구가 비단 학술적 진전에만 그치지 않고, 사람들을 살리게 된 것이다. 파스퇴르가 병원 위생이라는 관념을 도입한 뒤에도, 보다 많은 사람을 구 하기 위해 다종다양한 미생물을 다각도로 연구하는 연구자가 그 뒤를 이었으며, 그들의 노력과 업적에 힘입어 오늘날의 우리들은 예전보다 훨씬 안전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소설처럼 읽는 미생물 사냥꾼 이야기>는 바로 그 사람들에 대해, 마치 소설의 한 장면처럼 박진감넘치고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는 책이다. 유명한 의학자의 일생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이 책은 추천하기 애매할 것이다. 언제 어디서 태어나 어디서 어떤 공부를 했는지, 어떤 인물과 만나고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아주 간략하게만 다루고 있다. 하지만 미생물 분야에서의역사적인 발견과 관련 연구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은 추천 1순위 도서가 될 것이다. 유명한 미생물 연구사례에 대해 방대하고 알기 쉽게 풀어놓고 있으며, 당시 시대상황이나 의학계의 동향, 사회의 관습 등에 대해서도 폭넓게 다루고 있어,보다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독자를 이끌어준다.
<소설처럼 읽는 미생물 사냥꾼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생소한 분야에서 과거에 펼쳐진 일들을 다루고 있는데, 낯설지만은 않더라는 것이었다. 혼자서 꾸준히 한 우물을 파다가 마침내 금자탑을 쌓을 수 있었던 이야기, 기술적 어려움을 발상의 전환으로 해결하는 이야기, 연구소와 현장을 긴밀하게 연계하여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이야기, 유망한 과학자에게 많은 사람들이 십시일반 후원하며 마침내 성공한 이야기, 생소한 분야에 거의 백지 상태로 뛰어들어 실패를 거듭하지만 마침내 새로운 발견을 해내는 이야기, 유명한 스승의 연구와 방식을 이어받은 제자가 또 다른 분야에서 업적을 쌓은 이야기 등은, 누가 과학자를 주제로 소설을 쓰라고 하면 흔히 생각할 수 있을 법한 패턴이다. 하지만 이들의 드라마는 결코 뻣뻣한 패턴을 답습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열정, 노력, 끈기 등의 단어 몇 개로는 도저히 형용하지 못할, 치열하고 극적인 드라마가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미생물이라는 존재를 처음 발견한 레벤후크는, 홀로 탐구를 거듭하여 역사적인 발견을 해냈다. 레벤후크는 말 그대로 자기 연구의 알파에서 오메가까지를, 오로지 혼자서 수행했다. 직접 만들고 개량한 망원경을 사용했고, 직접 구상한 새로운 실험을 주문제작한 실험도구로 수행했고, 새로운 것이 발견되면 정리했다. 실험을 구상하고, 실행하고, 이론으로 만드는 것을 모두 혼자서 해낸 것이다. 새로운 영역에 발을 디디고, 선행되고 축적된 지식이 없는 백지 상태로 척박한 환경을 개척하는 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업적까지 남겼다. 황무지를 홀로 개간하고, 꽃까지 피워낸 것이다. 외부의 도움 없이 홀로 모든 것을 수행한 건 둘째 치고, 정식으로 의학이나 과학 분야의 수업을 받은 적도 없는 사람이 이런 업적을 쌓을 수 있다니, 존경스럽다 못해 경이로운 일이다. 백지 상태로 시작했어도, 끈기 있고 능력 있는 위인이 한 우물만 꾸준히 파면 어떤 경지까지 다다를 수 있는지 몸소 보여주는 사례로 손꼽을 만하다.
개인적으로는 레벤후크가 스스로의 힘만으로 이룩한 연구성과에 못지않게, 당대석학들의 반응도 흥미로웠다. 제대로 학교에 다닌 적도 없는 직공이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를 한다며 무시할 거라고 지레짐작했는데, 레벤후크의 글을 진지하게 읽은 뒤 연구를 인정하고 찬사를 보낸 것이 의외였다. 생각해보면 지극히 온당한 행 보이다. 연구자의 프로필이 어떻건, 연구를 위조한 전적이 없는 이상에야, 발표한 연구내용 자체만을 평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관련학과가 개설된 적도 없는, 전혀 새로운 분야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직공 출신이라고 무시당했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다니, 연구 자체가 아닌 프로필의 학력과 소속단체의 성격을 보고, 이러저러한 경력도 없는 사람의 연구를 어떻게 신뢰하느냐는 식으로 폄하부터 하는 것을 너무나 많이 접했더니, 어느새 그 논리에 익숙해져버린 모양이다. 그런 논리로 폄하하는 것을 볼 때마다 비논리적인 트집잡기라고 생각했는데, 워낙 많이 접하다 보니 익숙해져버린 것을 보면, 보고 들은 이야기가 사고관에 미치는 영향은 과연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스팔란차니 역시 레벤후크처럼, 제도교육 없이 스스로 배우고 연구한 사람이 금 자탑을 쌓아올린 사례이다. 제도교육을 받은 적 없다는 것은 해당 분야의 기본적인 지식조차 익히지 못했다는 의미도 되지만, 동시에 당대 학설이 틀렸을 경우 틀린 학설을 배우지 않고 고정관념도 없다는 의미도 된다. 후자의 경우, 틀린 기존 학설에 발목잡히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밝히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스팔란차니가 그랬듯이 말이다.
스팔란차니 시대에는 미생물은 스스로 생겨난다는 것이 상식으로 여겨졌다. 스팔란차니는 면밀한 실험을 통해 외부와 차단된 곳에서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미생물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당시 학자들은 갖가지 경우의 수를 상정하고 기발한 설명을 착상해내며 그 실험결과를 ‘상식’에 끼워 맞추거나, 아예 스팔란차니의 저술을 무시해버렸다. 오컴의 면도날, 가장 간단한 것이 해답인 법이거늘, 기존 이론을 지키기 위해 별의별 무리수를 동원해 기상천외한 해명을 늘어놓는 모습이 황당하기까지 했다. 이런 일은 비단 스팔란차니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혁신적인 이론을 발표했을 때마다 마치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었다. 최종결과를 알고 있는 입장에서 그런 억지를 늘어놓는 모습을 보면, 답답해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 자기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건, 단순히 상대가 자신보다 유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이 믿어온 세계가 진실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리고 그 이야기를 반박할 가망이 아직 보인다면, 그 ‘가망’에 매달리지 않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자기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건, 그것을 진실이라 믿어온 지난 세월을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고, 그렇다면 처절하고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것도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아집은 학문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거나, 오히려 발목을 잡기 마련이다. 본전 생각을 하면서 큰 손실을 본 투자처에 계속 매 달리는 심정과 다름없다. 매몰비용에 매몰되었다가는, 본전은커녕 오히려 추가손 실만 발생하기 일쑤이며, 학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자신이 틀린 이론을 붙잡고 있으며 전전긍긍하고 있는 동안에도, 선구자는 저 멀리 앞질러 가고 있을 테니 말이다.
스팔란차니 챕터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기술적 한계를 발상의 전환으로 극복하는 모습이었다. 당시 기술로는 플라스크를 완전히 밀봉할 수 없었고, 완벽히 밀봉했다고 생각한 플라스크에서 시간이 지나면 미생물이 생기고는 했다. 당시 학계에서는 이것을 미생물이 스스로 생겨난다는 자연발생설의 증거라고 여겼지만, 스팔란차니는 완벽히 밀봉하지 못해서 허점이 생긴 결과라고 생각했다. 스팔란차니는 그저 입구를 꽁꽁 싸매는 방식으로는 플라스크와 외부 공기를 완전히 차단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실제로 옳았다. 하지만 그 가설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당시 기술로는 플라스크를 완전히 밀봉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말이다. 스팔란차니는 발상의 전환과 과감한 시도로 기술적 난제를 해결했다. 플라스크의 입구를 아예 유리를 녹여 땜질해버린 것이다. 플라스크를 개봉해야 할 때에는 유리로 때운 입구를 깨뜨렸다. 예술 분야에서는 발상의 전환이, 재료의 한계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사례가 여럿 있다. 예를 들어 중세 시대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는, 당시 기술로는 큰 유리판을 만들어낼 수 없었기 때문에 작은 유리조각들을 조립하자는 발상에서 출발하며, 작은 색유리 조각들이 영롱한 빛의 형상을 만들어 내는 스테인드글라스 예술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난 이런 일이 기술, 과학 실험 쪽에서는 일어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예술이 기술을 응용하는 것이라면, 실험은 기술 자체의 극한을 추구하는 것이니, 기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스팔란차니의 실험을 보고, 발상의 전환은 과학실험에서의 기술적 한계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레벤후크와 스팔란차니는 사택의 개인연구실에서 혼자서 연구하며 역사적인 발견을 해냈다. 그들도, 그들의 반대자들도 개인이 실험할 수 있는 규모의 실험을하거나, 실험을 하지는 않고 이론만을 착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파스퇴르와 코흐의 시대에 이르러, 미생물 연구의 스케일은 개인 공간의 영역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수많은 실험동물을 대상으로 여러 명의 조수를 진두지휘하며 연구하는 시대, 동시에 개인의 학문세계를 벗어나 사회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연구가 진행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사회의 동향, 당대의 역사적 사건 등은 관련 미생물 연구에 조금씩 영향을 주기 시작했고, 사회의 요구와 미생물 연구의 경향이 긴밀히 맞물리는 데 이르게 된다. 학자 개인이 흥미를 가진 대상을 개인연구실에서 홀로 연구하는 시대가 아니라, 사람들이 두렵게 여기는 병을 미생물학자가 연구하고, 실험과 연구를 거듭하여 그 병을 퇴치하거나, 적어도 효과적인 예방법을 알아내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 첫걸음을 뗀 인물은 파스퇴르였다. 파스퇴르 챕터를 읽으면서, 산학협력과 응용과학의 이상적인 모습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포도주 양조자가 포도주가 시큼해진다고 연락했을 때, 목장주가 탄저병 때문에 가축들이 죽어나간다고 했을 때, 양잠업자가 누에가 집단으로 괴사하는 사태에 대해서 제보했을 때, 파스퇴르는 현미경을 들고 곧장 출동하여 미생물을 관찰했다. 그리고 미생물을 찾아냈고, 미생물의 특성을 파악하여 대처법도 강구했다. 산업현장을 기습한 미지의 사태를 과학으로 해결한 것이다. 파스퇴르가 성공하자, 사람들은 과학이 질병을 해결해줄 수 있다는 기대를 품기 시작했다. 이 기대는 막연한 믿음에서 그치지 않고, 학술적 성취뿐만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라도 과학 연구에 도움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으로 발전했다. 보다 본격적으로 대처법을 강구하기 위해 여러 조수와 학자가 합동해서 연구하게 된 것도,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의 후원금이나 국 고로 과학연구를 후원하게 된 것도 파스퇴르 때부터였다. 그리고 국수주의 정서가 과학연구를 가로막는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파스퇴르와 코흐의 대립, 정확히 말해 파스퇴르와 코흐를 둘러싼 프랑스인과 독일인의 대립은 국수주의 정서가 양날의 칼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자랑스러운 우리 나리의 과학자’를 위해서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과학 연구를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나라가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는 순기능도 있었지만, 역기능도 뚜렷했다. 외국 과학자의 공헌을 인정하는 것을 조국에 대한 배신처럼 여기거나, 외국 과학자를 무턱대고 깎아내리는 것을 애국하는 것처럼 여기는 풍조가 형성되는가 하면, 어떻게든 외국의 라이벌보다 앞선 실적을 내라면서 과학자를 닦달하기도 했다. 이런 식의 풍조는 성급하고 허술하게 실험해서라도 그럴싸한 결과 물을 내라고 강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일정을 앞당긴답시고 부실공사를 강요하면, 안전한 건물을 기대할 수 없는 법이다. 코흐는 제대로 검증하지도 않은 결핵 요법을 성급하게 시도했다가 여러 희생자를 낳았는데, 주변에서 파스퇴르를 의식하며 실적주의식 사고방식을 코흐에게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그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감정은 파스퇴르의 제자인 에밀 루와, 코흐의 제자 격인 에밀 베링에게서도 이어졌다. 루와 베링은 동시기에 같은 주제로 연구를 했는데도, 협력은 고사하고 상대방과 교류하는 것조차 반감을 가질 정도였다. 두 사람이 각각 따로 연구하면서 중복되고 낭비된 것이 얼마나 많았을까? 루와 베링이 서로를 깎아내리려 소모했던 시간과 기력은 또 어떻고? 루와 베링이 같이 협력했다면, 디프테리아 혈청은 훨씬 빨리 발명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말라리아 연구의 공헌도를 두고 로스와 그라시가 벌인 설전에 대해“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상대방에게 조금이라도 명성을 안겨 주느니 차라리 훌륭한 발견을 묻어 두려고 했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표현했는데, 이런 대립각은 로스와 그라시 사이에서만 보인 것이 아니었다. 국수주의 정서가 끼어들면, 로스와 그라시의 신경전은 아이들 장난으로 보일 법한 난장판이 일어나고는 했고, 이런 감정은 종종 나쁜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과학자 개인의 적대감 덕분에 협력할 기회를 놓치거나 멀쩡한 연구 결과를 폄하하는가 하면, 일반인들의 국민감정까지 더해지면 점입가경이 되기 일쑤였다. 국수주의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과학자의 업적을 나라 간의 대결이 아닌 개인의 공헌으로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면, 과학은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과학은 정확하게 실험하고, 그 실험결과를 엄정하게 검증한 뒤에야 발표하는 것이 온당하다. 또한 그럴싸한 추측만으로는 부족하며, 반박할 수 없는 증거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미생물처럼 생명과 직결되는 긴급한 사안에서,이 원칙은 어디까지 적용되어야 할까? 시어벌드 스미스의 텍사스병 챕터와 월터리드의 황열병 챕터는 이 아이러니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 북부의 농부가 남부의 소를 사들여 자기 목장으로 옮기면, 한 달여가 지난 후 소가 쓰러져 죽는 일이 속출했다. 텍사스병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병은 아무리 건강한 소를 사들여도 나타나고는 했다. 스미스는 연구를 통해 텍사스병의 원인이 진드기라고 짐작하게 되었고, 그의 짐작은 옳았다. 하지만 스미스는 진드기를 박멸해야 한다는 발표를 하지 않았다. 정말로 진드기가 원인인 것인지 몇 년 동안 면밀한 실험을 거듭했고, 마침내 진드기가 원인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규명할 수 있게 된 뒤에야, 비로소 발표했던 것이다. 스미스는 진드기를 없애야 한다고 했고, 그의 말대로 진드기를 박멸하자 텍사스병 발병사례는 더 이상 보고되지 않았다.
스미스는 비난받아야 할까, 그 반대일까? 과학원칙이라는 측면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내지는 그래야만 하는 행동이었다. 학문적 증거를 논문 형태로 갖추어 발표하지 않았다면, 아마 증거 없는 낭설 취급을 받았을 테니 말이다. 정황증거밖에 없고 잠정결론밖에 내리지 못했는데, 과연 받아들여졌을까? 밑져야 본전이라면 그랬겠지만, 긁어 부스럼이 될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 텍사스병의 진짜 원인은 진드기가 아닌 다른 미생물이며, 진드기는 그 미생물의 천적으로 미생물을 잡아먹으며 그나마 사태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가정대로라면, 진드기가 진짜 원인이 아니면서도. 진드기가 있는 곳에서만 텍사스병이 나타나는 현상이 충분히 설명된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진드기를 잡았다면, 오히려 텍사스병 원흉의 천적을 없앤 격이 되어 상황을 악화시켰을 것이다. 이미 비슷한 전례가 있었으니, 무시할 수만은 없는 가정이었다.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있는가? 스미스는 가능성이 0%가 아닌 이상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몇 년 동안 지루한 확인실험을 수행했고, 모든 것이 확실해진 뒤에야 마침내 발표했다. 과학적 원칙을 훌륭히 이수한, 흠잡을 데 없는 행보였다. 스미스의 완전무결한 실험 앞에서는 반론을 제기할 여지가 도저히 없었고, 스미스의 방안은 곧바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진드기를 없애야 한다는 잠정결론이라도 진작 발표했다면, 텍사스병은 몇 년 일찍 퇴치되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스미스의 딜레마는 오늘날에도 결코 낯설지 않다. 임상실험 논란의 본질과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질병을 호전시킬 것이 거의 확실하게 기대되지만 아직 완벽히 검증되지는 않은 약이 있다면, 환자에게 그 약을 처방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모든 것이 완벽히 검증될 때까지 미루는 것이 옳은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하는 환자가 후자를 원한다면, 후자를 처방하는 것이 얼마나 온당한 일인가. 후자를 택한 환자의 몸 상태가 오히려 나빠졌다면, 의사에게는 얼마나 책임이 있는 것일까. 생명과 직결되는 곳에서 성급함과 신중함, 신속함과 지지부진함의 경계는 어디에 있을까. 그 사이에 과연 뚜렷한 경계선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아마 이 딜레마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질병이 완전히 박멸되지 않는 한,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월터 리드의 황열병 연구에서는 또 다른 딜레마가 전면에서 드러난다. 아무리 유력한 이론도 실험을 한 뒤에야 수용하는 것은, 원칙적으로는 온당한 일이다. 아 무리 완벽해 보이는 이론도, 통제할 수 없는 변수와 예기치 못한 사태가 일어나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일은 종종 일어난다. 그런데 질병에 관한 학설을 입증하기 위해서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해야 한다면, 즉 건강한 개인을 질병에 걸릴지도 모르는 환경에 밀어 넣어 정말 병에 걸리는지 아닌지를 확인해야 한다면, 이 실험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 수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한 실험일까, 멀쩡한 생명을 희생시키는 실험일까? 월터 리드의 황열병 연구 및 실험은, 질병의 치료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면 목숨이라도 바칠 각오가 된 사람들이 자원했고, 치료제도 상비한 상태에서 진행되었지만, 그렇다고 이 딜레마가 희석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딜레마가 있다고 해서, 그 실험 덕분에 정확히 어떤 환경에서 황 열병에 걸리고, 어떤 환경에서는 황열병이 발발하지 않는지는 면밀히 판별할 수 있게 되었고, 그를 토대로 구체적으로 실제적인 황열병 예방대책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는 의의가 사라지는 것도 역시 아니다.
황열병 환자의 물건을 통해서 황열병이 감염되는 것인지를 확인하는 실험에서, 이 딜레마는 정점을 찍는다. 당시에는 황열병 환자들이 쓰던 물건과 접촉하면 황 열병이 옮는다는 두려움이 널리 퍼져 있어서, 황열병 환자들의 쓰던 물건은 모두 불태웠다. 월터 리드는 이 소문을 검증하기 위해, 자원자들이 황열병 환자들이 쓰던 물건으로만 꾸민 방에서 생활하게 했다. 시간이 지나도 황열병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자, 한 단계 더 나아가 황열병 환자의 침상에서 지내게 했다. 이번에도 황열병에 걸린 사람은 없었다. 황열병 환자들이 쓰던 물건과 접촉해도, 황열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 완벽히 입증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그 두려움을 완전히 떨쳐낼 수 있게 되었다. 수많은 물건들이 무의미하게 폐기처분되는 상황이 중지되었다는 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효과다. 어떤 물건을 보고 이 물건이 혹시 황열병 환자와 접촉한 적 있는 물건인 것은 아닐지, 만약 그렇다면 손이 닿기만 해도 황열 병에 걸리는 것은 아닌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적인 치료법을 찾는 실험도 아니건만, 오로지 사람들의 두려움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본인이 황열병에 걸릴 것을 각오하고 살신성인의 희생정신으로 몸을 내던진 사람들이 몸소 증명해준 덕분에 말이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불철주야 연구를 거듭하며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예방할 대 책도 치료할 방법도 없어 보였던 수많은 질병은 하나씩 정복되고 있다. 파울 에를리히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특정 미생물만 맞춤형으로 공격하는 화학요법을 개발해냈고, 에를리히의 뒤를 이은 후학 연구진들의 분투 덕에 갈수록 정교하고 방대한 화학요법이 새로이 등장하고 있다. 덕분에 우리들은 백여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했을 만큼 평온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황열병, 디프테리아, 공수병, 말라리아 등은 과거에 수많은 사람을 공포로 몰아넣었지만, 오늘날 그런 병은 예방주사를 맞거나 아주 기초적인 안전수칙만 준수해도 발병할 일이 없고, 만약 걸리게 된다고 해도 금세 치료할 수 있다. <소설처럼 읽는 미생물 사냥꾼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이런 환경이 어떤 과정을 위해 조금씩 쌓아올려졌는지, 학자들이 어떤 연구를 통해 온갖 미생물의 공포를 하나씩 극복해왔는지를 눈에 보이듯이 생생하게 그려내며, 그것이 없던 세계가 얼마나 무서웠는지조차 모르는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학자들은, 비단 무턱대고 노력하기만 해서 성공에 다다른 것이 아니었다. 무조건 열정적으로 노력하기만 한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노력 없는 성과는 없어도, 노력이 반드시 성과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거나 선구적인 업적을 쌓는다는 측면에서는 그렇다.
이런 분야에서 노력만 하면 무언가를 해낼 수 있으리라는 것은, 아무 땅이나 골라잡고 끝없이 땅을 판다면 언젠가는 유전이 솟아오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유전을 원한다면, 우선 유전이 있을 만한 장소를 지질학적 조사 등으로 물색한 뒤에 지목된 장소를 파야 하는 것이다. 이쪽이 실패할 수도 있지만 성공할 수도 있고, 기술 수준에 따라서 성공할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면, 전자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방법에 가깝다. 어쩌다가 한 번쯤은 운 좋게 성공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게 좋은 방법이라 진심으로 믿는다면, 수주대토 격밖에 되지 못한다. 그나마 수주대토 고사에서 농부가 한 것이란 토끼가 자기 앞의 말뚝에 부딪혀 죽는 행운이 또다시 일어나기를 고대하며 마냥 기다리기만 한 것밖에 없었기에 품이라도 안 들었지, 무언가를 연구할 때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쏟아 붓고는 막상 제대로 된 결과는 얻지 못하는 사태가 초래될 수도 있다.
이 책의 미생물학자들은 물론 초인적인 노력으로 꾸준히 정진했지만, 그것만으로 업적을 달성한 것은 아니었다. 치밀한 계획을 세웠고, 정확하게 수행했으며, 면밀하게 연구했고, 무엇보다 기존의 이론에 얽매여 연구결과를 끼워 맞추지 않고, 보다 열린 자세로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다른 사람이 발 디딘 적 없는 영역을 개척해낼 수 있었다. 그들은 땅을 파서 유전이 나올만한 곳이 어디인지 파악하거나, 최소한 그럴 가망이 있는 곳을 파악할 여력이 있었고, 그 곳에 자신의 노력을 쏟아 부을 각오가 되어 있었으며, 또한 땅을 파다가 유전이 아니라는 조짐이 보이면 매몰비용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접을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간혹 계획한 적 없이 즉흥적인 기분으로 실험해본 것이나, 오히려 실험계획과 어긋나게 실수한 것이 정답을 가져다준 적이 있는데, 이것을 가만히 있다가 운 좋게 얻어걸린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해이다. 그들은 언제든지 심상찮은 조짐을 포착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예기치 않은 징조가 보이면 그것을 포착해냈을 뿐이다.
실수가 큰 발견으로 이어진 것은, 객관식 문제를 대충 찍었는데 정답을 맞혀버린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그 ‘실수’도 언제든지 다시 재현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면밀히 기록한 사람만이, 실수가 가져다준 행운을 역사적 발견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아무 것도 기록하지 않고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본인 실수로 일어난 그 상황을 다시 재현할 수 없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시적 해프닝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소설처럼 읽는 미생물 사냥꾼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학설이나 발견을 발표했다가 기존 학계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힌 경험을 한 번쯤은 해보았으며, 연구에 매진하는 것 못지않은 기력을 기존 학설에 대항하는 데 쏟아 부은 사례도 있을 정도다. 그 반대자들은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했거나, 구습에 얽매여 선구적 발견을 공박한 시대착오적 인물 정도로만 가끔 회자될 뿐이다. 그 사람들은 게으르고 나태하고 무능했기에, 역사적 업적을 쌓지 못했던 것일까? 앵무새처럼 남의 말을 반복하기만 하니까 그린 된 것일까? 그런 경우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진정성 있고, 성실하고, 자신이 공부하고 실험한 결과 기존 이론이 옳다고 판단하여 진정으로 믿은 학자도 많았다. 그 중에는 이 책의 주인공보다 훨씬 학식 있고 존경 받는 위인이었으며, 그럴 자격이 충분한 인물도 여럿 있었다.
그들의 운명을 가른 것은, 새로운 발견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었다. <소설처럼 읽는 미생물 사냥꾼>들은 실패 한 적 한 번 없이 쭈욱 성공만 하다가, 어느새 업적을 쌓게 된 것이 아니었다. 가만히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학설이 번뜩 떠올라 역사적 발견을 하게 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실험이 지지부진한 상황을 수없이 겪었고, 실패한 적도 많았고, 때로는 실험 실패가 치명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시도가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것을 경험으로 삼았다. 실패하는 길을 제거하며 실패하지 않는 길을 꾸준히 탐색하다가, 마침내 그 길을 찾아내는 데 성공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진정한 성공이란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인정하는 것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절절하게 절감했다. 이 책이 비단 미생물 학자의 업적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노력하는 개인의 성공담으로서도 큰 호소력을 가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학과: 사학과, 이름: 박*옥, 선정연도: 2013
내용: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이 크림 전쟁에서 병사들을 간호하러 갔다가, 불결하기 그지없는 위생환경을 보고 충격 받았다는 이야기는 정말 유명하다. 제대로 세탁하지도 않은 침구 위에 내던져진 부상병들은 제때 치료받지도 못한 채 방치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청소도 제대로 하지 않아 쓰레기나 기타 오물이 병상에 쌓여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병원에서 오히려 상처가 악화되기 일쑤였고, 병원에서 속절없이 죽어나간 병사들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적군 포로 수용소였다고 해도 기막힐 판국인데, 자국 부상병을 수용하고 의사도 파견된 병원의 현실이 그랬다. 나이팅게일은 이 참상을 목도한 뒤, 세탁과 청소에도 많은 신경을 써서 병사들이 먼지 없는 방에서 깨끗한 시트 위에 누울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냈다. 나이팅게일이 돌본 많은 병사들이 눈에 띄게 호전된 것은, 비단 정성 어린 간호뿐만 아니라, 이전보다 훨씬 청결해진 환경에서 지낼 수 있었던 것도 한몫했다는 이야기가 많을 정도다. 그런데 나라를 위해 싸우다 다친 병사들이 그런 불결한 환경에 내던져졌다는 것보다 더 충격적인 것이 있으니, 바로 나이팅게일이 목도한 병사들이 당시 기준에서 딱히 홀대받거나 외면당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당시 의학의 표준은 실제로 그랬기 때문이다.
백여 년 전까지만 해도, 유럽 의학에서는‘의사가 환자를 진찰하거나 수술하려면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라는 개념이 전혀 없었다. 젬멜바이스라는 의사가 손을 의사가 손을 씻어야 한다고 주장하자 오히려 죽을 때까지 헛소리꾼 취급만 받았을 정도였다. 아득한 옛 시절 옛이야기가 아니라, 1865년에 죽은 사람의 이야기다. 젬멜바이스의 주장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죽고 나서도 수십 년이 더 흘러야했다. 1900년의 언저리에서 파스퇴르가 등장한 뒤에야, 젬멜바이스는 비로소 헛소리꾼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전까지는 수술을 받다가 죽는 환자가 속출했고, 병원에서 오히려 병이 악화된 경우도 수두룩했는데, 당시 병원 환경과 위생관념을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였다. 다른 환자의 상처부위나 시신을 만진 손으로 환자를 돌보는데, 상처가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의사가 환자를 돌보기 전에 먼저 손을 씻어야 하는 것은, 미생물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의 몸과 옷에는 수많은 미생물들이 들러붙어 있으며, 이 미생물들은 허약한 사람들에게는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다른 환자의상처나 시신에 있다가 옮겨 온 미생물이라면,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환자가 미생물에 감염될 여지를 가급적 최소한으로 줄여야 하며, 수술도구와 환자용 침구 등을 소독하고 청결하게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파스퇴르가 이런 관습을 도입한 뒤, 병원에서 상처가 악화되거나 사망하는 환자는 부쩍 줄었다. 미생물학자들의 연구가 비단 학술적 진전에만 그치지 않고, 사람들을 살리게 된 것이다. 파스퇴르가 병원 위생이라는 관념을 도입한 뒤에도, 보다 많은 사람을 구 하기 위해 다종다양한 미생물을 다각도로 연구하는 연구자가 그 뒤를 이었으며, 그들의 노력과 업적에 힘입어 오늘날의 우리들은 예전보다 훨씬 안전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소설처럼 읽는 미생물 사냥꾼 이야기>는 바로 그 사람들에 대해, 마치 소설의 한 장면처럼 박진감넘치고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는 책이다. 유명한 의학자의 일생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이 책은 추천하기 애매할 것이다. 언제 어디서 태어나 어디서 어떤 공부를 했는지, 어떤 인물과 만나고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아주 간략하게만 다루고 있다. 하지만 미생물 분야에서의역사적인 발견과 관련 연구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은 추천 1순위 도서가 될 것이다. 유명한 미생물 연구사례에 대해 방대하고 알기 쉽게 풀어놓고 있으며, 당시 시대상황이나 의학계의 동향, 사회의 관습 등에 대해서도 폭넓게 다루고 있어,보다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독자를 이끌어준다.
<소설처럼 읽는 미생물 사냥꾼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생소한 분야에서 과거에 펼쳐진 일들을 다루고 있는데, 낯설지만은 않더라는 것이었다. 혼자서 꾸준히 한 우물을 파다가 마침내 금자탑을 쌓을 수 있었던 이야기, 기술적 어려움을 발상의 전환으로 해결하는 이야기, 연구소와 현장을 긴밀하게 연계하여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이야기, 유망한 과학자에게 많은 사람들이 십시일반 후원하며 마침내 성공한 이야기, 생소한 분야에 거의 백지 상태로 뛰어들어 실패를 거듭하지만 마침내 새로운 발견을 해내는 이야기, 유명한 스승의 연구와 방식을 이어받은 제자가 또 다른 분야에서 업적을 쌓은 이야기 등은, 누가 과학자를 주제로 소설을 쓰라고 하면 흔히 생각할 수 있을 법한 패턴이다. 하지만 이들의 드라마는 결코 뻣뻣한 패턴을 답습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열정, 노력, 끈기 등의 단어 몇 개로는 도저히 형용하지 못할, 치열하고 극적인 드라마가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미생물이라는 존재를 처음 발견한 레벤후크는, 홀로 탐구를 거듭하여 역사적인 발견을 해냈다. 레벤후크는 말 그대로 자기 연구의 알파에서 오메가까지를, 오로지 혼자서 수행했다. 직접 만들고 개량한 망원경을 사용했고, 직접 구상한 새로운 실험을 주문제작한 실험도구로 수행했고, 새로운 것이 발견되면 정리했다. 실험을 구상하고, 실행하고, 이론으로 만드는 것을 모두 혼자서 해낸 것이다. 새로운 영역에 발을 디디고, 선행되고 축적된 지식이 없는 백지 상태로 척박한 환경을 개척하는 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업적까지 남겼다. 황무지를 홀로 개간하고, 꽃까지 피워낸 것이다. 외부의 도움 없이 홀로 모든 것을 수행한 건 둘째 치고, 정식으로 의학이나 과학 분야의 수업을 받은 적도 없는 사람이 이런 업적을 쌓을 수 있다니, 존경스럽다 못해 경이로운 일이다. 백지 상태로 시작했어도, 끈기 있고 능력 있는 위인이 한 우물만 꾸준히 파면 어떤 경지까지 다다를 수 있는지 몸소 보여주는 사례로 손꼽을 만하다.
개인적으로는 레벤후크가 스스로의 힘만으로 이룩한 연구성과에 못지않게, 당대석학들의 반응도 흥미로웠다. 제대로 학교에 다닌 적도 없는 직공이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를 한다며 무시할 거라고 지레짐작했는데, 레벤후크의 글을 진지하게 읽은 뒤 연구를 인정하고 찬사를 보낸 것이 의외였다. 생각해보면 지극히 온당한 행 보이다. 연구자의 프로필이 어떻건, 연구를 위조한 전적이 없는 이상에야, 발표한 연구내용 자체만을 평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관련학과가 개설된 적도 없는, 전혀 새로운 분야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직공 출신이라고 무시당했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다니, 연구 자체가 아닌 프로필의 학력과 소속단체의 성격을 보고, 이러저러한 경력도 없는 사람의 연구를 어떻게 신뢰하느냐는 식으로 폄하부터 하는 것을 너무나 많이 접했더니, 어느새 그 논리에 익숙해져버린 모양이다. 그런 논리로 폄하하는 것을 볼 때마다 비논리적인 트집잡기라고 생각했는데, 워낙 많이 접하다 보니 익숙해져버린 것을 보면, 보고 들은 이야기가 사고관에 미치는 영향은 과연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스팔란차니 역시 레벤후크처럼, 제도교육 없이 스스로 배우고 연구한 사람이 금 자탑을 쌓아올린 사례이다. 제도교육을 받은 적 없다는 것은 해당 분야의 기본적인 지식조차 익히지 못했다는 의미도 되지만, 동시에 당대 학설이 틀렸을 경우 틀린 학설을 배우지 않고 고정관념도 없다는 의미도 된다. 후자의 경우, 틀린 기존 학설에 발목잡히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밝히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스팔란차니가 그랬듯이 말이다.
스팔란차니 시대에는 미생물은 스스로 생겨난다는 것이 상식으로 여겨졌다. 스팔란차니는 면밀한 실험을 통해 외부와 차단된 곳에서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미생물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당시 학자들은 갖가지 경우의 수를 상정하고 기발한 설명을 착상해내며 그 실험결과를 ‘상식’에 끼워 맞추거나, 아예 스팔란차니의 저술을 무시해버렸다. 오컴의 면도날, 가장 간단한 것이 해답인 법이거늘, 기존 이론을 지키기 위해 별의별 무리수를 동원해 기상천외한 해명을 늘어놓는 모습이 황당하기까지 했다. 이런 일은 비단 스팔란차니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혁신적인 이론을 발표했을 때마다 마치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었다. 최종결과를 알고 있는 입장에서 그런 억지를 늘어놓는 모습을 보면, 답답해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 자기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건, 단순히 상대가 자신보다 유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이 믿어온 세계가 진실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리고 그 이야기를 반박할 가망이 아직 보인다면, 그 ‘가망’에 매달리지 않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자기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건, 그것을 진실이라 믿어온 지난 세월을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고, 그렇다면 처절하고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것도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아집은 학문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거나, 오히려 발목을 잡기 마련이다. 본전 생각을 하면서 큰 손실을 본 투자처에 계속 매 달리는 심정과 다름없다. 매몰비용에 매몰되었다가는, 본전은커녕 오히려 추가손 실만 발생하기 일쑤이며, 학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자신이 틀린 이론을 붙잡고 있으며 전전긍긍하고 있는 동안에도, 선구자는 저 멀리 앞질러 가고 있을 테니 말이다.
스팔란차니 챕터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기술적 한계를 발상의 전환으로 극복하는 모습이었다. 당시 기술로는 플라스크를 완전히 밀봉할 수 없었고, 완벽히 밀봉했다고 생각한 플라스크에서 시간이 지나면 미생물이 생기고는 했다. 당시 학계에서는 이것을 미생물이 스스로 생겨난다는 자연발생설의 증거라고 여겼지만, 스팔란차니는 완벽히 밀봉하지 못해서 허점이 생긴 결과라고 생각했다. 스팔란차니는 그저 입구를 꽁꽁 싸매는 방식으로는 플라스크와 외부 공기를 완전히 차단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실제로 옳았다. 하지만 그 가설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당시 기술로는 플라스크를 완전히 밀봉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말이다. 스팔란차니는 발상의 전환과 과감한 시도로 기술적 난제를 해결했다. 플라스크의 입구를 아예 유리를 녹여 땜질해버린 것이다. 플라스크를 개봉해야 할 때에는 유리로 때운 입구를 깨뜨렸다. 예술 분야에서는 발상의 전환이, 재료의 한계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사례가 여럿 있다. 예를 들어 중세 시대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는, 당시 기술로는 큰 유리판을 만들어낼 수 없었기 때문에 작은 유리조각들을 조립하자는 발상에서 출발하며, 작은 색유리 조각들이 영롱한 빛의 형상을 만들어 내는 스테인드글라스 예술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난 이런 일이 기술, 과학 실험 쪽에서는 일어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예술이 기술을 응용하는 것이라면, 실험은 기술 자체의 극한을 추구하는 것이니, 기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스팔란차니의 실험을 보고, 발상의 전환은 과학실험에서의 기술적 한계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레벤후크와 스팔란차니는 사택의 개인연구실에서 혼자서 연구하며 역사적인 발견을 해냈다. 그들도, 그들의 반대자들도 개인이 실험할 수 있는 규모의 실험을하거나, 실험을 하지는 않고 이론만을 착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파스퇴르와 코흐의 시대에 이르러, 미생물 연구의 스케일은 개인 공간의 영역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수많은 실험동물을 대상으로 여러 명의 조수를 진두지휘하며 연구하는 시대, 동시에 개인의 학문세계를 벗어나 사회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연구가 진행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사회의 동향, 당대의 역사적 사건 등은 관련 미생물 연구에 조금씩 영향을 주기 시작했고, 사회의 요구와 미생물 연구의 경향이 긴밀히 맞물리는 데 이르게 된다. 학자 개인이 흥미를 가진 대상을 개인연구실에서 홀로 연구하는 시대가 아니라, 사람들이 두렵게 여기는 병을 미생물학자가 연구하고, 실험과 연구를 거듭하여 그 병을 퇴치하거나, 적어도 효과적인 예방법을 알아내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 첫걸음을 뗀 인물은 파스퇴르였다. 파스퇴르 챕터를 읽으면서, 산학협력과 응용과학의 이상적인 모습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포도주 양조자가 포도주가 시큼해진다고 연락했을 때, 목장주가 탄저병 때문에 가축들이 죽어나간다고 했을 때, 양잠업자가 누에가 집단으로 괴사하는 사태에 대해서 제보했을 때, 파스퇴르는 현미경을 들고 곧장 출동하여 미생물을 관찰했다. 그리고 미생물을 찾아냈고, 미생물의 특성을 파악하여 대처법도 강구했다. 산업현장을 기습한 미지의 사태를 과학으로 해결한 것이다. 파스퇴르가 성공하자, 사람들은 과학이 질병을 해결해줄 수 있다는 기대를 품기 시작했다. 이 기대는 막연한 믿음에서 그치지 않고, 학술적 성취뿐만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라도 과학 연구에 도움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으로 발전했다. 보다 본격적으로 대처법을 강구하기 위해 여러 조수와 학자가 합동해서 연구하게 된 것도,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의 후원금이나 국 고로 과학연구를 후원하게 된 것도 파스퇴르 때부터였다. 그리고 국수주의 정서가 과학연구를 가로막는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파스퇴르와 코흐의 대립, 정확히 말해 파스퇴르와 코흐를 둘러싼 프랑스인과 독일인의 대립은 국수주의 정서가 양날의 칼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자랑스러운 우리 나리의 과학자’를 위해서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과학 연구를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나라가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는 순기능도 있었지만, 역기능도 뚜렷했다. 외국 과학자의 공헌을 인정하는 것을 조국에 대한 배신처럼 여기거나, 외국 과학자를 무턱대고 깎아내리는 것을 애국하는 것처럼 여기는 풍조가 형성되는가 하면, 어떻게든 외국의 라이벌보다 앞선 실적을 내라면서 과학자를 닦달하기도 했다. 이런 식의 풍조는 성급하고 허술하게 실험해서라도 그럴싸한 결과 물을 내라고 강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일정을 앞당긴답시고 부실공사를 강요하면, 안전한 건물을 기대할 수 없는 법이다. 코흐는 제대로 검증하지도 않은 결핵 요법을 성급하게 시도했다가 여러 희생자를 낳았는데, 주변에서 파스퇴르를 의식하며 실적주의식 사고방식을 코흐에게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그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감정은 파스퇴르의 제자인 에밀 루와, 코흐의 제자 격인 에밀 베링에게서도 이어졌다. 루와 베링은 동시기에 같은 주제로 연구를 했는데도, 협력은 고사하고 상대방과 교류하는 것조차 반감을 가질 정도였다. 두 사람이 각각 따로 연구하면서 중복되고 낭비된 것이 얼마나 많았을까? 루와 베링이 서로를 깎아내리려 소모했던 시간과 기력은 또 어떻고? 루와 베링이 같이 협력했다면, 디프테리아 혈청은 훨씬 빨리 발명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말라리아 연구의 공헌도를 두고 로스와 그라시가 벌인 설전에 대해“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상대방에게 조금이라도 명성을 안겨 주느니 차라리 훌륭한 발견을 묻어 두려고 했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표현했는데, 이런 대립각은 로스와 그라시 사이에서만 보인 것이 아니었다. 국수주의 정서가 끼어들면, 로스와 그라시의 신경전은 아이들 장난으로 보일 법한 난장판이 일어나고는 했고, 이런 감정은 종종 나쁜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과학자 개인의 적대감 덕분에 협력할 기회를 놓치거나 멀쩡한 연구 결과를 폄하하는가 하면, 일반인들의 국민감정까지 더해지면 점입가경이 되기 일쑤였다. 국수주의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과학자의 업적을 나라 간의 대결이 아닌 개인의 공헌으로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면, 과학은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과학은 정확하게 실험하고, 그 실험결과를 엄정하게 검증한 뒤에야 발표하는 것이 온당하다. 또한 그럴싸한 추측만으로는 부족하며, 반박할 수 없는 증거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미생물처럼 생명과 직결되는 긴급한 사안에서,이 원칙은 어디까지 적용되어야 할까? 시어벌드 스미스의 텍사스병 챕터와 월터리드의 황열병 챕터는 이 아이러니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 북부의 농부가 남부의 소를 사들여 자기 목장으로 옮기면, 한 달여가 지난 후 소가 쓰러져 죽는 일이 속출했다. 텍사스병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병은 아무리 건강한 소를 사들여도 나타나고는 했다. 스미스는 연구를 통해 텍사스병의 원인이 진드기라고 짐작하게 되었고, 그의 짐작은 옳았다. 하지만 스미스는 진드기를 박멸해야 한다는 발표를 하지 않았다. 정말로 진드기가 원인인 것인지 몇 년 동안 면밀한 실험을 거듭했고, 마침내 진드기가 원인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규명할 수 있게 된 뒤에야, 비로소 발표했던 것이다. 스미스는 진드기를 없애야 한다고 했고, 그의 말대로 진드기를 박멸하자 텍사스병 발병사례는 더 이상 보고되지 않았다.
스미스는 비난받아야 할까, 그 반대일까? 과학원칙이라는 측면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내지는 그래야만 하는 행동이었다. 학문적 증거를 논문 형태로 갖추어 발표하지 않았다면, 아마 증거 없는 낭설 취급을 받았을 테니 말이다. 정황증거밖에 없고 잠정결론밖에 내리지 못했는데, 과연 받아들여졌을까? 밑져야 본전이라면 그랬겠지만, 긁어 부스럼이 될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 텍사스병의 진짜 원인은 진드기가 아닌 다른 미생물이며, 진드기는 그 미생물의 천적으로 미생물을 잡아먹으며 그나마 사태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가정대로라면, 진드기가 진짜 원인이 아니면서도. 진드기가 있는 곳에서만 텍사스병이 나타나는 현상이 충분히 설명된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진드기를 잡았다면, 오히려 텍사스병 원흉의 천적을 없앤 격이 되어 상황을 악화시켰을 것이다. 이미 비슷한 전례가 있었으니, 무시할 수만은 없는 가정이었다.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있는가? 스미스는 가능성이 0%가 아닌 이상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몇 년 동안 지루한 확인실험을 수행했고, 모든 것이 확실해진 뒤에야 마침내 발표했다. 과학적 원칙을 훌륭히 이수한, 흠잡을 데 없는 행보였다. 스미스의 완전무결한 실험 앞에서는 반론을 제기할 여지가 도저히 없었고, 스미스의 방안은 곧바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진드기를 없애야 한다는 잠정결론이라도 진작 발표했다면, 텍사스병은 몇 년 일찍 퇴치되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스미스의 딜레마는 오늘날에도 결코 낯설지 않다. 임상실험 논란의 본질과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질병을 호전시킬 것이 거의 확실하게 기대되지만 아직 완벽히 검증되지는 않은 약이 있다면, 환자에게 그 약을 처방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모든 것이 완벽히 검증될 때까지 미루는 것이 옳은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하는 환자가 후자를 원한다면, 후자를 처방하는 것이 얼마나 온당한 일인가. 후자를 택한 환자의 몸 상태가 오히려 나빠졌다면, 의사에게는 얼마나 책임이 있는 것일까. 생명과 직결되는 곳에서 성급함과 신중함, 신속함과 지지부진함의 경계는 어디에 있을까. 그 사이에 과연 뚜렷한 경계선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아마 이 딜레마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질병이 완전히 박멸되지 않는 한,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월터 리드의 황열병 연구에서는 또 다른 딜레마가 전면에서 드러난다. 아무리 유력한 이론도 실험을 한 뒤에야 수용하는 것은, 원칙적으로는 온당한 일이다. 아 무리 완벽해 보이는 이론도, 통제할 수 없는 변수와 예기치 못한 사태가 일어나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일은 종종 일어난다. 그런데 질병에 관한 학설을 입증하기 위해서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해야 한다면, 즉 건강한 개인을 질병에 걸릴지도 모르는 환경에 밀어 넣어 정말 병에 걸리는지 아닌지를 확인해야 한다면, 이 실험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 수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한 실험일까, 멀쩡한 생명을 희생시키는 실험일까? 월터 리드의 황열병 연구 및 실험은, 질병의 치료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면 목숨이라도 바칠 각오가 된 사람들이 자원했고, 치료제도 상비한 상태에서 진행되었지만, 그렇다고 이 딜레마가 희석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딜레마가 있다고 해서, 그 실험 덕분에 정확히 어떤 환경에서 황 열병에 걸리고, 어떤 환경에서는 황열병이 발발하지 않는지는 면밀히 판별할 수 있게 되었고, 그를 토대로 구체적으로 실제적인 황열병 예방대책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는 의의가 사라지는 것도 역시 아니다.
황열병 환자의 물건을 통해서 황열병이 감염되는 것인지를 확인하는 실험에서, 이 딜레마는 정점을 찍는다. 당시에는 황열병 환자들이 쓰던 물건과 접촉하면 황 열병이 옮는다는 두려움이 널리 퍼져 있어서, 황열병 환자들의 쓰던 물건은 모두 불태웠다. 월터 리드는 이 소문을 검증하기 위해, 자원자들이 황열병 환자들이 쓰던 물건으로만 꾸민 방에서 생활하게 했다. 시간이 지나도 황열병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자, 한 단계 더 나아가 황열병 환자의 침상에서 지내게 했다. 이번에도 황열병에 걸린 사람은 없었다. 황열병 환자들이 쓰던 물건과 접촉해도, 황열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 완벽히 입증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그 두려움을 완전히 떨쳐낼 수 있게 되었다. 수많은 물건들이 무의미하게 폐기처분되는 상황이 중지되었다는 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효과다. 어떤 물건을 보고 이 물건이 혹시 황열병 환자와 접촉한 적 있는 물건인 것은 아닐지, 만약 그렇다면 손이 닿기만 해도 황열 병에 걸리는 것은 아닌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적인 치료법을 찾는 실험도 아니건만, 오로지 사람들의 두려움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본인이 황열병에 걸릴 것을 각오하고 살신성인의 희생정신으로 몸을 내던진 사람들이 몸소 증명해준 덕분에 말이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불철주야 연구를 거듭하며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예방할 대 책도 치료할 방법도 없어 보였던 수많은 질병은 하나씩 정복되고 있다. 파울 에를리히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특정 미생물만 맞춤형으로 공격하는 화학요법을 개발해냈고, 에를리히의 뒤를 이은 후학 연구진들의 분투 덕에 갈수록 정교하고 방대한 화학요법이 새로이 등장하고 있다. 덕분에 우리들은 백여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했을 만큼 평온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황열병, 디프테리아, 공수병, 말라리아 등은 과거에 수많은 사람을 공포로 몰아넣었지만, 오늘날 그런 병은 예방주사를 맞거나 아주 기초적인 안전수칙만 준수해도 발병할 일이 없고, 만약 걸리게 된다고 해도 금세 치료할 수 있다. <소설처럼 읽는 미생물 사냥꾼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이런 환경이 어떤 과정을 위해 조금씩 쌓아올려졌는지, 학자들이 어떤 연구를 통해 온갖 미생물의 공포를 하나씩 극복해왔는지를 눈에 보이듯이 생생하게 그려내며, 그것이 없던 세계가 얼마나 무서웠는지조차 모르는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학자들은, 비단 무턱대고 노력하기만 해서 성공에 다다른 것이 아니었다. 무조건 열정적으로 노력하기만 한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노력 없는 성과는 없어도, 노력이 반드시 성과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거나 선구적인 업적을 쌓는다는 측면에서는 그렇다.
이런 분야에서 노력만 하면 무언가를 해낼 수 있으리라는 것은, 아무 땅이나 골라잡고 끝없이 땅을 판다면 언젠가는 유전이 솟아오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유전을 원한다면, 우선 유전이 있을 만한 장소를 지질학적 조사 등으로 물색한 뒤에 지목된 장소를 파야 하는 것이다. 이쪽이 실패할 수도 있지만 성공할 수도 있고, 기술 수준에 따라서 성공할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면, 전자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방법에 가깝다. 어쩌다가 한 번쯤은 운 좋게 성공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게 좋은 방법이라 진심으로 믿는다면, 수주대토 격밖에 되지 못한다. 그나마 수주대토 고사에서 농부가 한 것이란 토끼가 자기 앞의 말뚝에 부딪혀 죽는 행운이 또다시 일어나기를 고대하며 마냥 기다리기만 한 것밖에 없었기에 품이라도 안 들었지, 무언가를 연구할 때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쏟아 붓고는 막상 제대로 된 결과는 얻지 못하는 사태가 초래될 수도 있다.
이 책의 미생물학자들은 물론 초인적인 노력으로 꾸준히 정진했지만, 그것만으로 업적을 달성한 것은 아니었다. 치밀한 계획을 세웠고, 정확하게 수행했으며, 면밀하게 연구했고, 무엇보다 기존의 이론에 얽매여 연구결과를 끼워 맞추지 않고, 보다 열린 자세로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다른 사람이 발 디딘 적 없는 영역을 개척해낼 수 있었다. 그들은 땅을 파서 유전이 나올만한 곳이 어디인지 파악하거나, 최소한 그럴 가망이 있는 곳을 파악할 여력이 있었고, 그 곳에 자신의 노력을 쏟아 부을 각오가 되어 있었으며, 또한 땅을 파다가 유전이 아니라는 조짐이 보이면 매몰비용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접을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간혹 계획한 적 없이 즉흥적인 기분으로 실험해본 것이나, 오히려 실험계획과 어긋나게 실수한 것이 정답을 가져다준 적이 있는데, 이것을 가만히 있다가 운 좋게 얻어걸린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해이다. 그들은 언제든지 심상찮은 조짐을 포착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예기치 않은 징조가 보이면 그것을 포착해냈을 뿐이다.
실수가 큰 발견으로 이어진 것은, 객관식 문제를 대충 찍었는데 정답을 맞혀버린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그 ‘실수’도 언제든지 다시 재현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면밀히 기록한 사람만이, 실수가 가져다준 행운을 역사적 발견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아무 것도 기록하지 않고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본인 실수로 일어난 그 상황을 다시 재현할 수 없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시적 해프닝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소설처럼 읽는 미생물 사냥꾼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학설이나 발견을 발표했다가 기존 학계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힌 경험을 한 번쯤은 해보았으며, 연구에 매진하는 것 못지않은 기력을 기존 학설에 대항하는 데 쏟아 부은 사례도 있을 정도다. 그 반대자들은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했거나, 구습에 얽매여 선구적 발견을 공박한 시대착오적 인물 정도로만 가끔 회자될 뿐이다. 그 사람들은 게으르고 나태하고 무능했기에, 역사적 업적을 쌓지 못했던 것일까? 앵무새처럼 남의 말을 반복하기만 하니까 그린 된 것일까? 그런 경우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진정성 있고, 성실하고, 자신이 공부하고 실험한 결과 기존 이론이 옳다고 판단하여 진정으로 믿은 학자도 많았다. 그 중에는 이 책의 주인공보다 훨씬 학식 있고 존경 받는 위인이었으며, 그럴 자격이 충분한 인물도 여럿 있었다.
그들의 운명을 가른 것은, 새로운 발견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었다. <소설처럼 읽는 미생물 사냥꾼>들은 실패 한 적 한 번 없이 쭈욱 성공만 하다가, 어느새 업적을 쌓게 된 것이 아니었다. 가만히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학설이 번뜩 떠올라 역사적 발견을 하게 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실험이 지지부진한 상황을 수없이 겪었고, 실패한 적도 많았고, 때로는 실험 실패가 치명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시도가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것을 경험으로 삼았다. 실패하는 길을 제거하며 실패하지 않는 길을 꾸준히 탐색하다가, 마침내 그 길을 찾아내는 데 성공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진정한 성공이란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인정하는 것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절절하게 절감했다. 이 책이 비단 미생물 학자의 업적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노력하는 개인의 성공담으로서도 큰 호소력을 가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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