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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이것은 월고(月皐) 조성가(趙性家)가 동문(同門)의 벗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1846∼1916, 字 會一, 號 松沙, 本貫 幸州)에게 보낸 서찰이다. 먼저 상대방과 상대방 형제 및 가족의 안부를 묻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 근황을 전한 다음, 이어서 선사(先師) 기정진(奇正鎭, 1798∼1879, 字 大中, 號 蘆沙, 本貫 幸州, 諡號 文簡)의 문집(文集) 󰡔노사집(蘆沙集)󰡕과 선사 기정진의 저술 󰡔답문유편(答問類編)󰡕을 구하는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미 장정(裝幀)을 하고 제첨(題籤)까지 해서 다른 사람이 보고 있는 것이라도 무방하니, 지난 서찰에서 자신이 부탁한 대로 각각 2질씩 구해 달라고 하고, 그것조차 어렵다면 각각 1질씩이라도 구해서 심부름꾼을 한 사람 수배해 보내달라고 하였다. 끝으로 그곳으로 한 번 찾아가서 선사의 묘소(墓所)에 참배하고 남아 있는 동문(同門)들을 두루 찾아보려는 뜻을 하루도 잊은 적이 없기에 이달 그믐쯤 자기 둘째 아우 대상(大祥)을 지낸 후에 한 번 가보려고 하는데, 300리 먼 길을 노쇠한 몸으로 움직이는 것이 어려우니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그렇더라도 꼭 가보려고 한다고 하였다. 이 서찰은 임진년(1892, 고종29) 2월 초6일에 발송하였다. 조성가의 󰡔월고집(月皐集)󰡕 권11에 「여기회일 임진(與奇會一 壬辰)」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것은 원본(原本)이고, 문집(文集)에 실린 것은 수록하는 과정에 내용 중 일부가 수정(修訂) 또는 산삭(刪削)되었다.
번역서
본문(本文), 지난 섣달 그대 형제 편에 보낸 서찰은 생각건대 보았을 것입니다. 새봄에 된 이후로 그대 형제들의 체후(體候)는 화평하고 길하며, 온 집안사람들은 아주 복되며, 그대 조카는 봄이 지나면서 능히 선대(先代)를 계승할 생각을 가져서 학문(學問)과 행실(行實)의 단서(端緖)는 거의 볼만한 것이 있는지요? 그리고 뭇 조카들도 모두 훌륭하게 학문(學問)에 뜻을 두고 있는지요? 그대 자제 하남형(河南兄, 奇洛度)은 뭇 닭들 중 한 마리 학(鶴)으로서 자랑거리이니 몹시도 생각이 납니다. 가르쳐 이끄는 방책으로 집에는 어진 스승이 있어서 장차 선조(先祖)를 욕되게 함이 없을 것이니 어찌 나머지 사람들이 비할 것이겠습니까. 전국 팔도의 피폐한 고을 중 나주(羅州)와 진주(晉州) 등은 사람들이 돌아와 이미 굴뚝에 연기가 오르게 되었으니, 거듭 옮기게 되면서 학정(虐政)을 모르고 지내는 즐거움을 노래하게 되었는지요? 지금은 어느 고을이나 그러하지 아니함이 없으니, 일단은 무창(武昌)의 물고기를 배불리 먹는 것 무창(武昌)……것: 이주한 곳이 곤궁하더라도 원망하지 말고 그 생활에 잘 적응하라는 말이다. 삼국시대 오(吳)나라 손호(孫皓, 242∼284)가 도읍을 건업(建業)에서 무창(武昌)으로 옮기니, 백성들의 생활이 곤궁하여 원망이 높았다. 그러자 육개(陸凱, 198∼269)가 “차라리 건업(建業)의 물을 마실지언정, 무창(武昌)의 물고기는 먹지 않겠네. 차라리 건업으로 돌아가 죽을지언정, 무창에 머물러 살지 않겠네.[寧飮建業水, 不食武昌魚. 寧還建業死, 不止武昌居.]”라고 하는 민간의 노래를 들어 상소한 일이 있다. 《三國志 卷61 吳書 陸凱傳》
이 뜻을 이룰 계책이 아님을 어찌 알겠습니까. 대개 이 한 가지 일은 몹시 말하기 어렵습니다. 저 성가(性家)는 늙으신 부모님의 근황이야 이치가 그러하므로 족히 말할 것이 못 됩니다. 정초(正初)부터 온 가족이 건강한 사람이나 약한 사람이나 할 것 없이 돌아가면서 병에 계속 감염되어 한 달이 지나도 오히려 시름시름 앓고 있습니다. 저는 비록 혼자 면하였지만 노인들은 걱정하시느라 거의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이생(李生) 이생(李生): 미상.
이 돌아가는 길에 다시 저를 찾아온다는 사실을 비록 알고 있었지만 미리 서찰 1통을 써 두지 못하였는데, 그의 방문을 받고 서찰을 쓰자니 어찌 만 가지를 다 빠뜨리고 겨우 한 가지를 쓰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선사(先師, 奇正鎭)의 문집(文集) 󰡔노사집(蘆沙集)󰡕 2질과 선사의 저술(著述) 󰡔답문유편(答問類編)󰡕 󰡔답문유편(答問類編)󰡕: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이 제자들과 학문적인 문제로 문답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15권 6책이다. 1891년(고종28) 목활자(木活字)로 초간(初刊)하였고, 1902년(광무6) 목판본(木板本)으로 중간(重刊)하였다.
2질[비록 이미 표지(表紙)에 제첨(題籤) 제첨(題籤): 새 책 표지에 서명(書名)을 손으로 직접 쓰는 것을 말한다.
을 한 것이라도 무방합니다.]을 보내달라고 지난번 서찰에서 상세하게 간청하였는데 기꺼이 잊지 않고 따로 생각해 두고 계시겠지요? 각각 2질씩 4질이 이미 어려운 상황이라면, 비록 각각 1질씩 구하더라도 괜찮으니 아끼지 말고 심부름꾼에게 맡겨 보내주시기를 몹시 간절하게 바랍니다. 또한 이생(李生)에게도 이미 따로 부탁해 두었습니다. 찾아가서 선사의 묘소(墓所)에 참배하고 동문(同門) 중 남아 있는 벗들을 두루 찾아보려는 뜻은 하루도 절실하지 않는 날이 없으니, 이달 그믐쯤 제 둘째 아우 대상(大祥)을 지낸 후에 도모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300리 먼 길을 노쇠한 몸으로 한 번 움직인다는 것이 이보다 더한 어려움이 없으니, 어찌해야 할는지요? 그러나 있는 힘을 다해 가 보려고 하는 뜻은 그칠 때가 없습니다. 다 말씀드리지 못하고 이만 줄입니다. / 착서(着署), 임진년(1892, 고종29) 2월 초6일. 조성가(趙性家) 배(拜).
원서
去臘沙鴈寄聲 想關聽矣 新春以後 韡床節宣平吉 闔眷多祉 令姪春度能念趾先 而文行之端 庶有可觀否 羣從皆兟兟志學否 玉胤河南兄詡之以雞羣之鶴 可念可念 敎導之方 家有良師 將就無忝 豈餘人之比也 八省弊邑羅晉等 已黔之突 坐於重遷而詠萇楚之樂耶 目今無邑不然 姑喫武昌魚 安知非得計耶 蓋此一段 難言難言 性家隆況理也無足言 自正初渾眷 無論壯弱 輪感澒洞 經月尙圉圉 吾雖獨免 而老眉之皺 殆無虛日 以是雖知李生之回路更訪 而不能預寫一緘 及其被訪 安得不漏萬掛一 先師集二袠及答問類編二袠(雖已題籤者無妨) 詳懇於前書 噬肯另念否 四袠旣難 則雖各一袠求得乃已 勿靳委送一伻 千萬千萬 亦已傍托於李生耳 往謁先師墓 遍訪同門餘友之志 非日不切 而待今晦間 經阿仲終祥後圖之 然三百里衰腳一動 難莫難矣 奈何奈何 然竭蹷之志未已也 不宣
壬辰二月上六
趙性家 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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