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에 대하여(오늘의 젊은 작가 17)(양장본 HardCover) 작가 김혜진 출판 민음사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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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를 아는가? 아마도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익숙해진 모양새가 아닐까 싶다. 손에 잡기 쉬운 128x188cm 의 사이즈와 하드커버로 덮힌 양장본의 형태.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으로 활약한 정유미씨의 차기작이 될 ‘보건교사 안은영’도 이 시리즈의 하나이다. 왜 굳이 책의 내용이 아니라 이 시리즈에 대한 것을 먼저 언급하냐 하면, 사실 ‘딸에 대하여’는 단순히 책의 외형만을 보고 집어든 책이었기 때문이다. 이후에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도서관 서가에 늘어진 비슷한 외형의 책들을 보고 나서야 시리즈임을 깨닫고 관련 서적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읽게 된 다른 책들이 있지만, 지금은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에 이만 줄이고자 한다.

    ‘딸에 대하여’ 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엄마와 그녀의 딸, 그리고 딸의 동성 연인에 관한 이야기라고 요약되어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이것은 오로지 ‘나’. 그러니까 딸 가진 어머니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나’, 이 책을 읽고 있는 나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였다. 딸을 지켜보는 어머니 ‘나’를 그리는 이야기. 이 책의 제목이 ‘엄마에 대하여’ 가 아니라 ‘딸에 대하여’ 인 이유이다. 언제 한 번은 그 입장을 되돌아 본적이 있던가. 나 또한 그 딸처럼 당신을 괴롭게 했던가. 가독성 좋은 판형과 담담한 문체와는 다르게 책장을 넘기는 데에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차마 더 읽어내기가 힘들어서, 라고 하기엔 나 또한 ‘나’처럼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교사라는 직업까지 버려가며 홀로 키운 외동딸이 잘 자라나는 것. 그것은 누구라도 그 입장이 되면 바라게 될 것이다. 내 자식이 굳이 가시밭길 위로 걸어가지 않기를, 그 애 앞에 높은 벽이 서지 않기를. 그럼에도 딸, 그린은 ‘나’가 보기에는 그저 어렵고 힘든 길로 가려 든다. 7년째 동성과 연애를 하며, 동료를 자른 학교에 시위를 하는 시간 강사.


    "요리도 잘하고 청소도 잘하는 그 애는 왜 결혼을 하지 않는 걸까.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엄마가 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일. 그런 의미 있고 대견한 일을 할 생각을 하지 않고 무의미하게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걸까." (61쪽)

    "그래. 그럼 소꿉장난이 아니라는 걸 어디 한번 말해 봐라. 너희가 가족이 될 수 있어? 어떻게 될 수 있어? 너희가 혼인 신고를 할 수 있어? 자식을 낳을 수 있어? "(107쪽)


    그런 딸을 보며 외치는 ‘나’의 말은 누군가에겐 너무 진부하고 낡은 논쟁.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기 힘든, 이미 굳어진 기정 사실.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사회가 멋대로 만들어버린 잘못. 이성과 결혼을 하지 않는 것도, 사랑스러운 동성 연인도. 그저 그에게는 당연할 뿐이다. 오히려 제게 그런 말을 하는 ‘나’가 미울 뿐이다. 엄마는 그러면 안 되지. 세상이 나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엄마는 나를 이해해줘야지.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며?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며? 다른 게 나쁜 게 아니라며? 그거 다 엄마가 한 말 아냐? 그런 말이 왜 나한테는 항상 예외인 건데.”


    진부한 논쟁이긴 하다. 모든 사람을 ‘정상적인 가족’ 이라는 틀에 끼워 맞추려는 생각은 낡은 생각이다. 세상은 점점 편견과 배제를 버려가고, 낡은 생각은 이제 깨부수어야 할 때이다. 하지만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이해하는 것’ 과 ‘받아들이는 것’은 조금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이야기 속에서 ‘나’ 는 끝내 깨닫는다. 한 발 물러서는 법, 한 발 양보하는 법. 그것은 그의 딸도 마찬가지이다.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일 때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 발 물러설 때까지 서로가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했는지는 안다. 그렇기에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아프게 깨달았다. 이대로 딸애를 계속 당기기만 하면 결국 이 팽팽하고 위태로운 끈이 끊어지고 말겠구나. 이대로 딸을 잃고 말겠구나. 그러나 그게 이해를 뜻하는 건 아니다. 동의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다만 내가 쥐고 있던 끈을 느슨하게 푼 것뿐이다. 딸애가 조금 더 멀리까지 움직일 수 있도록 양보한 것뿐이다. 기대를 버리고, 욕심을 버리고, 또 무언가를 버리고 계속 버리면서 물러선 것뿐이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딸애는 정말 모르는 걸까. 모른 척하는 걸까. 모르고 싶은 걸까.” (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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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감되는 노래를 듣는 거와 같이, 이 이야기가 딸인 사람들에게 공감 또는 위로(?)를 줄 수 있는 책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책 추천 감사합니다
    • 이해하는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라는 말에 정말 공감합니다. 제 편협한 사고를 개선하는 데 정말 도움이 될 것 같은 책이네요. 꼭 읽어보겠습니다. 좋은 후기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