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플란트 전쟁 작가 고광욱 출판 지식너머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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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치과가 무섭다. 드릴 소리며, 치아와 턱관절에 느껴지는 뻐근한 고통이며, 잇몸을 뚫고 들어가는 주사가 무섭다. 그러나 그 중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고통의 진료를 마치고 나왔을 때 받아드는 청구서다. 이 때문에 단것 조차 꺼리는 나는, 서점에서 이 책을 보고 바로 집어들었다. 치과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란 점 때문에 흥미가 생기기도 했고 1년 전에 임플란트 치료를 받아서 한국 치과계의 부조리함을 고발했다는 이 소설의 내용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임플란트 전쟁>은 치과 의사들끼리 담합해서 임플란트 비용을 300만 원으로 정하고 그 가격을 지키지 않고 더 저렴하게 가격을 책정한 치과 의사를 블랙 리스트에 올려 왕따시키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심기를 건드리는 환자들까지 블랙 리스트에 올려 자신들의 권위를 공고히 다지려는 치과 의사들의 찌질한 모습을 묘사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분노를 유발하는 사회 고발 소설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우리 동네 치과에서 임플란트를 할 때 130만 원의 진료비만 내고 끝낸 내가 참으로 운이 좋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작품의 내용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난 평생 한 치과밖에 이용하지 않아서 소설에서 얘기하는 '너무 비싼 치과 진료비'에 실질적으로 공감이 가지 않았다. 다른 치과가 정말로 세 배 이상의 가격으로 임플란트를 해준다면 병원마다 가격 차이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대체 임플란트의 적절한 가격은 무엇이며 그 적절한 기준이란 또 무엇인가. 이 소설은 현직 치과 의사가 실제로 목격하거나 경험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성된 일종의 논픽션이자 작가의 직업이 직업인 만큼 내용이 아무리 소설적이어도 마냥 소설 속 이야기로만 치부하기가 쉽지 않았다. 속된 말로 배운 놈들이라고 더 나을 게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정말로 가관인 것은 그들의 선민의식이 너무도 견고한 나머지 비상식적이고 찌질한 조직 문화에 쉽게 물들고 오히려 자신들이 실로 합당하고 정의로운 일을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 뻔뻔스러운 자기합리화는 업계 사정을 모르고 읽으면 논리적인 것 같아 읽으면서도 종종 헷갈렸다. 사실은 주인공이 혼자 고집을 부려가며 그래도 자신은 양심 있는 의사라고 일종의 자기만족에 취한 것은 아닌지 말이다.

    작가의 분신일 작품의 주인공은 임플란트의 재료비며 수술 과정의 수고로움이 300만 원은 너무 과하다 생각해 더도 덜도 말고 합리적 가격인 100만 원으로 치료비를 책정한다. 그러자 바로 치과협회로부터 압박이 들어오는데 자신의 양심을 끝내 외면할 수 없던 주인공은 조직의 룰을 따르지 않는다.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조직의 으름장은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서 동료 의사들로부터 '자기 혼자만 치료비를 낮춰 환자들을 독식하려는 파렴치한 의사', '낮은 치료비의 단가를 맞추기 위해 저질 재료를 쓰는 의사 자격 없는 자', '동료 의사를 생각하는 마음이 없는 이기적인 불순분자라 척결 대상에 불과하다.'면서 온갖 악의적인 소문과 임플란트 재료 공급 업체에 압박 및 간호사나 치위생사도 주인공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만드는 등 주인공을 고뇌와 인내의 시간을 걷게 만든다.

    비단 치과만의 문제가 아닌 의료계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심리, 자기는 남들보다 배로 공부하고 노력했으니 돈도 그만큼 많이 벌어야 한다, 그 정신에 위배하는 행동을 보인 동료는 동료도 아니고 바로 배척해야 한다는 심리는 이 작품에서만 묘사되는 것이 아니다. 각종 드라마, 영화에서 무수히 다뤘는데 이걸 단순한 설정이라 여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법조계와 의료계 종사자는 직업 윤리나 사명감을 위해서가 아닌 부와 명예를 거머쥐기 가장 좋은 직업으로 인식되고,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적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사회적 성공을 위해 해당 업계에 들어가려고 공부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엔 절대다수가 아닌가 싶다. 직업을 택한 목적이 목적이다 보니 도저히 도덕적 해이가 아니고선 저지를 수 없는 짓을 터무니 없이 손쉽게 저질러 많은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해 이 작품이라고 특별히 충격적이진 않았다. 치과라고 별반 다르지 않구나 하고 느꼈을 뿐이지.

    작년에 갔던 동네 치과는 양심적인 치과인 것인지 아니면 이 소설 속 내용이 과장인지 몰라도 자기 양심을 지키는 의사가 생각보다 소수라는 건 우리나라에선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 아닐까 싶다. 물론 법조계든 의료계든 종사자들이 열심히 공부한 만큼 보상을 받는 것 자체는 틀렸다고 생각지 않지만 그 목적이 그릇된 수단을 낳는 것 같아 이 극단적인 현상을 어떻게 타계해야 할는지 모르겠어 답답하기 그지없다. 북유럽의 경우엔 버스 기사나 의사나 월급에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의사의 수가 적긴 하나 그래도 낮은 보상에도 불구하고 의사 자격증을 딴 참된 의사만 있어 의료의 질이 꽤 좋다고 한다. 제법 고무적인 사례지만 이런 모습을 긍정적으로 여기고 우리나라에 적용하기엔 선민의식에 젖은 기득권이 그 꼴을 가만 두고 보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모든 직업이 평등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위와 같은 북유럽의 풍경은 어떤 의미에서 극단적이라고 생각하니까.

    이 소설이 내놓는 구체적인 대안은 사실상 없다. 일부 책임자, 불건전한 조직 문화를 선동한 우두머리와 그 일파 정도가 고발당했을 뿐 주인공은 여러 페이크 뉴스가 낳은 후폭풍을 다 해결하지 못한 채로 소설은 끝났다. 변호사와 기자인 친구들의 도움으로 인해 치과계의 어두운 부분이 만천하에 공개됐고 주인공도 이 책과 동명의 소설을 써 낱낱이 퍼뜨릴 것이라 다짐할 뿐, 이 작가가 사회 고발 소설이자 권선징악의 이야기 구조를 시원하고 일사천리로 따르는 일종의 판타지를 썼다는 게 나의 감상이다. 현실이 이처럼 순순히 풀리리라 기대하긴 쉽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느껴진다.

    대신 이 책의 진정한 교훈은, 세상은 그래도 힘이 없는 소수의 양심적인 사람이 희생을 감수하고 버티기에 조금씩이라도 좋아진다는 걸 간과하면 안 된다가 아닐까? 아주 고통스럽고 막연하지만 그들의 희생의 가치는 결코 가볍게 여겨져선 안 될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이 판타지적으로 느껴질 만큼 현실이 개판이긴 하지만, 때론 그런 비현실적인 사람들이 현실을 더 좋게 만든다. 세상은 튀어나온 못을 다시 망치로 박지만 여기서 정말로 문제인 건 튀어나온 못인지, 아니면 튀어나온 못을 향해 망치를 드는 세상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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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개인의 정의로운 저항은 너무도 대단한 일이지만, 한 개인이 조직 전체를 상대로 버텨내기는 너무 힘든 일인 것 같아요. 좋은 뜻을 가지고 일어났지만 결국 뽑혀나간 못이 얼마나 많을까요. 조직엔 반드시 감시자가 있어야만 하는 또 하나의 다른 이유를 보고 가네요,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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