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to post to this user's Wall.

  • 맨박스 작가 Porter, Tony 출판 한빛비즈 김숭숭 님의 별점
    4.5
    보고 싶어요
    (0명)
    보고 있어요
    (0명)
    다 봤어요
    (1명)
    고정된 여성성과 남성성이 얼마냐 서로를 갉아먹을 수 있는지, 특히 강인해야하고 울면 안되고 폭력적이어야만 하는 남자들의 세계가 자녀의 양육에 있어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지를 아들과 딸 둘 모두가 있는 아버지가 쓴 책이다.

    맨박스란 남자는 이래야지 하는 고정된 성별 정체성이 남자들의 머리에 씌운 박스를 말한다. 이미 박스를 쓴 남성들은 어린아이의 머리에 박스를 씌우길 주저하지 않으며, 박스를 써 좁아진 시야로 '맨스플레인'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긴다.

    저자는 아들과 딸 모두를 가진 흑인 남성이다. 할렘가에서 자라며 그는 또래집단에 어울리기 위해 연약하지 않고 폭력적이기를 학습받았다. 이른 성 경험을 자랑해야만 했으며 이는 다른 이의 성 착취로 이어지는 사건을 '집단 경험' 하길 강요한다.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된 저자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혐오했음에도 딸과 아들을 다르게 대하는 본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남자다움'이 남성을 얼마나 억압하는지 그리고 남자답지 않은 것이 남성 스스로를 그리고 다른 여성과 나아가 가정을 사회를 어떻게 나아지게 하는지 나비효과를 직관적으로 보고싶다면 추천하는 책이다.
    더보기
    좋아요 1
    댓글 0
  • 사막의 꽃 작가 Dirie, Waris 출판 섬앤섬 김숭숭 님의 별점
    4
    보고 싶어요
    (2명)
    보고 있어요
    (0명)
    다 봤어요
    (1명)
    사막의 꽃은 이미 여성차별적 관습과 강요가 굳어져 있는 사회이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이고 잔인한 관습이 여성성기절단, 즉 여성 할례이다. 어릴 적에 여성 할례란 말을 처음 들었을때는, 남성 할례와 마찬가지로 포경수술과 같은 형태라고 생각했다. 어릴 적 나의 상식으로 수술이라 함은 흰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이, 나를 재워둔 상태에서 아프지 않게 휘리릭 끝내버리는 마술 같은 것이었다. 수술을 하는 목적도 오롯이 나를 위함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여성 할례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되었을 때는. 의도부터 결과까지 폭력으로 점철된 그것에 충격을 받았다.

    여성은 법적으로 허락된 남자가 아니라면 순결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여성기는 언제든 타락하고 더럽혀질 수 있는 물건. 그러니 물리적으로 막아버린 다음, 첫날밤에 주게 하자! 이 얼마나 더럽고 유치한 발상인가.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보다, 이런 우습고 말도 안 돼는 행위를 실현할 수 있었던 그들의 권력이 더 두렵게 느껴졌다. 그리고 제일 끔찍한 것은 처음엔 모두가 반대했을 이런 관습들이, 사회적 보상과 처벌에 의해서 사람을 세뇌시킨다는 점이다.

    할례의 대상이 되는 여성들은 그 순간부터 본인의 성기와 유리된다. 분명 본인 몸의 일부인데 본인의 의사는 전혀 주장할 수 없다. 할례를 진행하는 사회에서 여성들은 성기 그 자체이다. 철저히 봉쇄된 성기가 아니라면 인간으로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반대로 이렇게 할례를 충실히 수행한다면, 남편의 보호를 받는, 노동하는 성기로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보상과 처벌이 반복되면서 여성들은 관습에 수긍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며, 나아가 다른 여성들에게 강요하게 된다.

    예전에 읽었던 현재 한국 사회의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가부장제의 기원은 가장이 막대한 권한을 가진 대신 그 책임도 다 진다. 그렇기에 가부장제의 여성은 권력은 없지만 안전하고 평화롭게 집안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와리스의 집안을 보자. 와리스는 그림으로 그린 듯한 가부장제 아래에서 자라났다. 가장의 ‘보호’ 하에 아름다운 딸들과 아내들은 집안일에 전념하고 따른다. 가장은 몸을 던져 딸들을 침해하는 이들을 물리치고 수호한다.

    그곳에서 와리스는 진정 안전하고 평화로웠나? 딸들의 장래와 안정된 삶을 위한다는 이유로 성기 절단과 원치 않는 결혼을 강요했다. 잘릴과 라시드는 어땠나? 의식주를 챙기려 노력했다. 심지어 도망쳤다 다시 잡혀온 아내에게도 말이다. 하지만 잘릴은 열다섯의 마리암을 사십대의 라시드에게 보내버리고, 라시드는 마리암의 남은 일생을 학대받으며 살게 했다. 그들이 챙겼던 의식주는 자신들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일꾼을 들인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일꾼과 마리암, 라일라가 달랐던 것은 무급이고, 자식도 낳아 주며, 내키는 대로 굴어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었다. ‘보호’의 형태는 사회마다. 가정마다, 또는 가장의 사고관에 따라 모두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일방적인 보호와 분배는 결코 좋은 형태일 수 없다.

    이 책의 주인공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살 수 밖에 없었을까? 나는 가난, 독재, 조실부모함이 이들을 여성 차별적인 이슬람 근본주의 아래로 밀어 넣었다고 생각한다. ‘사막의 삶은 쉽지 않았다. 우리는 살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다해야 했는데 부정적인 생각은 우리의 생명력을 빼앗아갔다.

    와리스의 집이 가뭄에 스러질 유목민 집안이 아니었다면, 결혼시키지 않고도 일생을 살아갈 수 있었다면, 와리스를 팔아넘길 이유가 없었다. 그랬다면 다섯 살 아이가 원했다 하더라도, 성기절단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소설이 제일 온건하게 느껴질 만큼 이슬람 여성들의 현실은 잔인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할례는 일어나고, 10살도 되지 않은 아이가 조혼으로 팔려갔다 사망하는 기사가 보도된다. 이슬람의 율법들은 명예살인을 허용하고 성범죄의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들은 무엇으로 구원받았을까? 와리스는 알라가 자신을 구했다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모든 반항적인 행위들이 그들을 구원했다고 생각한다. 이 강인한 여성들은 부당한 현실을 마주하고 원하는 것을 얻고자 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심지어 그것이 위법한 행위일지라도 말이다. 그렇다고 억압받는 여성들에게 책 속의 인물들마냥 목숨 걸고 저항하라 할 수는 없다.

    책 속의 구절처럼 개인의 순교가 반드시 세상을 변화시키진 못한다. 또 대의를 위해 희생하기에 개개인의 목숨은 너무 소중하며 사회적 구조가 가져온 문제를 개인의 신념, 의지 등에 맡기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행위이다.
    더보기
  • 제2의 성 작가 시몬느 드 보부아르 출판 자유문학사 김숭숭 님의 별점
    4.5
    보고 싶어요
    (0명)
    보고 있어요
    (1명)
    다 봤어요
    (0명)
    여성사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꼭 한번쯤은 들어보게되는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책이다. 성과 신체라는 변하지 않는 사실을 인간의 관념이 어떻게 다르게 해부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설명하면서 그에 따른 여성의 지위 변화와 대응 방식을 그린다.

    1장에서는 다른 사회적 소수자들과 여성이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한다.
    사회에는 하나의 보편적 기준이라는 것이 있는데, 저자의 삶을 배경으로 한다면 백인, 남성, 자본가 등이 기준이 되고 그들과 반대되는 성질을 가진 자들은 역사 서술에서 타자로 남는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나 흑인과는 달리 여성은 역사적 사건이나 패배의 결과로 타자가 된 것이 아니다. 또한 여성은 여성 그 자체로 지위를 갖는 것이 아닌 자신의 아버지나 남편이 속한 집단의 정체성을 지니기에 다른 타자 집단과 달리 모두 속한 계층이 다르다. 연대와 공감이 어렵다. 그렇기에 여성들 스스로도 주체와 집단이 아닌 타자와 개인으로 서로를 인식한다. 여성을 타자화하는 개념은 성에도 적용되어 활동적인 정자와 수동적인 난자, 정복당하는 존재인 암컷의 개념이 자리잡고, 이는 서양의 식민지 정복에 묘사(아프리카 희망봉의 젖꼭지 묘시 등)되는 등 역으로 정치적으로도 사용되는 개념이 된다.

    2부에서는 18세기 직업과 결혼에서의 여성을 다룬다.
    이 부분에서 보부아르는 여성이 성장 과정에서 겪게 될 거세된 페니스에 대한 혼란와 2차 성징 등 여성의 신체 변화와 인식에 관한 부분, 그리고 그 여성이 성장하는 환경 두 가지를 중점적으로 살핀다. 이 2부에서는 레즈비언과 '남성적인 여성'을 바라보는 당대의 시각을 같이 설명한다. 18세기 레즈비언은 성적 쾌감을 음핵으로 느끼는 단계에서 질의 단계로 넘어가는 것을 부정한 결과로 해석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남성을 그리고 이성애를 갈구하는 존재였기에 레즈비언의 교제에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동성애가 미완의 이성애로 묘사된 것이다. 이의 연장선으로 남성적인 여성은 미완의 존재이거나 용모를 잘 타고나지 못해 열등성을 덮으려는 가장한 존재로 여겨졌다. '여성'적 기질을 타고나지 못한 여성은 없는 것이다.

    이 책은 많은 질문을 가져다준다. 과연 여성과 남성의 신체를 동등하게 바라볼 수 있는가?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여성의 신체를 성적으로 인식하는데(이성애자의 경우), 이는 사회적 인식의 문제인가 여성의 신체 자체가 성적인 키워드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인가? 대부분의 여성이 삽입보다 음핵자극에서 더 큰 쾌감을 느끼는데. 그렇다면 삽입이 주가 되는 일반적인 성행위는 남성중심적 행위인가?

    그렇지만 이 모든 고민을 하기에 앞서 우리는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논리를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절대적인 과학적 진리로 보이는 사실도 결국 인간의 관념과 사상을 내포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인간과 사회의 문제에서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절대적인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혁명 이전엔 지구가 평평한 것도, 절대자인 신과 신벌이 존재하는 것도, 마녀도, 천동설도 당연한 진리였다. 과학혁명이 비논리를 논리로 만든 것이다. 정상을 언제든 비정상으로 과학적 근거를 들어가며 추락시킬 수 있는 세상에서 소수자들의 연대는 선택이 아닌 필연이다.
    더보기
  • 위대한 마법사 오즈(3판)(오즈의 마법사 시리즈 1) 작가 L 출판 문학세계사 김숭숭 님의 별점
    5
    보고 싶어요
    (0명)
    보고 있어요
    (0명)
    다 봤어요
    (1명)
    '대학 서평에 오즈의 마법사라니 너무 날로 먹는 것 아닌가?' 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린이 동화라고 너무 만만하게 보지는 마시라. 이 책은 14권짜리 시리즈다. 여러분이 아는 오즈의 마법사는 정말 새발의 피일 뿐이다.

    반지의 제왕을 쓴 작가더러 한 세상을 창조했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한다. 나는 오즈의 창조자를 동화계의 톨킨이라고 부르고 싶다. 도로시가 오즈에 불시착해 친구들을 만나고 마법사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1권까지의 이야기이다. 정당한 오즈의 통치자였지만 마녀의 계략으로 본인의 정체도 모른체 살던 오즈마, 다시 돌아온 도로시와 오즈 전역을 모험하면서 겪는 이야기는 때로는 손에 땀을 쥘만큼 긴장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며 그 자체로 설렘을 준다.

    그 모든 모험들에서 단연 돋보이는건 여러 마을들과 종족들을 창조해낸 작가의 상상력이다. 손발대신 바퀴를 달고 사족보행하는 바퀴인간들, 빵으로 이루어진 마을과 아침 점심 저녁때마다 다른 메뉴가 열리는 도시락나무 등 허황되어 보이지만 실제로 읽으면 그저 납득되어버리는 묘사가 정말 즐겁다. 나는 실제로 머리가 꽤 굵어질때까지 이 도시락 열매를 한 번만 먹어보는 걸 매년 버킷리스트에 적었다.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가 더 특별한점은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 컨텐츠를 보는 듯한 스케일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대개 시리즈로 출판되는 책이라 함은 옴니버스 구성의 캐릭터 극이거나. 비슷한 규모와 비슷한 플롯의 이야기가 연장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오즈의 마법사는 꼭 마블 영화를 보는 기분이다. 이번 권은 정말 화려했어. 그 도시와 음식과 의복의 묘사가 정말 사치스러움의 극치더라 하고 다음 편을 보면 전 편은 우습다는 듯 더더욱 압도적인 묘사가 독자를 기다린다. 인간 까마귀 어린이들은 뒤집어질 수밖에.

    읽어야만 할 책이 정해져 있고, 해야 할 공부도 너무 많은 지금. 오즈의 마법사를 펼쳐보자. 순수한 상상력의 세계가 사람을 얼마나 들뜨게 만드는 지, 오랜만에 즐거운 꿈을 꾸며 잠들 수 있을것이다.
    더보기
    좋아요 2
    댓글 3
    • 2 people 좋아요 님이 좋아합니다.
    • 14권짜리의 오즈의 마법사가 있는줄은 몰랐어요. 정말 방대한 양이네요! 하지만 그 만큼 많은 스토리를 담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고 싶게 하네요. 서평 감사합니다!
    • 저는 뮤지컬 \'위키드\'를 보고 오즈의 마법사에 관심이 생겼었는데 서평을 읽으니 더 흥미가 생기네요!! 화려한 세계관 속 이야기라니 재미있을 것 같아요.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 어렸을 적 읽었던 책이라 줄거리 정도만 기억나는 책인데 14권짜리 책이었다니 놀랍네요. 동화계의 톨킨이라고 느끼셨다니 반지의 제왕을 무척 재미있게 본 생각이 나서 제가 읽지 않은 나머지 13권의 내용이 궁금해집니다.
  • 초원의 집 작가 Wilder, Laura Ingerls 출판 비룡소 김숭숭 님의 별점
    4.5
    보고 싶어요
    (0명)
    보고 있어요
    (0명)
    다 봤어요
    (1명)
    다들 선호하는 책의 유형이 있을것이다. 나의 경우엔 어려서부터 소설, 특히 시리즈가 쭉 이어지는 장편 판타지 소설을 좋아했다. 반짝반짝 보석으로 깔린 도로와 저 멀리 에메랄드 성이, 넘실대는 사막이, 내 옆을 함께 걸어주는 해리와 백산이와 여행하는 세상에 푹 빠져살았다. 늘 나는 생각한적도 없는 작가의 세계를 엿보는 것이 즐거웠던것 같다.

    그랬던 초등학생이 가장 좋아했던 시리즈 중 하나가 초원의 집이라는건 좀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이 책은 1800년대 미국이 한창 서부를 개척하던 시기, 세 형제 중 둘째였던 작가가 본인의 유년시절부터 결혼하고까지를 다룬 지극히 사실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일기처럼 써 두었던 것을 딸이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책은 총 8권으로 숲 속 오두막집에 살던 주인공 로라가 성장하고 이사를 가는 과정에 따라 장이 나뉜다. 그저 아버지의 바이올린 연주를 좋아하고 너무 예쁜 언니가 부럽기도 질투나기도 하던 버터를 만들고 눈천사를 만들던 소녀 로라가 부모님이 숨기는 가정형편의 어려움을 대신 짊어지기도 하고, 언니의 비극을 겪고 결혼하면서까지의 과정을 찬찬히 살펴보면 읽는 내가 대신 쓸쓸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보던 반짝거리던 그 숲 속의 집. 일주일에 한 번 아버지 마차를 타고 나가 보던 포목점의 자수 박힌 천. 외갓집의 크리스마스 파티라던가 메이플 시럽을 받아 사탕으로 굳혀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모든게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 그 날것의 감정이 그대로 다가오는 것이다.

    다들 좋아하는 책 속 장면이 하나씩 있을 것이다. 물론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입장에서 보기엔 어린아이의 시선으로만 쓰여진 1편도 가슴저릴 부분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로라는 항상 내 손에 못난이 인형을 쥐여주고 나무 위 비밀공간으로 초대한다. 1권만 읽어도 좋다. 로라가 행복했던 모든 순간이 내가 좋아하는 장면이기에 한 번쯤 읽고 벽난로 환히 켠 숲 속 그 오두막집의 저녁식사자리로 들어가보시라.
    더보기
    좋아요
    댓글 1
    • 로라의 행복했던 순간에 저도 빠져보고 싶네요. 누군가의 유년시절부터 결혼까지의 이야기라니 로라의 삶이 어떠했는지 궁금해져요. 좋은 책 추천 감사해요.
  • 멋진 신세계 작가 Huxley, Aldous 출판 문예출판사 김숭숭 님의 별점
    4.5
    보고 싶어요
    (1명)
    보고 있어요
    (1명)
    다 봤어요
    (7명)
    1984를 읽고 디스토피아를 다룬 다른 책에 관심이 생겼다. 찾아보니 20세기 3대 디스토피아 소설이라는 책 세 권이 있었다. 이 책은 우울한 디스토피아를 다룬 책임에도 신세계라는 역설적인 제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어서 선택하게 되었다. <<멋진 신세계>>본능적인 쾌락만 즐기려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경고하는 책이다.

    먼 미래, 아이들은 날 때부터 지능에 따라 계급이 나뉘고 꾸준한 세뇌로 그 계급에 맞는 사상과 행동조절을 익힌다. 세뇌 때문에 주어진 일만 하고 살아가는 데도 아무런 불만이 없을뿐더러 행복해한다. 국가는 육체적인 쾌락을 장려하고 부정적인 감정들을 배척한다. 자유로운 성생활, 오감을 자극하는 놀이에 슬픔과 고뇌를 잊을 마약까지 국가에서 지급한다. 하지만 스스로 무언가를 창조하고, 사고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때문에 책 속의 사람들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주어지는 일을 하고 주어지는 즐거움을 누리던 사람들은 종래엔 자신의 감정도 타인의 감정도 공감하지 못한 채 웃음뿐인 사람으로 남는다.

    책을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유토피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모두가 행복하고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다. 질병이나 노화는 없고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고 아름답게 관리된다. 왜 이 행복한 세상은 유토피아가 될 수 없을까. 이곳의 사람들은 행복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제거 당했다. 개인은 사회의 부속품으로, 언제든 만들어서 채워 넣을 수 있는 존재이다. 때문에 자아실현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행복이란 감정은 느끼는 게 아닌 세뇌로 입력된다. 진정으로 행복한 게 아니라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마약을 집어 삼키는 것이다. 행복의 마약에 취한 사람들은 자유의지란 존재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멋진 신세계는 가장 끔찍한 디스토피아다. 억압하고 통제하는 사회는 저항하는 사람들이 바꿀 수 있지만 이 유토피아에는 앞으로도 쭉 저항할 사람 따윈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책 속의 상황이 지금 우리 현실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21세기는 물질적으로 더할 수 없이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는 빈곤하다. 너무 많은 정보가 쏟아져 중요한 것은 놓치고 쓸데없는 곳에 몰두하게 된다. 상품이 넘쳐나서 자신이나 세상에 대한 생각은 해볼 겨를 없이 평생 일거리와 놀거리만 소비하다 가게 된다. 멋진 신세계 속 세상처럼 우리를 즐겁게 해 주는 것들이 우리를 오히려 망치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생명을 생각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과학발전과 목적 없는 즐거움이 얼마나 인류를 망치는지를 경고하고자 했다. 물질의 풍요로움이 행복을 결정하는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이 책이 주는 메시지를 느끼며, 우리가 행복의 마약에 취해 걷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더보기
    좋아요 1
    댓글 3
    • 1 person 좋아요 님이 좋아합니다.
    • 디스토피아 세계관이 매력적이죠. 멋진 신세계는 특히 현실을 꼬집어서 더 좋았어요. 정보의 제한이 아니라 정보의 과잉으로 사람들이 정보에 관심이 없어진다는 부분이 기억에 남네요. 서평 잘 읽었습니다.
    • 김숭숭님의 서평을 읽어보니 ‘과연 완전한 유토피아는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네요. 그리고 정보 과잉이 주는 쾌락만을 쫒아 진정한 행복을 놓치지 않도록 유념해야겠어요.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 21세기가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는 빈곤하다는 말에 저도 동의합니다! 최근에는 사람들이 유튜브와 같은 미디어 영향을 점점 많이 받게 되면서 일상 속에서 자기 성찰을 할 기회를 잃거나 무기력해지기 쉽다고 생각했는데, 책 속 상황이 지금 우리 현실을 보여준다고 하니까 이 책을 읽고 싶어지네요.
      더보기
  • 1984(세계문학전집 15)(양장본 HardCover) 작가 조지 오웰 출판 문학동네 김숭숭 님의 별점
    4.5
    보고 싶어요
    (0명)
    보고 있어요
    (0명)
    다 봤어요
    (1명)
    때는 1984년, 세상은 동아시아, 유라시아, 오세아니아의 세 전체주의 국가로 삼분할. 책의 배경이 되는 국가는 오세아니아로 북한처럼 하나의 당이 독재하는 체제를 가진 국가이다. 국가 원수인 빅 브라더와 내, 외부 당원들, 그리고 노동자들로 이루어졌고, 쌍방향 통신이 가능한 텔레스크린으로 일상을 감시당하며 모두가 가난하다. 당은 애정부, 평화부, 진리부, 풍요부의 네 부서로 나누어지며 주인공인 스미스는 진리부에서 당이 말하는 것이 사실인 것처럼 과거의 기록을 조작하는 일을 맡고 있다.

    스미스는 꿈에서 어떤 목소리를 듣고 감시와 고발 뿐인 각박한 사회에 환멸을 느끼며, 빅 브라더에 저항하기로 한다. 은신처를 구해 금지된 연애도 하고, 내부당원 중 자신과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을 만나 일이 잘 풀려가는 듯 했으나, 사실은 모두가 그를 잡기 위한 연극이었다. 그는 애정부로 끌려가 같은 고문과 세뇌를 당하여 온전히 빅 브라더를 사랑하도록, 체제의 노예가 된다.

    보통 이런 종류의 소설은 아무리 모진 고통이 가해져도 주인공의 강인한 의지는 꺾지 못하던데, 우리의 주인공은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처음엔 저항하다가 고문에 회유, 트라우마까지 이용당하자 처절한 절규를 보여주는 모습은 너무 현실적이라 입맛이 씁쓸했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을 꼽자면 윈스턴과 줄리아가 발각되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안전하다 믿었던 사람이 한순간에 변해 주인공을 겨누었을 때, 체념해 저항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덜 고통스럽기를 바라는 심경은 과연 어떨까. 어차피 죽일 사람을 고문하는 것은 어떤가. 정보를 얻으려거나 회유하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다. 오로지 빅 브라더를 사랑하며 죽어가는 것이 체제의 유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빚어낸 세상이 현실의 나를 무섭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분이 없어진 사회에서 아직도 본인이 위에 있다 생각하고 그 지위라 생각하는 것을 유지하기 위해 언제든 '당'을 만들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전의 서평에서도 적었듯, 아직 근대로 넘어오지도 못한 사회다.

    정권이 국민을 안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유를 앗아갈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한 명의 스미스는 언제든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불쌍한 스미스들이 뭉쳐 거대한 일기장이 된다면. 기록은 그 자체로 가장 강력한 무기인 행위가 될 수 있다.
    더보기
    좋아요 1
    댓글 2
    • 1 person 좋아요 님이 좋아합니다.
    • 이 책은 참 좋은 책이에요! 서스펜스가 있어서 읽기도 재밌고 담긴 메시지도 깊어서 생각을 많이하게 만들더라고요. 이 작가의 다른 책도 읽어봤는데 확실히 글을 잘 써요. 저도 이렇게 쓰고 싶네요. ㅎㅎ 김숭숭님 말씀처럼 저도 윈스턴과 줄리아가 발각되는 장면이 가장 인상깊었네요. 결국 배신하게 되는 것도 안타까웠고요. ㅠㅠ 이 소설은 현대 사회에도 경각심을 일깨워서 좋은 것 같아요.
      더보기
    • 저도 한 번 읽어봤던 책이에요. 이 책에서 독재주의에 대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해주어서 매우 좋았던 것 같아요.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알게 모르게 1984와 비슷한 느낌으로 흘러가는 느낌이라 더 경각심을 갖게 되네요.
  • 개인주의자 선언 작가 문유석 출판 문학동네 님의 별점
    보고 싶어요
    (7명)
    보고 있어요
    (1명)
    다 봤어요
    (8명)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는 오랜기간 공직생활로 지쳐버린 판사의 엄숙한 선언 - 아무리 노력해도 사회로부터 독립할 수 없었던 개인의 새 시작 같은 내용을 상상했다. 이 책은 그보다는 판사 문유석보다 그저 개인 문유석이고 싶어하는 저자의 일상 생각 모음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서평은 책을 쭉 읽고 전체적인 감상을 적는 게 아니라 주제별로 인상깊었던 부분과 들었던 생각을 적었다.

    링에 올라야 할 선수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책 21p) 챕터에서 작가는 말한다. 우리 사회는 근대를 겪어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포스트 모던의 시대로 넘어갈 수 있겠느냐고. 이 부분을 읽고 같은 말씀을 하셨던 교수님이 떠올랐다. 역사의 시대 구분에서 종교와 광신의 시대에서 비판적 이성 사고로 넘어간것이 근대이고, 이성에 묻힌 감정을 발굴하고 다양성을 주목하자는 주장이 포스트 모던의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 발전 과정에서 소수자들의 존재에 대한 정의와 사회적 합의 없이 나라 발전이라는 목표만 보고 달렸고, 살아있는 개개인은 모두 매몰되거나 낙오되었다고. 한국은 비슷한 경제 수준을 갖춘 나라와 비교해도 세대갈등, 성별갈등, 계층 갈등 지수가 압도적 1위라고 한다. 높은 교육과 대비되는 사회의 문화가 이런 사태를 만든 것은 아닐까. "도대체 우리 사회가 신자유주의 이전에 구자유주의라도 제대로 해본 적이 있는 사회일까?"(23p)

    북토크 활동을 하며 '정말 많은 사람들이 고전 문학을 읽고 있구나.'란 생각을 했다. 나는 순문학을 읽지 않은지 오래기 때문이다. 지식이 남는다는 느낌이 없어서가 가장 큰 이유다. 어려서는 완전한 허구의 세계관에 푹 빠지는 감각을 좋아했던것 같은데. 저자는 책 155p에서 "'픽션'을 읽어본 경험의 부재가 엘리트 과학도를 광신도로 만들었다. 검증된 법칙의 세계에서만 살던 이가 통상적 사고의 범주를 넘어선 극단적 상상력과 조우했을때 무너지는 것"이라며 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결국 작가가 계속 하는 이야기는 개인을 개인으로 살게 하기 위해 사회와 개인이 해야만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전근대적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집단주의적 사고를 버리고 노력이 반드시 보상받아야만 한다는 학벌주의도 버려야 한다. 개인은 본인이 받았던 악습을 억울하다 물려주지 말고,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한 욕구를 sns에 아등바등 풀어내는 것도 그만둬야한다. 그 과정에서 개인들이 모두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글쓰기를 하는 것처럼 본인을 들여다보는 MRI를 계속 행해야하고, 공유해야만 한다.

    작가가 책 서문에서 말하길, 개인주의는 유아적인 이기주의나 사회를 거부하는 고립주의와는 다르다고 했다. 본인이 본인이 어떤 개인인지를 잘 알고(MRI로), 서로 공유하며, 어떤 것을 내보여도 제약받지 않고 거리끼지 않을 사회 분위기가 진정 개인주의자들의 나라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자유는 어딘가 이상하다. '네가 동성애자인거 알겠는데. 불쾌하니까 전시하지는 마'. '장애인들 불편한 건 알겠는데, 이런 붐비는 출퇴근시간에 시위를 해야하나?'. 이건 진정한 '알겠다'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존재란 타인의 인정이 필요한 것인데, 아낌없이 불호를 드러내는 것이 과연 인정인가? 나도 이런 조건적 관용을 정당한 비판이라 자주 드러내는데...... 21세기에도 중세인이 살아숨쉰다.
    더보기
    좋아요 1
    댓글 1
    • 1 person 좋아요 님이 좋아합니다.
    • 이기주의는 남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주의이고, 개인주의는 남을 존중하되 자신을 우선한다는 주의로 알고 있었어요. 타인을 배려하며 자기 해방을 꿈꾸는 매력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저자 문유석은 판사로 재직하며 여러 활동을 한 걸로 알고 있는데 굉장히 역동적인 분이신 것 같네요. 판사라는 직업을 부각하는 게 아니라 인간으로서, 개인으로서의 시각으로 바라본 ‘개인주의적’ 관점이라서 더 흥미가 생기네요.
      더보기
  • 동물학대의 사회학 작가 Flynn, Clifton P 출판 책공장더불어 김숭숭 님의 별점
    4.5
    보고 싶어요
    (4명)
    보고 있어요
    (1명)
    다 봤어요
    (0명)
    동물학대가 어떤 인간과 사회에 의해서 자주 발생하고 왜 발생하는지. 이것이 목격자와 가해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통계를 통해 설명한 책.

    나는 이 책을 친구들과의 독서소모임에서 읽게 되었다. 평소 동물권에 관심이 많은 친구가 동물학대와 동물권의 현 상태에 대해 알아보고 정책 토론을 해보자고 추천했다. 이 책은 동물학대예방이 곧 사회적 소수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예방이라고 말한다.

    동물학대가 주로 발생하는 배경과 그 양상을 분석한 것을 보면 첫째, 타자에 대한 분노를 상대적으로 약한 동물에게 표출하는 방식. 이 경우 본인의 동물이나 야생상태의 동물이 아닌 가정의 동물을 학대하는 것을 보여주어 동물과 밀접한 정서적 유대를 가진 가정의 약자(주로 어린 자식)을 간접적으로 학대하기도 한다. 둘째, 첫째 가정의 피해자가 약자를 대하는 방식을 그대로 학습해 반복하는 경우. 셋째, 본인은 학대라고 인식하지 않지만 그것이 동물의 생존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ex 애니멀호더) 등이 있다.

    책에서 소개하는 사회학자 애그뉴이의 동물학대 정의인 "동물의 고통 또는 죽음에 기여하거나 동물의 복지를 위협하는 일체의 행위" 에 따르면 현재 기계식 축산업이나 생태계 교란종 포획까지도 동물학대의 범주에 들어간다. 물론 바로 현실에 적용하기 어렵다. 한국은 환경을 위한 비건도 풀은 생명 아니냐며 조롱당하는 전체주의적 사회니까.

    다만 우리는 생각해보아야한다. 현재 동물학대 처벌 수위를 높이자는 의견의 근거는 주로 타고난 선천적 공감장애, 인격장애자의 인간 살해 이전 연습단계가 동물학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소수 범죄자들의 이야기에 국한되어있고, 동물학대는 보다 넓은 영역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결국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귀는 남성이 본인의 반려동물을 학대한 상황을 겪는 여성이, 결국 데이트폭력, 가정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동물학대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가정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동물을 향한 태도는 곧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태도와 동일하고, 학습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린아이라는 약자로 태어나서 노인이라는 약자로 죽는다. 삶의 모든 순간과 연령, 사는 지역, 성별과 종교로도 언제든지 약자가 된다. "사람나고 동물났지 동물나고 사람났나?" 같은 말은 결국 "나는 살며 약자가 될 일이 없다."는 오만한 선언과 같다. 본인의 관심사가 아니라고 덮어둘 문제가 아닌. 모두가 목소리 되어야 할 문제가 곧 동물학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보기
    좋아요 2
    댓글 2
    • 2 people 좋아요 님이 좋아합니다.
    • 동물을 향한 태도가 곧 사회적 약자를 향한 태도와 동일하다, 라는 말이 참 와닿네요. 사실 동물들이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거운 사회적 처벌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굉장히 안타까웠는데, 이 책은 이러한 문제점에 경각심을 전달할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평 감사합니다!
      더보기
    • 동물에 관한 주장은 감정적 호소로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통계로써 설명했다니 타당한 근거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되네요. 간디의 말이 생각나는 서평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에서 동물이 받는 대우로 가늠할 수 있다.\" 잘 읽었습니다:)
      더보기
  • 페르세폴리스 작가 Satrapi, Marjane 출판 새만화책 김숭숭 님의 별점
    4
    보고 싶어요
    (0명)
    보고 있어요
    (0명)
    다 봤어요
    (1명)
    이 책은 이란에서 성장해서, 오스트리아에서 유학하고 다시 이란으로 돌아온 마르잔 사트라피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책이다. 마르잔은 이란의 수도인 테헤란에서 나고 자랐다. 본디 테헤란은 중동 어느 지역보다 빨리 미니스커트와 보브컷이 유행했던, 서구 문물의 중심지였다. 이란 시민 혁명으로 들어선 정부가 근본주의 정책을 채택하면서 테헤란도 마르잔도 큰 변화를 겪게 된 것이다. 히잡을 쓰게 되고, 남자 가족과 동행하지 않곤 외출을 할 수 없게 되고, 전쟁에 소년병으로 끌고가기위한 '천국' 교육이 시작되고. 부모님 아래서 자유로운 교육을 받아왔던 마르잔은 몇번이나 위기를 넘긴다.

    이를 피해 오스트리아로 유학가지면 여전히 마르잔은 마르잔 사트라피이기 이전에 '중동사람', '그 이슬람' 이었고, 한 개인으로 보여지지 못한다. 정부의 억업적인 종교 정책에서 도망치려 했지만 이란이 아닌 곳에서도 철저히 이슬람 종교를 가진 이방인으로만 취급당한것이다. 불행한 유학생활 후 다시 이란으로 돌아온다. 다시 돌아온 이란에서도 여전히 환영받은 모범 국민은 아닌 마르잔. 그러나 고국에서 주인공은 이방인은 아니었다.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히잡 사이로 머리칼을 살짝 내놓고, 몰래 파티를 하기도 하며 '마르잔 사트라피'로 살아가는 주인공. 여전히 이란의 상황은 억압적이고 불안하기만 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과연 나 개인은 누구인지, 자유란 무엇이고 국가가. 사회가, 집단이 한 개인을 어디까지 억압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자유를 제약할 수 있는지. 과연 개인은 국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계속 이어나가는 주인공. 만화 페르세폴리스는 2008년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개봉했다.

    현대 한국 사람들에게 '이슬람' 하면 떠오르는 여러 이미지들이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부정적인 인식이 대다수일것이라는 것엔 이견이 없는 듯하다. 뿌리깊은 여성차별, 과격한 이슬람 근본주의 정책, 테러, 부르카, 여성할례 등등. 그리고 이슬람 국가의 국민들은 이슬람이라는 미개한 종교를 세상에 전파하기위해 물불가리지 않는 폭도들처럼 비춰진다. 그래서 이슬람은, 더더욱이 이슬람의 역사는 별로 알고 싶지 않은 분야로 다가온다. 나 또한 그랬다. 그러나 근본주의 정책에 찬성하는 사람만큼 그 방식에 찬성하지 않는 사람들은 정말 많고, 때문에 중동으로 묶이는 이슬람 국가들은 끝없이 내전을 반복하고 있다. 한국의 근현대사가 그대로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참 억울하겠다는 감상이었다. 이란의 국민들은 계속 민주화와, 근본주의 정권의 퇴진을 요구한다,. 전쟁에 끌려가 목숨을 잃는 것도, 직업을 포기당하고, 아파도 제대로 진료받지 못하는 피해자들은 바로 이란 국민 스스로다. 아무도 이런 상황을 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바깥에선 결국 종교에 미친 테러범으로 손가락질받는다. 내전을 피해 탈출해도 그저 바다에서 죽어갈 뿐이다. 중동 국가들의 내전에는 현재 선진국이라는 자들의 책임이 크다. 아프리카 지역의 부족마다 내전이 일어나는 것도, 아프가니스탄이 끊임없이 수도를 놓고 땅따먹기를 하는 것도 모두 그들의 편의대로 권력을 주었다 뺐었던 것이 시작이었다. 그럼에도 피난민들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전쟁의 당사자도, 원인 제공자도 모두 회피하는 상황에선 결국 고국에서 숨막혀 죽어가거나, 저항하다 처형당하거나, 보트 피플로 죽는 것밖엔 방법이 없다. 모던을 넘어선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에도 개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결코 국가란 필터를 뺄 수 없다. 국가란 가치중립적인 개념이 아닌 것이다.

    두번째로 든 감상은 얘 참 별나다라는 생각이었다. 어릴 적엔 종교에 심취해서 메시아가 되고 싶어하고, 청소년기엔 히잡을 벗고 혼자 몰래 나돌아다니기를 즐기는 아이라니. 너무 위험을 즐기는 드센 아이 아냐? 이런 생각으로 책을 읽다가 순간 깨달았다. 나는 너무 이란의 부모처럼 주인공을 보고 있었구나. 만약 주인공이 한국의 아이였다면 어땠을까. 여자애가 괄괄하다 (물론 이도 잘못된 표현이지만)란 평을 듣긴 했지만, 별 문제 없이, 정부로부터 훅은 자치군에 끌려갈 걱정은 없이 잘 컸을것이다. 개개인이란 참 다면적이고 입체적인 존재고, 굳어있는 것은 사회 뿐이다. 내가 튄다고 해서 내가 모난 정은 아니구나. 나를 깎을 필요는 없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평생 툭 튀었다 망치로 맞고 살았을 젊은 시절의 주인공에 연민이 들었다. 지금의 주인공이 파리에서 평화롭게 작가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책을 읽다보면 이슬람의 여성인권으로 생각이 흘러간다. 작가 또한 본인의 삶에서 이슬람 근본주의가 여성인권을 어떻게 후퇴시켰는지를 자주 강조한다. 한국의 여성담론에서, 중동은 여성들이 혼자 운전할 권리, 남녀 가리지 않고 필요한 진료를 받을 권리를 주장하는데 한국의 여성들이 무얼 바라느냐는 일차원적인 비판이 가끔 등장하곤 한다. 어떤 익명의 네티즌이 쓴 '자식에 대한 이해가 없는 부모가 의식주는 아프리카 빈민층 아이와, 성취와 효도의 정도는 강남의 중산층 아이와 비교한다' 고 표현한 글이 있다. 나는 위 비판이 주어 목적어만 바꾸면 이 문장에 딱 들어맞는다고 생각한다. 모두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할 때 현재 나의 처지가 나아지길 희망하지, 전 세계 사람들을 한 줄로 세워두고 나는 중상위권이구나 안주하지 않는다. 한국은 이란보다 높은 교육 수준을 갖춘 부국이다. 또 아까의 모난 돌 이야기의 연장선으로, 이란의 여성들은 여성 담론에서 자유화 시대보다 여성 대상 범죄가 낮아졌는데 뭘 더 요구하냐는 이야길 듣는다. 여성 대상 범죄가 기소조차 되지 않고, 명예살인은 살인으로 치지 않는 사례들은 묻어두고 말이다.

    책에서 나는 개인으로 존재하지 못하는 개인이 얼마나 불행해지는지를 보았다. 책의 첫 시작은 이슬람에 대한 편견 버리기였지만, 덮을 때는 결국 다양성을 요구하면서 규격에 맞는 다양성이 아니라면 철저히 배척하는 '자유국가'의 모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이 책에서 전 세계의 여성 담론을 하나로 묶는게 얼마나 어리석은 행위인지를 생각했지만, 또 다른 독자는 시민혁명과 공화정으로의 이동이 과연 절대적 진보인가를 생각했을수도 있다. 우리의 근현대사와 닮았지만. 완전히 다른 양상인만큼 새로운 시각과 감상을 가져다준다. 다만 책이 배경설명 없이 주인공의 일기로 진행되기때문에, 유년기를 설명한 초반 부분은 혼란스러울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붕괴한 후 카불의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탈레반 붕괴 100일 후>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후 읽으면 훨씬 이해가 쉬울 것 같다.
    더보기
    좋아요 1
    댓글 1
    • 1 person 좋아요 님이 좋아합니다.
    • 우연히 이 애니메이션을 넷플릭스에서 감상했어요. 큰 배경지식 없이 마르잔이라는 개인의 성장과정을 초점으로 봤었는데, 그렇게 보면서도 느낀 점은 결코 한 개인의 인생과 역사는 떼어놓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역사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고, 그래서 서평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개인이 개인으로 존재하지 못할 때의 불행함도 저는 이런 역사적인 현실에서 기인하는 것 같아 더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서평을 읽으니 다시 내용을 곱씹게 되네요. 이해를 도울 다른 다큐멘터리도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