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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묘한 미술관 작가 진병관 출판 빅피시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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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그림이 좋아서 여러 책을 찾아서 읽었었다. 고전 교양서부터 현대 교양서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거주하면서 문화해설사로 일하는 전병관이 ‘기묘한 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미술과 관련된 교양서를 한 권 더 출간했다. 가볍게 집어 들 수 있는 제목과 책이었다.

    대중을 상대로 한 교양서의 대상이 되는 작품들이 겹치는 경우가 좀 많이 있다. 르네상스의 거장들, 근대 회화의 대가들. 그렇다고 그들의 작품을 다시 접하는 것이 식상한 것은 절대 아니다. 항상 읽을 때마다 어렴풋이 남아있는 기억들을 소환한다. 미술관을 가서 직접 작품을 접할 기회가 없으니, 책을 접하는 것은 아무리 책에 컬러로 된 사진이 있다고 한 들,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미술관을 가서 직접 작품을 감상하라고들 이야기를 한 것 같다. 실제 작품의 크기와 질감이 우리의 마음 속에 남기는 그 무엇은 축소된 형태로 실린 사진으로는 제대로 느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득, 코로나 전 방학에 떠난 뉴욕 여행이 생각났다. 그 유명한 MoMA., 뉴욕 현대 미술관을 가 보았지만 그 때 보았던 조각과 그림 중에서 제대로 기억이 나는 것이 없고, 감동도 사실 받지 못했다. 그림에 대한 지식도 관심도 적었고, 그 때는 저녁에 숙소에서 마시는 맥주만 생각났을 뿐이다.

    아쉽기는 했다. 만약에 그 때 제대로 준비를 하고서 그림을 보았다면 어땠을까?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직접 보고 싶다. 근대 미술의 대가들의 작품도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감상하고 싶다. 거기서 그들이 고민했던 것들, 그 그림의 이면에 담긴 이야기들을 기억해내고 싶다. 머리속에서는 상상력을 발휘한다. 19세기말 20세기초에 유행했던 압생트를 마시며 술독에 빠져보고도 싶다.

    그리고 문득 기존의 틀에서 반항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도 모른다. 예술은 꼭 아름다워야 하는가? 현실을 사실적으로 내가 느낀 것과 같이 표현하면 안될까? 마네의 ‘올랭피아’가 생각난다. 앙리 루소의 ‘뱀을 부리는 주술사’가 떠오른다. 그리고 이번에 또 새롭게 알게 된 화가, 오노레 도미에의 작품을 떠올린다. 마음은 어느덧 요동치는 것 같다.

    그림을 다루는 책은 무엇이든 한번 읽어 보기를 바란다. 근래에 친절하게 그림을 설명해주고 이야기해주는 책들이 많고 그런 책 중에서 실망했던 적은 거의 없었다. 쓰는 사람에 따라서 같은 화가로도 약간은 다른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한다. 그런 의견들이 모여 어느덧 그에 대한 입체적인 이미지가 형성되는 것 같다. 이 책도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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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구리(모던 클래식 58) 작가 모옌 출판 민음사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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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유명한 소설가 모옌의 에세이 ‘모두 변화한다’를 읽은 적이 있다. 인도의 한 출판사 편집인이 중국의 발전에 대한 글을 부탁한 것이 이 에세이의 시작이다. 편집인은 형식과 내용에 구애없이 원하는 데로 글을 써달라고 했고,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서 중국의 변화를 유려하게 썼다. 시간은 흐리고, 사람은 나이 들어간다. 그리고 그것이 좋던 싫던, 그에 맞춰서 모두가 변해간다.

    ‘개구리’는 중국의 산아제한정책을 바탕으로 한다. 화자인 커더우가 일본인 스기타니 요시토모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되는데, 커더우가 쓰고자 하는 내용은 그의 고모에 대한 것이다. 고모는 산부인과 의사로 중국 공산당의 계획생육에 따라서 실무자로 낙태수술과 정관수술을 했다. 전통적인 사고방식에 있던 주민들이 이러한 정책에 거세게 저항했다.

    저항이 거세지면 질수록, 정부의 강압은 더욱 강해졌다. 체포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도망가던 임산부가 죽기도 했다. 화자인 커더우의 아내도 불법으로 둘째를 가지게 되어, 중절수술을 하다가 사망하게 된다. 불행한 시대였다.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강제적으로 억압했던 그 시기에 사람들은 서로에게 큰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더욱 서글픈 일은 그 과정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낙태되어 희생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커더우가 은퇴를 하고 고향에 돌아간 그 시점에서도, 여전히 계획생육의 영향은 크게 작용했다. 대리모 문제가 그것이다.

    중국 공산당의 산아제한정책은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폭발적인 인구증가를 억제하고, 국가를 발전시킨다는 전체주의적 발상이었다. 지금까지도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중국 공산당에 산아제한정책에 대한 비판은 쉽지 않았다. 오늘날 중국이 경제성장을 거듭함에 따라서, 도시를 중심으로 출산율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중국도 빠르게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중국 공산당은 공식적으로 산아제한정책을 폐지했다.

    그렇지만 그 한복판에서 고통받은 사람들의 기억은 남았고, 그 후유증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사의 아픔을 겪었다고 하더라도 그 땅에 살아남고 자손을 번창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모옌은 소설의 제목을 ‘개구리’로 정했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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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보내지마(모던 클래식 3)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출판 민음사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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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즈오 이시구로는 일본계 영국인이다. 이미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따라서 이주했으므로 그의 정체성이 온전히 일본인이나 영국인일리는 없을 것 같다. 아무래도 어떤 경계인의 삶을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감수성이 그에게 소설을 쓰는 힘을 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노작의 결과는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대표작은 읽은 ‘나를 보내지 마 (Never Let Me Go)’이다. 만약, 책의 뒷면의 힌트를 미리 읽지 않는다면 이 책의 내용을 처음에는 유추하기 힘들다. 이제 간병사로 인한 지 11년이 되는 케시, 그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 책은 성장소설의 형태를 띄며 헤일셤이라는 특별한 학교생활의 여정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러한 이야기에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든지 복선이 깔리지만, 조금은 평범해 보이고 특별해 보이지 않는 이야기는 가즈오 이시구로가 말하고 싶었던 질문을 던진다.

    나는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SF소설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장대한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사실적인 과학소설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상상력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난 언제나 SF소설을 권한다. 그래 당신의 오감을 어느새 정복한 자극적인 시각적 정보에서 사유의 힘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문득, 이 책이 인간 클론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떠올리니, 그들의 조금도 특별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 즉 당신의 인생과 딱히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목적을 위해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그들의 존엄성을 우리가 침해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들도 우리처럼 사랑하며, 미워하는 감정들. 여기 내가 전부 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출생, 삶의 목적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행복한 삶에 대한 희망을 포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무도 그들에게 그것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고, 이들은 그 작은 희망을 위해서 마지막까지 노력했다. 루스와 토미는 자신들의 삶의 목적이었던 기증을 마치고 세상을 떠났다. 이후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세상은 그렇게 불합리하게 계속 돌아가고 모든 사람은 순응한 듯 보인다.

    인간복제라는 이슈를 통해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고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이 다루는 이야기가 그것으로만 한정할 수 있는가 생각하지는 않는다. 근대에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맞춰진 교육을 받았고 그 체제에 살아가도록 만들어졌다. 말하자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 자신은 사실상 소설의 인간 클론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원래 가지고 있어야 될 감정을 숨기고 살아간다.

    삶은 결국 체제가 정해진 경로를 따라서 흘러간다. 순응은 자본주의 체제의 인간에게 가장 간단한 방법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혁명의 힘을 읽었고, 사육되듯이 살아간다. 물론 스스로는 잘 깨닫지 못한다. 우리는 상상력의 힘을 잃어가고 비판의 힘을 읽어가며 사유의 힘을 부정한다. 즉각적인 시각적 정보와 짧은 찰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삶을 그렇게 사육당하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는 그럴 수가 없다. 적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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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음 읽는 술의 세계사 작가 미야자키 마사카츠 출판 탐나는책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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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는 다양한 주제의 교양서가 많이 출간된다. 아마도 국내보다 휠씬 큰 출판시장의 규모 때문에 다양한 관심사를 수용할 수 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부러워지기도 한다. 미야자키 마사카츠의 ‘술의 세계사’도 그런 책의 한 부류다. 국내의 수많은 주정뱅이의 일원 중 하나로서 나는 술에 대한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전세계의 술을 정리하면, 효모가 당분을 알코올 발효시킨 ‘양조주’와 양조주를 증류시켜 알코올 순도를 높인 ‘증류주’ 그리고 증류주 등에 허브, 향신료 등을 섞은 리큐어 즉 ‘혼성주’로 나뉜다. 술은 지름 1/200mm 정도 크기의 미생물인 효모를 통해 당분 분해, 즉 알코올 발효를 거쳐 탄생한다. 자연계에 있는 특별한 미생물 효모의 작용을 경험적으로 이해한 인류가 효모를 증식시켜 효과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포도, 야자, 꿀 등 자연계에서 존재하는 당분이 많은 소재를 발효시켜 양조주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처음일 것이다. 9세기에 이슬람 세계에 증류기 제조기술이 개발되고 이것이 동서로 전해지면서, 아락, 소주, 보드카, 위스키, 브랜디 등 여러가지 종류의 증류주로 다양화되었다. 16세기의 신항로 개척 시대 이후에 신대륙과 구대륙 간의 술 문화 교류가 활발해졌고 이에 따라서 다양한 혼성주가 나타났다. 산업혁명 이후에는 연속 증류기가 출현하여 술의 대량생산이 시작되고 최근에는 칵테일 시장이 크게 번성하고 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술이 끝없이 있는 것 같다. 그 중에서는 마셔본 술도 마셔보지 못한 술도 많다. 와인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복잡해서 포기했다. 내 취향에는 아무래도 알코올 도수가 높은 증류주가 맞는 것 같다. 좋은 술이라면 니트로 마시고, 그렇지 않다면 간단하게 레몬이나 라임, 탄산수와 함께 위스키를 혼합한 위스키 하이볼이 제 격인 것 같다. 실제로도 그렇게 많은 술을 마시고 있다.

    책을 다 읽은 후, 내 인생에서의 술의 의미라는 것을 생각해봤다. 조금 심각해지고 조금 실없는 것처럼 느끼기도 하지만, 아마도 술을 끊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술자리의 이야기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상관없다. 다만 나는 함께 하는 사람과 그 분위기를 사랑하는 것 같다. 그렇게 인생이 흘러가더라도 후회하지는 않을 것 같다. 조금 덜 심각하게 살아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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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도 글쓴이님처럼 위스키와 브랜디, 개인적으로는 꼬냑을 좋아합니다! 다만, 요즘에는 간이 점점 썩어가는 걸 몸소 체감하고 있어서 줄이려는 중이에요 ㅎㅎ 와인도 너무 복잡하다고 포기하지 마시고 하나씩 공부하시면 재미 붙이실 수 있을거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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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축제자랑 작가 김혼비 출판 민음사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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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고향은 지금은 창원 특례시가 된 경남 진해이다. 진해에서 가장 유명한 것 두가지를 꼽으라면 아마 해군과 벚꽃일 것이다. 2월 말부터 스멀스멀 피어나는 벚꽃은 그리 오래 남지 않은채 스러진다. 진해 사람들은 진해의 명물 두가지를 엮어 군항제를 만들었다. 진해 인구의 몇배나 되는 사람들이 3월이면 벚꽃을 보기 위해 찾아와 도시가 북적인다. 그래서 진해에 사는 사람들은 대개 군항제를 싫어한다. 벚꽃이야 집 앞에 나가면 밥먹듯이 보는 것이기에 예쁘다는 잠깐의 감흥은 있지만 교통 정체, 바가지 물가, 벚꽃잎으로 더러워지는 외관들을 싫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고향을 사랑하고 군항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 책에 혹시나 군항제에 대한 내용이 있을지 궁금해 집어들게 되었다.

    이 책을 쓴 김혼비, 박태하는 부부다. 국내의 축제를 직접 다녀보고서 이를 엮어 에세이로 만들었다. 흥미가 생겼다. 내가 가보았던 축제가 특히나 부실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코로나 이후, 국내를 다니면서 이들이 괜찮다고 생각한 축제를 한번 가보고 싶은 생각도 들 것 같았다. 여러 지역의 축제가 빼곡하게 쌓여 있었다. 어떤 축제는 나 역시 알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생전 처음 들은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군항제는 없었다.

    물론 이 책의 저자들의 감상 대부분은 내가 축제에서 느꼈던 것과 거의 비슷했다. 키치스러운 분위기, 축제의 목적도 불분명한 조악한 것들이 많았다. 물론 강릉 단오제는 나중에 시간이 되면 한번 찾아가볼 생각이다. 양양에서 강릉은 1시간 정도 밖에 안 걸리니까. 어쨌든 지역에서 보이고 싶어하는 것들은 여러 가지다. 그것이 특산물일 수도 있고, 문학작품의 배경일 수도 있고, 역사적 사실일 수도 있다. 그리고 별로 상관없는 것들이 무리하게 엮여 있기도 하다.

    저자들도 지적했듯이 그것은 ‘지방의 소멸’이라고까지 이야기되는 현실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어떻게든 사람들을 모아서 활성화를 시켜야 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대도시권과 지방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여러가지 정책적 고려가 있다. 그렇지만 시멘트 구조물을 여러 개 만든다고 사람이 모이지는 않는다. 단순한 건물을 짓는 것보다는 사람, 특히 인재가 모일 수 있도록 정책이 시행되어야 된다.

    이야기가 본질에서 멀어졌다. 마냥 지방축제를 키치하다고 폄하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저자들도 적어도 축제에 참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발견했으니. 생각해보니, 나는 술을 좋아하고 축제에는 항상 있기 마련인 지짐이를 좋아한다. 그냥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취해보는 것이 왜 나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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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달(양장본 HardCover) 작가 가쿠타 미츠요 출판 위즈덤하우스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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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에서 계약직 사원으로 일하던 주인공 우메자와 리카. 그녀는 지금 치앙마이에 있다. 1억엔에 가까운 은행돈을 횡령하고 그녀는 태국의 낯선 도시로 도피했다. 그녀는 대체 왜 이런 큰 횡령사고를 일으킨 것일까? 이러한 큰 횡령사고의 범죄자가 자신이 알던 학창시절의 동창, 옛 애인, 사회에서 만난 친구라는 사실에 다들 당황스럽다. 그들이 만났던 그녀는 원래부터 범죄자의 기질을 가진 나쁜 인성의 사람이었을까?

    그들의 기억을 빌려와 생각해도, 학창시절부터 그녀에게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럴 리가 없어. 아니 무엇인가 이유가 있었지 않았을까? 소원한 결혼생활과 불임으로 리카는 처음에는 시간제 사원을 하다가, 이후에는 능력을 인정받아 계약직 사원이 된다. 고객인 노인의 손자를 만나서 애인이 되지만, 젊은 히라바야시 고타는 빚까지 있는 고학생 신분이다.

    처음에는 조금씩, 나중에 갚으면 된다는 생각에 고객의 돈에 손을 댄 리카. 그렇지만 어느덧 젊은 애인과의 섹스 그리고 돈을 씀으로써 생기는 행복감에 젖는다. 급기야는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이제는 누군가 멈추지 않으면, 그 누구도 그녀를 멈추게 할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고타에게도 배신당하고, 횡령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자 외국으로 도피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녀를 회상하는 지인들의 모습도 돈에 대한 감각이 왜곡되고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옛 동창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근검절약을 하지만, 딸은 가지고 싶은 물건을 훔친다. 현실을 무작정 희생해서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항상 옮은 것일까? 옛 애인은 쇼핑중독에 빠진 아내와 이혼하지만, 애인관계인 여자의 씀씀이에 거리를 둔다. 사회에서 만난 주조 아키는 마찬가지로 돈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고 쇼핑을 이어나간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어느덧 교환수단이 돈은 그 본래의 의미를 넘어섰다. 그리고 돈을 쓰는 것에 중독된 사람들의 모습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항상 근검절약을 하면서 사는 것도 문제이며,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써 대는 것도 문제다.

    오늘날의 자본주의의 미덕을 이야기하라면, 아마도 소비라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보다 건강한 미덕이란 소비보다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을 통해서 사회에 기여한다는 개념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개념을 통한 도덕적 감수성을 가지지 않는다면,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과 같이 균형감각을 상실하고 삶을 피폐하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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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 작가 앤드루 S 그로브 출판 부키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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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인 앤드루 S. 그로브는 인텔의 CEO로 재직하면서 회사를 전세계적인 초우량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가 쓴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가 절판되었다가, 이번에 새롭게 번역되어 출간되어 기대가 컸다. 시장의 변화, 즉 전략적 변곡점에서 경영자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기업전략의 수립에 있어서 어떤 고민의 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인가?

    80~90년대 일본 반도체기업의 기세는 대단했다. 인텔의 메모리 반도체 사업은 적자를 거듭했다. 이런 전략적 변곡점에서 인텔의 경영진은 어떤 기업전략을 채택해야 했을까?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신속하게 정리하고,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으로의 전환을 결정한다. 컴퓨터 산업의 수직적 시장구조, 즉 1개 회사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총괄하여 완성형 제품을 출시하는 것이 수평적 시장구조로 변화하는 흐름을 읽는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적 변곡점을 제대로 읽어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것이 진짜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신화와 잡음을 구분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은제 탄환 (silver bullet) 테스트를 유용한 툴로 소개한다. 이는 “만약 권총에 총알이 한 말만 남아 있다면, 경쟁자 중에 누굴 쏠 것인가”이다. 핵심 경쟁자를 가리기 위한 질문인 것이다. 이를 통해서 예정에는 생각하지 못한 경쟁자가 등장한다면 전략적 변곡점의 신호일 가능성이 높다.

    그루브는 경영자의 입장에서 시장의 변화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는 현업의 담당자와의 교감을 강조한다. 이러한 카산드라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경영자는 무엇보다 민감하고 항상 긴장해야 된다. 경영자의 시간은 소중한 자원이며 이를 제대로 배분해야 한다. 시간의 배분이야 말로 회사가 가야 될 방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략적 변곡점에 있어 경영자는 회사를 위한 가장 좋은 선택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결정하면 조직에 명확한 메시지를 주고, 모든 자원을 집중해야 된다.

    PC시대의 종말로 인해서 인텔은 반도체 관련 사업이 PC에서 스마트폰으로 그리고 이제는 사물 인터넷과 자동차로 이동하고 있는 전략적 변곡점에 있다. 따라서 이전의 기술혁신을 최우선으로 삼던 기업전략에 벗어나 딥러닝과 자율주행으로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일환으로 인텔은 자율주행 기업인 모빌아이(Mobileye), 인공지능칩을 만드는 하바나랩스 (Habana Lab),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인 Moovit을 인수했다. 자율주행이 성공하려면 달리는 자동차가 주변 사물을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인지해야 하고, 도로, 교통과 사용자 형태에 관한 폭넓은 데이터를 확보해야 하며, 대량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인텔은 이 모든 기술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에서 경쟁기업인 AMD가 인텔을 앞질렀다. 혹자들은 인텔이 혁신의 동력을 상실하고 경쟁력을 잃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략적 변곡점에서 인텔은 새로운 기업전략을 채택하고 시장의 변화, 흐름에 맞춰서 투자 및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인텔의 전략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전설적인 경영자인 앤드루 그로브와 같이 그들은 성공할 것인가 주목된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것은 80년대말, 개정판이라고 해도 90년대 중반이다. 이 책의 사례는 오래 전이지만, 앤드루 그로브의 통찰력, 그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아직까지도 유효하고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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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혼은 신중하게 이혼은 신속하게 작가 이지훈 출판 21세기북스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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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은 매우 유명하다. " 행복한 가정은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아마 모두의 결혼식은 항상 즐겁고 행복하지만, 그 끝은 서로 다르게 발산하는 결혼 생활도 이와 비슷하리라. 나 역시도 이혼 가정에서 자라왔고, 주변을 보면 이혼 가정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기에 이 책이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이지훈 씨는 이름만 본다면 남성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성이다. 군법무관 출신이고 변호사이다. 그리고 본인이 이야기를 하듯이 14년간의 결혼생활을 마치고 이혼했다. 올해까지 이혼생활은 대략 7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과 변호사로써 이혼과 관련된 법률상담을 하다가 많은 것을 깨달었다고 한다. 결혼은 신중하게 이혼은 신속하게 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정반대로 행동하고 있다. 오히려 결혼은 신속하게 이혼은 신중하게 함으로써 많은 불행을 스스로 만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렇다면 결혼은 하지 말아야할 것인가? 저자는 ‘결혼은 제도이고 선택입니다. 여러분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첫째, 나를 세우고 내 인생을 살아갈 것, 둘째 내가 바로 선 후에 동반자를 찾을 것, 셋째 가족의 형태를 결정할 것입니다’라고 언급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모습을 본다면, 결혼 적령기라 할 수 있는 젊은 세대들에게 이제 결혼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자존감과 자아정체성을 가지고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결혼 후의 삶은 그들에게는 이미 너무 가혹한 것이 되었으니 그 누가 결혼을 쉽게 선택할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는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결혼을 꿈꾸기도 한다. 어떻게 사람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을까? 그는 논어에서의 공자의 말을 인용한다. ‘말과 행동을 살피고, 그렇게 하는 이유를 관찰하며, 진심에서 우러나와 그렇게 하는 것인지를 고찰하라’ 이를 저자는 현대적인 용어로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 그리고 문제 해결 능력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삶에 대한 태도는 스스로의 자존감을 바탕으로 세울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 항상 사람들에게 착하기만 하다면 그것은 생각하기를 포기했을 때문일 확률이 높다. 인간이 이기적인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결혼도 이혼도 전부 결과적으로는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한 것이다. 정상적이지 못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노후를 위해서 아이를 위해서 참고 살아간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자기기만에 가까운 행위이다. 우리는 각자가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이고, 행복하게 인생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 저자는 아이들의 행복을 생각하기 이전에 자신의 삶을 생각하라고. 아이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강인하다고 말한다.

    물론 이혼을 하지 않고, 부부간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일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저자가 말한 바와 같이 질문을 통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부싸움은 이를 통하여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을 함께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미련없이 신속하게 이혼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혼의 본질은 계약의 청산이고, 그 핵심은 재산분할이다. 그것을 시간을 질질 끌며 할 수록 새출발할 수 있는 여력도 적어질 것이다.

    이혼은 인생에서 충분히 거쳐갈 수 있는 과정의 하나이며, 그것이 어떤 흠집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결혼을 결정하기 전에 신중한 태도를 견지해야 됨은 말할 나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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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부부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행복한 시작을 하지만 결국 각자 다른 이유로 헤어짐을 맞이하는게 만국 공통인 것 같아요. 헤어짐은 슬프지만 \'나\'를 사랑한다면 맞지 않는 사람과의 헤어짐은 슬픔이 아니라 축복이란 사실을 배워갑니다. 작가님의 인용한 공자의 말인 \'자신을 세우지 못함이 모든 인간관계에서 스스로를 약자로 만들어버린다\'처럼 제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이 책을 통해서 배우게 되네요. 좋은 책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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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킨에는 진화의 역사가 있다 작가 가와카미 가즈토 출판 문예출판사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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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저녁도 치킨을 먹었다. 치킨에 빠져 사는 정도까지야 아니다만 치킨 없는 삶을 상상하기도 싫다.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면 닭꼬치 한봉지 사들고 오고 싶기도 하고, 새벽에 스포츠를 보면서 프라이드 치킨 하나
    뜯고 싶기도 하다. 식욕 없는 날이면 매콤한 찜닭이나 닭도리탕도 땡기고 점심에는 닭갈비에 볶음밥도 언제나 옳다.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꽤 많은가 보다. 작가 가와카미 가즈토 역시 '테바사키'를 극찬하고 있다.

    이 책에서도 소개되었던 나고야의 명물 ‘테바사키’는 닭날개 요리다. 나고야 역에서 내려서 주변을 둘러보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역시나 한번도 먹어본 적은 없다. 너무 흔해서 그럴까? 한번도 치킨에 대해서 진지하게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닭을 통해서 조류를 이해할 수 있다는 작가의 말. 맞다. 인간이 가축화를 하여, 야생의 조류와는 다른 부분이 있더라도 닭도 조류의 일종이니까.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번성하는 조류일 것이 확실하다.

    닭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조류학계의 빌 브라이슨이라는 별명처럼 위트가 넘친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새롭게 알게 되었던 내용도 있다. 조류의 날개 끝에 손가락의 흔적이 있다는 것. 조류 중에는 그 흔적이 보다 뚜렷하게 남은 종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손가락의 흔적이 공룡의 한 종류인 수각류가 조류의 조상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는 것. 아마도 더 놀라웠던 것은 다름이 아니라 조류의 다리일 듯싶다. 이제까지 조류의 무릎이 우리 인간과 반대로 접힌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대퇴골이 짧고 깃털에 가려 우리가 실제로 보는 조류의 다리는 무릎 아래. 꺾여진 부분은 발 뒤꿈치라니! 새는 발가락으로 걷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뒤꿈치를 포함한 발바닥 전체가 땅에 닿게 걷는 척행성이고, 조류는 발가락으로 걷는 지행성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아마도 닭고기를 먹으면서 근육을 상기시키고 어떤 뼈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100% 전부 다 확인할 수는 없다. 우리가 흔히 먹는 닭은 영계로 세상에 태어나서 얼마 안되어 도축된 것이다. 말하자면, 다 자라지 않는 상태에서 고기로 출하된다. 문득, 인간의 잔인함도 상기되었다. 공장형 양계장에서 비인도적으로 사육되는 닭, 돼지, 소와 같은 대표적인 동물을 생각해보면 참 인간은 탐욕스럽다.

    어쨌든 이 책이 흥미로운 사실이다. 흔히 먹는 닭고기를 상기하면서, 그들을 조금 더 알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또한 저자의 위트도 재미있을 법하다. 그런데 한가지. 이 책 의외로 매우 어렵다.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닭의 도해를 일단 어느 정도는 숙지해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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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의 깊이 작가 정태종 출판 한겨레출판사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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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건축을 전공한 적도, 건축학의 기초에 대해서도 모르지만 잘 만들어진 건물들이나 새롭게 지어진 건물의 페인트 냄새를 맡곤 할때면 괜시리 기분이 좋아진다. 즐거울 일이 없는 도시에서 그나마 느낄 수 있는 인류의 발전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부분이 건축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을 쓴 건축가 정태종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의대를 졸업해서 치과 개원의까지 했었다. 그러나, 건축에 대한 관심을 계속 가지고 있었고 늦은 35세의 나이로 건축을 공부했다. 아마도 처음에는 건축계에서도 쉽게 인정받지는 못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성공적인 건축가가 되었고 지금은 단국대 공과대학 건축학부 교수로 일하고 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해서 성공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는 대단한 사람이다.

    오늘날 학문적 통섭을 생각해보면 건축가가 그 주인공이 아닌가 싶다. 각자의 상아탑을 견고하게 쌓고, 자신만이 알아듣는 언어로 이야기를 한다. 같은 주제를 다르게 이야기한다. 오늘날 르네상스형 지식인을 찾기 힘든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렇지만 건축가는 어떤가? 그들은 철학, 사회학, 공학 등을 섭렵한다.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고민해야 되며, 그러한 고민은 다양한 관점을 필요로 한다. 공간의 힘이 주는 힘을 생각해보면, 과장이 아니다.

    건축가로 그는 전 세계 곳곳을 다녔다.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고 싶은 건축물이 많았던 까닭이다. 아마도 말로 백번 듣는 것보다 직접 가서 한번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거기서 글이나 사진, 이야기와 같은 간접적 체험으로는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요소가 있다. 생각해보니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전화라든지 이메일로 이야기를 할 수는 있겠지만, 교감하기는 어렵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단순한 정보의 교환 이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의 기행은 다섯가지 카테고리를 따라서 정리되었다.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헤테로토피아 (Heterotopia), 현상학 (Phenomenology), 구조주의 (Structuralism), 바이오미미크리 (Biomimicry)와 복잡계 이론, 스케일 (Scale)까지. 다양한 철학의 관점을 적용하며 건축은 어느덧 현대물리학과 생물학을 채용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다녔을 수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건축물이 사진과 함께 설명되고, 문득 나 역시 그런 건축물을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싱가포르와 일본은 출장으로도 자주 갔었는데, 아마도 미리 이런 것을 느꼈다면 시간을 내서 직접 가보지 않았을까도 싶었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와 함께 길을 걷고 건축물을 보고 서로 별다른 말없이 건축물을 바라보는 듯 했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해외를 간다든지 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한국에도 충분히 가볼 만한 곳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용산의 보이드 공간이 특히나 내 관심을 끌었다. 아마도 코로나 대책이 다소 풀린다면, 행복한 저녁식사 후, 천천히 밤 10시쯤에 그 공간을 지나가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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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예술가가 가져야할 자질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요,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훌륭한 미술적 재능도 필요하지만 자신만의 철학이 있어야하고 예술가는 결국 자신의 작품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 전반의 정서 또한 잘 알아야하며 자기만의 언어로 작품을 만들어낼줄 알아야 한다는걸 생각했어요. 어떻게 보면 건축도 예술에 포함된다고 생각하는데 저자분이 제가 요즘 생각하고 있는 이상적인 예술가에 가까운 분 같아서 흥미가 가네요. 좋은 서평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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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죄 기네스북 작가 이윤호 출판 도도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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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학이라는 학문의 범주에 대해서는 크게 알지는 못한다. 구글에서 검색하니 “범죄학(Criminology)은 범죄의 발생과 그 원인, 그리고 대책을 탐구하는 학문분야로서, 사회학, 심리학, 법학, 경찰행정학 등의 다양한 부문에서 접근하는 학제적 분야이다. 범죄학이 가장 발달한 미국의 경우에 대부분 사회학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주류를 이룬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이 책을 쓴 이윤호 교수는 범죄학자이고, 보다 대중적으로 범죄학을 소개하고 싶었던 것 같다. 서문에서 밝혔듯이 ‘특정한 계층끼리 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언어로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더 이상 학자만의 학술범죄학(Academic Criminology)에 그치지 않고, 우리 모두의 언어로 된 우리 모두의 범죄학, 바로 대중범죄학(Popular Criminology)을, 누군가는 시작해야 한다’고. 그래서 그가 택한 방식은 대중이 흥미를 끄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잘 알려진 ‘기네스북’의 형태를 빌려서, 책을 전개한 것이다. 흥미롭기도 안타깝기도 한 사건들이 소개된다. 범죄에서 테러리즘, 환경범죄, 기업범죄 등 다양한 범주의 사례가 무척이나 풍부하게 소개되어 있다. 특히 내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기업 범죄였다. 사실 뉴스 미디어에서 보도되는 흉악범죄는 안타깝기는 하지만,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니 이런 기업 범죄가 더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1984년 12월에 발생한 인도 보팔에서의 유니온 카바이드의 자회사가 운영하는 살충제 공장에서 폭발로 인하여 가스누출이 발생, 4000명이 사망한 사건. 에너지, 물류 및 서비스 회사로 한 때 자산이 600억 달러가 넘었던 엔론(Enron)의 회계부정사건, 세계적인 에너지 회사인 엑손모빌이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운동을 벌였고 2015년과 2016년에 뉴욕과 캘리포니아 주는 엑손모빌이 기후변화에 대한 허위사실을 공지한 혐의로 수사에 착수했다. 최근에는 8,700만명 이상의 페이스북 사용자 개인정보를 정치자문회사인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로 유출되었다.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사건도 큰 논란을 일으켰다.

    최악의 기업범죄에 있어, 에너지 관련 업체가 눈에 띄었다. 석유 및 석유화학뿐만 아니라 이들이 만든 수송용 연료인 gas oil로 인해서 발생하는 배출가스 결과를 조작한 사례까지. 그 유형도 다양했다. 문득, 들었던 생각은 오늘날 우리 세계가 탄화수소를 기반으로 수립되었고 그에 따라 막대한 이권이 개입될 소지가 많았던 것은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이제 무탄소시대를 위한 여러가지 환경규제가 임박했다. 변해야 되지만, 이익을 위해서 불법을 저지르는 기업이 계속 나올 가능성은 있는 것 아닌가 싶다.

    흥미로운 책이다. 범죄학이라는 학문을 기반으로 대중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눈높이를 맞춰서 쓴 책이다.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읽는다고 하더라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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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렌드 코리아 2022 작가 김난도 출판 미래의창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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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유명한 김난도 교수가 주도하여 매년 출간되고 있는 ‘트렌드 코리아’를 2017년부터 꾸준하게 사서 읽었던 것 같다. 아마도 최신의 트렌드라는 것들을 접하면서, 사회적 변화의 민감한 양상까지도 내밀하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작년에 이어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트렌드에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참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했던 재택근무도 앞당겨졌다. 집에서 일한다는 것이 과연 생산성이 있는지 구성원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할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의심했었다. 의도는 아니었지만, 이러한 변화는 어쩌면 고집스러운 사람 중 하나인 나에게 전혀 상관없었던 분야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했다. 메타버스, AI, 데이터, RPA, 시각화 도구, 플랫폼 경제 등이 그것이다.

    생각해보면, 김난도 교수와 동료들이 매년 출간하는 트렌드 코리아도 그러한 자극의 하나다. 앞서 말한 것처럼, 트렌드는 단순히 히트상품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제시된 단어들, 나노사회, 각자도생 등은 오늘날 현대사회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우리 자신을 규정했던 종교, 정치, 공동체가 해체되고 파편화되었다. 그 적나라한 모습이 결국 지금 유행하는 트렌드를 창출한 것이다. 그 결과물이기도 한 트렌드를 읽어가니 결국 사회적 변화의 단초가 보인다.

    마지막에 가장 공감된 부분은 ‘내러티브 자본’에 대한 이야기였다. 서사를 만들 수 있는 능력, 개인이나 기업이나 모두에게 중요한 것이 되었다. 문득, 얼마 전에 읽었던 김키미의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가 생각났다. 이제는 퍼스널 블랜딩의 영역으로 확장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오늘날 변화하는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은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에 미쳤다.

    자기자신, 어쩌면 이제 우리가 하는 일의 많은 부분이 자동화될 것이다. SF영화에서나 가능할 것 같았던 자율주행자동차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이 우리의 일을 대체할 지 기대된다. 그렇게 보니,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영역이라는 것은 결국 자기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제 아무 것에도 의지하지 않은 채, 자신의 길을 묵묵하게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아마도 트렌드 코리아에서 그런 것들 느꼈다면, 그러한 사회적 변화가 투영된 결과라고 해야 되지 않겠는가? 시사성을 지닌 책들의 생명력을 짧지만, 트렌드 코리아 최근 몇 년치는 시간이 된다면 한번 읽어봐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얻고 싶었던 철학적 통찰력을 얻을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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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 저는 이런 책의 존재도 모르고 살았네요.. 오히려 고등학생 때가 지금보다 더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고 요즘 느껴서 그런지, 이 책이 정말 필요함을 서평에서부터 느낍니다. 책 추천 감사합니다!
  • 정의 중독 작가 나카노 노부코 출판 시크릿하우스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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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을 떠들썩하게 하는 사건이 일어나면, 전 국민적인 관심과 인상은 더욱이나 폭력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당장 작년 초에 일어난 의대생 한강 실종 사건을 생각해 보면, 이른바 "방구석 코난"들이 저마다의 추리와 논리를 뱉어내고 있었다. 경찰의 공식 발표나 언론의 전문가 분석따위는 싸그리 무시한 채.

    인터넷이라는 익명의 공간에서 타인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각종 악플과 비난을 생각해보라. 비난을 받아 마땅한 잘못을 저지른 경우도 무심코 경솔하게 SNS에 올린 글 하나로 고초를 겪기도 한다. 이전에는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과 같은 일방향의 매체만이 있었다. 그런 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이 실시간에 가깝게 화제가 되는 경우는 없었다.

    그렇지만 양방향 매체의 발전으로 인해서 많은 것이 변했다. 각종 플랫폼을 통한 통로가 다양해지면서, 많은 기회가 열렸다고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현상들이 나타났다. 일본에서는 특히 이러한 현상이 이전에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쉽게 분노하고 비난을 퍼붓는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익명성에 기댄 일탈행동일까? 아니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무엇인가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일본인의 집단주의적 성향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한 일본인의 사고방식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저자는 일본인이 처한 자연적 조건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외부와의 교류가 활발하지 못한 섬나라의 특성과 지진과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는 공동체라는 집단에 순종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 것이다.

    이러한 집단주의적 성향은 비단 일본인만의 것은 아니다. 인간은 모두 이러한 성향을 가지게 마련이다. 이렇게 형성된 집단은 내집단과 외집단으로 나누어져 타자에 대한 적대감 혹은 거리감을 형성한다. 진영논리는 결국 내가 속한 집단이 무조건 옳다는 비뚤어진 정의감을 양산한다. 설령 집단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개인이라도 동조압력에 쉽게 굴복하고 만다.

    인터넷에서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 수많은 사람들이 편을 나누어 상생적인 결론보다는 극한의 대립을 일삼는 일들. 이 배경에는 집단을 형성하고 자신만이 정의를 독점했다는 편협한 생각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이러한 문제들은 우리가 고민하는 자신의 정체성 문제와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우리 자신을 규정하는 것들, 종교라든지 기존의 공동체적 사회구조라든지 이런 것들에서 자유로워진 우리 자신 말이다.


    결국, 자유를 쟁취한 우리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얼마나 쉽게 포기하는 지를 알 수 있다. 정체성의 혼란, 고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도피처는 집단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오늘날 정의중독이니 하는 개념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상황의 결과가 아닐까?

    저자의 조언처럼 우리는 메타인지, 자기 자신을 계속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통해서 이것을 극복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우리의 정체성이라는 것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고, 그러한 가운데 그 누구에게도 일관성을 요구할 수는 없다. 설령 그것이 자기 자신이라고 할지라도. 대립적 사고방식이 아니라 병렬적 사고방식을 통해서 어쩌면 우리는 정의중독이라는 현상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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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개의 스페인(개정판) 작가 신정환 출판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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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에 관련된 책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유명한 책이다. 제목도 흥미롭고 세 차례 개정을 거친 점, 게다가 코로나 시국에 맞춰 부제를 '알타미라에서 코로나19까지'로 바꾼 점 등을 보고읽게 됐다.

    1부는 역사를 2부는 문화를 다루고 있다. 시간 순대로 진행되는 역사 파트와는 달리 문화 파트는 스페인의 문화 이모저모가 다소 두서없이 소개돼 가독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더군다나 가장 기대했던 코로나19 부분은 짤막하게 다뤄졌고 또 아직 현재진행형인 문제이거니와 나도 뉴스를 통해 이미 알고 있던 내용들이라 별다른 만족감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투우 파트에서 코로나 때문에 투우가 침체기를 겪고 있다는 게 더 기억에 남았다. 안 그래도 스페인 내부에서 찬반 양론이 거센데, 축구나 뮤지컬은 무관중으로 진행해도 투우는 정부에서 그 정도 투자도 하지 않아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투우를 한 번쯤은 보고 싶은 터라 참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는데, 오래된 문화인 만큼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겠지만 피해가 얼마나 심한지, 그리고 코로나가 언제 종식되고 내지는 위드 코로나가 성공적으로 안착할는지 몰라 불안하기 그지없다.

    작년 7월 즈음에, 관광 수입을 얻고자 스페인이 외국인 관광객을 받아들이겠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 전부터 학교에서 교양 스페인어를 들으며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대한 관심이 커졌었는데, 작년의 코로나 상황은 더 안 좋았던 지라 여행은 단념했지만 아무튼 그 이후로 드라마 <종이의 집>을 보고 스페인 관련 책도 찾아 읽었다. 그런데 책들을 보면 '스페인을 알아야 세계가 보인다' 같은 스페인 문화 찬양이 느껴져 쓴웃음을 지은 적이 있었다. 스페인이 매력적인 나라인 건 인정하지만 세계가 보일 건 또 뭐람? 솔직히 전형적인 광고 문구 같아 코웃음을 치고 말았는데 이번에 <두 개의 스페인>을 읽으며 그 말이 드디어 와 닿았다.

    역사 파트를 통해 스페인과 남미 등의 라틴 계열의 문화는 영미 국가, 이른바 앵글로섹슨족과는 큰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됐다. 그 차이란 것이 제법 대조적이고 또 '스페인을 알아야 세계가 보인다'는 주장이 그럴싸하게 들리게 만들었다. 미국으로 건너간 영국인들은 원주민을 배척하고 학살한 반면 남미를 장악한 스페인인들은 원주민과 관계를 맺어 아이를 낳았는데 그 혼혈들이 오늘날 남미 국가들의 실질적인 조상이 되고 그렇기에 남미 국가들이 스페인과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 원만한 관계를 가진다는 것이 신기하게 다가왔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덕분일까? 미국은 히스페닉이나 아랍 문화와 끊임없이 충돌하고 영국도 크게 다르지 않아 늘상 테러의 위협에 시달리는 반면 스페인은 마드리드 3.11 테러 말곤 타인종과 크게 반목하지 않는다는 건 주목할 만한 일이다. 정작 스페인 내부에선 마드리드를 비롯한 까스띠야 지역이 까딸루냐와 바스크와는 엄청 반목하는 것과 정반대로 말이다.

    스페인은 유대인이나 이슬람과의 관계가 다른 유럽 국가와는 달리 괜찮은 편인데 이 부분도 역사에서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레콩키스타의 국토 수복 전쟁 이전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는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를 믿는 인종이 섞일 대로 섞여서 기독교도들이 이슬람교를 몰아내고 국교가 바뀌었어도 그 혼종 상태는 큰 변화 없이 유지됐다고 한다. 사실상 프랑코의 독재 체제 이전까지 스페인이나 심지어 남미의 식민지조차도 여러 문화가 나름대로 조화롭게 어우러졌다고도 볼 수 있다. 비록 남미 식민지들은 스페인이 탐욕스런 목적으로 만든 것일지언정 적어도 미국이 했던 짓에 비하면 대조되는 부분이 있어 - 골때리는 건 정작 원주민을 가장 많이 학살한 건 스페인군이 아닌 스페인과 남미 원주민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들이다. 두 가지 피가 섞인 자신들이 이 땅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다면서 스페인군과 원주민 둘 다 적대했다. 스페인의 '문명의 연대'가 사뭇 대단해보이는 이유다.

    '문명의 연대'란 스페인이 마드리드 테러 직후 이라크에 파병한 자국 군대를 철수시키며 그 이유를 댈 때 쓴 용어다. '문명의 연대'란 무력이 아닌 대화로 타 문명과 연대를 도모한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편한데 이렇게 설명하면 허울만 좋은 소리처럼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대화로 연대가 쉬웠다면 애당초 싸움이 벌어졌겠는가. 하지만, 무력이라고 무슨 만능도 아니고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치닫게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걸 역사에서 무수히 많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스페인처럼 존재감 있는 국가가 '문명의 연대'를 주장하는 건 사뭇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됐다.

    과연 스페인식 '문명의 연대'가 저자가 강조한 것처럼 지금보다 좋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는지는 검증을 해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스페인을 알아야 세계가 보인다'는 말만큼은 단순히 스페인 예찬에서 비롯된 말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글쎄, 정확히는 스페인 문화가 무조건 옳다기 보다 미국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은 일단 위험할 뿐더러 무엇보다 비좁고도 비좁은 시각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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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플란트 전쟁 작가 고광욱 출판 지식너머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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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치과가 무섭다. 드릴 소리며, 치아와 턱관절에 느껴지는 뻐근한 고통이며, 잇몸을 뚫고 들어가는 주사가 무섭다. 그러나 그 중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고통의 진료를 마치고 나왔을 때 받아드는 청구서다. 이 때문에 단것 조차 꺼리는 나는, 서점에서 이 책을 보고 바로 집어들었다. 치과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란 점 때문에 흥미가 생기기도 했고 1년 전에 임플란트 치료를 받아서 한국 치과계의 부조리함을 고발했다는 이 소설의 내용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임플란트 전쟁>은 치과 의사들끼리 담합해서 임플란트 비용을 300만 원으로 정하고 그 가격을 지키지 않고 더 저렴하게 가격을 책정한 치과 의사를 블랙 리스트에 올려 왕따시키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심기를 건드리는 환자들까지 블랙 리스트에 올려 자신들의 권위를 공고히 다지려는 치과 의사들의 찌질한 모습을 묘사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분노를 유발하는 사회 고발 소설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우리 동네 치과에서 임플란트를 할 때 130만 원의 진료비만 내고 끝낸 내가 참으로 운이 좋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작품의 내용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난 평생 한 치과밖에 이용하지 않아서 소설에서 얘기하는 '너무 비싼 치과 진료비'에 실질적으로 공감이 가지 않았다. 다른 치과가 정말로 세 배 이상의 가격으로 임플란트를 해준다면 병원마다 가격 차이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대체 임플란트의 적절한 가격은 무엇이며 그 적절한 기준이란 또 무엇인가. 이 소설은 현직 치과 의사가 실제로 목격하거나 경험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성된 일종의 논픽션이자 작가의 직업이 직업인 만큼 내용이 아무리 소설적이어도 마냥 소설 속 이야기로만 치부하기가 쉽지 않았다. 속된 말로 배운 놈들이라고 더 나을 게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정말로 가관인 것은 그들의 선민의식이 너무도 견고한 나머지 비상식적이고 찌질한 조직 문화에 쉽게 물들고 오히려 자신들이 실로 합당하고 정의로운 일을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 뻔뻔스러운 자기합리화는 업계 사정을 모르고 읽으면 논리적인 것 같아 읽으면서도 종종 헷갈렸다. 사실은 주인공이 혼자 고집을 부려가며 그래도 자신은 양심 있는 의사라고 일종의 자기만족에 취한 것은 아닌지 말이다.

    작가의 분신일 작품의 주인공은 임플란트의 재료비며 수술 과정의 수고로움이 300만 원은 너무 과하다 생각해 더도 덜도 말고 합리적 가격인 100만 원으로 치료비를 책정한다. 그러자 바로 치과협회로부터 압박이 들어오는데 자신의 양심을 끝내 외면할 수 없던 주인공은 조직의 룰을 따르지 않는다.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조직의 으름장은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서 동료 의사들로부터 '자기 혼자만 치료비를 낮춰 환자들을 독식하려는 파렴치한 의사', '낮은 치료비의 단가를 맞추기 위해 저질 재료를 쓰는 의사 자격 없는 자', '동료 의사를 생각하는 마음이 없는 이기적인 불순분자라 척결 대상에 불과하다.'면서 온갖 악의적인 소문과 임플란트 재료 공급 업체에 압박 및 간호사나 치위생사도 주인공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만드는 등 주인공을 고뇌와 인내의 시간을 걷게 만든다.

    비단 치과만의 문제가 아닌 의료계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심리, 자기는 남들보다 배로 공부하고 노력했으니 돈도 그만큼 많이 벌어야 한다, 그 정신에 위배하는 행동을 보인 동료는 동료도 아니고 바로 배척해야 한다는 심리는 이 작품에서만 묘사되는 것이 아니다. 각종 드라마, 영화에서 무수히 다뤘는데 이걸 단순한 설정이라 여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법조계와 의료계 종사자는 직업 윤리나 사명감을 위해서가 아닌 부와 명예를 거머쥐기 가장 좋은 직업으로 인식되고,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적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사회적 성공을 위해 해당 업계에 들어가려고 공부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엔 절대다수가 아닌가 싶다. 직업을 택한 목적이 목적이다 보니 도저히 도덕적 해이가 아니고선 저지를 수 없는 짓을 터무니 없이 손쉽게 저질러 많은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해 이 작품이라고 특별히 충격적이진 않았다. 치과라고 별반 다르지 않구나 하고 느꼈을 뿐이지.

    작년에 갔던 동네 치과는 양심적인 치과인 것인지 아니면 이 소설 속 내용이 과장인지 몰라도 자기 양심을 지키는 의사가 생각보다 소수라는 건 우리나라에선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 아닐까 싶다. 물론 법조계든 의료계든 종사자들이 열심히 공부한 만큼 보상을 받는 것 자체는 틀렸다고 생각지 않지만 그 목적이 그릇된 수단을 낳는 것 같아 이 극단적인 현상을 어떻게 타계해야 할는지 모르겠어 답답하기 그지없다. 북유럽의 경우엔 버스 기사나 의사나 월급에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의사의 수가 적긴 하나 그래도 낮은 보상에도 불구하고 의사 자격증을 딴 참된 의사만 있어 의료의 질이 꽤 좋다고 한다. 제법 고무적인 사례지만 이런 모습을 긍정적으로 여기고 우리나라에 적용하기엔 선민의식에 젖은 기득권이 그 꼴을 가만 두고 보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모든 직업이 평등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위와 같은 북유럽의 풍경은 어떤 의미에서 극단적이라고 생각하니까.

    이 소설이 내놓는 구체적인 대안은 사실상 없다. 일부 책임자, 불건전한 조직 문화를 선동한 우두머리와 그 일파 정도가 고발당했을 뿐 주인공은 여러 페이크 뉴스가 낳은 후폭풍을 다 해결하지 못한 채로 소설은 끝났다. 변호사와 기자인 친구들의 도움으로 인해 치과계의 어두운 부분이 만천하에 공개됐고 주인공도 이 책과 동명의 소설을 써 낱낱이 퍼뜨릴 것이라 다짐할 뿐, 이 작가가 사회 고발 소설이자 권선징악의 이야기 구조를 시원하고 일사천리로 따르는 일종의 판타지를 썼다는 게 나의 감상이다. 현실이 이처럼 순순히 풀리리라 기대하긴 쉽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느껴진다.

    대신 이 책의 진정한 교훈은, 세상은 그래도 힘이 없는 소수의 양심적인 사람이 희생을 감수하고 버티기에 조금씩이라도 좋아진다는 걸 간과하면 안 된다가 아닐까? 아주 고통스럽고 막연하지만 그들의 희생의 가치는 결코 가볍게 여겨져선 안 될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이 판타지적으로 느껴질 만큼 현실이 개판이긴 하지만, 때론 그런 비현실적인 사람들이 현실을 더 좋게 만든다. 세상은 튀어나온 못을 다시 망치로 박지만 여기서 정말로 문제인 건 튀어나온 못인지, 아니면 튀어나온 못을 향해 망치를 드는 세상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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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개인의 정의로운 저항은 너무도 대단한 일이지만, 한 개인이 조직 전체를 상대로 버텨내기는 너무 힘든 일인 것 같아요. 좋은 뜻을 가지고 일어났지만 결국 뽑혀나간 못이 얼마나 많을까요. 조직엔 반드시 감시자가 있어야만 하는 또 하나의 다른 이유를 보고 가네요,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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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티사르의 자동차(양장본 HardCover) 작가 페드로 리에라 출판 미메시스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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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유명 시트콤 프렌즈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챈들러는 부담스러운 여자친구 재니스와 헤어지려 하지만 인연을 끊어내는 것이 맘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회사 일 때문에 먼 외국에 오래도록 출장을 가야 한다는 핑계를 대는 것이었다. 이때 선택한 국가가 바로 예맨이다. 재니스는 이 변명에 속아넘어가고, 꼭 편지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주소를 되짚는데, "15, Yemen road, Yemen"이라는 가짜 주소를 철덕같이 믿는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웃기기도 했지만, 내가 만약 예맨 사람이라면 굉장히 기분이 나쁠 것 같기도 했다. 예맨에 대한 무지에서 시작된 개그지만 예맨이 그만큼 낙후되었다는 암시를 풍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예맨에 일 때문에 가본 경험이 있는 스페인 만화가의 작품으로 예맨 여성 인권의 현주소를 낱낱이 드러낸다. 앞서 말했듯 작가의 창작이 아닌 '어느 예맨 여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며 '그래픽 노블'의 특성에 따라 그림보다 문장을 따라가며 읽는 맛이 상당했던 작품이다. 예전에 읽을 때는 잘 느끼지 못했던 부분인데 문장력이 상당히 뛰어났는데 아무리 그래픽 노블이라지만 엄연히 만화에 속하는 작품에 문장력에 감탄해보긴 처음이었다. 다시 곱씹어볼 만한 문장은 이번에 읽을 땐 없었지만 워낙에 작품의 분위기가 분위기인 지라 그냥 작품 자체가 뛰어난 문장처럼 읽혔다.

    처음 이 작품의 모델이 된 '어느 예맨 여성'은 예맨의 문제는 종교가 아닌 그 이전부터 이어져 온 '관습과 전통'이라는 종교가 문제임을 서두에서 밝히고 있다. 쉽게 말해 이슬람교는 거들 뿐이란 것이다. 여담이지만 쿠란의 구절을 쓴 무함마드 입장에선 좀 억울할 수도 있겠다. 쿠란을 쓸 당시와 지금 시대를 동일시할 순 없으니 어느 정도는 고리타분하고 폐쇄적인 마음가짐과 환경에서 그 구절들을 적은 것이겠지만, 후대의 이슬람교와 관련된 문제들은 그 쿠란을 교묘하게 자기들 입맛대로 오독한 것에서 비롯되니 이슬람교 전체를 싸잡아 욕하기도 뭔가 애매하단 생각도 든다.


    왜 이런 말을 하냐면 이 작품의 주인공 인티사르부터가 샤를리 엡도의 풍자 만화를 바보같다며 비판하는 등 딱히 이슬람교도인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눈치가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인티사르는 예맨이란 나라의 막장스러움, 자신의 아버지는 틈이 날 때마다 씹지만 이슬람교를 근본적으로 혐오하는 장면은 없었다. 아주 나쁘게 말하면 세뇌당해서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만, 실상 이슬람교를 실제로 겪어보지 않은 입장인 나 같은 독자는 실제 그 종교를 믿으며 본인 나라에서 특정 성별로 살아감에 있어 어떤 기막힌 고충이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게 그나마 이 책을 읽는 동안 감정을 격해지지 않게 억누를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아니나 다를까 동양권과는 비교가 불허한 여권의 후진성이 작품 전반에 걸쳐 여과 없이 묘사됐다. 사실 동양이라고 어디 가서 여권 신장이 잘 이뤄졌다고 할 순 없지만 상대적으로 예맨 같은 나라랑 비교했을 때 뭐든 위엔 더 위가 있구나 하는 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전신을 가리는 니캅을 시작으로 흡연하는 여성을 바로 창녀 취급하거나 아버지의 말 한 마디에 진학과 취업과 결혼이 당사자의 의지완 상관없이 결정되고 번복따윈 용납하지 않는 것, 여성 혼자선 담배 한 갑 구매할 수 없는 것 등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 이래저래 도가 지나쳐 일일이 언급하며 화를 내는 게 입 아프고 열불나는 사례가 줄지어 소개된다.

    그래도 이 작품을 결말까지 읽을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주인공 인티사르일 것이다. 사회 분위기상 여성 혼자서 운전을 하는 게 용납이 안 되는 상황에서 퇴근할 때 도로에서 자신의 자동차로 스릴 넘치는 드라이브를 펼치는 도입부는 제법 흥미로웠다. 고작 여성이 운전하다는 이유로 얼굴 붉히며 달려드는 남성 운전자도 정상은 아니지만 그런 상황을 대처하는 인티사르의 대범함도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좋은 의미에서 정상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상당한 자산가의 자제이고 또 그 꼰대 아버지를 상대로 학업이나 취업처럼 중대한 문제에선 절대 타협하지 않던 인티사르였기에 느닷없는 광란의 레이스따윈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티사르의 상황이 그나마 나은 건 그녀의 성격 덕분이 크지만 이런 성격조차 바로 자신이 인생에서 가장 싫어하는 아버지의 재력에서 어느 정도 비롯됐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인티사르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다른 나라도 아니고 작중 묘사에 따르면 예맨처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제약이 많고 나라 자체가 빈부 격차가 극심한 나라에선 가장의 재력이 곧 그 집안 인물들의 정체성을 살펴봄에 있어 간과할 수 없는 요소임엔 분명하다. 즉 인티사르의 비극은 그나마 다른 예맨 여성에 비해 가방끈도 길고 어느 정도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버지 덕분이란 걸 본인이 결코 모르지 않는다는 것에 있는데... 이는 굳이 예맨이 아니라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 그늘에 사는 자식이라면 다 공감할 여지가 많은 부분이라 여겨졌다. 내가 이 책을 5년 전에 읽을 때와 다르게 인티사르의 이야기가 부분적으론 내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결정적으로 느낀 부분이기도 하다. 인상적인 변화긴 한데 참 씁쓸하구만.

    따지고 보니 이 작품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원동력인 인티사르의 성격이 어느 정도는 아버지의 덕도 있다는 결론이 나와 책이 전에 없이 씁쓸한 뒷맛을 안겼다. 하지만 반대로 결말을 다다르니 씁쓸함이 아닌 감동이 밀려왔다. 낡아빠지긴 했어도 애지중지 타고 다닌 인티사르의 자동차가 아버지에 의해 이복 남동생의 운전 연습용으로 넘겨졌을 때 인티사르는 자신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남자인 친남동생과 함께 자동차를 몰래 태워버린다. 제아무리 낡아빠졌어도 남이 망치느니 자기가 끝을 내는 게 맞다며 눈물을 머금고 태워버린 것이다. 물건의 제값이 어떻든지 간에 자신의 소유를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과 그 물건을 빼앗기느니 과감히 자신의 손으로 끝을 내는 행동이 참으로 주체적인 모습이지 않은가 싶었다.

    비록 인티사르의 자동차든 주체적인 성격이든 아버지의 제력에서 비롯된것일지언정 어쨌든 인티사르의 것이기도 하며 이는 변함없는 사실이다. 때문에 계속 이런 마음가짐과 행동력이 뒷받침된다면 아버지나 다른 남성의 방해로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더라도 그녀에게 어떻게든 활로가 열리지 않을까 하는 낙관적인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니 너무 낙관적인 생각은 당사자 입장에선 역겨움을 유발할 수도 있다. 허나, 이 작품의 제목에 다른 무엇도 아닌 인티사르의 '자동차'가 들어간다는 것에서 인티사르가 마지막에 자동차를 대한 태도에서 인생의 활로를 개척할 만한 약간의 실마리를 엿볼 수 있었기에 저 낙관적인 생각을 포기하고 싶진 않다.

    때론 자신의 소중한 것을 스스로의 손으로 없애면서 얻게 되는 자존감도 있는 법이다. 우리가 그 자존감을 얻고 지켜나간다면, 어쩌면 답이 없어 보이는 삶이 실마리를 얻은 듯 유려하게 흘러갈는지 모른다. 실제로 이 작품이 마지막까지 씁쓸하게 읽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난 내 낙관적인 해석에 더욱 애착이 간다. 반면교사를 삼긴 좀 그렇지만, 예맨처럼 힘겨운 나라에서 저런 결말의 이야기를 접하니 다가올 새해가 전보다 밝게 느껴졌다. 이 기운이 부디 오래 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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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으로서 이토록 당당한 주인공도 결국 다른 거대한 남성의 권위 하에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는 것이 너무도 씁슬하네요. 결국은 인티사르의 안전은 그의 아버지가 다른 남성들을 압도할 수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겠죠. 결국 본인을 억압하는 존재에 빌어 자유를 누린다는게 참 숨막히는 기분일 것 같습니다. 이슬람 뿐 아니라 여러 여성인권낙후사회의 모습을 보면 극단으로 치달은 사회는 왜 항상 여성을 몰아만가는지, 여성이 아닌 자들에게 여성은 어떻게 느껴지는지가 궁금합니다. 좋은 책 잘 읽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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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런던 미술관 산책 작가 전원경 출판 시공아트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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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기 전엔 런던 유명 미술관들의 대표작을 소개해주는 평범한 미술 서적인 줄 알았다. 물론 런던 미술관에 대한 선망을 품고 있기에 펼친 책인 만큼 제아무리 평범하더라도 나름대로 만족하며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서문을 읽고서 정말이지 본문의 내용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저자는 런던의 유명 미술관들만이 아닌 인지도가 떨어지지만 역사적으로, 또는 미술을 전공한 저자 스스로 생각하기에 중요한 미술관도 몇 곳 다뤘음을 서문에서 밝혔다. 일단 그 점이 흥미로웠고, 더욱 흥미로운 것은 단지 그 미술관의 대표작이 아닌 런던이나 영국 전체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그림 위주로 소개했다는 점이다. 즉 유명하더라도 예컨대 고흐나 얀 반 에이크, 벨라스케스의 그림처럼 내셔널 갤러리를 대표하는 그림이더라도 영국 역사와 무관한 내용의 작품이라면 뒤에 '이외에 꼭 보아야 할 그림'으로 간략히 정리해놓은 것이 제법 신박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이런 의문도 들 것이다. 영국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메이드 인 영국'은 건물과 경비원밖에 없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인데 오로지 영국 작가의 작품만으로 책 한 권을 채우는 게 가능한가? 오죽하면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일 적에 여러 나라에서 하도 많이 훔친 나머지 양심에 찔려 입장료를 안 받는다고 수군거릴 정도니 정말 말 다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농담은 농담으로 치부하고 싶지만 영국의 화가라고 하면 기껏해야 터너밖에 떠오르지 않아 저자의 서문이 흥미로우면서 반신반의하기도 했다. 물론 내가 노르웨이에 여행갔을 때 그 나라에 뭉크를 제외하고도 정말 멋진 화가가 많다는 걸 알았으니 영국에도 꼭 터너가 아니더라도 그에 못지않게 훌륭한 화가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 꼭 세계적으로 유명해야 멋지고 훌륭한 화가인 것은 아니니까...


    이 책을 읽고 언젠가 런던을 방문한다면 이 그림들은 꼭 봐야지 하고 구체적인 리스트가 머릿속에 작성됐다. 대표적으로 내셔널 갤러리에선 폴 들라로슈의 <제인 그레이의 처형>, 터너의 <전함 테메레르>, <비, 증기, 속도>, 모네의 <웨스트민스터 하구에서 본 템스 강>, 르누아르의 <우산>을, 코톨드 갤러리에선 마네의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루소의 <톨게이트>가, 테이트 브리튼에선 윌리엄 홀맨 헌트의 <깨어나는 양심>을, 조지프 라이트의 <대장간>, 터너의 <노엄 성의 일출> 등이 보고 싶었다. 개중엔 런던이나 영국과 크게 상관없는 작품도 있고 그저 좋아하는 화가의 대표작이거나 아니면 저자가 소개한 작품의 내용이 흥미로워서 보고 싶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국립 초상화 미술관이나 테이트 모던에서 작가가 소개한 작품 중엔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없었다.

    오해해선 안 될 것이 국립 초상화 미술관의 경우엔 소개되는 그림들이 전부 영국의 위인이다 보니 역사를 공부하는 느낌이 들어 가장 이질적이면서 어떤 의미에선 가장 흥미로웠지만, 바로 역사를 공부하는 듯한 그 이질감 때문에 순수하게 그림으로서 끌리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았다. 반대로 테이트 모던은 폐공장을 현대미술관으로 바꾼 것으로 유명하며 개인적으로 방문해보고 싶은 곳이지만 현대 미술의 특성상 난해하고 기괴한 그림이 많고 - 특히 베이컨의 작품이 그렇다. - 작가가 소개한 작품들 중 영국 문화나 역사를 대변하는 작품이 없어서 읽는 동안 그 이상의 흥미가 생기진 않았다. 오히려 이 미술관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가 더 인상적이었다. 예전에 런던의 도시 계획에 관한 책을 읽을 때도 느낀 것이지만 간혹 예산을 감축한 탓에 임기응변으로 오래된 건물을 활용한 공간이 크게 각광받는 케이스가 참 많은 것 같다. 정말 인간 만사 새옹지마랄까.


    생각보다 소개된 작품의 수도 많았지만 저자가 너무 어렵게 글을 쓰지 않아서 좋았고 영국 역사를 잘 모르더라도 맥락 파악에 문제 없었던 것이나, 또 너무 자전적인 이야기에 빠진 나머지 글이 감상적으로 흐르거나 삼천포로 빠지지 않은 것도 이 책에 대해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저자는 자신이 소개한 그림이 미술사적으로, 테크닉적으로 얼마나 뛰어난 작품인지 설명하기보다 저자 자신의 눈으로 정성스럽게 관찰한 결과를 들려주는 느낌에 더 가까웠다. 그 어투 덕분에 진입 장벽이 낮아져 자칫 지루하고 나와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은 그림들의 이야기가 꽤 재밌게 스며들었다.

    아까 저자가 서두에서 밝힌 집필 방침이며 그 예시로 든 두 그림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참으로 흥미롭기 그지없었다고 말했었다. 확실히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위에서 런던에 가서 보고 싶은 그림들 중엔 저자가 소개해주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그림도 많다. 가령 산업혁명을 최초로 화폭에 담은 화가인 조지프 라이트의 이야기나 모네가 런던에 잠시 살았었다는 사실, <제인 그레이의 처형> 속 비극적인 역사는 나처럼 역사나 미술 전공이 아닌 사람이 따로 알기에는 시간이 필요할 만큼 낯선 이야기인 터라 저자가 쏟아내는 이야기에 잠시나마 지적 욕구 및 갈증이 적잖이 해소됐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아는 만큼 보이긴 하지만 모르더라도 알기 위해 노력한다면 시간이 조금 걸릴 뿐 어쩌면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결국 이 책을 쓴 저자도 처음부터 완벽히 모든 이야길 알고서 집필에 임한 것이 아닌 집필하는 도중에도 미술관에 몇 번씩 들러 이야길 풍성하게 만든 것에 가까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저자가 미술관에 몇 번씩 들르는 동안 겪었던 에피소드나 개인적인 감상, 그림의 배경을 공부한 뒤에 달라진 인상 등을 들려주니 작품들을 직관하지 않았음에도 간접적으로나마 감상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요즘처럼 인쇄물이 풍족해진 세상에선 책에 수록된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 간접 체험을 하는 느낌은 받기 쉽지 않은데 저자는 그 어려운 걸 해냈다. 정말 미술관을 사랑하는 작가라 그럴까, 그림을 살펴보는 자세나 열정 등 참 본받아 마땅한 작가가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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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널 위한 문화예술 작가 널 위한 문화예술 편집부 출판 웨일북(whalebooks)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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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 채널 '널 위한 문화예술'의 구독자가 40만 명이라고 한다. 40만 명의 구독자 중 한 사람으로서 이 책의 출간이 반가웠는데, 책에는 과연 유튜브에서 다루지 않았던 내용을 다뤘을지 궁금해 예상보다 빨리 구입해 읽게 됐다. 다행히 유튜브에서와는 다른 이야기를 펼치긴 했지만 아쉽게도 영상이 아닌 활자로 하는 예술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밋밋하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감각적인 영상의 힘을 빌리지 못하니 아쉽게도 내용의 전문성이라든가 주제의식, 주제의식을 끌어내는 필력은 여러모로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글의 깊이에 대해 단적으로 말하자면 입문용 수준이라 정말로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추천하기 애매하다.

    가령 좋아하는 화가가 나오는 파트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작가들이 다루는 이야기나 정보의 디테일은 '수박 겉 핥기' 수준까진 아니더라도 내 기대에 턱없이 못 미쳐서 실망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내가 인상 깊게 읽은 파트는 그 화가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겐 실망스러울 수도 있으리란 얘기다. 각 화가에게 할당된 분량은 매우 적은데 저자들이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거나 다른 건 몰라도 이건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 싶은 내용 위주로 채워져서 오히려 너무 구색만 갖춘 건 아니냐며 별 감흥이 남지 않은 적도 있었다. 파트를 줄이고 분량을 더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여담으로 내가 실망한 파트는 뭉크와 클림트, 호쿠사이, 달리이고 인상 깊었던 파트는 얀 반 에이크, 젠틸레스키, 마티스, 쿠르베, 그리고 클로델이다.

    기대가 큰 탓에 실망도 적잖았지만 그럼에도 소장 가치는 있는 책이었다. 그림이 많이 실렸기 때문도 있지만 중간에 스페셜 파트인 '색의 비밀' 코너가 제법 유익했기 때문이다. 파란색, 분홍색, 흰색, 보라색, 빨간색, 초록색, 노란색의 역사, 일화 등을 상세히 적은 게 흥미로웠는데 내용에 따라선 참고할 만한 그림이나 사진이 있었다면 더없이 유익한 글이 됐으리라 본다. 책에 컬러로 된 그림이 실릴수록 값이 올라가 최대한 아낀다고 아낀 듯한데, 색깔에 대한 이야기야말로 이 책이 아니면 쉽게 접할 수 없는 내용인 만큼 좀 더 정성을 다하지 않은 게 은근히 아쉬웠다.

    개인적으로 저자들이 서두에서 '예술의 쓸모'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는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얘기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들이 너무 엉뚱한 부분에 에너지를 쏟는 것 같아 그들의 고민이 크게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예술의 쓸모'에 대한 고민이다. 물론 예술이 우리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는 것 자체는 매우 바람직하나 저런 고민을 한 계기인 '예술이 무슨 쓸모가 있냐'는 어떤 네티즌의 질문은 가볍게 넘겨도 무방하지 않은가 싶었다. 아니, 예술을 즐길 때 쓸모를 왜 따지는지? 예술과 쓸모는 본질적으로 공존할 수 없다고, 동전의 양면 같다고 생각하는 나로선 저런 어불성설의 질문은 질문이 아닌 트집으로만 여겨졌다.

    예술은 경우에 따라선 시간 낭비일 수 있고 공허한 행위일 수 있고 심지어 무의미할 수 있지만 관점만 바꾸면 그것을 즐기게 되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삶에 긍정적이든 때론 부정적이든 간접적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예술의 존재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쓸모 있는 예술이란 것을 의도한다면 만드는 사람은 완성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고 설령 완성한들 관객은 즐기고 싶어도 즐길 수 없을 것이다. 예술은 백 번 양보해서 말하자면 쓸모 있는 행위로 착각될 수 있을지언정 쓸모 있는 행위와는 거리가 있기에 그런 의도로 접근하면 만인에게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굳이 쓸모가 있다면 작품 활동으로 돈을 버는 예술가들에겐 예술의 쓸모란 것을 논할 수 있을 텐데 그 경우는 '예술의 쓸모'에 대한 답은 되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요구하는 '예술의 쓸모'에 대한 답은 감상자 입장에서의 예술이니까.

    우리는 예술이 우리 삶에 대단히 쓸모가 있길 바라며 즐기지 않는다. 내 경험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런 의도로 접근했다가 제대로 감상이 이뤄진 적이 없다.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했다가 감동을 먹거나 깨달음을 얻거나 지식이 풍부해지는 경우는 훨씬 많아도 말이다. 순수하게 즐거움을 위한 접근이야말로 아이러니하게도 삶을 풍부하게 해주고 지혜를 더해준다고 보는데, 쓸모를 요구하는 순간부터 자세가 공격적으로 변해 결국 즐길 수 있는 예술이라곤 하나도 남지 않게 될 것이란 게 내 지론이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고, 책에서 소개되는 예술의 창작 배경을 보면 대단히 혁명적인 의지에서 탄생된 경우도 적잖아 단순히 즐기기 위해서란 내 지론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감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그런 위대한 작품은 '예술의 쓸모'를 요구하는 질문에 대한 훌륭한 답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예술의 종류나 의도나 사람들의 인식은 실로 다양해서 각각의 지론에는 그에 해당하는 적절한 답변이 있다.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아니 조금의 생각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자명한 일이다. 그렇기에 내게 '예술의 쓸모' 운운하는 것이 질문이 아닌 단순한 트집에 불과하다 여겨진 것이다. 정말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질문하기도 전에 자연스럽게 빠져들 만한 예술을 찾았을 것이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예술에 선입견 때문에 접근을 꺼리는 것 같다. 하지만 예술엔 명확한 기준 같은 건 없고 실제로 예술이란 그 기준의 명확함을 흐린 괴짜 내지는 천재들 덕분에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즐겨져 왔다. 이 책의 제목이 그렇듯 이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예술이 있다. 우린 그중 자신에게 맞는 예술을 찾아 나서야 할 텐데 그럴 생각은 않고 예술을 이렇다 저렇다 규정을 지으며 수동적으로 자세를 취하는 것은 참 답답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예술의 쓸모' 운운하며 트집을 잡는 것이야말로 정말 쓸모없는 행위가 아닌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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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상오단장(양장본 HardCover)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 출판 북홀릭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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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으로 접했던 요네자와 호노부의 책이다. 추리소설이라 부르기엔 좀 뭐하지만 일본에서 출간했을 당시 여러 일본 추리소설 랭킹에 이름을 남긴 저력이 있는 작품이다. 일단 내가 딱 잘라서 추리소설이라 부르지 못하겠다는 이유는 결말이 읽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리들 스토리'의 형식을 취하는 작품이기에 적어도 확실한 사건 해결이란 구성을 취하는 것이 공식인 추리소설과는 코드가 다른 소설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저평가 받아야 된다는 건 아니지만 취향에 맞지 않는 사람에겐 약간 당혹스런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리들 스토리의 형식을 취하는 점을 제외한다면 나는 이 소설이 제법 훌륭한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두 개 이상 제시되는 사건의 진실 후보들이나 그 진실에 접근하는 근거가 생전에 용의자였던 작가가 썼던 다섯 편의 소설이란 점, 그 소설들이 읽는 이의 성향에 따라 해석이 극과 극으로 나뉠 수도 있는 점 등 자꾸 상상과 추리를 불러일으킨다는 측면에서 여지없이 몰입도 높은 추리소설이라 여겨졌다. 그렇다 보니 추리소설의 결말이란 무엇인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도 스스로에게 던져봤다. 추리소설의 결말이란 작가가 논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가장 결점이 없는 결말이며 그 결말을 위해 처음부터 철저히 디자인되는 것이 추리소설의 특징이다. 독자가 결말을 접했을 때 충격을 받고 일말의 의문이 남지 않도록 버릴 장면 하나 없이 빈틈없이 몰입을 유발하는 동시에 결말을 예측 불가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추리소설의 공식인데 <추상오단장>은 이런 점에서 추리소설에 훌륭히 부합하는 소설이다.

    이 작품의 시놉시스를 처음 접했을 땐 독자로서 여러모로 몰입할 구석이 적어 보였다. 고서점에서 일을 거드는 주인공 요시미츠에게 어떤 여성으로부터 자신의 아버지가 생전에 썼던 소설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다니까 단순한 일상 추리소설인 건가 예상하기 십상이다. 자극적인 사건도 없고 이야기의 분위기는 시종 우울하고 실제로 작중의 시간대가 버블 경제 직후라 등장인물들이 그 여파에 찌들었고, 그래서 아버지가 쓴 소설 한 편을 찾으면 10만 엔 - 지금 환율로 약 100만 원이지만, 90년대 초니까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 이란 수상하지만 매력적인 보수의 의뢰를 요시미츠가 받아들이는 당위성이 성립하게 된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추리소설에서 사건을 해결하려는 동기에 돈이 많이 개입한 것만큼 몰입이 잘 안 되는 경우도 없는데, 신기하게도 이 작품에선 그런 반감이 덜했다.

    요시미츠는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는 일일 줄 알았던 소설 찾기는 여러 지인을 통해 의외로 수월하게 찾아내는데 그 소설들의 내용이 하나같이 기이하다. 요시미츠 입장에선 소설만 찾고 돈만 받으면 그만이지만 소설 분량이 짧기도 하고 나름대로 발품을 팔아 구한 만큼 읽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읽은 소설들의 내용은 외국을 여행 중인 화자가 남편과 아내와 딸로 구성된 어떤 가족에게 벌어지는 모종의 비극적인 사건을 목도하는 공통된 전개를 펼치고 있었다. 두 번째로 찾은 소설도 그렇고 그 이후에 찾은 소설들도 화자가 방문한 외국이 어디냐만 다르지 실질적으로 원인이 어떻든 이 가족에게 비극이 닥친다. 특이한 점은 비극이 벌어지기 일보직전에 그 여부를 알 수 있는 문장을 적지 않고 끝내는 리들 스토리란 점인데, 그 점에서 모두 같은 작가의 작품임을 알 수 있었다.

    의도치 않게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의뢰인의 아버지가 남긴 소설을 전부 읽은 독자가 된 요시미츠에게 의뢰인은 아버지가 남겼던 소설들의 결말을 알려준다. 생전에 아버지가 소설의 결말만 따로 적어놓았다고 하는데 그 결말들이 특별한 반전도 없고 오히려 없는 게 더 나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냥저냥한 내용인 지라 되려 요시미츠로선 의문이 남지 않을 수 없다. 애당초 왜 전부 리들 스토리로 집필했으며 따로 결말을 적어둔 이유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진실이야 아무래도 좋을 미스터리와 남은 소설들의 행방을 쫓느라 요시미츠는 잠시나마 삶의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지만, 이 소설을 남긴 의뢰인 아버지의 생애와 그가 실제로 살인사건의 용의자이기도 했단 점을 알게 되면서부터 소설들이 달리 보이게 됐고 몇몇 우연한 기회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숨겨진 다른 하나의 진실의 가능성과 마주하기에 이른다.

    단기간에 리들 스토리 여러 편을 접하다 보니 소설의 결말을 독자의 해석의 몫으로 남기는 게 참 까다로운 일이란 걸 새삼 깨달았다. <추상오단장>은 리들 스토리 특유의 '독자의 해석의 몫으로 남기는 결말의 필요성'에 작가 나름대로 당위성을 부여해본 작품이며 이를 통해 결국 소설에서 결말의 여부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 수 있음을 역설해냈다. 소설 내적으로는 읽는 이의 믿음이 진짜 진실따위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점, 소설 외적으로는 결국엔 다섯 편의 작중 소설말고도 <추상오단장>이란 소설 자체도 리들 스토리였으나 단순히 설정과 결말 처리방식 말고도 몰입감을 자아내는 분위기나 캐릭터들의 진중함 등 자잘자잘한 요소들이 섞여 낯선 소재임에도 충분히 만족하고 덮을 수 있음을 경험케 한 것이 그 근거다. 사실 아마도 진실일지도 모르는 미제 사건의 내막은 10년이 흘러 다시 읽은 지금도 납득이 안 가고 전반적으로 읽는 내내 우울한 작품이었으나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독특한 지점들 덕분에 꼭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소설의 인상이 전부 달라지는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모름지기 소설이란 결말이 가장 중요하고 특히 추리소설이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한데, 그 탓에 심할 때는 반전이나 결말 외엔 크게 남는 게 없는 작품도 있어 만족도가 없다시피 한 경우가 허다했다. 요즘들어 소설일수록 공감의 여지가 많은 인물이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법이고 이 세상 거의 모든 독자가 삶의 결말을 맞이하기 훨씬 전이란 것을 생각했을 때 완벽하고 확실한 결말이 때론 몰입도를 떨어뜨리기도 한다고 여겨왔는데, 그런 와중에 오랜만에 다시 읽게 된 <추상오단장>의 내용은 아주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트릭이긴 했지만 그냥저냥한 작중 소설들의 결말을 통해 마무리 못지않게 과정 역시 중요함을 절실히 깨달았던 것이다. 과정이 중요하단 말은 성과 중심의 세상에서 참으로 간과되기 쉬운 말인데, 새로운 다짐을 하기에 매우 적절한 연초에 의외의 깨달음을 주는 이 작품을 접하니 그 깨달음이 더욱 깊이 스며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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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세한 서평 정말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추리소설을 정말 좋아하는데, 리들 스토리는 아직 많이 접해보지 못해서 감히 싫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선호하지는 않아요. 추리소설을 읽을 때, 마치 주인공이 된 마냥 같이 추리를 진행하면서 읽는 편이라 더 그런 것 같아요. 그래도 많이 접해보면 다른 매력을 발견하고, 좋아하게 될 수 있겠죠??한번 읽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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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끼리를 쏘다(큰글자도서)(리더스 원) 작가 조지 오웰 출판 반니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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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오웰은 영국인으로서 버마, 지금의 미얀마에 근무하는 경찰관이였다. 하지만 제국주의 아래 식민지를 통치하는 본분에 충실한 경찰관은 아니였다. 왜냐하면 강대국이 약소국을 지배하고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원주민들에 대한 자유의 압제에 저항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성적으로는 식민지배로 인해 자유를 억압당한 자들의 입장을 지지하였지만 감정적으론 식민지배를 받는 원주민들의 은근한 야유와 조롱에 지쳐 그들을 혐오한다.

    이 점은 이중적이지만 제국주의 시대를 식민지에서 살아가는 비제국주의자이자 비식민지인으로서의 고뇌와 애환이 느껴졌다. 원주민들로부터의 반항과 자유의 억압에 대한 분노의 표출 대상인 영국인으로서의 ‘나’와 식민지의 원주민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나’의 이중적 지위가 서로 공존하면서 조화를 이룰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조화를 이루지 못한 것은 괴상해보이고 그것을 지켜보는 것은 괴롭다. 그것이 불협화음이 됐든 한 시대의 큰 흐름과 조화를 이룰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든 말이다.

    어느 날 발정이 난 한 코끼리가 소유주의 통제권에서 벗어나 온갖 집을 부수고 심지어는 쿨리(해외에서 활동하는 저임금 인도, 중국계 노동자를 일컫는 말)를 죽인다. 코끼리는 잠시 온순해졌고 변화하는 상황들 속에서도 오웰이 코끼리를 쏠 생각은 결코 없었다.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코끼리를 쏠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오웰은 코끼리를 쏘겠다는 결심에 이르게 된다.

    그가 코끼리를 쏘겠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코끼리를 죽여서 얻는 이익이 코끼리를 살려두어 얻는 이익보다 크다고 스스로 판단한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코끼리를 쏘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 신체적, 정신적 고양을 추구하기 위함인가? 하지만 그 무엇도 아니다. 그에게는 어떠한 자유도 없었다. 2천여명의 식민지인들에게 떠밀리듯 그들이 바라는 기대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거스를 수 없는 파도 앞에 떠밀려 갈 수 밖에 없는 연약한 한 인간으로서.

    이런 상황은 왠지 심리학자에 의하여 심리가 어떻게 조작되어 가는가에 대한 연구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피실험자였다. 겉으로는 지배자들이 피지배자들 위에 군림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식민지인들을 다스리기 위해 그들의 모든 생각은 식민지인들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또는 어떻게 반응하게 할 것인지에 맞춰져 있다. 모든 발상의 근원이 내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인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들은 자율적 존재가 아니다. 모든 사고가 피지배인들에 맞춰져 있는 수동적 존재인 것이다. 지배자는 사실 피지배인들에게 예속되어 있다. 자신의 겪은 경험에 대한 에세이를 신랄하면서 강렬하게 써내려가는 오웰의 총격음이 생생하게 들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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