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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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필요한 시간 :강신주의 인문학 카운슬링
자료유형
국내단행본
서명/책임사항
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의 인문학 카운슬링 / 강신주 지음
개인저자
강신주 , 姜信珠 , 1967-
발행사항
파주 : 사계절출판사 , 2011
형태사항
346 p. : 삽화 ; 23 cm
ISBN
9788958285342
청구기호
102 강59ㅊ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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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등 관련정보
효원인 감동공유 추천글
제목: 고통을 치유하는 인문정신, 치유로서의 철학!
학과: 역사교육과, 이름: 박*우, 선정연도: 2015
추천내용: 철학의 역할은 삶에 답을 주는 것이 아니다. 철학의 진정한 역할은 나의 삶에 당당함을 부여해주고, 나를 긍정하게 해주는 데 있다. 그래서 철학은 고통을 치유한다. 나 자신을 긍정할 때 비로소 자신 안의 모든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동·서양의 여러 철학 고전들을 망라한 책이다. 철학에 대한 입문서 성격으로 읽어도 좋다. 다만, 이 책의 특성은 철학자와 철학서에 대한 간결한 요약집을 제시해 준다기 보다는 평소 살면서 느낄만한 고민들에 카운슬링을 해 준다는 것이다. 인류의 위대한 철학자와 그를 쉽게 해석해주는 작가의 노력에 우리의 고민은 어느덧 천천히 해소되어 갈 것이다. 몇 가지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이야기 해보자. 이탁오의 <분서>나 임제의 <임제어록>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을 제공해 준다. 나의 본성을 긍정하고 세상에 대해 당당함을 가질 것을 두 철학자들은 요구한다. 라베송의 <습관에 대하여>나마투라나의 <있음에서 함으로>는 새로운 사유의 일면을 보여준다. 우리가 가졌던 습관과 사실이라는 것들이 결국 진리라기보다는 억견 또는 편견이었을 뿐이었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는 것이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나 <장자> 역시 인상적이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감정 문제를 파고들어 사유를 확장시킨 스피노자와 인간 문명의 한계에 깊게 천착해 진정한 소통의 길을 제시하고자 했던 장자에 대한 부분을 읽다보면 마음의 울결이 한층 풀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친구에게 말한 적이 있다. 철학을 지적으로 접근한다면, 그건 박제화된 화석에 지나지 않다고. 철학은 삶이고, 삶은 철학이다. 자신의 실존을 극한으로 밀어 자신의 삶을 철학자의 시선으로 마주하는 과정은 어떻게 보면 괴롭기 그지없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내어줄 때야 비로소 모든 것을 다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철학의 즐거움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학과: 역사교육과, 이름: 박*우, 선정연도: 2015
추천내용: 철학의 역할은 삶에 답을 주는 것이 아니다. 철학의 진정한 역할은 나의 삶에 당당함을 부여해주고, 나를 긍정하게 해주는 데 있다. 그래서 철학은 고통을 치유한다. 나 자신을 긍정할 때 비로소 자신 안의 모든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동·서양의 여러 철학 고전들을 망라한 책이다. 철학에 대한 입문서 성격으로 읽어도 좋다. 다만, 이 책의 특성은 철학자와 철학서에 대한 간결한 요약집을 제시해 준다기 보다는 평소 살면서 느낄만한 고민들에 카운슬링을 해 준다는 것이다. 인류의 위대한 철학자와 그를 쉽게 해석해주는 작가의 노력에 우리의 고민은 어느덧 천천히 해소되어 갈 것이다. 몇 가지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이야기 해보자. 이탁오의 <분서>나 임제의 <임제어록>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을 제공해 준다. 나의 본성을 긍정하고 세상에 대해 당당함을 가질 것을 두 철학자들은 요구한다. 라베송의 <습관에 대하여>나마투라나의 <있음에서 함으로>는 새로운 사유의 일면을 보여준다. 우리가 가졌던 습관과 사실이라는 것들이 결국 진리라기보다는 억견 또는 편견이었을 뿐이었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는 것이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나 <장자> 역시 인상적이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감정 문제를 파고들어 사유를 확장시킨 스피노자와 인간 문명의 한계에 깊게 천착해 진정한 소통의 길을 제시하고자 했던 장자에 대한 부분을 읽다보면 마음의 울결이 한층 풀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친구에게 말한 적이 있다. 철학을 지적으로 접근한다면, 그건 박제화된 화석에 지나지 않다고. 철학은 삶이고, 삶은 철학이다. 자신의 실존을 극한으로 밀어 자신의 삶을 철학자의 시선으로 마주하는 과정은 어떻게 보면 괴롭기 그지없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내어줄 때야 비로소 모든 것을 다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철학의 즐거움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독후감 공모전 우수작
제목: - 나,너,우리를 이해해라
학과: 일반인, 이름: 조*양, 선정연도: 2012
내용: 요즘 철학이니 인문학이니 옛날에 비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독자는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이기에 요즘 책 문화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인가 철학과 인문학에 관한 책,고전에 관한 책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이 책도 이러한 계기로 읽게 된 책이다.어찌하면 우리 아이들에게 철학과 인문고전을 많이 읽힐 수 있을까?아니 많이 읽히기보다 제대로 정확한 눈으로 바라보고 판단력을 가지게 할 수 있을까?정작 나조차 철학과 인문학을 바라보는 식견이 없는 지라 어려운 문제이고 난관이었다.내가 변하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던지는 말 한 마디조차도 위험 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아이에게 제대로 인문고전을 읽히려면 적어도 부모가 1년에 5권의 인문고전을 정독해야 한다고 한다.거의 고전에 빠져 살아야 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고전은 생각만큼이나 이해하는 것이 힘들다.어휘도 어렵고 작가의 시대적 배경,작가의 사상을 이해하지 않으면 꽤 어렵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이러한 의미에서 어떤 책을 어떤 시선으로 봐라봐야 하는지 또한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은지를 권해 준다.나에게는 매우 편리하고 또한 고마운 책이다.아!!이런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되겠구나....
책 읽기의 중요성을 깨닫고 아이 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이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인문고전,철학을 읽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독자의 나이 32세...철학책이라고는 거의 읽어 보지 못했고 인문고전도 재미위주로 읽어서 인지 사실 기억에 남는 책은 거의 없다.그래서 인가 생활에서 많은 공허함을 느낀다.내 속에 채워지지 않은 만족감을 누가 알 수 있을까?..그래서인지 책에 갈급함을 느낀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세 부분으로 되어있다.1.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16명의 철학자,2.나와 너의 사이 -16명의 철학자.3.나, 너,우리를 위한 철학 -16명의 철학자 총 48명의 철학자의 사상이 쏟아진다.이 책은 강신주 라는 분이 쓴 책이다.사실 난 이분을 전혀 알지 못했다.이 책을 접 하기 전까지…….철학?!
사실 철학은 세상을 삐뚤어지게 보고 자기만의 아집이 있는 사람,뭔가 위대한 것을 이룩한 사람들이 가지는 사상을 철학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철학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고 철학하면 왠지 따분했다.그래서 인가 책장을 넘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이제 읽어야지…….마음먹기가 쉽지 않았다.요즘 우리 집에는 목요일 마다 가족 책읽기 시간을 갖는다.큰 아이가 8살 초등학교 1학년이여서 그런지 이제 이런 시간을 갖고 토론도 하고…….그럴려고 시작 했다.각자 책을 읽고 이야기도 하고 아이의 발표력도 길러주고...내가 이 책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하니 아이의 아빠는 “웬 철학?...아…….어지럽다.난 요즘 책 읽을려니 머리가 어지럽네!!”이런다.그래도 칼을 뽑았으니 끝까지 읽어보자!!다짐을 하고 아이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각자 읽어 나갔다.아이는 아이의 책을 나는 나의 책을,아이아빠는 아빠의 책을 읽었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첫 장부터 나의 공허함을 알기나 한 듯 잃어버린 자아를 찾으라 한다.사실 직장과 집에서의 이중생활?하기가 쉽지 않았고 이제 슬슬 쳐 가고 있었다.많은 육아서적을 읽었고 그때마다 듣는 충고는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것이다.그러나 나는 내가 없었다.나는 꿈이 없었다.그리고 취미도 없었다!!!!!이 책을 통해 나를 발견해 보리라 생각했다.나를 제대로 알자!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그리고 내 꿈을 어디까지 찾을 수 있고 또한 어디까지 성취해 볼 수 있을까?나의 환경을 돌아보기 시작했다.아직 어떠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내가 나로 살아야지 단순히 엄마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그리고 내 아이의 꿈을 바라는 것이 아닌 내 꿈이 있어야 된다는 것!! 그것은 확실해 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책에 수록된 많은 철학자의 조언들을 통해서...
첫 장이 나를 돌아보는 시간 이였다면 두 번째 장은 나와 너 사이이다.나와 너 타인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많은 네가 있지만 나와의 관계에서 너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나와 남편,나와 아들,나와 딸...나와 시어머니 등등... 그런 나와 너의 관계를 되짚어 볼 수 있었다.남의 대한 배려에 대한 공자 부분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남을 배려하기 정말 쉽지 않기 때문이다.성경에도 내가 대접받고 싶거든 남도 같이 하라는 말이 있다.내가 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접하기는 쉽지 않다.또한 내가 설령 내가 대접 받고 싶은 데로 남에게 대접 했을 경우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그렇지 못하다면 분명 실망하게 될 것이다.많은 철학자들은 이런 부분에서 마음을 비우라 한다.실상 비우기 정말 힘든 부분이다.그것은 비록 사랑하는 남편이라 할지라도 말이다.그래서 더 노력해야 한다고 한다. 버릇을 하나 바꾸는 데는 뼈는 깎는 노력이 있어야 된다고 한다.그렇지 않으면 자기도 싫어하는 버릇하나 고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고 한다.그렇게 뼈를 깎는 노력은 정말 중요하다.그저 그런 사람으로 살아 갈 것인가?좀더 나은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가 여기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앞에서 나를 이해하고 ,나와 너를 이해하였다면 이제 우리를 돌아볼 차례이다.
우리라는 말은 참으로 좋은 말이다.그러나 대중에 의한 많은 피해 또한 우리가 감수해야 되는 문제이다.우리가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만드는 많은 문구를 본다.그러나 우리는 요즘 어떠한가?과연 더불어 잘 살기 위해서 나는 너는 어떤 일을 하는가 하는 것이다.나는 이기주의다.너도 이기주의다.그럼 우리는 이기주의인가 아닌가?바로 이기주의다.그래서 그러면 안 되지 않느냐는 많은 광고가 쏟아져 나온다.노자의 덕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덕이라는 것을 길러야 한다.그래야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진정한 우리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 같다.군자는 덕의 정치를 해야 하고 우리는 그 군자의 덕을 볻받아 내 이웃을 우리로 같이 살아 갈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우리의 모습 속에서 안타까움을 본다.그래도 우리 아이들과 나의 작은 실천 하나로 또한 희망도 본다.아직 우리에게는 희망에 있기에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것 아니겠는가!!
나를 이해하고 너를 이해하면 우리는 우리를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정말 우리에게 철학이 필요하다고 말해 주고 있다.단순히 철학을 넘어 각자 개인의 삶을 돌아보고 남을 이해하고 우리를 이해하는... 이제 마무리 할려고 한다.아이와 책 읽기 하면서 시작한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정말 나에게 필요한 책이었다.공허함에 몸부림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내가 우울증인지 아닌지도 분간하지 못할 나의 성격변화 등을 일깨워 주고 따뜻한 마음을 가득 담아 책을 덮을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좋은 책을 찾아 아이들과 공감 할 수 있다면 우리 가족의 목요일 책 읽기 시간은 앞으로 더 많이 발전되고 아이들도 성장하고 나와 남편도 성장하는 좋은 시간이 될 것 같다.이 시간에 만난 강신주 작가의 다른 책도 조금씩 읽어 볼 생각이다.이 사람이 말하는 철학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조금 더 알고 싶다.
그러면서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도 구체적으로 설계해 보고 좀 더 나은 직장인으로 또한 엄마로 아내로 살아가는 삶을 살고 싶다.그저 그런 삶이 아닌 그저 그런 보통의 엄마가 아닌 그저 그럼 아내가 아닌 뭔가 깊이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학과: 일반인, 이름: 조*양, 선정연도: 2012
내용: 요즘 철학이니 인문학이니 옛날에 비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독자는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이기에 요즘 책 문화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인가 철학과 인문학에 관한 책,고전에 관한 책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이 책도 이러한 계기로 읽게 된 책이다.어찌하면 우리 아이들에게 철학과 인문고전을 많이 읽힐 수 있을까?아니 많이 읽히기보다 제대로 정확한 눈으로 바라보고 판단력을 가지게 할 수 있을까?정작 나조차 철학과 인문학을 바라보는 식견이 없는 지라 어려운 문제이고 난관이었다.내가 변하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던지는 말 한 마디조차도 위험 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아이에게 제대로 인문고전을 읽히려면 적어도 부모가 1년에 5권의 인문고전을 정독해야 한다고 한다.거의 고전에 빠져 살아야 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고전은 생각만큼이나 이해하는 것이 힘들다.어휘도 어렵고 작가의 시대적 배경,작가의 사상을 이해하지 않으면 꽤 어렵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이러한 의미에서 어떤 책을 어떤 시선으로 봐라봐야 하는지 또한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은지를 권해 준다.나에게는 매우 편리하고 또한 고마운 책이다.아!!이런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되겠구나....
책 읽기의 중요성을 깨닫고 아이 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이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인문고전,철학을 읽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독자의 나이 32세...철학책이라고는 거의 읽어 보지 못했고 인문고전도 재미위주로 읽어서 인지 사실 기억에 남는 책은 거의 없다.그래서 인가 생활에서 많은 공허함을 느낀다.내 속에 채워지지 않은 만족감을 누가 알 수 있을까?..그래서인지 책에 갈급함을 느낀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세 부분으로 되어있다.1.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16명의 철학자,2.나와 너의 사이 -16명의 철학자.3.나, 너,우리를 위한 철학 -16명의 철학자 총 48명의 철학자의 사상이 쏟아진다.이 책은 강신주 라는 분이 쓴 책이다.사실 난 이분을 전혀 알지 못했다.이 책을 접 하기 전까지…….철학?!
사실 철학은 세상을 삐뚤어지게 보고 자기만의 아집이 있는 사람,뭔가 위대한 것을 이룩한 사람들이 가지는 사상을 철학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철학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고 철학하면 왠지 따분했다.그래서 인가 책장을 넘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이제 읽어야지…….마음먹기가 쉽지 않았다.요즘 우리 집에는 목요일 마다 가족 책읽기 시간을 갖는다.큰 아이가 8살 초등학교 1학년이여서 그런지 이제 이런 시간을 갖고 토론도 하고…….그럴려고 시작 했다.각자 책을 읽고 이야기도 하고 아이의 발표력도 길러주고...내가 이 책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하니 아이의 아빠는 “웬 철학?...아…….어지럽다.난 요즘 책 읽을려니 머리가 어지럽네!!”이런다.그래도 칼을 뽑았으니 끝까지 읽어보자!!다짐을 하고 아이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각자 읽어 나갔다.아이는 아이의 책을 나는 나의 책을,아이아빠는 아빠의 책을 읽었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첫 장부터 나의 공허함을 알기나 한 듯 잃어버린 자아를 찾으라 한다.사실 직장과 집에서의 이중생활?하기가 쉽지 않았고 이제 슬슬 쳐 가고 있었다.많은 육아서적을 읽었고 그때마다 듣는 충고는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것이다.그러나 나는 내가 없었다.나는 꿈이 없었다.그리고 취미도 없었다!!!!!이 책을 통해 나를 발견해 보리라 생각했다.나를 제대로 알자!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그리고 내 꿈을 어디까지 찾을 수 있고 또한 어디까지 성취해 볼 수 있을까?나의 환경을 돌아보기 시작했다.아직 어떠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내가 나로 살아야지 단순히 엄마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그리고 내 아이의 꿈을 바라는 것이 아닌 내 꿈이 있어야 된다는 것!! 그것은 확실해 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책에 수록된 많은 철학자의 조언들을 통해서...
첫 장이 나를 돌아보는 시간 이였다면 두 번째 장은 나와 너 사이이다.나와 너 타인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많은 네가 있지만 나와의 관계에서 너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나와 남편,나와 아들,나와 딸...나와 시어머니 등등... 그런 나와 너의 관계를 되짚어 볼 수 있었다.남의 대한 배려에 대한 공자 부분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남을 배려하기 정말 쉽지 않기 때문이다.성경에도 내가 대접받고 싶거든 남도 같이 하라는 말이 있다.내가 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접하기는 쉽지 않다.또한 내가 설령 내가 대접 받고 싶은 데로 남에게 대접 했을 경우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그렇지 못하다면 분명 실망하게 될 것이다.많은 철학자들은 이런 부분에서 마음을 비우라 한다.실상 비우기 정말 힘든 부분이다.그것은 비록 사랑하는 남편이라 할지라도 말이다.그래서 더 노력해야 한다고 한다. 버릇을 하나 바꾸는 데는 뼈는 깎는 노력이 있어야 된다고 한다.그렇지 않으면 자기도 싫어하는 버릇하나 고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고 한다.그렇게 뼈를 깎는 노력은 정말 중요하다.그저 그런 사람으로 살아 갈 것인가?좀더 나은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가 여기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앞에서 나를 이해하고 ,나와 너를 이해하였다면 이제 우리를 돌아볼 차례이다.
우리라는 말은 참으로 좋은 말이다.그러나 대중에 의한 많은 피해 또한 우리가 감수해야 되는 문제이다.우리가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만드는 많은 문구를 본다.그러나 우리는 요즘 어떠한가?과연 더불어 잘 살기 위해서 나는 너는 어떤 일을 하는가 하는 것이다.나는 이기주의다.너도 이기주의다.그럼 우리는 이기주의인가 아닌가?바로 이기주의다.그래서 그러면 안 되지 않느냐는 많은 광고가 쏟아져 나온다.노자의 덕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덕이라는 것을 길러야 한다.그래야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진정한 우리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 같다.군자는 덕의 정치를 해야 하고 우리는 그 군자의 덕을 볻받아 내 이웃을 우리로 같이 살아 갈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우리의 모습 속에서 안타까움을 본다.그래도 우리 아이들과 나의 작은 실천 하나로 또한 희망도 본다.아직 우리에게는 희망에 있기에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것 아니겠는가!!
나를 이해하고 너를 이해하면 우리는 우리를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정말 우리에게 철학이 필요하다고 말해 주고 있다.단순히 철학을 넘어 각자 개인의 삶을 돌아보고 남을 이해하고 우리를 이해하는... 이제 마무리 할려고 한다.아이와 책 읽기 하면서 시작한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정말 나에게 필요한 책이었다.공허함에 몸부림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내가 우울증인지 아닌지도 분간하지 못할 나의 성격변화 등을 일깨워 주고 따뜻한 마음을 가득 담아 책을 덮을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좋은 책을 찾아 아이들과 공감 할 수 있다면 우리 가족의 목요일 책 읽기 시간은 앞으로 더 많이 발전되고 아이들도 성장하고 나와 남편도 성장하는 좋은 시간이 될 것 같다.이 시간에 만난 강신주 작가의 다른 책도 조금씩 읽어 볼 생각이다.이 사람이 말하는 철학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조금 더 알고 싶다.
그러면서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도 구체적으로 설계해 보고 좀 더 나은 직장인으로 또한 엄마로 아내로 살아가는 삶을 살고 싶다.그저 그런 삶이 아닌 그저 그런 보통의 엄마가 아닌 그저 그럼 아내가 아닌 뭔가 깊이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독후감 공모전 우수작
제목: 철학이 필요한 시간
학과: 국어교육과, 이름: 이*지, 선정연도: 2012
내용: 때로 정신없이 삶의 레이스에 합류해 뛰다보면 어느 순간 ‘결승선이라는 게 어디 있지?’하는 의문을 갖게 되는 순간이 있을 수도 있고,지독한 아픔에 몸서리치며 상처를 어찌해야할 지 몰라 비명을 지르게 되는 순간을 만나기도 한다.누구에게나 아픔은 있다.환부를 정확히 아는 이건 모르는 이건,아픈 것은 매한가지나 도무지 이 거추장스러운 것을 어찌해야할 지 몰라 소리 없이 울고만 있거나 우는 얼굴 위로 또 다른 가면을 덧씌우는 일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괴로운 상처,허나 모든 상처에는 빛이 숨어있기 마련이다.그 상처를 곪아터지게 남겨둘 것인지, 아름다운 재생의 빛으로 다시 태어나게 할 것인지는 온전히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강신주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그 모두에게 필요한 책이다.
내가 괴로워 견딜 수 없을 때,아파죽겠는데도 도움을 요청할 수가 없을 때 찾는 것은 바로 음악과 책이다.음악과 책은 각기 조금 다른 역할을 한다.음악은 ‘공감’의 역할을 해주는 따뜻한 친구다.‘그래그래,힘들지?괜찮아.’하며 안아주고 함께 울어주는 그런 친구.무조건적 공감으로 감정을 어루만져주는 것이 음악이라면,책의 경우는 조금 야속한 친구다.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조곤조곤 자기 생각을 이야기해주며 ‘판단’하고 필요한 경우 ‘질책’하며 나를 다그치는 것이다. 처음엔 당황스러움에 울음을 그치게 된다.그 뒤에는 슬슬 미운 감정이 들더니 급기야 원망스럽고 다시는 보기 싫어지기도 한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금 같은 상황에 처해지게 되거나 조언을 듣고 바뀐 나를 볼 때에는 슬그머니 그 친구의 말이 떠오르며 그제야 고마운 마음이 든다.결국 다시 그를 찾아 회포를 풀며 나의 속 좁음을 인정할 때,그는 그저 빙긋이 웃으며 나를 안아줄 뿐이다.특히 인문학 도서가 그렇다.그들은 결코 나를 위로하지 않는다.오히려 힐난하는 때가 더욱 많다.시시콜콜 잔소리하며 인간을 다 아는 듯 이야기하고 인정하기 싫지만 맞는 말을 할 때는 그렇게 얄밉다가도 결국 마지막 순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큰 품으로 세상을 끌어안으며 치유해주는 것이다.그래서 나는 항상 고뇌할 일이 생기면 책을 펼쳐들곤 했고,신기하게도 그 때마다 상황에 딱맞는 책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다.이번에도 역시 그랬다.생각 없이 펼쳐든 책의 머리말에서 발견한 ‘삶의 고뇌가 쌓인 만큼 타인의 고뇌가 읽힌다고 했던가요?’라는 저자의 말이 콕 박혔다.수세기 전 사람이 내게 보내는 ‘유리병 편지’험난한 세월의 바 다를 건너온 연서가 가져다주는,고통스럽지만 숨은 감미로움을 지닌 말들.나는 위로받고 싶지 않다.이것이 내가 철학을 찾는 이유이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에는 48명의 동서양의 철학자가 등장하여 앞 다투어 이러쿵저러쿵 지금의 우리를 놓고 이야기한다.어떻게 우리보다 훨씬 오래전 살았던 그들이 현대의 우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그것은 그들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하나하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동네아저씨처럼 ‘이 녀석,그게 고민이구나?나도 그런 생각 다 했었어~’하며 쓰다듬어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내가 지금 치열하게 하는 생각들을 그들 역시 보다 젊었을 때 함께하며 나처럼 괴로워했던 것이다.보다 먼저 고민한,보다 깊이 사유해본 사람으로서 그들이 조용조용 전해주는 이야기는 내게 깊은 공명을 주었다.물론 모든 생각이 나와 같은 것도 아니고 깊은 사유의 결과라 할지라도 어떤 부분에서는 동의할 수 없는 것들도 많지만,이곳에 존재함으로 인해 그들 역시 같은 문제로 괴로워했고 세상과 인간에 대한 수많은 배반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이해해보려 노력하는 그 자체가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이다.사실 우리는 그저 어느 장난기 많은 절대자에 의해 이 무질서 속에 던져진 것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고 명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 외에는 절대적인 진리도 있을 수 없다.심지어 지금은 루카치가 말했듯이 별이 빛나는 창공을 바라보고 지도를 찾아 갈 수 있는 시대마저 지나버렸다.계속되는 기술의 진보와 욕망의 이상팽창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쟁들은 우리를 지치게 만들고 허무주의로 밀어 넣는다.허나,우리는 인간이 아닌가?그럼에도 끊임없이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알 수 없는 그 곳을 향해 마지막 순간까지 불멸에의 손을 뻗는 인간.이 눈물 나는 본능이 인간의 가장 기특한 점 아닐까?확실히 현대는 철학이 길을 잃은 시대다.책 속에서도 끊임없이 언급되듯 ‘인문학의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는 곧 ‘현실의 위기’와도 맞닿아있다.현실 속 우리는 물질은 풍요로울지 모르나 정신은 빈곤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육체의 병은 물질로 치료할 수 있으나 정신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곳은 없다.아니,사실 사람들은 치료해야한다는 생각조차 가져보지 못하는 것 같다.상처를 건드리면 당연히 따갑고 아프다.하지만 치료를 위해서는 아파도 참고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여기,당신을 위해 메스를 든 사내가 있다.이제 당신의 마음을 치유할 시간이다.아프다면 울음을 터트리고 비명을 질러도 좋다.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어서기 위한 과정임을 그대가 느낄 수 있길.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전체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주제가 자아에서 타자 그리고 사회의 관계로 확장되는 형식이며,어려운 얘기지만 풍부한 예시와 친절한 문체로 어렵지 않게 풀어 설명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읽히기 때문에 철학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게끔 한다.그러면서도 깊이를 잃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강점이다.또한 각각의 소주제들마다 동서양을 넘나들며 철학가들을 악수하게 하는 부분들에서 작가의 통찰력에 감탄하였다.48개 꼭지의 이야기들은 다 다른 주제인 것 같지만 결국은 하나의 큰 의미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어떤 이론을 다루든 긍정적으로 풀어내고 인간을 감싸 안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이다.이제 사유의 바다로 함께 빠져들어 보자.
‘1부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에서는 나의 내면을 살펴보고 맨얼굴을 찾아 솔직함에 한걸음 다가가는 시간을 갖게 된다.첫 장부터 내가 가장 사랑하는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의 이야기를 담아내어 편지를 열어보는 설렘을 더욱 키워주었는데, 니체를 선두로 심리학,철학,심지어 종교까지 아울러 다양한 분야와 시대의 지성들의 목소리를 따라 전개해나간다.첫째 장에서 그들은 ‘진짜를 살라’하며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라’고 이야기한다.나의 자유는 진짜 자유인가,내가 욕망하는 것이 진실로 소망하는 것인가,나의 삶이 진정 주체적인 삶인가 등의 끊임없는 질 문세례는 잠들어있던 나의 사유를 깨우고 진지하게 나와 삶을 생각해보게 만들었다.하이데거에 따르면 ‘생각’이란 ‘낯섦’에서 오는 것이다.이러한 질문들이 낯선 것을 보면 어지간히 진지한 성찰 없이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살아온 모양이다.나는 지금 왜 살아가는가?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일상을 영위하는가?과연 현재를 다시 한 번 살아도 될 정도의 삶을 살고 있는 걸까?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반석이 되어야 그 위에 진정 주체적인 나의 세계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책을 덮고 난 지금도 사실 질문들에 이렇다 할 대답을 떠올릴 수 없어 자괴감이 든다. 아직 나에게 삶이란 존재하기에 주어진 몫이며 내가 추구하는 가치,나를 진정으로 즐겁게 하는 미와 선을 욕망할 수 있는 공간 이상의 의미는 찾기 힘들다.하지만 스피노자가 말했듯이 ‘모든 고귀한 것은 힘들 뿐만 아니라 드문 것’이 아니겠는가?이렇게 생각의 물꼬를 튼 뒤에는 그렇다면 삶의 형태는 어떠한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바통을 넘겨받은 다음 철학자들은 우리들의 삶이 관계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나와 내가 가진 모든 것은 공하다고 이야기한다.이통은 우리 마음의 고체인 얼음을 녹여 둥근 그릇을 수용하고 유연히 흘러 상대와 소통하라 이르고,나가르주나는 모든 존재는 스치는 인연 안에 존재하는 것이며 다가왔다가도 멀어지는 것이니 집착하지 말라 이른다.이것을 저자는 선입견,젊음에 대한 집착 등에 대입시켜 자연스럽게 타인과 시간을 받아들이고 수많은 인연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길 것을 당부한다.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동안 열풍’이 불고 있다.다들 제 2의 진시황제라도 된 것처럼 불멸을 욕망하고 순간에 대한 집착에 스쳐가는 인연이 만드는 아름다운 시간들을 보지 못한다.늙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다.글을 읽으면서 인간의 주름이란 마치 수많은 인연들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나이테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탱탱한 피부는 잃겠지만 그 대신 우리를 가득 채워준 소중한 삶의 깨달음과 인연들이 있지 않은가?제발 순간에 매몰되어 진정 소중한 것을 잃지 말자.또한 이 장의 전반에 걸쳐서 가장 강조되는 삶의 자세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으로 서학의 대표인 기독교와 대비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간다.기독교가 가진 종교적 정신은 초월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겨 고난의 삶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면 우리의 옛 선비정신인 진인사대천명은 ‘사람의 일을 모두 다 하고,천명을 기다린다.’는 의미로 초월자에게 기대기보다는 자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보다 주체적인 위기대처 방식이다.높은 누 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비록 실패한다고 해도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 상황을 직면하고 타개해나가려는 것이다.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도하는’대신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모든 일을 다 하고 천명을 ‘기다리는’것.어둑한 밤에 눈을 들어 높은 곳에서 창밖을 바라보면 대한민국의 지상에는 온통 빨갛게 상징들이 빛난다. 종교의 존재 자체가 어긋났다는 것이 아니다.분명 성인들은 위대하고 그들의 뜻은 높다.허나 현재 대한민국에서 종교의 모습은 맹신에 가깝다.과연 우리가 종교를 통해 삶을 완성시키려하는지,종교가 삶을 완성시켜주길 바라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할 것이다.
다음으로 ‘2부 나와 너의 사이’에서는 주체와 타자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삶을 통찰한다.우리는 예부터 타자와의 관계를 지나치게 의식해왔다.‘체면’이라는 단어만 해도 그렇다.남을 대하기에 떳떳해지기 위해서 우리는 페르소나를 덧씌운다.이는 우리나라가 유학을 국교로 삼았던 ‘동방예의지국’인 것과 연관이 있다.저자는 우리가 숭상해 마지않았던 유학의 대표 주자이자 예를 중시했던 공자의 일화를 들어 ‘이래도 우리사회가 추구하는 것이 과연 예인가?’하는 물음으로 유쾌하게 역설적 풍자를 던진다.몸이 불편하나 비어있는 노약자 지정석에도 앉지 못하는 아이,그리고 혹여나 앉는다면 그런 아이를 아니꼽게 바라볼 어른들.여기에 배려라곤 눈곱만큼도 없지 않은가?상대를 배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예가 아니던가?목적이 전도되어 예의 형식만이 남아있는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진정한 ‘동방예의지국’이 되기 위해 선행되어야할 것이 과연 무엇일까?주희는 인의예지라는 씨앗이 측은지심,수오지심,사양지심,시비지심의 새싹을 피운다고 이야기했으며,정호는 삶은 고통이자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라는 결론을 제시하며 모든 존재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어야 유학의 정점인 인에 도달할 있다고 보았다.
이들은 모두 동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이들의 윤리적 사유의 뿌리를 찾아 보면 인간의 본성을 발견할 수 있다.그러나 가지고 있는 본성만으로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데 무엇이 이루어지겠는가.바로 이점에서 정약용의 통찰력은 매우 비범하다하겠다.윤리적 선악은 본성에 의한 도덕 감정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결단하여 의지를 ‘실천’하는데 에서 비로소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우리의 실천을 통해서만이 어떤 것을 이뤄낼 수 있고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결국 타자와의 관계에서도 우리는 배려심을 가지고 ‘예’의 진짜 의미를 재조명하며,도덕 감정에 의거한 선악판단이 아니라 주체적 실천을 통한 윤리적 결단을 해야 할 것이다.또한 한나 아렌트의 아이히만 이야기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들이 언제 악으로 변하는가에 대해서 깨달음을 준다.‘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가지’어릴 때부터 많이 들어온 이야기이다.나서면 안 된다,조용히 있어라.그러나 아렌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생각 없이 따라가는 것을 경계한다.‘순전한 무사유’의 책임을 지울 수 있다는 것이다.사유 없이 그저 상부 혹은 여론에 휩쓸리는 삶에서 우리는 누구나 ‘악(惡)’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특히나 요즘에는 인터넷이 발달함과 동시에 사회적 쏠림현상이 가중되고 있다.일부 지식인들이 의견을 피력하면 대중들은 그들의 의견이 마치 자기 것인 마냥 생각하고 따라가는 것이다.사유의 노력이 없는 상태에서의 대중은 피리 부는 소년을 따라가는 마을 사람들과 같다. 아이히만의 경우에는 피리 부는 소년이 히틀러였을 뿐인 것이다.‘더불어 살아가는 삶에서 사유란 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는 권리가 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만 할 의무이다.’이 부분은 내게 부끄러움이 되어 가슴에 날아와 박혔다.
마지막으로 ‘3부 나,너,우리를 위한 철학’은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정치·경제·사회적인 부분에서 과거와 달라진 지금,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들을 예리하게 통찰하고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향해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점점 우리 삶의 터전을 상징하는 말들은 각박함,삭막함,획일적, 기계적,소외 등의 팍팍한 어휘들로 변해왔다.지금 주변을 돌아보면 어떤가?총 천연색으로 아기자기하게 이뤄졌던 세상은 어느 순간 무채색으로 변해있다.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필요한 것은 뭐든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이 완벽한 세계에서 우리에게 부족한 게 과연 무엇일까?이 장에서 만날 수 있었던 여러 키워드 중 해답에 가장 가깝다고 여겨졌던 것들은 ‘웃음,아우라,소통과 공감,놀이’이다.이들의 이야기를 엿들어보자.베르그송은 딱딱하고 반복적인 모든 것에 대한 저항의 수단으로 웃음을 내놓는다.도시한복판에서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모두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쫓기듯이 어디론가 뛰어가고 있다.이들에게 웃음을 찾아 줄 수 없을까?이에 벤야민이 끼어든다,현대는 아우라 상실의 시대라고.이들이 어떤 것에서 아우라를 느끼고 충분히 감동할 수 있다면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더욱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이에 수단과 목적이 일치되지 못하고 심지어 목적전도까지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혼돈의 상황에서 하위징아가 ‘호모 루덴스’를 이야기하며 말을 거든다.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이 정말 행복을 위한 삶인지,당신은 놀이하며 살고 있는지 묻는 것이다.삶은 커다란 놀이이며 우리는 즐기며 살아갈 수 있다고.또한 인간소외가 이제 더 이상 생소한 소재가 아니게 된 우리 사회에서 왕간은 소통과 공감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주며 조곤조곤 타이른다.놀랍게도 다른 무엇도 아닌 우리의 본성에 충실할 때야말로 타인과의 진정한 공감이 가능하며 삶의 의지를 북돋을 수 있다는 것이다.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은 처음으로 회귀해 자아를 알고 주체적인 삶을 찾아가라는 메시지와 일치된다.모든 이야기들은 하나의 바다를 향해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다.우리 모두의 소망스러운 삶과 행복이 존재하는 그 곳으로.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는 듯하나 인간은 크게 변하지 않는 듯하다.천 년 전의 사람들이나 현대의 철학자들이나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말이다.지금 우리가 존재하는 이 공간은 과도기를 겪고 있다.그 혼란 속에 던져진 우리는 방황하며 외로워할 수밖에 없다.그러나 이 순간에도 마음을 담아 끊임없이 유리병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어 상처는 치유의 빛을 가진다.그들을 만나야한다.지금은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다
학과: 국어교육과, 이름: 이*지, 선정연도: 2012
내용: 때로 정신없이 삶의 레이스에 합류해 뛰다보면 어느 순간 ‘결승선이라는 게 어디 있지?’하는 의문을 갖게 되는 순간이 있을 수도 있고,지독한 아픔에 몸서리치며 상처를 어찌해야할 지 몰라 비명을 지르게 되는 순간을 만나기도 한다.누구에게나 아픔은 있다.환부를 정확히 아는 이건 모르는 이건,아픈 것은 매한가지나 도무지 이 거추장스러운 것을 어찌해야할 지 몰라 소리 없이 울고만 있거나 우는 얼굴 위로 또 다른 가면을 덧씌우는 일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괴로운 상처,허나 모든 상처에는 빛이 숨어있기 마련이다.그 상처를 곪아터지게 남겨둘 것인지, 아름다운 재생의 빛으로 다시 태어나게 할 것인지는 온전히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강신주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그 모두에게 필요한 책이다.
내가 괴로워 견딜 수 없을 때,아파죽겠는데도 도움을 요청할 수가 없을 때 찾는 것은 바로 음악과 책이다.음악과 책은 각기 조금 다른 역할을 한다.음악은 ‘공감’의 역할을 해주는 따뜻한 친구다.‘그래그래,힘들지?괜찮아.’하며 안아주고 함께 울어주는 그런 친구.무조건적 공감으로 감정을 어루만져주는 것이 음악이라면,책의 경우는 조금 야속한 친구다.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조곤조곤 자기 생각을 이야기해주며 ‘판단’하고 필요한 경우 ‘질책’하며 나를 다그치는 것이다. 처음엔 당황스러움에 울음을 그치게 된다.그 뒤에는 슬슬 미운 감정이 들더니 급기야 원망스럽고 다시는 보기 싫어지기도 한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금 같은 상황에 처해지게 되거나 조언을 듣고 바뀐 나를 볼 때에는 슬그머니 그 친구의 말이 떠오르며 그제야 고마운 마음이 든다.결국 다시 그를 찾아 회포를 풀며 나의 속 좁음을 인정할 때,그는 그저 빙긋이 웃으며 나를 안아줄 뿐이다.특히 인문학 도서가 그렇다.그들은 결코 나를 위로하지 않는다.오히려 힐난하는 때가 더욱 많다.시시콜콜 잔소리하며 인간을 다 아는 듯 이야기하고 인정하기 싫지만 맞는 말을 할 때는 그렇게 얄밉다가도 결국 마지막 순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큰 품으로 세상을 끌어안으며 치유해주는 것이다.그래서 나는 항상 고뇌할 일이 생기면 책을 펼쳐들곤 했고,신기하게도 그 때마다 상황에 딱맞는 책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다.이번에도 역시 그랬다.생각 없이 펼쳐든 책의 머리말에서 발견한 ‘삶의 고뇌가 쌓인 만큼 타인의 고뇌가 읽힌다고 했던가요?’라는 저자의 말이 콕 박혔다.수세기 전 사람이 내게 보내는 ‘유리병 편지’험난한 세월의 바 다를 건너온 연서가 가져다주는,고통스럽지만 숨은 감미로움을 지닌 말들.나는 위로받고 싶지 않다.이것이 내가 철학을 찾는 이유이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에는 48명의 동서양의 철학자가 등장하여 앞 다투어 이러쿵저러쿵 지금의 우리를 놓고 이야기한다.어떻게 우리보다 훨씬 오래전 살았던 그들이 현대의 우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그것은 그들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하나하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동네아저씨처럼 ‘이 녀석,그게 고민이구나?나도 그런 생각 다 했었어~’하며 쓰다듬어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내가 지금 치열하게 하는 생각들을 그들 역시 보다 젊었을 때 함께하며 나처럼 괴로워했던 것이다.보다 먼저 고민한,보다 깊이 사유해본 사람으로서 그들이 조용조용 전해주는 이야기는 내게 깊은 공명을 주었다.물론 모든 생각이 나와 같은 것도 아니고 깊은 사유의 결과라 할지라도 어떤 부분에서는 동의할 수 없는 것들도 많지만,이곳에 존재함으로 인해 그들 역시 같은 문제로 괴로워했고 세상과 인간에 대한 수많은 배반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이해해보려 노력하는 그 자체가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이다.사실 우리는 그저 어느 장난기 많은 절대자에 의해 이 무질서 속에 던져진 것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고 명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 외에는 절대적인 진리도 있을 수 없다.심지어 지금은 루카치가 말했듯이 별이 빛나는 창공을 바라보고 지도를 찾아 갈 수 있는 시대마저 지나버렸다.계속되는 기술의 진보와 욕망의 이상팽창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쟁들은 우리를 지치게 만들고 허무주의로 밀어 넣는다.허나,우리는 인간이 아닌가?그럼에도 끊임없이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알 수 없는 그 곳을 향해 마지막 순간까지 불멸에의 손을 뻗는 인간.이 눈물 나는 본능이 인간의 가장 기특한 점 아닐까?확실히 현대는 철학이 길을 잃은 시대다.책 속에서도 끊임없이 언급되듯 ‘인문학의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는 곧 ‘현실의 위기’와도 맞닿아있다.현실 속 우리는 물질은 풍요로울지 모르나 정신은 빈곤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육체의 병은 물질로 치료할 수 있으나 정신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곳은 없다.아니,사실 사람들은 치료해야한다는 생각조차 가져보지 못하는 것 같다.상처를 건드리면 당연히 따갑고 아프다.하지만 치료를 위해서는 아파도 참고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여기,당신을 위해 메스를 든 사내가 있다.이제 당신의 마음을 치유할 시간이다.아프다면 울음을 터트리고 비명을 질러도 좋다.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어서기 위한 과정임을 그대가 느낄 수 있길.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전체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주제가 자아에서 타자 그리고 사회의 관계로 확장되는 형식이며,어려운 얘기지만 풍부한 예시와 친절한 문체로 어렵지 않게 풀어 설명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읽히기 때문에 철학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게끔 한다.그러면서도 깊이를 잃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강점이다.또한 각각의 소주제들마다 동서양을 넘나들며 철학가들을 악수하게 하는 부분들에서 작가의 통찰력에 감탄하였다.48개 꼭지의 이야기들은 다 다른 주제인 것 같지만 결국은 하나의 큰 의미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어떤 이론을 다루든 긍정적으로 풀어내고 인간을 감싸 안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이다.이제 사유의 바다로 함께 빠져들어 보자.
‘1부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에서는 나의 내면을 살펴보고 맨얼굴을 찾아 솔직함에 한걸음 다가가는 시간을 갖게 된다.첫 장부터 내가 가장 사랑하는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의 이야기를 담아내어 편지를 열어보는 설렘을 더욱 키워주었는데, 니체를 선두로 심리학,철학,심지어 종교까지 아울러 다양한 분야와 시대의 지성들의 목소리를 따라 전개해나간다.첫째 장에서 그들은 ‘진짜를 살라’하며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라’고 이야기한다.나의 자유는 진짜 자유인가,내가 욕망하는 것이 진실로 소망하는 것인가,나의 삶이 진정 주체적인 삶인가 등의 끊임없는 질 문세례는 잠들어있던 나의 사유를 깨우고 진지하게 나와 삶을 생각해보게 만들었다.하이데거에 따르면 ‘생각’이란 ‘낯섦’에서 오는 것이다.이러한 질문들이 낯선 것을 보면 어지간히 진지한 성찰 없이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살아온 모양이다.나는 지금 왜 살아가는가?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일상을 영위하는가?과연 현재를 다시 한 번 살아도 될 정도의 삶을 살고 있는 걸까?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반석이 되어야 그 위에 진정 주체적인 나의 세계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책을 덮고 난 지금도 사실 질문들에 이렇다 할 대답을 떠올릴 수 없어 자괴감이 든다. 아직 나에게 삶이란 존재하기에 주어진 몫이며 내가 추구하는 가치,나를 진정으로 즐겁게 하는 미와 선을 욕망할 수 있는 공간 이상의 의미는 찾기 힘들다.하지만 스피노자가 말했듯이 ‘모든 고귀한 것은 힘들 뿐만 아니라 드문 것’이 아니겠는가?이렇게 생각의 물꼬를 튼 뒤에는 그렇다면 삶의 형태는 어떠한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바통을 넘겨받은 다음 철학자들은 우리들의 삶이 관계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나와 내가 가진 모든 것은 공하다고 이야기한다.이통은 우리 마음의 고체인 얼음을 녹여 둥근 그릇을 수용하고 유연히 흘러 상대와 소통하라 이르고,나가르주나는 모든 존재는 스치는 인연 안에 존재하는 것이며 다가왔다가도 멀어지는 것이니 집착하지 말라 이른다.이것을 저자는 선입견,젊음에 대한 집착 등에 대입시켜 자연스럽게 타인과 시간을 받아들이고 수많은 인연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길 것을 당부한다.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동안 열풍’이 불고 있다.다들 제 2의 진시황제라도 된 것처럼 불멸을 욕망하고 순간에 대한 집착에 스쳐가는 인연이 만드는 아름다운 시간들을 보지 못한다.늙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다.글을 읽으면서 인간의 주름이란 마치 수많은 인연들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나이테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탱탱한 피부는 잃겠지만 그 대신 우리를 가득 채워준 소중한 삶의 깨달음과 인연들이 있지 않은가?제발 순간에 매몰되어 진정 소중한 것을 잃지 말자.또한 이 장의 전반에 걸쳐서 가장 강조되는 삶의 자세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으로 서학의 대표인 기독교와 대비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간다.기독교가 가진 종교적 정신은 초월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겨 고난의 삶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면 우리의 옛 선비정신인 진인사대천명은 ‘사람의 일을 모두 다 하고,천명을 기다린다.’는 의미로 초월자에게 기대기보다는 자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보다 주체적인 위기대처 방식이다.높은 누 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비록 실패한다고 해도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 상황을 직면하고 타개해나가려는 것이다.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도하는’대신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모든 일을 다 하고 천명을 ‘기다리는’것.어둑한 밤에 눈을 들어 높은 곳에서 창밖을 바라보면 대한민국의 지상에는 온통 빨갛게 상징들이 빛난다. 종교의 존재 자체가 어긋났다는 것이 아니다.분명 성인들은 위대하고 그들의 뜻은 높다.허나 현재 대한민국에서 종교의 모습은 맹신에 가깝다.과연 우리가 종교를 통해 삶을 완성시키려하는지,종교가 삶을 완성시켜주길 바라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할 것이다.
다음으로 ‘2부 나와 너의 사이’에서는 주체와 타자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삶을 통찰한다.우리는 예부터 타자와의 관계를 지나치게 의식해왔다.‘체면’이라는 단어만 해도 그렇다.남을 대하기에 떳떳해지기 위해서 우리는 페르소나를 덧씌운다.이는 우리나라가 유학을 국교로 삼았던 ‘동방예의지국’인 것과 연관이 있다.저자는 우리가 숭상해 마지않았던 유학의 대표 주자이자 예를 중시했던 공자의 일화를 들어 ‘이래도 우리사회가 추구하는 것이 과연 예인가?’하는 물음으로 유쾌하게 역설적 풍자를 던진다.몸이 불편하나 비어있는 노약자 지정석에도 앉지 못하는 아이,그리고 혹여나 앉는다면 그런 아이를 아니꼽게 바라볼 어른들.여기에 배려라곤 눈곱만큼도 없지 않은가?상대를 배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예가 아니던가?목적이 전도되어 예의 형식만이 남아있는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진정한 ‘동방예의지국’이 되기 위해 선행되어야할 것이 과연 무엇일까?주희는 인의예지라는 씨앗이 측은지심,수오지심,사양지심,시비지심의 새싹을 피운다고 이야기했으며,정호는 삶은 고통이자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라는 결론을 제시하며 모든 존재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어야 유학의 정점인 인에 도달할 있다고 보았다.
이들은 모두 동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이들의 윤리적 사유의 뿌리를 찾아 보면 인간의 본성을 발견할 수 있다.그러나 가지고 있는 본성만으로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데 무엇이 이루어지겠는가.바로 이점에서 정약용의 통찰력은 매우 비범하다하겠다.윤리적 선악은 본성에 의한 도덕 감정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결단하여 의지를 ‘실천’하는데 에서 비로소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우리의 실천을 통해서만이 어떤 것을 이뤄낼 수 있고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결국 타자와의 관계에서도 우리는 배려심을 가지고 ‘예’의 진짜 의미를 재조명하며,도덕 감정에 의거한 선악판단이 아니라 주체적 실천을 통한 윤리적 결단을 해야 할 것이다.또한 한나 아렌트의 아이히만 이야기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들이 언제 악으로 변하는가에 대해서 깨달음을 준다.‘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가지’어릴 때부터 많이 들어온 이야기이다.나서면 안 된다,조용히 있어라.그러나 아렌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생각 없이 따라가는 것을 경계한다.‘순전한 무사유’의 책임을 지울 수 있다는 것이다.사유 없이 그저 상부 혹은 여론에 휩쓸리는 삶에서 우리는 누구나 ‘악(惡)’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특히나 요즘에는 인터넷이 발달함과 동시에 사회적 쏠림현상이 가중되고 있다.일부 지식인들이 의견을 피력하면 대중들은 그들의 의견이 마치 자기 것인 마냥 생각하고 따라가는 것이다.사유의 노력이 없는 상태에서의 대중은 피리 부는 소년을 따라가는 마을 사람들과 같다. 아이히만의 경우에는 피리 부는 소년이 히틀러였을 뿐인 것이다.‘더불어 살아가는 삶에서 사유란 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는 권리가 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만 할 의무이다.’이 부분은 내게 부끄러움이 되어 가슴에 날아와 박혔다.
마지막으로 ‘3부 나,너,우리를 위한 철학’은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정치·경제·사회적인 부분에서 과거와 달라진 지금,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들을 예리하게 통찰하고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향해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점점 우리 삶의 터전을 상징하는 말들은 각박함,삭막함,획일적, 기계적,소외 등의 팍팍한 어휘들로 변해왔다.지금 주변을 돌아보면 어떤가?총 천연색으로 아기자기하게 이뤄졌던 세상은 어느 순간 무채색으로 변해있다.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필요한 것은 뭐든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이 완벽한 세계에서 우리에게 부족한 게 과연 무엇일까?이 장에서 만날 수 있었던 여러 키워드 중 해답에 가장 가깝다고 여겨졌던 것들은 ‘웃음,아우라,소통과 공감,놀이’이다.이들의 이야기를 엿들어보자.베르그송은 딱딱하고 반복적인 모든 것에 대한 저항의 수단으로 웃음을 내놓는다.도시한복판에서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모두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쫓기듯이 어디론가 뛰어가고 있다.이들에게 웃음을 찾아 줄 수 없을까?이에 벤야민이 끼어든다,현대는 아우라 상실의 시대라고.이들이 어떤 것에서 아우라를 느끼고 충분히 감동할 수 있다면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더욱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이에 수단과 목적이 일치되지 못하고 심지어 목적전도까지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혼돈의 상황에서 하위징아가 ‘호모 루덴스’를 이야기하며 말을 거든다.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이 정말 행복을 위한 삶인지,당신은 놀이하며 살고 있는지 묻는 것이다.삶은 커다란 놀이이며 우리는 즐기며 살아갈 수 있다고.또한 인간소외가 이제 더 이상 생소한 소재가 아니게 된 우리 사회에서 왕간은 소통과 공감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주며 조곤조곤 타이른다.놀랍게도 다른 무엇도 아닌 우리의 본성에 충실할 때야말로 타인과의 진정한 공감이 가능하며 삶의 의지를 북돋을 수 있다는 것이다.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은 처음으로 회귀해 자아를 알고 주체적인 삶을 찾아가라는 메시지와 일치된다.모든 이야기들은 하나의 바다를 향해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다.우리 모두의 소망스러운 삶과 행복이 존재하는 그 곳으로.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는 듯하나 인간은 크게 변하지 않는 듯하다.천 년 전의 사람들이나 현대의 철학자들이나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말이다.지금 우리가 존재하는 이 공간은 과도기를 겪고 있다.그 혼란 속에 던져진 우리는 방황하며 외로워할 수밖에 없다.그러나 이 순간에도 마음을 담아 끊임없이 유리병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어 상처는 치유의 빛을 가진다.그들을 만나야한다.지금은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다
독후감 공모전 우수작
제목: 페르소나 드러내기
학과: 건축학과, 이름: 김*아, 선정연도: 2012
내용: ‘리스베트 살란데르는 놀라울 정도로 냉정해 보이는 여자였다.하지만 아르만스키가 가장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은 그 점이 아니었다.… 바로 자신의 가장 유능한 정보원이 거식증 환자처럼 비쩍 마른 데다,엄청 짧게 커트한 머리에 코와 눈썹에는 피어싱까지 한 창백한 여자라는 사실이었다.그녀는 목에 2센티미터 가량의 말벌 문신이 있었고,이두박근 둘레에는 끈 모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가끔 탱크톱을 걸치고 나타날 때도 있었는데,이럴 때면 아르만스키는 그녀의 견갑골 위에 좀 더 큼직한 용 문신이 새겨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그녀의 모발은 원래 적갈색이었지만,까마귀처럼 새카맣게 물들이고 다녔다.하드 로커 떼거리들과 일주일 정도 신나게 어울려 다니다가 불쑥 나타난 듯한 모습 이었다.’ -『밀레니엄 1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중에서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소설 밀레니엄의 한 단락이다.전례가 없는 독특한 인상과 성격을 가진 이 반사회적인 여주인공 리스베트는 3부작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중심인물로써 수많은 독자들을 밀레니엄이라는 소설에 매료시킨 장본인이다.이 소설은 발간 직후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국가,영미권 국가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영화로도 제작되었다.스웨덴판 영화는 이미 3부작이 다 개봉되었고 작년 말 미국에서도 데이비드 핀처 감독에 의해 1부 'TheGirl withtheDragonTattoo'가 영화로 제작되었다.할리우드 버전의 여자주인공 역에는 무명의 여배우 RooneyMara가 캐스팅 되었는데 파격적인 외모변신과 캐릭터를 완전히 소화했다는 평을 들으며 그 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전작인 스웨덴판 영화의 여자주인공 역시 뛰어난 연기를 보였고 불과 1년 전에 개봉이 되었다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많은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 영화에 캐스팅되기까지 두 달 반 동안의 오디션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두달 반 동안 대체 감독은 무엇을 그녀에게 보고 싶었던 것일까.감독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난 한 눈에 그녀가 리스베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하지만 내 주변의 제작진들에게 또 무엇보다 그녀 자신에게 그것을 깨닫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라고 말했다.감독 자신을 설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우가 그 인물에 몰입하는 시간을 그는 만들어 준 것이었다.RooneyMara는 처음에는 그 역할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자신이 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더 적합할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한 거였다.자신은 무명배우였고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유명한 감독이었으며 이 영화 또한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각색한 초대형 블록버스터가 될 예정이었다.감독과의 첫 오디션 후 제작진이 자신을 진지하게 주인공역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책을 읽기 시작했고 다 읽고 난 후에는 무조건 저 역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2달 반 동안 감독은 연기는 물론 얼핏 보면 황당하게 여겨지는 것까지 그녀에게 시켰다.하루는 그녀에게 연락한 감독이 술을 먹고 잔뜩 취해보라고 요구했단다.평소에 술을 먹지 않던 그녀는 그날 밤새도록 구역질을 해야만 했다고 고백했다.왜 그런 황당한 요구를 감독이 했다고 생각하느냐고 인터뷰어가 묻자,그녀는 ‘아마 모두들 나를 그 캐릭터에 적합하다고 믿기 어려워했던 것 같다.나 자신도 그랬으니까.’라고 답했다.실제로 그녀는 배우를 할 만큼 아름다웠고 긴 갈색머리를 가진 가녀린 여자였기에 그녀의 모습에서 리스베트의 거칠고도 기묘한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려웠다.마침내 주인공역을 낙점 받고 5일 뒤 감독은 그녀를 소설의 배경이 되는 스웨덴으로 보낸다.그 곳에서 그녀는 소설 속 주인공이 되기 위해 언어훈련,오토바이 타는 법,킥복싱 등등 배우며 역할에 몰입해 갔다.리스베트라는 가면을 쓰기 위해 그녀는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당시 그녀는 그 캐릭터에 너무 큰 매력을 느꼈고 스웨덴이라는,아무런 지인도 없는,낯선 땅에서 영화에만 집중하다보니 영화를 촬영하는 일은 아무리 육체적으로 힘들고 감정적으로 어려운 장면도 잘 헤쳐 나갔다.문제는 영화를 다 찍고 난 뒤의 일이었다.이제는 가면을 벗어야할 시점이었던 것이다.영화 촬영을 끝내고 며칠 뒤 그녀는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갔는데 식후의 파티에서 한 남자가 춤을 같이 추자고 권해왔다고 한다.미국인들의 문화상 결혼식 후의 댄스는 하객 중 누구하고도 출 수가 있었고 상대가 요청해오면 싫어도 싫은 내색 않고 흔쾌히 받아주는 것이 예의이다.그런데 그녀는 그 순간 그 남자의 목을 두 손으로 잡아쥐면서 ‘날 내려놔.아님 내가 당신을 해칠거야.’라고 말하고는 자신도 놀랬다고한다.이방인에게 늘 보호막을 두르고 있는 리스베트가 자신도 모르게 나왔던 것이다.그녀는 1년이 넘는 시간동 안 리스베트의 가면을 쓰고 있었고 그 캐릭터는 전례가 없이 어두운 캐릭터였다. 영화가 촬영되는 내내 그녀는 온 몸에 문신을 하고 피어싱을 한 불량청소년 같은 외모로 미소조차 짓지 않고 사람에게 두터운 벽을 치고 살아가는 24살 여성을 연기해 왔으니 불과 며칠 만에 그 가면을 벗기란 불가능 했을 것이다.그녀 스스로도 캐릭터에 몰입하던 순간보다 빠져나오는 순간이 자신의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고 고백했다.물론 그녀는 그 캐릭터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자발적으로 그 가면을 썼으며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페르소나라는 단어는 아주 오래 전 로마시절 연극 무대에서 배우들이 가면 즉 페르소나를 쓰고 연기를 했다는 데서 유래된 단어이다.현대에 와서는 두 가지 의미로 주로 사용되는데 하나는 영화분야에서 감독이 자신의 분신이자 특정한 상징을 표현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배우를 뜻한다.나머지 하나는 철학에서 이성과 의지를 가지고 자유로이 책임을 지며 행동하는 인격을 말한다.내가 앞에서 말한리스베트 이야기는 전자의 의미보다는 후자의 의미가 더 강하다.이런 경험은 배우가 아니어도 사람이라면 한번쯤 경험하게 되는 일인 것 같다.몰입하게 되는 정도와 시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사람에게 있어 페르소나란 엄청난 존재인 것이다.초등학교 시절 나는 교회와 학교 내에서의 내 모습 차이에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다.학교에서는 반장에,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는 활기차고 적극적인 모습인데 어쩐지 모르게 교회만가면 앞에 나서길 두려워하는 소심한 아이가 되었던 것이다. 수도 없이 그 틀을 깨보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이미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교회에서 나의 모습은 늘 말이 없었고 수줍었으며 교회 친구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아이가 아니었다.학교에서는 리더의 가면을,교회에서는 소심한 아이의 가면을 번갈아 써야만 했다.내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선택할 여지가 지금은 있어 보이지만 그 때는 본능적으로 그렇게 됐기 때문에 선택하고 말게 없었다. 그 때는 교회에만 가면 내가 왜 이렇게 주눅이 들어있을까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내가 뭔가 이중인격자인 것 같고 그래서 남들이 알기 전에 꼭 고쳐야만 할 나의 치명적인 단점이었다.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난 더욱 움츠려 들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난 이중인격자였던 것이 아니라 다른 가면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이미 학교에 가기 전부터 나는 그 가면을 쓰고 있어서 교회라는 장소에서는 다른 가면을 꺼내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교회에서 쓴 가면의 햇수가 학교에서 썼던 가면보다 더 오래되고 나와 함께 그 장소에서 머물렀기에 도저히 벗겨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더 많은 페르소나를 가지게 되었다.선생님,교수님들 앞, 소위 나보다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어른들,에서 쓰는 가면,학교 선배들 앞에서 쓰는 가면,부모님 앞에서 혹은 가족 앞에서 쓰는 가면 그리고 친구들을 대할 때 쓰는 가면.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나는 자유자재로 그 가면들을 꺼내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나는 심지어 내가 그러는지도 깨닫지 못했다.어느 날 영화관련 강의를 듣던 중 교수님께서 페르소나에 대해 언급을 하셨고 그 때 무릎을치며 ‘아 ,맞다...’라고 깨달은 것이다.그 교수님은 감독들과 배우의 관계를 들며 페르소나를 이야기 하셨고 많은 감독들이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특정 배우를 그들의 페르소나로 사용한다고 했다.사람들에게 페르소나는 없어선 안 되는 존재라고 교수님은 말하셨다.어떻게 맨얼굴을 드러내놓고 사냐고 하시면서 말이다.심지어 맨얼굴을 드러내며 사는 것은 잔인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맨얼굴만 처음부터 보여준다고 생각해보라.사람들의 인간관계가 어떻게 형성될 수 있을까.모든 사람들은 마음 한 구석에는 위험하고 불완전하며 우울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그런 모습들은 가족들 혹은 자기 혼자 있는 시간에만 드러나는데 그런 것이 맨얼굴이라고 생각하고 만인 앞에 드러낸다면 얼마나 세상이 힘들어지겠는가.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된 에픽테토스라는 철학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이고,다른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이 아니다.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은 믿음,충동,욕구,혐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이다.반면에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들은 육체,소유물,평판,지위,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자신이 행하지 않은 모든 일이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p.38』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전자는 나의 맨얼굴과 관련된 것이고 후자는 페르소나에 관계된 것이다.이 사람은 둘 다 필요하다고 내게 말해주고 있다.우리가 맨얼굴을 드러내야할 때 페르소나를 쓰고 반대로 페르소나를 드러내야 할 때 맨얼굴을 보여주려 해서 우리의 삶에서 겪는 고통과 갈등이 유래 한다고 한 것이다.
최근 나는 인관관계에 회의가 들어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않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사람에게는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면이 있는데 내 친구 중 한 명이 그 선을 넘으려한다고 나 스스로 판단했던 것이다.그 친구는 날 너무 꿰 뚫어보고 판단하는 것 같아 친구를 피하고만 싶었다.나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쟤는 원래 그래,그래서 저렇다’는 둥 이렇게 말할 것만 같았다.그에 비해 나는 그 친구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는데도 말이다.비단 그것 뿐만이 아니라 예전에는 고민이 생기면 사람에게 다 털어놓기 마련이었는데 요즘은 어쩐 일인지 털어놓을 사람이 점점 줄어들어만 간다.말이란 무서운 것이어서발도 달려있지 않은데 내가 막을 틈도 없이 내 건너 건너편의 사람에게 까지 내 감정의 기복이 전해지는 모습을 보며 후회를 하곤 했다.그래서 내가 내린 어리석은 결론은 최대한 말을 줄이고 사람들에게 한 가지 가면만 쓰고 대해야겠다는 것이었다.근데 여기서 말한 한 가지 가면은 가면의 수를 줄인 다는 것이 아니라 가면의 경계를 아주 확실히 정해서 이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이 가면만,저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가면만 보여줘야겠다는 말하자면 아주 머리 아프고도 어리석은 결론에 이른 것이다.가면을 겹겹이 써서 아마 내 맨얼굴을 보려면 세 겹 정도의 가면을 들춰내야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느껴진 것이다.조금 기분이 나빠도 웃어버리고 피곤해도 괜찮다고 하고 화가 나도 내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그런 가면 말이다.그렇게 함으로써 난 안전하다고 생각했다.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그건 내 본모습이 아니니까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말이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의 저자는 맨얼굴을 드러내야 한다고 말한다.꼭 고름을 빼기 위해 상처를 찢어내야 하듯이 맨얼굴을 드러내야 한다고 말이다.우리가 우리의 아픔을 숨기고 내면의 세계로 파고들면 들수록 그 아픔은 짓물러지고,썩어져갈 것이기 때문이다.처음에는 가면을 쓰는 것이 당연하다는 교수님과 가면을 벗어 맨얼굴을 드러내는 노력을 해야한다는 저자 중 누가 옳은 것일까라고 생각을 했다.피상적으로 보면 정반대의 뜻 같지만 결국은 동일한 것을 말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나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것.세상을 살아가며 가면을 써야할 때도 있을 것이다.사회생활에 있어 그런 건 너무도 당연한 것일 테니까.하지만 적어도 몇 명에게는 맨얼굴을 보여야 한다.아픈 모습,약한 모습 때로는 지저분하고 더러운 모습까지도.내가 허락한 이 몇 명은 충분히 나의 그런 모습도 받아들여줄 것이다.왜냐면 나도 그들의 추한 모습을 보았고 주저앉은 모습을 보았지만 실망을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도했기 때문이다.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에 말이다.
학과: 건축학과, 이름: 김*아, 선정연도: 2012
내용: ‘리스베트 살란데르는 놀라울 정도로 냉정해 보이는 여자였다.하지만 아르만스키가 가장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은 그 점이 아니었다.… 바로 자신의 가장 유능한 정보원이 거식증 환자처럼 비쩍 마른 데다,엄청 짧게 커트한 머리에 코와 눈썹에는 피어싱까지 한 창백한 여자라는 사실이었다.그녀는 목에 2센티미터 가량의 말벌 문신이 있었고,이두박근 둘레에는 끈 모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가끔 탱크톱을 걸치고 나타날 때도 있었는데,이럴 때면 아르만스키는 그녀의 견갑골 위에 좀 더 큼직한 용 문신이 새겨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그녀의 모발은 원래 적갈색이었지만,까마귀처럼 새카맣게 물들이고 다녔다.하드 로커 떼거리들과 일주일 정도 신나게 어울려 다니다가 불쑥 나타난 듯한 모습 이었다.’ -『밀레니엄 1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중에서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소설 밀레니엄의 한 단락이다.전례가 없는 독특한 인상과 성격을 가진 이 반사회적인 여주인공 리스베트는 3부작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중심인물로써 수많은 독자들을 밀레니엄이라는 소설에 매료시킨 장본인이다.이 소설은 발간 직후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국가,영미권 국가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영화로도 제작되었다.스웨덴판 영화는 이미 3부작이 다 개봉되었고 작년 말 미국에서도 데이비드 핀처 감독에 의해 1부 'TheGirl withtheDragonTattoo'가 영화로 제작되었다.할리우드 버전의 여자주인공 역에는 무명의 여배우 RooneyMara가 캐스팅 되었는데 파격적인 외모변신과 캐릭터를 완전히 소화했다는 평을 들으며 그 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전작인 스웨덴판 영화의 여자주인공 역시 뛰어난 연기를 보였고 불과 1년 전에 개봉이 되었다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많은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 영화에 캐스팅되기까지 두 달 반 동안의 오디션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두달 반 동안 대체 감독은 무엇을 그녀에게 보고 싶었던 것일까.감독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난 한 눈에 그녀가 리스베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하지만 내 주변의 제작진들에게 또 무엇보다 그녀 자신에게 그것을 깨닫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라고 말했다.감독 자신을 설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우가 그 인물에 몰입하는 시간을 그는 만들어 준 것이었다.RooneyMara는 처음에는 그 역할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자신이 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더 적합할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한 거였다.자신은 무명배우였고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유명한 감독이었으며 이 영화 또한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각색한 초대형 블록버스터가 될 예정이었다.감독과의 첫 오디션 후 제작진이 자신을 진지하게 주인공역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책을 읽기 시작했고 다 읽고 난 후에는 무조건 저 역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2달 반 동안 감독은 연기는 물론 얼핏 보면 황당하게 여겨지는 것까지 그녀에게 시켰다.하루는 그녀에게 연락한 감독이 술을 먹고 잔뜩 취해보라고 요구했단다.평소에 술을 먹지 않던 그녀는 그날 밤새도록 구역질을 해야만 했다고 고백했다.왜 그런 황당한 요구를 감독이 했다고 생각하느냐고 인터뷰어가 묻자,그녀는 ‘아마 모두들 나를 그 캐릭터에 적합하다고 믿기 어려워했던 것 같다.나 자신도 그랬으니까.’라고 답했다.실제로 그녀는 배우를 할 만큼 아름다웠고 긴 갈색머리를 가진 가녀린 여자였기에 그녀의 모습에서 리스베트의 거칠고도 기묘한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려웠다.마침내 주인공역을 낙점 받고 5일 뒤 감독은 그녀를 소설의 배경이 되는 스웨덴으로 보낸다.그 곳에서 그녀는 소설 속 주인공이 되기 위해 언어훈련,오토바이 타는 법,킥복싱 등등 배우며 역할에 몰입해 갔다.리스베트라는 가면을 쓰기 위해 그녀는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당시 그녀는 그 캐릭터에 너무 큰 매력을 느꼈고 스웨덴이라는,아무런 지인도 없는,낯선 땅에서 영화에만 집중하다보니 영화를 촬영하는 일은 아무리 육체적으로 힘들고 감정적으로 어려운 장면도 잘 헤쳐 나갔다.문제는 영화를 다 찍고 난 뒤의 일이었다.이제는 가면을 벗어야할 시점이었던 것이다.영화 촬영을 끝내고 며칠 뒤 그녀는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갔는데 식후의 파티에서 한 남자가 춤을 같이 추자고 권해왔다고 한다.미국인들의 문화상 결혼식 후의 댄스는 하객 중 누구하고도 출 수가 있었고 상대가 요청해오면 싫어도 싫은 내색 않고 흔쾌히 받아주는 것이 예의이다.그런데 그녀는 그 순간 그 남자의 목을 두 손으로 잡아쥐면서 ‘날 내려놔.아님 내가 당신을 해칠거야.’라고 말하고는 자신도 놀랬다고한다.이방인에게 늘 보호막을 두르고 있는 리스베트가 자신도 모르게 나왔던 것이다.그녀는 1년이 넘는 시간동 안 리스베트의 가면을 쓰고 있었고 그 캐릭터는 전례가 없이 어두운 캐릭터였다. 영화가 촬영되는 내내 그녀는 온 몸에 문신을 하고 피어싱을 한 불량청소년 같은 외모로 미소조차 짓지 않고 사람에게 두터운 벽을 치고 살아가는 24살 여성을 연기해 왔으니 불과 며칠 만에 그 가면을 벗기란 불가능 했을 것이다.그녀 스스로도 캐릭터에 몰입하던 순간보다 빠져나오는 순간이 자신의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고 고백했다.물론 그녀는 그 캐릭터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자발적으로 그 가면을 썼으며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페르소나라는 단어는 아주 오래 전 로마시절 연극 무대에서 배우들이 가면 즉 페르소나를 쓰고 연기를 했다는 데서 유래된 단어이다.현대에 와서는 두 가지 의미로 주로 사용되는데 하나는 영화분야에서 감독이 자신의 분신이자 특정한 상징을 표현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배우를 뜻한다.나머지 하나는 철학에서 이성과 의지를 가지고 자유로이 책임을 지며 행동하는 인격을 말한다.내가 앞에서 말한리스베트 이야기는 전자의 의미보다는 후자의 의미가 더 강하다.이런 경험은 배우가 아니어도 사람이라면 한번쯤 경험하게 되는 일인 것 같다.몰입하게 되는 정도와 시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사람에게 있어 페르소나란 엄청난 존재인 것이다.초등학교 시절 나는 교회와 학교 내에서의 내 모습 차이에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다.학교에서는 반장에,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는 활기차고 적극적인 모습인데 어쩐지 모르게 교회만가면 앞에 나서길 두려워하는 소심한 아이가 되었던 것이다. 수도 없이 그 틀을 깨보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이미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교회에서 나의 모습은 늘 말이 없었고 수줍었으며 교회 친구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아이가 아니었다.학교에서는 리더의 가면을,교회에서는 소심한 아이의 가면을 번갈아 써야만 했다.내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선택할 여지가 지금은 있어 보이지만 그 때는 본능적으로 그렇게 됐기 때문에 선택하고 말게 없었다. 그 때는 교회에만 가면 내가 왜 이렇게 주눅이 들어있을까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내가 뭔가 이중인격자인 것 같고 그래서 남들이 알기 전에 꼭 고쳐야만 할 나의 치명적인 단점이었다.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난 더욱 움츠려 들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난 이중인격자였던 것이 아니라 다른 가면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이미 학교에 가기 전부터 나는 그 가면을 쓰고 있어서 교회라는 장소에서는 다른 가면을 꺼내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교회에서 쓴 가면의 햇수가 학교에서 썼던 가면보다 더 오래되고 나와 함께 그 장소에서 머물렀기에 도저히 벗겨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더 많은 페르소나를 가지게 되었다.선생님,교수님들 앞, 소위 나보다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어른들,에서 쓰는 가면,학교 선배들 앞에서 쓰는 가면,부모님 앞에서 혹은 가족 앞에서 쓰는 가면 그리고 친구들을 대할 때 쓰는 가면.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나는 자유자재로 그 가면들을 꺼내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나는 심지어 내가 그러는지도 깨닫지 못했다.어느 날 영화관련 강의를 듣던 중 교수님께서 페르소나에 대해 언급을 하셨고 그 때 무릎을치며 ‘아 ,맞다...’라고 깨달은 것이다.그 교수님은 감독들과 배우의 관계를 들며 페르소나를 이야기 하셨고 많은 감독들이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특정 배우를 그들의 페르소나로 사용한다고 했다.사람들에게 페르소나는 없어선 안 되는 존재라고 교수님은 말하셨다.어떻게 맨얼굴을 드러내놓고 사냐고 하시면서 말이다.심지어 맨얼굴을 드러내며 사는 것은 잔인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맨얼굴만 처음부터 보여준다고 생각해보라.사람들의 인간관계가 어떻게 형성될 수 있을까.모든 사람들은 마음 한 구석에는 위험하고 불완전하며 우울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그런 모습들은 가족들 혹은 자기 혼자 있는 시간에만 드러나는데 그런 것이 맨얼굴이라고 생각하고 만인 앞에 드러낸다면 얼마나 세상이 힘들어지겠는가.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된 에픽테토스라는 철학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이고,다른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이 아니다.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은 믿음,충동,욕구,혐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이다.반면에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들은 육체,소유물,평판,지위,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자신이 행하지 않은 모든 일이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p.38』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전자는 나의 맨얼굴과 관련된 것이고 후자는 페르소나에 관계된 것이다.이 사람은 둘 다 필요하다고 내게 말해주고 있다.우리가 맨얼굴을 드러내야할 때 페르소나를 쓰고 반대로 페르소나를 드러내야 할 때 맨얼굴을 보여주려 해서 우리의 삶에서 겪는 고통과 갈등이 유래 한다고 한 것이다.
최근 나는 인관관계에 회의가 들어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않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사람에게는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면이 있는데 내 친구 중 한 명이 그 선을 넘으려한다고 나 스스로 판단했던 것이다.그 친구는 날 너무 꿰 뚫어보고 판단하는 것 같아 친구를 피하고만 싶었다.나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쟤는 원래 그래,그래서 저렇다’는 둥 이렇게 말할 것만 같았다.그에 비해 나는 그 친구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는데도 말이다.비단 그것 뿐만이 아니라 예전에는 고민이 생기면 사람에게 다 털어놓기 마련이었는데 요즘은 어쩐 일인지 털어놓을 사람이 점점 줄어들어만 간다.말이란 무서운 것이어서발도 달려있지 않은데 내가 막을 틈도 없이 내 건너 건너편의 사람에게 까지 내 감정의 기복이 전해지는 모습을 보며 후회를 하곤 했다.그래서 내가 내린 어리석은 결론은 최대한 말을 줄이고 사람들에게 한 가지 가면만 쓰고 대해야겠다는 것이었다.근데 여기서 말한 한 가지 가면은 가면의 수를 줄인 다는 것이 아니라 가면의 경계를 아주 확실히 정해서 이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이 가면만,저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가면만 보여줘야겠다는 말하자면 아주 머리 아프고도 어리석은 결론에 이른 것이다.가면을 겹겹이 써서 아마 내 맨얼굴을 보려면 세 겹 정도의 가면을 들춰내야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느껴진 것이다.조금 기분이 나빠도 웃어버리고 피곤해도 괜찮다고 하고 화가 나도 내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그런 가면 말이다.그렇게 함으로써 난 안전하다고 생각했다.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그건 내 본모습이 아니니까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말이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의 저자는 맨얼굴을 드러내야 한다고 말한다.꼭 고름을 빼기 위해 상처를 찢어내야 하듯이 맨얼굴을 드러내야 한다고 말이다.우리가 우리의 아픔을 숨기고 내면의 세계로 파고들면 들수록 그 아픔은 짓물러지고,썩어져갈 것이기 때문이다.처음에는 가면을 쓰는 것이 당연하다는 교수님과 가면을 벗어 맨얼굴을 드러내는 노력을 해야한다는 저자 중 누가 옳은 것일까라고 생각을 했다.피상적으로 보면 정반대의 뜻 같지만 결국은 동일한 것을 말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나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것.세상을 살아가며 가면을 써야할 때도 있을 것이다.사회생활에 있어 그런 건 너무도 당연한 것일 테니까.하지만 적어도 몇 명에게는 맨얼굴을 보여야 한다.아픈 모습,약한 모습 때로는 지저분하고 더러운 모습까지도.내가 허락한 이 몇 명은 충분히 나의 그런 모습도 받아들여줄 것이다.왜냐면 나도 그들의 추한 모습을 보았고 주저앉은 모습을 보았지만 실망을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도했기 때문이다.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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