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주제 | 430년 전 임진년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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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 | 2022. 11. 1. ~ 11. 30. |
전시장소 | 중앙도서관 3층 인문사회자료관 |
전시대상 | 임진왜란을 기록한 고서 8종 |
전시내용 | 올해는 임진왜란이 발발한지 4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약 7년간 이어진 전쟁으로 조선, 일본, 명나라 등 동양 삼국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쳤던 전쟁입니다. 전쟁이 오랜 기간 이어진 만큼 전쟁에 관한 기록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우리 도서관에도 임진왜란과 관련된 많은 자료들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중 고서 8종을 선별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임진왜란의 기록들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역사적 교훈은 무엇인지 생각해봅시다. |
서명 | 충렬사지(忠烈祠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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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간행년 | 엄린(嚴璘) ㅣ 純祖 8(1808) |
판사항 | 목판본 |
형태사항 | 11卷2冊 : 四周單邊 半郭 23.8 ×17.3 ㎝, 有界, 10行20字, 花口, 上下內向2葉花紋魚尾 ; 34.3 ×22.5 ㎝ |
자료소개 | 『충렬사지』는 1676년 동래부사 엄린이 편찬하고 1808년 오한원이 간행한 책이다. 부산(동래) 지역의 임진왜란 항전 기록과 충렬사의 연혁, 배향 인물의 약전 등에 관한 내용을 수록한 책으로 총 11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차별 내용은 다음과 같다. 권1(충렬공유사) 동래부사 송상현에 관한 기록 『충렬사지』는 임진왜란 당시 동래 지역의 전투 상황과 충렬사의 역사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서 사료의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
서명 |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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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간행년 | 이순신(李舜臣)ㅣ미상(未詳) |
판사항 | 금속활자(정유자) |
형태사항 | 14卷8冊 : 揷圖, 四周單邊 半郭 24.8 ×17.0 ㎝, 有界, 10行18字 註雙行, 花口, 上下向2葉花紋魚尾 ; 35.3 ×22.3 ㎝ |
자료소개 | 『이충무공전서』는 1795년(정조 19년)에 발간된 충무공 이순신의 유고 전집으로 충무공의 시, 장계 등의 저술과 더불어 역대 왕들의 제문과 대신들의 추모글 등이 실려있는 책이다.
도서관에 소장된 책은 총 14권 8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금속활자(정유자)본으로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권수 : 윤음(정조), 비명(정조), 교유(이순신이 활약할 때 내린 임금의 명령), 제문(선조 등), 도설(중국 황제가 충무공에게 내린 하사품 및 충무공이 제작한 무기의 설명과 그림), 덕수이씨 세보(족보), 연표(충무공의 행력) 『이충무공전서』는 왕명으로 편찬된 서적으로서 이순신의 연구과 임진왜란의 연구에 중요한 문헌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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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징비록(懲毖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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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간행년 | 유성룡(柳成龍)ㅣ미상(未詳) |
판사항 | 목판본 |
형태사항 | 16卷6冊 : 四周雙邊 半郭 20.1 × 15.9 ㎝, 有界, 10行20字, 白口, 上下內向2葉花紋魚尾 ; 31.7× 20.6 ㎝ |
자료소개 | 『징비록』은 유성룡이 임진왜란 동안 경험한 사실을 기록한 책이다. 임진왜란의 원인과 전황 등을 기록한 책으로 ‘징비’란 『시경』의 「소비편」에서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구절에서 딴 것이다. 유성룡은 임진왜란 동안 국정을 운영하였던 문신이었기 때문에 『징비록』은 당대의 전황과 정치 상황을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임진왜란 연구에 사료의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 도서관에 소장된 책은 16권 6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권1-2(징비록) 임진왜란의 원인과 전황을 기록 이 징비록은 1695년 『조선징비록』이라는 제목으로 일본 야마토야에서 중간되어 큰 인기를 끌기도 하였다. 현재도 『징비록』의 국역본들이 발행되고 있으며 도서관 소장본 중 가장 최근에 국역 발행된 책으로 홍익출판에서 발행된 『징비록』(2020)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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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용사일기[龍蛇日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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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간행년 | 이로(李魯)ㅣ英祖 38(1762) |
판사항 | 목판본 |
형태사항 | 1冊 : 四周雙邊 半郭 21.4 ×15.3 ㎝, 有界, 10行20字 註雙行, 上下內向2葉花紋魚尾 ; 30.4 ×19.6 ㎝ |
자료소개 | 『용사일기』는 1762년(영조 38)에 간행된 이로(1544-1598)의 일록이다.
이로는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학봉 김성일을 만나 종사관, 초막관, 사제관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이 책은 이로가 당시의 김성일의 행적을 기록한 것으로, 1590년(선조 23)에 김성일이 정사 황윤길을 따라 일본을 다녀오는 내용부터 시작하여 1593년 진주에서 전사하여 안장되는 때까지의 일을 시간 순서에 따라 기술되어 있다. 김성일의 활동을 중심으로 내용을 기술한 것이지만, 임진왜란이 발발한 뒤부터 약 15개월 간의 전쟁 상황이 매우 자세하고 사실적으로 기록되어 있어 사료로서의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용사일기』는 부산대학교 한일문화연구소에서 1960년에 주역(註譯) 발행되었다. |
서명 | 지신선생실기(知申先生實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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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간행년 | 노경수(盧京壽)ㅣ1922 |
판사항 | 목활자본 |
형태사항 | 1冊 : 四周雙邊 半郭 21.5 ×15.7 ㎝, 有界, 10行20字, 上下內向2葉花紋魚尾 ; 30.8 × 20.0 ㎝ |
자료소개 | 『지신선생실기』는 조선전기 동래교수를 역임한 문신 노개방의 실기(實記)이다.
❍ 노개방(盧蓋邦, 1563~1592) 노개방은 경상북도 밀양시 무안면 가례리 서가정에서 태어나 1588년(선조 21) 식년시 병과(丙科)에 24위로 급제하였다. 과거 급제 후 그는 고향인 밀양과 가까운 곳에서 근무하기 위해 자청하여 동래부(東萊府)의 교수(敎授)가 되었다. 1592년(선조 25) 봄 부모를 뵈러 밀양에 가 있던 중 왜군이 쳐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밀양에서 급히 돌아와 동래향교로 달려갔으나 동래향교에 봉안되어 있던 위패들은 이미 동래성 정원루(靖遠樓)로 옮겨진 후였다. 이에 노개방은 정원루로 올라가 위패 앞에 예를 올린 뒤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항거하였다. 이윽고 동래성이 함락되자 노개방은 동래 부사 송상현(宋象賢) 등과 함께 30세의 나이로 순절하였다. 부인 여흥 이씨도 밀양에서 자결하였다. [출처: 부산역사문화대전(노개방(盧蓋邦)) |
서명 | 낙오선생실기(樂吾先生實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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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간행년 | 유정균(柳汀均)ㅣ1923 |
판사항 | 목활자본 |
형태사항 | 2卷1冊 : 世系圖, 四周單邊 半郭 22.2 ×16.5 ㎝, 有界, 10行18字, 上內向3葉花紋魚尾下上向黑魚尾 ; 31.7 × 21.2 ㎝ |
자료소개 | 『낙오선생실기』임진왜란 때 김해읍성을 지키다가 순절한 의병 유식의 시, 행장, 비명 등이 수록된 실기이다.
❍ 유식(柳湜, 1552~1592) 유식은 1552년(명종 7) 경상남도 김해군 하동면(현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예안리 마산)에서 태어나 학문에 열중하고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1592년(선조 25) 4월 왜적들이 월당진(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월촌리)을 건너서 쳐들어오는 것을 보고 김해읍성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부사 서태원은 이미 진주로 도망갔고, 경상 우병사 조대곤도 포기하고 지원하지 않았다. 이에 성에 남아 있던 세 명의 장수인 송빈·이대형·김득기와 더불어 김해읍성을 지키려다 1592년 4월 20일 41세의 나이로 전사하였다. [출처: 부산역사문화대전(유식(柳湜)] |
서명 | 양무공실기(襄武公實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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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간행년 | 김지목(金志穆)ㅣ高宗 4(1867) |
판사항 | 목활자본 |
형태사항 | 2卷1冊 : 四周單邊 半郭 21.9 ×15.4 ㎝, 有界, 10行20字, 上下內向2葉花紋魚尾 ; 31.4 × 20.5 ㎝ |
자료소개 | 『양무공실기』는 임진왜란 때의 무신 김태허의 시와 그의 행적에 관한 기록을 모은 책이다.
❍ 김태허(金太虛, 1555~1620) 김태허는 1592년 임란초기 왜적이 부산과 동래성을 함락하고 울산으로 행하자 대구 팔공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활동을 하다 그 능력을 인정 받아 울산 군수가 되었다. 울산 군수가 된 후로도 관군을 이끌어 전쟁에서 많은 공을 세웠던 인물이다. |
서명 | 고산선생실기(孤山先生實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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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간행년 | 이재민(李在珉)ㅣ1916 |
판사항 | 목활자본 |
형태사항 | 3卷1冊 : 四周雙邊 半郭 18.9 × 16.5 ㎝, 有界, 10行18字 註雙行, 上下內向2葉花紋魚尾 ; 30.7 × 20.4 ㎝ |
자료소개 | 『고산선생실기』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장 이삼로의 실기이다.
❍ 이삼로(李三老, 1560-1645) 이삼로는 어려서부터 체구가 크고 힘이 세어 장재로 지목되었고,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의 병에 한달이 넘게 기도하여 병이 나았다고 한다.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동(家偅) 100여 명으로 의병을 일으켜 정진(鼎津)에 주둔한 곽재우(郭再祐)의 의군에 합류하여, 1594년 가력(嘉力)에서, 1597년 화왕산성(火旺山城)의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전쟁이 끝나자 군을 해산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1621년(광해군 13) 임진왜란 때의 전공이 인정되어 훈련부정에 임명되었으나 세상이 시끄러워 부임하지 않았고 1641년 수직(壽職)으로 승정원좌승지에 올랐다. 후에 예안의 청계서원(淸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삼로(李三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