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와 왕비 앙투아네트 죽음의 비밀

동서양의 음악과 사회

앙투아네트를 사랑했던 어린시절 모차르트

역사적으로 빈은 신성로마제국의 제위를 이어 13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중부 유럽의 패권을 가진 합스부르크 가문의 거점 도시였다.

오스트리아 제국은 오늘날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모든 지역과 우크라이나, 폴란드, 루마니아, 세르비아, 이탈리아의 일부까지 포함한 대제국이었다.

모차르트는 어린시절 합스부르크 가문의 유일한 여왕이었던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1717~1780) 앞에서 연주를 한 뒤 소원을 묻는 왕비에게 그녀의 막내딸 앙투아네트와 결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위대한 음악가 모차르트 … 불행했던 말년과 사라진 시신

위대한 음악가는 그 이름 앞에 수식어가 붙는다.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 헨델은 ‘음악의 어머니’, 그리고 베토벤은 ‘악성’(樂聖)을 붙여 성인에 비유한다. 그런데 모차르트의 이름 앞에는 ‘신동’이라는 독특한 수식어가 붙는다. 다시 말해 그는 음악의 천재였다는 말이다.

서양음악사는 모차르트를 불후의 천재 작곡가로 기억한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출신인 모차르트는 3살떄부터 피아노를 치고 5살때부터 작곡을 한 천재였다.

그는 35년 동안 오페라,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곡, 종교음악, 가곡에 이르기까지 성악과 기악 모든 분야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명작을 남겼다.

모차르트는 1782년 빈의 중심에 있는 성 슈테판 대성당(St. Stephen’s Cathedral)에서 콘스탄체(Constanze, 1762~1842)와 화려한 결혼식을 올렸다. 불행히도 모차르트는 화려한 결혼식을 올린 곳과 같은 장소에서 장례식을 치르게 된다.

▲ 오스트리아는 동유럽의 중심국가로서 독일, 체코, 헝가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빈은 13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중부유럽의 패권을 가진 ‘합스부르크 가문’의 거점 도시였다.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은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모든 지역과 우크라이나, 폴란드, 루마니아, 세르비아, 이탈리아의 일부까지 포함한 대제국이었다.

프랑스 혁명의 희생양이 된 오스트리아 출신 왕비

당시 프랑스 시민들은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었다. 태양왕으로 잘 알려진 루이 14세의 정복전쟁 때문에 국가재정은 파탄이 났다. 그런데도 베르사유 궁전을 짓기 위해 수많은 시민들을 공사에 동원하고 강제로 세금을 거둬들였다.

시민들의 분노는 점점 차오르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공동의 적이 필요했다. 프랑스와 앙숙이었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왕비가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치와 허영으로 가득한 왕비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부패와 타락, 국가재정 파탄 그리고 모든 사소한 문제들은 앙투아네트 때문이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마리 앙투아네트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고 말했다고 한다.결국 분노한 시민들은 혁명을 일으켰다. 혁명정부는 사치와 허영, 부패와 타락의 원흉인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머나먼 나라 오스트리아에서 정치적 이유로 프랑스 왕비가 된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렇게 사치와 허영으로 가득한 왕비가 되어 죽임을 당했다.

후대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1881~1942), 영국 안토니아 프레이저(Antonia M.C. Fraser·1932~) 등 많은 학자들에 의하면 앙투아네트는 사치와 허영으로 가득한 그런 왕비가 아니었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에게 늘 겸손했으며,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검소함이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앙투아네트 때문이라고 알려진 프랑스 국가재정 파탄은 그녀의 사치 때문이 아니었다. 루이 14세부터 시작한 왕실 적자와 오랜 전쟁 그리고 남편 루이 16세의 무능함과 귀족들의 부패 때문이었다. 하지만 분노는 편견이 되고, 편견은 다시 칼날이 되어 그녀를 비운의 왕비로 만들었다. <출처: 나우 뉴스>

이 가이드는 부산대학교 교양선택과목에 개설된 ‘동서양의 음악과 사회’ 강좌의 교육과 학습에 필요한 학술정보를 담고 있다. 다양한 동서양 음악 사상과 이러한 음악들이 사회현상에 미치는 영향들에 대해 학습함으로써 음악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수강자의 TIP

학습정보가이드 서포터즈의 활동보고서와 댓글을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2022-2 [분반:003]

본 강의 주제는 동서양의 음악과 사회이며 고전, 클래식, 오페라 등 여러 가지 음악 장르에 관심이 많다면 추천할 수 있는 강의이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다면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이 강의는 발표수업이 약 90%를 차지하는 발표위주 수업이다.

기말고사 전까지 수강생 전원이 발표과제를 수행해야 하며 발표 후 교수님께서 각 음악에 대한 보충 설명을 해준다.

2022-2 [분반:003]

발표내용은 동서양 음악과 사회에 대한 내용이다. 수강생은 동서양, 세세하게는 나라별로 나뉘어진 분담표를 받아 그에 대한 음악과 사회현상을 조사하고 발표하게 된다.

가끔 교수님이 시험을 위해 배워야하는 내용들을 플라토에 녹화 영상으로 올려준다.

<과제정보>
과제는 레포트 1개와 레포트를 바탕으로 한 발표가 전부이다. 발표는 각자 다른 주제를 맡아서 하게 되고 이는 교수님께서 따로 공지해준다.

2022-2 [분반:003]

레포트는 분량은 6장 이상이며, 동양과 서양으로 주제를 나눠 그 안에서 스스로 소재를 찾아 작성해야 한다.

동양의 경우 장자, 공자 등의 음악 사상에 대해 서술 할 수 있고, 서양의 경우, 각 나라의 음악에 관해 서술할 수 있다.

*최대한 정확한 정보를 깊이 있게 파고드는 것이 과제의 핵심이다.

*위 레포트외에 희망자에 한해 진행되는 추가 가산점 레포트가 있다. “레포트 주제: 프랑스 혁명이 고전음악에 미친 영향”

2022-2 [분반:003]

<시험정보>
중간고사는 없으며, 기말고사만 진행된다. 기말고사 문제는 9개의 예상 문제를 시험 일주일 전 미리 고지하며, 그 중 3문제가 나온다. 대부분 “동서양의 음악과 사회” 책에서 출제된다.

그 외에 스스로 영상을 보고 감상평을 적거나, 음악에 대해 조사를 해서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문제도 섞여 있다.

*B4용지에 답안 작성시 각 문제당 분량을 최대한 많이 적어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추천 저널

한국국악학회
1975-4604
한국음악문화학회
2093-7202
한국동양예술학회
1975-0927

추천 논문

더 찾아보기
저자 이순연 / Soon Yun Lee
인문과학 / Journal of the Humanities. Aug 31, 2005 36:333
저자 김현종 (Hyoun-Jong Kim); 조태선 (Tae-seon Cho)
한국산학기술학회 논문지. 2022-01 23(1):125-134
저자 박소정; Park So-jeong
한국음악연구, 12/30/2002, Vol. 32, p. 267-292
저자 김진균 (金晋均)
동서문화. 1979-12 11:195-216

본 가이드는 부산대학교 교양선택 및 일반선택(일반교양) > 문학과 예술(3영역)에 개설된 동서양의 음악과 사회 강의 및 학습을 지원하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