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멋진 신세계 작가 Huxley, Aldous Leonard 출판 소담출판사 오리금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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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멋진 신세계]에서는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존과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총통이 등장한다. 그들은 추구하는 삶이 다른 만큼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 다른데 총통은 고통 없는 삶, 자신의 성공과 자신의 이익을 중요시하고, 존은 고통도 삶의 일부라 여기고 공동체의 성공과 이익을 중요시한다. 이는 누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판단할 수 없다. 각자만의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나름 뚜렷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총통의 삶을 보면 자신의 행복과 이익을 추구하고 살아가며 ‘총통’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온전한 자신의 노역으로 얻은 결과이기에 이는 자신의 길만 보고 갔을 때 얻는 긍정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그는 고통이 없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 여기며 고통을 주는 행동을 피하며 살아가길 원하고 그는 최대한 고통 없이 살아간다. 물론 소마라는 약물로 고통을 잊기도 하지만 약물을 복용하면서까지 고통을 없애려는 총통의 모습은 그만의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총통은 계급이 나뉘어져 있고, 출산의 고통이 없고, 가만히 있어도 일거리는 주어지는 멋진 신세계의 모습에 만족하고 있다. 멋진 신세계야말로 자신의 길만 따라 가서 자신의 성공을 이룰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들은 ‘가족’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개인주의적 성향이 짙어졌을지도 모른다. 성 행위도 친구들끼리 하는 놀이라 여기는 그들인 만큼 멋진 신세계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어떤 일을 하기보다 각자 마이웨이 성향이 커지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그가 이기적이라고 느낄 수 있다. 그저 자신의 앞날만 보며, 다른 사람을 어떻게든 제쳐서 오로지 자신만의 성공을 이루려고 하니 말이다. 그가 공동의 행복과 이익 대신 자신만의 행복과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비판할 수 있는 점은 아니다. 엄연한 그 자신만의 목표이고, 삶의 가치관이기에 존중해주어야 한다.
    두 번째로, 총통과 전혀 다른 것을 추구하는 존이다. 존은 야만인 보호 구역일고 불리는, 아직 ‘가족’이라는 문화를 가지고 생활하는 인디언족 사이에서 태어나 이십여 년 동안 그곳에서 살았다. 그런 존에게 ‘가족’이라는 개념이 없고, 사랑하면 그저 사랑하기만 하고 결혼과 같은 가족문화가 없는 멋진 신세계는 그야말로 외계행성이었을 것이다. 그가 살면서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 공동체의 이익과 발전이었다. 공동채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던 그는 멋진 신세계의 모습을 바꾸려고 했다.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가족’이라는 개념과 존이 생각하는 진정한 행복을 멋진 신세계 사람들에게 전해주고자 했지만 결국 그는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멋진 신세계의 모습을 바꾸기 위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존은 고통도 삶의 일부라 여기고, 오히려 자신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경험이라 여겼다. 그는 가족과의 삶에서 얻는 사랑과, 그 사랑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사랑과 같다고 생각하며 행복이라는 것이 그들과의 사랑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추구했던 삶은 그들과 살아있는 한 행복하게, 함께 꿈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즉, 그는 그만큼 공동체의 삶을 중요시 여겼던 것이다.
    이처럼 존과 총통의 삶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각자의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모습은 두 사람 모두 박수 받아 마땅하다.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을 보고 나는 각자의 가치관을 존중해주며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부디 이루기를 응원해주어야 한다고 느꼈다. 총통과 존은 서로의 다른 가치관으로 갈등이 생겨 결국 해결하지 못했지만 각자의 방식을 존중해주며 자신은 자기방식대로 꿈을 이뤄나가는 것이 가장 멋진 해결책이다. 개인의 이익을 중요시했던 총통과 공동체의 이익을 중요시했던 존. 그들은 그들만의 멋진 방법으로 세상을 만들길 원했다. 그들은 추구하는 바가 너무나도 달라서 한 공간에서 그들의 뜻을 함께 나타내지는 못했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고자 했던 가치관을 무조건 나쁘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각자의 방법, 방식대로 꿈을 이루고자 노력했던 총통과 존은 그러한 면에서 공통점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이 같을 수는 없다는 것처럼 그 두사람도 같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두 사람의 다른 가치관을 존중하며, 끝내 타협을 이루지 못했던 그들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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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
    • 저는 디스토피아 소설을 안 좋아해서, 그렇게 흥미롭게 읽진 않았어요. 고전으로 불리는 소설이라 기대했는데 다소 아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