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양장본 HardCover) 작가 밀란 쿤데라 출판 민음사 허종헌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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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에 누군가에게 사랑고민을 얘기하다 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추천받은 기억이 난다. 그는 아마, 나의 사랑고민이 이 책의 철학을 통해 해소되리라 생각했었나보다. 그러나 나는 추천받은 직후에 바로 읽지 않고, 이 수업의 과제를 위해서나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간부터 나는, 내게 책을 추천해줬던 사람이 나를 꿰뚫어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추천받은 뒤에 진작 읽을 걸’이라고도 생각했다)
    이 책은 1인칭 시점이면서 관찰자 시점이고, 전지적 시점이다. 여기에서 이 1인칭의 주인공을 나는 작가 본인이라고 생각했다. 책은 작가가 생각하는 인생에 대한 철학(인생은 완성작 없는 초안)에 대해 설명을 하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철학은 ‘토마스’라는 인물의 주된 행동이유로서 작용한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 누군가에게 ‘사랑에 대한 책’으로 소개를 받아서 그런지 ‘사랑’이라는 단어에 중점을 두고 감상을 했다. 물론 이 책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내가 여태 글자로써 정리하지 못한 ‘사랑’이란 것을, ‘사랑 없는 섹스’와 ‘타인에 대한 책임’이란 것을 정리시켜 줬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이 책은 내게 사랑과는 관련 없는(어쩌면 관련이 있는) 수많은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 질문들은 내가 이전 과제(성장에 대한 작품)를 하면서 느낀 것들에 반해 질문했다. ‘그게 맞는거냐’고. 그리고 느꼈다. 이 책은 읽으며, 인물들의 스토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작가가 책 속의 인물이라는 도구로써 자신의 철학을 어떻게 풀어 가는지, 그 철학이 대체 뭔지, 나는 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는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작가는 책 밖에 존재하고 있는 자신을 굳이 나에게 계속 상기시켜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책을 다 보고 나는 ‘소설’이란 것을 다시 생각했고, 그 ‘소설’이란 것을 직접 적어보고 싶어졌다, 나의 철학을 담아내서.
    성인이 되기 이전까지, ‘사랑’이라는 것을 직접 접할 환경이 안 되었던 나는 작년에서야 이론상으로만 생각하던 것들을 직접, 감정이란 것을 통해 느끼고 배웠다. 분명히 이론으로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내 가슴이 쿵쾅거리고 볼을 붉어지며 행복감에 도취되어, 적어도 3년은 호르몬을 통해 지속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분명 행복이란 감정을 느꼈으나, 3년은커녕 한 달도 채 가지 못했다. ‘사귀자’라는 말을 통해 이전까지의 관계와 앞으로의 관계에 선을 긋는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고(머리론 이해를 해도 몸은 전혀 따라주지 않았다), 앞으로 내가 아닌 타인의 삶을 짊어져야한다는 것은 사형선고 같았다. 나는 그 끔찍한 기분을 견뎌내지 못해서 항상 결별을 고했고, 나만을 짊어지면 되는 삶의 자유에 대한 행복을 반복적으로 확인했다. 나는 작품 속에서의 순수함과 미덕이란 것을 중시했던 인물, ‘테레자’와 닮았다. 가벼움으로 가득 찬 인생을 살았던 ‘토마시’와도 또한 닮았다. 나는 미덕이란 것을 믿고 살아왔으며 그것을 이상적인 것으로 평가기준 삼았는데, 막상 나를 그 평가기준에 올려놓으면 나는 토마시와 같은 점수를 받는다. 나는 테레자가 되고 싶은 토마시다. 나는 ‘책’이란 지적의 표상에 강렬한 끌림을 느끼며 육체를 통해 영혼을 바라보고자 하는 사람이지만, 가벼움을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두 인물의 속사정들이 다 이해가 되고 공감되었다. 나는 누군가의 삶을 완전히 가지고 싶어 하면서도, 그 삶의 무거움을 견디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작품이 말하는 ‘사랑’ 중 인상 깊었던 표현으로 ‘자신의 바람기가 상대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것을 포기하는 것은, 축구경기관람을 포기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결정’, ‘사랑은 단 하나의 은유에서도 생겨난다’, ‘사랑은 우연이다’, ‘공개적 사랑의 책임과 무게’, ‘멍청한 일부일처제‘, ‘100만분의 1의 상이한 점’, ‘한 사람이 언어를 통해 우리의 시적 기억에 아로새겨지는 순간, 사랑은 시작된다’, ‘동물에 대한 사랑, 이해관계 없는 사랑’ 이 있다. 소설을 읽으며 중요하다고 생각돼서 적은 부분들로, 아마 소설에 순차적으로 나오는 표현들일 것이다. 이 표현들은 사랑에 대해 가벼움을 대변하기도, 무거움을 대변하기도 한다. 이 수많은 표현 중 나는 ‘공개적 사랑의 책임과 무게’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이 표현은 사비나를 위해(정말 사비나를 위한 것인지는 의문) 자신의 부인에게 외도 사실을 알리고 집을 나온 프란츠를, 사비나가 배신하고 도망친 장면에서 나온다. 이러한 프란츠의 행위는 사비나에게 감격보다는 사생활에 무단침입한 것으로 다가왔고, 공개적 사랑의 책임과 무게에 대해 버틸 자신이 없고 버틸 생각이 없었기에 그녀는 도망친 것이다. 이 장면을 보고 나는 ‘사비나란 인물은 대체?’ 라는 생각을 했다. 작품의 초반부부터 요상한 분위기를 뿜어내던 그녀는, 이 장면을 통해 내게 가장 이해 못할 인물이자, 나와 비슷한 인물(토마시와도 역시 비슷한 인물)로 각인됐다. 사비나라면 남자보다 강아지를 좋아했을 것이다. 강아지는 이해관계 없는 사랑이니까. 그녀는 강아지와 사랑에 빠져 모든 남자를 하찮은 존재로 여겼을 것이다. 삶의 무거움을 상상하던 테레자도 강아지와의 사랑을 고귀하게 생각했으니까. 사비나야말로 작품 제목인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인 것이다.
    사랑이란 것을 생각하면(어쩌면 모든 단어들의 최종 도착지로서) 사회적 역할이란 것이 연상된다. 이것은 곧 사비나와 토마시가 그토록 피하려했던 무게감 있는 짐이었고, 테레자가 이상적인 기준이라 생각했었던 것이다. ‘사회적 역할’은 이름 그대로 ‘사회’가 지정해준 ‘역할’이다. 마치 조선시대에 여자들은 밥 짓고 빨래하고, 남자들은 밭일 같은 바깥일을 하는 성역할과 같은, 사회가 만든 역할이다. 그렇기에 결국 (내가 생각하기에) 사랑이란 단어는 사회라는 단어에 종착한다. 이 작품 역시 사랑에 대한 철학을 다루다 사회에 대한 철학으로 넘어가고 곧 타인에 대한 철학, 나 자신에 대한 철학으로 확장, 혹은 축소한다. 특히나 여기서 내가 집중했던 부분은, ‘키치’이다. 키치란 아름다움의 가면으로, 모든 신념은 키치라는 단어로 설명된다. 한마디로 우리는 키치라는 각자의 종교 속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종교는 각자가 옳아서 혹은 옳지 않아서 우리는 어떤 것이 낫다 저울질 할 수가 없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불행하게 하는 소련의 비밀경찰과, 토마시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계기인 기자의 폭력성이 대체 무엇이 다르냐고 책은 질문한다. 작가는 또한 말한다, ‘소위 전체주의 체제에 대항하는 사람은 질문과 의심을 가지고 투쟁할 수 없다.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되어야만 하고 집단적인 눈물샘을 자극해야만 하는 확신과 단순화된 진리가 그들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이 말은 이전 과제를 통해 느꼈던 나의 신념 확고화에 대한 욕망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신념에 대한 불확실함이 얼마나 자유로운지 느꼈다. 나는 질문과 의심을 하는 단계까지가 즐거운 것이었다. 이것은 마치 아까까지 다루던 ‘공개적 사랑의 무게와 책임’과도 일맥상통한다. 나뿐이 아니라 토마시 역시도 자신의 신념을 확고히 가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 보였고, 어느 것을 옳다 평가하기 조심스러워 하는 듯 했다. 그래서 나는, 토마시가 싫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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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도 참 좋아해 여러번 읽은 책입니다. 사랑이 끝나고 읽으면 매번 사랑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달라지는 신기한 책이기도 하고, 꼭 그런 때가 아니었더라도 읽고 날 때마다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책이기도 하죠. 저는 오히려 전체적인 맥락에서 사랑을 보기보다는, 인물들이 사랑과 이별을 하며 느끼는 감정들의 서술, 그러니까 구절의 맥락에서 이 주제를 더 많이 읽어냈고 공감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쓰신분은 사랑이라는 문제를 더욱 의식하고 읽어 잘 보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꽤 신선한 관점의 글이었어요.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