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개의 스페인(개정판) 작가 신정환 출판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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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에 관련된 책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유명한 책이다. 제목도 흥미롭고 세 차례 개정을 거친 점, 게다가 코로나 시국에 맞춰 부제를 '알타미라에서 코로나19까지'로 바꾼 점 등을 보고읽게 됐다.

    1부는 역사를 2부는 문화를 다루고 있다. 시간 순대로 진행되는 역사 파트와는 달리 문화 파트는 스페인의 문화 이모저모가 다소 두서없이 소개돼 가독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더군다나 가장 기대했던 코로나19 부분은 짤막하게 다뤄졌고 또 아직 현재진행형인 문제이거니와 나도 뉴스를 통해 이미 알고 있던 내용들이라 별다른 만족감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투우 파트에서 코로나 때문에 투우가 침체기를 겪고 있다는 게 더 기억에 남았다. 안 그래도 스페인 내부에서 찬반 양론이 거센데, 축구나 뮤지컬은 무관중으로 진행해도 투우는 정부에서 그 정도 투자도 하지 않아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투우를 한 번쯤은 보고 싶은 터라 참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는데, 오래된 문화인 만큼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겠지만 피해가 얼마나 심한지, 그리고 코로나가 언제 종식되고 내지는 위드 코로나가 성공적으로 안착할는지 몰라 불안하기 그지없다.

    작년 7월 즈음에, 관광 수입을 얻고자 스페인이 외국인 관광객을 받아들이겠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 전부터 학교에서 교양 스페인어를 들으며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대한 관심이 커졌었는데, 작년의 코로나 상황은 더 안 좋았던 지라 여행은 단념했지만 아무튼 그 이후로 드라마 <종이의 집>을 보고 스페인 관련 책도 찾아 읽었다. 그런데 책들을 보면 '스페인을 알아야 세계가 보인다' 같은 스페인 문화 찬양이 느껴져 쓴웃음을 지은 적이 있었다. 스페인이 매력적인 나라인 건 인정하지만 세계가 보일 건 또 뭐람? 솔직히 전형적인 광고 문구 같아 코웃음을 치고 말았는데 이번에 <두 개의 스페인>을 읽으며 그 말이 드디어 와 닿았다.

    역사 파트를 통해 스페인과 남미 등의 라틴 계열의 문화는 영미 국가, 이른바 앵글로섹슨족과는 큰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됐다. 그 차이란 것이 제법 대조적이고 또 '스페인을 알아야 세계가 보인다'는 주장이 그럴싸하게 들리게 만들었다. 미국으로 건너간 영국인들은 원주민을 배척하고 학살한 반면 남미를 장악한 스페인인들은 원주민과 관계를 맺어 아이를 낳았는데 그 혼혈들이 오늘날 남미 국가들의 실질적인 조상이 되고 그렇기에 남미 국가들이 스페인과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 원만한 관계를 가진다는 것이 신기하게 다가왔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덕분일까? 미국은 히스페닉이나 아랍 문화와 끊임없이 충돌하고 영국도 크게 다르지 않아 늘상 테러의 위협에 시달리는 반면 스페인은 마드리드 3.11 테러 말곤 타인종과 크게 반목하지 않는다는 건 주목할 만한 일이다. 정작 스페인 내부에선 마드리드를 비롯한 까스띠야 지역이 까딸루냐와 바스크와는 엄청 반목하는 것과 정반대로 말이다.

    스페인은 유대인이나 이슬람과의 관계가 다른 유럽 국가와는 달리 괜찮은 편인데 이 부분도 역사에서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레콩키스타의 국토 수복 전쟁 이전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는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를 믿는 인종이 섞일 대로 섞여서 기독교도들이 이슬람교를 몰아내고 국교가 바뀌었어도 그 혼종 상태는 큰 변화 없이 유지됐다고 한다. 사실상 프랑코의 독재 체제 이전까지 스페인이나 심지어 남미의 식민지조차도 여러 문화가 나름대로 조화롭게 어우러졌다고도 볼 수 있다. 비록 남미 식민지들은 스페인이 탐욕스런 목적으로 만든 것일지언정 적어도 미국이 했던 짓에 비하면 대조되는 부분이 있어 - 골때리는 건 정작 원주민을 가장 많이 학살한 건 스페인군이 아닌 스페인과 남미 원주민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들이다. 두 가지 피가 섞인 자신들이 이 땅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다면서 스페인군과 원주민 둘 다 적대했다. 스페인의 '문명의 연대'가 사뭇 대단해보이는 이유다.

    '문명의 연대'란 스페인이 마드리드 테러 직후 이라크에 파병한 자국 군대를 철수시키며 그 이유를 댈 때 쓴 용어다. '문명의 연대'란 무력이 아닌 대화로 타 문명과 연대를 도모한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편한데 이렇게 설명하면 허울만 좋은 소리처럼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대화로 연대가 쉬웠다면 애당초 싸움이 벌어졌겠는가. 하지만, 무력이라고 무슨 만능도 아니고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치닫게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걸 역사에서 무수히 많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스페인처럼 존재감 있는 국가가 '문명의 연대'를 주장하는 건 사뭇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됐다.

    과연 스페인식 '문명의 연대'가 저자가 강조한 것처럼 지금보다 좋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는지는 검증을 해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스페인을 알아야 세계가 보인다'는 말만큼은 단순히 스페인 예찬에서 비롯된 말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글쎄, 정확히는 스페인 문화가 무조건 옳다기 보다 미국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은 일단 위험할 뿐더러 무엇보다 비좁고도 비좁은 시각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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