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흑산 작가 김훈 출판 학고재 blackey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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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훈 작가님의 <칼의 노래>를 읽다가 결국 마지막까지는 읽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는 책 <칼의 노래>는 작가 특유의 툭 던지는 듯한, 정말 칼 같은 문체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 책 <흑산>또한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한다기 보다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툭 내뱉듯이 서술하고 있다. 툭 뱉는다고 쉽게 읽히는 문체는 아니다. 작가는 그 무심한 듯한 문체로 가장 힘들고 잔인한 비극,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책 <흑산>은 18세기~19세기 초 신유박해로 흑산도로 유배당한 정약전과 그의 가족, 그리고 흑산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천주교에 관대했던 정조의 승하 후 순조가 즉위하고, 대왕대비의 수렴청정이 시작된다. 대왕대비의 천주교 박해로 정조의 총애를 받는 실학자였던 정약용의 가족들은 천주교 탄압을 받게 되고, 그 과정에서 가족들은 고문을 당하여 순교하거나 유배를 당해 전국 뿔뿔히 흩어지게 된다. 정약용의 동생이었던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를 가게 되고, 그곳에서 흑산도의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삶과 슬픔을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흑산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흑산도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하게 된다.



    “주여 매 맞아 죽지 않게 하소서, 굶어 죽지 않게 하소서” 라는 기도문을 읊는 소작농들을 비롯하여, 천민의 자식은 천민이라고 배우고 자라온 조선의 백성들에게 천주교 라는 것은 종교 이상의 의미였을 지도 모른다. 나를 때렸던 양반을 벌 해달라, 부자가 되게 해달라 등의 누군가를 미워하는 기도가 아니라. 당장 내일을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는 그들의 두 손 모은 절규를 보면서,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 중 하나였던 정약전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학문으로서의 천주교, 종교로서의 하느님이 아닌, 기울어져 가는 조선의 현실이 그의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났을 때를 그리는 이 작품에서, 작가는 그럼에도 주인공이 이 현실을 인정하는 모습을, 무력감을 느낌에도 불구하고 살아나가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역사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살기 위해 발버둥 쳤던 조선 후기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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