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본 백석 시집(문학동네 시집)(양장본 HardCover) 작가 백석 출판 문학동네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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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나왔을 때부터 백석의 시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분명히 시인데도 소설처럼 서사가 있고 이미지가 저절로 상상이 된다는 점이 정말 멋졌다. 짧고 임팩트 있는 언어로 어떻게 자신을 감정을 타인도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을 할까, 참 신기했었다. 자칫하면 투박하고 어색하게 보일 수 있는 방언을 가지고 시를 쓴다는 생각도 독창적이었다. 물론 일제강점 하에서 민족의 얼을 드러낸다는 어쩌면 독립투사적인 마인드로 백석은 시를 쓴 것이었지만 나로서는 그런 아이디어를 떠올린다는 것 자체가 천재적이라는 감탄만 나올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시에 드러나는 쓸쓸하고도 쥐죽은듯이 고요한 정서가 이상하게 끌렸다. 시에 원래 관심을 두지 않았고 그래서 시집을 한 번도 산 적이 없는데 생일 때 부모님께 이 책을 사달라고 했을 정도로 말이다. 시집에는 대략 8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나는 그 중에서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를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날 백석 시에 끌리게 만든 이유들을 잘 반영하고 있는 시라고 생각한다.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나는 이 마을에 태어나기가 잘못이다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나는 무서워 오력을 펼 수 없다
    자 방안에는 성주님
    나는 성주님이 무서워 토방으로 나오면 토방에는 다운구신
    나는 무서워 부엌으로 들어가면 부엌에는 부뜨막에 조앙님

    나는 뛰쳐나와 얼른 고방으로 숨어버리면 고방에는 또 시렁에 데석님
    나는 이번에는 굴통 모통이로 달아가는데 굴통에는 굴대장군
    얼혼이 나서 뒤울안으로 가면 뒤울안에는 곱새녕 아래 털능구신
    나는 이제는 할 수 없이 대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대문간에는 근력 세인 수문장

    나는 겨우 대문을 삐쳐나 바깥으로 나와서
    밭 마당귀 연자간 앞을 지나가는데 연자간에는 또 연자망구신
    나는 고만 디겁을 하여 큰 행길로 나서서 마음 놓고 화리서리 걸어가다 보니
    아아 말 마라 내 발뒤축에는 오나가나 묻어 다니는 달걀구신
    마을은 온데간데 구신이 돼서 나는 아무 데도 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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