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년생 김지영(오늘의 젊은 작가 13)(양장본 HardCover) 작가 조남주 출판 민음사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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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소설이였는데 얼마 전 김도영 감독의 영화화로 인해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저는 페미니즘을 지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실비아 플라스나 버지니아 울프같은 페미니즘 문학가들의 작품을 읽으며 그들의 심정에 어느 정도 공감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막상 책도 읽지 않고 까는 것 보다는 어느 정도 알고 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책을 읽었고 90년대생 남성으로서 어떤 생각을 가지는지 조심스럽게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책은 제목처럼 82년생 김지영씨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고 어떤 서사적 흐름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김지영이 태어날 때부터 살아가면서 그녀가 여성이기 때문에 겪었던 차별을 각각의 사건별로 나열하는데 충실하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일종의 피카레스크 소설로 생각했으나 중간 중간 여성의 고초를 나타내는 통계들을 제시한 것을 보면 르포르타주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김지영씨가 겪었던 고초는 생각보다 꽤 현실성있습니다. 작가 조남주씨가 실제 사건이나 자료를 바탕으로 한 자료마다 한 사건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파헤치면 파헤칠 수록 의문이 남습니다.

    8 2년생 서민 여성의 보편적인 일화처럼 소개하지만 정작 이야기는 보편성의 탈을 쓴 과도한 일반화에 집착합니다. 저는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김지영이라는 여성에게 법의 테두리 안에서 허용 되는 모든 악담이나 저주를 퍼부었다 생각해 흠칫했습니다. 그래서 말그대로 하나만 걸려라 하는듯이 작가는 펜으로 독자들(특히 여성 독자들)을 찔러댑니다. 너 이런적 한번도 없었어? 이런적은? 저런적은? 이건어때? 그렇게 한번이라도 공감하게 만들면 82년생 김지영씨의 고통 가득한 경험이 여성이라면 누구나 보편적으로 겪었을 성차별일대기로 포장됩니다.
    제가 아까 보편성에 집착한다는 표현을 썼는데요, 또 다른 이유는 모든게 김지영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문학으로서는 색이 희미한 르포르타주임에도 불구하고 1인칭으로 진행됨에 따라 독자는 작중 김지영의 생각들을 여과없이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러한 생각은 사실 작가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을 그대로 투영한 것에 불과한데 말입니다. 또한 르포르타주적인 면모 역시 정말 진실을 반영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기세를 잃습니다. 책에서 묘사한 여성 차별에 대해 여러 반박들이 있지만 객관적인 통계만 하나 가져와 보겠습니다. 책에서 인용한 통계는" '남성을 선호한다'는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44%였고, '여성을 선호한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입니다. 그런데 실제 출처 전문에는 바로 다음 구절에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없다'는 응답은 56%였다."는 서술이 있습니다. 소설 속 문장은 여성에 대한 차별만을 부각할 뿐이지, 성별 선호 없이 공정하게 채용하려고 노력하는 의견은 일부러 감추어 곡해된 해석을 유도합니다. 이 외에도 제출한 통계가 통계청에서 개최한 통계 바로쓰기 공모전에서 3회나 수상될 정도로 왜곡된 팩트를 제시합니다.

    소설의 한계는 결국 억압받는 여성상을 재현하는 것에서 그쳤다는 점입니다. 사건이 해결되지도 않고 해결방안을 제시하지도 않고 자주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물론 이러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 만으로도 가치가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델마와 루이스라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91년 페미니즘 드라마 영화와 비교하면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델마와 루이스는 어떻게 보면 소설보다 더 과격한 방식으로 두 여성의 삶이 어떻게 파국에 치닫는지 보여줍니다. 요약하자면 성폭행을 시도하려는 남성때문에 살인까지 하게 돼서 경찰한테 쫓기는 와중에 남성에게 배신당하고 돈을 잃고, 그것때문에 범죄도 저지르는 델마와 루이스의 이야기입니다.

    극단성으로만 따지면 소설의 수위를 한참 넘어버리는 이야기지만 제가 더 납득가는 쪽은 영화 쪽이였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인물을 보는 시각에 있습니다. 작품이 진행되면서 남성에게 당한 두 피해자 델마와 루이스는는 점점 더 과격한 일을 벌이며 가해자의 입장에 서게 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단순히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가 역전된 것이 아니라 수동적이기만 했던 인물들이 능동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누가 봐도 악인의 행동이지만 관객들은 거기에 불쾌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녀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고 또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3자의 입장에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여성들은 수동적이고 연약한 존재가 아니란 것을 일갈하는 델마와 루이스를 담담하게 바라봅니다.

    또 책에는 모든 남성들이 악인들로 묘사됩니다. 영화는 남성우월주의적인 시대상을 비판할 지 언정 남성 자체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지 않습니다. 델마를 성폭행하려 했던 남자와 델마에게서 돈을 빼앗고 도망간 제이디처럼 남성들이 악인으로 등장하긴 하지만 작중 델마와 루이스를 이해하려고자 하는 슬로컴 형사나 진지하게 루이스를 생각해주고 아끼는 남자친구 지미까지 모두가 악인은 아니며 개중에는 선인도 있다는걸 보여주면서 성별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들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시대상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즉슨 82년생 김지영에서의 구분은 오직 성별이라는 말입니다. 남성은 나쁘고 여성은 나쁘지 않다는 이분법적 사고를 표방하며 여성과 남성을 갈라놓습니다. 델마와 루이스에서의 기준은 좀 더 복잡합니다. 남성 여성, 범죄자 비범죄자, 수동적 인간 능동적 인간 등등.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크리테리아는 82년생 김지영처럼 이분법적이라기보단 델마와 루이스처럼 더 복잡합니다.

    저는 82년생 김지영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조롱하거나 모욕하고 싶지 않습니다. 만약 82년생 박철수라는 제목으로 남성들이 살아오면서 겪었을 부조리와 힘든 일들을 썼다면 남성들에게서도 비슷한 공감을 불러일으켰을거라 생각합니다. 이 책이 여성들 사이에서 그렇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것 자체가 여성과 남성에 대한 담론이 필요하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책에는 한계가 절실합니다. 많은 평론가들의 의견을 참조해 제가 가진 생각을 한번 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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