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라이칸은 ‘유라시아 자유무역지대’를 구상해고 만들어냈다. 쿠빌라이는 이 구상을 통해 정치ㆍ군사ㆍ경제ㆍ유통ㆍ생산ㆍ교통 등 다방면에 걸쳐 자유무역과 중상주의 정책을 펼쳤다. 또 다인종, 다언어, 다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고용해 세계제국을 운영했다. 쿠빌라이칸은 몽골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하나로 묶으려고 했다. 그 중심지는 13세기 쿠빌라이가 건설한 북경이었다. 중국의 수도 북경이 중국 동북쪽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몽골고원부터 중국까지를 포함해서 보면 북경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쿠빌라이는 통혜하라는 운하를 통해 북경을 발해만과 연결하고, 신중한 남송 공략을 통해 해양을 강화했다. 이때 발전한 도시가 천진과 상해다. 쿠빌라이칸은 이를 통해 기존에 여러 유목제국이 기초를 닦고 확립해놓은 초원의 군사력과 중국의 경제력이라는 토대 위에 무슬림의 상업력을 결합한 대교역권이라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쿠빌라이칸은 제국 내에서의 관세를 일원화했다. 그때까지는 무역품이 각 도시의 항구, 관문을 통과할 때마다 관세가 부과됐다. 이를 쿠빌라이칸은 매각지에서 한 번만 지불하면 되도록 했다. 관세율도 3.3%로 그리 높지 않았다. 그리고 더 큰 거래를 위해 염인(鹽引)의 활용과 지폐의 발행, 은(銀)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체제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은이라는 ‘가치’를 통해 세계경제가 하나로 연결됐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몽골제국은 중국, 이슬람권, 유럽, 동남아를 잇는 거대 무역공동체를 만들었으며 그 모든 과정과 절차를 몽골제국의 군대가 지켜주었다. 몽골제국의 정복 활동은 동양과 서양을 지리적으로 연결하고 나침반, 화약, 인쇄술 등이 유럽으로 전해지고 천문학, 역법, 수학, 지도학 등이 중국으로 전래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동서문화의 교류를 촉진하여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 통합을 이뤘다. 칭기즈칸과 몽골제국이야말로 오늘날과 같은 지구촌 통합의 시대를 연 세계화의 선구자였다. 몽골의 지배를 받지 않았던 서유럽, 이집트, 인도, 동남아, 일본조차도 정치, 경제, 문화, 기술, 과학, 사상, 종교 등 모든 면에서 몽골제국과 교류하며 깊은 영향을 받았다. 몽골제국이 지구촌 시대를 연 것이다. 훗날 학자들은 14세기의 세계적 번영을 ‘팍스 몽골리카’라고 부른다. <출처: 포브스 코리아>
수강자의 TIP
학습정보가이드 서포터즈의 활동보고서와 댓글을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2023-1 [분반:001]
중앙 유라시아 지역, 정주민과 유목민, 유목 사회와 국가, 장건의 서역사행, 유목국가와 실크로드, 흉노, 돌궐, 위구르, 티베트 등 전반적인 동아시아 역사를 학습한다.
조별과제 및 팀플이 없는 수업이며, 역사와 세계사에 흥미가 있다면 재미있게 들을 수 있다.
2023-1 [분반:001]
<과제정보>
과제없음
<시험정보>
시험 당 서술형 8문제 정도가 출제된다.
시험문제 예)
- 유목민과 정주민 간의 치열한 군사적 대결의 상징물로 볼 수 있는 것은?
- 카간을 유목국가의 군주 칭호로 공식적으로 최초 사용한 국가는?
2023-1 [분반:001]
- 흉노제국을 세운 인물은?
- 장건의 서역 사행 및 의의대해 서술
- 정주민과 유목민의 차이
- 정주민과 유목민의 실크로드에 대한 태도, 중국의 실크로드에 대한 태도를 비교 서술
- 돌궐 및 위구르의 당에 대한 태도 서술
- 세계제국 당에 대해 서술
2023-1 [분반:001]
※시험의 전반적인 내용이 해당 내용을 아는지 모르는지의 개념이 아닌, “한가지 대주제에 대해 이를 설명해보시오”라는 느낌이 강하다.
따라서 역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정확히 암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 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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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가이드는 부산대학교 교양선택 및 일반선택(일반교양) > 사상과 역사(1영역)에 개설된 동서문화교류와 실크로드 강의 및 학습을 지원하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