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작가 강신주 출판 동녘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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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는 여러 시가 있다. 하지만 하나같이 철학적 고민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나는 그 중, ‘사유의 의무’에 대해 리뷰해보고자 한다.

    박정희 정권 시절, 김남주 시인은 정권에 맞서 싸웠다는 이유로 감옥에 투옥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시 한 편을 짓는다. 존경받을 덕목을 두루갖추고 있지만 그 주인이 누구인지는 전혀 관심이 없는 한 관료에 대해. 그리고 이 ‘어떤 관료’라는 시에서 김남주는 그 관료를 ‘개’라고 부른다. 그는 어째서 관료를 ‘개’라고 불렀을까?

    ‘사유의 의무’에서 김남주와 한나 아렌트는 제목처럼 사유는 능력이 아닌 의무라고 이야기한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유대인 대학살에 큰 기여를 한 아이히만이라는 사람은, 한나 아렌트의 말에 따르면 ‘아주 평범한 옆집아저씨’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저 철저한 무사유로 인해 홀로코스트 이후인 현재 유대인들 사이에서 악마라고까지 불리게 된다. 그렇다면 이처럼 평범한 사람을 대학살로 이끈 이 ‘사유’와 ‘무사유’는 무엇인가? 아렌트는 사유를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라고 한 반면 무사유란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사유하지 않는 것은 죄일까? 그가 ‘개’라고 불릴만큼? 우선 나는, 김남주와 한나 아렌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사유는 능력이 아니라 의무라고. 또 책임이라고. 자신의 무사유로 인해 벌어진 것은 어찌되었든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사유’할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은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역지사지’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상대방의 처지에서 먼저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 그것이 인간의 기본적 덕목이다. 그게 불가능한 사람을 사이코, 소시오패스라고 부르고, 아이히만은 사유할 수 있는 인간임에도 사유하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떤가? 그가 만들어낸 열차 안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이 죽어갔다. 가스실이 설치된 그 열차에서 말이다.

    누군가는 그가 상부의 명령을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나름 효율적이지 않았나?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죽이라고 직접 명한 적이 없으며, 그저 맡겨진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라고.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나는 당신에게도 한 번쯤 사유하는 삶을 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한 적 없고, 내 손으로 직접 죽인 적도 없다. 그저 맡겨진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다. 나는 잘못이 없다"

    이것은 재판에서 아이히만이 남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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