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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원인 감동공유 추천글
제목: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 국화와 칼
학과: 전기컴퓨터공학부, 이름: 김*환, 선정연도: 2019
추천내용: 최근 들어 우리나라와 한국간의 정치적, 외교적인 문제가 많다. 위안부, 독도 등의 문제가 끊임없이 이어왔지만 전범기업 관련 판결과 화이트리스트 관련으로 반일감정이 커지고 있다. 그들과 우리 사이의 입장 차이가 크고 그 것의 근원이 어디인가를 찾을 수 있을까. 2차 세계대전 종전 당시 서양인의 일본인에 대한 분석을 통해 알아보자.
책을 크게 관통하는 소재는 은혜를 뜻하는 "온" 그리고 정해진 위치에서 느끼는 자유를 볼 수 있다.
먼저 은혜, 온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개념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의 은혜는 고맙습니다하고 넘어가는 서로 도와주는 느낌이라면 일본에서의 온은 좀 더 깊게 들어간다. 서로 돕자보다는 도움받으면 무조건적으로 그만큼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스미마센이 단순히 죄송하다, 미안하다의 의미가 아니다. 그를 넘어서 "가타지케나이"라는 말을 뜻하게 되고 이는 모욕을 당했다, 그리고 감사하다를 의미하게 된다. 즉, 갚을 수 없는 온을 입어서 부끄럽다는 말을 내재하는 것이다. 이는 명성의 오점, 수치를 뜻하는 "기리"와도 통하게 된다.
다음으로 몇 세기 전부터 일본은 그들만의 계급인 카스트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위치에서 제한된 권리와 행동을 오히려 자유라 느끼며 지내왔고 일본 전체를 통하는 개념이 되었다. 물론 상인의 대두와 여러 사건들로 계급의 변화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들의 삶에 맞게 살아왔다. 그 이전에는 카미가제를 보고 왜 저렇게 할까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왜 저렇게 국가에 희생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점이 들 수 밖에 없었다. 그에 대한 이해점이 바로 자신의 위치에서의 행동에 있었다. 그들은 천황을 위해서 하는 행동으로 당연하게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할복을 살펴볼 수도 있었다. 다른 군주, 사무라이들에게 패배한 이상 다른 대상에게 존경을 삼는 것이 당시 그들로서 어려웠을 것이다.
그들은 왜 패배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까. 이 의문에서 이 책의 기초가 된 보고서가 시작되었다. 일본에 대한 편견없이 연구를 시작했기에 객관적일 수 있었고 넓은 숲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기에 실제 인간의 다양한 인간 군상에 대해서는 맞지 않는 구석도 있었다. 더군다나 최근 기술의 발전으로 전세계의 신세대들은 그 이전과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다. 여전히 그 시절을 살아왔던 분들이 있고 그 분들 중 일부가 정치인이라는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에 겉에서 보는 시각에서는 크게 달라졌다고 안 보일 수 있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40대, 50대 분들과 20대들과의 생각 차이는 그대로 정치인과 시민들의 생각 차이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으면서 시대적 배경을 중요시 여겨서 봤다. 60년밖에 차이가 안난다고 할 수 있으나 그 사이에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생활을 많이 바꿔왔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 이래서 지금 일본도 이럴 것이다라고 확답하는 것은 조금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들에 사용하는 말과 하는 행동들의 내재된 의미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아는 과정으로 여기도록 했다.
독후감 공모전 우수작
제목: 국화와 칼
학과: 문헌정보학과, 이름: 이*은, 선정연도: 2013
내용: 흔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칭한다.그리고 각국의 다른 나라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일본을 무시하는 유일한 나라’라고도 한다. 이렇게 지리적으로 가깝게 위치한 우리나라와 일본은 오래전부터 다양한 관계를 맺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갈등을 가지며,오늘날까지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미묘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일본과 관련한 역사를 배우고 일본의 역사왜곡,위안부 문제,독도 영유권 주장 등에 대한 행보와 우리나라의 일본에 대한 사회분위기들을 지켜봐 오면서 일본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과 약간의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적에게 이기려면 적을 가장 잘 파악해야 한다는 옛말을 떠올리며 일본사람들도 인정한 ‘일본을 다룬 가장 객관적인 고전’으로 불린다는 『일본 문화의 틀,국화와 칼』을 읽어보게 되었다.
<국화와 칼>은 1946년 완성된 책으로 미국이 일본과 제2차 세계대전을 치루면서 일본 민족의 이해를 필요로 하여 자국의 인류문화학자 루스 베네딕트에게 연구를 맡겨서 만든 보고서이다.군사적 목적으로 쓰여 졌지만,세계 각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일본학의 효시가 되었다.
이 책의 제목 ‘국화와 칼’은 그 자체로 참 인상 깊었다.일본을 확실하게 이 두 단어로 표현한 것이다. 국화는 일본의 황실을 상징한다. 일본인들은 벚꽃보다는 국화를 좋아하는데,그 이유는 다른 꽃들이 피지 않는 차가운 가을에 홀로 피는 국화는 깨끗하고 청결하고 조용하고 엄숙하고 고귀하다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칼은 일본 사무라 이 계층과 그 정신적 지주인 무사도의 상징이다. 저자는 일본 민족의 영혼 깊숙이 숨어 있는 전혀 다른 특징 두 가지를 표현하기 위해 국화와 칼이라는 상반되는 이미지의 사물을 제시했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일본인은 예의바르며 온순하고 겸허하지만 거칠고 야만스러우며,국화를 재배하는 일에 깊이 심취하는 것처럼 아름다움을 추구하길 좋아하지만 무사도와 칼의 명예에도 집착한다. <국화와 칼>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그렇게 예의바르고 착하고 겸손하고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일본 사람들 속에 무서운 칼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어느 부분 공감은 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이는 ‘부산사람들은 성질이 급 해.’,‘한국인들은 근면성실해.’라는 식의 비유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예외를 인정하지 않고 어떤 민족이나 국가를 이러한 일반화를 통해 이야기 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 않나 싶었다. 문화 인류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일본인들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행동한다.’라고 정의를 내리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이러한 시각으로 볼 때 이 책은 어떤 중요한 점들을 빠트린 것 같아 보이지만 대외 정책이 국가단위 혹은 민족단위로 이뤄지고 있는 만큼 상대방을 단순화해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당시의 집필목적과 더불어 저자가 서양인 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대단한 저작임이 분명하다.
우리는 의리를 쉽게 이해하지만 서양인들은 의(義),충(忠)과 같은 것들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서양 사람들은 동양의 상하 질서,종횡 구조를 잘 이해하지 못 한다.또한 서양 사람에게는 형제라는 개념이 없고 우리 역시 서양의 평등 개념이 없다.물론 서양인에게도 로열티(royalty)라는 것이 있지만 우리의 충(忠)이란 인간 개념과는 다르다.서양인들의 인간관계는 완전한 기브 앤 테이크(giveand take)이다.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따라서 베네딕트가 충과 효, 의리,은혜 사상을 밝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동양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려면이 은혜 사상을 이해해야 한다.
저자인 베네딕트는 책을 쓸 당시 현지 조사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자료들,예컨대 영화, 소설, 잡지나 일본 포로들과의 대화만을 통해 일본의 민족성을 구체적으로 이해했다.이를 계기로 인류학의 연구 대상이 대중 문화,잡지,신문,영화에 까지 미치게 되었는데 이 또한 저자가 남긴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은 일본의 ‘온’에 대한 설명이었다.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한국 역시 일본의 상당한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비슷한 걸까 아니면 같은 유교권이라서 비슷한 걸까 일본과 완전 똑같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도 분명히 과거에, 윗사람에, 주위사람에 대한 부채의식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일본만큼 심한 것은 아니지만 ‘고맙다.’라는 말과 함께 ‘미안하다.’라는 말을 나란히 사용하는 일이 빈번한 것도 그런 차원의 문제일 것이다.그런데 일본에서의 이 ‘온’이 때로는 ‘내가 친절을 베풀면 상대방이 나에게 빚을 지게 되니까 위험하다.’혹은 ‘내가 친절을 베푸는 것은 상대방에게 모욕을 주는 일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새로웠다.이와 관련하여 책의 본문에서는 아래와 같이 서술하고 있다.개인적으로 책을 덮은 후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이다.
일본인은 이웃 사람이나 예부터 정해진 계층적 관계에서는,‘온’을 받는 번거로움을 알면서도 기쁘게 그 번거로움을 받아들인다.그러나 상대가 단순히 아는 사람이거나, 자신과 대등한 사람인 경우에는 ‘온’을 받는 것을 매우 불편하게 생각한다.일본의 거리에서 무슨 사고가 일어났을 때,모인 군중이 수수방관하는 것은 단지 자발성이 없어서가 아니다.그것은 경찰이 아닌 민간인이 제멋대로 참견하면,그 사람에게 ‘온’을 입히는 행위가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p.145)
이 책이 꽤 오래전에 쓰인 책이고 세월이 흐르면서 문화와 정서는 바뀔 수밖에 없으므로 지금의 일본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읽어 내려갔지만, 이 부분은 나의 경험에 비추어 공감되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더 인상 깊게 다가왔다.몇 년 전,일본인과 한 조가 되어 같이 수업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하루는 그 친구가 수업자료를 가져오지 않아 내 자료를 빌려주었던 적이 있었다.그 이후로 일본인 친구는 고맙다며 매시간 마다 나에게 과자와 음료수 등을 건네주었다. 당시에는 그 친구를 마냥 착한 친구라고 생각하며 넘어갔었는데,그것이 바로 이러한 ‘온’을 갚고자 했던 일이 아니었나 싶다.
‘온’의 반대의무인 ‘기리’에 대한 내용은 아직까지도 유효한 과거사 반성에 관한문제와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었다.‘기리’는 자신이 받은 은혜와 같은 수량만을 갚으면 되고,또 시간적으로도 제한된 부채를 말한다.그 중 ‘이름에 대한 기리’는 명예의 일본식 변형이라고 하는데,자신의 실패나 전문적인 일에 대한 무지를 인정하지 않는 의무를 포함한다.
예를 들면 한 교사는 ‘나는 이름에 대한 기리 때문에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없다.’라고 말하며,외교관은 자신의 이름에 대한 기리 때문에 외교정책이 실패 하더라도 그것을 인정하지 못한다.이처럼 일본에서 기리를 통해 한 인간과 그가 한 일은 극단적으로 동일시되고 있다.따라서 사람의 행위나 능력에 대한 비판은 그 자신에 대한 비판이 된다.이는 곧 일본인들이 과거를 정당화하려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자기 자신과 과거의 행동을 동일시하는 일본인은 자기 자신을 바꿔야할 필요가 생겼을 때에만 과거의 행동 양식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수정한다는 것이다.
막부 말기 사쯔마 지방이 영국 군함의 공격을 받았을 때,그들은 적들의 강대함에 압도당했다.그들은 적에게서 배워야만 자신을 적과 같이 훌륭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그들은 쇄국 정책을 포기하고 적과 당장 우호관계를 맺어 그들의 문물을 받아들였다.또한 일본은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에게 패배하자,자신들이 추 구했던 군국주의 노선을 버려야 함을 깨달았다.그들은 자기 자신을 바꾸어야만 했다.따라서 그들은 미국과 우방이 되어 그들이 제시한 모든 변화를 받아들였다. 또한 과거의 일본해군을 격파한 이순신 장군을 제단에 모시고 참배하며 자신들의 군신으로 모시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역사적 사실로 미루어볼 때,일본이 자신의 사고방식이나 행동 양 식을 바꾸는 것은 단 한 가지 경우밖에 없다.자신들보다 훌륭한 상대방에게 크게 압도되었을 경우.그러니 만일 우리가 일본의 태도를 바꾸고자 한다면 목소리만 높이기보다 각자의 분야에서 실력으로 그들을 압도하는 방법밖에는 없다.즉 국력의 강화나 국격을 높이는 일은,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기 위한 필요조건이 아니라 충분조건인 셈이다.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진정성이 담긴 사과는 그들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날-에 이르러서야 되어서야 받을 수 있을 것이다.언뜻 그런 조건에 의한 사과는 진정성이 담긴 것이라고 보기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마지못해 하는 거라고,분명 속으로는 인정을 하는 게 아닐 거라고.
하지만 2차 대전의 패전국인 일본은 연합군의 상륙에 전혀 저항을 하지 않았다. 도리어 자신들에게 패배를 선사한 적이었던 그들을 환송해주는 분위기였다고 한다.전쟁 중에는 자폭공격도 서슴지 않았던 나라에서,연합군들은 전에 없이 안전한 점령기를 보냈을 것이다.일본인들의 환송은 연합군의 어떤 방심을 유도하기 위한 전략도,구밀복검하고 절치부심하는 분노도 없는 그야말로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동인 것이다.
<국화와 칼>이라는 이 책의 제목만큼이나 이중적이고 상반된 그들의 변모는 이 해하기 힘들긴 했지만,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을 비판하면서도 국격을 상승시 키는 것보다 권력 또는 이익을 취하기 위한 싸움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듯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떠올리며 경각심이 들었다.
그리고 한 가지 인상 깊게(혹은 아니꼽게)보았던 점은 ‘모든 것을 제자리에 두고자’하는 일본인들의 태도를 서술하는 루스 베네딕트의 관점이었다.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모든 것을 계층화 시켜 각기 제자리에 두는 것이 옳다는 자신들의 생각을 세계에 강요하고자 했다고 한다.그들의 ‘제자리’에서 일본은 가장 위에 존재하였으며 그들의 기준에 따라 다음 나라들이 위치해 있었다.저자는 이에 대해서 그들이 다른 나라에 이런 것을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었고 때문에 다른 나라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말한다.당연한 얘기이다.그런데 내가 이 부분이 아니꼽게 느껴졌던 점은,저자는 이것을 서술하면서 평등과 자유를 추구하는 미국인들이 볼 때 이것은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서술했는데 그런 행동을 현대의 미국 역시 하고 있기 때문이다.70년대에 겪은 두 번의 오일쇼크와 베트남전쟁 패전 등으로 자신들의 패권이 흔들릴 위기에 처하자 미국은 국제질서가 안정하려면 패권국인 미국을 잘 따르라는 ‘패권안정론’이라는 이론을 급하게 만들었다.이는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생각과 다른 것이 없다.비록 이것은 책이 발간된 시기보다 이후의 일이지만,‘미국인들은 그렇지 않은데 일본인들은 그러하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저자의 서술이 이러한 점들을 모두 숙지하고 있는 지금의 내 입장에서는 신뢰가 가지 않았고,책의 곳곳에 서양이 동양보다 우월하다는 뉘앙스를 많이 담고 있어 아쉬웠다.물론 저자가 서양인이고,이 책은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이 일본을 완벽히 분석하여 정복하기 위한 용도로 집필되었다는 점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이번 학기 수업시간에 들었던 고전의 가치에 대해 되짚어보면서,비록 적의 입장에서 군사적인 용도로 만들어졌고 개인적으로 비판적인 관점에서 바라봤던 부분도 있었지만,읽는 내내 오늘날까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이렇게 국민성의 세세한 항목까지 구체적으로 서술해놓은 대표적인 고전이 있다는 점에서 일본에 대한 부러운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일본인들도 이 책의 내용을 인정하며 자국의 역사연구에 참고한다는 점을 보면 그들도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리라.그리고 비약일지는 모르지만 이런 부분에서 나온 그들의 자부심은 요즘 국제사회에서 일본이 보이고 있는 굳건한 자신감의 토대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실 대부분의 고전이 그러하듯 시대가 변하면 그 시대에 걸맞은 해석이 필요하다.오늘날에는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지기 힘들어 과거의 명성으로, 또는 일부분의 공감으로 읽히는 고전들도 있다.‘국화와 칼’이라는 고전은 분명 당시의 일본을 철저한 자료를 바탕으로 최대한 객관적으로 평가한 훌륭한 책이다. 다만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제하더라도 급속히 발전하는 오늘날의 모습에 완전히 접목시키기에는 한계가 따른다.그렇다고 해서 고전의 가치가 퇴색 된다기보다 다른 각도에서,다른 부분에서 공감대를 찾아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오늘날 ‘국화와 칼’을 제대로 읽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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