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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공모전 우수작
제목: 누가 이들의 이웃이 되겠느냐
학과: 사학과, 이름: 이*실, 선정연도: 2021
내용: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책을 집은 거야.'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스스로 의 선택에 의문을 표했다. 부산대 도서관에서 올해의 책 여섯 권의 리스트가 발표됐을 때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책은 올 초부터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린 SF소설이었다. 인기도 많고 재미도 보장된 도서라 마음이 끌렸다. 다음으로 보인 건 AI를 주제로 세계 석학들의 통찰을 담은 과학 교양서였다. AI는 근래 전 학문 분야의 관심이 쏠리는 뜨거운 소재가 아닌가. 이 두 도서 중 하나를 고르리라 마음먹고 집을 나섰다. 웬걸, 두 도서 모두 동이 났다. 오 분 동안 낯선 네 권의 책을 뒤적이다 끝내 제목만 슬쩍 본 이 책과 함께 찝찝한 마음으로 도서관을 나왔다. 난 왜 이 책을 선택할걸까?
단지 재미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리란 낮은 기대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난민 수용 반대자다. 또 이주 노동자 문제에 대해 자국민의 권익을 더 중시하는 방어적인 정책들을 지지했으며, 다문화 가정에 대해서도 아직은 낯설다는 막연한 느낌만 가져온 토종 한국인이었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내게는 이주민들이 가슴에 품고 오는 타종교와 문화가 내 종교와 갈등을 빚으리란 확신 비슷한 것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 책이 끌린 이유는 표지에 적힌 ‘아이들’과 ‘아동’이라는 단어 때문이었으리라. 지금껏 내 머릿속이주민 이미지는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아니면 내 또래 정도의 남성들로서 한국에서 번 돈을 고향으로 송금하며 끼리끼리 모여 꺼림칙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이들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아이를 낳는다면, 그대로 한국에서 기른다면, 그 아이들이 한국어를 유창하게 말하고, 한식을 좋아하며, 방과 후 한국 애니메이션을 보며 깔깔댄다면, 그 아이들은 누구일까. 짧은 순간에도 그들을 차마 이방인으로 규정할 순 없었다. 혐오와 편견 그리고 아이들을 향한 연민이 실타래처럼 엮긴 채‘있지만 없는 아이들’탐독이 시작되었다.
미등록 이주아동들의 존재를 몰랐고 우리 사회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우리의 이웃들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해왔다. 그저 종교적 신념과 약간의 무관심을 바탕으로 그들을 이방인으로 여겼을 뿐이었다. 등잔 밑은 어두웠다. 듣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곳에 목소리는 있었다. 이 글을 통해 늦게나마 알게 된 미등록 이주아동들의 이야기를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진정한 종교생활이란 무엇인가와 대한민국의 희망에 관해 생각한 것들을 나누고 싶다.

은유작가는 총 아홉 명의 대상자를 인터뷰하고 그들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정리했다. 미등록 이주아동 다섯 명과 이주아동 부모 한명, 그리고 이들을 돕는 이주인권활동가 두 명과 변호사 한 명이 이야기에 참여해 이주아동들의 어려움과 이들을 돌보는 현실을 생생하게 전달해 준다. 미등록 이주아동에 관해 전혀 알지 못했던 나와 같은 이들도 쉽게 이해하도록 친절한 설명이 곁들여진 덕에 무리 없이 읽어 나갈 수 있었다.
우선 놀란 건 이들의 규모였다. 우리나라에 미등록 이주아동은 무려 이 만. 작년 기준 부산대 전체 재학생 수가 20,502명이라고 하니 딱 부산대 재학생 정도의 규모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숫자의 아이들이 부모를 따라 이주했거나 대한민국 땅에서 태어났고, 그저 보호되지 않는 수준이 아닌, 주민으로 등록조차 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보통 아이들이 불이익을 받는다면 부모가 나서 보호자가 된다. 그러나 이들의 부모는 자녀들이 겪는 문제에 개입조차 어렵다. 부모 또한 ‘미등록’이주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스스로를 드러내면 불법체류자임이 드러나고 추방까지 감수해야 한다. 사정이 이러니 이들은 겨우 초등학생만 되어도 오히려 사회적 소외와 싸우는 동시에 부모의 통역까지 맡아야 한다. 이들의 존재는 꾹꾹 눌러지고 당면한 다수자의 문제에 소리도 없이 밀려나 켜켜이 쌓이고 쌓여 이만 명에 이르게 되었다.
이 아이들은 국민으로서 태어난 것이 아니기에,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살면서 마주치는 수많은 갈등 앞에서 그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간곡히 부탁하거나 눈치를 보고 좌절하는 일을 일상처럼 겪는다. 몽골 국적의 부모가 한국에서 낳은 마리나는 의료보험이 없어 아파도 참는다. 한국에서 태어나 나이지리아 부모를 둔 페버는 신분증이 없어 축구선수의 꿈도 해외 스카우트 기회도 접어야 했고, 신분증명이 필요한 자격증 시험을 볼 수 없었다. 이란인 아버지를 따라 일곱 살에 한국에 입국한 이민혁은 휴대폰개통이나 은행업무를 볼 수 없어 난처할 때가 많았다.
이 아이들이 불법체류자임이 노출되면 어떻게 될까. 설마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말 하나 통하지 않는 곳으로 한국에서 초등학교까지 나온 청소년을 기어이 돌려보낼까? 하지만 현실은 더 냉혹하다. 이민혁은 일곱 살부터 한국에서 살았지만 열여섯에 대법원으로부터 ‘2주 안에 한국을 떠나라’는 선고를 받는다. 페버는 19살 때, 유리 공장에서 잡혀 보호소에서 50일을 잡혀있었다. 대부분 보호소에서는 길면 일주일 안에 본국으로 송환되는데 페버의 경우는 특수했기에 50일이라는 긴 시간을 잡아둔 것이다. 강제 출국당하는 어른들을 보며 페버는 감히 자신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었다. 몽골 학생 민우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경찰서에서 비자가 없는 것이 드러났을 때, 10월 1일에 잡혀 불과 4일 만인 10월 5일 강제 출국을 당할 뻔했다. 주변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출국은 무마 되었지만 이 아이들의 삶은 언제고 어른들이 너의 본국이라 일컫는 나라로 돌아가야 할지 모르는 조마조마한 생활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나고 자란 이 아이들에게 부모님의 모국은 생각지도 못한 낯선 나라일 뿐이다. 그렇게 강제로 ‘외국’에 내던져진 아이들이 아무런 기반도 없이 살아가도록 하는 일은, 한국인 청소년을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낮은 나라에 혼자 내버리는 일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책에 나오지 않은 아이들은 저런 상황을 삶으로 겪었으리라. 꽤 많은 관심을 받았고 적극적인 도움으로 난민인정이나 체류자격을 얻은 책 속의 아이들과 달리, 많은 아이들이 한국에 살다 며칠 새 추방당했다. 미등록 이주아동도, 아이의 부모도. 가장 힘들게 여기는 건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이다. 세금도둑, 이슬람교를 향한 혐오, 범죄자라는 낙인과도 같은 시선들을 이미 아이들도 알고 있다. 그래서 친구들과도 거리를 둬야했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신의 정체가 밝혀질까 조마조마한 삶에 갇혀 살 수 밖에 없었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주 노동자들이 몇 십 년을 살아갈 수 있었다는 건, “한국도 이 사람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라고 이탁건 변호사는 말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지방 곳곳의 생산 공장들이나 광업, 농축산업 등의 분야에서는 외국인 근로자가 없이는 사실상 운영이 어려워 생산이 중단될 수준이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아동의 경우는 심사를 통해 체류자격을 부여한다. 유독 한국은 엄격하게 작년까지 심사도 없이 획일적으로 강제퇴거명령을 내렸다. 작년 저출산 예산 42조를 집행하며 아이 한명 한명을 소중하게 생각하겠다는 나라가 대부분의 삶을 한국에서 보낸 아이들을 내쫓고 있다니. 안타까운 자가당착이다.

그러나 책 곳곳에는 정직한 이들이 내뿜는 빛이 있다. 위기 속에 아이들에게 손을 내민 사람들. 이주민들의 산후 조리를 돕고, 입학을 거절당한 아이를 데리고 교장실을 두드리고, 성인이 되면 본국으로 소환될 거라 삶을 포기한 아이들에게 꿈을 가지도록 붙들어 주는 활동가들. 딱한 사정을 듣고 학교 학생들과 함께 국민청원과 피켓시위를 진행한 선생님. 미등록 이주 아동을 받기 위해 여기 저기 수소문한 청소년 방과 후 아카데미. 탄원서를 함께 모아주고 집까지 찾아와 살펴주며 본국을 떠난 이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 추천하는 그 곳, 교회. 이들을 돕는 교회를 보며 나의 신앙생활과 확연한 이질감을 느꼈다. 나의 마지막 봉사활동은 쉼터에 사는 중학생의 수학과외를 해주는 일이었다. 벌써 6년 전이다. 종교인으로서의 사명감과 받은 사랑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동기였다. 그 이후 바쁘다는 핑계와 종교생활의 기본은 집회 참석과 성경읽기라는 핑계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일을 계속 미뤄왔다. 빛을 어두운 곳에 비춰주지 않으면 사람은 어두운 곳을 잘 모르게 된다. 잘 모르면 무작정 꺼리고 멋대로 판단하게 된다. 잘 모르는 것을 미워하는 일은 너무나 쉽다.
예수가 준 교훈에 비추어, 나와 행동하는 교회의 차이를 비교해 보았다. 아주 유명한 비유다. 종교학자 한명이 예수에게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지 물었다. 예수는“신을 마음 다해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꽤 유명한 말로 답한다. 학자가 다시 질문한다.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이어 예수는 비유로 답하는데 그 비유가 흥미롭다. 어떤 사람이 여행길 중 강도를 만나 재산을 다 뺐기고 맞아 거의 죽기 직전에 버려졌다. 종교지도자와 유대교 사제가 그를 보고 방향을 바꿔 비켜갔다. 이어 이방인 혼혈이라 멸시받는 사마리아인이 쓰러진 자를 발견하고 가엾은 마음이 들어 응급조취를 한 뒤, 여관에 비용을 지불하며 부탁하는 이야기다. 동족인 유대교 사제와 종교지도자보다 이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말로 이웃이라 부르기에 알맞은 사람이고, 사마리아인처럼 남들에게 행하라는 말로 교훈은 끝난다. 진정한 신앙은 눈앞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를 절대 내버려두지 못한다. 나는 그동안 신앙인의 허울을 쓰고 예수의 가르침을 따른다며 자부해왔다. 또 그 가르침을 외우고 남들에게 전파해 왔지만 정작 말씀을 내 삶에 어떻게 적용시켜야 할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난민도 아닌 이미 우리나라 안에서 태어난 아이들조차 품지 못한다면 누가 나의 이웃이겠는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내 권익이 침해당할 까봐 시간과 비용을 들여 내 몫을 나눠야할 까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모른 체 한다면, 강도만난 유대인을 버려두었던 그의 동족들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작가는 로버트 D 퍼트넘의 말을 빌려‘얼굴을 내밀어주는’의지할 만한 어른되어 달라 요청한다. 이는 빛이 필요한 사람에게 빛을 비추어 보게 해주고, 소금을 주어 맛을 느끼게 해주고, 먹이고 마시게 하고 입히라는 직접적인 선행을 베풀라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있지만 없는 아이들’에게 나는 ‘있지만 없는 어른들’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만 볼 뿐, 어떠한 관심이나 도움도 주지 않은 채, 집에서는 불법체류자의 문제에 대한 뉴스를 보며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에 불만을 표하는. 수많으면서도 하나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존재하면서도 부재하는 모순적인 인간이었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우연히 이 땅에 태어난 행운을 권리라 부르며 결단코 나눠주지 않으려 하는, 그 집단적 이기심의 일부로서 더해져 부풀어 올라 이 땅의 변두리에 내몰린 아이들을 끝내 밀쳐내 버리고 마는, 무형무체의 압박으로서 가해졌던, 없지만 있는 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어쩌면 없지만 있는 한 어른이었을 것이다.

‘있지만 없는 아이들’은 가슴에 묵직한 메시지를 얹는다. 약자들을 돕지 않은 행동은 게으름이나 부족한 여건 때문이 아니라 이기심에 불과함을, 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핑계는 정말 몰랐던 게 아니라 애써 무시한 결과임을. 모순, 무엇이든 뚫는 창과 무엇이든 막는 방패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듯이, 존재와 부재의 속성을 동시에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아이들은 사회, 복지적 제도의 시선에서 부재하지만 분명히 실존한다. 또 나와 이들의 거리는, 이웃이라 부를 만큼 가깝다. 나는 이 이웃을 어떻게 여기고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나는 예수의 말씀에 가책을 느꼈지만, 신앙이 없는 이들도‘있지만 없는 아이들’이 분명한 우리 이웃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우리 함께 이 아이들의 선한 이웃이 되자. 우리가 할 일을 외면하고 묵인하지 말고, 다친 이웃을 연민하며, 이해와 다양성의 다음 세대를 열어나가자.
독후감 공모전 우수작
제목: 슬픔을 발견하는 눈에서 연대하는 손으로
학과: 예술문화영상학과, 이름: 김*진, 선정연도: 2021
내용: 내 주변에서 미등록 이주민을 본 일은 없는 것 같다. 오다가다 마주친 사람 중 섞여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이들을 그냥 지나쳤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이 책을 본 이후 에야 하게 됐다. 그들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니 이제서야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이슈를 볼 수 있게 됐다. 얼마 전 서울에 있는 친구집을 놀러 갔다가 횡단보도 앞에 걸린 현수막에 걸음이 멈췄다. ‘불법체류 외국인도 비자확인 없이 무료로 검사가 진행되니 안심하고 코로나19 검사받으세요.’라는 문구 때문이다. 이 말은 불법 체류 외국인이라 면 안심하고 코로나 19 검사도 받을 수 없던 상황이 기본이었음을 드러낸다. 정부가 불법체류외국인 통보 의무 면제 제도를 실시하며 코로나 확산을 방지하고 그들을 보호 하려는 방책을 냈지만, 이는 당장의 불길만 끄기 급급할 뿐이지 않은가 생각했다. 횡단 보도를 건너 친구의 집에 도착할 때까지‘불법체류’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탁건 변호사는 책에서‘불법체류자’라는 용어가 제공하는 고정관념을 지적 한다.“‘불법체류’라는 말이 애초에 법을 어긴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요. 존재 자체가 불법이니까 또 다른 불법도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하죠. 영화를 비롯한 대중매 체도 부당한 이미지 형성에 기여하지 않았을까요.”
리베카 솔닛은『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에서“무언가를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는 행위는 무대책・무관심・망각을 눈감아주고, 완충해주고, 흐리게 하고, 가장하고, 회피 하고, 심지어 장려하는 거짓말들을 끊어낸다. 호명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호 명은 분명 중요한 단계다.”라고 얘기한다. 저 현수막에는 불법체류 외국인이 아니라 미등록 이주민이라고 적혀야 한다. 이전에는 생각하지 않았을 일이다. 내가 전이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을 발견하고, 생각하고, 걸음을 멈추게 만든 책 <있지만 없는 아이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은 미등록 이주아동과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겪는 현실을 다룬다. 사실 이주노동자가 겪는 차별 문제를 여태 한 번도 듣지 못하고 살았던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괴로움과 고통을 겪는지는 잘 알지 못 할 거다.
2002년 몽골에서 부모님을 따라 7살에 한국에 들어온 민우는 미등록 이주청소년이라 는 이유로 10년을 살았던 나라에서 부모님과 떨어져 홀로 쫓겨났다. 사건은 2012년에 일어났다. 민우가 알고 지내던 몽골 아이들 중 하나가 몽골로 돌아가게 돼서 송별회를 하던 중 지나가던 한국 청소년들이 욕을 했다. “몽골 새끼,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시비가 붙어 한국 아이들과 몽골 아이들이 싸움이 났고 민우가 옆에서 싸움을 말리는 사이에 누가 신고를 했다. 경찰이 오자 다른 애들은 다 도망가고 민우만 잡혀갔다.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민우는 비자가 없는 게 드러나 바로 다음 날 외국인 보호소로 이송되어 구금됐다. 경찰에 잡힌 날짜가 10월 1일이었고 민우는 사흘만인 10월 5일 강제출국을 하게 됐다. 민우의 담임선생님은 추석 연휴가 끝나고 학교에 가자 민우가 없어서 민우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담임선생님이 경찰에 연락하자 경찰이 민우가 외국인보호소에 있다고 알려줬다. 추방 예정인 사람과는 면회가 되지 않지만, 선생님이 항의하여 외국인보호소 측에서 선생님과 민우를 만나게 해줬다. 다음날 인천공항으로 간 선생님은 승합차에 앉아있는 민우를 보았다. 민우는 같은 몽골행 비행기를 타고 갈 사람들끼리 도망가지 못하게 수갑을 엇갈려 차고 나란히 앉아 있었다. 많이 먹으면 화장실 간다며 하루 종일 먹을 걸 안 줘서, 새벽 일찍 나올 때 빵 한 조각 먹고 자기가 타고 갈 비행기가 올 때까지 온종일 승합차에서 대기했다고 한다. 민우를 보내고 민우의 담임선생님은 몇몇 단체를 찾아가며 상담했고, 사회단체의 노력으로 민우는 어렵게 정부의 입국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재학 중인 미등록 이주아동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동과 부모를 추방하지 않고 교육권을 보장한다는 방침이 만 들어졌다.
나와 나이가 같은 이주아동 페버는 한국에서 태어나 9년간 합법적으로 살았지만, 2008년 아버지가 본국인 나이지리아로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면서 가족의 체류자격이 상실됐다. 페버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유리 공장에서 일하던 중, 불시단속을 피해 도망 치다가 잡혀 청주외국인보호소로 구금됐다. 보호소에 있는 동안 페버는 제대로 된 의 료적 조치도 받을 수 없었다. 천식을 앓고 있는 페버를 위해 어머니가 보호소로 호흡 기약을 전해 주었지만, 일주일 넘게 그 약을 받을 수 없었다. 보호소에서는 일주일에 한두 번 오는 의사에게 약을 확인하고 나서야 전달받을 수 있는데, 그주에 의사가 오 지 않아서 일주일 넘게 페버에게 약을 주지 않은 것이다. 페버는『동아일보』의‘그림 자 아이들’ 보도 후 시민 1,650명에게 탄원서를 받아 극적으로 석방됐다. 페버는 비자 가 생기고 나서야 학교 수업 과제를 이메일로 보낼 수 있고, 운전면허도 딸 수 있게 됐다.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일들이다. 아직 보호받아야 할 학생을 강제로 추방하고, 추방하는 과정에서도 반인권적인 행위들을 행한 국가가 내가 살고 있는 나라가 맞나 싶어 머리가 얼얼하다. 이 사람들의 고통이 어떤 깊이를 가지는지 알게 된 이상, 사람 은 그렇게 살 수 없다고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대하냐고 분노했다.

미등록 이주아동들이 겪는 어려움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조차 발생한다. 본인 명의의 핸드폰 개통이 어렵고, 봉사 사이트 1365자원봉사포털에 가 입하지 못하고, 티켓 예매 사이트 회원 가입이 안 돼서 좋아하는 아이돌 콘서트에 가지 못한다. 친구들과 떡볶이를 사 먹고 엔 분의 일을 할 때도‘계좌이체’를 할 수 없어 현금을 꺼내야 한다. 의료보험도 되지 않아 감기에 걸리면 그냥 참아야 한다. 그동안 이 아이들이 겪는 고통을 알지 못했고, 이제와 알게 되어 마음이 답답해진다. 그 고통을 알게 된 나는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 하다”

레프 톨스토이의 『 안나 카레니나 』 의 유명한 첫 문장이다. 하지만 나는 불행에서 어 떤 비슷한 흐름을 본다. 그 불행은 내가 겪는 고통과 비슷한 결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 인다. 나 또한 항상 들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 목소리를 내야 할 사람이 되기도 하는 지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이 교차점에 존재하는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 는 능력을 이미 가지고 있다.
어떤 이들은 알면 고통스러우니 차라리 모르겠다고 얘기한다. 우리는 타인의 슬픔에 빚지며 살고 있지만, 그 사실을 모르거나 또는 외면하며, 그 슬픔을 누구에게 빚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더러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자 해야 한다. 고통스러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타인의 고통을 더 들여다볼 수 있도록. 우리는 용기 내서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마땅히 고통스러워해야 할 때 고통스러워하며 슬퍼해야 할 때 슬퍼함을 우리는 용기라고 부른다. 타인의 슬픔에 값싼 동정을 얹는 일이 두려워서 아예 말하지 않기보다, 연대의 방법을 알고자 용기 내는 일이 내게 첫 번째 문턱처럼 느껴졌다. 수잔 손택은 자신의 저서 『 타인의 고통 』 에서 이렇게 말 했다.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 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는 셈이다. 따라서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우리가 상상하고 싶어 하 지 않는 식으로,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다.”
짧은 연민을 넘어서야만 슬픔을 발견하는 눈에서 연대하는 손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 이다. 그들의 슬픔이 나의 슬픔으로만 남지 않게 하기 위해서, 쉬운 동정과 시혜를 넘 어서 그들의 생존권과 존엄성에 대한 사유가 필요하다. 존재를 인식하는 일부터 언어를 시정하는 일로,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작은 목소리라도 보태는 일로 나아가야
한다. 오랫동안 미루어져 왔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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