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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공모전 우수작
제목: 복잡한 게 아니라, 복잡하게만 보는 거야
학과: 경제학부, 이름: 황*성, 선정연도: 2019,
내용: “경기는 호황인 게 좋을까요, 불황인 게 좋을까요?” 한 경제학 교수님이 수강생들에게 물었다. 내가 신입생일 때 다른 교수님도 같은 질문을 하셨고, 그때 나는 속으로 ‘호황’이라는 답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뚱맞게 “균형이 좋습니다.”라는 말씀을 하셔서 당황했는데, 지금은 당연하다는 듯이 질문의 답으로 ‘균형’을 떠올린다. 두 교수님 모두 반쯤은 농담이라는 듯 웃으며 말씀하셨지만, 나는 그 답이 일말의 진리를 담고 있다고 여겼다. 사실상 정부는 경제 안정, 한국은행은 금리·물가 안정을 말했고, 내가 보기에 모두가 불확실성을 피하고 위험을 줄이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균형’이라는 상태는 내 삶을 고민할 때에도 그럴듯해 보였고, 지향점으로 삼았었다. 심리학 교양 수업에서 자신의 일생을 감정의 높낮이로 나타내는 활동을 했던 적이 있다. 그때 가파르게 오르내리는 곡선을 보며, 어떤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게 ‘내적 균형’을 유지하는 삶의 자세라고 여겼다. 주식 시장이 올라가면 거품이 터질까 불안하고, 내려가면 공황에 빠질 것 같아 두려운 그 마음을 덜어내는 게 행복의 열쇠라고 여겼다. 그러나 마음가짐만으로는 그 열쇠를 지키는 게 어려웠다. 나를 탐구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음에도, 내 마음은 변덕을 부렸다. 세상 돌아가는 원리를 알면 더 의연해질 거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잡다한 지식들을 쌓아갈수록, 오히려 너무 복잡해서 알 수 없는 영역이 많다는 인상이 강해졌다. 그러던 중『복잡하지만 단순하게』(닐 존슨)가 ‘지금 당장은 알 수 없는 영역을 대하는 방식’을 보여줬고, 나는 고민 해결의 실마리를 얻었다.
책이 사실 그대로 보여주는 현실 세계는 복잡한 요소가 여러 갈래로 얽혀 있다. 회사원 A와, 그가 다니는 회사, 그가 속한 사회 모두 단일한 개체이기도 하면서 시스템이기도 하다. 책은 이들을 복잡계라 부르며, 복잡계 연구가 내놓은 성과를 간략하게 소개한다. 예컨대, 당신이 회사원 A를 부하로 두고 있는 상사라고 하자. A가 서류 정리를 당신의 마음에 들게 해낼지 여부는 예측하기 어렵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가 산재하고 있어, 복잡해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연구를 통해 서류 정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를 단순화할 수 있다.
우선 A의 서류 정리가 매일 동일한 패턴을 보이는지, 그렇지 않다면 질서와 무질서 중 어디에 가까운지, 얼마나 자주 질서와 무질서를 오가는지의 순서로 그의 작업 방식을 분석해본다. 그러면 그의 행동, 그와 관련된 변수의 영향과 같이 크게 두 가지로 분리할 수 있다. 이제 시스템의 오류를 유발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A에게 제약을 가하고, 당신이 원하는 상태로 결과를 유도할 수 있다. 변수의 영향을 줄이고 A의 행태를 편향되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조향 효과라고 하며, 개인의 행동양식뿐만 아니라 사회 시스템에도 적용할 수 있다.
처음에 나는 이와 같은 복잡계 연구 결과가 ‘성과’라고 할 만한 것인지 의아했다. 언제나 상황의 원리를 완결되게 설명하고 명료한 해답을 내놓는 수학의 방정식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수학을 사용하는 모든 자연·사회과학이 그렇듯, 일련의 가정과 실험을 통한 가설의 검증은 복잡계학 또한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과학 이론서가 설명하는, 물체 및 현상의 본질과 원리는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원천에 대한 논의는 접어두고, 시스템에 내재한 상호작용에 초점을 두었다. 분석 결과는 결코 단순한 사실이 아니었고, 미완의 결론이라는 점은 또 다른 복잡성이 존재함을 시사했다.
미적지근한 결론이 주는 아쉬움과 함께, 복잡계학과 내가 배운 경제학을 비교해봤다. 내게 경제학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풀고 나면 만족할 만한 결론을 주기 때문이었다. 주류 경제 이론은 합리적인 개인을 기본 가정으로 삼고, 이들이 사적으로 행한 선택이 사회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최적의 상태가 달성된다고 말한다. 애덤 스미스(A. Smith)가 지적한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을 ‘균형’상태로 이끈다는 조화론이 전제가 된다. 그 덕택인지 신기하게도 개인의 최적 선택, 부분 균형, 전체의 균형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는 세계가 존재한다. 맨눈으로는 그 세계를 관찰할 수 없지만, 수학으로 증명되는 경제학 이론 체계를 통해 조화로운 세계를 포착할 수 있다. 반면 복잡계가 보여준 세상은 채색 없이 밑그림만 겨우 그려진 상태였다.
이와 같은 완결성은 내가 경제학을 배우게 만든 가장 큰 매력 요소였지만, 차츰 그 색이 바랬다. 경제학은 이론이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렇지만 이론을 통해 보는 세계와 맨눈으로 보는 세계를 비교함으로써, 현실을 분석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봤다. 문제는 그 비교가 상당히 많은 데이터와 아직 내게는 외계어 같은 통계 처리 과정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경제학은 단지 세상을 ‘빨간색 아니면 파란색’으로 보여줄 뿐이었다.
경제학을 비롯하여 나를 탐구하기 위해 배운 심리학, 인문학 등의 지식 모두가 그런 모호함을 안고 있었다. 지식을 배울 때는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고, 경이롭다고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경이감과 함께 불어난 기대는, 그 지식을 현실에 적용할 때에는 거의 충족되지 못했다. 예컨대 계획대로 살자는 다짐이 3일 만에 무너지는 내 행태는, 부족하게 취한 수면, 어젯밤 자기 직전에 먹은 야식, 편하고자 하는 욕구 등 많은 요소가 원인이 될 수 있었다. 굳이 무엇이 주된 원인이었는지를 찾는 일은 불가능할뿐더러, 과도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했다. 흔들리지 않으려면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일순간의 나조차 설명되지 않아 답답했다.
정리해보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복잡계학도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불만족스러운 것이었다. 다른 학문이 이론적인 완결성을 띰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론과 현실의 간극을 메울 수 없었던 반면, 복잡계학은 완결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는 차이가 있다.
그런데 복잡계학에 대한 실망은 오래가지 않았고, 새로운 기대가 생겼다. 책은 복잡계 연구의 방법론을 소개하는 한편, 그런 연구 사례를 통해 현실 세계를 복잡계라고 볼 수 있음을 증명한다. 세포의 운동부터 인간의 선택, 사회의 움직임 모두를 0과 1로 구분할 수 있다. 인간이 내린 0과 1 사이의 선택은 사회적 연결망을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사회적 선택으로 통합된다. 통합의 과정에서 개인이 가진 특수성이 상쇄된다. 따라서 개별 요소의 본질·원천에 대한 고찰 없이, 상호작용과 되먹임(Feed-back) 현상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전체적인 움직임을 분석할 수 있는 것이다.
0과 1이라는 구분은 언뜻 양자택일의 문제로 보이지만, 관찰 이전에는 혼재하는 것일 수 있다. 복잡계 연구는 양자역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양자는 관찰 이전에는 그것이 존재하는 형태를 명확히 규정할 수 없다. 예컨대 빨간색일 수도 있고, 파란색일 수도 있는 것이다. 양자 간에 나타나는 얽힘이라는 현상과 복잡계 구성요소의 상호 연결·되먹임 현상에서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개별 요소들을 일일이 다 파악하여 고려하는 것은 아직 어렵지만, 이들이 어우러져 발생하는 창발 현상을 우리가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 생각에 결국 복잡계학은 ‘알 수 없음’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더 알아가는 것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경제학은 인간의 선택에 합리성이라는 색깔을 입히고 전체를 색칠해 온 반면, 복잡계학은 인간의 선택이 ‘이것과 저것 모두’ 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 선택이 어떤 색을 띠는지는 개별적으로 규정할 수 없지만, 개별로부터 시야를 확장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0과 1로 표현되는 무수한 선택은 전체를 볼 때 상쇄되어, 0.5 또는 그 근처의 어떤 숫자로 표현되는 사회 시스템의 움직임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물론 아직은 복잡계학의 역사가 길지 않은 탓에 남은 과제가 많지만, 아직 살펴보지 못한 복잡성의 영역을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살펴볼 가능성이 열리는 중이다.
책을 통해 본 복잡계 연구는 대상을 완벽히 설명하려고 하는 욕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 욕구는 단지 내가 경제학을 통해 일시적으로 충족했던 것일 뿐, 유의미한 결과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는 아닐 성싶다. 모든 것을 자신의 인식 체계에 포함시키고자 하는 욕구는 『모든 것은 빛난다』(숀 켈리 등 2명)이 언급한 ‘태양을 삼키려는 욕망’과도 같다. 인간이 섣불리 다가가기 어려운 신의 영역이 존재하며, 인간의 합리성을 맹신하고 모든 우주를 인간의 영역에 포함하려는 갈망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개인적 경험이나 경제학에 대한 비판이 보여주듯, 인간의 인식과 실재 사이에는 채워질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설정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목표는 내게 너무 과중한 요구였던 것이다.
내가 현실 세계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예측하는지와 관계없이, 세상은 저절로 굴러 간다. 전통적인 학문이 각각의 원천으로부터 세계를 일관성 있게 설명해왔다면, 복잡계학은 세계가 일관되지 않을 수 있으며, 그때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를 예증한다. 예컨대 잘 돌아가는 시장이 ‘보이지 않는 손’ 때문이거나, 복잡계 연구의 숙제로 남겨져 ‘아직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 때문일 수 있다. 이번 탐구를 통해 학문은 인식과 실천을 위한 매개일 뿐, 아무것도 떠먹여 주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았다. 세상이 복잡하다고 여겨왔지만, 내가 세상을 대할 방식은 이전보다 명쾌해졌다. 눈에 보이는 것을 아는 것에 끼워 맞추려 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다. 복잡계 연구가 그렇듯, 나름의 방법론까지 설정한다면 더욱 좋겠다.
세상이 복잡하다는 진술은 지나치게 단정적이다. 그것은 사고의 틀, 내가 이해한 세상, 내가 직면한 삶, 그 어디에서도 찾지 못한 균형에 대한 변명을 위해 설정한 벽과 같다. 세상은 복잡한 동시에 단순하기도 하다. 그렇게 얼핏 모순되게 존재하지만, 내가 세상을 체험하는 방식에 따라 명확한 한 가지 특성으로 나타난다. 복잡계 연구자들이 인정한 ‘아직 불완전한 인간’을 인식하고, 그들이 그것의 극복 과정에서 보여준 ‘편견 없는 태도’를 실천한다면, 혹시 모를 일이다. 복잡하게만 여겨졌던 세상을, 내가 직접 단순하게 볼 수도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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