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추천도서

이 주의 사서 추천도서(1월 3주)

판사유감

문유석│21세기북스│2013│247p.
법학도서관 4층 단행본 [BDM 340.02 문67ㅍ]

추천의 글(문학예술팀 오요환)

당신이 권력과 부를 가졌을 때 비로소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한다는 ‘역지사지’란 말이 있지만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는 말이 있는 걸 보면 ‘역지사지’하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제법 어려운 일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일례로, 엄청난 노력파여서 자수성가한 사람이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면 적어도 보통정도의 노력은 하는 평균적인 사람들마저도 게으름 피우는 부류의 사람으로 간주하게 될 확률이 낮지 않은데, 이는 자수성가형 리더가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 중 하나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의 저자인 문유석 판사도 이 함정에 빠질 수 있었는데 이 책을 읽어본 바, 적어도 그는 이 함정에 빠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도 될 것 같다(문유석 판사 바로 밑에서 일해보지 않아 장담할 수는 없지만). 판사라는 높은 사회적 지위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반대편에 선 서민의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기득권층에서, 특히 한국 사회의 기득권층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저절로 떠올리게 되었던 말이 “한 사람이 진짜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으면 그에게 권력과 부를 주어보아라”라는 것이었다. 사회에 아직 첫 발을 내딛지도 못한 대학생인 여러분들에겐 이 말이 다소 먼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알고 보면 군대를 다녀온 남학생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알 좋은 기회가 있었다.

바로 여러분이 병장이 되어 내무반 최고참이 되었을 때! 이 때 자신이 이병 때 당했던 부조리를 고쳤었는지 아니면 그대로 방치해 두었는지 여부를 통해서도 여러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당하면서 고생했으니 니들도 당해봐라’는 식으로 이병 때 자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고 분노했었는지를 까맣게 잊은 채 자신을 고통에 빠지게 했던 해당 병영부조리를 방치했었다면, 아쉽지만 당신은 ‘문유석과’의 인간은 ‘아니었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굳이 군필자가 아니더라도 비슷한 기회가 있긴 하다. 학과나 동아리에서 자신이 신입일 때 불합리하다고 느꼈었던 각종 최고참 전용 기득권을 자신이 최고참이 되었을 때 아름답게 내려놓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어떤 조직이든, 조직에 속해 있는 이상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확인할 기회는 수시로 찾아오는 거 같다. 군대에서처럼 단시간에 드라마틱하게 찾아오진 않더라도.

어쩌겠나, 지나간 일은 고칠 수 없으니 그랬었던 사람은 이를 교훈 삼아 사회에서 장차 출세했을 때 같은 오류를 다시 범하지 않으면 되니까 너무 자책할 필요도 없다.

‘역지사지’가 평범한 사람에게 쉬운 일이었다면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는 말도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이런 말에 기대어 자신의 평범함에 안심하거나 안주하지는 말자. 여러분은 그냥 평범한 사람이 되기엔 아까운 존재이고 아직 살아갈 시간이 매우 많이 남은 사람들이니까…

문유석 판사의 글 행간에서 느껴지는 또 한 가지 매력은 그의 탈권위적인 모습이다. 높은 사회적 지위에 오른 사람이 보여주는 탈권위적인 모습은 정말 멋지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런 멋짐도 근본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역지사지 할 수 있는 자세에서 파생된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즉 탈권위적인 사람은 역지사지 할 수 있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지금은 퇴임한 모 구청장은 동 순방 시 각 동의 동장이 자신의 차량을 기다리고 있다가 차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화를 내거나 괜한 트집을 잡는다는데, 이런 식으로 의전에 집착하는 리더가 그 잠깐의 의전을 위해 뙤약볕에 자신의 차량을 기다리느라 고생하는 아랫사람들의 입장을 충분히 헤아린다고 할 수 있을까?

현재 한국사회에는 이런 멋진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여간해선 현실에서 보기 힘든 것이 마치 이런 멋쟁이들은 멸종위기에 처한 희귀동물이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데, 간접경험의 보고라는 책의 장점이 여기서 빛나는 것 같다. 비록 여러분의 현실 속 주변에는, 이런 멋진 희귀동물들이 없더라도 책이라는 간접경험의 도구를 통한다면 얼마든지 이런 이들을 접할 수 있으니 말이다. 여하튼 차후에라도 이런 멋진 사람들이 권위주의에 찌든 한국사회에도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고, 그 중에 이 책을 읽은 여러분들이 포함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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