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도서관 독후감 공모전

2012.12.31

선정도서 학기 중 매월 ‘이달의 책 선정’
참가대상 부산대학교 학생, 직원
참여방법 ‘이달의 책’ 독서 후 부산대학교 ‘책읽는 대학 홈페이지’ 온라인 응모
참여기간 2012년 4~6월, 8~12월
시상내역 총 35편(총상금 220만원)
2012년도 공모전 선정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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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독후감 선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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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이름 학과 선정도서/독후감제목 보기
입상 허*무 사회복지학과 도서: 사람풍경
독후감: 진짜 ‘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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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의 자화상을 어떻게 그릴까?아마 내가 붓을 잡게 된다면 평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낮은 코를 더 높게,쭉 찢어진 눈은 더 부드럽게 그릴 것이다. 몸매에 자신이 없는 누군가는 그림 속 자신에게 옷을 입혀 몸을 가리거나,남들에게 항상 멋진 미소를 띠던 이는 뜻밖에도 불만 가득한 얼굴로 자신을 나타낼 수도 있다.어떤 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어떤 부분을 지우거나 덧칠할 것이다.이처럼 자신을 직접 그린 자화상을 보면 아마도 현재의 자신을 은연중에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일상생활에 접하는 자신의 사진만 봐도 얼마나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가?사진 속의 자신이 가장 사실적인 나의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진 속의 ‘나’와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이렇게 자신이 가진 겉모습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란 쉽지 않은데 자기 내부의 ‘마음’을 아는 것은 어떨까?자신의 내면,온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마음을 완벽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시시때때로 변화하는 마음, 그 혼란의 경험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며 우리가 삶을 마감할 때까지 계속 될지도 모른다.그 혼란 속에서 누군가는 삶의 방향을 놓쳐서 헤매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는다.그 혼란 속,지쳐있는 누군가에게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책이 바로 김형경의 <사람풍경>이다.
내가 프로이드와 처음 만난 것은 대학에 갓 입학해 전공수업을 수강했을 때다. 인간행동과 사회 환경이라는 수업에 걸맞게 인간행동에 관련한 주요이론을 배울 수 있었다.그 첫 수업에 등장한 것이 바로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이다.얼마 전까지 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게 인간 본성에 대한 고민이라 해봤자 도덕시간에 등장하는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 정도의 수준이었다.프로이드와의 첫 만남은 충격에 가까운 당황스러움이랄까,심리학에 무지했던 나에게 ‘무의식에 지배받는 인간’이라는 주장은 낯설음과 동시에 받아들이기 힘든 거부감으로 다가왔다.성욕과 거세불안에 지배되는 수동적인 소극적인 존재,내가 가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합리성과 이성의 이미지가 불완전함으로 바뀌는 것에 동의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지금 와서 되돌아보니 그때의 거부감 한편에는 과거를 되돌아보면 마주하는 내 유년기의 상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기껏 밑바닥 깊이 숨겨놓았던 그 상처가 다시 얼굴을 들이 내밀까봐 말이다.김형경의 <사람풍경>을 읽으면서 그때의 불편함과 낯설음을 떠올린 것은 이 책이 바로 정신분석학의 관점을 가지고 쓰여 졌기 때문이다.책을 읽다 불쑥 튀어나오는 적나라함에 살짝 아프기도 하다.하지만 이 <사람풍경>과의 만남에서 느낀 온기는 그때와는 전혀 다르다.
시간축적에 의한 성숙은 둘째치더라도 이론서로 마주쳤던 프로이드가 차가운 꼬챙이로 날 꾹 찔렀다면 나는 이 책에서 함께 아파하고 공감하며 나를 어루만지는 따뜻한 손길을 느꼈기 때문이다.책을 읽으면서 마주치는 대상의 내면에서,그리고 작가의 진심어린 고백에서 그것이 거울인양 내 자신과 마주쳤다.그 거울을 통해 발견한 어둠과 상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헤매는 나를 그녀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책을 한 장씩 넘어 갈 때마다 내 안에 텅 빈 듯한 공허함이 채워져 나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 입으로 말했다.마흔으로 넘어서는 고개에서 ‘마음’때문에 외국여행을 했다고.이 ‘마음’을 알기 위해서 말이다.사람풍경은 외국여행을 통해 만났던 대상들을 작가 자신이 온전히 받아들이며 전해지는 감각과 감정들을 특유의 섬세한 시선으로 따뜻하게 들려준다.작가는 로마,밀라노,파리 등 유럽 뿐 만 아니라 베이징 그리고 뉴칼레도니아 까지 많은 도시와 문화공간을 찾아 여행한다. 하지만 이 책은 마주치는 대상들에게만 시선이 머무는 일반적인 여행기가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그 수많은 여행지에서 그녀가 가장 많이 만난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그녀는 외부를 통해서 자신의 과거를 보고,과거를 통해서 현재의 자신과 마주한다.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온전한 감각과 감정을 말이다.다양한 풍경과 장소,그리고 마주치는 인간들에게 그녀는 매우 깊이 있는 시선을 가진다.그녀가 이러한 시선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정신분석 경험과 더불어 자신의 상처와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갈등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이처럼 그녀는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 서서 그들의 밑바닥까지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주관적 인식을 완전하게 동감하기에는 어려웠다.하지만 그것은 나에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무엇보다 내게 의미 있고 감동을 준 것은 여행지에서 마주친 대상들에서 그녀가 자신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고 묵묵히 끌어안는 모습이었다.
책은 기본적인 감정,무의식적 생존법,긍정적 선택,성장의 덕목 총 네 부분으로 나누어 구성되어 있다.책의 전반에 등장하는 인간에게 내재된 부정적 측면들에 살짝 놀라기도 했지만 후반부를 읽어나가면서 그것을 안고 살아갈 희망과 용기를 발견했다.여행하면서 만나는 세상풍경에서 그녀는 우리가 놓치거나 회피했던 인간의 마음을 발견한다.로마의 카타콤에서 인간 이면의 무의식을 발견한 것부터 시작해 카라바조의 작품에서 느낀 나르시시즘,네덜란드와 중국 등 각 나라의 문화와 살아나가는 방식 등은 인간과 세상풍경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존재해 왔다는 것이 아닌가.그렇게 보면 처음에는 의아했던 제목,사람에 풍경을 갖다 붙인 것도 이 여행기에 더할 나위없는 좋은 선택이다.
책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것은 프로이드 주장의 핵심인 인간의 무의식에 관해서다.작가는 심지어 우리가 ‘무의식을 산다.’라는 표현까지 쓴다.내가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이 무의식이 엄밀한 의미가 무엇이든 한 개인의 내면에는 이질적이고 독립된 세계가 존재하며,그것이 우리 생의 비밀을 더 많이 쥐고 있으며,아주 힘이 세다는 것이 현재 통용되는 의견이다.분명 주위를 둘러봐도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트라우마 시기에 고착되어 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나 또한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강박증에 가까운 모습이 있다.또한 작가의 무의식 중 한 측면은 나와 매우 닮아 있다.나 또한 자신이 초라하고 무가치한 존재라는 느낌이 자주 든다.사실 그러한 감정들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객관적으로 생각해봐도 찾기가 힘들다.그것을 돌려서 생각해보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이러한 감정들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우리가 무의식의 부정적 측면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그 존재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제임스 F.매스터슨이 말했듯이 세상엔 완벽한 사람은 없다.휴미실다인은 혼란을 야기하는 행동과 감정이 어린 시절에 발단 되었고 우리는 결코 떼어버릴 수 없는 우리 자신의 일부라는 것을 인식하고,그 감정들에 몇 가지 제약을 가함으로써 자신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분명 이것은 인내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쉽지 않은 일이다.그렇더라도 우리가 최소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로마가 고대 유적으로 엄청난 관광수입을 올리는 것처럼 우리도 무의식을 자원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아는 일이다.
이 책에서 다뤄지는 인간이 가진 기본감정들,그리고 생존을 위해 발휘되는 무의식적 방어기제,생의 모든 문제는 결국 사랑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우리가 생에서 만나는 모든 문제가 사랑에서 비롯되는 이유는 기대했던 사랑이 결핍되었을 때의 감정과 관계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예를 들어 우리는 누구나 억압된 분노를 가지고 있다.분노,우울,불안,공포,중독,질투,시기심 그 치명적인 감정들을 뒤집어보면 사랑의 부재가 그 근본적인 원인이 아닌가?결국 작가가 말하려는 바는 이런 부정적인 감정이 지극히 정상적이고 당연한 반응이라는 것이다.사람들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 부정적 감정에 압도당하고 휘둘리며 삶의 길에서 방황하고 고통스러워한다.나 또한 그러한 감정들이 나를 압도하려 들 때마다 그 근원를 찾으려고 고민하고 혼란스러워 했다.하지만 이제 깨달았다.무의식 저 깊은 곳에 뿌리를 두고 있는 감정들은 정당한 근거도 수치심도 없으며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우리는 내면에 억압된 이러한 감정들을 꺼내 용기있게 직면하고 안아 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작가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불행하게도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훌륭하지 않다. 또한 인간은 누구나 사랑받길 원하는 이기적인 존재다.모든 개인의 내면에는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에 선하고,옳고,정의롭다는 성향을 간직하기 위해 무의식에 억압해둔 그 반대 성향이 있다고 한다.우리는 그것을 의식 속으로 통합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자신에 대해 왜곡된 이미지를 부수고,자신 내면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인정해야한다.자신의 공허감을 채우려 타인에게 구걸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그런 모습의 자신을 스스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진정한 사랑이다.나는 평소에 내 친절과 웃음이 정말 어떤 의도와 본능으로 나온 것인지,이것이 타인을 위한 것인지,결국 나 자신의 위한 행동으로 되돌아 오는 건지 혼란스러웠다.그 혼란은 아마 끝까지 가식의 가면을 벗지 못하고 착한 사람으로만 남고 싶은 내 욕망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제 안다.나에게도 여러가지 가면이 있다는 것,때로는 내 모습이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하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인간이 이렇게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라면 대체 ‘타인과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에 부딪힌다.작가는 고민 끝에 공감이라는 것을 제시한다.’자기 마음에 고요히 머물러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타인의 마음에도 머물 수 있다.’이 구절이 바로 그 물음의 답이다.공감은 중립적이고 비판단적인 태도로 상대방의 내면을 고스란히 함께 느끼는 것을 말한다.한 인간의 비통,애착,공포,분노 그리하여 인간이 그토록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느끼는 상태이다.앞서 언급한 인간의 부정적 속성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타인과 함께하는 삶 속에서 긍정적인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이유다.
이 책을 읽어나가며 나도 모르게 내 속에 억압하고 외면했던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난 아직도 겁이 많고,의존적이며,나약하다.하지만 이제 이런 내가 더 이상 싫지만은 않다.그 못나고 추한 모습들도 ‘내 것’이기 때문이다.물론 그것들을 완전히 수용하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추하고 못난 자신을 마주하기가 두려운가?우리 모두 유아적 환상에 가득 차 있는 내면세계를 벗어나 자.억압이나 회피의 방어를 벗고,진정한 자신의 내면에 닿는 것,그것이 본래의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이다.그 탈출이 성공할 때 우리 삶에도 커다란 변화가 올 것이다.
입상 조*미 수학교육과 조교 도서: 사람풍경
독후감: 사람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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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업무 중에서 가장 힘든 일을 꼽는 다면 사람을 상대하는 일인 것 같다.업무상 제출할 서류를 기한이 지나도 내지 않는 경우,며칠 동안 몇 번씩 핸드폰에 전화를 하고 부재중 번호와 문자까지 남겨도 묵묵부답인 사람들이 있다.마치 내가 귀찮은 텔레마케터나 보이스 피싱이 취급을 받는 것 같아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실제로 연속학사경고로 결국 제적당한 학생에게 학과장 면담을 위해 연락을 하게 되었는데,사무실 전화번호를 스팸 등록해 놓는 경우를 당한 경험도 있으니 터무니없는 생각은 아닐 것이다.며칠 전에는 본인이 직접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을 문의하면서 대신 해주길 바라는 태도의 전화를 받고 티는 낼 수 없었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통화를 끝내고 나의 짜증의 근원이 정말 그 사람이 문의한 내용이 너무 터무니없는 거라서 그런 것인지 아침부터 왼쪽 귀에 물이 들어간 것처럼 멍멍하게 울리는 불편한 몸 상태 때문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평소 같았으면 더 사소한 내용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줬을 텐데 그날은 왜 그렇게 불편한 생각이 들었는지 하고 고민하게 되었다.
여러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대하면서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는 사람을 이해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필요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김형경의 심리여행에세이 사람풍경이라는 책을 읽게 된 것은 나의 마음이 상대로 인해 터무니없는 상처를 받고 싶지 않다는 순수한 이기심으로 시작되었다.나는 융이니 프로이트는 하는 어려운 심리학 용어들은 모르기도 하지만 알고 싶지도 않다.만약 이 책이 그런 어려운 말들이 가득한 책이었다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경제적인 또는 시간적 이유로 내가 동경만 하고 다양한 해외여행지로부터 만나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느끼게 되는 심리나 감정들로 접근한 방식이 내 마음에 들었던 거 같다.나는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 나쁘기만 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그 사람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많고 예의가 없다거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사람도 개인적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기보다는 나름의 사정이 있어서 그런가 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자신이라면 어떻게 했을 텐데 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모든 사람이라고 할 것도 없이 내가 그렇다.그 사람은 왜 그럴까하고 생각해 볼 여유가 없다.이 사람이 나를 무시해서 그런 건 가 하고 극단적으로 생각을 하게 되는 날엔 몹시 괴로워하게 된다.무의식중에 내가 가진 자격지심 같은 것이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그게 나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생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려면 시간이 걸리게 된다.나의 마음을 다스려서 어떤 상대에게 휘둘리지 않는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다.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의 감정과 생각들을 알고 나의 마음과 정신이 강해져야 할 거 같다.그래야지 나의 아기도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키울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모든 성인들의 무의식이나 감정들이 아기때 엄마와의 관계를 통해서 형성되는 것이 크다고 되어 있다.각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사례를 통해서 드러나는 문제들이 어릴 적 경험으로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지 올바른 인성을 가지게 하는 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이 없다는점에서 좌절을 느끼게 한다.내 아기에게 기본적인 엄마를 통한 충분한 사랑과 만족감을 통해서 좋은 영향을 주고 싶은데 막막하다.학창시절의 시험기간에는 꼭 엄마의 손을 잡고 잔다거나 중요한 일을 앞두게 되면 극도의 불안을 느끼곤 하는 나로서는 나의 엄마만큼 내 아기에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참 많다.다음 달이면 만나게 될 내 아기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은데 자신이 없다. 내 자신에게 생각하는 능력이 있으며,인생살이에서 만나게 되는 기본적인 역경에 맞서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인 자기 존중감이 부족한거 같다.그래서 내 아기는 스스로가 가치 있는 존재임을 느끼고,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을 주장할 자격이 있으며,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결과를 즐길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또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자기 존중감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평소에 운동과 담을 쌓고 지내 왔었는데 몸이 많이 무거워진 지금의 나의 상태로 운동이란 엄두를 낼 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그러나 걷기가 순산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천천히 많이 걸어야 겠다.걸을 때 되도록 몸을 가볍게 옷차림도 가볍게 하고 소지품도 단출하게 지니고,무엇보다 마음을 가볍게 한다.하던 일이나 고민거리,의무나 책임같은 것은 고스란히 집에 남겨둔 채 되도록 빈 마음만 가지고 집을 나서고 싶지만 그렇게 잘 되지 않는다.결혼 전 다이어트를 위해 저녁마다 엄마와 같이 집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에 걷기를 하러 간 적이 있다.그때 걸으면서 온갖 고민거리나 스트레스를 엄마에게 털어놓았던 것이 해결하지 못해 어깨를 짓눌렀던 문젯거리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던 의무나 고민이나 절망들이 요술처럼 사라지고 근거 없는 희망과 넓은 마음과 새로운 아이디어가 그 자리를 채 우는 듯 한 느낌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담감이나 돌덩이 같은 묵직한 것이 가벼워지면서 조금은 밝고 긍정적인 마음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몸과 마음은 긴밀하고도 직접적으로 소통되는 하나의 통합된 실체이다.정신의 억압된 측면들은 자주 마비나 통증 같은 몸의 증상으로 나타난다.몸이 불편할 때는 마음도 불편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내가 같은 상황에서 건강상태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기 몸을 보살피고 아낄 줄 아는 것이 정신건강에 무엇보다 기본적인 것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사람풍경의 김형경 작가처럼 우울증이 찾아오면 햇빛 속을 오래 걷고,슬픔이 밀려오면 한증막에 가서 땀을 빼고,무력감이 찾아오면 야산을 뛰어오른다던데 하는 마음의 불편함을 몸을 통해 해결하는 내 나름의 방 법을 찾아야 할 거 같다.
왜소한 체격에 순해 보이는 인상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만만하게 보는 것 같다는 피해의식이 있었던 거 같다.어릴 때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착한 아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그리고 좀 더 자라서는 친구들이나 사회생활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서 나쁠 게 없다는 생각이었다.그러나 강한 인상의 사람들에 비해 불합리한 대우를 당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몇 차례 경험이 생기게 되면서 착하고 순하다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인간에게는 호의를 베풀어놓고 상대가 그것에 대해 보답하는 지를 지켜보는 무서운 속성이 있다고 한다.사실 친절은 관대한 사람이라는 자기 이미지를 지키는 수단,자신이 받고 싶은 보호와 관심을 투사하는 방식,불안정한 사회에 좋은 평판을 갖고 싶은 사람의 사회적 보험 등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나는 친절하고 착하게 상대를 배려하면서 살았다고 자부하고 살아왔다.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하지는 않을 지라도,심지어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한 적이 없다.그러나 황당하게도 그런 경우가 있었던 것이다.그러면서 내가 무엇을 착각하면서 잘못 살아온 것인가 아니면 내가 다른 사람의 평가에 너무 큰 기대를 하고 내 중심으로만 생각하고 살아온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내가 불편을 느끼면서까지 남들에게 희생할 필요가 과연 있느냐 남들이 그걸 알아주지도 않는데 하는 손해 볼 필요는 없다는 마음을 갖게 된 듯 하다.일종의 좌절을 겪고 마음가짐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특별히 잘 할 필요도 없고 잘못할 필요도 없다.개인적인 감정이나 친절까지 베풀면서 마음의 곁을 주면서 상처받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한다. 내가 상대방으로부터 돌아올 호의를 무의식적으로 기대하면서 친절을 베풀었던 것이 분명한 것이다.그러니 그것이 돌아오지 않았을 때 좌절이나 실망감을 넘어 배신감까지 느끼게 되는 것이다.정년퇴직이나 명예퇴직 하는 교수님들이나 학부나 대학원을 졸업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몇 십 년 또는 몇 년 동안 다녔던 곳을 떠나는 사람들의 감정에 이입되어 허전하고 공허함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게 되면 나는 항상 제자리에 있는데 사람들만 바뀐다는 생각에 자신이 더 괴롭고 힘들었기 때문이다.아마 학교 교사들도 몇 년 동안 애정을 쏟은 학생들이 졸업할 때 그런 마음이 생길 지 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학생들이 새로운 출발을 위해 학교를 졸업해서 떠나면 남겨진 교사는 허전함을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그런 마음을 의도적으로 차단하려고 노력하니 이제는 그런 감정에 조금은 무뎌지는 거 같다.당연히 헤어짐이 있으면 새로운 만남이 있는 것이고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이 내 마음을 송두리째 휘둘러도 되는 만큼 나에게 중요한 사람들은 아니라고 생각을 하면서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레임을 더 느끼도록 의도적으로 노력을 한다.내가 상처받지 않게 애정과 관심은 조금만 주도록 노력하자 하고 일종의 자기 방어막을 형성하는 것이다.인간은 본질적으로 늘 무엇인가를 욕망하는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어떤 행위에도 당사자의 욕망이 배제된 행위는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사랑이나 헌신도,친절이나 호의조차도. 내가 타인에게 베풀었던 친절의 본질을 알게 되자 타인의 친절에 대해 특별히 감동하지도,불친절에 대해서 서운하지도 않는다.그 저 내 마음이 조금 더 잘 보이니 세상이 조금 더 잘 보인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요즘 내 아기와 나를 위해 여러 책들과 태교 음악을 듣고 있다.유명한 텔레비전 프로그램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에 출연한 박사님이 쓴 아이의 스트레스라는 책과 사람풍경 등 다른 심리 관련 책도 몇 권 읽었지만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른 것 같다.이런 심리에 대한 책들을 10번쯤 반복해서 읽는다고 해도 문 제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한번쯤 더 생각하게 하는 계기는 된 것 같다. 알려고 노력했다는 자체만으로도 나 자신에게 발전적인 것이고 보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그로 인해 터무니없는 자격지심이나 콤플렉스로 상대방이 의도하지도 않은 상처를 쉽게 받지는 않을 것이다 하고 다짐하게 된다.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내 아기에게 낯선 세상에서 안정감을 느끼게 하고 힘이 될 수 있게 인정과 지지, 사랑,용기를 주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이라고 결심한다.그것만으로도 내 마음이 아주 조금 더 강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풍경과 함께하는 일주 일이었다.
입상 이*기 도시공학과 도서: 사람풍경
독후감: 인간의 불완전함과 운명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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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 관심이 많은 나는 심리학을 부전공 하고 있다.단 한 과목의 수강신청 실수와 여러 가지 일들이 겹쳐 전과와 복수전공 둘 다 못하게 되었고,차선책으로 부전공을 하게 되었다.그만큼 나는 심리학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살아가면서 계속해서 공부하고 싶은 학문이다.심지어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심리학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현대 사회의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병들어가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인문학,심리학,철학 등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서론이 길어졌지만,이번에 선정된 책이 심리/여행 에세이인 것을 알고는 읽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두근댔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기대감이 엄청났다.
그동안 심리학을 공부해 오면서 느낀 점은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주위 사람들에게 하면 뜬구름 잡는 소리라는 말부터 시작해서,아직 어려서 그렇다는 말까지 들었다.기분이 나쁘지는 않다.나는 사랑이 우리 인간에게 아주 중요하다는 것에 거의 확신하기 때문이다.오히려 어렸을 땐 대중가요들이 왜 그렇게 사랑타령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사랑 때문에 죽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무엇보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랐다.실제로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지만,아니면 알면서도 부정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사랑은 우리 삶에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책에서도 언급되듯이 사람들이 호소하는 문제는 거의모든 것이 사랑으로 귀착된다.이것만 봐도 인간에게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두말할 필요도 없다.책을 다 읽고 나사,마음에 가장 크게 남은 것 또한 ‘역시 사랑이구나.’라는 생각 이였다.작가도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사랑의 결핍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며,그리고 그 결과가 얼마나 안타까운지 여러 번 강조하고 있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작가가 직접 경험한 정신분석을 토대로 전개 되었다.정형화된 틀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을 싫어하던 나는 초반에는 책의 내용에 조금 실망했다.자신의 어린 시절과 현재,그리고 타인의 행동을 이론에 맞추어 판단하고 ‘이건 이래서 저렇다,저건 저래서 그럴 것 이다.’라고 판단내리는 것이 못마땅했다.내가 항상 경계해 오는 행동중 하나이기 때문이다.어떤 이론과 틀에 맞춰서 판단하고 그것이 전부인양 결론내리는 것.지나치게 다른 사람은 물론 자신을 이러한 이론적 틀로 판단내리는 건 무의미하다고 해야 할까..이런 느낌 때문에 책을 그만 읽을까하는 생각도 했다.그래도 이왕에 읽기 시작한 책,다 읽어 보자는 마음으로 완독했는데 책을 덮고 난 뒤에는 정말 읽기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다른 사람들에게 마구 권해주고 싶었다.
‘건강한 자기애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추악하고 부정적인 감정들을 인정하고, 그런 모습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라고 책에 서술되어 있었다.몇 년 전, 어떤 책 이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분명 이러한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주위에는 자신이 항상 옳고,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책에서는 병리적인 자기애라고 말한다.우리 아버지도 그런 사람 이였다.늘 자신의 말이 옳고 다른 모두가 따라야하고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폭력적인 방법으로 표출하시던 아버지는 정작 스스로의 언행은 전혀 일치하지 않는 전형적인 나쁜 사람이시다.청소년 시절에는 아버지의 모습에 너무나 실망해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싫고 혐오스럽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그런데 그런 생각이 뒤집힌 일이 있었다.할머니 댁에 갔을 때,아버지가 어린 시절 적으셨다는 시집을 서랍장에서 발견했었다.그때의 충격을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이런 감성을 가진 사람이 지금의 아버지와 동일인물이라니,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현실 이였다.
점차 사람에 대해 조금씩 알아 가면서 알게 되었다.완전히 선한 사람도,악한 사람도 없다는 것…그토록 미워하던 아버지가 순간,나에게 연민의 대상이 되었다.어딘가 결핍되어 자기방어의 일부로 그렇게 가족에게 나쁘게 대했다는 것을 점차 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물론 아버지의 행동들이 모두 용서가 되고 아버지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순 없었다.하지만 그때부터 나는 인간이 좋아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세상에 완전히 악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는 사실에 타인은 물론 나도 더 사랑 할 수 있게 됐다.나의 추악한 모습에 직면하는 순간,나는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이 스스로를 위로해 주었던 것이다.아직 수행이 덜 되어서 타인의 추악한 모습에 화가 날 때가 많지만 인간이기에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나의 내면에 항상 자리 잡고 있다.인간의 불완전함을 알게 돼서 삶을 살아가기 좀 더 편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존중 파트를 읽던 중,장국영의 죽음에 대해 작가가 쓴 글을 읽고 펑펑 울었다.‘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이 말은 ‘나 자신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길 줄 모른다.’는 말과 닿아 있다고 한다.나는 장국영처럼 많은 사람에게 인기가 있고 사랑을 받는 사람은 아니지만,타인의 욕구에 응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 왔다는 것에 장국영과 나는 닮아 있었다.또한 그러한 관계 맺기가 나를 소중하고 사랑할 줄 모른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그 고통이 얼마나 아픈지 너무나 잘 알고 나이기에,나는 내 눈물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작가가 쓴 글의 내용은 소름끼치도록 내 모습과 같았다.자주 사람들에게 치인다는 느낌을 받고 인간관계를 부담스러워 한다는 것,타인들의 요구를 잘 거절하지 못하는 것,주위에 사람이 많지만 내면이 텅 빈 것 같은 것,,나는 남자들의 호의를 거절하는 것을 아주 어려워하고,그 관심에 보답해야만 한다는 강한 압박감에 상대가 관심을 보이면 나도 호의를 베푼다.그랬다가 결국에 나중에 가서 커져 버린 관계를 어쩔 줄 몰라 쩔쩔 매고 혼자 지쳐갔다.상대가 주는 애정은 계속 됐으면 좋겠는데 내가 줄 애정이 고갈되어 갈 때,그 심리적 부담감은 엄청 났다. 거절할 줄 몰랐던 것이다.그러한 관계의 시작은 나에게도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에게도 늘 상처만 준채로 끝나버렸다.나는 진심으로 정말 진심으로 그런 일들이 안타까웠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작가는 이러한 성향들이 부모님들에게서 받지 못한 애정의 결핍이 원인이라고 한다.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나는 부모님에게 짐이라는 생각을 늘 하고 살아왔다. 누군가에게 무엇도 바라면 안 된다는 느낌.누구에게도 짐이 돼서는 안 되고 누군가의 애정에는 감지덕지 하라는 강한 압박감이 나의 깊은 내면에 있는 듯 했다. 슬프지만 나는 나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할 줄 모른다는 것을 인정했다.오래도록 나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느낌에 시달려왔었다.그러한 느낌은 첫 남자친구를 사귀면서 점점 없어지더니 어느새 내가 사랑으로 충만한 가치 있는 존재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되었었다.그런데 교제를 시작한지 4년 쯤 되었을 때,이별을 경험하게 되자 전보다 더 끔찍한 감정들이 나를 괴롭혔다.정석적으로 유일한 버팀목이였던 대상이 사라졌을 때,세상에 혼자라는 느낌.그 무엇보다도 끔찍했다.그 무엇으로도 위로받을 수 없었고 차라리 죽자는 생각이 하루 종일 나의머릿속을 맴돌았다.아직도 그 지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그 무가치한 존재라는 느낌이 나를 괴롭히는 빈도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현재 나 스스로 나를 소중히 여기고,나 스스로 나를 사랑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아마 아주 오래 걸릴 것 같지만,스스로 상처받지 않기 위해 노력,또 노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책을 읽기 며칠 전에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순수해지기 위해서는 오히려 추악함의 저 밑 끝까지 알고 있어야 한다.책을 읽는데 이런 내용이 있는 게 아닌가?내 생각이 인정받은 것 같은 느낌에 오는 카타르시스와 함께 씁쓸해 졌다.추악함을 다 알고서도 순수할 수 있을까,인간 안에는 우주가 있다더니 인간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앞에서 말 했듯이 내가 사람들의 선한 면과 악한 면,둘 다를 직면 했을 때 사람이라서 그렇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과 모든 것을 알게 되었을 때,비로소 더 다가갈 수 있듯이 더 순수한 자세로 삶을 살아 갈 수 있다는 말은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상대의 호의와 친절이 상대가 살아가는 생존법중 하나일 뿐이라서,상대가 베푸는 친절에 특별히 감동하지도 불친절에 서운해 하지도 않게 되었다는 작가처럼 나도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바란다.그래서 상대가 어떤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오든 순수한 태도로 다른 사람들을 대할 수 있는 그런 초연한 삶의 자세를 지닌 사람이 되고 싶다. 친구가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며 울면서 우리 집에 찾아왔다.열이 나고 할 일이
많아 너무 아팠지만 친구에게 위로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이야기를 들어주었다.나는 평소 객관적이게 상황을 들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무조건 친구 편을 들며 위로해주기 보다는 앞뒤상황을 하나하나 들어보았다.남자친구의 잘못이 있기도했지만 친구가 과하게 집착하고,예민해하면서 못살게 굴어(?)왔다는 느낌이 들었다.친구가 나에게 울면서 호소하는 도중,남자친구에게서 잘못했으니 다시 잘 해보자는 연락이 왔다.웃을 일은 아니지만,친구가 귀엽게도 험담을 멈추더니 우리 집에 왔더니 좋은 일이 생겼다며 꼭 한턱 쏘겠다며 돌아갔다.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역시 사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사랑의 결핍이 동인이되는 행동들이 너무나 많다는 깨달음을 또 한번 얻을 수 있었다.
‘사람풍경’을 읽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친구에게 하면 딱 좋을 말 같은 글귀 하 나를 보여주었다.‘건강한 친밀감’에 관한 내용 이였다.‘상대에게 헌신을 요구하며 압박하기보다는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며,관계 내에서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대상이 되지 말아야 한다.또한 상대방을 내버려두는 초연함이 필요하다.’친구에게 사랑을 표현함에 있어서 조금 초연해질 필요가 있는 것 같다고 조언해 주었는데 친구가 어떻게 느꼈는지는 잘 모르겠다.사랑은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못 보게 눈 멀게 해버리니깐 말이다.모든 것에 초연해 지고 싶은데,그 초연함도 나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회피와 생각 안하기를 나는 혹시 초연함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나를 더 이해하게 되었고 나를 이해하게 되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깊게 생각 할 수 있게 되었다.나이 많으신 분이 들으면 웃으실 줄도 모르지만,유일한 진리는 ‘진리는 없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나를 분석하고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이렇게 살아야지,저렇게 살아야지 하던순간이 지나더니,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내 삶의 모습을 초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저렇게 살아야 건강한 삶이야.라는 생각이 없어진 것이다.방종이라는 개념과는 다르다.오히려 니체의 운명애의 개념과 가깝다.불가피한 것을 그저 받아들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랑하게 되는 것.그것이 니체의 운명애며,내가 얻게 된 나만의 삶의 방식이다.
작가도 여전히 자신이 가진 심리적 문제들이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라고 말 한다.하지만 이제 그것들에 일방적으로 휘둘리지 않으며 그것들을 조절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인간의 정신에 최고는 없으며 인생이란 모든 것들의 부조화와 갈등을 끊임없이 조절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깨달음.아마 이것이 인간 삶의 진리라고 생각한다.
나의 불완전함을 인식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초연하게 받아들이고 삶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입상 정*석 지구과학교육과 도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독후감: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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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봄.온 나라가 ‘한미 FTA’와 ‘광우병 논란’으로 몸살을 앓던 그 날이 떠오른다.갓 입학한 늦깎이 대학생인 나에게도 많은 고민을 안겨주었던 이 시기의 어수선했던 캠퍼스와 거리로 나서는 촛불들을 보며 나는 ‘제 2의 68혁명’을 기대 했었다.하지만 프랑스에 찾아왔던 ‘5월의 봄’은 한국에는 찾아오지 않았고,또 다시 세상은 그럭저럭 흘러가고 있다.이 책은 그 ‘찾아오지 않았던 봄’과 이제는 거스를 수 없을 것 같은 대세로 자리 잡은 신자유주의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책을 들추어 보면 노란 표지 위에 저자가 써 놓은 인상 깊은 어구가 가장 먼저 보인다.
‘200년 전에 노예 해방을 외치면 미친 사람 취급받았습니다.100년 전 여자에게 투표권을 달라고 하면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50년 전에 식민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면 테러리스트로 수배 당했습니다.단기적으로 보면 불가능해 보여도 장기적으로 보면 사회는 계속 발전합니다.그러니 지금당장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여도 대안이 무엇인가 찾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작가는 이 한 구절로 자신의 의도를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그것은 ‘신자유주의 들추어내기,그리고 바로보기’이다.
첫 번째 바라보기:자유에 관하여
‘시장을 개방하면 관세가 철폐되고 물품과 자본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시장의 효율을 증대시켜 국가는 더욱 부강해 질것이다’이것은 우리가 어릴적 부터 귀가 따갑게 들어왔던 구호이며 사회 구성원 절대 다수가 믿고 있는 진리인 듯하다.여기에다 정부의 부정부패와 무능력한 모습이 언론에서 자주 부각되며 이러한 믿음을 더욱 강화시켜 주고 있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장에 결정권을 넘겨주는 것이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을까? ‘….일부 상원의원들은 심의 과정에서 노동할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는 근거로 내세워 이 법안을 반대했다.가난한 아이들은 일을 하고 싶어 하고 공장주들은 그 아이들을 고용하고 싶어 하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21쪽)
자유주의가 전성기를 이루었던 영국에서 벌어진 일이다.당시 방적기의 좁은 틈에서의 수리와 잡무를 위해 몸집이 작은 아이들을 고용하는것이 당연시 되었는데, 아이들이 방적기에 빨려 들어가 사망하거나 장애를 입는 사고가 빈번했다.하지만 정부는 ‘계약의 자유’를 위해 이를 적절히 제어하지 않았고,한동안 이런 참상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이는 최근에 ‘계약의 자유’를 명목으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는 한국의 모습과 오버랩 되지 않는가?현재 우리가 아동을 노동에서 보호하지 않는 것을 비난하듯 먼 훗날에는 우리의 이러한 모습들이 비인간적이라며 비난받을지도 모를 일이다.이 문제는 개인과 사회 간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국가와 국가 간의 문제에서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현대 선진국들 중 유치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 무역과 보조금 정책을 사용하지 않은 나라는 거의 없다.일본,필란드,한국 등 많은 나라가 외국인 투자를 강력하게 규제했다….(중략)그 나쁜 정책들이 사실은 당시 그 나라들의 경제 상황에 좋은 정책이었던 것이다 ’(105쪽)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다.우리나라에서 박정희 신화를 이야기할 때 흔히 ‘박정희 대통령이 민첩하게 결정하여 경·중공업을 육성하기로 하고 재벌 회장들을 소집했다’는 구절은 웬만한 자서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구절인 것이다.하지만 이것은 절대로 ‘자유롭지’않다. 실제 정부에 ‘선택’받지 못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동명목재나 국제상사의 경우가 이를 증명하지 않는가?신자유주의 경제학에 따랐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은 쌀이나 목재일지도 모를 일이다.마르크스가 이야기 했듯 자본주의는 가만히 두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극단적으로 일어나는데 이는 개인만이 아니라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성립한다.이런 내부모순을 극복하기 위하여 도입했던 여러 가지 규제장치들이 이제는 악의축으로 규정되어 해체되어 가고 있는 과정이 바로 신자유주의인 것이다.
무한정의 자유는 무한정의 방종을 낳는다.사회의 소수 계급이 전체 부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사회는 건강할 수 없다.그러한 사회에서 좌절한 이들은 ‘혁명’을 꿈꾼다.공산주의의 등장 배경을 굳이 이야기 하지는 않겠다.우리가 이 사회의 번영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사회 구성원 대다수에게 좌절을 주는 ‘자유’는 적절히 제한되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바라보기:규제에 관하여
첫 번째 담론에서 조금 더 나아가보자.2008년 우리는 최악의 금융위기를 겪었다.우리가 철썩 같이 믿고 있던 월가의 금융가들은 ‘모든 위험을 고려하여 안전하게 자산을 운용하는 현대 금융의 선구자들’이 절대로 아니었다.실제로 그들은 스스로 만든 파생상품들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었으며 당시 예상되는 금융기관의 손실액은 ‘추정할 수 없다’였다.실제 미국 5대 투자은행 중 살아남은 곳은 한군데도 없다.골드만삭스와 JP 모건스탠리는 상업은행으로 전환되었고 메 릴린치,리먼브라더스,베어스턴스는 국유화되거나 파산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국가가 나서서 통제된 계획으로 이 모든 사태를 수습할 수도 없다.저자가 설명하는 소비에트 연방의 경우를 살펴보자.
‘중앙 계획 시스템은 초기 소련의 산업화가 성공을 거둔 데에서 볼 수 있듯이 목표가 비교적 명확할 때에는 잘 굴러갔다….(중략)그러나 이 복잡해지는 경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이 향상된 것은 아니었다.’(268쪽) 저자가 지적하듯 공산주의 계획경제의 가장 큰 약점은 경제의 규모가 커질수록 증가하는 복잡성에 있었다.중앙정부가 그 복잡성을 감당해 내지 못하고 서서히 경제를 붕괴시켜갔던 것이다.물론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을 필두로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지고 난 뒤 더 이상 이러한 방식의 계획주의 경제 도입을 주장하지는 않는다.우리가 원하는 통제는 어디까지나 ‘적절한 수준의 통제’이다.하지만 시장자유주의자들은 이 ‘적절한 수준의 통제’를 비판하면서 대부분 붕괴해버린 사회주의국가들을 예로 든다.우리는 ‘자유주의 시장경제 국가’들이 직면해야 했던 참혹한 현실과,그 대안으로 도입한 규제들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이번 금융위기도 대공황을 극복하며 미국에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확고하게 구분하기 위하여 도입한 글래스-스티걸법의 폐지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 번째 바라보기:교육에 관하여
아무래도 내가 사범대학을 다니고 있다 보니 교육에 관한 언급에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글쓴이가 언급한 부분 중 우리나라의 현실에 가장 필요한 구절을 살펴보자.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가장 큰 차이는 구성원 개인의 교육 수준이 얼마나 높은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각 개인을 잘 아울러서 높은 생산성을 지닌 집단으로 조직화 할 수 있느냐에 있다….(중략)교육은 소중하다.그러나 교육의 진정한 가치는 생산성을 높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잠재력을 발휘하고 더 만족스럽고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있다.’
교육학에서 가장 큰 쟁점 중 하나는 ‘교육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가?’의미를 조금 좁혀보면 ‘교육이 사회적 계층 이동의 통로 역할을 할 수 있는가?’이다.글쓴이는 교육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국가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지 묻고 있고,교육학에서는 개인적인 의미를 주로 다룬다.하지만 안타깝게도 교육은 두 가지 관점 모두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우리나라의 경우를 보자.우리 나라는 대학 진학률이 80%에 육박하는 고학력 국가이다.물론 개인적이 의미에서 대학의 진학은 더 좋은 직장을 얻어 사회적 계층 상승에 그 목적이 있고 이것이 학력 인플레이션의 가장 근본적 원인이다.하지만 부르디외(PierreBourdieu)가 지적했듯이 교육은 좋은 학교 보다 좋은 사회적 배경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지역균형 선발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서울대에서 조차 신입생의 31.5%가 강남·특목고 출신이라는 사실은 우리나라 교육열의 어두운 뒷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교육이 사회적 계급을 더욱 굳혀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좀 더 넓게 바라 보면 국가의 측면에서는 어떨까?글쓴이가 지적하고 있듯이 대부분의 노동자에게는 학교에서의 교육이 별 쓸모가 없다.그래서 교육학에서는 학교를 ‘인내심,집단에 동화되는 능력’을 기르는 사회화의 기관이라고까지 표현했다.결국 대학까지의 교육은 특정 전문 직업을 가지지 않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별 쓸모가 없다는 말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 국가의 번영에 교육열을 내세우고는 한다.반대되는 가장 모범적인 예로 프랑스를 들어보자.프랑스는 평준화된 공립학교들을 운영하며, 특정 직업을 가질 학생들의 고등교육을 위하여 그랑제꼴(Grandesécoles)같은 고등교육기관을 운영한다.나는 프랑스가 대학 진학률이 낮다고 해서 과학수준도 낮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지나친 교육열이 큰 사회적 낭비를 초래하고,개인이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교육을 받는데 방해가 된다면 우리는 그 열기를 조금 가라앉힐 필요가 있을 것이다.교육에 대해 가진 우리의 환상을 깨기 위해 다음의 구절의 의미를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남보다 멀리 볼 수 있는 이유는 내가 거인의 어깨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SirIsaacNewton
마지막 바라보기:더 나은 자본주의를 위하여 나는 장하준을 무척 좋아한다.그가 우리나라의 고질적 병폐인 ‘자본주의 VS공산주의’의 이분법적 담론을 뛰어넘어 ‘일반인이 알아들을 수 있는 경제학 언어’로 글을 쓰기 때문이다.신자유주의가 가져오는 많은 병폐를 개선하고자 대안으로 제시되는 많은 개혁안들이 이 반공 이데올로기에 밀려 ‘빨갱이들의 선동’으로 취급당하는 현실 앞에서,그는 가장 설득력 있게 제대로 된 현실을 설명하고 있는 경 제학자인 듯하다.
우리는 더 이상 전태일 열사를 기대할 수는 없다.그러기에는 대한민국이 너무 나도 많이 변해버렸다.하지만 대중적인 영웅에 기대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하여 대중 스스로가 연대를 모색할 수 있을 때,오히려 그것이 참다운 민주주의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현실을 똑바로 직시할 수 있어야 하고,아마 글쓴이는 이를 위해 이 책을 썼으리라.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 현실 앞에 자포자기 않는 것이다.글쓴이가 이를 염려하며 첫머리에 남겨놓았던 글귀가 가슴에 와 닿는 건 이 때문일 것이다.
‘단기적으로 보면 불가능해 보여도 장기적으로 보면 사회는 계속 발전합니다.그러니 지금당장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여도 대안이 무엇인가 찾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끝)
입상 김*윤 사학과 도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독후감: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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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일명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가 전 세계를 휩쓸었다.현대 금융자본주의의 상징인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이 사태는 전 세계에 급속도로 퍼져나갔다.최근 유럽을 강타하고 있는 재정위기 역시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의 연장선상이라고 할 수 있다.이처럼 지난 30여 년 간 세계를 지배했던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결국 그 한계를 드러냈고,이에 대한 대안 찾기가 시대의 한 흐름이 되었다.이 책 역시 새드엔딩으로 끝나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과 대안을 찾는데 그 목적이 있다.저자 장하준 교수는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우리가 알지 못했거나 잘못 알고 있었던 경제에 관한 23가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그 책의 마지막에 그 내용들을 8가지로 압축하여 더 나은 자본주의에 대해 자신이 내린 결론을 제시한다.
저자는 우선 자유 시장 자본주의가 가장 훌륭한 경제체제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지난 30년 간 자유 시장주의를 자본주의 체제 중 최고의 것으로 신봉해온 결과는 심각한 불평등과 세계경제의 불안정,경제성장의 퇴보였다.시장은 효율적이지만 관리가 필요한 기계에 불과하다.기계가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듯이,시장도 무한정 자유를 보장하는 것 보다 적절한 규제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예컨대, 오늘날 고도로 발달한 금융 산업은 일부 투기 자본가들의 손에 장악 당했고,결국 이들이 전 세계에 금융위기를 불러일으켰다.이는 각 국 정부가 낭떠러지를 향해가는 금융시장의 질주에 브레이크를 걸지 않고 방관한 탓이 크다.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개인의 선택이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고 믿어 시장에 대한 어떠한 규제도 거부하는 자유 시장주의자들의 잘못된 신념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가장 잘 나타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개인의 물질적 이익 추구만이 유일한 경제활동의 동기라고 인식하는 것 역시 문제가 있다.이 책은 인간이 정말로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했다면,세상은 벌써 망해버렸을 것이며,공익을 위한 행동들에 대해 정부와 사회가 그에 걸맞은 보상을 해주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하고 있다.저자는 앞서 언급한 자유 시장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가장 큰 문제점들을 지적하면서 새로운 경제 시스템의 필요성을 강조한다.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시스템이란,인간의 합리성의 한계가 있다는 인식위에 새워진 시스템이며 인간의 나쁜 면보다는 좋은 면을 발휘하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이런 경제 시스템에서는 정부가 ‘채찍‘를 쥐고 적절한 규제를 가하는 동시에,사회 전체에 이로운 활동을 하는 기업에게 보조금 제도 같은 ‘당근‘을 제시하여 기존의 자유 시장주의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개선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나 역시 현재의 경제 시스템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책의 내용대로 시장에게 지나치게 많은 자유를 부여할 경우 나타나는 문제점들은 우리 모두가 이미 잘 알고 있다.시장을 방임한 대가 역시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 중이다.유럽이 야심차게 기획했던 유로존은 현재 붕괴 직전의 상황에 처해있고,전 세계 어느 국가 할 것 없이 경제위기에 봉착해있다. 일부 소수의 사람들이 초래한 위기는 60억 인구 모두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월가를 점령한 시위대는 이런 위기를 초래한 1%의 사람들에게 분노하고 항의하는 99%의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실수를 저질렀다고 나무라기보다는 다음부터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가르쳐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우리는 지난 30년 간 저지른 실수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도록 바로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그리고 이 책에 나온 것처럼 문제를 바로 잡을 방법 역시 나와 있다.과연 대기업,투기자본가,신자유주의에 사로잡힌 정부 관료와 경제학자들이 그 해법을 받아들이고 자신들이 저지른 실수를 개선해 나갈 의향이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방금 말한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기‘는 장하준 교수가 제시한 더 나은 자본주의에 대한 결론의 가장 핵심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리고 나머지 내용은 ’자유 시장주의에서 벗어나기‘의 세부적인 실천사항이라고 이해했다.이 책은 먼저 사람들이 받는 임금의 차이를 지적한다.일반적으로 우리는 모두가 자신의 능력에 맞게 적절한 임금을 받는다고 생각한다.특히 선진국과 개도국의 임금 차이를 설명할 때 이런 생각을 이용하곤 하는데,이를테면 선진국의 높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그렇지 못한 개도국의 노동자보다 교육수준이 뛰어나고 기술수준도 높으며 심지어 더 부지런하고 성실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하지만 저자는 선진국과 개도국의 임금 차이는 각 국의 경제 시스템의 차이와 선진국의 이민 억제 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한다.가난한 나라의 경제 시스템이 그 나라 국민들로 하여금 선진국의 국민들과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도록 만든다.공정한 경쟁은 경쟁할 기회를 주는 것뿐만 아니라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해줄 때 실현되는 것이다.선진국의 이민 억제 정책 역시 이러한 공정경쟁을 저해하는 요소인데,이는 본문에서 나오는 인도와 스웨덴의 버스기사 이야기를 통해 잘 나타난다.이렇듯 선진국들은 자신들의 일종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지난 세월동안 가난한 나라에게 반강제적으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주입시켰고,자국의 이민 장벽을 높게 쳐서 경쟁에서 우위를 가져갔다.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쟁에 참여하는 선수들이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어야 한다.저자는 그 배려 책으로 실업수당과 공적 보조금으로 지원되는 재교육 프로그램을 들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쌓아올린 성벽을 차례차례 허물어 가는 장하준 교수는 탈산업화 지식 사회에 열광하는 사회 역시 공격한다.실리콘벨리의 성공신화 이후 전 세계는 IT분야를 필두로 한 정보화 산업에 주목했다.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자연스레 제조업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져갔다.그에 따라 탈산업화 지식 경제 산업에 과잉 투자하는 경향이 생겨나게 되었다.하지만 지식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제조업의 발전이 필수적이다.그리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역시 제조업의 발전이 꼭 필요하다.제조업을 경시하는 추세는 하루빨리 바로잡아야할 문제이며,그 해결방안으로 제조업에 불리한 조세제도를 바꾸고 노동보조금을 지급하며,생산성을 증대할 여지가 많은 핵심 제조업 부문을 활성화 시킬 수 있는 산업 정책이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 다음 목표물은 금융 산업이다.현대 사회에서 금융은 빼놓을 수 없는 핵심적인 경제 분야 이다.금융은 경제가 원활히 돌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요소로,실물 경제를 서포터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하지만 요즘에는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다.금융 자본의 위상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여전히 현대 사회에서 금융 권력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금융 산업의 육성을 국가 경제정책의 최우선으로 삼은 국가도 있다.아이슬란드와 아일랜드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한다.두 국가 모두 금융 자본에게 무한정의 자유를 보장하여 한 때 세계 최고의 부자 국가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하지만 이들 국가들은 세계 금융위기 이후 신문 지상에 가장 많이 소개되는 국가로 전락하게 되었다.오늘날 금융 부문의 발전 속도는 너무나 빠르다.실문 부문이 따라갈래야 따라 갈 수가 없을 정도이다.국적 불문의 금융 자본들은 세계 각 국을 제 집 안방 드나들 듯이 하고 있다.이러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은 국제경제에 불안감을 증폭시킨다.세계의 현금인출기라고 조롱받는 한국 또한 이런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저자는 금융 거래세를 도입하고 글로벌 자본 이동에 대한 규제와 기업 인수 합병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금융 산업의 속도를 늦춰서 금융이 본래의 모습인 실물 경제의 조력자로써의 역할을 되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자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의 논쟁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정부의 역할범위이다.과연 어떠한 정부의 형태가 국가경제발전에 보다 더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일까.이 책에서는 정부의 개입을 강조하고 있다.시장주의자들의 논리대로 따랐던 지난 30년 간,미국과 영국을 필두로 한 세계 각국의 정부는 철저하게 ‘작은 정부‘를 지향했다.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거의 죄악으로 여겨지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하지만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로 대표되는 현대의 ’작은 정부’는 결국 그 병폐를 드러내고 말았다.과도한 정부의 개입은 시장을 경직시키고 성장을 더디게 하지만,적절한 수준의 개입은 경제를 더욱 더 역동적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장하준 교수는 민간자본이 뛰어들지 않는 공공 부문에 대한 투자 확대와 기술훈련이나 연금제도 같은 복지프로그램,그리고 유치산업 분야에 대한 보호조치 등이 구체적인 방법으로 제시하였다.이와 같은 적극적인 정부의 성공사례는 많이 존재하며,가장 대표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역시 큰 정부의 힘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어 냈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시된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기’의 방법은 바로 개발도상국에 대한 배려이다.세계 경제 시스템은 철저히 선진국 위주로 흘러가고 있고,이 같은 상황을 바꾸지 않으면 가난한 나라는 빈곤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 이라는 게 장하준 교수의 주장이다.WTO(세계무역기구)나 IMF(국제통화기금)같은 국제기구와 서방 선진국들은 가난한 국가를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임상실험 대상으로 삼았다.30년 전 아프리카,남아메리카 등지의 가난한 나라들은 철저히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입각해 경제정책을 펼쳤다.하지만 그들의 경제상황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이제부터라도 가난한 국가들에 대한 ‘보호‘혹은 ’배려’가 필요하다.가난한 국가들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자국의 상황에 맞는 정책을 수립할 수 있어야 한다.또한 선진국들이 양보하여 가난한 가들이 자신들의 유치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이 같은 방법을 통해 가난한 국가들이 선진국들과 진정한 의미의 공정경쟁을 펼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이다.
지난 4월 19일,우리나라에는 19대 총선이 열렸다.각 정당들은 저마다의 공약을 내걸고 국민들의 지지를 호소하였다.각각의 정당의 공약을 살펴보면 특이한 점이 있다.보수,진보 할 것 없이 모두 경제 민주화를 주된 공약으로 제시한 점이다.경제 민주화가 분명히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경제 민주화는 바꿔 말하면 지금까지 세계 각국의 경제운영원리를 담당했던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모습을 보고 있으면 30년 간 우리의 일상생활까지 지배했던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이제 점차 내리막을 걷고 있는 것 같다.그리고 이 책이 그것이 퇴장하는 길을 보여줌과 동시에 새로운 주인공이 등장하는 길을 안내하는 일종의 가이드북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물론 장하준 교수의 주장이 다 옳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하지만 이 책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고 그가 비판했던 신자유주의의 대표자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것을 보면,이 책이 담고 있는 의미가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나는 이 책을 통해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했고,그 변화가 곧 올 것이라는 것을 조심스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이 책은 경제학자가 쓴 경제학 서적이다.책 내용에서도 도덕적으로 호소하거나,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오직 경제학을 통해서만 이야기를 한다.그러나 내가 인문학을 배우는 학생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책을 읽고 난 뒤 경제학적인 측면보다 시대의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하였다.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에도 뉴욕과 런던의 금융업자들은 앉은 자리에서 컴퓨터 자판을 이용해 수십,수백억을 벌어들인다.그에 반해 소말리아의 가난한 빈민가에는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어린아이가 수십,수백 명에 달한다.아프가니스탄의 난민촌에는 전쟁으로 인해 갈 곳을 잃은 사람들이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너무도 부조리한 상황이 아닌가.현재의 시스템으로는 이러한 상황을 심화시킬 뿐,문제의 해결방안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건물의 높이가 높아질수록 그 뒤편의 그림자는 더 크고 짙어진다.지난 세월동안 신자유주의는 우리 사회를 약육강식의 생존법칙이 지배하는 정글로 만들었다.나는 자본주의가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하지만 현재 우리는 그 시스템을 신자유주의라는 잘못된 방법으로 이용하고 있다.그래서 책의 표지에 적힌 대로 우리는 ‘더 나은 자본주의’가 필요하다.그리고 나는 이 책을 통해 잘 보이지 않던 그것의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하루 빨리 ‘더 나은 자본주의’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의 ‘변화‘가 찾아오길 기대해 본다.
입상 탁*혜 법학전문대학원 도서: 세상을 바꾼 과학 논쟁
독후감: 세상을 바꾼 과학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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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처럼 과학은 정말 세상을 바꾸었다.이 독후감을 쓰기 위해 나는 태블릿 컴퓨터에 전자책 파일을 다운받은 후 글씨 크기를 바꿔가며 책을 읽었고 본문검색 기능을 활용해 지나간 내용을 찾기도 했다.그리고 지금은 컴퓨터를 이용해서 이 글을 작성 중이며,접수 역시 오직 인터넷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독후감이라고 하면 채워야 하는 원고지의 빈 칸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초등학생 시절이 떠오르는 나로서는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 세상 속에 있는 사람은 여전하다는 생각이 든다.모두가 자장면을 시킬 때 홀로 짬뽕을 외치려면 괜히 주위의 눈치가 보이는 것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줄줄이 찬성 의견이 달리는 글에 최초로 반박의견을 내기 힘든 것은 닮아있다. 기술이 발달해서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진다 한들 다른 사람과 의견을 나누려는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그 도구를 활용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하는 것이 스마트 시대의 일원이 되어버린 나의 사색거리였다. 책을 덮고 나서 드는 생각 역시 과학은 인간이 행하는 것이므로 인간과 사회가 저지를 수 있는 오류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렇기에 철학적 접근,사회학적 접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원자력 기술,생명공학 등을 두고 벌어지는 논쟁을 보면서 내가 과학의 가치중립성을 옹호해야 한다면 논거로 쓸 수 있을 내용으로 생각했던 것이 있다.그것은 인간의 인식능력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과학의 발전방향을 디자인하려는 움직임 역시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우리는 현재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므로 우리 행동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불가능하다.그래서 우리가 과학의 발전방향을 디자인하려는 모습이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당연하고 합리적이지만 후대의 사람들 눈에는 중세의 마녀사냥같은 비합리적인 행위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그러나 아무리 이 입장의 편에서 생각해보려고 해도 과학기술이 인류의 생존에 영향을 미치거나 GMO 문제 등 현재의 기술수준으로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정확히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을 때에는 보수적인 관점에서 과학 기술의 발전을 조심스럽게 추구하는 편이 옳다는 확신이 섰다.
‘탈정상과학’의 범주에 속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확장된 공동체’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방법을 읽으면서 결정적인 논거가 없던 내 생각과는 달리 논리적이면서도 설득력 있게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모습을 보고 배움의 즐거움을 느꼈다.
책에 따르면 ‘정상과학’이란 일정한 패러다임 아래 과학 활동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시기를 말하고 ‘탈정상과학’은 정상과학의 접근방식으로는 더 이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태에서의 해결전략을 말한다.라베츠와 펀토비치는 GMO나 기후변화 문제는 탈정상과학의 범주에 속하는 문제이고 이런 문제는 과학 자체의 한계 때문에 과학에만 의존해서는 곤란하므로 과학에 의존하는 전통적 문제해결 방식과는 다른 해법이 요구된다고 주장한다.탈정상과학 전략의 핵심은 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하면서도 그 범위를 더욱 넓혀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지식,전문지식 뿐만 아니라 지역 지식과 시민 지식까지 포괄하는 ‘확장된 사실(extended facts)’과 과학 전문가 뿐만 아니라 인문학 ·사회과학의 전문가,이해관계 당사자까지로 참여자의 범위를 넓힌 ’확장된 공동체(extended communities)에 있다.과학의 한계,전문가의 한계를 지적하며 지식으로서의 학문적인 지위는 없지만 분명히 효용성이 있는 지식인 지역 지식이나 시민 지식까지 포괄하는 면,과학문제라는 관점을 넓혀 인문 ·사회과학의 관점도 문제해결에 참고하고자 하는 면이 합리적이고,‘과학과 민주주의의 최적의 만남’이라는 글쓴이의 평가처럼 실제 입법과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민주적 절차 -국민이면 누구나 법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으며 공청회가 열리는 등의 과정 -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책의 독서를 통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 내용은 제13장 과학과 젠더이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여성과학자가 적었고,주변에서 공학을 전공했던 여자 친구들은 대부분 후회를 한다.사회통념이 바뀌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딱딱해보이고 여성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법학을 전공하는 나 역시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마음 한 구석에 둔 채로 살아가고 있다.지금까지는 여성 과학자가 적으니 많은 지원을 해야 하고 여성이 남성에 비해 수학이나 과학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은 사회적 편견이라는 정도의 논의만 접해보았다. 이런 내용에 이성적으로는 동의하지만 여성으로서 이 사회를 살아간다는 것의 무게를 알아버린 이 시점에서는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나도,과학고를 나와 전기전자 공학을 전공한 친구도 여동생이 이공계로 진출하는 것을 마냥 응원해줄 수가 없는 것이다. 교과서적으로는 옳은 말일지 모르지만 실생활에서는 그와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 나의 모습이 현실을 알게 되고 그에 적응한 결과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과학 자체가 남성 중심적이기 때문에 여성의 접근이 어려웠고,여성은 철저하게 대상화하고 타자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연구에 심리적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는 부분, 타자화하고 거리를 둔 채 진행하는 연구가 아닌 관계를 맺고 느낌을 공유하는 방식의 연구가 여성이 잘할 수 있는 과학이라는 내용이 정말 인상 깊은 부분이었다. 과학 자체가 가진 남성성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내 모습을 보고 헌법 공부를 통해 남녀평등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 원인이 될 수 있는 거시적인 구조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해보았다.
이 책에서 논의된 내용을 보면 과학이 발전하는 만큼 사회도 발전하고 과학을 바라보는 생각 역시 발전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이것은 우리의 지혜 역시 발전한다는 뜻이니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불확실한 미래 역시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해본다.그런데 민주적 방법으로 인류가 당면한 과학 문제의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지식과 지속적인 관심 없이는 과학 문제에 대해 접근하기 힘들다는 점이 난관이다.나 역시 학부 시절 교양 강의를 마지막으로 정규 과학 교육에서 멀어진지 십여 년이 지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보다는 많은 배경지식이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이 책은 대학 교양 강의용으로 쓴 글이 기초가 되었다고 하고 현재의 과학 논쟁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 정도의 책은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만,이 정도의 책을 무난하게 이해 할 수 있는 사람이 전 세계에 몇 퍼센트나 될지 의문이 든다.
민주주의는 누구나 참여 가능한 것을 전제로 하지만 무지와 무관심으로 점철된 사람의 참여는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너무 어려워진 현대과학,이를 대중에게 설명할 때는 어느 정도의 단순화가 필수적이고 거기에는 설명하는 사람의 자의가 개입될 여지가 많다는 점이 지금까지의 과학 논쟁의 주변을 맴돌며 느끼던 막막함이었는데 이것을 ‘확장된 공동체’방법론으로 얼마나 극복할 수 있을지가 문제다.
입상 최*우 무역학부 도서: 세상을 바꾼 과학 논쟁
독후감: 세상을 바꾼 과학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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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학년 2학기,노벨상과 현대과학이라는 과목을 수강하며 빛이 입자이자 파동이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은 아직 생생하다. 사실 전형적인 문과출신이라 입자와 파동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 자체도 부족해 이해가 쉽지 않았지만 빛이 입자이자 파동이라는 설명은 물이 액체이면서 기체라는 것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 이후 한 학기 내내 물리,화학,생물에 관련된 설명을 들으며 가장 많이 느꼈던 것은 과학의 흥미로움 보다는 내 과학적 지식이 이 정도 수준밖에 안되나 하는 것이었다. 빛의 이원적 성격을 이해 못했던 것처럼 X선이라 던지,제 올라이트의 원리들을 학습하는 건 그동안 등한시 해왔던 과목에 짓눌리는 일처럼 상당한 고역이었다.그런 어려움 속에서 유일하게 수업에 흥미를 느끼게 해준 것이 바로 노벨상을 수상하는데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와 과학자들의 논쟁이었다. 소설, 수필, 희곡 같은 이야기들을 좋아하다보니 인물간의 갈등이 등장하는 부분이 상당히 흥미로웠고 특히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봤던 기라성 같은 과학자들의 일대기에 관련된 내용이다 보니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지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다.그렇게 논쟁에 집중하다보면 어쩔 수 어쩔 수 없이 과학적 배경지식들을 이해해야만 했는데 전공자가 아닌 교양수준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보니 깊이가 얕기도 했고 생전 처음 접해보는 과목에 느끼는 초심자의 엷은 흥미 같은 것들이 작용해 꽤 재미있게 수업을 들었다.
그때 내가 생전 모르는 영역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논쟁의 이해를 통한 학습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고 그동안 너무 내 전공과 일치하거나 읽었던 책이라 정이 안 갔던 선정도서 사이에서 세상을 바꾼 과학논쟁은 교양을 쌓는다는 명목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책 이였다.
책의 목표와 중심주제는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을 파악해 과학의 참모습을 이해하는 것인데 저자의 서문은 사회와 분리될 수 없는 현대 과학의 모습과 과학자의 책임 문제 등을 적절히 언급하며 책을 이해하기 위한 큰 틀을 적절히 제시해 해준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제 1장 ‘과학은 사회와 무관한가?’의 첫 구절에 나오는 저자의 회고록이다.저자는 왜 화학과를 지원했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화학은 인간관계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고 연구실에서 연구하며 사회와 어느정도는 단절된 채 원하는 일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소위 엘리트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 유난히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롭고 싶어 하고 학문 그 자체를 업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는데 지금에서야 다시 생각해보는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저자의 말을 천천히 읽어보면 과학과 사회의 관계가 단절된 것만은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준다.과학은 그 자체로 독립적일 수 있으나 연구의 방향,진행되는 과정은 모두 사회적 담론에서 독립적일 수 없다.과학의 원리는 사회와 분리된 자연법칙일 수 있으나 그것을 연구하게 되는 동기는 사회적이며 과정 역시 사회적 필요와 지원에 의해 좌지우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또 일방적으로 과학 이 사회의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연구결과는 사회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전환시켜 상호 작용을 해나가는 것이다.
이런 과학과 사회의 상호작용에 대한 설명은 왜 이 책이 담고 있는 과학적 논쟁들을 이해해야 하며 어떻게 과학이 인간의 삶을 바꿔왔는지를 이해하는데 가장 큰 지표가 되어준다.
책에는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부터 시작하여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플로지스톤 이론, 유전자 변형 식품 등의 논쟁까지 현대사회까지 이어져온 과학의 역사 속에서 굵직한 부분들에 관한 논쟁을 언급하고 있다.시대의 사고방식을 새롭게 전환시켰거나 또는 인류의 안전을 위해 뜨겁게 논의되는 많은 사례들의 공통점은 역시 ‘과학적 진리가 되기 위해서는 다수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것 이였다.학창시절 누누이 들어왔던 과학은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진리이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이 시대의 석학들 사이에서 첨예하게 대립되는 과학적 논쟁에서도 가장 중요한 원칙이었다는 걸 다수의 논쟁을 접하며 느꼈다. 가장 첫 번째는 역시 코페르니쿠스의 전환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패러다임의 힘을 보여준 지동설과 천동설의 논쟁이었다.사실 현대의 사람들이야 모두 지구가 온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공전을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하지만 신의 이름을 빌어 제사장이라는 지위를 공고히 하려 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 시대의 기득권층에게 지동설은 과학적 논쟁거리가 아닌 반역이었다. 물론 갈릴레이가 재판장을 나오며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로 진리는 변하지 않음을 말했다고는 하지만 시대의 상황으로 인해 당연한 사실이 쉽게 묵과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갈릴레이의 주장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과학적 증거가 좀 더 구체적이고 확정적이기 때문도 있겠지만 많은 과학자와 다수의 대중이 그것을 사실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과학 그 자체는 자연법칙에 부합하며 원리를 밝힘에 있어 독립적이어야 하지만 인간에게 받아들여 지지 않는다면 과학은 그 가치를 잃게 되기에 이 점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즉 과학은 다수의 지지를 바탕으로 성립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전혀 과학적이지 못했지만 가장 과학적인 발전을 가져왔던 연금술과 그 당시 모든 과학의 기초라는 지위를 가지고 잇던 플로지스톤 이론을 보아도 과학적 사실관계와는 상관없이 선구자의 주장과 다수의 지지가 있다면 그것이 옳든 틀리든 간에 ‘과학적 진리’라는 지위를 가지게 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연금술의 경우 근대과학의 기초를 마련했던 뉴턴 역시 생의 절반이상을 몰두 했던 분야이지만 현대에 이르러서 자연법칙에 어긋남이 밝혀졌고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지구 역사상 최고의 학자가 주장해 황금규칙으로 간주되었던 플로지스톤 이론 역시 연소이론의 등장으로 그 지위를 잃게 되었다.이렇듯 과학은 끊임없이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하는 사회학이나 경제학,인문학처럼 한 시대 안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학문이 아니라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며 과학적 진리를 더욱 더 면밀히 다져나가는 학문이다.
처음 책을 접하며 생각했던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저자의 말이 가장 인상 깊었던 이유가 그동안 막연히 과학의 사회성들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해 왔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과학은 분명 사회적 특성에 영향을 덜 받으며 연구에 있어 독립성을 가져야만 자연법칙을 정확히 밝혀 낼 수 있는 학문이다.또 설사 인간에게 실질적인 효율이 없다 할지라도 자연법칙을 발견하는 일의 가치는 절대 평가절하 받아서는 안 된다.하지만 과학의 발전이나 이해는 인간의 힘 즉 다수의 지지로 이루어져 가기에 이를 항상 염두에 두고 생산적인 논쟁에 열린 시각을 지녀야 과학의 발전이 있을 수 있다.또 언제나 과학논쟁의 결과는 세상을 바꿔가기에 인간은 끊임없이 사회 내에서의 과학의 방향성을 확인해야 한다.
입상 최*련 약학부 도서: 세상을 바꾼 과학 논쟁
독후감: 세상을 바꾼 과학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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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껏 과학과 사회가 별개의 분야이며 상호호환이 불가능한 분야라고 생각해왔다. 왜냐하면 과학의 성격과 사회의 성격은 매우 달라서 서로의 분야를 이해하기 힘들뿐만 아니라 각기 연구에 접근하는 방식도 다르기 때문이다. 정치, 경제, 연예, 과학 등 각 분야에서 성실히 일하는 것이 사회를 위하는 것이며 나 이외의 사회구성원을 위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공익을 위하는 것이라고 여겨왔다. 정치하는 사람은 정치를 잘 함으로써 사회를 이롭게 하고 과학자는 과학연구를 잘 함으로써 사회를 이롭게 하며, 사업가는 사업가대로, 노동자는 노동자대로 자신의 맡은바 임무를 충실히 행하는 것이 사회를 이롭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왔다. 물론 책을 읽고 난 지금도 개개인의 적성에 맞추어서 각기 다른 분야에 충실히 종사한다면 그것이 바로 사회를 유익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기본적으로 과학을 연구할 때,사회를 배제 시킨 채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13개의 주제로 과학의 역사와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들을 눈에 보기 쉽게 잘 정리해두었다. 각 주제들은 내가 학창시절 때부터 익히 들어왔던 유명한 사건들이었다. 이 책은 과학의 역사와 현대사회에서 여러 굵직한 과학 사건들을 총망라 해놓아 일련의 사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 아닐까 싶다. 주로 한가지의 주제에 대해서 하나의 주장과 또 그와 대립되는 주장을 대등하게 다루어 하나의 문제를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게 하였다. 저자는 최 대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어느 것이 옳고 그름에 관한 결정은 독자에게 맡겼다.
저자가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확실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은 과학과 사회는 무관하지 않으며 과학은 전문가의 분야일지라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이 그 과학적인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독자로 하여금 이 책을 통해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이 책을 읽으며 세 가지 쟁점이 크게 기억에 남고 많은 고민들을하게 만들었다.
이 책의 2번째 주제인 ‘과학자에게 사회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라는 챕터에서는 과학의 가치중립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가치중립을 가치판단을 중지하는 것,가치판단에서 자유로움을 뜻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과학자들 자신이 하는 연구가 결과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판단을 배제한 채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가치중립적인 과학연구이다. 하지만 저자는 과학자도 사회의 한 구성원인데, 어떻게 가치판단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맨해튼 프로젝트와 같은 거대과학(특정한 목표 하에 거대규모로 이루어진 과학사업)이 과학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신념과 같은 가치중립을 침해한다. 또한 과학자들도 자신이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국가이고, 시민의 한 사람이기에 조국의 상황에 휩쓸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과학자의 조국애가 극단적으로 강조되고 거대과학이 과학자의 연구를 휘두를 때 그에 따른 결과는 처참하다.이러한 과학연구의 대표적인 사례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서울대 교 수가 저지른 황우석 사태이다. 이 사건은 국제적으로 사기를 친 것으로써 과학의 이상을 져버렸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과학의 위상도 같이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이러한 결과를 볼 때,가치중립적인 과학연구를 할 수 있는 연구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큰 과제라 할 수 있겠다.또한 이 책에서 말하는 ‘좋은 연구 실천’을 통해 과학자들이 자신이 하는 연구 과제에서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 책 중 8번째 주제인 ‘유전자 변형식품 : 식량 문제의 해결사인가, 프랑켄푸드 인가?’ 라는 챕터에서는 요즘 활발히 개발되고 시판되고 있는 유전자변형식품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생명과학이 발전하고 유전자 변형식품들이 개발될수록 사람들은 대량생산을 통해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구하거나 가뭄과 낭해,병충해 등에 강하게 개발된 식품을 통해 조금 더 안정적으로 여러 식품들을 생산할 수 있는 이점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이 식품들의 안정성은 그 누구도 100% 확실히 보장 할 수 없다. 아직 이 식품들을 먹고 사용한 것이 오래되지 않아 지금 당장은 경제적으로 유리한 식품 같지만 오십년 후 백년 후에 어떤 문제를 야기할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은 이 식품들에 대한 관심보단 그저 나라에서 제공하는 대로 정보를 얻고 나라가 관리하는 대로 이 식품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이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무관심은 많은 문제들을 그저 과학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단지 돈의 이익이 있는 방향으로, 나라들의 정치적인 이익이 있는 방향으로 발전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된다.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 국민들, 전세계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시민합의회의 같은 제도를 마련해 이러한 문제에 대해 조금 더 꼼꼼히 공부하고 시민의 입장으로써 충분히 논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10번째 주제인 ‘원자력 에너지: 미래의 대안인가, 파우스트의 거래인가?’라는 챕터에서는 원자력에너지에 관한 과학논쟁을 다루고 있다.1950년도에 과학자들이적은 자원으로 상당한 효율의 에너지를 생성할 뿐만 아니라 고갈위기의 화석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는 원자력 에너지를 발견하고 인간사회에 무한에 가까운 에너지를 공급한 이점을 제공하였다.하지만 동시에 원자폭탄이라는 엄청난 인명피해를 일으킬 수 있는 살상무기의 발달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원자력발전소의 위험성,방사능핵폐기물 처리의 어려움 등 큰 이점 뒤에 해결책을 구하기 매우 힘든 문제점들을 동반하고 있다.
최근 고리원전 1호기와 월성원전 1호기의 안전점검에 대해서 크게 이슈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번 챕터는 시사 하는 바가 크다. 고리 1호기는 1978년 국내 최초로 지어져 2007년에 수명을 다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2004년에 안전점검으로 2017년까지 수명이 연장되었으며, 정부는 이번에 다시 안전점검을 실시하여 수명을 연장하려 하고 있다.이에 따라 주민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앞으로 시민들과 지속적인 합의를 통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만, 일본의 원전사고와 고리원전의 잦은 사고가 발생하는 이 시점에서 수명연장을 위한 방침을 강행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바와 마찬가지로 나 또한 사회와 과학은 어느 정도 괴리가 있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위의 몇 챕터뿐만 아니라 총 14챕터 통해 이 책에서는 과학논쟁을 살펴보고 사회와 과학이 동떨어진 분야가 아니라 밀접한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우리 삶과 직결되어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 우리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다양한 장단점을 따져보기 보다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수용하며 살아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나는 약학을 공부하는 약학도로서 탈리도마이드 사건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적 책임을 강하게 인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 또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여러 과학논쟁에 적극 참여하여 시민합의회의를 하는데 한 몫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에서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과학논쟁의 주제를 너무 많이 선정한 까닭에 각 챕터안의 내용들의 전문성은 다소 빈약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사실 한 주제, 한 주제가 책 한권분량이 나올 수 있을 정도로 굵직한 사건들이기 때문에 한권에 13개를 모두 자세히 다루기에는 무리가 있었을 것 같다. 다양한 사건들을 다루고 각각의 내용들에 대한 전반적인 흐름을 읽을 수는 있었지만 조금 더 구체적이고 전문적이 지식이 부족하여 책을 읽으며 이와 관련된 다른 전공서적을 더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예를 들어,저자는 헤센의 말을 인용하여 ‘뉴턴의 프린키피아가 천재적 개인의 독창적 창조물이 아니라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사회적 요구를 충실히 반영한 결과’라고 하였다. 여기서 저자는 어떻게 뉴턴의 프린키피아가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였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단지 헤센이라는 학자의 말을 빌려 근거를 내세우는 것 같아서 헤센의 주장에 대한 불충분한 설명이 아쉬웠다.
또한, 뉴턴이 과연 시대가 필요에 의해서 나타난 것인가,혹은 그 자신이 시대를 뛰어넘는 천재여서 빛이 났는가에 대한 논쟁은 다른 주제에 비해 중요한 논쟁인 것 같지 않다. 이 책에서는 과학과 사회에서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는 과학논쟁을 주로 다루는데, 이 주제는 천재 뉴턴에만 집중함으로써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에서 조금 어긋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한다. 물론 뉴턴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흥미롭게 읽었으나,세상을 바꿀 만한 과학논쟁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입상 정*수 전자전기공학부 도서: 세상을 바꾼 과학 논쟁
독후감: – 과학자의 사회에 대한 책임, 사회의 과학자에 대한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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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떨어져서 과학이 발전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절대 NO이다. 과학 발전의 역사를 거슬러 보면 그 이면에는 항상 사회적인 지원이 있었고, 시대적인 영향이 있었다. 또한 순수한 과학의 발전이 사회를 변화시킨 경우가 있는 반면,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전된 과학 분야도 많이 있다. 그럼 반대로 과학과 떨어져서 사회가 발전 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대답도 결국 NO 이다. 사회를 변화시킨 중요한 사건 뒤에는 항상 과학적 발전이 선행되어 있었다. 두 질문은 결국 사회와 과학이 상부상조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한다.
사회와 과학이 서로 주고받는 영향이 있다면,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과학발전을 이루어낸 과학자는 사회 영향에 어떤 책임이 있을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과학 발전이 우리 사회에 발전을 이끌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못지않게 나쁜 영향을 끼친 사례도 많다.대표적인 예로 핵폭탄이 있다. 핵폭탄이 개발된 시대적 상황이 어떻든 간에 수많은 과학자들의 연구와 노력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그럼 이들에게는 어떤 책임이 있을까? 핵을 이용한 사람들(정치인,군인)들에게만 이 책임을 돌려야 할까? 책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논쟁만을 다뤘을 뿐 구체적인 해답을 내놓지 않는다.하지만 이 문제는 급격하게 과학 기술이 발전하는 현대에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할 중요한 사항이다.
근 100년 동안의 과학,기술 발전이 지난 인류의 발전 속도보다도 빠르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현대 과학 발전은 몸으로 체감 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럼 이렇게 발전되는 과학 이론과 기술들 중에 과거 핵폭탄이 그랬듯 전 인류에 위협을 끼칠 수 있는 무엇이 있다는 것에 반론할 수 있을까? 그리고 미래의 예상치 못한 문제들에 대한 책임에서 현대 과학자들은 항상 자유로울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은 과학자 자신의 의도의 차이이다. 책에서 예로 나온 독가스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버’의 경우, 조국을 위해 대량의 살상 목적을 가지고 독가스를 만들었다.비록 애국심이라는 의도가 있었지만 그의독가스 개발로 인해 죽임을 당한 10만 여명의 장병들에 대한 변명은 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하버’의 경우와는 다르게 핵폭탄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들 중 대 다수는 자신들이 핵폭탄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냉전시대 당시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들을 철저한 보안으로 격리,감시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전자의 경우와 같은, 살상과 파괴의 목적을 가지고 연구를 행한 과학자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후자의 의도치 않은 혹은 미래에 발생할지 알 수도 없는 문제에 대한 과학자들의 책임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나는 이런 과학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자신의 행동의 결과를 알 수 없는 것은 과학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적용되는 모든 문제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가령 무심코 한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큰 피해나 상처가 되었던 경험이 한 번씩은 있을 것이다. 설령 그 당시 악의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한 행동이 결과를 이끌었다는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그래서 우리들은 어떤 행동을 할 때나 결정을 내릴 때, 이것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항상 염두에 둔다. 그 결정이 중요할 때는 며칠을 고민하기도 하고, 관련 정보를 구하고,주변에 도움을 구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연구개발을 하는 과학자들은 그 결과가 자신들이 의도한 바가 아니더라도 책임이 있다. 또한 과학 이라는 분야의 특성상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개발의 결과물이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지 예측 할 수 있는 경우도 다수 있다. 결국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 결과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예측하기 위해 항상 노력해야 하며, 과학자들 스스로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되는 기술들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여기까지 과학자들의 책임을 짚어 보았다.그럼 사회는 과학발전과 과학자들에 대해 어떤 책임이 있을까? 먼저 사회에서 과학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앞서 얘기했듯이 사회는 과학 발전에 힘입어 변화, 발전을 이룬 경우가 대부분이다. 순수한 과학 발전이 사회에 영향을 끼친 경우도 많이 있고,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과학이 발전하여 이를 해결, 진보하게 된 경우도 많이 있다. 달리 말하면 과학 발전이 사회를 쇠퇴시킨 경우는 없다. 심지어 핵폭탄 탄생의 배경인 핵융합은 원자력 발전이라는 좋은 점도 함께 만들어 내었다.오히려 사회가 과학 기술을 악용하여 잘못된 결과를 만들어 낸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과학의 발전을 잘못 이용하게 된 사회가 그 피해를 입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다면 사회는 과학 발전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그 결과물을 좋은 방법으로 이용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이 타당하다. 결국 사회 또한 스스로 잘못된 점을 항상 감시하고 올바로 잡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사회는 과학자들을 강제하여 그들로부터 잘못된 결론을 도출 하는 행위를 스스로 막아야한다. 책에서 이를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사회는 과학이 발전하기를 지속적으로 후원하되 과학계가 사회에 물들지 않도록 거리를 두고 내버려 두어야 한다.그리하여 과학뿐만 아니라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사회,과학 그리고 과학자 사이의 책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책에서 다루듯이 이 문제는 지난 인류의 역사동안 함께 해왔으며, 현대 사회에서 더욱 중요한 사항이 될 것이다. 그리고 과학자들 스스로 그 경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게 될 것이며, 아마 이 책을 읽게 될 다른 이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 문제에 해답을 얻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나은 방향을 가리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이 책은 사회와 과학이 올바른 방향 찾기 위한 토론의 양분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미래에 엔지니어로서 겪게 될 문제들을 고민하게 해준 이 책에 고 마움을 표하고 싶다.
입상 정*영 영어영문학과 도서: 세상을 바꾼 과학 논쟁
독후감: 그들의 과학에서 우리 모두의 과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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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도 먼 ‘과학’>
나는 인문학도다. 대학에 입학한 뒤로는 수학이나 과학에 대해서는 관심도 두지 않았고, 접할 기회도 없었다. 복잡한 수식이나, 어려운 과학이론은 나와는 거리가먼, 똑똑한 과학자들의 몫이라 여기며 지냈다. 어릴 적부터 수학,과학 보다는 책 읽고 글 쓰는 게 더 좋았다. 수학이나 과학은 항상 명확하게 답이 정해져 있었고, 딱딱하고 메마른 공부라고 생각했다. 공대나 자연대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에도, 마치 서로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처럼 생각이 되었다. 서로의 전공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면, 그저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과학기술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지만,과학은 과학자들의 영역이기에 내가 어떻게해볼 수 없는,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사실 <세상을 바꾼 과학 논쟁>역시 평소에는 손이 잘 가지 않는 책이었다. 과학에 관련된 책은 어렵고,딱딱하여 재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과학,낯설게 보기>
글을 읽어 내려가다 보니, 이 책이 우리에게 과학지식 그 이상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학은 객관적이고,가치중립적이기에 옳고,정확하다고 여기는 우리의 편견을 이야기하면서,과학이 과학자 개인의 성향과 가치관, 그리고 사회·문화·역사적인 환경에 영향을 받아 충분히 왜곡될 여지가 많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불가침의 진리로 여기는 과학이,실은 절대적인 것도 객관적인 것도 아니라는 주장은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조금은 충격적이다.
물론,과학이 가치중립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많이 접해왔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자신의 삶과 결부시켜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왜냐면, 과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너무 어렵고, 재미없고, 먹고사는 문제와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법정, 병원, 학교, 방송 등에서 과학은 가장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실’로 여겨지면서, 우리가 ‘과학’ 그 자체에 대해서 의심을 하거나,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적기 때문이기도하다.
과학실험은 과학자에 의해 실험실에서 이뤄지지만, 과학자와 실험실은 이 사회에 존재한다.인간은 이미 태어나면서 자신의 사회 ,문화, 제도, 이데올로기 등과 관계를 맺고 태어나며, 자신이 처한 상황과 부단한 상호작용을 하면서 살아간다. 과학자 역시 예외는 아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안경’을 써야한다. 저자는 이를 ‘세상에서 뭍은 때(사회화)’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안경 없이는 이 세상을 볼 수 없기에 안경을 쓰지 않은 객관의 눈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과학이 객관적, 가치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과학을 객관적,가치중립적이라고 믿어왔던 것뿐이다.
책을 읽다보니, 대학 2학년 봄, 내 삶을 흔들어 놓았던 한 수업이 떠올랐다.‘가치중립적인 행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주제로 시작하여, 과학의 가치중립의 허 구성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폭넓은 토론을 했던 수업시간이 생각난 것이다. 이 수업에서 나는 당혹스러움과 신선함을 함께 느꼈다.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것,당연하게 여겼던 것을 낯설게 바라보고,의심하고 질문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내게 마치 그 수업을 다시 듣는 느낌을 주었다. 과학을 낯설게 바라보고, 내 일상 속에서 과학을 마주하고, 그 속에서 과학과 나를 같이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과학의 목소리와 주변부>
1.고리 원자력 발전소와 원자력 에너지의 허상
우리 집에서 차로 얼마가지 않으면,고리 원자력 발전소가 나온다. 내가 고리원자력발전소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저 학년 때였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하는 백일장에 참가했었고, 원자력의 고마움과 장점에 대해서 칭송하는 글을 썼던 기억이 어렴풋 있다.고등학교 지리시간에도 원자력의 효율성과 경제성에 대해 배웠다. 핵폐기물이나 고장의 위험성 때문에 위험부담은 있지만, 에너지 확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이야기를 신문이나 방송에서 늘 들으면서 살아왔다. 그러다 작년 일본의 원전사고 소식을 접하고, 불안과 걱정이 커졌다. 고리원전은 이미 수명을 다했으나, 10년 정도 연장한 상태이며 연일 원전 고장, 안전 불감증이라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다들 불안해하지만,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필요악이라는 사람들도 있고,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평범한 개인이 어떤 일을 할 수 있겠냐는 사람들도 있다.
원자력 발전소가 대형사고의 위험과 핵폐기물 처리문제, 원료인 우라늄의 매장량 고갈문제 등으로 인해 결코 경제적이지도,안전하지도,그리고 미래지향적이지도 않다는 논리적 설명은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서 원자력 발전이 가장 그럴듯한 대안으로 떠올랐고,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그렇게 선전되고 있다.‘과학’의 이름으로 ‘과학’을 이용하여, 정치·경제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속임수가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삶의 가능성,다른 너지원으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꿈을 꾸는 것을 봉쇄하고 있다. 나 역시 원자력 발전에 대한 큰 우려를 가지고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다른 대안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과학에 대해 무지했고,‘왜 불가능한 걸까?’ 라고 의문을 품지 않았고, 제대로 알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어쩌면 이러한 무관심과 체념이 과학을 소수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이들을 소극적으로 돕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2.유전자 변형 식품 :결국,분배의 문제
두부를 살 때 마다 꼭 확인하는 것이 있다.GMO 콩으로 만들어졌는지 여부를 꼭 확인하곤 한다. 그러다가 내가 먹는 어떤 음식에 GMO,혹은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는 어떤 물질이 들어갔는지 알 수 없어,다 부질없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먹거리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시대가 된지는 오래다. 더군다나 이러한 음식마 저도 먹을 수 없어,세계의 절반은 굶주리고 있다.
우리는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살고 있고,곧 ‘돈’이 최고인 세상에서 정부와 기업은 ‘과학’을 ‘돈’을 벌기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GMO의 안전성은 누구도 보장할 수 없고,수많은 사람들이 아사하고 있는 이유는 식량이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러나 거대곡물기업들의 이윤을 위해,‘과학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이 확실히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에’,GMO는 용인되고 있다.과학이 소수의 이익을 위해 이용되고,소수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수단이 되어버린 것이다. 과학기술을 맹목적으로 찬양하고,과학자의 말을 무조건 신뢰하기만 한다면,우리는 소수의 힘 있는 사람들에 의해 왜곡된 과학적 지식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게될 것이다.우리 삶에 대한 선택권-안전한 먹거리를 선택하고,안전한 환경에서 살아갈 권리 등-을 빼앗긴 채,객관으로 무장한 과학이라는 성안에 갇혀 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하여,나의 과학으로,너의 과학으로>
정치,사회,경제,문화 그 어느 부분도 과학기술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글을 쓰면서 새삼 느꼈다.광우병 소고기 논란,천안함 사태에서도 과학의 이름으로 수많은 증거가 쏟아져 나왔고,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었다.그러나 과학은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에 얽혀 과학은 각자의 입맛에 맞게 어떤 부분은 부풀려지고,어떤 부분은 축소되기도 했다.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꽃다운 청춘들이 백혈병으로 죽어갔지만,산재보상을 받는 길을 험난하기만 했다.정부와 삼성은 발병자 수의 통계적 유의성이 떨어져 ‘과학적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과학은 과학자들만의 이야기,똑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이며 내 주변사람들이 함께 고민하고 생각해나가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과학기술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휴대폰,노트북에서부터 원자력발전소,GMO,지구온난화,우주개발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은 과학 그 자체가 되었다.원자력 발전에 대한 나의 태도,유전자변형 식품에 대한 생각,나로호 개발에 대한 입장 등을 고민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에 대해 알아야 한다.배우고,알아야 내 것이 되고,내 문제가 되고,그리고 내 삶으로 끌어와 변화를 꿈꾸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과학을 사회의 눈으로 보는 것,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과학을 보는 나를 성찰하는 것,그리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과학을 사회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면 과학의 민주화와 시민참여도 가능하리라고 본다.이 책을 미래의 생명 공학자를 꿈꾸는 남자친구에게 선물하기로 했다.변화는 나로부터,내 주변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일 테니까.
입상 권*진 국어교육과 도서: 세상을 바꾼 과학 논쟁
독후감:  ‘과학의 민주화’를 꿈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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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과학의 발전이 우리들 삶의 형태를 바꾸는 사례들은 여기저기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특히나 요즘에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은 바로 유전 공학부분이다.불임 부부들을 위해 개발된 ‘정자 특질 변별 기술’이 이제는 더 이상 불임부부의 단순한 희망에 머무르지 않고,부부의 욕심에 부합하기 시작하면서 사회에 여러 가지 문제적인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언제부터인가 정자은행에서는 부부들이 이상적인 2세의 모습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게 되었다.미국 최대의 정자은행인 ‘캘리포니아 크라이요 뱅크’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클릭 한번으로 2세의 성별은 물론 체형,머리카락 색깔,외모 등을 부부의 의사에 따라 고를 수 있도록 해놓았다.이에 ‘아이를 자신의 취향대로 고르는 생산물’로 취급하느냐라는 논의가 사회적으로 대두되기도 하고,또 인기 있는,소위 말하는 ‘우월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특정 정자 기증자에 대한 집중된 수요로 인해 한 사람의 정자로 태어난 인원이 적게는 50명 많게는 150명에 이르게 되면서 근친상간의 문제점이 대두되기고 있기도 하다.이처럼 과학의 기술은 우리의 생활 즉 사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긍정 또는 부정적인 영향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이번에 읽은 책 ‘세상을 바꾼 과학논쟁’은 바로 이러한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고민들을 소개하고 있어 읽은 내내 긴장과 흥미가 가득했다.
작가는 과연 과학은 가치중립적인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여,종교와 과학의 관계,과학의 발전과 패러다임,빛의 이중성,유전자변형식품,우주개발과 국가주의 등 다양한 부분을 조명해보이며,마지막으로 우리에게 과학은 무엇인가 라는 의문을 남기고 책을 마무리 짓는다.
모든 주제들이 과학과 인연이 먼 전형적 문과생인 나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어 있고,유익했지만,그 중에서도 원자력 에너지와 유전자변형식품을 주제로 다룬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다.왜냐하면 과학이 경제,정치적으로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단적인 예이면서,‘과학의 민주화’를 위해 시민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먼저,원자력 에너지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가장 높이 의존하고 있는 에너지원이다.지구온난화의 주범인 CO2의 방출량이 석유 에너지에 비해 작고,에너지를 확보하는 데 있어서 기후의 영향을 받지 않아 안정적이고,값이 싸다는 이유로 일명 ‘그린 에너지’혹은 ‘원자력 르네상스’로 그 위상을 떨치고 있다.하지만 그 실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산화탄소 배출량만 작을 뿐이지 방사능의 문제는 결코 환경 친화적이라 할 수 없고,우라늄 매장 양도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안정적인 에너지 자원도 아닐뿐더러,값도 결코 싸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다만 국가에서 막대한 지원비와 시설비를 지원해 주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싸게 느껴질 뿐이라는 것이다.오히려 원자력 에너지는 핵무기로 사용될 수도 있으며,방사능 유출에 있어서 안정성을 보장 할 수 없다는 등 부정적인 영향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에너지가 지금의 지배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미 출발점에서 ‘기술적 효율성’보다는 ‘정치적,사회적 측면’이 더 크게 작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즉,이 기술로 인해서 이익을 볼 수 있는 정치적 인사들이나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원자력 에너지 발전을 후원하고 지지한 것이다.이렇게 기술적인 측면보다 정치적,경제적 힘이 더 크게 작용하여 설 사리를 잃고 역사의 한편으로 사라져야 했던 과학기술의 사례로는 가스냉장고와 자동차 기업 GM의 전기 자동차,풍력,수력과 같은 자연대체에너지 등 셀 수 없이 많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두 번째로,유전자변형 식품 또한,명목상으로는 세계의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식량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해결책이자 과학기술의 열매라고 소개되고 있지만,기아 문제는 식량의 부족이 아닌 분배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주목하는 순간 나는 이것이 단지 그럴싸한 문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사실상 GMO(유전자변형식품)는 긍정적인 시선보다 부정적인 시선이 더 많다고 할 수 있다.왜냐하면 안정성이 절대적으로 불분명하기 때문이다.환경단체 및 시민단체는 GMO가 인류건강에 미칠 악영향을 경고하고,지속 불가능한 화석연료 농법이 결국은 인류의 농업 미래를 어둡게 할 것이라고 개발 중지를 주장하고 있지만,정부와 자본가들은 GMO산업의 성장이 가져다줄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계산하며 GMO사업을 계속해서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 두 상황을 보며 내가 처음으로 떠올렸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요즘 선거시즌에 이슈가 되고 있는 ‘경제민주화’라는 용어였다.경제민주화란,시민에게 ‘제품을 싸게 제공함으로써 이익을 제공한다는 이미지로 둔갑한 채 중소기업들과 자영업자들에게 무지막지한 횡포를 휘두르고 있었던 재벌기업들’에 대한 시민들의 반란이자,적극적인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는데,똑같은 현상이 과학세계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과학도 국가,기업 또는 자본의 편에서 공공의 이익보다는 특정그룹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을 이 책에서 발견할 때 마다 실망스럽고 걱정되었다.과학은 어떠한 학문보다도 객관적이고,가치중립적이며,전문적 이미지 때문에 과학기술 정책에 있어서는 국가와 과학자들의 양심에 의지하는 경향이 많았다.하지만 더 이상 그러한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는 ‘과학 민주화’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현재에 그러한 움직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가장 이상적인 본보기로는 덴 마크에서 시작된 ‘시민협의회’를 들 수 있는데,이 시민단체는 ‘과학기술에서의 참여 민주주의 실현을 통해서 보다 생태 친화적이고,보다 평등한 사회질서를 구축하자’는 목표 아래에서 시민토론의 결과를 국가 과학정책에 반영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1999년 이후로 한국에서도 그 활동이 행해지고 있는데,시민 16명이 생명복제나 에너지 정책 등 시민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과학기술에 대한 주제로,2박 3일 동안 모여서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하기도 하고,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며,그 주제에 대한 이해도를 준전문가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후 토론을 통해서 합의를 도출해 내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이러한 움직임이 있었고 또 미약하지만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에서 그나마 작은 희망과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학 또한 교육이나 환경,조세 등의 사회적 제도처럼 우리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새로운 과학기술을 도입할 때에는 국가가 시민들의 입장과 생각을 충분히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충분히 지각하게 되었다.비록 시민의 의견은,정책의 큰 그림을 생각하며 내리기 힘들다는 점과 본능적인 변화에 대한 불안이 이유 없는 비관으로 나타나 과학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단점도 있지만,그것은 대화와 소통을 통해서 줄여나가고 좁혀나가야 할 부분이지,단적으로 시민을 배재하는 것은 21세기의 알맞은 소통방식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앞으로 나라를 이끌어갈 젊은이로써,그리고 어린 꿈나무들을 키울 미래의 선생님으로써 좀 더 과학기술의 문제점에 대해서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 스스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는 저녁이다.
입상 조*양 지역주민 도서: 철학이 필요한 시간
독후감: – 나,너,우리를 이해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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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철학이니 인문학이니 옛날에 비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독자는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이기에 요즘 책 문화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인가 철학과 인문학에 관한 책,고전에 관한 책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이 책도 이러한 계기로 읽게 된 책이다.어찌하면 우리 아이들에게 철학과 인문고전을 많이 읽힐 수 있을까?아니 많이 읽히기보다 제대로 정확한 눈으로 바라보고 판단력을 가지게 할 수 있을까?정작 나조차 철학과 인문학을 바라보는 식견이 없는 지라 어려운 문제이고 난관이었다.내가 변하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던지는 말 한 마디조차도 위험 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아이에게 제대로 인문고전을 읽히려면 적어도 부모가 1년에 5권의 인문고전을 정독해야 한다고 한다.거의 고전에 빠져 살아야 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고전은 생각만큼이나 이해하는 것이 힘들다.어휘도 어렵고 작가의 시대적 배경,작가의 사상을 이해하지 않으면 꽤 어렵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이러한 의미에서 어떤 책을 어떤 시선으로 봐라봐야 하는지 또한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은지를 권해 준다.나에게는 매우 편리하고 또한 고마운 책이다.아!!이런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되겠구나….
책 읽기의 중요성을 깨닫고 아이 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이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인문고전,철학을 읽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독자의 나이 32세…철학책이라고는 거의 읽어 보지 못했고 인문고전도 재미위주로 읽어서 인지 사실 기억에 남는 책은 거의 없다.그래서 인가 생활에서 많은 공허함을 느낀다.내 속에 채워지지 않은 만족감을 누가 알 수 있을까?..그래서인지 책에 갈급함을 느낀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세 부분으로 되어있다.1.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16명의 철학자,2.나와 너의 사이 -16명의 철학자.3.나, 너,우리를 위한 철학 -16명의 철학자 총 48명의 철학자의 사상이 쏟아진다.이 책은 강신주 라는 분이 쓴 책이다.사실 난 이분을 전혀 알지 못했다.이 책을 접 하기 전까지…….철학?!
사실 철학은 세상을 삐뚤어지게 보고 자기만의 아집이 있는 사람,뭔가 위대한 것을 이룩한 사람들이 가지는 사상을 철학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철학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고 철학하면 왠지 따분했다.그래서 인가 책장을 넘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이제 읽어야지…….마음먹기가 쉽지 않았다.요즘 우리 집에는 목요일 마다 가족 책읽기 시간을 갖는다.큰 아이가 8살 초등학교 1학년이여서 그런지 이제 이런 시간을 갖고 토론도 하고…….그럴려고 시작 했다.각자 책을 읽고 이야기도 하고 아이의 발표력도 길러주고…내가 이 책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하니 아이의 아빠는 “웬 철학?…아…….어지럽다.난 요즘 책 읽을려니 머리가 어지럽네!!”이런다.그래도 칼을 뽑았으니 끝까지 읽어보자!!다짐을 하고 아이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각자 읽어 나갔다.아이는 아이의 책을 나는 나의 책을,아이아빠는 아빠의 책을 읽었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첫 장부터 나의 공허함을 알기나 한 듯 잃어버린 자아를 찾으라 한다.사실 직장과 집에서의 이중생활?하기가 쉽지 않았고 이제 슬슬 쳐 가고 있었다.많은 육아서적을 읽었고 그때마다 듣는 충고는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것이다.그러나 나는 내가 없었다.나는 꿈이 없었다.그리고 취미도 없었다!!!!!이 책을 통해 나를 발견해 보리라 생각했다.나를 제대로 알자!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그리고 내 꿈을 어디까지 찾을 수 있고 또한 어디까지 성취해 볼 수 있을까?나의 환경을 돌아보기 시작했다.아직 어떠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내가 나로 살아야지 단순히 엄마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그리고 내 아이의 꿈을 바라는 것이 아닌 내 꿈이 있어야 된다는 것!! 그것은 확실해 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책에 수록된 많은 철학자의 조언들을 통해서…
첫 장이 나를 돌아보는 시간 이였다면 두 번째 장은 나와 너 사이이다.나와 너 타인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많은 네가 있지만 나와의 관계에서 너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나와 남편,나와 아들,나와 딸…나와 시어머니 등등… 그런 나와 너의 관계를 되짚어 볼 수 있었다.남의 대한 배려에 대한 공자 부분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남을 배려하기 정말 쉽지 않기 때문이다.성경에도 내가 대접받고 싶거든 남도 같이 하라는 말이 있다.내가 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접하기는 쉽지 않다.또한 내가 설령 내가 대접 받고 싶은 데로 남에게 대접 했을 경우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그렇지 못하다면 분명 실망하게 될 것이다.많은 철학자들은 이런 부분에서 마음을 비우라 한다.실상 비우기 정말 힘든 부분이다.그것은 비록 사랑하는 남편이라 할지라도 말이다.그래서 더 노력해야 한다고 한다. 버릇을 하나 바꾸는 데는 뼈는 깎는 노력이 있어야 된다고 한다.그렇지 않으면 자기도 싫어하는 버릇하나 고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고 한다.그렇게 뼈를 깎는 노력은 정말 중요하다.그저 그런 사람으로 살아 갈 것인가?좀더 나은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가 여기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앞에서 나를 이해하고 ,나와 너를 이해하였다면 이제 우리를 돌아볼 차례이다.
우리라는 말은 참으로 좋은 말이다.그러나 대중에 의한 많은 피해 또한 우리가 감수해야 되는 문제이다.우리가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만드는 많은 문구를 본다.그러나 우리는 요즘 어떠한가?과연 더불어 잘 살기 위해서 나는 너는 어떤 일을 하는가 하는 것이다.나는 이기주의다.너도 이기주의다.그럼 우리는 이기주의인가 아닌가?바로 이기주의다.그래서 그러면 안 되지 않느냐는 많은 광고가 쏟아져 나온다.노자의 덕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덕이라는 것을 길러야 한다.그래야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진정한 우리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 같다.군자는 덕의 정치를 해야 하고 우리는 그 군자의 덕을 볻받아 내 이웃을 우리로 같이 살아 갈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우리의 모습 속에서 안타까움을 본다.그래도 우리 아이들과 나의 작은 실천 하나로 또한 희망도 본다.아직 우리에게는 희망에 있기에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것 아니겠는가!!
나를 이해하고 너를 이해하면 우리는 우리를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정말 우리에게 철학이 필요하다고 말해 주고 있다.단순히 철학을 넘어 각자 개인의 삶을 돌아보고 남을 이해하고 우리를 이해하는… 이제 마무리 할려고 한다.아이와 책 읽기 하면서 시작한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정말 나에게 필요한 책이었다.공허함에 몸부림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내가 우울증인지 아닌지도 분간하지 못할 나의 성격변화 등을 일깨워 주고 따뜻한 마음을 가득 담아 책을 덮을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좋은 책을 찾아 아이들과 공감 할 수 있다면 우리 가족의 목요일 책 읽기 시간은 앞으로 더 많이 발전되고 아이들도 성장하고 나와 남편도 성장하는 좋은 시간이 될 것 같다.이 시간에 만난 강신주 작가의 다른 책도 조금씩 읽어 볼 생각이다.이 사람이 말하는 철학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조금 더 알고 싶다.
그러면서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도 구체적으로 설계해 보고 좀 더 나은 직장인으로 또한 엄마로 아내로 살아가는 삶을 살고 싶다.그저 그런 삶이 아닌 그저 그런 보통의 엄마가 아닌 그저 그럼 아내가 아닌 뭔가 깊이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입상 이*리 국어교육과 도서: 철학이 필요한 시간
독후감: 철학이 필요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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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정신없이 삶의 레이스에 합류해 뛰다보면 어느 순간 ‘결승선이라는 게 어디 있지?’하는 의문을 갖게 되는 순간이 있을 수도 있고,지독한 아픔에 몸서리치며 상처를 어찌해야할 지 몰라 비명을 지르게 되는 순간을 만나기도 한다.누구에게나 아픔은 있다.환부를 정확히 아는 이건 모르는 이건,아픈 것은 매한가지나 도무지 이 거추장스러운 것을 어찌해야할 지 몰라 소리 없이 울고만 있거나 우는 얼굴 위로 또 다른 가면을 덧씌우는 일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괴로운 상처,허나 모든 상처에는 빛이 숨어있기 마련이다.그 상처를 곪아터지게 남겨둘 것인지, 아름다운 재생의 빛으로 다시 태어나게 할 것인지는 온전히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강신주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그 모두에게 필요한 책이다.
내가 괴로워 견딜 수 없을 때,아파죽겠는데도 도움을 요청할 수가 없을 때 찾는 것은 바로 음악과 책이다.음악과 책은 각기 조금 다른 역할을 한다.음악은 ‘공감’의 역할을 해주는 따뜻한 친구다.‘그래그래,힘들지?괜찮아.’하며 안아주고 함께 울어주는 그런 친구.무조건적 공감으로 감정을 어루만져주는 것이 음악이라면,책의 경우는 조금 야속한 친구다.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조곤조곤 자기 생각을 이야기해주며 ‘판단’하고 필요한 경우 ‘질책’하며 나를 다그치는 것이다. 처음엔 당황스러움에 울음을 그치게 된다.그 뒤에는 슬슬 미운 감정이 들더니 급기야 원망스럽고 다시는 보기 싫어지기도 한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금 같은 상황에 처해지게 되거나 조언을 듣고 바뀐 나를 볼 때에는 슬그머니 그 친구의 말이 떠오르며 그제야 고마운 마음이 든다.결국 다시 그를 찾아 회포를 풀며 나의 속 좁음을 인정할 때,그는 그저 빙긋이 웃으며 나를 안아줄 뿐이다.특히 인문학 도서가 그렇다.그들은 결코 나를 위로하지 않는다.오히려 힐난하는 때가 더욱 많다.시시콜콜 잔소리하며 인간을 다 아는 듯 이야기하고 인정하기 싫지만 맞는 말을 할 때는 그렇게 얄밉다가도 결국 마지막 순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큰 품으로 세상을 끌어안으며 치유해주는 것이다.그래서 나는 항상 고뇌할 일이 생기면 책을 펼쳐들곤 했고,신기하게도 그 때마다 상황에 딱맞는 책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다.이번에도 역시 그랬다.생각 없이 펼쳐든 책의 머리말에서 발견한 ‘삶의 고뇌가 쌓인 만큼 타인의 고뇌가 읽힌다고 했던가요?’라는 저자의 말이 콕 박혔다.수세기 전 사람이 내게 보내는 ‘유리병 편지’험난한 세월의 바 다를 건너온 연서가 가져다주는,고통스럽지만 숨은 감미로움을 지닌 말들.나는 위로받고 싶지 않다.이것이 내가 철학을 찾는 이유이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에는 48명의 동서양의 철학자가 등장하여 앞 다투어 이러쿵저러쿵 지금의 우리를 놓고 이야기한다.어떻게 우리보다 훨씬 오래전 살았던 그들이 현대의 우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그것은 그들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하나하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동네아저씨처럼 ‘이 녀석,그게 고민이구나?나도 그런 생각 다 했었어~’하며 쓰다듬어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내가 지금 치열하게 하는 생각들을 그들 역시 보다 젊었을 때 함께하며 나처럼 괴로워했던 것이다.보다 먼저 고민한,보다 깊이 사유해본 사람으로서 그들이 조용조용 전해주는 이야기는 내게 깊은 공명을 주었다.물론 모든 생각이 나와 같은 것도 아니고 깊은 사유의 결과라 할지라도 어떤 부분에서는 동의할 수 없는 것들도 많지만,이곳에 존재함으로 인해 그들 역시 같은 문제로 괴로워했고 세상과 인간에 대한 수많은 배반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이해해보려 노력하는 그 자체가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이다.사실 우리는 그저 어느 장난기 많은 절대자에 의해 이 무질서 속에 던져진 것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고 명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 외에는 절대적인 진리도 있을 수 없다.심지어 지금은 루카치가 말했듯이 별이 빛나는 창공을 바라보고 지도를 찾아 갈 수 있는 시대마저 지나버렸다.계속되는 기술의 진보와 욕망의 이상팽창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쟁들은 우리를 지치게 만들고 허무주의로 밀어 넣는다.허나,우리는 인간이 아닌가?그럼에도 끊임없이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알 수 없는 그 곳을 향해 마지막 순간까지 불멸에의 손을 뻗는 인간.이 눈물 나는 본능이 인간의 가장 기특한 점 아닐까?확실히 현대는 철학이 길을 잃은 시대다.책 속에서도 끊임없이 언급되듯 ‘인문학의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는 곧 ‘현실의 위기’와도 맞닿아있다.현실 속 우리는 물질은 풍요로울지 모르나 정신은 빈곤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육체의 병은 물질로 치료할 수 있으나 정신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곳은 없다.아니,사실 사람들은 치료해야한다는 생각조차 가져보지 못하는 것 같다.상처를 건드리면 당연히 따갑고 아프다.하지만 치료를 위해서는 아파도 참고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여기,당신을 위해 메스를 든 사내가 있다.이제 당신의 마음을 치유할 시간이다.아프다면 울음을 터트리고 비명을 질러도 좋다.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어서기 위한 과정임을 그대가 느낄 수 있길.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전체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주제가 자아에서 타자 그리고 사회의 관계로 확장되는 형식이며,어려운 얘기지만 풍부한 예시와 친절한 문체로 어렵지 않게 풀어 설명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읽히기 때문에 철학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게끔 한다.그러면서도 깊이를 잃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강점이다.또한 각각의 소주제들마다 동서양을 넘나들며 철학가들을 악수하게 하는 부분들에서 작가의 통찰력에 감탄하였다.48개 꼭지의 이야기들은 다 다른 주제인 것 같지만 결국은 하나의 큰 의미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어떤 이론을 다루든 긍정적으로 풀어내고 인간을 감싸 안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이다.이제 사유의 바다로 함께 빠져들어 보자.
‘1부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에서는 나의 내면을 살펴보고 맨얼굴을 찾아 솔직함에 한걸음 다가가는 시간을 갖게 된다.첫 장부터 내가 가장 사랑하는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의 이야기를 담아내어 편지를 열어보는 설렘을 더욱 키워주었는데, 니체를 선두로 심리학,철학,심지어 종교까지 아울러 다양한 분야와 시대의 지성들의 목소리를 따라 전개해나간다.첫째 장에서 그들은 ‘진짜를 살라’하며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라’고 이야기한다.나의 자유는 진짜 자유인가,내가 욕망하는 것이 진실로 소망하는 것인가,나의 삶이 진정 주체적인 삶인가 등의 끊임없는 질 문세례는 잠들어있던 나의 사유를 깨우고 진지하게 나와 삶을 생각해보게 만들었다.하이데거에 따르면 ‘생각’이란 ‘낯섦’에서 오는 것이다.이러한 질문들이 낯선 것을 보면 어지간히 진지한 성찰 없이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살아온 모양이다.나는 지금 왜 살아가는가?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일상을 영위하는가?과연 현재를 다시 한 번 살아도 될 정도의 삶을 살고 있는 걸까?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반석이 되어야 그 위에 진정 주체적인 나의 세계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책을 덮고 난 지금도 사실 질문들에 이렇다 할 대답을 떠올릴 수 없어 자괴감이 든다. 아직 나에게 삶이란 존재하기에 주어진 몫이며 내가 추구하는 가치,나를 진정으로 즐겁게 하는 미와 선을 욕망할 수 있는 공간 이상의 의미는 찾기 힘들다.하지만 스피노자가 말했듯이 ‘모든 고귀한 것은 힘들 뿐만 아니라 드문 것’이 아니겠는가?이렇게 생각의 물꼬를 튼 뒤에는 그렇다면 삶의 형태는 어떠한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바통을 넘겨받은 다음 철학자들은 우리들의 삶이 관계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나와 내가 가진 모든 것은 공하다고 이야기한다.이통은 우리 마음의 고체인 얼음을 녹여 둥근 그릇을 수용하고 유연히 흘러 상대와 소통하라 이르고,나가르주나는 모든 존재는 스치는 인연 안에 존재하는 것이며 다가왔다가도 멀어지는 것이니 집착하지 말라 이른다.이것을 저자는 선입견,젊음에 대한 집착 등에 대입시켜 자연스럽게 타인과 시간을 받아들이고 수많은 인연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길 것을 당부한다.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동안 열풍’이 불고 있다.다들 제 2의 진시황제라도 된 것처럼 불멸을 욕망하고 순간에 대한 집착에 스쳐가는 인연이 만드는 아름다운 시간들을 보지 못한다.늙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다.글을 읽으면서 인간의 주름이란 마치 수많은 인연들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나이테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탱탱한 피부는 잃겠지만 그 대신 우리를 가득 채워준 소중한 삶의 깨달음과 인연들이 있지 않은가?제발 순간에 매몰되어 진정 소중한 것을 잃지 말자.또한 이 장의 전반에 걸쳐서 가장 강조되는 삶의 자세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으로 서학의 대표인 기독교와 대비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간다.기독교가 가진 종교적 정신은 초월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겨 고난의 삶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면 우리의 옛 선비정신인 진인사대천명은 ‘사람의 일을 모두 다 하고,천명을 기다린다.’는 의미로 초월자에게 기대기보다는 자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보다 주체적인 위기대처 방식이다.높은 누 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비록 실패한다고 해도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 상황을 직면하고 타개해나가려는 것이다.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도하는’대신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모든 일을 다 하고 천명을 ‘기다리는’것.어둑한 밤에 눈을 들어 높은 곳에서 창밖을 바라보면 대한민국의 지상에는 온통 빨갛게 상징들이 빛난다. 종교의 존재 자체가 어긋났다는 것이 아니다.분명 성인들은 위대하고 그들의 뜻은 높다.허나 현재 대한민국에서 종교의 모습은 맹신에 가깝다.과연 우리가 종교를 통해 삶을 완성시키려하는지,종교가 삶을 완성시켜주길 바라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할 것이다.
다음으로 ‘2부 나와 너의 사이’에서는 주체와 타자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삶을 통찰한다.우리는 예부터 타자와의 관계를 지나치게 의식해왔다.‘체면’이라는 단어만 해도 그렇다.남을 대하기에 떳떳해지기 위해서 우리는 페르소나를 덧씌운다.이는 우리나라가 유학을 국교로 삼았던 ‘동방예의지국’인 것과 연관이 있다.저자는 우리가 숭상해 마지않았던 유학의 대표 주자이자 예를 중시했던 공자의 일화를 들어 ‘이래도 우리사회가 추구하는 것이 과연 예인가?’하는 물음으로 유쾌하게 역설적 풍자를 던진다.몸이 불편하나 비어있는 노약자 지정석에도 앉지 못하는 아이,그리고 혹여나 앉는다면 그런 아이를 아니꼽게 바라볼 어른들.여기에 배려라곤 눈곱만큼도 없지 않은가?상대를 배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예가 아니던가?목적이 전도되어 예의 형식만이 남아있는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진정한 ‘동방예의지국’이 되기 위해 선행되어야할 것이 과연 무엇일까?주희는 인의예지라는 씨앗이 측은지심,수오지심,사양지심,시비지심의 새싹을 피운다고 이야기했으며,정호는 삶은 고통이자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라는 결론을 제시하며 모든 존재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어야 유학의 정점인 인에 도달할 있다고 보았다.
이들은 모두 동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이들의 윤리적 사유의 뿌리를 찾아 보면 인간의 본성을 발견할 수 있다.그러나 가지고 있는 본성만으로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데 무엇이 이루어지겠는가.바로 이점에서 정약용의 통찰력은 매우 비범하다하겠다.윤리적 선악은 본성에 의한 도덕 감정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결단하여 의지를 ‘실천’하는데 에서 비로소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우리의 실천을 통해서만이 어떤 것을 이뤄낼 수 있고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결국 타자와의 관계에서도 우리는 배려심을 가지고 ‘예’의 진짜 의미를 재조명하며,도덕 감정에 의거한 선악판단이 아니라 주체적 실천을 통한 윤리적 결단을 해야 할 것이다.또한 한나 아렌트의 아이히만 이야기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들이 언제 악으로 변하는가에 대해서 깨달음을 준다.‘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가지’어릴 때부터 많이 들어온 이야기이다.나서면 안 된다,조용히 있어라.그러나 아렌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생각 없이 따라가는 것을 경계한다.‘순전한 무사유’의 책임을 지울 수 있다는 것이다.사유 없이 그저 상부 혹은 여론에 휩쓸리는 삶에서 우리는 누구나 ‘악(惡)’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특히나 요즘에는 인터넷이 발달함과 동시에 사회적 쏠림현상이 가중되고 있다.일부 지식인들이 의견을 피력하면 대중들은 그들의 의견이 마치 자기 것인 마냥 생각하고 따라가는 것이다.사유의 노력이 없는 상태에서의 대중은 피리 부는 소년을 따라가는 마을 사람들과 같다. 아이히만의 경우에는 피리 부는 소년이 히틀러였을 뿐인 것이다.‘더불어 살아가는 삶에서 사유란 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는 권리가 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만 할 의무이다.’이 부분은 내게 부끄러움이 되어 가슴에 날아와 박혔다.
마지막으로 ‘3부 나,너,우리를 위한 철학’은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정치·경제·사회적인 부분에서 과거와 달라진 지금,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들을 예리하게 통찰하고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향해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점점 우리 삶의 터전을 상징하는 말들은 각박함,삭막함,획일적, 기계적,소외 등의 팍팍한 어휘들로 변해왔다.지금 주변을 돌아보면 어떤가?총 천연색으로 아기자기하게 이뤄졌던 세상은 어느 순간 무채색으로 변해있다.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필요한 것은 뭐든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이 완벽한 세계에서 우리에게 부족한 게 과연 무엇일까?이 장에서 만날 수 있었던 여러 키워드 중 해답에 가장 가깝다고 여겨졌던 것들은 ‘웃음,아우라,소통과 공감,놀이’이다.이들의 이야기를 엿들어보자.베르그송은 딱딱하고 반복적인 모든 것에 대한 저항의 수단으로 웃음을 내놓는다.도시한복판에서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모두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쫓기듯이 어디론가 뛰어가고 있다.이들에게 웃음을 찾아 줄 수 없을까?이에 벤야민이 끼어든다,현대는 아우라 상실의 시대라고.이들이 어떤 것에서 아우라를 느끼고 충분히 감동할 수 있다면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더욱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이에 수단과 목적이 일치되지 못하고 심지어 목적전도까지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혼돈의 상황에서 하위징아가 ‘호모 루덴스’를 이야기하며 말을 거든다.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이 정말 행복을 위한 삶인지,당신은 놀이하며 살고 있는지 묻는 것이다.삶은 커다란 놀이이며 우리는 즐기며 살아갈 수 있다고.또한 인간소외가 이제 더 이상 생소한 소재가 아니게 된 우리 사회에서 왕간은 소통과 공감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주며 조곤조곤 타이른다.놀랍게도 다른 무엇도 아닌 우리의 본성에 충실할 때야말로 타인과의 진정한 공감이 가능하며 삶의 의지를 북돋을 수 있다는 것이다.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은 처음으로 회귀해 자아를 알고 주체적인 삶을 찾아가라는 메시지와 일치된다.모든 이야기들은 하나의 바다를 향해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다.우리 모두의 소망스러운 삶과 행복이 존재하는 그 곳으로.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는 듯하나 인간은 크게 변하지 않는 듯하다.천 년 전의 사람들이나 현대의 철학자들이나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말이다.지금 우리가 존재하는 이 공간은 과도기를 겪고 있다.그 혼란 속에 던져진 우리는 방황하며 외로워할 수밖에 없다.그러나 이 순간에도 마음을 담아 끊임없이 유리병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어 상처는 치유의 빛을 가진다.그들을 만나야한다.지금은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다
입상 김*아 건축학과 도서: 철학이 필요한 시간
독후감: 페르소나 드러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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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베트 살란데르는 놀라울 정도로 냉정해 보이는 여자였다.하지만 아르만스키가 가장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은 그 점이 아니었다.… 바로 자신의 가장 유능한 정보원이 거식증 환자처럼 비쩍 마른 데다,엄청 짧게 커트한 머리에 코와 눈썹에는 피어싱까지 한 창백한 여자라는 사실이었다.그녀는 목에 2센티미터 가량의 말벌 문신이 있었고,이두박근 둘레에는 끈 모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가끔 탱크톱을 걸치고 나타날 때도 있었는데,이럴 때면 아르만스키는 그녀의 견갑골 위에 좀 더 큼직한 용 문신이 새겨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그녀의 모발은 원래 적갈색이었지만,까마귀처럼 새카맣게 물들이고 다녔다.하드 로커 떼거리들과 일주일 정도 신나게 어울려 다니다가 불쑥 나타난 듯한 모습 이었다.’ -『밀레니엄 1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중에서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소설 밀레니엄의 한 단락이다.전례가 없는 독특한 인상과 성격을 가진 이 반사회적인 여주인공 리스베트는 3부작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중심인물로써 수많은 독자들을 밀레니엄이라는 소설에 매료시킨 장본인이다.이 소설은 발간 직후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국가,영미권 국가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영화로도 제작되었다.스웨덴판 영화는 이미 3부작이 다 개봉되었고 작년 말 미국에서도 데이비드 핀처 감독에 의해 1부 ‘TheGirl withtheDragonTattoo’가 영화로 제작되었다.할리우드 버전의 여자주인공 역에는 무명의 여배우 RooneyMara가 캐스팅 되었는데 파격적인 외모변신과 캐릭터를 완전히 소화했다는 평을 들으며 그 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전작인 스웨덴판 영화의 여자주인공 역시 뛰어난 연기를 보였고 불과 1년 전에 개봉이 되었다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많은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 영화에 캐스팅되기까지 두 달 반 동안의 오디션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두달 반 동안 대체 감독은 무엇을 그녀에게 보고 싶었던 것일까.감독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난 한 눈에 그녀가 리스베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하지만 내 주변의 제작진들에게 또 무엇보다 그녀 자신에게 그것을 깨닫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라고 말했다.감독 자신을 설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우가 그 인물에 몰입하는 시간을 그는 만들어 준 것이었다.RooneyMara는 처음에는 그 역할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자신이 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더 적합할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한 거였다.자신은 무명배우였고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유명한 감독이었으며 이 영화 또한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각색한 초대형 블록버스터가 될 예정이었다.감독과의 첫 오디션 후 제작진이 자신을 진지하게 주인공역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책을 읽기 시작했고 다 읽고 난 후에는 무조건 저 역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2달 반 동안 감독은 연기는 물론 얼핏 보면 황당하게 여겨지는 것까지 그녀에게 시켰다.하루는 그녀에게 연락한 감독이 술을 먹고 잔뜩 취해보라고 요구했단다.평소에 술을 먹지 않던 그녀는 그날 밤새도록 구역질을 해야만 했다고 고백했다.왜 그런 황당한 요구를 감독이 했다고 생각하느냐고 인터뷰어가 묻자,그녀는 ‘아마 모두들 나를 그 캐릭터에 적합하다고 믿기 어려워했던 것 같다.나 자신도 그랬으니까.’라고 답했다.실제로 그녀는 배우를 할 만큼 아름다웠고 긴 갈색머리를 가진 가녀린 여자였기에 그녀의 모습에서 리스베트의 거칠고도 기묘한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려웠다.마침내 주인공역을 낙점 받고 5일 뒤 감독은 그녀를 소설의 배경이 되는 스웨덴으로 보낸다.그 곳에서 그녀는 소설 속 주인공이 되기 위해 언어훈련,오토바이 타는 법,킥복싱 등등 배우며 역할에 몰입해 갔다.리스베트라는 가면을 쓰기 위해 그녀는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당시 그녀는 그 캐릭터에 너무 큰 매력을 느꼈고 스웨덴이라는,아무런 지인도 없는,낯선 땅에서 영화에만 집중하다보니 영화를 촬영하는 일은 아무리 육체적으로 힘들고 감정적으로 어려운 장면도 잘 헤쳐 나갔다.문제는 영화를 다 찍고 난 뒤의 일이었다.이제는 가면을 벗어야할 시점이었던 것이다.영화 촬영을 끝내고 며칠 뒤 그녀는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갔는데 식후의 파티에서 한 남자가 춤을 같이 추자고 권해왔다고 한다.미국인들의 문화상 결혼식 후의 댄스는 하객 중 누구하고도 출 수가 있었고 상대가 요청해오면 싫어도 싫은 내색 않고 흔쾌히 받아주는 것이 예의이다.그런데 그녀는 그 순간 그 남자의 목을 두 손으로 잡아쥐면서 ‘날 내려놔.아님 내가 당신을 해칠거야.’라고 말하고는 자신도 놀랬다고한다.이방인에게 늘 보호막을 두르고 있는 리스베트가 자신도 모르게 나왔던 것이다.그녀는 1년이 넘는 시간동 안 리스베트의 가면을 쓰고 있었고 그 캐릭터는 전례가 없이 어두운 캐릭터였다. 영화가 촬영되는 내내 그녀는 온 몸에 문신을 하고 피어싱을 한 불량청소년 같은 외모로 미소조차 짓지 않고 사람에게 두터운 벽을 치고 살아가는 24살 여성을 연기해 왔으니 불과 며칠 만에 그 가면을 벗기란 불가능 했을 것이다.그녀 스스로도 캐릭터에 몰입하던 순간보다 빠져나오는 순간이 자신의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고 고백했다.물론 그녀는 그 캐릭터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자발적으로 그 가면을 썼으며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페르소나라는 단어는 아주 오래 전 로마시절 연극 무대에서 배우들이 가면 즉 페르소나를 쓰고 연기를 했다는 데서 유래된 단어이다.현대에 와서는 두 가지 의미로 주로 사용되는데 하나는 영화분야에서 감독이 자신의 분신이자 특정한 상징을 표현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배우를 뜻한다.나머지 하나는 철학에서 이성과 의지를 가지고 자유로이 책임을 지며 행동하는 인격을 말한다.내가 앞에서 말한리스베트 이야기는 전자의 의미보다는 후자의 의미가 더 강하다.이런 경험은 배우가 아니어도 사람이라면 한번쯤 경험하게 되는 일인 것 같다.몰입하게 되는 정도와 시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사람에게 있어 페르소나란 엄청난 존재인 것이다.초등학교 시절 나는 교회와 학교 내에서의 내 모습 차이에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다.학교에서는 반장에,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는 활기차고 적극적인 모습인데 어쩐지 모르게 교회만가면 앞에 나서길 두려워하는 소심한 아이가 되었던 것이다. 수도 없이 그 틀을 깨보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이미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교회에서 나의 모습은 늘 말이 없었고 수줍었으며 교회 친구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아이가 아니었다.학교에서는 리더의 가면을,교회에서는 소심한 아이의 가면을 번갈아 써야만 했다.내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선택할 여지가 지금은 있어 보이지만 그 때는 본능적으로 그렇게 됐기 때문에 선택하고 말게 없었다. 그 때는 교회에만 가면 내가 왜 이렇게 주눅이 들어있을까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내가 뭔가 이중인격자인 것 같고 그래서 남들이 알기 전에 꼭 고쳐야만 할 나의 치명적인 단점이었다.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난 더욱 움츠려 들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난 이중인격자였던 것이 아니라 다른 가면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이미 학교에 가기 전부터 나는 그 가면을 쓰고 있어서 교회라는 장소에서는 다른 가면을 꺼내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교회에서 쓴 가면의 햇수가 학교에서 썼던 가면보다 더 오래되고 나와 함께 그 장소에서 머물렀기에 도저히 벗겨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더 많은 페르소나를 가지게 되었다.선생님,교수님들 앞, 소위 나보다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어른들,에서 쓰는 가면,학교 선배들 앞에서 쓰는 가면,부모님 앞에서 혹은 가족 앞에서 쓰는 가면 그리고 친구들을 대할 때 쓰는 가면.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나는 자유자재로 그 가면들을 꺼내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나는 심지어 내가 그러는지도 깨닫지 못했다.어느 날 영화관련 강의를 듣던 중 교수님께서 페르소나에 대해 언급을 하셨고 그 때 무릎을치며 ‘아 ,맞다…’라고 깨달은 것이다.그 교수님은 감독들과 배우의 관계를 들며 페르소나를 이야기 하셨고 많은 감독들이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특정 배우를 그들의 페르소나로 사용한다고 했다.사람들에게 페르소나는 없어선 안 되는 존재라고 교수님은 말하셨다.어떻게 맨얼굴을 드러내놓고 사냐고 하시면서 말이다.심지어 맨얼굴을 드러내며 사는 것은 잔인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맨얼굴만 처음부터 보여준다고 생각해보라.사람들의 인간관계가 어떻게 형성될 수 있을까.모든 사람들은 마음 한 구석에는 위험하고 불완전하며 우울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그런 모습들은 가족들 혹은 자기 혼자 있는 시간에만 드러나는데 그런 것이 맨얼굴이라고 생각하고 만인 앞에 드러낸다면 얼마나 세상이 힘들어지겠는가.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된 에픽테토스라는 철학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이고,다른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이 아니다.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은 믿음,충동,욕구,혐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이다.반면에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들은 육체,소유물,평판,지위,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자신이 행하지 않은 모든 일이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p.38』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전자는 나의 맨얼굴과 관련된 것이고 후자는 페르소나에 관계된 것이다.이 사람은 둘 다 필요하다고 내게 말해주고 있다.우리가 맨얼굴을 드러내야할 때 페르소나를 쓰고 반대로 페르소나를 드러내야 할 때 맨얼굴을 보여주려 해서 우리의 삶에서 겪는 고통과 갈등이 유래 한다고 한 것이다.
최근 나는 인관관계에 회의가 들어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않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사람에게는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면이 있는데 내 친구 중 한 명이 그 선을 넘으려한다고 나 스스로 판단했던 것이다.그 친구는 날 너무 꿰 뚫어보고 판단하는 것 같아 친구를 피하고만 싶었다.나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쟤는 원래 그래,그래서 저렇다’는 둥 이렇게 말할 것만 같았다.그에 비해 나는 그 친구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는데도 말이다.비단 그것 뿐만이 아니라 예전에는 고민이 생기면 사람에게 다 털어놓기 마련이었는데 요즘은 어쩐 일인지 털어놓을 사람이 점점 줄어들어만 간다.말이란 무서운 것이어서발도 달려있지 않은데 내가 막을 틈도 없이 내 건너 건너편의 사람에게 까지 내 감정의 기복이 전해지는 모습을 보며 후회를 하곤 했다.그래서 내가 내린 어리석은 결론은 최대한 말을 줄이고 사람들에게 한 가지 가면만 쓰고 대해야겠다는 것이었다.근데 여기서 말한 한 가지 가면은 가면의 수를 줄인 다는 것이 아니라 가면의 경계를 아주 확실히 정해서 이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이 가면만,저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가면만 보여줘야겠다는 말하자면 아주 머리 아프고도 어리석은 결론에 이른 것이다.가면을 겹겹이 써서 아마 내 맨얼굴을 보려면 세 겹 정도의 가면을 들춰내야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느껴진 것이다.조금 기분이 나빠도 웃어버리고 피곤해도 괜찮다고 하고 화가 나도 내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그런 가면 말이다.그렇게 함으로써 난 안전하다고 생각했다.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그건 내 본모습이 아니니까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말이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의 저자는 맨얼굴을 드러내야 한다고 말한다.꼭 고름을 빼기 위해 상처를 찢어내야 하듯이 맨얼굴을 드러내야 한다고 말이다.우리가 우리의 아픔을 숨기고 내면의 세계로 파고들면 들수록 그 아픔은 짓물러지고,썩어져갈 것이기 때문이다.처음에는 가면을 쓰는 것이 당연하다는 교수님과 가면을 벗어 맨얼굴을 드러내는 노력을 해야한다는 저자 중 누가 옳은 것일까라고 생각을 했다.피상적으로 보면 정반대의 뜻 같지만 결국은 동일한 것을 말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나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것.세상을 살아가며 가면을 써야할 때도 있을 것이다.사회생활에 있어 그런 건 너무도 당연한 것일 테니까.하지만 적어도 몇 명에게는 맨얼굴을 보여야 한다.아픈 모습,약한 모습 때로는 지저분하고 더러운 모습까지도.내가 허락한 이 몇 명은 충분히 나의 그런 모습도 받아들여줄 것이다.왜냐면 나도 그들의 추한 모습을 보았고 주저앉은 모습을 보았지만 실망을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도했기 때문이다.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에 말이다.
입상 윤*섭 예술문화영상학과 도서: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독후감: *단 한 번의 특별한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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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가난하든 돈이 많든, 왕에서부터 걸인까지 공평한 기회를 부여 받는다. 이것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본인에게 달려있다. 누구의 명령도 없고 지름길도 없으며 정해진 길도 없다. 그렇기에 모든 나이대의 사람,모든 인생의 부분 부분에서는 항상 자신이 ‘과연 이 길이 옳은 것인가’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 누군가가 답을 제시해 줄 수 없다.모든 것은 자신의 결정에 달렸고,그것에 따른 만족과 후회의 결과는 자신이 평가하기에 달린 것이다.
‘누구의 인생도 카피하지 마라,스스로 인생의 멘토가 되어라’라고 하는 모 카드 회사의 광고 카피는 내 평소 가치관과 제대로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이 책을 읽기까지,많은 망설임이 있었다.
힐링과 조언,멘토,강의가 넘쳐나는 요즘,고리타분한 이야기가 반복되는 그런 늙은 책이 아닐까 하는 짐작 때문이었다.
하지만 책에서 제시하는 많은 ‘인생의 현자’들의 경험담은 흔해 빠진, 이미 살면서 지칠 대로 들은 조언들과는 분명 다른 점이 있었다. 저자는 그들의 인생을 평균을 내어 제단하고 자신의 관점으로 재구성하거나 하지 않았다. 생생하게 현자들의 경험을 구어체로 전달하려 하였고,그들의 지혜를 최대한 날것의 그대로 옮기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히 보였다.
올해로 만 25세가 되는 나도,갓 입학하는 20살의 청춘들을 보면 마치 팔순의 할아버지가 된 듯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들이 많다.알량한,5년 남짓의 대학생활 속에서도,그 속을 거닐고 부딪히며 생존해 온 나의 경험에서 나온 노하우들은 분명 후배들에게 가치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현자들에 비하면 몇 년 살지 않은 나조차 이러한데,이미 결혼생활이 70년이 넘어가는 부부,자신의 76살 먹은 딸과 카드놀이를 하는 99세의 할머니, 늙어서도 등산을 포기하지 않고 현재에 적응하는 80살의 할아버지,외의 여러 현자들은 얼마나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가치있는 노하우’가 많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라는 틀과 가족이라는 틀,삶이라는 틀의 구속에서 벗어나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단계에 다다른 그들만이 볼 수 있는 인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내가 잊고 있던,하지만 어렴풋이 알고 있던 인생의 단면들을 다시 드러내 주기에 충분했다. 어찌되었건 인생은 한번 뿐이고 외길이지 않은가.경험으로 농축된 그들의 언어는,어느새 내가 놓치고 있는 가치들을 콕콕 찔러 끄집어내고 있었다. 경험으로만 배울 수 있는 그런것 말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과거엔 세대차이라는 것이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사이의 큰 화두였다. 기성세대는 고리타분하고 보수적이며 가부장적인,근면성실하고 단조로운 폐쇄적인 삶을 살아가는 다분히 역도에 충실한 그런 인물들이었다.반면 젊은 세대는 기존의 가치에 반하고,남과는 다름을 추구하며,종래의 가치관에 순응하기를 거부하는 도전적인 세대였다.하지만 현재에는 어떠한가.스마트폰으로 자식과 카카오톡을 하고,엄마는 애니팡으로 아들과 게임스코어를 경쟁을 하고,아빠가 딸의 페이스북에 댓글을 남기는 그런 젊은 시대로 바뀌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전 세계 어디를 통틀어 보아도 한국의 기성세대 만큼 세상의 변화에 빨리 적응하는 세대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이처럼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가족에 대한,자아에 대한,인생에 대한 가치관도 그에 따라 빠르게 변한다.
요즘의 20대는 사회가 주목할 만큼 팍팍하다.그들의 세태는 이미 88만원 세대 라는 이름으로 2000년대 초부터 주목받아왔고,청년실업과 반값등록금,결혼대란 등의 수많은 젊은 층의 사회문제를 안고 살아간다.그들이 느끼기에 이미 세상은
반백년 산것 만큼 지치고 힘들고 격동의 투성이다. 그런 20대를 보며 사회는 동정을 하고 충분히 이해를 하며 같이 고민한다.정치 사회면에 20대가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것은 7,80년대 대학생의 ‘어떤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기성세대는 자신이 경험한 보릿고개와 끝없는 가난의 대물림을 피하기 위해 자녀를 위해 인생을 헌신한다.그렇기에 생겨난 현대의 어두운 단면인 니트족,캥거루족,헬리콥터맘 등은 사회문제이기도 하고,의욕 없는 한심한 젊은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기성세대가 만들어낸,인생의 목표에 대한 결과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현자들이 이야기 한 것 중에 자녀와 친구가 되어라,늙는 것을 슬퍼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여라 라는 부분에서 나는 기성세대의 인생의 황혼에 대해 관조하게 되었다.베이비부머 세대인 부모님 세대는 사회가 부여한 성역할과 가정에서의 역할,부모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근면한 인생을 살아왔다.책에서 인생의 현자들이 언급한 사례들에서 볼 수 있는 서구적 ‘가족주의’와는 많이 다르지만,자식에 대한 내리사랑 만큼은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같지 않은가. 책에서 들려주는 많은 현자들의 ‘자식과의 소통 부재에 대한 후회감’‘자식을 편애를 해서 미안했던 경험’‘인생을 돌아보니 자식과의 관계가 멀어져 쓸쓸해진 경험’등을 보고 있자니,현재의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나의 부모님은 어떠한가.
대학에 와서 최신의 지식을 배우고,많은 것을 머리에 넣는 동안 나는 부모님은 단지 꽉 막혀있는 소통이 되지 않는 존재,이제는 내가 보살펴야 할 ‘세상 물정에 어두운’존재 로만 생각 하고 있었다.단 한 번도 부모님과 ‘인생의 친구’가 되어보려고 했던 적,부모 자식이라는 틀을 벗어나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하려고 한 적, 부모님의 남은 인생의 ‘꿈’이 무엇인지 들으려고 노력 해 본적,이런 것들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 나를 많이 반성하게 했다.
세상과,나의 부모님은 아직도 내리사랑으로 자식을 뒷바라지 하느라,당신들의 빛나는 인생에 대해,관조 해 볼 시간조차 없는 분이라는 것을 나는 외면하고 있었다. 현자들의 생의 마지막 한 켠에서 관조해보는 경험담들은,지금의 내가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할지보다,부모님과 기성세대를 이해하는 데에 더욱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관조가 주는 성찰의 미학
인생의 마지막에 서면 나도 내 인생을 정말 철두철미하게 객관적으로 관조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아직까진 호기어린 마음에 자만에 빠진적, 관계에 얽매여 큰일을 그르친적,어떤 성공에 크게 기뻐하며 자랑스러워 한적,이런 것들은 모두 내 인생에서는 다 처음 겪는 변화이기 때문에 비교 대상이 없다. 그렇기에 항상 나는 이런 것들에 대해 과연 ‘옳고 그름의 기준이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빠지게 된다. 사실 이것에 대한 정답은 정말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다는 것은 인생의 ‘진리’라고 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현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열정적으로 이야기 하면서도 저자에게 ‘나의 이야기는 젊은이들에게 그다지 쓸모없을 거야’라는 생각을 가지는것처럼 말이다. 인생을 아무리 오래 살아도 정해진 답이 없다는 것은 이 문장만으로도 와 닿는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우린 ‘이 인생을 어떻게 가꾸어 나가야 할까’라는 진부한 질문에 어떠한 자세로 임해야 하는가?그것에 대한 해답은 바로 ‘끊임없는 관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에서 부각되는 어떠한 사람의 인생,단면,경험담,등은 항상 어떤 위대한 업적을 이룬 ‘위인’에 맞추어진다.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조언이나 인생의 멘토를 바라볼 때에,우리랑은 너무도 다른 비범한 사람들의 인생을 벤치마킹하고,그들의 비상한 재주를 따라하려 노력을 한다.물론 꿈과 목표를 열정적으로,자신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을 따라잡기 위해 열정을 뿜어내는 것은 바람직 한 것일 수도 있다.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 내면의 이야기’이다.정작 우리가 들어보고 소중이 여기고 곱씹어 봐야 할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인 것이다.
이 책을 신랄한 비관론자의 입장에서 보면 ‘별 볼일 없이 나이만 많이 먹은 사람들의 회고록’일수도 있다.그들의 인생은 그다지 특출난 것도,잘난것도,사회적으로 위대한 것도 없다.단지 인생을 오래 살아보니 인생의 후배들에게 할 말이 있는 것이고,꺼내다 보니 할말이 점점 늘어나면서 이야기가 술술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가치 없는 것이 아니다.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생각과 가치관, 재능이 있기 마련이다.
세상에 인구가 60억명이면,천재의 종류도 60억 가지일 것이다.위대한 인생의 가짓수도 그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중요한 점은 자신의 위대한 인생을,인생의 어느 위치에서도 돌아보고 곱씹어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누구에게도 정답은 없고 올바른 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매 순간순간 결정을 해야 하고,만족과 후회의 감정에 대한 책임이 남는다.그렇기에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에 다다라서 20대를 떠올리고 결혼생활을 떠올리고 젊은 날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바로 지금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젊은 날에 젊은 지나간 과거를 그냥 지나간 대로 흘려놓지 않고 끊임없이 관조하고 볼 줄 아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인생의 현자들이 가진 지혜의 근원은 바로 이런 ‘자신의 인생을 관조 할 줄 아는 능력’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를 구성하고 반영하는 것,경험
인생의 현자들이 하는 조언들은 일정부분 수렴하는 부분이 있다.그것은 젊은이의 눈에서 보면 고리타분 할 수도 있고,뻔한 이야기 일수도 있다.물론 나도 일정부분은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막상 인생의 마지막에서 지난 인생을 회고해 보면,‘그 당시에 나라면 다른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라고 누군들 말 하지 못하겠는가. 지금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가 60년을 더 산 뒤에는 별 문제가 아니겠지만,20년 밖에 살지 않은 우리에게 이러한 문제는 여전히 문제다.이것은 인생을 더 산 사람들이 무어라 말하든 바꾸어 줄 수 있는 그런 부분이 아닌것 같다는 소신이 생겼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인생의 현자들이 한 말들이 ‘의미가 없었다’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중요한 것은 그들의 경험에서 나오는 어떤,인생에 관한 통찰력이다.인간은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하지만 불행하게도,인간은 한평생 자신의 생활 환경과 반경,습관 등을 크게 바꾸지 않는다.그렇기에 경험은 지극히 한정적이고 단조로울 수 밖에 없다.그런 단조로운 경험들이 축적되어 한 사람이 형성 되고, 그런 축적된 경험들이 인생의 마지막에 가면 어떤,그 사람만의 확고한 특징을 만들어 내는것 같다.요는 인간은 경험으로 이루어진 산물이라는 것이다.
인생의 현자들은 같은 배경을 가지고 산 사람들이 아니다.저자가 만난 1000명의 사람들은 제각각 수많은 분야에서 만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다.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조언들은 공통분모가 있다.이것은 분명 인간이라면 따라야 할 기본적인 인생의 지침은 있다는 것의 반증일 것이다.이것을 따를 것인지,따르지 않을 것인지는 우리의 숙제다.하지만 난 이 숙제에 주목하고 싶지 않다.더 주목하고 싶은 것은 바로 ‘타인의 경험의 가치’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노인들의 경험담이 무엇이 그리 중요한 것일까,타인의 삶에서 그렇게 까지 인생의 지침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인생의 결정권은 내가 가진 것이니까 말이다.하지만,내 인생에 대한 나의 모든 판단과 결정이 중요한 것만큼,남이 살아온 인생을 관조하는 과정을 들어보는 것이 나의 인생을 얼마나 풍부하게 한다는 것을 이 책이 말해 주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나도 내 주변의 인생의 현자들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가장 처음이 부모님이고,두 번째가 나를 가르친 은사님들이다. 세 번째는 내 또래의 여러 사람들이다.그들이 살아온 인생은 어떠하였고 자신이 돌아본 과거-경험 들은 어떠하였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듣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한번도 타인을 만나면서 그들의 인생에 대한 관조를 들으려 해 본적이 없었다.이 책의 저자는 몸소 실천하며 현자들의 말을 옮겨 쓰면서 나에게 그런 가르침을 주었다.경험의 가치,사람과 사람의 소통에 대한가치,그런 것이 지금의 나와 20대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덮는다.
입상 강*비 식품영양학과 도서: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독후감: 내가 알고 있는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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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 행복합니까?
이 질문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네,나는 지금 아주 행복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너는 참 인생 즐겁게 사는 것 같아.”“넌 좋겠다.긍정적이라서.”라는 말을 항상 들어왔던 내게도 저 질문에 대한 답은 어렵다.행복이란 것의 기준이 모호할 뿐더러,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늘 쾌활하다고 해서 무조건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대학생의 신분이었던 2012년이 지나고 완벽한 백수라는 직업과 함께 시작한 2013년은 초반부터 고된 일의 연속이었다.준비했던 시험에서 불 합격 소식을 듣기도하고,마음을 추스르려 간 여행지의 박물관이나 도서관에서는 어쩜 내가 방문하는 날마다 휴관인지.미리 알아보지 않고 간 내 탓도 있었지만 나의 긍정에너지를 비관에너지로 바꾸기에 충분한 일들이 계속 되었다.마음의 여유를 잃으니 평소에는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의 생채기에도 눈물이 났고,상처로부터 전해지는 고통에 마음까지 아렸다.
취업하는 친구들,어학연수를 떠나는 친구들,시집을 가는 친구들 등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의 유무를 알 수 없는 내 자리를 찾아 비집고 다니는 내 자신이 무척이나 안쓰러웠다.매사에 당당함이 넘치던 모습의 나는 사라지고,가슴에 큰 구멍이 난 채 이리저리 휘둘리는 초라한 아이가 나를 대신했다.이 혼란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자기 계발서를 읽어보기도 하고, 다사다난한 경험을 한 전문가의 강연을 들어보기도 했다.그렇지만 좀처럼 극복되지 않았고,행복을 부정하며 주저앉으려던 찰나 “앞으로 이렇게 살면 덜 힘들지 않을까?”하고 조언을 해주는 책을 만났다.이 책은 삶이 팍팍하게 느껴지는 나와 같은 사람이나 아주 작은 힘에도 곧 부서져 버리는 겨울나무 가지와도 같은 메마른 현실을 사는 사람,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조금만 더 버티면 더 나은 삶이 오지 않을까 생각하며 사는 사람에게 한번 쯤 읽어보라고 추천 하고 싶다. 책의 첫 머리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모든 삶이 정각에 출발하는 건 아니야 모든 삶이 정각에 도착하는 것도 아니지’
남들보다 느린 길을 선택해 그 길마저도 기어가고 있는 내게 정말 큰 위로가 되어준 구절이다.책을 펴자마자 멍해져 버린 머리를 붙잡고 한참을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있었다.속상한 일이 있어도 의연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사로잡혀 억누르기만 했던 서럽고도 복잡한 감정이 눈에서 쏟아져 나왔다. 언제부터 잊고 있었던 것일까.어릴 적의 나는 조금 특별난 구석이 있었다.왜 다른 사람들처럼,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하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걸까하고 생각하며 같은 것을 하기를 죽어도 싫어했다.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초등 학교 시절의 운동회에서 우리학년의 행사로 꼭두각시 무용을 하게 되었다.복장은 한복느낌이 나는 것이면 허락되었지만,대부분의 아이들은 학교 앞 문구점에서 파는 나일론 한복을 똑같이 갖춰 입었고 집안 사정상 혹은 다른 이유로 나일론한복을 살수 없었던 아이들은 침울해했다.그러나 나는 달랐다.같은 것을 입는 것은 싫다며 이미 부쩍 자라 내 몸에 맞지도 않는 한복을 억지로 입고는 무용을 선보였다.터질듯 한 한복을 입고서도 해 맑게 웃고 있는 사진속의 나와 지금의 나는 참 많이 달랐다.무엇이 나를 이렇게 변하게 만들었을까.그렇게도 획일적인 것에 물들기 싫어하던 나인데 지금은 왜 다른 사람의 기준을 내 기준으로 삼아 뒤처졌다 생각하며,내 자신을 동굴로 몰아넣고 있었는지.내가 행복할 권리를 내 스스로 차단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같은 날 같은 시에 태어난 쌍둥이조차도 똑같지 않은데,왜 나와는 다르게 생기고 다르게 살고 있는 사람의 인생과 끊임없이 비교하며,다른 사람의 삶 속에서 나의 인생을 찾으러 애썼던 것일까.책에서는 1000여명의 다른 인생을 살아온 노인들이 살면서 얻은 삶의 이치를 경험담을 통해 전해준다.한 단락 한 단락이 내게 너무 절절해서 머리로 마음으로 곱씹으며 책을 한번 다 읽어내는데 나흘이 걸렸다.내용도 어렵지 않고 구전동화를 듣는 느낌의 글이라 쉬이 읽혀지는 책이지만 그 속에 담긴 지혜들을 헤아리고 기억에 새기는 데에는 시간이 꽤 걸렸다.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고민을 가진 사람이 누구이든지 나의 고민이 어떤 종류든지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조언을 해준다는 것이다.실수해도 괜찮아 라고 직접적인 위로를 하기보다,이럴 때 나는 이렇게 했어 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고난을 헤쳐 나가도록 만들어 준다.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 놓기 이전에 으레 이런 생각을 하며 망설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괜히 말하는 것은 아닐까.혼자 삭이면 될 일인데…생각보다 별일 아니잖아?’
나의 이야기이다.내 고민은 매우 상대적이고,나에게 한정된 것이라 이해받지못할 것을 염려하는데서 나오는 또 다른 고민이다.이렇게 새로 생긴 고민만 수십번 하다 결국 속으로 삼키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이 책은 새로운 고민을 할 여지를 주지 않고 이야기를 들려주어 부담이 없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고 나의 처지에서 가장 도움 받을 수 있었던 내용을 소개해본다.
젊은 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성취해야 할 중요한 목적으로 본다.종종 미래의 계획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너무 소모적으로 살다보니 현재의 즐거움을 깨닫지 못하기도 한다.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인생의 현자들은 순간에 온 마음을 기울이고 즐거움을 발견하며 산다.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 추운 겨울밤 몸을 누일 수 있는 따뜻한 잠자리,잔디밭에서 먹이를 먹고 있는 예쁜 새들,어느 날 친구에게서 받은 편지 한 통,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좋아하는 노래 등(모두 인터뷰에서 들은 ‘순간들’이다.)젊은 사람들은 그런 순간들을 잃고 나서야 그것이 소중하다는 걸 깨닫는다.지극히 소소한 일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즐거움을 느끼면 일상에서 끌어올린 행복이 차곡차곡 쌓인다.인생의 현자들은 그 진리가 젊은 사람들에게도 통할 것이라 믿는다.
그래 바로 이것이다. 인생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없다.해답을 발견한 사람도 없다.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자신이 주체가 되어 현재를 살아내면 그만인 것이다.행복에 대한 기준도 없다.아침에 눈을 떠 폐가 시릴 정도로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것도,차가운 물 한잔을 들이켰을 때 시리지 않는 튼튼한 이를갖고 있다는 것도 내 기준에서는 행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누구도 내가 정해놓은 기준에 대해서,내 인생에 대해서 나무라지 않는다.인생에 있어서 완벽한실패도 없다.그저 지금은 시행착오가 있을 뿐이고 그 속에서 삶의 지혜를 배워나가는 단계일 뿐이다.지레 겁을 먹고 웅크리고 있었던 일만이 나무람의 대상이 될 뿐,다른 것은 비난과 비판을 받을 이유가 없다.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살아왔기 마련이고 자기 자신의 힘듦이 가장 크게 느껴지지만 지나고 나서는 또 그럭저럭 잘 살아왔다.내가 할 일은 틀에 박히지 않고 어디에서 올지 모르는 행복을 찾아 누리며 자유롭게 나의 인생을 살면되는 것이다.자유.이 단어에서도 세상의 이치를 찾을 수 있다.자유롭게 산다는것은 자기의 이유로 삶을 살아 낸다는 것.자신의 이유를 가지면 내 인생을 견디어 낼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긴다.세상이 정해놓은 외모지상주의,학벌주의,황금만능주의의 이유에 나를 갖다 붙이지 말고 내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주목하는 것이 현명하다.
‘너는 너이며 나는 나이다.우리는 우리자체로서 존재의 가치가 있다.’ 세상의 기준에 쉽게 흔들리는 사람들,숨 쉬는 것조차 힘겹게 느껴지는 이들과 꼭 공유하고 싶은 메시지이다.이 책이 전해준 이 간단하고도 단순한 진리가 내 가슴속에 남아 앞으로의 내가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될 것 이다.내 미래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책에서 얻은 지침을 늘 상기하며 2,30대의 위태로움과 40대의 권태로움,5,60대의 두려움을 현명하게 이겨 낼 것이다.
입상 서*희 재료공학과 도서: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독후감:내가 알고 있는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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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하는 독후감상문 쓰기 행사가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같이 독후감을 쓰기로 하면서 읽게 된 책이다.도서관에 검색을 해보니 책은 역시나 다 대출중이었다.그래서 처음으로 e-book을 사서 책을 읽기로 하고 책을 읽게 되었다. 처음에 책의 제목인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이란 이름을 듣고선 로맨스 소설인가?여자가 짝사랑하는 이야기?이런 생각을 했는데 책의 내용은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책은 인생의 현자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냉용이었다.솔직히 이런 종류의 책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왜냐하면 책을 읽을 때는 ‘아~ 그렇구나.고쳐야겠다.’이런 생각을 해도 책을 읽고 돌아서면 책의 내용이 무슨 내용인지 조차 기억도 나지 않기 때문이다.이번에도 역시 책을 나름 열심히 읽는다고 읽었지만,그리 많은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할 때,그림과 함께 짧은 글 몇 줄이 나와 있어서,‘아~재밌겠구나.빨리 읽겠네?’이런 생각을 했었는데,뒤에는 그냥 일반적인 책의 구성이었다.책은 작가가 인터뷰한 인생의 현자들의 인터뷰와 함께 작가가 얻은 깨달음을 정말 짜임새 좋게 적어 놓은 책이었다.각기 다른 계층,직업,생활환경 등에 다른 생활환경에 있는 수많은 인생의 현자들과의 몇 년간에 걸친 인터뷰와 내용을 정리하여 데이터베이스를 많든 것에 충격을 받았다.보통 우리가 읽는 인생의 조언에 대한 책은 우리나라 작가들의 책보다는 외국작가들의 책이 더 많은 이유를 뼈저리게 느끼게되었다.그리고 이런 데이터베이스가 우리나라에서도 구축되어 질 수 있는 환경이 갖춰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그러면서 한편 독일인에 한정되어 진 인터뷰보다는 각국에 살고 있는 다양한 인생의 현자들에 대한 인터뷰도 함께 했으면 정말 인류 전반에 걸친 공동적이고 필수적인 조언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책의 구성은 아래와 같다.
1장.8만 년의 인생에게 묻습니다.
2장.아름다운 동행 – 잘 맞는 짝과 살아가는 법
3장.행복하게 맞는 아침 – 평생 하고픈 일을 찾아가는 법
4장.등을 보고 자라는 아이 – 건강한 아이로 키우는 법
5장.하강의 미학 – 지는 해를 즐기는 법
6장.후회하는 삶 -‘그랬어야 했는데’에서 벗어나는 법
7장.행복은 선택일 뿐 – 나머지 인생을 헤아리는 법
8장.당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의 조언 – 인생의 현자에게 조언을 구하는 팁
각장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1장의 내용은 이 책을 만들게 된 계기와 이유에 대한 이야기였다. 2장의 내용은 결혼이라고 할 수 있다.20대 우리에게 어떻게 보면 가장 친밀하게 느껴지는 부분이이도 했다.이 장을 읽으면서 많은 추억들이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아직 인생의 같이 하고 싶은 짝을 찾는 건 아니지만,그래도 연애를 하면서 고민하고 힘들었던 부분이 그대로 결혼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책에서 나오는 조언인 ‘바꿀 수 있는 건 나 자신 뿐’이라는 이야기를 아는 언니의 조언으로 들었던 기억도 나고,앞으로 내와 함께 삶의 살아갈 짝을 그려보았다.책에 나온 ‘100살까지 사는 몸을 만들어라’에서는 부모님 생각이 났다.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자주 아프셨다.초등학교 때 한번 중풍이 왔다가 치료하셨는데, 중학교 때 또 한 번 중풍이 왔다.2번째에서는 약간의 언어장애가 왔지만,일상생활에는 그다지 큰 문제는 없으셨다.하지만 3번째 고등학교 때 또 중풍이 오셨는데 이번에는 완치하지 못 하였었다.아무리 아프셔도 담배와 술을 끊지 못 하다가 결국엔 이렇게 되셨는데,그래서 어머니는 지금도 고생이 많으시다.그렇게 어머니한테 고생만 시킨 아버지 같은데도 아버지한테 잘 해주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을 보면 저런 게 결혼인가 이런 생각도 들고,정말 좋은 배우자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다지 화목하지 않은 우리 집에 아버지는 아프시고 그렇지만 나의 모든 부분을 받아주는 사람이 있을까 이런 생각도 들고 아버지가 아프시고 나서부터 생각한 것이긴 하지만,정말 자기 몸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그리고 항상 장수하지 않아도 되니깐 건강하게 살다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그건 모든 사람들이 하는 공통적인 생각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3장,7장은 지금의 나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장이었다.나는 3장과 7장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였다.지금의 난 학교를 다니고 취업을 걱정하며,나의 불투명한 미래생활에 갈피를 잡지 못 하고 있다.무엇을 하고 싶은지,심지어 어느 회사에 다니고 싶은지,어떤 일이 나에게 맞는 일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지금 나의 상황에서 몇 년 혹은 몇 십 년의 노력 끝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거나,성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며,과연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학교특강으로 효성의 회장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었다.그때 회장님이 ‘우리 때는 참 할게 많았는데,지금은 너무 할 수 있는게 많이 없다.(물론 사업아이템에 관한 이야기였지만,,)’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그리고 요새 인종말설이 나오면서 아이슈타인의 예언이라는 ‘미래에는 바보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온다.’라는 예언처럼 지금의 우리들은 꿈도 희망도 열정도 잃어버린 바보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과거의 학자들은 많은 고민을 하고 현실의 많은 제약들을 극복하고 참고 인내하는 그런 삶을 살았지만,지금의 나약하고 현대기기에 의존하여 제대로 암산조차 하지 못 하고,생각도 하지 않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며,무엇을 경험하기보다는 게임을 하고,친구와 놀기보다는 티비를 보며,사람과 대화하기 보다는 문자나 채팅을 하고,이웃과 인사하기 보다는 누가 이웃에 사는지 조차 모른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의 반성
이었다.이 핑계 저 핑계 다되며 집에서 뒹굴 거리며 그냥 무료하게 하루를 보내며 자기합리화한 나의 인생에 많은 생각을 주었다.그래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나에게 맞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곳을 다니고 많은 것을 경험해 보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여행을 많이 하라는 말은 선배들을 통해 모두들 수도 없이 들은 말일 것이다.돈이 없어서 못 갔다.시간이없다.같이 갈 친구가 없다.정말 많은 핑계거리가 존재한다.정작 떠나야 될 이유는 그저 내가 가고 싶기 때문이다.라는 단 하나의 이유 밖에 존재하지 않는데 말이다.그런 게 내가 놓친 많은 것들이 있다.기회가 있으면 ‘네’라고 대답하라고 이 책도 말한다.나는 한때 ‘부정이’라고 불렸던 적이 있었다.무엇이라고 말해도 ‘아니오’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다.나를 너무 과소평가했던 시절이기도 했었고,너무 자신감이 부족했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4장에서도 나오듯 나는 등을 보고 자란 아이었다고 해야 될까?동생의 그늘에 가려 항상 부모님이 동생을 더 사랑한다고 생각했다.지금도 역시 그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엄마는 항상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하지만,나 역시도 이 책에서와 마찬가지로 더 아픈 손가락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옛날에는 많이도 서러워서 울기도 많이 했고,왜 나는 정말 잘하는 점이 하나도 없나? 왜 내 칭찬은 하나도 하지 않는가?나는 얼마나 더 동생칭찬을 들어야 그 칭찬을 그만 들을 수 있나?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친척들 모임에도 같이 가기 싫고,부모님도 밉고 동생도 미웠던 적이 있었다.지금은 스스로 많은 위안도 얻었을 뿐더러,나이가 듦에 따라서 내 인생에서 부모님과 동생이 차지하는 비중이 많이 줄어든 것에 기인하는 것도 있는 것 같다.지금은 나가서 부모님 선물이나 동생을 위하는 마음도 많이 생겼다.고생만 하는 우리엄마,생각하면 답답한 마음이 많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나를 사랑하고 있을 우리아빠,나한텐 단 하나도 예쁜 점이 없지만 그래도 내 하나밖에 없는 동생,그게 우리 가족이고,내 가족이니깐..나이가 듦에 따라 특별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지만 그렇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부모님은 고등학교 이후론 우리 집 주요관심의 대상이라고 해야 될까?관심의 대상은 아버지였기 때문에 그전부터 맞벌이로 인해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고등학교 이후로는 더 관심을 받지 못 했었다.동생과 내가 그리 썩 잘 자랐다고는 생각되진 않지만,그래도 사고도 안치고 대학도 다니고 이만하면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오히려 지금 너무 치마폭에 쌓여서 엄마밖에 모르는 아이들을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든다.지금의 우리들 세대를 캥거루족이라고 한다고 들었다.캥거루주머니에서 나오지 않고 부모님을 괴롭히는 세대. 독립을 하려 들지 않고 계속 부모님과 같이 살려는 세대들.물론 나는 반반에 속하는 것 같다.나는 너무나도 독립을 하고 싶지만,경제적 여건이라던 지,현실적 제약 때문이라는 핑계로 독립을 하지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등을 보고 자란 아이도 좋은 친구들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그 응어리가 조금은 풀리지 않을까 한다. 나처럼..
5장은 정말 젊은 우리 나이 또래한테는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듣는 말일 수도 있을 것이다.하지만 우리는 timelimit라고 해야 되나?항상 시간제한이 있게 마련이다.졸업을 하기 전까진 취업을 해야 고 그전에 학점을 만들고 여행도 해야 되고 토익도 쳐야 되고 등등 4년이라는 시간 안에 해야 될 것이 너무나도 많다.시간은 정말 많이 부족할 것이다.그것이 젊은이들이던 늙은이든 시간은 모두 소중하고 항상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리고 삶은 무료하게 보낸 이 일수록 더 빨리 간다는 생각을 한다.뒤를 돌아보면 해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시간은 이미 흘러갔기 때문이다.내가 흘려보낸 시간도 상당히 많다.그것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계속 시간을 흘려보내기만 하는 내 자신이 정말 이런 반성의 시간을 가질 때면 너무나도 밉다.그래서 이 장에서는 시간이 귀중하는 말 대신 좀 더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을 방법에 대한 조언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6장 후회하지 않는 삶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반성을 시간을 갖는 계기가 되는 시간이 될 것 같다.그것이 성공한 사람들이던 실패한 사람들이던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건 말이다.20대 초중반인 나도 벌써 후회하는 일이 너무나도 많다.그런데 앞으로는 얼마나 더 많은 결정을 하고 얼마나 더 많은 후회를 할지 생각하면,옳은 것을 선택하는 방법에 대해 조언을 구하고 싶다.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상대적인 것이고 모두 인간이 정한 것이다.하지만 나에게 좀 더 이로운 일을 좀 더 현명하게 결정하는 방법은 무엇일까?행복은 선택하는 것이라고 나온다. 그 행복을 선택하는 방법은 무엇일까?무엇이 좀 더 행복한 일일까?그건 어떻게 알게 되는 것일까?나에게 아버지가 아픈 것은 크나큰 사건이었다.우리가족 모두에게 그럴 것이다.하지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고 나를 좀 더 강하게 만들어준 것도 있다고 믿는다.아버지가 쓰러진 처음 고2때 부모님이 내 앞에서 펑펑 울고있는 모습을 보았다.그리고 어쩔 수 없이 학교에 갔지만,울고 있을 부모님 모습이 계속 떠올라서 정말 웃지도 친구들과 거의 얘기도 하지 않고 점점 더 어두운 아이로만 바뀌어 갔었다.지금은 그래도 이런 생활에 많이 익숙해지기도 했고,가족 모두가 강인해져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을 하고 있지만,그 웃음이 많은 봉사 활동하는 할머니처럼 나는 그저 많이 밝은 아이는 아니다.하지만 그래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자 행동은 잘 못해도 생각만은 열심히 아이가 되었다.물론 그때의 시간을 좀 더 친구와 함께 보냈다면 더 좋았을 걸,부모님을 더 도와주고 동생과 더 친하게 잘 지낼 걸 하는 후회도 많이 남는다.그렇기 때문에 대학에 와서 내가 정말하고 싶은 일은 죽이 되던 밥이 되던 해보자는 생각으로 해봤다.많은 것은 망설이다가 기회조차 놓쳤지만,내가 하고 싶은 것들 중 실천한 것 2가지가 전과와 스쿠터였다.2학년 때 전과 준비를 했다.결과는 실패로 끝났었다.그리고 원래 다니던 과의 2학년 수업을 거의 듣지 않은 상태에서 3학년이 되니 또 수업을 따라가기 못하고 학점이 나빠져서 수습이 안 될 지경이 되었다.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후회는 없다.아쉬움이라고는 좀 더 열심히 전과준비를 할걸?이정도? 하지만 그것도 거의 없다.왜냐면 전과하고자 했던 과와 내가 맞지 않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스쿠터도 사고가 나서 고장 나서 버리게 되었다.돈도 상처만을 남기도 몇 달 타지도 못한 스쿠터.그것도 역시 후회는 없다.돈도 버리고 부모님께 많은 꾸중을 들었지만,나는 집중력이 부족한 편인 것을 알게 되었다.그리고 무엇인가를 선택함에 있어서 좀 더 많은 신중해야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정말 후회는 무엇을 하지 않았을 때 생기는 일인 것 같다.무엇을 했다면 적어도 후회는 없다는 말이 뼈저리게 느껴졌다.그리고 정말 후회하지 않는 삶,옳은 것을 선택하는 방법,행복해지는 일을 선택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런 건 왜 안 나오지?나왔는데 내가 캐치하지 못한 건가?? 마지막장인가에도 나왔듯,나는 giveandtake법칙이라고 해야 될까를 정말 철칙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앞장에서 사랑은 똑같이 베푸는 거라는 말에 50대 50이 아니라 100대 100으로 나누는 것이라는 말이 정말 나에게도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요새는 사람이 싸우면 전부 돈 때문이라고들 한다.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다.내가 이걸 해줬는데 넌 왜 그것 밖에 안 주냐고 해서 싸우게 된다.사람들은 실리를 너무 많이 따지고,돈돈돈돈돈 정말 돈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심지어 친구가 생일선물로 남자친구한테 귀걸이를 받았다.그 귀걸이의 가격이 2만 원대 하는 것을 알고는 친구가 내가 2만 원짜리밖에 안되냐고 그렇게 화를 냈던 기억이 있다.그것을 사기 위해 남자친구가 매장을 방문해 내 여자 친구한테 어울리는 것을 고르고,그날 무엇을 할지 데이트 계획을 세운 그 남자친구의 마음은 여자친구가 2만 원짜리 밖에 안 되어서 그것을 사준것일까?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사랑은 돈의 액수와 비례한다.정말 지금의 사회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친구한테 남자친구가 나를 정말 사랑하는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도 남자가 돈 쓰는 거 보면 안다는 조언을 해준 친구도 있었다.사랑은 그런 것이 아닐 것인데도 말이다.나의 giveand take는 꼭 물질적인 것만은 아니었다.자주 많나진 못 하지만 자주 안부를 묻는 친구한테는 밥을 사줘도 아깝지 않지만,정말 연락 한번 안하다가 생일이라고 연락이 와서는 밥을 사달라는 친구들은 정말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어머니는 돈을 정말 아껴 쓰신다.
하지만 항상 하시는 말이 만원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산다면서 쓸 때는 써야 된다고 말하곤 하셨다.정말 돈은 없으면 안 되지만 빌 게이츠 만큼 많을 필요는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빌게이츠만큼 돈이 많다면 나는 무엇을 할까?그저 좋은 집에서 먹고 놀고 있겠지.처음 몇 년은 정말 좋을 것 같다.좋은 집 가정부 아주머니들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모두 할 수 있겠지만,내 성취감도 만족감들은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겠냐는 생각도 든다.등산은 내려갈 때보다 올라갈 때 더 좋은 것 같다.그러니 더 나은 나를 위해 노력할 때 뿌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이 책은 나의 삶의 많은 부분을 생각해주게 하는 책이었다.그러면서 20대인 나도 많은 일을 겪었고 많은 생각을 하고 그보다 더 많은 걱정과 후회를 하고 산다는 것을 느꼈다.나보다 지식적인 부분에서는 많은 것이 부족할지 모르지만 정말 인생의 현자들은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노인들은 그저 약자이고 보살핌을 받아야 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이 책을 읽고는 많은 경험을 한 분들,그리고 많은 깨달음을 얻은 분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나에게 인생의 현자들을 만날 기회는 그리 많이 주어질 것 같지는 않다.하지만 인생의 현자정도의 나이 많으신 분들은 아니라도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해주는 조언과 충고를 정말 잔소리나 자기자랑으로 들을 것이 아니라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심어린 조언이라는 마음으로 새겨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입상 정*석 지구과학교육과 도서: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독후감: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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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30-40 시대’.얼마 전 신문의 일면을 장식했던 기사의 제목이다.이 말을 처음 접했을 때, ‘아!정말 내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를 이같이 잘 표현한 말이 없구나!’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30년 공부해서 30년 일하고 40년 은퇴생활을 대비해야 한다는 이 말은 요즈음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하는지 단적으로 말해준다.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자랑하는 대기업 입사를 위해 10대에는 대학 입시를,20대에는 스펙 쌓기에 몰두해야 한다.이것이 끝이 아니다. 그 뒤에는 막막한 은퇴 후의 40년이 기다리고 있다.이것도 회사에서 잘 버텨야지 40년이지 50년이 될지 60년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그러므로 무작정 달려가야한다.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으므로 그저 경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 무작정 달려가야 하는 것이다.그리고 그 경쟁은 필수적으로 비교를 요구하기에,우리는 끊임없이 같아져만 간다.같은 기준을 놓고 같은 선상에서 이렇게나 열심히 달려가는데 서로 같아지지 않고 버틸 방법이 있겠는가? 직장을 잡을 때는 적성보다는 안정성이 우선이다.60될 때까지 일할 수만 있다면야 내가 미술을 아무리 잘하고 재미있는 소설을 잘 쓰더라도 공무원이 되는 것 만하겠는가? 그래서 오늘도 전국의 공무원 학원은 다양한 재능을 가진 젊은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그렇게 직장을 얻은 다음에는 결혼을 해야 한다.‘사랑이 뭐 밥 먹여주나?’내가 공무원쯤 되었으면,선생님쯤 되었으면 당연히 판검사 남편은 돼야 남 보기에도 부끄럽지 않고 손해 보지 않는 것 같다.또 이렇게 전국의 결혼정보회사 문턱은 닳아빠질 지경이다.이것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열등감에 시달려야하고, 충족되었다면 허무함에 빠진다.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게 이것이었나?우리네 20대의 슬픈 자화상이다.
이전에는 이런 경우 항상 현명한 조언자가 바로 옆에 있었다.학교에는 스승이 있었으며, 가정에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어른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20대들에게는 이런 멘토가 없다.학교에서 스승의 권위는 무너진지 오래이며, 노인들은 더 이상 존경받지 못한다.종종 언론은 학교붕괴와 세대갈등이라는 말로 이런 불신은 부추기기도 한다. 신문에서의 스승은 ‘선생질 못해먹겠다’고 하소연하며 은퇴를 준비하고,노인들은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며 추운 겨울날 폐지를 줍고 있다.그리고 존경하지 않는 사람에게 조언을 구할 젊은이는 아무도 없다.청년들이 언제든지 조언을 구할 수 있는 멘토는 더 이상 없다. 이 시기에 이 한권의 책은 어르신들의 삶을 통해 조언한다.누구처럼 항상 이기라고만 하지도 않고,뒤처지면 죽는다고 겁주지도 않는다.그저 잔잔하게 웃으며 우리가 이렇게 살아왔으니 너희도 이렇게 살아보라고, 이렇게 살지 못했으니 너희만이라도 이렇게 살라며 충고한다.나는 현실에서 만나기 힘들었던 멘토를 이 한권의 책에서 1000명이나 만날 수 있었다.그리고 지금의 20대 젊은이인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조언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갈까 한다.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오늘도 공부하고 있는가?
나는 교사가 되기 위해 임용공부를 하는 학생이다.성적에 맞춰 학과를 쓰다 보니 어쩌다 사범대학에 오게 되었고,사범대학을 다니다 보니 교사가 꿈이 되었다.오늘 하루도 별을 보며 도서관에 출근도장을 찍고 별을 보며 집으로 돌아가는 생활에 만족하지만 내가 왜 이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많이 부족했다.어쩌다가 선배들을 만나 듣는 자칭 현실적인 조언들도 ‘교사는 월급이 얼마정도 된다.이 월급으로 결혼했다가는 딱 굶어죽기 좋으니 꼭 부부교사를 해라’ 라던가 ‘승진하려면 어떤 걸 준비해야 한다더라, 어느 교수님한테 미리 잘 보여 놔라’수준의 것들이다 보니 주로 교사라는 직업이 주는 외적인 것들에 가치를 두고 집중하고 있었다.하지만 그러면 과연 행복할까? 어쩌면 이 임용이라는 시련을 넘어서 나를 또 다른 시련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에서 선배들은 조언한다.‘일에 관한 목표의식과 열정,즐거움이 훨씬 더 크고 중요한 것이란다.내가 교사가 된다면 나는 많은 아이들의 인생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어쩌면 나로 인해 죽어가던 한 아이가 살아날 수도 있고,희망이 없던 아이가 나로 인해 희망을 찾고 인생의 목표를 수정할 수도 있다.하지만 나는 과연 그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며,어떤 모범적인 행동으로 아이들을 바른 길로 이끌 수 있을 것인가!그리고 그 아이들이 바른길을 찾아 나에게 존경하는 스승이었다고 말해주었을 때 나는 얼마나 큰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문제였다.그리고 동시에 많이 부끄러웠다.이런 중요한 문제들을 제쳐두고 나는 이제껏 월급 정도만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서는 한국의 교단은 이미 무너졌다고 불평하고 있었다.교사가 되겠다고하면서 그 학교에서 나와 함께 하게 될 아이들은 생각하지 않았었다.그들과 함께해 나갈 시간들을 상상해 보지 않았었다.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자신의 월급가지고 고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그는 비록 많은 어려움을 겪고,어쩌면 실패했을지도 모르지만 행복한 교사였으리라 짐작한다.아이들은 그를 존경했고 그는 그 존경을 먹고 사는 참된 교사였다.그리고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그에게 존경을 담은 편지 한통을 썼을지도 모른다.그리고 그 순간 그는 수십억을 가진 부자보다도 더 행복했으리라 확신한다.오늘은 내가 그런 교사가 되는 꿈을 꿔 보기로 했다.존경받고 사랑받는 교사는 얼마나 행복할지 상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오른다.
나는 영원히 살 것처럼 살고 있지는 않은가?
이제 겨우 대학 졸업반이지만 ‘벌써?’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미뤄오고 또 미루던 일들을 허겁지겁 해 나가고 있는 요즘 여러 경험들에서 우러나오는 이 충고는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나는 어쩌면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살아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오늘 다 해내지 못한 일들은 내일 하면 되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다. 그리고 그 일들이 쌓이고 쌓여 걱정만 하며 힘들어했다.그러다 보니 행복은 항상 언젠가는 다가올 미래의 몫이었다.돌이켜 생각해 보면 일학년 때는 사학년이 무슨 한참을 있어야만 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별로 해 놓은 것도 없이 사학년이 되어 임용을 준비하는 내 모습을 보니, 인생이라는 시간도 이와 같아서 지금 보면 40,50대가 다가오지 않을 시간들 같지만 곧 그 나이가 되어 이 시절을 그리워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 아주 짧은 것처럼 살라는 조언을 여기저기서 많이 듣지만 실제로 생활은 그에 미치지 못했던 나에게 그 조언은 감동을 주는 무엇이 있었다.
내일은 오늘의 연장이라는 말이 있다.오늘 내가 바뀌지 않고,시간을 귀히 쓰지 않는다면 내일의 나도 오늘과 같을 것이며,마찬가지로 또 그 다음의 내일만을 바라고 살 것이다.그러다 언젠가 되돌리기 힘든 순간이 오면 지금의 이 순간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울까? 책에서 말한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말도 결국 같은 말이라고 생각한다.오늘 하루하루를 너무나도 귀히 쓰기 시작한다면 당연히 내일이 아니라 오늘에서 행복을 찾아야하지 않을까?그러려면 당연히 행복은 내 손으로 선택해야만 할 것이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순간도 언젠가는 너무나도 그리워지고 안타까워지는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을 위해서라도 내일이 아니라 오늘을 선택하겠다.
나는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가? 책에서는 결혼을 위한 조언이라고 했지만 내가 아직 별로 결혼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나이라 그런지 나는 이것을 연애라고 바꾸어 생각해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몇 번의 연애를 거쳤지만 그때마다 무언가 많이 부족했고,또한 그 부족함을 채울 수 없어 헤어지고는 했다.지금까지는 그저 나에게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났다며 다음에 더 좋은 사람을 만날 것 이라며 위안하고는 말았지만 이분들의 충고를 듣다 보니 어쩌면 내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사랑을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책에서는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라며 조언하고 있었지만 나는 나와는 완전히 다른,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가진 이성에게 끌렸었다.내가 활발하지 못했기에 그녀는 항상 밝아야 했고,내가 악기를 잘 다루지 못했기에 음악을 사랑하는 그녀에게 끌렸었다.항상 나도 모르게 되돌아보면 항상 그런 사람들을 만나오곤 했는데 이분들의 충고를 듣다보니 나와 닮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나는 결국 나와 다름에서 오는 설렘을 매력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었고,항상 그에 맞추다 보니 힘든 사랑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하지만 이제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또다시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아직도 내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은 없다.사랑이든, 그 사랑의 연장의 결혼이든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그렇다고 이분들의 충고가 가치 없다는 것은 아니다.처음의 열정이 식고 나서 내가 이 사람과의 틀어짐이 생겼을 때,그 관계를 다시 고려해 봐야 할 때 이 충고들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책에서 하고 있는 많은 이야기들 중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많았다. 내가 육아에 대해 공감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오늘 이 시간을 통해 지금껏 내가 갖지 못했던 멘토를 다시 만난 기분이다. 삶이 힘겹고 버거울 때 옆에 두고 언제든지 조언해 줄 수 있는 멘토를 만난 오늘이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날인지도 모르겠다.
입상 이*희 식품영양학과 도서: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독후감: 그들에게 길을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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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롯한 꽤 많은 사람들은 자기계발 서적에 대해 부정적이다.이유는 단순하다.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책 제목만 보면 무슨 내용인지 뻔히 알 것 같고,다들 알고 있는 사실들을 잔소리하듯 내뱉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특히 최근에는 젊은 나이에 각종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소위 ‘~해라’는 식의 책들이 많아지면서 일부 독자들로 하여금 약간의 반항심을 자극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을 다른 자기계발 서적들처럼 멀리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끼는 잠언시집이 떠올라서였다.바로 류시화 시인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책이다.먼저 삶을 살다 간 인디언,수녀,걸인과 에이즈감염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전해주는 삶에 대한 통찰과 지혜가 담긴 유명한 잠언시집이다.항상 가방에 넣고 다녔을 만큼 청소년 시절 이 책은 내게 큰 의미를 지녔었다.고등학생이던 내게 이 책은 마치 어려운 수학 단원을 미리 예습해왔을 때의 안도감 같은 것을 주곤 했다.뒤늦게 후회하는 사람들이 직접 전해주는 이야기들을 통해 좀 더 빨리 깨우칠 수 있고 멀게는 앞으로의 삶을 변화시킬 수도 있으니,얼마나 고마운 책인지 모른다.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된 내게 앞서 언급한 잠언시집과 많이 닮아있는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이라는 책이 나타났다.다른 점이라면 인생의 황혼에 서있는 수많은 노인들이 전하는 생생하고도 실용적인 조언이라는 점이었다.우리가 아직 가보지 못한 길들에 대해 먼저 가 본 사람으로서 여러 가지 해답과 충고들을 들려준다는 것이다.이 책에서 인생의 현자들(책에서 글쓴이가 노인들을 지칭하는 특별한 용어)은 구체적으로 결혼,직장,육아,후회,행복 등에 관해 진심어린 조언들을 솔직하게 그리고 아낌없이 제시해준다.
‘평생 하고픈 일을 찾아가는 법’
며칠 전 새해가 밝으면서 나는 스물셋이 되었다.갓 스무 살이 되어 정신없이 대학교 생활을 하던 게 어제일 같은데 어느덧 졸업반이라니 믿기지가 않는다.더군다나 아직까지 뚜렷한 꿈조차 없는 상태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큰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며 살라는 말을 여태껏 수없이 들어오긴 했지만 크게 와 닿은 적은 없었다.그러나 내키진 않지만 급한 마음에 시작한 일은 오래가지 못하고 언젠가 크나큰 후회로 돌아와 결국 다른 일을 찾아 나서게 될 것이라는,인생의 현자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들은 긴가민가했던 내 생각에 확신을 주기에 충분했다.
‘나이 먹는 것은 생각보다 괜찮은 일이다’
책 후반부로 향해 가면서 작년 봄에 보았던 영화 ‘은교’가 자꾸만 생각이 났다. 특히 노시인 이적요의“너희들의 젊음이 노력해서 얻은 상이 아니듯이,나의 늙음도 내가 잘못해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명대사가 머릿속에 맴돌았다.그렇다. 늙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인 것이다.헌데 젊은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진부하고 꽉 막힌 사고를 하는 답답한 어른들이라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가 머지않아 노인이 될 것이고는 쉽게 생각하지 못한다.저자의 인터뷰에 응했던 수많은 노인들은 말한다.자신이 70,80살의 노인이 되는 날이 이렇게 빨리 올지 몰랐다고. 2013년 새해가 밝기 몇 주 전후로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벌써 00살이다’라는 탄식을 하곤 했다.그 무렵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오직 탄식할만한 일로만 여겨온 것에 대해 반성했다.지나간 날들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떠올리면서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즐겁게 맞이하면 될 텐데 하고 말이다.인생의 현자들이 말해주는 것처럼 나이 듦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으로 시간을 낭비하기 보다는,노년을 새로운 기회라 여기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것이 바로 하강의 미학이 아닐까.
‘여행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
대학생이 되던 해에 평소 존경하던 선생님께 대학교 시절에 꼭 해봐야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돌아온 대답은 ‘여행’이었다.어릴 적부터 기차타기를 좋아했던 나는 대학생이 되고 난 후로 방학만 되면 기차여행을 떠나곤 했었다.잠시나마 낯선 곳을 돌아다니면서 견문도 넓히고 찌든 일상에서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시키기도 했다.재작년에는 단기연수로 필리핀에 갔었는데,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외국에 나간 것이 처음인 내게는 신선한 충격의 나날들이었다. 책상 앞에 붙여둔 세계지도만 보다가 직접 경험해보니 세상은 넓다는 말이 새삼 와 닿았다.
이처럼 여행은 휴식뿐만이 아니라 삶의 구심점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지친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다.시간과 금전적인 문제들을 따지다보면 여행이 다른 우선순위들 밑으로 밀려나는 경우도 많다.그러나 인생의 현자들이 삶을 되새겨보면서 가장 크게 후회하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더 많이 여행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젊은 시절의 여행은 꿈과 시야를 넓혀주고 앞으로의 삶을 활짝 피어나게 할 원동력이 되지만,나이가 들면 들수록 건강이 악화되면서 여행은 불편해지거나 혹은 불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너무 늦기 전에 꽃을 보내라’
이 부분은‘산 사람에게 꽃을 보내라.죽은 사람에겐 보내도 보지 못한다.’는 격언에서 나온 말이었는데 내게 특히나 공감이 많이 갔던 부분들 중 하나였다.중학교 3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앓고 계시던 병이 갑자기 악화되어 한밤중에 자다 깨서 중환자실로 갔다.인공호흡기를 달고 무언가 말하려고 애쓰시는 어머니 옆에서 아무 말도 못한 채 그저 울기만 했다.그것이 어머니와의 마지막이었다. 그때 왜 나는 사랑한다고 얘기하지 못했을까,이 점이 아직도 내 가슴을 아프게한다.같이 못 가본 곳들,못 해본 것들은 왜 이리도 많은지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어른이 되면 내가 받은 사랑을 몇 배로 어머니께 갚아드리려 했던 것이 매우 어리석은 생각이었음을,오직 사진으로만 어머니를 만날 수 있는 지금에서야 안다.조금은 늦었지만 인생의 현자들이 말하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바로 지금 말하라.’는 뜻을 지금의 나는 너무나도 잘 안다.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선택이다.’
나는 재작년 겨울에 갑작스럽게 모야모야라는 희귀난치성 뇌혈관 질환 진단을 받았다.몇 년 전부터 증상이 있어왔지만 워낙 특이한 증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병이라서 모른 채로 살아왔던 것이다.그러다 증상이 심해져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병이 꽤 진행된 상태였다.지금은 약을 먹으면서 지켜보고 있지만 처음에는 서울의 큰 병원에서 두 번의 뇌수술이 계획되어 있었다.뇌수술이라는 것이 쉬운 수술도 아닌데다가 개인마다 후유증 차이가 심하기 때문에,겉으론 담담한척 했지만 잘못되면 어떡할까 하는 두려움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그 때 내 사정을 알고 계셨던 나이 지긋하신 지도교수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은 어떤 위로들보다도 내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긴 일생을 볼 때 1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며,원래 인생이란게 그렇게 한 발짝씩 나아가는 거라고.
뇌수술을 조금 미루고 약물치료를 하며 지켜보기로 결정했던 그 날 이후로 나는 새로 태어난 것만 같았다.물론 당분간 약을 먹으면서 증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하고 평생 이 병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그리고 환자용 지침서에는 자제하고 조심해야 할 사항들이 수두룩하다.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살아있음의 감사함에 대해 잘 알고,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아침에 창을 비추는 햇빛조차도 고맙고,추운 날 따뜻한 차 한 잔에도 행복을 느낀다.삶에 대한 불평불만도 예전보다 많이 사라졌고,불확실한 미래만 걱정하며 아등바등 살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더 중요시 여길 수 있게 되었다. 행복은 상대적인 개념이다.행복의 조건 혹은 기준도 저마다 다양하다.즉 행복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어떤 성취로 얻어낸 행복보다는 일상적이고 소소한 행복이 더 오래 지속된다.실제로 무언가를 이루고 나면 머지 않아 또 다른 목표가 생기게 되고,잠시 느꼈던 행복은 쉽게 사라져버리고 만다. 내 스스로가 소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에 행복해 할 수 있다면 누구나 마음의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책은 넘쳐나는 그저 그런 자기계발 서적들과는 분명 다르다.이 책의 많은 인생의 현자들은 현재 젊은 사람들보다 더 다양한 경험들을 해왔고 이제 지는 해를 바라보는 사람들이다.그렇다면 이 책은 사람들에게 삶을 예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닐까?책에 나오는 조언들을 무조건 그대로 따르자는 것이 아니다.다만 인생의 현자들의 가르침을 참고하여 많은 사람들이 훗날 노인이 되어서 할 후회들을 예방하고,좀 더 일찍 행복한 삶을 시작하길 바라는 것이다.
입상 이*금 지역주민 도서: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독후감: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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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흔히들 SNS를 통해,책에서 좋을 글귀나 어구를 인용해 올리면서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며 이야기하는 공간이 커져가고 있다.나 또한 페이스북 이용자로 책 한권을 못 읽더라도 인용구를 보며,생각하고 책을 찾아보게 되는 습관이 생겼다. 이 중 내가 좋아하게 된 시로,나의 상태와 나의 가치관을 흔들어놓는 시를 만나게 되었다.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그런 것들은 잊어 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덜 초초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킴벌리 키버거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 이 시를 읽으면서,내가 얼마나 강렬하게 마음이 움직였는지 영혼이 울리는 느낌을 받았다.늘 이 시를 기억하면서 지내다가 우연히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고,책 저자의 생각에도 크게 공감하였다. 칼 필레머 교수는 ‘인생의 성공과 행복에 관한 수많은 책들과 강연의 홍수 속에 살아가면서도,왜 우리는 여전히 불행한가?’라는 의문에 관한 답을 얻기 위해 ‘코넬대학교 인류 유산 프로젝트’라 이름 붙은 기념비적인 연구를 시작했다.나 같은 경우에도 지난해에도 부산에서 열리는 세미나와 포럼,토크 콘서트 등 나의 꿈과 비전을 세우기 위해 그리고 자극받기 위해 많은 발을 옮기며 바삐 다녔다.
하지만,현재 지금에도 불안은 여전하고 고민과 청춘의 혼란 속에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내 모습이 보여 슬프기도 하였다.
이 책에서는 불안한 나의 모습을 자연스레 따뜻하게 비추어주는 등불이 되었다.
다른 자기개발서와 다른 점은 강요와 이렇게 하면 안 된다,그렇게 하라 등 나의 태도나 의지를 여의치 않고 작가의 생각을 옮겨 넣는 책들이 많다.그래서 이러한 책들은 우리가 소위 ‘성공한’사람들이 낸 책과 개인적인 서술이기 때문에 나와는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관적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이라는 책은 5년에 걸쳐 1000명이 넘는 70세 이상의 각계각층 사람들을 대상으로 통찰력 있는 질문과 여러 가지 검증을 걸친 프로젝트를 객관적인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그러한 점에서 다른 자기 계발서와는 다른 느낌으로 따뜻하게 다가왔던 책인 것 같다. 30가지 지혜의 가르침에서 내가 인상 깊었던 부분을 이야기 하고 싶다.
첫째,결혼은 반반씩 내놓는 것이다.
이 점은 내가 항상 조심하려고 노력하는 태도인데,남자친구뿐 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적용되는 것 같다.요즘 이혼율이 줄어드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혼의 문제는 크게 대두되고 있다.이는 결혼의 시작에서 서로에게 하나라도 더 받으려고 덕을 보려는 점에서 잘못 시작되는 것 같다.안 그러려던 사람도 이러한 분위기 속
에서,괜히 위축감이 드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그러한 태도에 휩쓸리지 않고,이 책의 말씀 속에 많은 것을 뉘우쳐야 한다.내가 준 만 큼 정확히 받을 수 없으며, 그러므로 그러한 태도를 버려야 할 것이고 늘 베풀고 도와주는 태도로 배우자와 동행한다면 너무나 좋을 것 같다.
내가 바라는 배우자상이며,배우자가 그러하기 이전에 나부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둘째,고통 없는 달콤함은 없다.
내 나이 23,그리고 앞으로의 직업을 선택하는데 있어 많은 부분이 혼란스럽다. 최근에는 고등학교 때 시절이 떠오르는데,그 나이에서는 ‘대학교만 간다면..’하면서 현실을 측은해하고 위로해주었다.하지만 현재 대학생인 나로서는 대학교를 들어왔지만,고등학교 때의 문제만 풀렸다 뿐이지 또 다른 시작의 길에 길을 걷고있다.
끝이 있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이 있기에,직업을 결정하기에도 좋은 점만 보기에는 분명 이후에 후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좋아하는 일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은 인생의 현자들도 인정 한다.하지만 그들은 싫어하는 일을 하면 타성에 젖는 실수는 절대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타성이라는 말은 얼마나 무서운가.내가 그러하고 싶지 않아도,자연스레 환경에 생각이 젖어들고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떠 오른다.
나는 현재 혼란스럽고,하지만 철저히 나를 돌아보면서 점검하고 나에게 맞는 일이 무엇이었는지 끊임없이 노력하고 탐구 할 것이다.그리고 그러한 일을 하루 하루 충만하고 행복하게 보내고 싶다. 나의 꿈을 말하자면,행복한 재무관리사가 되는 것이다.그래서 나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재무는 스트레스가 아닌 행복의 한 요소로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어주고 아름다운 일이 생겨나길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모르는 지식을 배울 때 재미있는 점도 있겠지만,공부하기 싫은 부분도 있다.그러한 점에서 현자들은 지루하고,재미없고,유쾌하지 않은 일에 관해서 우리보다 경험이 풍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인생의 현자들 중에 성공한 사람들은 오히려 가장 평범하고 지루한 일을 배움의 기회로 변화시켰던 사람이라고 한다.
지금은 힘들지만,나에게 닥쳐오는 상황이나 기회하나하나에 긍정적인 이유를 찾고 그 이유를 바탕으로 내 꿈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셋째,매를 아끼면 친구가 된다.
나는 20대 여성으로 미래에 결혼관을 생각하고 있으며,자식의 양육관에 대해서는 부족하지만,배우려고 노력중이다.엄마가 되지 않고서야 느낄 수 없는 감정이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현자들의 말씀에 따라 생각과 가치관을 살찌울 수 있었다.
나는 막연히 부부가 애정이 있고 행복하면 자식도 행복하게 배울 것이다.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런 점 외에도 어른들 말씀을 들으면,자식들 간의 편애,체벌,믿음 등 많은 요소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특히나 체벌에 관해서는 최악의 훈육이며 아이와의 관계를 망치는 길이자 이후에도 오랫동안 가슴에 멍을 남기는 행위라는 데 만장일치를 한다.
아이를 사랑으로 관심으로 키워주신 현자들에 존경을 느꼈고,그런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에게 너무나 감사함을 느끼고 고마웠다.나 같은 경우에는,어머니 아버지가 맞벌이기 때문에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다.할머니께서는 나를 일체 체벌하지 않으셨고 나의 투정어린 말이나 행동을 정확하게 차가울 정도로 설명해주시고 다그쳤으며,그러하고 나서 늘 나를 안아주시고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으셨다.지금 철이 든(?)나로서는 너무나도 고맙고,바르게 키워주셔서 고맙다는 말과 태어나게 해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매일 해드리려고 노력중이다. 이 책이 가깝게 느껴지고 애착이 가는 이유도,나의 가정 배경과도 연결되어 있는데 늘 할머니 할아버지 말씀을 가까이서 듣고 배우다보니 그런 것 같다. 그리고 현재에도 늘 마음에 새기고 행동으로 실천하려고 하니,인생의 지혜를 습득하게 되었다.
넷째,젊을 때 100년 쓸 몸을 만드는 것이다.
건강은 건강할 때 돌봐야 한다.저자는 자신의 장모님을 이야기 하였는데,여기
서 깨달음을 얻었다.담배를 피우는 사람,과식하는 삶,종일 꼼짝 않고 누워 TV
보는 사람 중 대다수는 자신에게 닥칠 최악의 상황이 어느 날 갑자기 죽는 것이
라고 안일한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하지만 현실은 이러하고 책속의 현자들은
건강에 해로운 짓을 한다고 해서 일찍 죽는 것이 아니라 몇 년 혹은 몇 십 년을
만성질병으로 고통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의 장모님의 경우를 보면,활동적인 분이었지만 사회활동과 여행은 물론 일상생활까지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끔찍한 노년을 보냈다고 한다. 나의 경우에도 지금은 건강하니,건강을 간과하고 눈에 확연히 띄지 않으므로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앞으로의 급급한 일들과 중 단기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하지만 그렇게 일을 처리하고 성과를 내면 뭐하나.내가 걷고 말할 수 없다면 노력하지 않은 것보다 더 낫거나 할 수도 없을뿐더러 위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삶의 질도 흔들리는 것이다.우리 할아버지는 86의 나이와 할머니는 81의 나이로 지금 무척이나 건강하시다.
두 분은 늘 헬스를 다니시고,할머니께서는 아쿠아 에어로빅을 하시며 삶의 행복과 웃음을 찾으신다고 한다.그리고 나와 이야기 할 때면 늘 활기찬 모습으로 생기로운 아름다움을 뿜으시며,나는 이러한 모습에 늘 매료되고 존경하는 것 같다.
이런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늘 건강을 생각하게 되었으며,책에서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음을 깨닫고 생각이 아닌 ‘실천’을 하려고 노력중이다. 마지막으로,더 많이 여행하라는 현자들의 말씀이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의 말을 거듭 강조하면서 여행을 미루지 않고 다녀오길 말하였다.나는 부산에서 태어나고,부산에서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지금 현재 대학교도 부산에 다니고 있다.우물 안의 개구리인 나로는 여행은 무섭고 두려웠던 의미가 컸던 것 같다.하지만 지난해 여름에는 나의 첫 여행으로 알라스카를 다녀왔으며,올해 방학에도 여행을 계획 중이다.여행은 견문을 넓혀주고,삶의 구실점을 찾게 도와주고,여러 가지 새로운 것들에 도전하게 해주므로 아주 많은 이익을 남겨준다.
이 책을 통해서,내가 간과하고 있던 가치관 그리고 어린 나이인 지금의 나로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훗날에는 어떤 가치로 생각되어질지 장기적인 안목을 가져다주었다.
급급하게 취업만 바라보고 살았는지 않았는지,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이 책을 지침으로 삶을 바라본다면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얼마나 아쉽고 강요하고 싶었으면,제목 또한 당신도 알게 된다면 일까. 앞으로 미래에 도약할 나로서는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는 책이었다.또한 내가 타대생이면서 이번 부산대학교에 도전한 점,그리고 이렇게나마 공모전에 글을 쓸 수 있어서 행복하고 다행인 것 같다.

입상 한*민 한문학과 도서: 광해군 : 그 위험한 거울
독후감: 광해군이란 패배자를 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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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드라마만 보여주는 케이블 채널이 있는데 광고시간에 ‘역사는 드라마다’라는 문구를 보여준다.역사에 재미와 감동이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 문구에 동감한다.그래서 가끔 사극과 사극에 관련된 역사서적을 읽는다.요즘 나오는 사극과 서적을 보면 역사를 재조명하거나 재해석하는 것이 대세임을 알 수 있다.최근 천만관객을 동원한 [광해,왕이 된 남자]는 그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그 인기를 반영한 듯이 광해군에 관련된 신간 서적들이 서점과 도서관에 자리잡았다.올해 출간된 오항녕 교수의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도 얼핏 그 인기를 따라 나온 책처럼 보였다.
그런데 광해군이 위험한 거울이란다.전공 시간에 거울이 역사를 상징한다고 배웠던 기억을 떠올렸다.그래서 광해군이란 위인의 역사는 위험한 것이라고 경고하는 저자를 상상할 수 있었다.아니나 다를까,프롤로그에서부터 에필로그까지 광 해군을 비판하는 그의 주장은 멈추지 않는다.그의 비판이 광해군을 폐위시켰던 옛날의 승자들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였다.광해군을 재조명하는 현재의 여론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확실했다.저자도 그것을 잘 알고 있어서 지금의 여론에 참수당 할 것처럼 두려워하고 있음을 밝혔다.하지만 학문은 다수결이 아니라고 물러서지 않으려는 의지도 보여줬다.시작부터 저자의 진지함과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의 내용은 광해군과 관련된 7가지 사례를 분석하면서 광해군을 비판하는 것으로써,인물의 일대기를 다루는‘드라마 같은 역사’가 아니었다.광해군의 행위와 관련된 조선의 다양한 제도들과 사건들을 설명하며 진실을 분석하는 논문에 가까웠다.독자는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저자의 주장과 기존의 상식을 비교하며 분석하게 된다.마치 광해군이란 피고를 심판하는 재판관처럼.그런데 저자는 광해군에 대한 기존의 상식을 역사인식 및 역사적 근거로써 해체하고 있다.따라서 이 책은 독자를 여러 가지로 곤란하게 한다.하지만 독자를 곤란하게 만드는 저자의 역사인식과 근거에서 이 책의 가치를 보았다.역사인식을 다루고 있는 도입부분은 책의 핵심이자 이해하게 만드는 열쇠였다. 저자는 광해군을 긍정하는 역사관의 기원을 식민주의와 근대주의 역사관으로 보았다.조선은 근대화된 일제에게 패망했기 때문에 중세의 조선은 부정해야할 존재가 되었으며,그런 조선의 체제와 어긋났던 광해군은 높이 평가되었다고 본 것이다.이 부분에서 우리가 역사를 보는 관점에 또다른 역사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리고 저자는 중세 조선을 옹호하기에 그 시대에 어긋난 광해군을 비판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지금의 광해군에 대한 인식에 근대주의 역사관이 개입한 것은 수긍할 수 있었지만,근대주의를 비판하고 중세 조선을 옹호하는 저자의 주장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근대문명의 문제점을 깨달아 중세에서 대안을 찾으려는 사람보다 근대문명에 적응하려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중세 조선은 결국 패망한 문명이며,광해군은 중세에 얽매이지 않고 실리를 추구한 근대인에 가까워보였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중세 조선의 제도들과 광해군의 행위들을 분석함으로써 중 세 조선의 관점에서 광해군을 비판한다.먼저 조선시대 제도들의 의미와 집행과정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중세 조선에서 배울 점을 보여주고,그 제도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광해군을 비판한다.저자는 중세 조선을 비하하는 시각을 교정시키면서 광해군의 잘못을 드러냈다.이러한 전개가 가장 잘 된 부분이 경연제도 부분이다. 저자의 설명을 통해 경연제도가 왕과 신하들이 함께 공부하며 소통하고 국정에 대한 비전을 수립하는 제도였음을 알게 되었다.그리고 광해군의 잘못을 확인할 수 있었다.광해군은 경연을 소홀히 하였다.즉 신하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않았으며,정치에 부지런하게 참여하지 못했던 것이다.이것은 임금으로서 명백히 잘못한 것이다.그래서 광해군을 혼군이라 주장하는 저자를 이해할 수 있었다.또 이 문제를 통해 현실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지금 국민들이 정치를 불신하는 가장 큰 이유가 불통(不通)이다.조선은 그나마 경연을 통해 소통의 가능성이 있었지만, 지금의 정치에는 소통하는 제도는커녕 가능성조차 없다.이 점에서 중세 조선을 긍정하며 현실에 적용될 교훈을 찾는 저자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의 가치는 ‘모든 역사가 승자의 역사’라는 관점을 거부하는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저자는 승자들이 기록한 [광해군일기]가 중초본과 정초본으로 구성되어 있어 왜곡의 가능성이 적다고 보았다.그리고 모든 광해군 연구자들이‘승자의 기록’인 [광해군일기]를 제일 많이 인용한다고 밝혔다.여기서 승자의 역사관으로써 저자의 주장을 비판하는 논리를 차단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볼 수 있었다.그리고 ‘모든 역사를 승자의 역사’라고 의심하는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알게 되었다.어쩌면 ‘모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개념은‘역사를 주관적인 관점에서 쉽게 보거나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시키는 이기적인 관점이 아닐까.’하고 생각했다.이 생각은 저자가 광해군의 잘못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확실해졌다. 저자는 광해군 옹호자들이 인용하는 광해군일기를 바탕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발견해냈다.그리고 그 사실들을 바탕으로 광해군을 비판한다.대동법의 경우,저자는 그 법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황신을 재조명했다.하지만 국사책이나 교양프로에서 그 사람의 업적은 나오지 않았었다.오직 그 시대를 다스린 왕의 업적으로 표현될 뿐이었다.광해군의 업적으로 대동법 시행이 언급되지만 실제로 광해군은 소극적이었다.외교정책의 경우,광해군은 그동안 중립외교로 찬양받았다.하지만 이 책은 광해군이 명나라에 뇌물바치며 부담을 남겼고,심하전투에서 파병군 대부분을 잃는 큰 피해를 입었음을 지적했다.그 일들은 국사나 교양프로에선 잘 언급되지 않았던 사례들이었다.결정적으로 광해군이 민심을 잃게 만든 궁궐건축은 그동안 외면받은 사례였다.이때 문득 카이사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광해군을 재조명했던 사람들은 광해군의 장점만 보고 그것을 부각시킨 것이 아닐까.그리고 역사를 재구성하는 명분은‘광해군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었다.’였을 것이다.그 과정에서 황신 같은 사람들의 업적들과 광해군의 잘못들은 가려졌다.외면되었다.궁극적으로 기존의 광해군 재조명은 역사왜곡이었다.
그러나 광해군을 폭군으로만 모는 것도 역사왜곡이다.저자는 [광해군일기]가 구성을 통해 왜곡의 가능성이 적다고 했지만,역사스폐셜에서 광해군일기의 구성을 통해 광해군의 활약을 삭제하려한 흔적을 찾아냈다.‘모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것은 틀렸지만,승자의 관점이 역사에 반영되는 것은 사실인 것이다.이것은 광해군이 주관적 관점에 왜곡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이 책의 경우에도 광해군의 단점들을 부각하고 있기에 광해군을 혼군으로 모는 저자의 의도를 수행 하고 있다.하지만 이 책은 광해군의 모든 행위를 다룬 것은 아니다.그리고 광해군이 나쁜 일만 한 것도 아니다.이 책은 기존에 알려진 광해군의 선한 의도와 업적을 외면하게 만드는 역사왜곡이 될 수 있다.이에 대한 저자의 대답은‘역사는 의도가 아니라 행위로 평가해야한다.’로 보인다.그렇다면 행위만으로 인물을 재단 하는 것은 옳은 것일까?임용한 교수의 [전쟁의 역사 3권]에서 이에 관한 괜찮은 부분이 있어 그것을 빌어 내 생각을 표현하고자 한다.‘진정한 역사가라면 선악을 나누기 이전에 인간의 삶에 대한 애정어린 눈길이 필요하다.그리고 이것을 따져야 한다.무엇이 그들의 삶을 그러한 선택 속에 던져 넣었는가를.’
나는 알고싶다.광해군은 왜 자신의 잘못을 계속했는지.왜 잘못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하지만 그것을 알 수 없다면 광해군을 나쁜놈이니 좋은놈이니 재단할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그것은 재판에서 모든 살인범이 사형을 언도받지 않는 이유와 같다.인간은 행위뿐만 아니라 의도도 중시하기 때문이다.그래서 광해군을 비판하는 저자의 주장을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다.특히 광해군 이후의 역사에 대한 책임을 광해군에게 돌리는 저자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하지만 왜곡된 진실을 밝혀낸 점에서 그의 주장을 담은 이 책은 가치가 있다.그것이 설령 불편한 진실이라도.
광해군의 잘못을 드러내는 이 책을 보며 볼프 슈나이더의 [위대한 패배자]를 떠올렸다.어쩌면 현실의 대다수가 패배자이기 때문에 광해군 같은 패배자를 동정하는 것이 아닐까?광해군은 전공을 세웠던 유능한 세자이자 업적이 있는 위인이었다.그리고 폐위되어 비참하게 살다죽었으며 폭군의 비난을 받던 패배자였다.거기에 광해군 이후 암울했던 조선의 역사가 있다.그래서 현대의 우리는 중세의 혼군 광해군을 동정하고 재조명하는 것이 아닐까.역사적으로 인간적으로 위안을 얻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그래도 오늘날 광해군의 위상은 패배자가 아니라 승리자에 가깝다.그런데 오항녕 교수는 광해군을 다시 혼군=어리석은 군주라 부르고있다.그리고 이 책을 통해 광해군의 잘못들을 제시하면서 재평가를 요구하고 있다.옛날의 악명을 회복시켜야 한다고.다시 패배자로 만들자고 주장한다. 이 책을 읽은 뒤에 광해군을 평가하는 문제로 고민할 수 있다.그 평가는 결국 독자의 주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조선의 체제를 중시하거나 역사의 행위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광해군을 나쁜 군주로 볼 것이다.반면 사람의 의도를 중시하거나 근대를 지향하는 사람에게 광해군은 여전히 괜찮은 군주일 것이다.하지만 수백년전에 죽은 사람에게 어떤 타이틀을 붙이는 것은 무의미하다.그보다 위인의 장단점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재미나 교훈,감동을 찾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굳이 따진다면 광해군은 폭군이나 혼군이 아니라 패배자다.누구도 패배자가 되고 싶어하지 않지만,인식하지 못하던 실수나 잘못이 한계로 작용하여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는 패배자가 되기 때문이다.그래서 이 책에서 본 광해군의 한계와 단점에도 불구하고 광해군에 대한 우호적인 관점을 완전히 버리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광해군이 자신과 시대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 것을 단점많은 인간으로써 연민한다.
하지만 인물에 대한 개인적 감정으로 역사의 진실을 오해하거나 외면하면 안된
다.그래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광해군의 잘못들을 파헤친 이 책에서 저자의 주장에는 동의하진 못하더라도 읽을 가치는 있다.광해군의 업적에만 관심을 가져서 그를 대체역사로 생각하고 그의 불행만 동정해서 그의 잘못과 단점이란 진실을 외면한다면,결국 진실과 교훈을 보지 못하는 패배자가 될지 모른다.소통하지 못한 채 잘못을 반복하다가 패배한 광해군처럼.
입상 조*라 영어영문학과 도서: 광해군 : 그 위험한 거울
독후감: 광해군 : 그 위험한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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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나에게 흥미로운 분야였다.역사책,소설에 재미를 느끼고 대입 때는 사학과를 지원했었다.위대한 인물뿐 아니라 ‘나’에 대한 기록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나의 과거를 미래에 누가 보아도 알 수 있을 만큼 적고 싶었다.일기에 시시콜콜하게 사건의 시간을 적기도 했다.역사의 한 조각에 끼워 맞춰지고 싶은 욕구에서 나온 행동이었다.과거의 사실에 대해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지만,현재를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재미도 이에 못지않다.수다스러운 나는 짧고 효과적인 표현을 찾는 데 골몰하고는 한다.이에 적절한 표현이 바로 ‘역사는 거울’이다.역사는 거울이란 적절한 은유법을 알고는 감탄했다.고대에도 지금처럼 투명한 유리 거울은 아니지만,청동거울이 있었다.거울을 보는 행위는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 된 것이 아닐까.정신분석학이 기본이 되는 심리학,비평에서도 거울의 존재는 크다.거울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눈곱이 끼었는지도 모른 채 밖을 돌아다니며 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거울을 보는 사람이 누구인지,더 정확하게 말하면 어떤 입장으로 보는지가 중요하다.아름다워 보이는 날이 있기도 하고,기운 빠진 모습에 놀라는 날도 있다. 거울을 보고도 나르시스처럼 거울 안에 갇혀 지내는가 하면 거울을 깨부수고 나 오기도 한다.사학자들의 사관이 바로 거울을 보는 태도라고 본다.저자인 오항녕씨는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는 이들의 거울에 돌을 던지는 사람이다.그는 자신을 임금님은 벌거숭이라고 외치는 존재로 적고 있다.민주주의 사회든 전제왕권사회든 소수가 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세상에는 뛰어들지 말지 망설이는 펭귄들이 많다.그러다가 한 펭귄이 뛰어들면,너도나도 함께 뛰어든다.바다로 뛰어들었든 사막으로 뛰어들었든 처음으로 시도했다는 용기를 가진 대담한 첫 번째 펭귄은 갈채를 받는다.
광해군은 연산군과 함께 조선 시대의 폭군으로 불린다.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폭군이 아닌,탁월한 외교능력을 갖춘 현군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독특한 인물이다.최근에 영화 ‘광해’의 흥행으로 대중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나는 국사를 수능 사회탐구 영역으로 선택했고 한국사 능력 시험 고급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젊고 깨어있으신 선생님들께서 비판적 사고로 역사적 사건들을 보도록 해 주셨다.나 역시 사대주의가 지배 사조였던 시대에 실리,중립외교를 한 현명한 군주로 기억하고 있었다.또한,광해군은 공납의 폐단을 개정하기 위해 대동법을 시행한 개혁 군주였다.북인,그중에서도 대북이라는 소수 세력은 서인이라는 다수 세력에의해 결국 개혁의 뜻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다.책을 절대 진리로 여겨서는 안 되지만 반박할 수 없는 사실로 여긴 건 사실이다.수동적으로만 받아들였다.저자는 내가 진리처럼 여기던 사실을 강하게 아니라고 부정했다.처음에는 그를 이단(異端)으로 생각했다.내가 글을 잘못 이해한 줄 알았다.그러나 그는 내가 가진 의견과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이었고,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알고 싶어 자료를 찾아보았다.재밌어서 몇 번이고 본 『조선왕 독살사건』의 저자인 이덕일을 비판한 학자가 오항녕이다.이덕일을 상대로 꼼짝 못 하게 완벽한 논증을 펼쳤다.이덕일은 자칭 역사학자라고 하지만 대다수 사학자들은 그를 사학자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소설이라도 사실로 생각할 만큼 흥미진진하게 봤었는데 밑바탕에 식민사관이 깔렸다니 씁쓸한 충격이었다.
저자는 학문은 다수결이 아니라며 자기주장을 완고하게 끌고 간다.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사료를 보고 입증하려는 시도가 보인다.인조반정 이후 서인의 시각이 들어간 수정 실록뿐 아니라 광해군 재위 당시의 사초도 인용한다.지금까지 광해군에 대해 내가 가진 생각은 외교와 세제(稅制)개혁 부분에선 능력을 발휘했으나 인간적인 면에선 흠이 있다는 것이었다.저자는 중립외교와 대동법에 비판적이다.오히려 자신의 지지 세력인 대북이 오히려 방납의 폐단으로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있었기에 광해군이 선혜청을 폐지하자는 의견을 냈다는 것이다.경기도 일부 지방에서 시범적으로 시행되던 대동법을 1년도 채 하지 않은 채 없애자고 한 기록이 있다.또한,대대적인 궁궐 공사를 위해 가혹한 징수를 했기에 민생 안정을 위한 세제개혁은 할 수 없었다.그동안 우리가 알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대동법을 최초로 시행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전체를 평가했다.사건의 전후 배경 등을 모두 이해할 때 논평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왕이든 대통령이든 실무적인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리더는 책임감 있는 자리이기에 비판도 비난도 받아들여야 한다.그러나 좋은 의도로 행한 정책도 결과가 나쁘면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다.시대의 지배 사조와 입장에 따라 평가는 유동적으로 변한다.그래서 나는 리더의 가치관,성품,자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모든 이들의 힘을 합쳐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가치관이 확실한지,독단적이진 않은지 말이다.리더 개인의 실무능력만으로 성과를 얻는데 고충이 따르기 때문이다.광해군은 이 부분에서 비판을 받는다.일부에서는 왕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평가하며 서자에 차남이라는 상황,명과 선조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위태한 상황 속에서 혼란스러웠을 수밖에 없다고 평가한다.그러나 측은지심 때문에 손해 보며 남을 도와주는 오지랖 넓은 나도,광해군의 리더로서 자질은 부족했다고 생각한다.조선 시대는 전제 왕권시대였으니 상대적으로 현재보단 리더의 권한과 능력이 강했을 것이다.그렇다 하더라도 궁 안에서만 곱게 자란 세자가 왕이 되어 올바른 판단을 내리도록 도와주는 장치들은 충분히 존재했다.경연과 삼사가 바로 그것이다.반란을 일으켰던 관료들이 조선은 대신,관리들에 의해 통치된다고 생각한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성군으로 평가되는 왕과 난군,폭군으로 평가되는 왕 사이에 눈에 띄는 차이점은 경연과 삼사의 유무다.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냉정한 숙부인 세조는 집현전(훗날 홍문관)을 폐지하고 6조 직계제를 통해 강력한 왕권을 행사했다.최초로 반정으로 폐위된 연산군은 경연을 계속해서 거부했다고 한다.광해군 역시 경연의 횟수가 적었고 소수 대북세력만 가까이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광해군은 자질을 기르기보다는 즉각적인 왕권 강화에 중점을 두었다고 본다.화려한 왕궁 건축과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위협적인 세력을 없애는 데 심혈을 기울였기 때문이다.재위 당시 죽임을 당했던 이들 중에 혈족도 있다는 점에서 인륜의 측면에서 비판을 받는 것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우등생이더라도 인간적인 면에서 부족하다면 주위 사람들은 멀리하는 것처럼 말이다. 소통이 화두로 거론되고 있다.다양성이 공존하는 시대에 혼자서는 살 수가 없다.융합(퓨전)은 실생활에서도 찾을 수 있다.통(通)하지 않으면 결국은 썩기 마련이다.여러 집단의 리더 역할을 맡으면서 성장하고 깨닫게 된 점이다.나도 가치관이 뚜렷하고 주장이 강한 편이다.특히 대학에 갓 입학해 철없게 굴었던 몇몇일들이 떠올라서 다시 반성했다.인간은 순식간에 변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도 고치고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느꼈다.어느 시대든,혼자서는 전지전능한 신(神)이 아닌 이상 살 수가 없다.무인도에서도 풀 한 포기,물 한 모금의 도움이 필요하듯 말이다.
광해군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학자와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학자는 서로 다른 시각으로 거울을 보고 있다.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부분만 계속 본다.옳고 그름의 판단을 할 수 없다.다름의 입장에서 평가내리고 상호비판적인 관계여야 한다.
내가 가지고 있던 역사에 관한 지식이 광해군에 대한 평가를 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주장에 대한 배경뿐 아니라 사건 자체의 배경도 모르고 있었다.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이 만약에 기존에 알고 있던 광해군에 관한 긍정적 평가의 책이라면 어땠을까.철없던 나에 대한 반성이 없었을 것이다.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학자들은 불통(不通)의 광해군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적게 기술하거나 동정 할 것이다.내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이 옳다고 생각하며 술렁술렁 읽었을 것이다.아직 대학생인가 벌써 생각 굳히기에 들어갈 것이다.새로운 것을 알고 파헤치고자 하는 생각도 없었을 것이다.젊은 시절에는 진보를 외치고 개혁적이던 이들이 결국 기득권 세력이 되어 보수가 되는 것이 마치 순리처럼 여겨진다.친구들과 종종 하는 얘기가 ‘우리도 커서 그렇게 되면 어떡하지?’이다.연륜과 깊이는 부족할지 몰라도 역동적인 열정과 패기를 잃을까 두려운 것이다. 늦었다면 한참 늦었을지도 모르는 지금,나는 ‘나’라는 사람에 관해서 탐구 중이다.관심 있던 분야를 포함한 여러 분야의 책을 읽고 있고,방학 때는 문학 작품 감상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할 계획이다.취업 준비에 열과 성을 다해도 모자란 시기에 팔자 좋다고 비난할지도 모른다.사실 나도 잠깐 자격증 책을 붙잡고 정해진 코스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었다.그러나 직업도 내 삶을 풍부하게 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미래의 내가 불행할 선택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이번에 읽은 책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비판적인 자세를 가지게 해 준 책인 동시에 ‘나’와 삶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준 책이다.역사책에서 흔히 얻을 수 있는 지식과 교훈을 주는 역할 이외에 자기계발서 역할도 한 셈이다.새삼 책을 읽는 사람의 시각과 태도에 따라 책의 의미도 다르게 전해진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역사도 책도 모두 거울이다.끊임없이 거울을 보며 나를 가꾸는 목표를 잃지 말아야겠다.똑똑한 천재로 뛰어들든,무식해서 용감한 바보로 뛰어들든 다른 펭귄의 눈치를 보지 않는 첫 번째 펭귄이 되고 싶다.
입상 고*윤 행정학과 도서: 광해군 : 그 위험한 거울
독후감: 광해군 : 그 위험한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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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茶山)정약용 선생께서는 의문을 품어 모르는 것을 묻고,이해되지 않는 것을 따지기 위해 독서를 했다고 한다.나의 독서도 정약용 선생과 비슷한 면이 있다.단순히 남에게 과시하거나 칭찬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도움을 얻기 위하여 책을 펼쳐보곤 했다.평온하고 안정적인 나날들이 이어질 때면 자연스레 책을 보지 않기도 했다.단순히 남들이 많이 읽으니까 책을 읽고,교양을 쌓기 위한 의도로 책을 펼치면 너무 따분 했었다.차라리 그 시간에 시험 대비를 위하여 공부를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나에게 책이란 삶에 안정을 찾아주고 원하는 지식을 얻게 해주는 길이었다.
올해 9월 영화 광해가 개봉하여 11월 23일을 기준으로 누적관객 1,200만 명을 넘어섰다.나 역시도 그 영화를 봤다.사실 영화 광해는 사실적으로 광해군을 표현했다기 보다는 허구적인 요소가 강했다.광해군과 똑같이 생긴 광대가 광해군의 행세를 하여 나라를 바로잡게 되는 계기가 된다.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지금까지 쌍둥이를 두 쌍 봤었지만 모두 친해지고 나서는 구분이 가능했다.어차피 영화 광해는 영화일 뿐이니 그저 재밌게 봤다면 그만이다.그 영화의 쌍둥이가 실제로 가능한지 아닌지를 따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그러나 영화 광해를 통하여 광해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준비하여 광해군에 대해서도 공부했던 기억이 났다.공부를 하면서 ‘난 그동안 역사를 너무 몰랐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었다.영화 광해가 나오고는 이렇게 역사에 관련된 영화가 나오는 것도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광해군에 대해서는 좋은 이미지만이 남게 되었다.한국사를 배우면서 ebs에서는 광해군에 대해 이렇게 강의 했었다.대동법을 시행하려 했지만 기득권의 반대에 부딪혔다.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통해 실리를 추구하였다.인조반정으로 퇴위되었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한국사를 공부하면서 의문이 생기기는 했었다.‘아니 이렇게 성군의 자질을 갖춘 임금이 왜 반정으로 쫒겨 난 거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공신력 있는 선생님들과 책에서 가르치는데 설마 틀리기야 하겠어?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것이겠지.’하며 피어오르는 의문들을 밀어버리곤 했었다.그러다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을 알게 되었다.제목에서 ‘위험한’이라는 단어가 없었다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광해군 그 거울’이었다면 ‘아~광해군에서 배울점을 찾는 내용이구나.’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위험한 거울’이라는 단어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거울은 좌우를 반전하여 상을 보여준다.또한 거울을 많이 보는 사람들은 거울마다 자신의 모습이 다르게 보인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나도 거울이란 완전히 평평하게 만들 수 없기에 울룩 불룩하여 거울마다 다르게 보인다는 생각을 한다.특히 커다란 거울일수록 표면이 평평하기 보다는 어딘가는 오목하게 들어가고 어딘가는 볼록하게 되어있다.거울의 왜곡적인 요소가 위험한 것이 아닐까?우리는 거울을 통하여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하지만 사실 그것은 왜곡된 모습이기 때문이다.물론,나도 거울을 보면서 ‘이건 왜곡됐어,내 모습이 아니야.’하지는 않는다.어차피 대강의 내 모습만 보면 되니까 그다지 부정적인 생각은 들지 않는다.하지만 비유적인 요소로서의 거울은 이런 위험한 요소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광해군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상식들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특히 광해군에 대한 미화가 일본 식민학자 이나바 이와키지에서 시작되었다는 글에서 헛웃음이 나왔다.뭔가가 이상했다.일제 시대에 행해진 민족 말살정책의 잔재가 아직도 우리 교과서에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무슨 근거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인지 알고 싶은 마음에 책장을 넘겼다.말이 되는 소린가?아니,이 책의 작가 말고 교과서를 펴내고,역사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뭘 가르치는 거지?수십 년간 다른 전문가들은 알면서도 이렇게 가르쳤다는 것인지,아니면 그들도 선대에 교육자들이 가르친 그대로 무비판적으로 가르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책장을 더 넘길수록 어처구니가 없었다.작가가 주장하는 근대주의자들이 바로 나였다.문명은 진화하는 것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근대가 가장 진화된 모습이라는 생각을 했었다.그러니 당연히 조선은 전근대적이고,당연히 빨리 지나갔어야할 시기라고 생각했었다.빨리 서양의 열강들처럼 근대화했어야 했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이런 생각이 잘 못된 것이고,식민사관의 일부였다니…….나는 뭘 배우고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문명으로서의 조선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었다.근대주의자들은 빨리 해체됐어야 할 조선이 인조반정으로 명맥을 유지했다고 본다.때문에 근대로 넘어가는 기간이 길어졌고 인조반정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이다.덤으로 광해군은 복권의 사치를 누리게 되었다.그리고 인조반정 이후에는 조선의 근대화 태동에 관련된 모습들만을 찾기에 바빴다. “진작부터 식견 있는 학자 사이에서는 근대(현대)가 사실과 가치 두 가지 측면에서 목적론적으로 설정될 수 없다는 견해가 제기되기 시작했다.…(중략)… 근대가 더 이상 가야할 유토피아로 남아 있지 않다는 점 …(중략)… 돈을 벌기 위해서 이루어지는 세상이 이른바 ‘진보된 근대’임이 드러났다.(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 p.22~23)”지금까지의 근대주의적 생각은 잘 못된 것임을 느꼈다.문명이란 궁극적이고 완전한 모습으로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런데도 그동안 근대적인 문명만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었다.
광해군에 대한 굵직한 사건들이 몇 개 있다.어머니를 폐하고,형제를 죽인 사 건이 있다.그리고 대동법,중립외교가 대표적이다.광해군에 대해 더 알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던 도중 흥미로운 글을 보게 되었다.네이버 어린이 백과에서는 다음과 같이 게시해 놓았다.“1,000명의 역사 선생님이 뽑은 ‘다시 보고 싶은 역사이야기’의 1위가 뭔지 아니?바로 광해군이라는 임금님이래.광해군은 조선 시대에는 찾아보기 힘들게 뛰어난 외교 정책을 펼친 임금님이었대.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임금님이 왜 다른 임금님들처럼 ‘조’나 ‘종’으로 불리지 않고 광해군이라 불리는 걸까?”그리고 이후의 글들은 놀랍게도 근대주의자들의 생각과 일치하였다. 백과사전에서도 이렇게 가르치고 교과서에도 이렇게 가르치고,심지어 한국사능력 검정시험을 위한 ebs강의에서도 근대주의자적인 시각이지 않은가?순간 굉장히 혼란스럽기도 했지만,오항녕 작가가 근거로 제시한 사료들을 보면서 주관을 가지게 되었다.그동안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했었다.
작가는 기존의 생각들은 사료들과 다르다고 주장한다.광해군은 정말로 혼군이었다는 것이다.조선시대의 사관은 객관적으로 역사적 사실들을 기록하였다.작가는 사관의 기록을 중심으로 광해군에 대해 이야기들을 풀어나가고 있었다.그러니 당연히 객관적일 수밖에 없다.사관의 기록에 따르면 광해군에 대한 진실은 다음과 같았다.광해군은 왕실의 종친들을 업신여겼다.종친들을 시기하고 의심했었다. 때문에 반역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없이 자신의 형인 임해군을 살해하였다. 대동법에 관해서도 기존과 다른 주장을 한다.광해군이 대동법을 시행하려고 했지만,양반들의 반대로 무산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대동법은 당시 국가재정의 3/4 을 차지하던 공납의 개혁이다.공물 대신 쌀을 세금으로 거두는 것이다.공물이란 운반과정에서 상하기도 하고 수확량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에서 대동법은 농민들의 부담을 덜어줄 개혁이었다.“광해군 2년 9월의 기록을 보아도 곽재우뿐 아니라 조정 신하들도 여러 번 대동법의 확대 실시를 요구했다.그러나 이런 제안은 광해군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중략)… 이는 그 근원은 맑게 하지 않고 하류만을 맑게 하고자 안 데 가깝지 않은가.나의 견해는 이와 다르다.(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p.151)”광해군은 방납의 폐단을 당연한 관례로 받아들였다.대동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책에서는 기존의 학계에서는 이 부분을 애매하게 넘어갔고,양반들의 반대였다고 얼버무렸다고 한다.사료가 정확하게 남아있으니 작가의 말이 맞다.인조반정 이후 백성들의 부담을 덜기 위하여 대동법을 추진하였다.이러한 점에서부터 이미 광해군에 대한 기존의 주장들에 대해 불신을 느끼게 되었다.
더군다나 광해군은 재정의 규모를 파악하기 위한 양전을 아예 시행하지 않았다. 민생안정보다는 궁궐을 짓는 토목공사를 무리하게 진행하였다.토목공사는 자신의 권력을 궁궐의 크기로 확인하기 위함이었다.호조판서 황신은 궁궐공사의 폐단을 지적하였다.양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궁궐공사로 백성들의 부담이 증가했다.쌀도 세금으로 납부해야 했으며 공사에 동원되기도 했었다.이러한 폐단은 대동법의 시행을 막은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공사를 위한 재료들을 얻기 위해 백성들을 쥐어짜기도 했다.광해군 11년에는 궁궐공사에 들어갈 재용이 부족하자 군량을 동원하였다.비변사에서는 “그렇다면 각 진의 1년 종자와 식량으로 사용할 것을 제외하고 그 나머지를 적당히 헤아려 거두어 모아 즉시 올려 보내게해야 할 듯합니다.(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p.302)”라고 말하였다.광해군은 “영건의 일이 다급하니 우선 먼저 5천 석을 가져다 사용하라.(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 p.302)”라고 강원도의 훈련도감에 말하였다.변방을 지키는 것보다 궁궐을 짓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무리한 공사로 광해군 12년에는 녹봉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였다.때문에 난동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광해군 10년 10월이 되어서도 궁궐을 짓기에 바빴다.부족한 재용들을 충당하기 위하여 백성들을 더 쥐어짰다.바다를 방어하는 배도 재목을 운반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이런 상태에서 광해군 11년 3월 명나라의 요청으로 그 유명한 중립외교가 시작된다.사관은 “이때 서사(후금을 공격하러 갔던 강홍립의 군대)가 패전하여 수만 명의 백성이 쓰러져 죽어갔으니 …(중략)… 만약,궁궐을 짓고 보수하는 마음으로 나라를 다스렸다면 어찌 어지럽거나 망하는 재앙이 있었겠는가.(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p.310)”라고 기록하고 있다.실제로 1만 3천여 명 중에서 약 9천명이 전사를 했으니 이게 과연 성공적인 중립외교인지 아닌지는 쉽게 알 수 있다. 이후 전사자와 부상자 집안에 주라고 명나라 황제가 준 은(銀)1만 냥조차 공사비로 쓴다.이런 기록들을 보며 광해군에 대한 그동안의 가르침들은 거짓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렇게 실정하는 상황이었으니 당연히 인조반정이 일어난 것이다. 반정(反正)이라는 말이 적절한 상황이었다.다시 바른 것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근대주의적 역사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우리는 지금이 가장 발전된 시기라고 생각한다.하지만 도자기 기술만 봐도 현재의 기술로는 예 전의 것을 재현해낼 수 없다.이처럼 근대적인 것이 가장 진화된 것은 아니다.그러니 근대주의적 역사관,식민사관에서 벗어나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봐야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어쩌면 그동안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고 누군가의 입맛에 맞는 교육을 받은 것들이 광해군 사례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교육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다른 이에게 건너 듣는 말들은 와전된다는 것이 떠올랐다. 영화 라쇼몽처럼 같은 사건이라도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서 다른 이야기가 되어 버릴 수도 있다.라쇼몽에서는 사무라이와 산적이 싸우다 사무라이가 죽게되는 사건을 이야기 한다.사무라이의 영혼,산적,사무라이의 아내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다.분명 객관적인 사건은 하나이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 3개가 나오는 것이다.
작가는 ‘벌거벗은 임금님’동화를 인용하며 자신의 처지를 비유했다.임금님이 벌거벗었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옷이 아름답다고 한다.그러나 한 아이가 임금님은 벌거벗었다고 한다.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한다.다수의 학자들이 광해군은 성군이라는 주장을 하지만 자신은 혼군이라고 주장을 하니까 말이다.작가는 사료를 통해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였다.만약 근거가 부족했다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나를 되돌아보며 무비판적으로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저 주어지는 것들을 아무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것이다.그러나 비판과 비난은 구분해야 한다.논리적이고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면 비판이 아니라 비난이 될 것이다. 그런점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입상 정*석 지구과학교육과 도서: 한밤중에 잠깨어
독후감: 누구에게나 추락의 순간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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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다보면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상황이 흘러갈 때가 있다. 그 대부분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기 마련이며,우리는 이런 상황을 현명하고 단호한 의지로 극복하는 이야기를 원한다.그렇다. ‘영웅’의 등장이다. 이러한 영웅들은 13척의 전선으로 수백 척의 적을 맞아 대승을 거두기도 하고,귀가 멀어 들을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불후의 명곡을 남기기도 한다.하지만 이런 초인적인 영웅들의 이야기는 오히려 그들이 이런 ‘추락의 순간’을 극복해냈기에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가 되고 만다.나는 이렇게 조그마한 시련 앞에서도 벌벌 떠는데,그들은 굳은 의지로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상황을 타개해 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한 권의 책은 ‘조선의 위대한 실학 사상가이자,유배라는 혹독한 시련조차 ‘목민심서’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명저를 쓰는 기회로 삼았던 위대한 사상가‘를 ’변해버린 처지에 한탄하고 어린 자식과 아내를 그리워했던 한 인간‘의 위치로 내려놓았다.
나에게도 추락의 순간이 있었다. 학교에서는 영재로 꼽히던 우수한 학생. 부모님께는 항상 자랑거리가 되는 공부 잘하고 착한 아들.친구들에게는 똑똑하고 항상 웃는 모범생….학창시절의 세상은 기회의 땅으로 보였고,미래의 나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지던 그런 순간이 있었다.하지만 추락의 순간은 너무나도 갑자기 찾아왔다.생각지도 않았던 입시 실패에 연이은 경제적 어려움과 복잡해진 가정사 앞에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었고 그렇게 몇 년에 걸친 방황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었다.그렇기에 나는 아직도 상상도 가지 않는다.단지 일개 모범생에 불과했던 나조차도 이러한 상실감에 몸서리 쳤을진대 지금으로 치면 청와대 비서실의 관리였다가 가족,친구,재산, 사회적 지위까지 모두 잃어버린 다산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그도 절망했다.하지만 그 절망 속에서 망가지지 않고,현실을 곱씹으며 인생과 세상에 대한 지혜로운 글들을 남겼다.지금 나는 그가 남긴 글귀들 중 인상깊었던 몇 가지를 두고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카르페 디엠(CarpeDiem)!
벗이여 달빛 아래 술 마시려면
오늘 밤 저 달을 놓치지 말게
만약 다시 내일을 기다린다면
뜬구름이 바다에서 일어날 걸세
만약 다시 내일을 기다린다면
둥근 달빛 하마 이미 어지러지리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외쳤던 한마디가 기억나는가?카르페 디엠! 현재를 즐겨라! 인생의 대부분을 학생으로서 지냈던 나에게는 이 말 한마디가 가장 와 닿았었다.학창 시절은 어떻게 보면 미래의 무언가가 되기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시기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현재를 즐겨라!’ 라는 말이 ‘현재 하는 공부를 즐기면서 해라!’ 정도의 의미로서만 받아들여졌었지만,몇 번의 큰 실패 후 이 말은 좀 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인간은 항상 인생의 어떤 단계에서 해내야만 하는 것이 있다.그렇기에 항상 무언가를 준비해야 한다. 고등학생은 대학생이 되기 위해 준비해야 하고, 대학생은 직장인이 되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또 직장인은 결혼을 위해,결혼은 또 다른 무언가를 위해….그렇기 때문에 항상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하지만 정작 본인은 현재를 살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기 일쑤다.항상 미래의 무언가를 준비하면서 현재를 희생한다.그리고는 스스로 자신은 성실하게 살아오고 있다고,지금은 내가 바쁘고 힘들지만 미래의 나는 다를 것 이라고 위안한다.
하지만 다산은 아니라고 말한다.‘오늘을 놓치면 바다에서는 구름이 일어나 앞이 보이지 않을 것이고,아름다운 달은 이미 이지러져 내일은 볼 수 없을 것’ 이라고 말한다.그리고 문득 확신이 들었다.내가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위치에 올라선 그의 조언인 만큼 믿어도 되지 않을까?그리고 그 자리에서 내려와서 인생을 관조하며 남긴 말인 만큼 정말 솔직한 그의 심정이지 않았을까? 아직까지도 긴가민가하며 이리저리 흔들리던 나에게 그의 한마디는 밀물처럼 시원하게 다가왔다.그의 말이 현재만을 즐기라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부는 외로워야 한다며,선의로 다가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거리를 두려 했던 나에게 다산은 ‘그러지 말아라.지금이 지나면 또 보지 못할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보지 못할 아름다운 풍경이다.오늘이 행복하지 않다면 내일도 행복하지 않다’이렇게 충고하고 있었다.오늘은 한손에는 따뜻한 커피를, 눈에는 아름다운 밤하늘을 담으며 친구와 함께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본다. 아름다운 오늘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간격
더러운 것 쏟으려면 솥을 엎는 법
자벌레 굽히는 건 펴려 함일세
….(중략)
칭찬은 만 사람 입 필요하지만
훼방은 한 입에서 말미암는 법
근심 기쁨 경솔하게 바꾸지 말라
잠깐 만에 티끌과 재가 되나니
‘진정한 배우자를 찾기 위해서는 같이 배낭여행을 떠나보라’고 했던가?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그 사람이 평소에 보여주지 않던 이면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그만큼 진정한 인간관계에 관한 깨달음을 얻으려면 본인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봐야 하는 것 같다.좋을 때에야 웃으며 아첨하고 친근하게 대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겠는가?
다산도 정작 어려운 상황에 처해서야 진정한 인간관계에 대해 깨달은 바가 있었던 것 같다.어찌 보면 인간관계만큼 이해타산적인 것이 또 있을까?모두들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 사람을 사귄다.그리고 자신의 행복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그 사람을 떠난다.다산도 그 자신이 잘나갈 때에야 주위에서 칭찬이 자자했을 것이다.그리고 그가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쓰고 몰락했을 때에는 또한 악평이 자자했을 것이다.다산이라는 사람은 분명 하나이고,그때의 그나 몰락한 후의 그는 분명 변함이 없을진대 어찌 이렇게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을까? 우리도 주위에서 이런 경우를 숱하게 보고 있다.분명 나는 억울한데 주위에서 믿어주지 않을 때.그리고 그 후로 나를 다른 사람 대하듯이 대할 때.우리는 인간에 대해 얼마나 많이 실망하고 있는가?이는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속박의 굴레와도 같은지도 모른다. 다산은 이에 대해 해답을 내 놓는다.‘사람은 얼마든지 새로워질 수 있다.소문을 듣고 사람을 편견을 가지고 대하지 말라.
왜냐하면 사람이 칭찬을 듣기는 어렵지만 훼방을 받는건 한사람의 입이면 족하기 때문이다.그러니 언제나 사람을 한결 같이 대하라’정말 문제의 핵심을 잘 꿰뚫고 있는 통찰이다.인간관계의 모든 어긋남은 이런 편견에서 시작하는 지도 모른다.내가 말을 하는데도 상대방은 귀를 닫고 있는 건 그 사람이 나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그 편견은 모든 오해의 근원이 된다. 사람이기에 나의 마음을 다른 사람이 모두 알아줄 수는 없다.하지만 그 간격을 메우려는 노력이 없다면 평생을 사람에게 실망하며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이러한 노력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임과 동시에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한 것이다.
기만에 대한 풍자
소인배들 교묘하게 벼슬 차지해
이런저런 궁리로 밤낮 보낸다
한 차례 동작조차 이유 있지만
백 가지 일 한 가지도 맞지 않누나
잘나가는 벗을 따라 꽃구경 가고
채식하며 평소 지킴 과시한다네
오황한 선비라 생각 부족해
비바람에 쓸데없이 분주하구나
사람은 그 자리를 떠나야만 그 자리의 허망함을 알 수 있다고 하던가?우리는 조직 안에서는 서로 물들어 누가 검은지 구분조차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다산은 벼슬이라 표현했지만 저러한 사람들이 어찌 높은 자리에만 있겠는가?저러한 세태는 더욱 더 심해져 이제 우리는 저러한 태도를 ‘처세술’내지는 ‘인간 관계론’ 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여 흉내내기도 한다.다산이 아마도 이러한 세태를 보았다면 혀를 차며 뒤돌아 섰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지 관리’라는 말이 중학생에게조차 낯설지 않은 세상에 사는 우리는 더욱 더 기만적이 되어간다.나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사회가 ‘올바른’모습이라고 정해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그리고 이런 눈가림이 계속되다 보면 어느 것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인지 헛갈리기도 한다.항상 가면을 쓰고 살다보니 이제는 그 가면이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게 된 형국이다.
이러한 사람은 불행하다.항상 주변을 의식해야 하고,남들이 원하는 모습대로 살아야 한다.이런 것들이 심해지면 나중에는 나의 겉모습을 바꾸기 위해 성형도 해야 하고,거짓말도 해야 한다.나 자신을 위해 살지 못하고 타인을 위해 사는 삶이란 얼마나 불행한가?
시험에 매몰되는 삶
과거 시험 수 양제 때 시작됐는데
그 독이 이 땅까지 이르렀구나
찬연하다 한 편의 생원론이여
무릎 치며 쾌재 한 번 외칠 만하다
구름과 노을 같은 재주 갖고도
죄다 과거 향했다가 실패하였지
꾀죄죄 흰머리가 되어서까지
새겨 꾸미는 버릇 못 버린다네
나는 사범대에 재학중인 학생이다.곧 임용시험을 볼 생각이고,이미 입시라는 관문을 지나쳐 왔다.그러다 보니 이 구절이 너무나도 가슴에 와 닿았다.이 땅의 학생들에게 이미 적성이란 중요한 것이 아니다.그저 시험.시험.시험.하나가 끝나면 또 다른 것이 기다리고 있다.공부란 ‘배우고 익히는 것’이라는데,이 땅의 학생들에게 공부란 이미 시험을 위한 것이 되어버린 것 같다.공부를 하더라도 ‘시험에 나오는 방향대로 공부하는 것’이 옳은 공부가 되고,스스로 찾아서 하는 탐구는 뒷전이다.당연히 이런 공부는 재미가 없으니 시험을 보지 않으면 공부를 하지 않는다.나는 이것이 최근의 일인 줄만 알았는데 이백년 전 조선에서도 마찬 가지였다고 하니 통탄할 일이다.다산의 말대로 ‘구름과 노을과 같은 재주’를 갖고도 세계를 놀라게 할 만한 학자가 나오지 않는 것은 다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교사가 되기 위하여 공부를 하는 처지에 이러한 현실이 통탄스럽다.영재교육이니,발견학습이니 하지만 결국 이러한 현실에 파뭍혀 이과의 뛰어난 학생은 시험 성적에 맞추어 의대로 달려가고,문과의 뛰어난 학생은 법대나 경영대로 달려가는 대한민국이지 않던가?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의 문제이다 보니 딱히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다산도 이 부분은 마찬가지였던가 보다.그저 탄식만 하 있을 뿐이니….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과 ‘인간의로서의 다산’.이 책에서는 이 두 면모를 모두 살펴볼 수 있다.우리 모두는 실패를 한다.하지만 모두 다 실패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삭힐 수 있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다산은 이를 훌륭하게 해낸다.이 숙고의 기간 동안 그는 좌절하지 않고 ‘목민심서’라는 빛나는 명작을 이루어 냈다.이 책을 관통하는 ‘삶의 추락’을 대하는 다산의 태도에서 우리는 가장 큰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입상 정*영 영어영문학과 도서: 한밤중에 잠깨어
독후감:– 다산의 시에 내 마음을 비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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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마주했던 인간,다산을 만나다>
한밤중에 잠깨어 불 꺼진 빈방에 홀로 있으면,고통과 외로움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만 같다.짙은 어둠에 근심과 고통이 녹아들어 마음을 어지러이 괴롭힌다. 말로만 듣고 생각했던 것,내 문제로 깊이 고민했다고 착각했던 일들이 실제로 내 눈앞에 나타나 내 삶을 정신없이 흔들어놓을 때,무너져 내림을 경험한다.내려놓는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가 않은 일이다.욕심과 근심은 떨쳐내려 할수록 더 지독하게 따라붙어 나를 떠나려하지 않는다.인간이기에,약한 인간이기에 나는 괴롭다.한 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글을 쓰면서 내 안의 아픔과 마주하고,솔직해 지는 것이 두려웠다.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두려워 생각에서 도망을 쳤다.
내가 한시로 만난 다산 역시 고통에 몸부림치는 한 인간이었다.먹먹한 가슴을 부여잡고 때론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그의 인생에도 굴곡과 아픔이 있었고,고통과 시련은 그를 비켜가지 않았다.큰 시련 없이,낙오 없이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에게 유배생활은 부정하고 싶을 만큼 가혹한 현실이었을 것이다.그의 시 속에는 자신의 찬란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구절이 많이 보인다.임금의 총애를 받고,요직에 있으면서 자신의 포부를 펼쳐 보일 수 있는 힘을 가졌던 시절을 자주 떠올렸다.모두가 내편 같았고,크게 부족함이 없었고,올바른 길을 걷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던 시절.그러나 그는 정적에 의해 중앙정계에서 쫓겨나게 되었다.그 일로 형제를 잃고,사랑하는 가족들과도 생이별을 한 채 유배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특히 첫 유배지였던 장기에서의 시 구절 속에서는 절망과 분노에 찬 인간 다산의 얼굴이 보인다.억울함과 답답함을 함부로 이야기조차 할 수 없었던 그는 글을 읽고 쓰면서 자신과 마주하고,자신의 현 상황을 직시하려고 했다.그의 시가 가슴에 와 닿았던 것은,나 역시 시련과 고통을 겪었고 지금도 그 고통이 현재진행 중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참으로 따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어지러운 세상살이,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벗어날 수 없었던 현실 속에서 그는 절망과 분노만 하고 있지 않았다.그렇다고 체념하지도 않았다.분노와 절망 속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글로 풀어내고,이해하려고 했고,자연과 사물 속에서 인생의 이치를 발견했다.나비와 꽃,구름과 바람,산과 강 어느 것 하나 그가 음미하고 노래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피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부단히 노력한 것,그리고 절망과 고통을 자신의 존재를 성숙하게 하는 시간으로 가꿔나갔던 것이 결국에는 다산이 스스로를 붙잡을 힘을 주게 된 요인이 아닐까.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나와 마주했다.똑바로 쳐다보기 싫어서 항상 울면서 달아나기만 했던 나는 다산의 시를 읽으면서 조금은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 실패와 고통 속에서도 초연할 것만 같았던 다산 역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괴로운 밤들을 보냈던,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아니면 나도 다 산처럼 언젠가는 마음의 평정을 찾고 욕심과 고통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었을까.
<여기가 아닌,다른 곳에서 안식을 구하려 하다>
어린 시절 나는 사람들의 사랑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모범생이었다.못하는 것이 없었고,무엇이든 도전 했다 하면 큰 시련 없이 좋은 결과를 얻었다.사람들의 관심과 칭찬이 마냥 행복했다.주변사람들은 내가 크면 대단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했고,나 역시 항상 자신감에 차서는 나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칭찬이 대단한 것인 양 믿고 살았다.집안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으나,화목한 가정에서 자랐고,무엇이든 야무지게 해내는 나는 부모님의 자랑이었다.
책을 많이 읽고,글을 많이 써서 별명은 문학소녀였다.하나하나 새롭게 알아가고,깨쳐서 이야기하는 것이 좋았다.내가 한 마디를 하면 사람들이 나를 그 말의 값어치만큼 대우해주는 것이 좋았다.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어린 나이였을 때부터,인생과 이상,정치와 사랑을 이야기했으나,그것은 어른들의 책에서 읽은 구절을 별다른 고민 없이 흉내 낸 것에 불과했다.마음으로 아파보지 않고,직접 겪어 보지 않고,마치 내 것인 양 이야기했다.그렇게 이야기하다보니,스스로도 세상의 이치를 다 아는 줄 알았고,별다른 사춘기도 겪지 않았다.
그러나 중학교 졸업반이던 가을의 어느 날,병마가 나를 찾아왔다.허약하여 잔병치레를 하긴 했으나 그렇게 크게 앓기는 난생처음이었다.게다가 세상의 온갖 소리가 싫어졌다.자동차의 경적도,학교 종소리도 전화벨 소리도.소리만 들으면 깜짝깜짝 놀라고,정신이 혼미해져 외출을 할 수도 없는 지경이 되었다.원인도 알 수 없었고,뾰족한 치료방법도 없었다.하루가 다르게 살이 빠지고,불안하고, 우울해졌다.이유를 알 수 없이 시름시름 말라간다는 것,어린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엄청난 고통이었다.별다른 시련을 모르고 자란 터라 눈물과 절망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것은 나의 작은 세계가 무너지는 경험이었다.내가 지금껏 알고 있던 세상이 허물어지고,내가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뒷자리로 밀려났다.공부를 잘하는 것,좋은 성적을 유지하는 것,대회에서 수상을 하는 것,친구들에게 인기를 얻는 것….중요한 것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큰 의미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태어나서 처음 겪어본 시련이었고,어쩌면 말로만 떠들었던 인생과 죽음,사랑에 대해서 진지하게 나의 문제로 끌어안고 고민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그러나 나는 많이 두려웠고,다산처럼 두려움과 고통을 내면적 성숙으로 승화시키지는 못했다.나는 다산이 아니기에 다산의 고통을 완전히 이해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다산 역시 자신의 세계가 허물어지는 고통 그 이상을 느꼈으리라고 짐작해본다.누구에게나 자신의 고통은 더 아프고,쓰리질 않는가.
병세는 호전되었으나 청각과민만큼은 나아지질 않았고,병원에 가 봐도 원인도약도 없었다.대학생활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수업을 듣는 것도,버스를 타는 것도 힘들었다.남몰래 학교 화장실에서 많이 울면서,하필 왜 나에게 이런 병을 앓게 하냐고,누구에게 하는지도 모를 원망을 마음속으로 쏟아내고는 했다.남들이 보기에는 멀쩡하지만 나만 아는 고통.증상을 설명하는 것도,병명도 명확하지 않아 친구들에게조차 말하지 못했다.행여 놀라고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보여줄까 사람들과의 만남도 두려워졌고,교통수단을 타는 것도 두려웠다.나는 취업도 해야 하고,결혼도 해야 하고,부모님께 효도도 하고 싶은 평범한 20대 일 뿐인데. 어쩌다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나에게는 수많은 고민과 결심을 요하는 일이 되어버렸을까.아무리 혼자 울부짖어도 변하는 건 없었고 나는 점점 작은 내 방안에 갇혀 스스로를 미워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스스로를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도저히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시련이 계속될 때 사람은 절망의 나락에 빠지게 된다.사람들을 원망하고,세상을 증오하고 결국에는 자기 스스로를 미워하게 되는 것이다.그래서 나는 내 영혼의 안식을 다른 이에게서 구하고자했다.무섭고 힘들 때,스스로가 싫어질 때 남자친구에게 나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면서 그를 괴롭혔다.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하는 고통의무게를 타인에게 함께 지워 그것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려했다.하지만 되 돌아오는 것은 더 큰 공허함과 고통뿐이었다.원망과 고통이 그릇된 방식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표출될 때,그것은 본인과 주변사람들 모두에게 상처가 된다.
<일기일회(一期一會)>
다산의 글 중에서 가장 맘에 와 닿았던 시는 달구경.‘벗이여 오늘 밤 저 달을 놓치지 말게.만약 다시 내일을 기다린다면 둥근 달빛 하마 이미 이지러지리.’마치 다산이 젊은 날을 눈물로 보내고 있는 나에게 안타까워하며,오늘의 행복을 내일에서 구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나는 창살 없는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자유로이 날아가는 다른 새들을 바라보며 젊은 날을 눈물로만 보내고 있었다.내가 오늘 불행한 까닭은 어쩔 수 없는 나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꾸 밀어내려고만 하기 때문이고,그래서 나 자신을 그리고 지금 여기를 오롯이 사랑하고 즐기지 못하기 때문이다.나는 멀리 멀리 날아가는 다른 새들을 부러워했다.그들처럼 멀리 날아가지 못하는 내 신세를 비교하고 한심해하니,늘 불안하고,행복하지 않았다.빛바랜 과거의 영광을 추억하면서 ‘난 지금 이런 모습으로 힘없이 있을 사람이 아니었는데,내 인생이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하며 나의 마음은 온통 과거에 머물러있었다.
조금만 들여다보면,절대적으로 올바른 삶의 길,행복으로 가는 길은 정해져있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지만 우리는 늘 불안해한다.혹시 낙오되지 않을까,실패하여 비틀거리게 되지 않을까.사회구조적인 문제,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개인의 불행과 고통을 그대로 감내하자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분노와 절망은 결국 인생을 나락으로 더 깊이 떨어뜨릴 뿐이다.당장은 겪을 수밖에 없는 시련이라면,내 문제로 안고 사랑해내야 한다.어차피 영원이 안정된 삶도,영원이 불안한 삶도 없는 것이 인생이다.그런 사랑 속에서 만이 나도 행복해지고,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는 힘도 나오는 것이다.지금껏,인생에 대한 소신도, 용기도,결단도 없었다.‘내려놓음’의 용기가 생길 때,‘지금,여기’를 진심으로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다산에게서 나는 그 희망을 보았다.
<나와 마주할 용기를 얻으면서>
마음에서 우러나온 사랑이 타인에게 미칠 때,그것을 ‘인(仁)’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한다.이 때 사랑은 채워지지 않는 마음에서 나오는 갈망이 아니라,충일한 마음에서 나오는 사랑이라고 한다.다산은 유배생활을 통해서 결국은 진정으로 많은 번뇌와 욕심을 내려놓았다.낮은 곳을 살피고,작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그렇게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갔다.낙오와 시련을 인문학적 수양을 통해 ‘공부’의 기회로 삼으면서,그의 세계가 한 층 더 풍부해졌다.결국 그의 글과 말들이 후대에 이렇게 전해져 많은 이들에게 읽힘으로서 위로와 깨달음을 주니,이것이 바로仁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면 힘들고,고통스러운 시간이 있기 마련이다.번뇌하지 않고,눈물 없는 인생은 없다.그래서 다산의 글을 보면,마치 울고있는 나 자신과 마주하는 느낌이 들었다.내게도 가슴을 쥐어뜯으며 밤잠을 못 이루던 많은 밤들이 있었다.그리고 앞으로도 몇 번이나 더 그런 시간을 마주하게 될지 모르겠다.하지만 그러한 시간들이 더 이상 분노와 자기 연민으로 가득 차게 그냥 내버려두지만은 않을 것이다.
결국 운명의 문을 두드려,그것을 열어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도망 갈수도,외면 할 수도 없는 나의 인생이기 때문이다.나는 이번 해 말,오래토록 생각만 해오던 인도여행을 떠날까 한다.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힘들고,불편하겠지만 용기를 내 보련다. 나와 마주해보련다.
입상 정*린 통계학과 도서: 한밤중에 잠깨어
독후감:  – 정약용의 삶을 보며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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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그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본 조선시대의 실학자로 거중기의 발명,목민심서의 제작 등 훌륭한 업적을 세웠다.한편 신유박해로 오랜 기간동안 유배를 가기도 했다.지금까지 나는 위인전을 보며 정약용을 마냥 훌륭한 인물로만 생각했다.그러나 그의 개인적인 생각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나는 그냥 그를 훌륭한 실학자라는 단어로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과연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위인전과 다르다면 그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정약용,그는 위인이다
책 ‘한밤중에 잠깨어’에서는 위인인 아닌 살아있는 정약용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장장 18여 년간 장기와 강진에 유배되어 있었던 정약용은 어떻게 생각했을까.그는 맨 처음에 분노했다.정약용은 권력을 쫓는 아첨쟁이들과 큰 뜻을 품고 있었던 젊은 날의 자신을 비웃으며 허탈해 했다.때로는 담담하게 또는 격렬하게 한자 한자 쓰며 표현했다.역모를 꾀했다는 누명을 받으며 얼마나 허탈했을까.여기에서만 그쳤다면 그의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그러나 점차 정약용의 심경에 변화가 온다.내일의 계획은 잊고 술만을 마시겠다고 하던 그가 과거의 허물을 벗어던지며 마음을 다잡아 묵묵히 책을 읽기 시작한다.이런 모습이 진정한 위인이 아닐까 싶다.그도 인간이라 어느 순간에는 작심삼일처럼 무너지기도 했다.보고 싶은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은 쌓여가고 병든 아내에 대한 미안함은 커져가기만 한다.정약용은 아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보내준 밤톨에 눈물 짓고 자식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덕담을 하는 그런 사람이다.그러나 책의 마지막 부분인 유배당한지 10년 후에도 결코 그의 뜻을 꺾지 않겠다고 다짐한다.실제로 정약용은 유배당한 후 독서와 저술에 힘을 써 학문체계를 완성했다.이처럼 정약용은 단순히 거중기를 발명하고 수원의 화성을 지어서 위인이 된 것은 아니다.자신을 극복했기 때문에 위인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다.모두가 정약용처럼 행동한 것은 아니다.역모의 누명을 써 화병으로 죽은 사람도 많으며 병들어 죽은 사람도 많다.이에 비하면 정약용은 극복하고 스스로를 발전시켰으니 위인이라고 불려 마땅한 것이다.
사람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가
‘한밤중에 잠깨어’를 읽으며 인간이 결코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인류가 지성을 가진 이래 사람의 본성은 몇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비록 시간이 지나 인간복제를 연구할 만큼 기술이 발전했고,학문은 더욱 깊어져 갔지만 인간의 본성은 결코 쉽게 변하지 않았다.인간은 남보다 우위에 서고 싶어 하며 험담하기를 즐긴다.
정약용이 살았던 시대도 현대와 다를 바 없다.정약용은 유배일기 중 ‘유언비어가 생겨 순식간에 퍼져 두렵다’고 서술했다.그 당시 또한 유언비어라는 말이 있을 만큼 터무니없는 소문이지만 사람들은 진위는 파악하지 않고 소문에 대해 말하기에 바빴다.이와 같은 사태를 보며 현재의 마녀사냥이 생각났다.한 임산부가 인터넷에 ‘종업원이 임산부의 배를 발로 찼다’는 글을 올려 한 때 크게 이슈가 됐다.그 때 네티즌들은 종업원을 맹렬하게 비난하며 분노했다.그러나 사실은 이와 달랐다.오히려 임산부가 종업원을 폭행한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그러나 네티즌들은 첫 번째 루머에만 관심을 뒀을 뿐 진실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이런 마녀 사냥은 아이에게 국물을 엎은 여자 등 그 후에도 계속 됐다.이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소문을 즐겼다.다만 정약용의 시대와 다른 점은 기술의 발달로 소문의 전달이 빨라진 것뿐이다.
정치의 형태도 변하지 않았다.정약용이 말하기를 ‘당파싸움은 권력을 위해 서로 헐뜯고 있다.이제 그만 두고 화평의 길을 나아가자’고 비판했다.이런 구절을보며 나는 현재의 정치세태가 생각했다.국회에서는 나라를 위한 정치가 아닌 권력유지를 위한 정치를 일삼고 있다.또한 건전한 비판이 아닌 몸싸움을 하며 서로를 인신공격한다.가장 엄중하고 철저하게 이뤄져야 할 대통령 후보 검증도 건전한 비판이 아니라 서로의 후보를 까 내리기에 바쁘다.민주주의의 꽃이 피었다, 더 평화로운 세상이 왔다고 말하지만 사람 사는 일은 변하지 않았다.결국 인간은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하며 치켜세웠으나 지식만 늘어났을 뿐 본성은 멈춰있는 것이다.
정약용이라면 이에 대해 어떻게 말을 했을까.나는 이제 지식위주의 교육보다 감성교육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다.인간의 지식은 늘어났지만 가치관의 변화가 따라가지 못해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그러나 감성교육이 좀 더 시행된다면 확고한 자신만의 신념이 자리 잡게 되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태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보통 ‘하드웨어’는 강하지만 ‘소프트웨어’는 약하다고 흔히들 말한다. 예를 들어 삼성의 핸드폰 제작 기술은 세계제일이지만 쓰고 있는 운영체제는 국의 것,안드로이드다.또한 우리나라의 하드웨어 제작은 세계최고지만 현실은 애플에 밀리고 있다.어떤 이들은 애플을 ‘감성팔이’라며 비하하기도 하지만 이제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감성팔이를 배울 때이다. 정약용의 삶을 보며 배우다
나는 21살로 이제 막 사회에 나가려고 한다.반면 다산 정약용이 유배 중 일기를 쓸 때는 임금의 애정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다 한순간에 역모로 몰려 20여년간 유배를 당했다.정약용의 유배읽기를 읽고 정약용을 위인이 아닌 인생선배로서 배우려고 한다.
다산 정약용의 유배일기에는 가족에 대한 내용이 굉장히 많다.18년이라는 기나긴 세원에서 정약용이 쓴 일기를 읽다보면 내 자식이 쑥쑥 큰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일기 중 아들과 딸을 애틋하게 그려내 이게 아버지의 마음을 사뭇 짐작할 수 있었다.
‘어린 딸아이 단옷날이면 옥 같은 살결 씻고 새 단장 했지/(중략)/오늘은 쑥 인형
매다는 저녁 손바닥 속/구슬을 누가 놀리리’ 단옷날이 되니 딸아이가 생각나고 부재에 아픔을 느끼는 정약용의 마음이 우리 부모님을 닮았다.나는 현재 여수에서 3시간 떨어진 부산으로 와서 자취를 하는데 2달에 한번 정도 집에 가곤 한다.가끔 뵙는 것이지만 집에서는 사실 그리 잘 지내지 않곤 한다.그러나 내가 부산으로 가고난 후 동생이 말하길 어머니는 늘 우신다고 했다.아!이런 게 어머니의 마음일까.어머니는 내가 선물해 드린 립스틱을 바를 때마다 내 생각이 난다고 말씀하신다.세월이 흘러도 부모의 마음은 변치 않는가 보다.정약용이 장장 18여 년간 가족들을 쉽게 보지 못했을 때의 그 기분은 내가 쉽게 짐작할 수 없다.유배일기 중 거의 대부분이 부귀영화나 사라져버린 권력이 아닌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찬 것을 보면 그만큼 가족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나에게 알려준다.
내가 정약용에 대해 조사하며 감탄했던 것은 18년이라는 긴 유배기간 동안 그냥 시간을 버린 것이 아닌 연구를 하여 자신만의 학문체계를 만들었던 것이다.그는 누명으로 인한 분노와 한탄을 가라앉히고 연구를 시작했던 것이다.이 기간 중 역사에 이름이 남을만한 연구들이 쏟아져 나왔다.귀양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정약용은 스스로 노력하여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낸 그 정신은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입상 이*정 행정학과 도서: 한밤중에 잠깨어
독후감: 한밤중에 잠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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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바쁘다.초등학생들은 더 좋은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대학생들은 더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서,직장인들은 더 편안한 노후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간다.저마다 앞으로의 목표를 갖고 전진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그런데 정작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는지,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반성은 없다.우리는 너무도 바쁘기 때문에 사색의 여유를 가질 수 없기에 더욱 그러하다.그런데 조선시대 위정자들의 삶에서도 생각만큼 사색과 반성의 기회는 많지 않았던 듯싶다.드라마나 영화 등의 매체에서 접하기에 관직에 종사하는 높으신 분들은,일을 다 하고 난 뒤에는 으레 정자 같은 곳에 모여 앉아 달빛을 벗 삼고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의 진리를 탐구하고는 했다.그렇지만 다산 선생의 한시에서 드러나던 모습을 보면 조금은 다른 듯하다.유배지에 온 후 많은 시간 생각을 하고서야,옛 시절에는 미처 본질에 대해 깨닫지 못했음을 반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지난 날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반성과 함께 불 편한 현실에 대한 우려,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잘 나타나 있다.유배기는 다산 선생이 삶에 대한 여러 가지 고찰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는 점에서 어쩌면 꼭 필요한 시간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이러한 성찰의 시간이 없었다면,한 때의 그물을 잠시 피한 것에 만족하고 있다가 더 큰 좌절,위험을 겪게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도 해왔다.동․서양을 막론하고 성선설과 성악설 등의 주장을 펼쳤고,그들의 이념은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사람들이 의사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가치 기준으로서 작용했다.이와 유사하게 책 속의 많은 시들은 그러한 고찰을 새로운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라 생각된다.내게 있어서는 역사 속 이념들보다 실학자였던 정약용의 방식이 좀 더 깊이 와 닿았다.직접 경험한 것을 토대로 한 반성만큼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다산 선생은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 할 만큼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하고 800리 떨어진 곳에 유배가 건강마저 해치게 되었다.그 과정에서 탐욕스런 인간들을 겪었고 믿었던 동료들로부터 외면을 받아야했다.또한 이익이 되면 의로움을 거들떠보지 않고 결과를 합리화 하려 했다는 철저한 자기반성도 있었다.특히 나만은 나쁜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 자신했었다는 구절에서는 큰 공감대가 형성되었다.이렇듯 다산 선생의 시들은 경험을 가지고 치열한 숙고를 거쳐 나온 것으로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지침으로서 역할을 해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약용의 글이 오늘날 우리들에게까지 남겨져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로서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시대를 초월한 ‘현실 적용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특정한 시기에 한정되지 않고 긴 시간적 흐름의 안목을 갖고 현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생각한다.그 예로서,이 책을 읽으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던 부분이기도 한데 당시의 과거제도에 관한 것이다.‘과거’라 이름이 붙여진 시에는 당시의 과거제도에 대한 다산 선생의 비판적인 관점이 잘 드러나 있다.과거제도는 숱한 인재를 망치는 일로써,많은 사람들이 쓰레기 같은 공부에 힘쓰도록 한다는 다소 직설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뿐만 아니라 온 세상이 다 생원이 되어서야 끝날 일이라는 구절 등을 사용하면서 다양한 특성을 가진 사람이 과거 급제라는 맹목적이고 획일화된 목표를 수행하려는 현실의 모순을 드러내는 것이다.이 부분은 오늘날 수능,국가고시가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현실과 대응시켜볼 만하다. 근대 사회에서보다 훨씬 다양한 직업의 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대에서 개성을 좇기 보다는 국가적 차원의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이 중요한 가치로서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다.이러한 현실은 장기적 차원에서 보았을 때 인재를 효율적으로 배분하지 못함에 따라 국가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다산 선생은 인간들이 기본적으로 희소한 가치를 중요시 여기는 특성을 놓치지 않았고 시를 남김으로서 유의의 뜻을 전한 것이다.이처럼 후대의 자손들에게까지 적용 가능한 교훈을 남겼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만하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에서 유력 인물들이 후보로 선정되면서 본격적인 유세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각각 가진 이념에 따라 정치 공약을 내세우고 상대방에 대한 검증도 한다.그러나 경쟁이라는 속성 때문인지 종종 도를 넘어 ‘반대를 위한 반대’,‘제로섬 게임’과 같은 양상을 띠기도 한다.그런데 다산 선생이 바라보았던 옛 조선 정치사회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소모적인 당파싸움,권력 다툼으로 어지러운 세상사에 대한 시대 비판적인 모습이 시에서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이런 모습이 나타나는 것을 미루어 보았을 때 시대를 막론하고 권력의 속성은 사람을 병들게 하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예나 지금이나 그 형태만 달라졌을 뿐 기득권자들의 권력 유지를 위한 갈등은 항상 존재할 수 밖에 없는 듯하다.선생이 말했던,한 번 맛보면 중독되어 파멸에 이른다는 복어의 독처럼 말이다.그런 점에서 볼 때 이러한 시대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다산 선생의 조언은 새겨둘 만하다고 생각된다.‘권력,부귀와 같은 가치는 한바탕 꿈이니,인생의 꿈을 깨어 참 삶을 살아야 한다.’사실,이전까지는 이러한 말을 하는 사람들은 경쟁 사회에서 도태되어 본인의 삶을 합리화 하려는 은둔자들의 변명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었다.그러나 선생의 사고의 흐름을 따르다 보니 이런 희소가치의 무상함,덧없음이 한껏 다가왔다.같은 시대상을 가진 현대에 사는 우리들은 이러한 다산 선생의 조언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유사한 주제를 가진 시들을 읽으면서도 흐름을 놓치지 않고 읽을 수 있었던 것은,다산 선생이 자기반성,현실 비판 등에 그치지 않고 희망적인 단계로의 발전에까지 나아갔다는 점에 있다.나 역시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비판하는 과정에 있어서 나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하며 자책하고,괴로워하며 스스로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다.이제 막 21년의 삶을 살아온 나의 모습을 뒤돌아보아도 긍정적인 마음 보다는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에 사로잡혀 더 나아가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정약용 역시 초기의 유배 시기에는 본인의 날개를 꺾어버린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이 많이 나타났다.그러나 사유의 시간을 가진 후에는 본인보다 상황이 더 좋지 못한 사람 혹은 본인이 더 나은 점을 생각해내며 위안을 삼았고 새로운 날로의 원동력으로 이용했다.거백옥의 이야기를 시 속에 풀어내었던 부분이 생각난다.거백옥은 50세에 잘못된 삶을 깨달았으나 본인은 40세에 알게 되었으니 더 이상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아 더 낫다고 말했다.같은 현실을 어떻게 대하는 가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질 것임을 다시 한 번 새겨보았다.
혼자서 조용히 생각을 하는 것은 즐거우면서도 가치 있는 일이다.돌아보면,수업 시간에 수 없이 많은 정보를 주입받고,친구들과 대화하면서도 일상적인 생활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지만 정작 나만의 생각을 하는 시간은 많이 없다.앞서 말했듯 바쁜 생활에 쫓겨 그럴 수도 있고,오늘날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스마트 폰 등 전자기기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내가 오늘 어떤 일을 했고 내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앞으로는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될 것인지 등을 생각하는 것도 지식들만큼이나 중요한 요소이다.우리가 대단하다고 여겨 오늘날 읽고있는 다산 선생의 시들도,이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한 것들을 오랜 사색의 시간을 거쳐 발견해 낸 것들이다.이렇듯 사색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져다주고 현실상황에 대한 파악을 도와줄 것이다.현대인들이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목표를 정진할 때 진정 가치 있는 자산이 된다.유비무환.세상만사에 대한 원리를 이해하고 있을 때 외적인 풍랑을 만나더라도 능히 이겨낼 수 있고,피해를 본다하더라도 그 정도가 덜 할 수 있을 것이다.그런 점에서 사색이 부족한 우리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이 책은 중요한 보완적 자산이 되어 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입상 이*한 응용화학공학부 도서: 한밤중에 잠깨어
독후감: 인간 정약용에게 흠뻑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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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에게 빠진다는 것이 어떤 걸까?그저 매일 매일 생각이 나는 것일까? 그 사람의 편이 되어주는 걸까?빠진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불과 1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다산 정약용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전무했다. 고등학교 국사시간 때 배운 것이 다였다고 확언할 수 있다.거중기를 이용하여 화성을 축조하고,목민심서를 지은이라는 것만 알았을 뿐이었다.솔직히 얘기하면, 가끔 측우기를 발명한 장영실과 헷갈릴 때도 있었다.어렸을 때 삼국지를 너무 많이 읽은 탓일까,역사를 좋아했지만 우리 나라 역사보단 중국 역사를 좋아했고 또 그에 대한 책들과 여러 고전에 관심사를 두며 지냈다.한국 사람인대도 한국 것은 뒷전이었다.유비와 제갈량은 알아도 정조와 정약용은 모른다고 해야 할까. 이런 못된(?)나를 벌하기 위함이었을까,이번에 책을 읽게 된 것은 하늘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방학 때 타학교 도서관에 잠깐 공부하러 갔다 우연찮게 [삶을 바꾼 만남-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이란 책을 알게 되었고,개학 후 제 1 도서관에 갔다가 이 달의 책으로 ‘한 밤중에 잠깨어’가 됨을 알게 되었는데 이 두 책의 저자가 같은 사람인 것을 알고 얼마나 놀랬는지.그리고 ‘삶을 바꾼 만남’을 먼저 읽고 ‘한 밤중에 잠깨어’를 읽게 됨으로써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정약용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없이 이 수많은 한시들을 읽었다면,과연 내가 이해할 수는 있었을까,아니 그 감정을 느끼기는커녕 흥미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왜 유배를 갔는지,왜 이런 수많은 한시들을 남겼는지… 한시로 된 책을 보며,사실 많이 당황했었다.아 어떻게 읽어야 하나..정말 기쁘게도 그 답은 정약용선생님께서 직접 나에게 알려주셨다.정약용이 황상에게 내려준 그 가르침,삼근계와 병심확이 그 답이었다.한낮 시골 아전의 아들이었던 그 황상을 최고의 시인으로 만들어 준 그 가르침이 답이었다.황상은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라,그리고 마음을 확고히 하여 이 것을 간직하라’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평생 가슴에 품고,스승의 공부법을 지켰다.이백과 두보,왕유의 시를 평생 초서한 그는 여러 시를 남겼으며,그 유명한 추사 김정희가 칭찬할 만큼 시에 재능을 나타냈다.그의 동생 산천 김명희는 ‘이 사람은 두보와 이백의 시를 배웠으나,오히려 그들과 다른 자기만의 시를 짓는구나!’라고 칭찬하였다.난 이 글을 읽고 아!하며 깨달았다.시를 초서하게 되면,그 시를 이해할 수 있으며, 또한 그 시를 넘어서서 자기만의 새로운 시를 쓸 만큼 성장할 수 있구나 라는 사실이었다.그래서 난 바로 행동에 옮겼다.정약용의 이 많은 한시들을 초서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시를 쓸 정도는 아니어도,이해는 할 수 있겠지하는 생각으로 시작한 초서,정말 감사하게도,너무나 큰 효과가 있었다.한 글자 한 글자 정성들여 적으면서,글쓴이가 적어 논 시의 해설을 보지 않고 내 나름 해석해보았다.정약용의 감정을 느껴보았다.정약용에 대한 배경지식을 쌓아놓고 보니 더 잘 느껴졌으며,그 마음이 내 마음이 되어 나를 웃게도,슬프게도 만들었다.
내 그리는 옛 사람 한유를 생각하네
불교 공격했단 죄로 남쪽 땅에 귀양 갔지.
한유는 팔천여 리 멀리 귀양 갔었지만
그의 천 리 나의 백 리 예와 지금 같지 않네
이제부터 떠돌이의 슬픔이랑 말을 말자
내 옛 분을 그리다가 그릇이 커지누나
정약용 -한유
나를 웃음 짓게 한 한 시이다.정약용은 천주교신자라는 이유로 유배를 갔다. 물론 형식적인 이유이고,사실 정조 사후 집권한 세력들이 정조의 심복이었던 정약용을 쫓아내기 위한 구실이었을 뿐이었다.위 시의 한유란 사람은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옹호했단 이유로 8000리나 떨어진 곳에 유배를 가게 됬는 데 우연찮게 서울과 장기(정약용의 첫 유배지)와의 거리가 800리,딱 10배였고 이를 생각하며 정약용은 감히 자기가 불평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며,옛 사람을 그리다가 도리어 자신의 그릇이 커진다고 얘기한 것이다.그릇이 커진다고 얘기할때 난 풉 하며 웃음이 나왔다.사실 나도 가끔 힘들고 지칠 때가 있으면,나보다 더 힘든 상황에 처해있는 친구를 생각하며 내 자신을 추스르곤 하기 때문이기도 하였고,그 친구와 서로 그릇이 간장 종지 그릇이라고 놀린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말은 놀렸지,그 친구르 인해 나의 품이 커졌었는데,정약용의 그 마음과 통해서 인가 기분 좋은 웃음을 짓게 되었고,이 웃음은 내가 시를 읽으며 짓게 된 첫 웃음이었다.
복어 먹는 사람을 그대 보았나
맛과 독을 통째로 배 속에 넣네
그 맛 아예 즐기지 않았더라면
그 독을 토해냄도 없었을 텐데
정약용 -자족
이 시는 또 다른 웃음을 나에게 주었다.바로 풍자의 해학이다.사람이 복어를
먹는다.그 톡쏘는 맛이 매우 일품이다.하지만 독은 쌓이고,결국 그 독이 자신을 잠식한다.나중에 토해내도 어쩔 수 없다.이미 퍼져있으니까.정약용은 억울하게 유배되었다.어찌 원망하지 않았을까?정약용은 장기에서 약7개월 정도,강진에서 약18년 정도 있었다.유배된 지 얼마 안 됬을 때가 가장 힘들었으리라,장기시절 7개월 동안 지은 한시의 양이 18년간의 강진 시절 한시 양과 거의 비슷함을 알게 되었다.또 그 한시의 주제들도 원망과 슬픔,또 그것들을 이기기 위한 의지가 대부분을 차지했다.위 한시의 복어 먹는 사람은 아마 자신을 유배 보낸 조정의 관료들이었으리라.그 주축인 서용보를 향한 시였을까?권력을 맛을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오히려 그 마음속엔 교만과 그 탐욕이 쌓이게 되고,쌓이다 쌓이다 보면 결국엔 그 자신을 파멸로 이끔을 정약용은 말하고 싶진 않았을까,그리고 자신을 이렇게 만든 이들이 결국 이렇게 될 것이라 얘기하고 싶은 것이라고 난 느꼈다.어찌보면 정약용 그 자신도 한때는 정조의 힘을 입어 승승장구한 인물이었다.1년에 3번이나 승진하는 정말 대단한 행적을 남기기도 하였던 그였기에,아마도 그 자신이 권력의 맛을 느껴본 적이 있으므로 저런 한시를 지을 수 있진 않을까 싶다.남을 향한 풍자이면서도,자신에 대한 자소가 느껴져서 그런가,웃음이 나면서도 한편으론 연민이 느껴졌다.
어떤 때 맘 가누기 어려웁던가
맑은 밤 다듬이질 소리 들릴 때
어떤 때 맘 가누기 힘이 들던가
봄 대낮에 솜옷 빠는 소리 들을 때
어떤 때 맘 가누기 괴로웁던가
갠 아침 수레 끄는 소리 들을 때
정약용 -세 가지 소리
웃음뿐인가….가슴 찡한 한시도 있었다.정약용에겐 가족이 있었다.아들 학연과 학유에게 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라는 유명한 작품도 있지 않은가.그리고 그에겐 풍산 홍 씨도 있었다..위의 시는 정약용의 세 가지 소리 한시 중 일부분만 적은 것이다.다듬이 소리와,빨래하는 소리,수레 소리를 들으며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생각해 보았다.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하였는데,이 소리들이 하나의 음악이 되어,금방 터질 듯하지만,겨우 겨우 참고 있던 정약용의 그 그리움의 마음을 터뜨렸던 것이다.청각적인 이미지를 시각적인 이미지로 승화시켰다느니 하는 고등학교 때 시 공부법을 넘어 화자의 그 마음을 직접 느끼니,이 시가 내 시 같고,이 상황이 내 상황인 마냥 괜히 슬퍼지기도했다.여담이긴 하지만 더 알아보니 정약용이 숨을 거둘 그 날이 바로 금혼식날이었다고 한다.그 날도 병환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미룬 날이었고,지킬 수 있으리라 굳게 약조한 날이었다고 한다.정약용의 생애도 참으로 기구하지만,그 부인도 마찬가지였으리라.학연과 학유는 어떠했을까.정약용은 유배지에서도 괜한 미안한 마음에 자식들에게 편지로써 가르침을 주려하였다.열심히 학문을닦아 벼슬길에 올랐으나,모함으로 인해 유배를 온 정약용이 자신의 자식에게 학문을 닦아 라고 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아…도움은커녕,오히려 짐만 되는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한탄스러웠을까..그리고 이 처지를 만들게 한 그 학문을 또 그 후손에게 해라고 말하는 그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금화와 옥서의 티끌 인연 풀고나니
초수와 종산의 흥취만 아련하다.
하늘은 청복에 너무도 인색하니
거친 땅 개간하여 여러 해를 기다려야
정약용 -술이나 마시자
정약용은 사람이 가지는 복을 열복과 청복으로 나누었다고 한다. 첫째,열복이란 쉬이 말해 우리가 말하는 성공이다.명예이며 높은 지위이고 권력 이다.다른 이들이 우러러보며,지나가면 절을 하고 칭송하는 것이 열복이다. 둘째,청복이란 청아함이며,고요함이며 순결함이다.세상을 떠나 하늘을 이불 삼아,땅을 베개 삼아,향긋한 초목과 함께하는 삶,도가의 무위자연과 비슷한 느낌이라할까…
금화와 옥서는 조정의 벼슬,즉 열복을 뜻한다.정약용은 한 때 높은 벼슬을 누렸다.하지만 잠시일뿐 숱한 모함과 음모로 인하여 유배지로 온 지금은 그 것마저도 잃어버린 상태였다.정약용은 얘기했다.청복을 가지고 싶다고…모든 더러움 다 떨쳐내 버리고 청복을 가지고 싶다고 얘기했다.하지만,,그러기엔 이 땅이 너무도 척박하며,또 시간이 걸린다.시간이 한참 흐른 뒤 강진에 유배를 갔을 때 정약용은 다산초당을 만들며,이 청복을 누리게 된다.그리고 유배에 풀린 뒤에는 그 청복을 뒤로한 채 서울로 올라가며,이젠 열복도 청복도 누리지 못하고 남은 생애를 보내게 된다.하아…정약용의 그 마음과 생애를 생각해보니 한숨이 나온다.정약용이 정말로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청복일까.열복일까.생각해본다.하지만 그러지 못함은 그가 가진 너무도 위대한 능력 때문이었고,그로 인해 높은 지위도 얻었고,또 그로인해 나락으로 떨어지기 까지 하였다.읽으면서 계속 의문이 들었다. 정약용도 높은 지위,열복에 대한 갈망이 있었을까?아니면 어쩔 수 없는 사회적인 흐름 때문이었을까,혹은 격물치지의 마음으로 사물을 알려고 한 정약용의 학문열의 때문이었을까.답은 정약용만이 알겠지…알 수가 없음에 너무나 슬프다.꿈에 정약용이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만나게 되면 다 물어보고 싶었다.그만큼 정약용의 마음이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 많은 시들을 읽으며,또 다른 책을 통하여 정약용의 삶을 알게 되면서 나는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게 되었고,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모이고 모여 큰 역사를 이루어나감을 느꼈다.한 사람의 삶이 큰 역사를 이룸을 깨닫게 된 것이다.정약용은 황상을 키워냈고,황상은 정학연과 정학유와 큰 인연을 맺고,또 추사 김정희와 연을 맺었으며,초의와 혜장,당대의 위대한 문인들도 그 연을 맺게 되었다.이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천재와 천재가 만나게 되었다는 경이로운 사실에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알면 알수록 신기할 뿐이었다.그 뿐인가,정약용의 그 놀라운 학술 업적들은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은가.정약용이란 거울로 내 자신을 비추어 보았다.나는 과연 어떤 이들과 연을 맺고 있는 가 반추해보았다.그리고 생각했다.내 주변에 있는 이 모든 이들이 정말로 소중한 사람들임을 느꼈다.내가 지금 내 모습으로 있는 것은 그들로 인함임을 깨닫게 되었다.여지껏 나는 내가 내 자신을 가꾸어 나간다고 생각했다.아니었다. 만약 내가 이 책을 접하지 못했으면,정약용을 만나지 못했고,그리고 이런 생각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만약 내가 지금 학교를 오지 않았다면 혹시나 고3담임 선생님이 다른 길로 인도했으면 지금 기회가 왔을까?아니 정말 만약 우리 부모님이 다른 배우자를 만났다면,내가 태어났을까….정말 말도 안되는 가정이긴 하나,내가 살아왔던 행적들을 다시 돌이켜보며 생각해보니,내 삶의 모든 부분에서 다른 이들과의 인연의 끈을 발견하게 되었다.그들이 나를 만들었고,그들이 나를 만들고 있으며,그들이 나를 또 만들어 줄 것임을 확신하게 되니,기쁨과 감격이 내 가슴속에 차올랐다.그리고 결심하게 되었다.내가 또 그런 사람이 되기로,다시 말해 누군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였다.이왕이면 좋은 영향을 끼쳐서 누군가 나를 생각했을 때 ‘아,,유한이라는 사람이 나를 만들어 주었지’라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그러기 위해 내 삶을 절제하며,또 준비하고 열심히 나를 가꾸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되새기게 되었다. 독후감 맨 처음에 한 사람에게 빠진다는 것이 어떤 걸까?그저 매일 매일 생각이 나는 것일까?그 사람의 편이 되어주는 걸까?빠진다는 의미가 무엇일까라고 질문을 던졌다.이제 대답할 수 있다.한 사람에게 빠진다는 건 그 사람의 삶을 느끼고,공감하며,알아가고,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쌓고 쌓이다 보면 이루어진다고 단호히 얘기하고 싶다. 나는 인간 정약용에게 흠뻑 빠졌다.
입상 권*진 국어교육과 도서: 한밤중에 잠깨어
독후감: 한밤중에 잠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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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고개 넘어가도 또 한 고개 남았네.
넘어가도 넘어가도 끝이 없는 고갯길
세상살이가 인생살이가
고추보다 맵다 매워~~“
할머니는 늘 이 노래를 흥얼거리고는 하셨다.아침 준비하면서도 저녁준비하면 서도 대단한 실력이 아니라며 목소리를 낮추어 부르시곤 했지만 절절히 마음 담아 부르는 노랫소리는 들을 때 마다 사람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듣는 이의 마음을 슬프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그 노래가사가 단지 머니의 인생만 노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교과서에 실리는 소설,수필,위인들의 이야기들은 권선징악의 교훈을 전해주는 정의의 이야기들이었다.그 글들을 읽고,느끼고,성장해왔던 나에게 세상살이 고추보다 맵다는 말은 의아할 뿐이었다.모든 주인공들은 역경이 와도 그것을 잘 이겨냈으며 결국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삶을 살았다.어진 마음을 잃지 않고 성실함을 몸에 익힌다면 세상살이는 두루마리 휴지처럼 술술 풀리는 거 아니겠냐고 세상을 헤쳐나 갈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때가 있었다.그렇다고 지금 세상살이에 지쳐 모든 희망을 포기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하지만 조금 더 공부를 하고 세상을 가까이서 관찰해보니 인생살이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술술 풀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는 때가 잦다.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는데도 세상의 이목을 받게 될 수도 있는 것이고,때로는 아무리 어진 마음을 가지고 노력을 한다고 해도 세상에서 철저히 외면을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그래서 인생살이가 고추보다 맵다는 말이 그냥 흥얼거리는 노랫말은 아닌 것이다.오늘 내가 책에서 만난 고난과 역경의 실학자,정약용이 바로 그러한 대표적인 한 사람이 아닌가 한다.
이 책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많은 한시들 중에서도 장기 그리고 강진으로 유배갔던 시절에 지었던 원망과 분노가 절절한 한시들을 모아놓은 책이다.23살 잠시 보였던 서학에 대한 관심 때문에 훗날 이십녀년이나 가까운 세월을 유배 생활해야 했던 그가 세상에 품었던 원망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왕으로부터의 버림, 동료들의 배반,형제들의 죽음과 유배,가족의 파탄,이 모든 상처와 좌절을 마음 속에 품은 채,먼먼 산골 유배지에 도착한 그에게는 모든 것이 슬프고 애달파 보였을 것이다.머물지 못하고 금세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그 운명을 슬퍼하고,산 속 연못 너무 답답해 큰 바다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물고기를 보면서도 그는 그 운명을 불쌍히 여겨 시를 지어 노래하고 있었다.어쩌면 자연은 그저 그 자리에 있을 뿐인데,그는 뿌리 없어 여기저기 기웃 댄다고 부평초를 보고 구차하다하고,집 지으며 지지배배 울어대는 제비를 보고도 근심이 가득하다고 말하며, 울타리 만드는 데에나 쓰인다면 제 대접을 받지 못하는 대나무를 보며 민망하다 했다.마음 속 한이 얼마나 절절히 쌓였는지 젊고 똑똑했던 지식인의 한풀이는 는 내내 독자 마음을 턱턱 막히게 했다.언젠가는 돌아가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포 부를 다시 펼칠 수만 있다면야 이깟 고통은 달게 받겠지만 그런 희망조차 없이 그저 시간만 갈 뿐이다.옥 구술에 난 흠집이 다시없어지지 않는 것처럼 이미 자신의 몸과 마음에 난 흠집은 어찌해도 지울 길이 없다며 슬퍼하는 구절은 참으로 다산을 작아보이게,한없이 불쌍해 보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한시들은 한탄과 절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끈임 없이 이해와 화해와 시련의 극복으로 나가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동서남북으로 갈려 싸우고,사농공상으로 나누어 차별하는 사람 잡는 공부 그만하고 이제라도 안 늦었으니 대화합의 잔치를 열어보자며,일천동이의 술을 담그고 일만 마리의 소를 잡아 큰 찬치 한번 열어봄세!하는 그의 목소리는 참 너그럽다.따뜻한 봄은 서늘 한 가을로 변한다.봄날은 꽃을 피우고 가을날엔 열매가 익는다.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역할의 다름의 문제라는 주장은 너그러운 할아버지의 포용의 손길같이 따스하다.공처럼 둥근 지구에서 동서의 구분이 우습다.지구의 좌표 측을 조금만 돌리면 좀 전의 동쪽은 중앙으로 변한다.중국에 사대할 것 없이 우리도 중앙이,중심이 될 수 있다고 외치는 모습에서는 드높은 자주심과 자긍심이 느껴진다.뿔 달린 짐승이 날카로운 윗니로 남의 고기까지 뜯자고 해서야 되겠냐며, 시인의 운치를 가지고 있는 자신이 높은 벼슬아치까지 되는 것은 세상의 공평성을 위배하는 것이라며 자신의 유배를 유머 있게 받아들이려 하는 유쾌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번 다산 선생과의 만남이 사실 처음은 아니다.나는 정민선생님의 책을 좋아하고,정민은 다산선생님을 좋아한다.그렇지 않으면 그의 40여권이나 되는 저서들 중 10권 넘게 다산의 이야기를 다루거나 다산을 등장시키지 않았을 것이다.그래서 그를 통해서 정약용 선생님의 숨결을 앞서 느껴본 적이 몇 번 있다.대학 입 학사정관제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 세권을 소개하라고 했을 때도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저서가 그 한 칸을 굳건히 지키고 있었으니 선생님과의 만남이 처음은 아니라고 자부하겠다.하지만 이 책에서 나는 앞서서 와는 다른 선생님의 조그맣고 초라하고 볼품없는 모습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작가는 이를 다산의 인간적인 체취라고 표현했지만 나는 그의 고상한 울부짖음이라고 하고 싶다.탁월한 비유와 생생한 묘사,완벽한 공간적 감각으로 너무나 아름답고 고상하게 표현해냈지만 그는 사실 속이 찢어지게 울부짖고 소리 지르고 있었을 것이다.읽는 도중 마음이 아파 책을 몇 번이나 놓았다 다시 들어 읽고 하였지만,나는 그가 이런 아픔을 품고도 끝가지 학업정진의 끈을 놓지 않고 방대한 집필 작업에 전념하였다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하다.어쩌면 할머니가 노래하시듯이,다산 정약용이 겪었듯이 세상살이는 고추보다 매울지 모른다.하지만 그 어려움을 맞닥뜨리고서도 그것을 퉤!퉤!뱉어버리지 않고 씹고 씹어 가슴 깊숙이 삼키고는,해야 할 것들을 묵묵히 해나갔던 선조의 채취가 있기에 나는 다시 한 번 이 세상 잘 헤쳐나 갈 자신감을 충전하고 두려움을 씻어내어 본다.

 

입상 한*준 행정학과 도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독후감:  – 행복을 발견하기 위한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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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멈추면,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란 책을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이 난다.계속 될 것 같았던 내 대학생활이 이제 한 학기만을 남겨두고 있다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지던 시점이었다.막연히 꿈꾸던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한 공부는 별 다른 진전이 없었고,지금이 마지막이라는 부담감에 해 오던 대외 활동도 그만뒀고,친한 친구들과의 만남도 예전 같이 편하지 않았다.그때의 나는 주변 모든 것들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하나의 문제는 연쇄적으로 또 다른 문제들을 일으키는 것 같았고,그것을 바로잡아 보려는 발버둥은 나를 더욱 힘겹게 했다.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나에게 내 얘기를 들은 오랜 친구가 혜민 스님의 「멈추면,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란 책을 선물해 줬다.그렇게 나는 이 책과 만나게 됐다. 혜민 스님의 「멈추면,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삶의 지혜를 일깨워주는 책이다.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다양한 문제와 마주치게 된다.우리의 삶은 정형화된 공식에 의해 도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말 이해하기 힘든 문제와도 직면할 수밖에 없다.정확한 해결법이라도 있다면야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어떤 사람들은 이와 같은 불안정한 환경이 우리 삶을 더 윤택하게 한다고 하지만,사실 이러한 주장도 주어진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했을 때만이 가능해 보인다.모범답안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삶 속의 다양한 문제의 해결책은 결국 ‘지혜’에서 구할 수밖에 없다.하지만 지혜는 결코 쉽게 얻을 수 없다는 것 역시 문제다.지혜는 지식과는 달라서 단지 책만 열심히 읽는다고 얻을 수 있는 그런 속성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지혜에 대해 어느 책에서 말하길 그것은 수많은 경험과 깊은 성찰에 의해서야 형성된다고 한다.그렇게 본다면 우리 삶을 얘기하며 가슴 깊숙이 새겨둘만한 많은 깨우침을 담고 있는 이 책은 분명 혜민 스님의 오랜 경험과 많은 고민 끝에 완성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본 혜민 스님은,보편적인 스님의 이미지와는 다른 면이 많은 것 같다.혜민 스님은 세계 유수 석학들의 선망의 대상인 하버드 대학에 재학 중 출가를 했다.또한 젊은 세대들이 즐겨 사용하는 SNS(SocialNetworkService)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한다.게다가 스님은 불교라는 하나의 종교관념 속에 있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물론 책 속에는 불교관념에 의한 내용도 있지만,책에서 직접 밝히셨듯이 혜민 스님은 불교 뿐 아니라 개신교,천주교 등도 불교만큼 똑같이 존중한다.이러한 모습은 깊은 산 속에서 참선을 행하는 스님들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책 속의 다양한 주제들에 관해서는 스님이라는 특정한 지위 보다는 독자와 같은 위치에서 그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얘기들을 들려준다.이러한 점들 때문에 이 책이 더 많은 독자들에게 읽혀지고,그 결과 지금도 서점의 베스트셀러에 코너에 자리 잡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 책의 핵심은 이 책의 제목처럼 ‘멈추어야 한다.’는 것이다.책 제목 하나에 이 책 대부분의 내용이 담겨있어 제목만이라도 가슴속에 새기고 살아간다면,앞으로 부딪히게 되는 많은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서두에 말했듯이 나는 지금 대학에서 마지막 한 학기만을 남겨두고 있다.나의 모든 관심사들은 ‘취업’이라는 것 하나에만 집중되고 있었고,그것은 나에게 ‘취업을 위한 공부’라는 하나의 틀에 속박하게 했다.취업 공부 이외의 것을 할 때에는 늘 무언의 압박이 뒤따랐고.결국에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에서 손을 놓아버리곤 했다.이렇듯 내 안에 있는 마음부터 평온하지 못하니 주변 모든 것들이 불편했다.더욱이 그 공부마저 잘 안 되는 날에는 나 자신에게 많은 실망을 하기도 했고,또 다른 잡념들을 불러일으켜 나를 혼란 속으로 빠뜨리기도 했다.이러한 나에게 스님은 간단한 처방을 내렸다.지금의 삶에 ‘쉼표’를 찍어보라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깊이 공감한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이 책의 도입부인 ‘휴식’이다.마음속에 불안이 생긴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스스로가 그렇게 만들어내고 있으며,이런 불안한 마음을 바로잡아 보겠다는 계속적인 노력들은 결국 스스로를 힘들게만 할 뿐이라고 스님은 말한다.또한 스님은 잠깐의 휴식이 주는 그 가치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나 역시도 휴식이라는 것은 육체적으로 힘들 때 몸을 쉬게 한다는 정도였지 삶의 매 순간순간 마다 그것이 필요하다고는 깨닫지 못했다.음악이 아름다운 이유는 쉼표가 있기 때문이고,말이 아름다운 이유도 말 사이의 쉼이 있기 때문이며,이러한 아름다운 것들이 지겨워 지는 경우는 그것들에게 적당한 시간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스님은 말한다.이러한 말씀대로 나는 지금의 나에게 삶의 쉼표를 찍으려고 노력했다.그 결과 내가 맡은 일의 우선순위가 보였고,주변 다른 것들에도 집중할 수 있었으며,무엇보다 나의 삶 속에서 애쓰고 있는 나 자신이 보였다는 것이다.이렇게 책을 통해 스님의 말씀을 듣는 동안,여태껏 힘든 시기를 애써 이겨내고 있는 나 자신에게 사랑은커녕,너무 냉정하게만 대했다는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며 ‘관계의 장’역시 휴식만큼 깊이 공감했었다.수차례 읽고 새겨두고 싶은 구절은 핸드폰에 메모해 두면서 스님의 지혜를 배우고자 노력 했다.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부분 중 하나가 아마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다른 대부분의 문제들은 스스로 해결이 가능한 것들이 많지만,인간관계 문제는 혼자서 해결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책 속에서 스님은 ‘인간관계는 난로처럼 대해야 합니다.너무 가깝지도,너무 멀지도 않게’라고 말한다. 그것의 예로 마음이 잘 맞는 동료 스님과 함께 여행 중에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결국 각자의 길에서 여행하게 되었는데,그것이 오히려 서로에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즉,서로간의 ‘심리적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심리적 공간의 부재(不在)는 집착,강요와 같은 인간관계의 형성에 있어 좋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단적인 예로 연애를 하고 있는 이성간의 관계에서도 꼭 나타나는 것이 이와 같은 문제라고 생각한다.가까운 사이일수록 심리적 공간은 꼭 필요하다.그 동안 내가 겪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문제나,이성 사이의 문제 등 이러한 대부분의 문제들이 서로간의 심리적 공간을 만들어 두고 있지 못해 발생한 것 같다.서로의 심리적 공간 부재의 원인은 멈추지 않아서,즉 ‘삶의 쉼표’가 없었기 때문이다.삶 속의 쉼표의 부재는 결국 집착을 낳고 그것은 서로를 피로하게 만든다.
이렇듯 이 책은 다양한 삶의 문제에 대해 깨달음을 줄 수 있는 근원적인 해결 책을 제시한다.해결책을 들여다보면 사실 아주 간단하지만,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나치고 만다.이 책을 통해 나는 지혜란 다양한 경험과 수행을 통해,결국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간단한 답을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봤다.그러한 지혜를 조금 더 빨리 깨우쳐주고자 하는 것이 혜민 스님이 말해 주고 싶은 부분인 것 같다. 혜민 스님의 책 「멈추면,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단순히 우리 삶 속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그러한 해결책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행복’이라는 가치에 이른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스님은 모든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쓴 것 같다.책에서 다루고 있는 8개의 장은 모두 궁극적으로 행복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며,각각의 장은 그 행복을 추구하는데 있어 지혜로운 방법을 제시하는 개별적 수단이라고 생각한다.우리 헌법에도 행복추구권이 보장되는 것처럼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는 아마 행복한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나 자신을 포함하여 지금도 도서관에서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는 우리 학교의 학우들도 아마 미래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힘든 과정을 견디어 내고 있을 것이다.또한 연애를 하는 사람도,결혼을 하여 아이를 가진 사람도,심지어 지금 거리에 걸어가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 역시 행복을 위해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스님은 순간순간의 행복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한다.행복을 노력으로 만들려 하기 보다는 잠시 멈춰서 지금의 행복한 순간을 느껴보라는 것이다.행복을 깨닫기 위한 방법으로는 이 책의 주요 화두인 ‘휴식’이 될 수 도 있고,사람사이의 ‘심리적 공간’이 될 수도 있다.또한 종교나 사랑이 그 방법 중 하 나일수도 있다.중요한 것은 그것을 깨닫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많은 수행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그러나 많은 수행을 필요로 한다고 해서 스님은 독자에게 결코 부담을 주지는 않았다.책에서 늘 말하듯 간단히 잠시 쉬어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행복을 깨닫기 위해서는 다른 여러 방법들도 있겠지만 나는 스님의 말씀처럼 내 삶 속에 쉼표를 찍는 연습을 더 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내가 가진 모든 문제들이 거짓말처럼 완전하게 해결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적어도 그 해결 방법을 알게 되었고,그러한 것들은 분명 계속적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지금까지 내가 책을 읽는 것의 대부분의 목적은 지식 습득을 위한 것이었다.전공 서적,어학서적 그리고 국내외 경제서적 등 나의 지식 확장을 위한 투자는 항상 중요하다고 생각해왔으면서 정작 ‘인생 성적’향상을 위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그래서인지 크고 작은 문제들에 직면했을 때 지혜롭게 극복하지 못해 애를 먹었던 경우가 많았나보다.이번에 혜민 스님의 책 「멈추면,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만나고 마음이 많이 편해진 것 같다.지금 내가 하는 여러 고민들이 나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도 하고 있다는 것.그리고 그러한 나의 고민 해결을 위해 스님과 같이 함께 고민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지금 이순간이 가장 행복한 것 같다.이 책은 나이,성별,종교 등 모든 것을 떠나서 누구에게나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특히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우리 학우들에게도 권해주고 싶다. 끝으로 혜민 스님의 책 「멈추면,비로소 보이는 것들」과 만나게 해 준 친구에게 고맙고,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 번 책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이 시간 역시 감사하게 생각한다.“자신만의 빛깔을 찾으세요,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혜민 스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며 이 글을 마친다.
입상 하*정 무역학과 도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독후감: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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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만나던 남자친구와 헤어졌다.서로 길게 만난 것도 아니었고 깊은 마음으로 만난 것도 아니었다.이 나이 대에 대부분의 청춘들이 그러하듯,소위 인스턴트식 사랑이었고,만남도 헤어짐도 쉬웠다.만남의 시간이 짧았고 마음의 깊이가 얕았던 만큼 이별의 충격은 크지 않았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그냥 잠시 내 자리에서 벗어났다가 다시 자리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에도 추억이라는 것이 생겼고,이별 후의 대부분의 기억들이 그러하듯 그것은 그리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다.습관적으로 그와 자주가던 커피숍에 혼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문득 그의 얼굴,표정,행동,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그때는 즐겁고 행복했는데,헤어지고 난 지금 나는 너무 이기적이게도 단점을 찾아내려고 하고 있었다.서로가 웃으면서,서로의 밝은 앞날을 진심으로 바란다고 하며 헤어졌는데도 내 진짜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만날 때는 몰랐던 그의 사소한 행동들이 이제는 내게 단점으로 보였고,‘헤어지길 잘했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합리화의 근거를 찾고 있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그는 종종 안주거리로 올라왔고 나는 신나게 그를 흉봤다. 나는 그런 이기적인 방법으로 나 자신을 보호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난 지금,그 사람이 보고 싶어졌다.헤어진 연인을 못 잊어서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다.그 사람을 보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그 동안 미안 했다고.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다고 고백하고 싶다.한편으로는 고맙다.그 사람 덕분에 진정 미안함이 뭔지 깨달았다.하지만,무엇보다도 내 자신에게 미안했다.떠 나간 상대를 마음속에 두고 자기 위로랍시고 했던 것이 알고 보니 나를 괴롭힌 것이었다.그 사람의 단점은 곧 내 단점이었다는 것을 알았고 내 단점을 모른 체 하고 싶고 밝히고 싶지 않아서 그 사람을 더 욕했던 것이었다.내가 괴로운 것은 내가 내 마음을 괴롭히고 있어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쓰나미가 무서운 것은 바닷물이 아닌 바닷물에 쓸려오는 물건들 때문입니다.회오리바람 또한 바람 때문에 죽는 일보다 바람에 쓸려온 물건들에 치여서 다치고 죽습니다.우리가 괴로운 건 우리에게 일어난 상황 때문이 아닙니다.그 상황들에 대해 일으킨 어지러운 상념들 때문입니다.’나는 내 안에서 일어난 상념들을 그 사람 탓만 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 사람을 놓아주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하지만 지금은 진심으로 그를 보내주었고 그에게는 잔인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그를 만날 때 보다 더 행복해졌다.내 마음을 비우고 나니 한결 편안해지고 시원해졌다.이제 그의 힘찬 앞날을 진정으로 기도할 수 있고 우연히 그와 마주친다면 더 환하게 웃어줄 수 있을 것 같다.이 책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여느 연인들의 이별과 다를 바 없는 흔한 이별이었을지 모르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조금 더 성숙해진 것을 느꼈다.책 덕분에 아주 값진 경험을 한 것 같은 기분이다. 사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은 우리 모두가 다 아는 내용일 것이다.하지만 이 책이 내게 감동으로 다가오고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책을 읽고 나를 더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나를 사랑하기 때문에,나를 좀 더 사랑하기 위해 나를 이해하고 남을 이해하고… 나를 위해서 잠시 멈추어 서는 것이다.그동안 나는 학점,스펙,경쟁 같은 것들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했다.아프니까 청춘이라고들 말하니까 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내면은 가꿀 생각은 하지 않고,아니 돌아볼 생각조차도 하지 않고 달리기만 했었다.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는 잠시 멈춰 섰고, 많은 것을 느꼈다. 달리기를 할 때는 주위의 것들을 보지 못한다.오직 내 앞에 있는 경쟁자들을 따라잡으려고만 하지 내 뒤에 있거나 내 주위에 있는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하지만 멈추면 세상은 달라진다.내 눈앞에 있는 것뿐만 아니라 내 주위에 있는 것들을 돌아보게 된다.‘멈추면,비로소 보이는 것들’에는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다.하지만 나는 ‘나’를 가장 먼저 보았다.멈추어 서서 내가 왜 지금 이 달리기를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 내 주위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행복이 뭔지 내가 원하고 이루고 싶은 꿈이 뭔지도 생각해 보았다.과거의 나,현재의 나,미래의 나를 그려보기도 하였다.안경을 바꾸고 나면 세상도 달리보이는 법이다.나는 멈추어 서서 나만의 ‘안경’을 바꾸었고 다시 달리기를 할 준비를 하고 있다.하지만 이번 달리기는 목표도 방향도 없이 그냥 남들 쫓기에 바쁜 달리기가 아닐 것이라 확신한다.‘멈추면,비로소 보이는’또 다른 것들에는 나의 꿈과 희망이 있었고 나는 그것들을 보았고,잡았다.멈추어 섰다고 늦었다고 초조하지 않다.나는 멈추어 서서 내 길을 보았고,이제 그 길을 기쁜 마음으로 힘차게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
“혜민 스님,장차 법정 스님처럼 큰스님 되세요.”“네,감사합니다.하지만 전 법정 스님이 아닌 혜민 스님이 되고 싶어요.”이 말이 내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 왔다.부끄럽게도 나는 단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그냥 남들 하는대로,남들처럼 그냥 그렇게 살려고 했다.그래서 남들 다 한다는 것들만 쫓아서 했다.‘나’를 만들려고 하지 않고 타인이 봤을 때 좋아 보이는 사람을 만들려고 했다.그러니 재미도 없고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던 것 같다.그래서 내가 하는 달리기는 늘 숨이 찼고 곧 넘어질 것만 같았다.하지만 ‘안경’을 새로 쓴 후 나는 나를 찾았고 혜민 스님 말씀처럼 ‘나’대로 살아가기로 했다.‘내’가 하는 공부는 재미있었고 ‘내’생활은 행복해졌다.‘하현정’을 찾는 길은 너무 즐거웠고 답을 찾아냈을 때의 그 기쁨이란 자격증 합격 소식보다 몇 배는 더 기뻤고 짜릿했다.그리고 거짓말처럼 나는 성숙해 졌음을 느꼈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 있는 것 같았다.나는 그 과정을 열심히 겪을 것이고 나중에 한 발 떨어져서 나를 보면 아마 진정한 ‘하현정’을 찾아서 내 길을 걸어가는 나를 만날 것이라고 믿는다. 짧지만 내게는 긴 22년 인생 중에서 행복했던 때를 꼽으라면 나는 내 재수시절을 빼먹지 않고 이야기한다.다른 사람들에게 재수시절을 이야기 하면 힘들었겠다며 나를 위로해 주는데 나는 그 시절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성적이 뜻대로 나와 주지 않아서 속상했던 적은 있었지만 내 목표가 뚜렷하게 있었고 꿈을 향해 힘차게 걸어가는 그 과정은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사실 나는 대학에 붙었지만 과가 적성에 맞지 않아 다시 수능을 공부했다.그 때는 내가 목표로 하는 대학,원하는 과가 확실하게 있었기 때문에 꿈을 향해 전진하는 것은 힘들고 외로운 길이 아니라 보람차고 행복한 길이었다.지금 생각해도 그 때의 열정만큼은 대단했던 것 같다.
‘나이 드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삶의 열정이 식는 것은 두렵다.’어느 순간 나는 내 열정이 식었음을 느꼈다.그래서 달리고 있었지만 정작 달리는 것은 내가 아니었고 숨이 차고 넘어질 것만 같았던 것이다.열정 없이 내 삶을 남이 이끌어 주는대로만 살려고 했으니 힘들었고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로 나를 위로하려고했다.삶의 열정이 식는 것은 두려웠지만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다.원하던 대학 원하던 과에 들어와서 작은 목표를 이루었지만 나는 그 잠깐의 성취감에 빠졌고 헤어 나올 노력조차 하지 않은 채 여기까지 왔다.하지만 이제 나는 나를 찾는 노력을 시작했고 목표와 꿈을 찾았고 다시 그때의 그 열정을 품은 채 달리기를 하려고 한다.재수시절보다 지금 하는 달리기가 더 길고 힘들 것이란 것을 안다. 하지만 지금 시작하는 이 달리기는 진정한 나와 하는 것이기에 더 자신 있고 당당하게 참여 할 수 있을 것 같다.삶의 열정을 불 지피기 위해 지금보다 더 노력할 것이고 그렇기에 나는 내 미래가 더 궁금하다.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달리다가 힘들면 지금처럼 멈춰 서서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것이고 더 힘찬 도약을 위해 준비할 것이다.나는 지금 출발선에 서 있고,이제 달리기가 곧 시작한다.흥분된다.나는,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입상 이*호 의학과 도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독후감: – 나, 그리고 주위를 잠시 되돌아볼 수 있었던 고마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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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지인의 선물이었다.
각종 포털 사이트며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라고 꼽히며 책의 제목 및 저자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어오던 7월 초였다.서울에 있는 지인이 복막염 때문에 수술을 하고 회복중인 상태였기 때문에 병문안을 갔다가 나서려는 찰나, 책 내부 첫 장에 붓 펜으로 좋은 글귀를 써서 내게 넘겨주는 것이었다.
힘든 수술 과정과 회복이 되어 가는 과정 중에서 큰 의지가 되었다는 책이라며 본인이 느낀 그 감정과 교훈들을 나도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서 책을 선물로 주는 것이었다.
사서 읽어볼까 하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기에 고맙게도 그렇게 나는 이 책과 만나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을 펴기 전까지,혜민 스님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고,그의 트위터는 금시초문이었다.책을 펼쳐서 프롤로그를 읽어 내려가면서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그의 다양한 발자취와 현재의 상태 그리고 그 길을 걸어오면서 느낀 많은 점들이 현재의 그의 정신적 자양분이 되었고,트위터에 하나 둘씩 좋은 글귀를 적어나감에 많은 대중들이 위안을 얻고 치유 받는 기분을 얻게 되었던 것 같다.
책 내용 그리고 삽입된 일러스트들이 전반적으로 따스한 느낌을 주었다.그리고 어린 시절 할머니나 할아버지 무릎을 베고 누워,해주시는 좋고 행복한 얘기를 듣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 책 자체의 내용이 진솔하고 진실 된 이야기들이기에 허위나 위선 가식들이 전 제일 중요한 것은,불교에 몸담고 있는 지은이이지만 불교적인 색채가 강하지 않다는 점을 들 수가 있다.책을 읽어나가면서 지은이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불교의 색채가 없다곤 할 수 없었지만,그 색채를 강요하거나 강조하는 것이 없었기에 부담 없이 읽어나갈 수 있었다.
책은 8가지의 “강”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휴식,관계,미래,인생,사랑,수행,열정,종교의 장으로 부드럽고 소소한 주제를 시작으로 좀 더 집중적이고 강한 주제의 내용을 이어 나가다가 마지막에는 본인이 몸담고 있는 세계로의 승화를 통해 마무리를 지어나갔다.
제일 첫 주제인 “휴식의 장”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급속도로 책에 빠져들게 되었다.바쁜 현대인의 일상,주위 사람들과의 피상적인 관계,뒤 돌아보거나 쉴 새없이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데 나를 몰라주는 것 같은 외로움.
현대인이라면 느낄법한 감정들,이런 현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이 겪었던 느낌들에 대해서 글을 풀어내는 지은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다.
이 상황을 헤쳐 나가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도,비판하거나 통탄을 해주는 것도 아닌…….
마치 선배나 친한 친구가 술 한 잔 사준다며 힘든 일 있으면 털어놓으라고 하는 그런 상황이 오버랩 되게끔 그저 말벗,생각의 벗이 되어주었다.그래서 속으로 마음의 입을 열어서 책과 대화를 시작하였다.
특히나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되었던 것은 “관계의 장”이었던 것 같다. 대학생활 4년을 마치고 의학전문대학원 4년의 생활을 해오면서 나 스스로에게 많은 차이와 변화가 있었다.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바로 입학한 대학.사회에 때를 묻지 않았던 나 자신과 주위 친구들.그 사이에서 겪었던 인간관계.즐거웠던 기억도 많았고 힘든 일도 많았었지만,대학원은 달랐었다.
각자 대학생활을 마쳤고,사회생활을 해본 사람들도 있었고,각자의 뚜렷한 가치관이 이미 확립된 후 입학한 대학원에서는 대학에서 느끼지 못했던 다른 인간 관계의 장이 펼쳐졌던 것이었다.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내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어보려,좀 더 잘해주려 해보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힘들어했던 일들,즐거웠던 일들,기억에 남는 일들…….그 관계의 끈을 잘 이어가보려고 노력했던 그 4년의 순간들이 책에 쓰여 있었다.
한 구절이 기억에 남는다.
‘아무리 서운해도 마지막 말은 절대로 하지 말아요.
그 마지막 말이
좋았던 시절의 기억마저도 모두 불태워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변했어도,상황은 달라졌어도
추억은 그대로 남겨둬야 하잖아요.’
마지막 말이라는 것.많이 했던 것 같다.좋아서…….서운해서…….
물론 후자가 많았던 것 같아 아쉽지만,이 구절을 읽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고 마음 다짐을 하게 되었다.좀 더 성숙한 내가 되고자 하는 다짐을 하면서 이어지는 미래,인생,사랑,수행,열정,종교의 장들을 읽어나가면서 구절구절에 공감하고 마음의 입으로 글쓴이와 대화를 이어갔다.
내 모든 감정을 다 이해해줄 수 없고,나의 궁금함에 대한 답을 해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의 삶을 살아오면서 내가 겪고 느꼈던 감정들에 대해서 다시 돌이켜보게 해주었고 나의 든든한 조력자가 해주듯이 잘한 일에 대해선 칭찬해주고 잘못하고 아쉬웠던 일데 대해선 꾸짖어 주는 느낌을 받았다.
지은이의 편안하면서도 흡입력 있는 필력이 나로 하여금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오는 KTX안에서 이 책을 다 읽게 하였다. 마지막 에필로그 에서도 다시 한 번 지은이는 나를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었다.
내가 지쳐있는 이유,힘들어하는 이유,그리고 든든한 조력자로써의 응원까지
‘그대의 아픔이 치유되길
그대가 행복해지길
그대의 원이 성취되길’
이라는 마지막 구절을 남긴 채 다시 한 번 맨 처음의 휴식의 장을 읽는 기분을 들게 해주었다.
책장을 덮으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왜 이 책이 베스트셀러,그 중에서도 1위에 오를 수 있었는지
나의 지인이 왜 이 책을 선물해주었는지
내가 왜 그렇게 몰입해서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는지
바쁜 사회,경쟁 사회,단절된 사회…….
무채색 중에서도 회색빛으로 가득 찬 캔버스를 떠올릴 수 있는 현대 사회 그 안에서 나날이 바쁘고 숨 막히는 일상을 매일매일 똑같이 살아가는데,즐겁고 행복하기보단 짜증나고 슬프고 외로운 상황이 많은 현대인.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었다가 되레 상처를 받을까봐 두려워 가식적이고 피상적인 또 다른 자아를 만들거나,속으로 숨겨 버려야하는 대화나 직접적인 소통이 아니라 SNS나 인터넷 익명게시판을 통해서 제 3자의 입장으로 변신해서 본인의 얘기를 털어놓는 그런 요즈음.
이런 사회와 상황에서 지치고 기댈 곳 없어 힘들어 하는 우리들에게 이 책, 그리고 지은이는 편안하고 든든한 한쪽 어깨를 내어준 것 같다.
내가 무슨 얘기를 하든지,어떤 투정을 부리든지,어떤 감정을 드러내든지 잠자코 묵묵히 들어주다가 내가 잠잠해지면 자장가를 들려주며 편안하게 쉬게끔 해주는…….
나의 가식이 아닌 본심을 들어주고 이해해주고,내 마음속 입과 대화를 나누어 줄 수 있기에 이 책이 큰 파장과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닌 가 싶다.
나 스스로도 이 책을 통해서 많은 생각과 반성 그리고 성찰을 할 수 있었던 것 같고,책을 덮고 나서 느껴지는 만 가지 감정을 추스르느라 쉽지 않았었다.
세월이 흘러 10년 20년이 지난 뒤에도 내가 지치고 힘들 때 따뜻한 음료와 함께 다시 이 책을 펴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선물해준 그 지인께 감사를 돌리며 빠른 쾌유를 기원한다.
더 많은 사람들,특히 사회 초년생들이 이 책을 읽기를 바라며…….
입상 안*영 경영학과 도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독후감: 당신에게 필요한 처방전 : [조급증 치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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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급증이 생겨버린 것 같다.무엇이든지 빨리빨리 해결하기 위해,조금이라도 흐트러짐 없이 일을 진행해야 하고,그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한없이 좌절에 빠져 작아지는—그것이 미래에 있어서든,관계에 있어서든,인생에 있어서든 마찬가지였다.그런 나에게 이 책은 따끔한 일침을 던져주었다.‘잠깐 멈추고 나를 사랑하는 시간을 가지세요.’라는 말을 던지며 시작하는 혜민스님의 책은 ‘휴식’의 중요성을 책 전체에 걸쳐 잔잔하게 읊조리고 있다.
그 당시의 나는 모든 것에 대해 지쳐있었다.계속해서 공부만 하면 된다고 소리치는 부모님 곁에서,스펙을 쌓으라고 주장하는 선배들 곁에서,내 앞에 쌓여있는 자격증 책들 사이에서 나는 점점 작아지고,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있었다.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다 놓으면 다시는 지금으로 되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에 전전긍긍하며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을 억지로 붙잡고 있는, 그 모습이 바로 나였고 현재 동시대를 살아가는 나와 같은 대학생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학원갈 시간을 기다리며 남는 시간에 서점에 잠시 들렀다가,그때 베스트셀러로 회자되던 [조급증 치료제]:「멈추면,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집게 된 것은 요 근래 있었던 일중에 가장 큰 행운임이 틀림없다.
조급증에 걸려 모든 것에 대해 숨을 헐떡이는 나는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있는 수많은 끈들을 놓아버릴 생각을 하지 못하며,[조급증 치료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내 목을 조여오던 ‘빨리빨리’들은 차츰차츰 치료제의 복용과 함께 사라져 갔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붙잡고 있었다.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으면서,토익접수는 올리고 싶고,스펙도 쌓고 싶었으며,돈도 모으고 싶고,연애도 진심을 다해 하고 싶었다.손에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하나씩 그것들을 놓쳐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무엇이 내 손에 잡혀져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그렇게 잃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들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토익 점수며 한자 자격증이며,컴퓨터 자격증이며 하는 것들을 공부하며 나는 조금씩 사람간의 정(情)을 잃어갔다.평소에 내가 고민이 생기면 언제든지 나와서 함께 걱정하며 고민을 들어주던 친구가 고민이 있다며 심각하게 나에게 상담을 요청했을 때,나는 거절했다.자격증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들뜬 목소리의 엄마가 오랜만에 가족 다 같이 모여 저녁식사를 하자고 했을 때,나는 매몰차게 거절했다.아르바이트를 가야했기 때문이다.너무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나는 손에 잡힌 것이 아직 너무 많다며 힘들어 하고 있었다.그렇게 조급하게 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임을 난 알지 못했다.
‘힘들면 한숨 쉬었다 가면 됩니다.’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세요.’
‘지금 내 마음이 바쁜 것인가,세상이 바쁜 것인가?’
하루하루 치료제를 복용할 때마다 나는 손에 잡혀있던 것들을 하나씩 놓기 시작했다.놓친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놓은 것이었다.손에 가득 놓여있던 치렁치렁하던 많은 것들은 하나 둘씩 줄어갔고,줄어들 때마다 마음이 답답하고 조급해 지기는커녕,오히려 후련해 졌다.결국에 내 손에 남게 된 것은 결코 놓쳐서는 안될 가장 중요한 것들뿐이었다.다른 것들은 괜한 집착에 잡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집착을 버리니 예전보다 많이 웃게 되었다.
나 스스로가 여유로워 지자 세상을 바라보는 눈 또한 한결 여유로워졌다.버스를 타고 영어단어를 외우며 학원으로 향하던 길 대신 요즘에는 온천천을 걷게 되었다.귀에 항상 꼽고 다니던 MP3플레이어를 빼고,나는 귀에서 울려 퍼지는 일렉트로닉 음악 대신 부드러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는다.온천천에 그렇게 많은 꽃들이 피어있는지 예전에는 알지 못했다.가끔 가다 보이는 천둥오리들을 볼 때마다 시골에 사시는 할머니 생각이 났다.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온 가족들을 보면 부드럽게 미소가 절로 퍼졌다.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그 어떤 좋은 음악보다도 듣기 좋았다.내가 살아오던 세상은 너무 빠르고 급하게 돌아가 숨을 제대로 몰아쉴 기회조차 없었는데,사실은 조금만 뒤를 돌아보면 이렇게 여유로워 지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 모두는 조급증에 걸려있다.모두가 조급증에 걸려 있어,조급증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이상하게 보일 정도이다.재수생은 다른 또래들에게 뒤쳐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취직에 실패한 대학생은 마치 인생이 끝나기라도 한 것처럼 좌절한다.결혼적령기가 지났다는 생각에 노처녀는 비관한다.사실은 다른 사람보다 아주 조금 더 뒤에 있을 뿐인데,우리는 그것이 마치 벼랑 끝 절벽에서 아래로 내몰린 것처럼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다.이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문 제가 아니라,병적일 적도로 조금이라도 더 빠른 것,더 혁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비롯된 퇴폐적인 모습이다.하지만 그 사회에서도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면 아름다운 자연들과 여유를 찾을 수 있다.
줄을 놓게 되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 올 수 없고,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며,다시는 움직일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나는 잡고있던 줄을 놓았다.하지만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아프지 않았다.아니,오히려 후련했다.낮에 우물을 올라가다 밤에 미끄러져 내리지만,다시 아침이 되면 힘을내서 위로 다시 올라가는 개구리와 같이,그저 조금 떨어져 내릴 뿐이었다.
끝이 없을 것 같이 마냥 깊어보이던 바닥은 사실은 깊지 않았다.바닥에 닿은 엉덩이를 툭툭 털고,‘다시 힘내서 올라가봐야지’하면 끝일뿐이었다.나는 작은 생채기 하나 입지 않고 다시 힘을 내 위로 올라갈 원동력을 얻었다.마음은 한결 여유로워졌고,나의 조급증은 말끔히 없어졌다.[조급증 치료제]는 효과가 좋았다.
얼마 전 올해 들어 급격하게 친해진 후배 두 명이 상담을 요청했다.토익도 해야 하고,일본어도 해야 하고,학점도 쌓아야 하는데 너무 힘들다고 했다.나는 대답대신 후배들을 서점으로 데려가 「멈추면,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한권씩 선물했다.[조급증 치료제]라고 말했다.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던 후배들은 며칠 뒤 전화가 와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훨씬 밝아진 목소리였다.다시 만날 약속을 잡기로 했다.놓아버린 것 덕분에 한결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었다.여유를 즐긴 후,나는 조금 더 멀리 달려갈 힘을 얻었다.
만약 당신이 지금 조급하게 달리고 있다면,그래서 멈춰서고 싶은데 어디서 언제 멈춰서야 할지를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면,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당신에게 [조급증 치료제]를 권유한다.당신이 멈춰서면 당신 옆으로 스포츠카의 속력으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치고 달려 나갈 것 같지만,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마 멈춰 서있는 동안 한명도 지나가지 않을지도 모른다.어쩌면 당신과 함께 걸어가기 위해 당신 뒤에서 기다려 주는 동료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멈춰서 쉬는 동안 힘을 얻게 된다면,당신은 다시 달려갈 수 있다.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발맞추어 가는 것이다.
멈추면,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아니,멈춰서야만 비로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그리고 나는 그것을 보고 있다.나는 지금 행복하다.
입상 박*화 윤리교육과 도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독후감: 쉼표, 지금은 멈춰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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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가 있다.미래가 한없이 불안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딱히 지금 당장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데,심장이 뛰고 불면증에 시달리고 고민한다.고민 상담 프로그램에서도 ‘불안’을 이야기하는 참가자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그리고 방황 하고 흔들리고 있을 때 흔히 듣는 말이 있다.어릴 때부터 수험생 생활을 거쳐 대 학생이 될 때까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이야기가 있다.
네가 멈춰있을 때조차도 시간은 쏜살같이 흐른다.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방황하고 있을 틈이 없다.네가 가만히 있을 동안에도 네 친구들은 달리고 있고 너는 뒤쳐진다.어서 일어나 달려라,달려!채찍질과도 같이 쏟아진다.공부해,우수한 성적을 받기 위해서.공부해,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공부해,높은 연봉의,또는 안정된 직업을 갖기 위해서.달리는 동안엔 고개를 돌릴 수 없게 만든 경주마들처럼 우리는 앞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친구들도 뒤로 하고,나도 뒤로 하고 달리다가 어느 순간,우리는 인간이기에 지치고 힘이 든다.그리고 그렇게 지쳤을 때 커다란 불안이 엄습한다.게으름을 피우고 있을 땐 달리라는 독려가 자극이 되어 도움이 되지만,달리고 달리다 지쳐 나자빠졌을 땐 그렇지가 않다.그럴 때는,정말 가끔은 그냥 ‘괜찮아.’라고 해주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그리고 그렇게 말해주는 책이 여기에 있다. 불안이 커다란 납덩이가 되어 마음에 매달려 끝도 없이 가라앉고 있는 대학생으로써의 마지막 방학,불안이란 손님이 내 안을 방문했다 나가는 것을 지켜보게 도와준 이 책을 만나게 된 행운에 감사한다.불안이란 손님이 내 마음에 들어왔는데,손님이 주인 행세하게 만들어 마음을 뺏기지 않게 되어 다행이다.혜민 스님은 지치고 피곤해진 현대인들에게 조곤조곤,가만가만 속삭여준다.‘쉬었다 가도 괜찮아.’하고 말이다.
이 책은 보통 사람은 알아내기 힘든 대단한 깨달음을 담고 있다거나 커다란 스 케일의 대작이 아니다.그저 ‘괜찮아.’하고 위로를 주는,그런데 쉬이 읽히는 문장들과 그 여백 사이에서 잠시 쉬었다가 나아갈 힘까지 주는 그런 책이다.그래서 처음에는 편견을 가졌었다.저자가 ‘스님’이라는 사실과 책 제목을 보고 느낀 첫 인상은 이랬다.
식상하고 당연한,교과서적인 이야기,그것도 중학교 도덕 교과서 수준의 이야기.누구나 다 알지만 막상 실천하기는 어려운,그래서 빤하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를 굳이 시간 내서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기까지 했다.그 시간에 전공과목을 한 글자 더 보고,당장 급한 임용 준비를 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하지만 그런 생각은 기우였다는 듯이 글자들이 잔잔하게 다가왔다.비뚤어진 비판으로 가득한 내 마음을 풀어주고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중간 중간에 나오는 삽화들도 마음을 따뜻하고 환하게 해주는 느낌이 들어 마음에 들었다. 혜민 스님은 진지하고 엄숙하게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그저 툭 던지듯이,가끔은 의뭉스런 말투로,이거 스님이 쓴 거 맞아?하고 기존 스님의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이야기도 한다.그리고 재미나게 읽다보면 한숨 잘 쉬어놓고도 채움으로 충만해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다시 말해서 비워놓고,한 걸음 더 나아간 자신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잘’살고 싶어 한다.일부로 ‘못’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자살률도 점점 늘어가고,묻지 마 범죄가 증가하고 폭력이 난무하는 흉흉하고 어두운 단면들이 많이 보이는 세상이지만 그렇다.바쁘게 살아가는 이유도,주변 사람들을 밀어내며 치열하게 경쟁하는 이유도 사실은 잘 살고 싶기 때문이다.그런데 미래에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은 강한데,그 바람만큼 잘 살 수 있을 거란 확신은 없는 나머지 불안이 생긴다.
잘 산다는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행복’이라고 하면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행복한 삶,서로 사랑하고,아름다움,예술,여행을 느끼고 감상하고 즐기는 삶.그런 삶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필요하겠지만 돈과 같은 물질도 결코 빼놓을 수 없다.그런데 돈은 그런 ‘잘 산다.’를 위한 수단이다.사람들이 자꾸만 바빠지는 이유는 이 수단이 수단이라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리기 때문은 아닐까.수단이라는 사실을 잊고 수단 그 자체를 위해 맹목적으로 달려가기 때문에 세상도 바쁘고 나도 바쁜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요즘은 취업이 어렵다고 한다.내가 목표로 하는 교사 티오도 전국적으로 손에 꼽을 정도로 얼마 나지 않는다.이건 미래에 대한 위기상황이다.생계수단은 삶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하다.그런데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수단이 위태로우니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생기게 된다.그리고 그런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감정이 차곡차곡 쌓여 숨을 쉬기 어려워졌을 때,‘살기 싫다,차라리 죽고 싶다.’라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는 문제가 없어지면 사라질 기분이다.나를 둘러싸고 있는 문제가 해결되면 그 문제로 인해 걱정할 필요가 없고,그런 감정도 사라지게 된다.불안을 없애고 싶은 마음을 견디다 못해 이를 죽음을 원하는 마음으로 착각해서,자꾸만 바쁘게 달리라고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는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자꾸만 높아지는 게 아닌가 싶다.이런 우리들에게 저자는 그런 마음들을 내려놓자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의 키워드는 ‘쉼표’이다.여러 방면에서 생각할 점과 깨달음을 주지만,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쉼표 하나를 얻어갔으면 좋겠다.글을 쓸 때,쉼표를 대수롭지 않게 사용하거나 빼먹는 경우가 많다.나또한 맞춤법보다는 쉼표에 대해 덜 예민하고,또 규칙도 정확하게 숙지하고 있지 않다.하지만 문장에서 쉼표는 꼭 필요하다.단어들이 각각의 의미를 지니고 있고 띄어쓰기가 있다 해도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또 문장을 읽을 때 호흡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쉼표는 마침표처럼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쉼표가 필요하다.잠시 쉬어감이 필요하고 또 사람과의 관계에도,사랑을 할 때도 쉼표만큼의 거리가 필요하다.쉼표 없이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랑은 집착이 되기 쉽다.일에도,열정에도,심지어 생각하는 일에도 쉼표가 필요하다.쉼은 게으름이나 포기,해야 할 일을 미룬다는 의미가 아니다.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는 관조요,삶을 제대로 읽기 위한 기호인 것이다.그런 쉼표에 대한 이야기를 8강에 걸쳐,다른 분야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오래된 미래’와 ‘모모’가 떠올랐다.‘오래된 미래’에 나오는 라다크는 불교를 믿는 작은 마을인데,혹독한 자연환경에도 불구하고 자연과 함께하며 느림의 철학으로 만족하고 더불어 살아간다.그리고 모모에 나오는 청소부는 도로를 쓸다가 아주 긴 도로를 보면 언제 다 하나,해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그러면 점점 더 빨리 하기 위해 서두르게 되고,줄어들지 않은 것 같이 느껴진다.그리고 그런 느낌 때문에 더욱 긴장이 되고 불안하다.급기야 숨이 턱턱 막혀서 더 이상 비질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끝도 없는 미래를 준비할 때 우리가 느끼는 그 막연한 불안함도 이 숨 막힘과 비슷하다.그럴 때 베포는 잠시 그런 생각을 멈췄다가 다음에 딛게 될 걸음,다음에 쉬게 될 호흡,다음에 하게 될 비질만 생각한다.그러면 일을 잘 해내는 동시에 일을 하는 걸 즐길 수 있다.숨이 차고 힘들지도 않다.그게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혜민 스님도 계속해서 ‘즐김’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쉬어가는 만큼이나 즐긴다는 것은 중요하다.
인생은 힘들고 고단하게 뛰어간 끝에 행복이란 결과가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 걸어가는 걸음걸음이 즐거워야 한다.그저 힘들고 고단하게 뛰어간다면 산의 정상에서 우리는 한계령에서 느낀 허무함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자꾸만 시간에 쫓겨서 돌아보지 않는 삶을 산다면 회색신사에게 우리의 시간도 빼앗길 수 있다.회색신사에게 시간을 빼앗겨 아무리 아끼고 아껴도 점점 더 시간이 부족해지는 역설,자족하며 평온하게 살아가던 라다크 사람들의 분열.이런 비극이 비단 남의 문제만은 아니다.
벌써 높은 자살률,청소년들의 낮은 행복지수,사회에 만연한 불안에서 그런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달려가다가 지치면,쏜살같은 세상을 따라잡기가 힘들다고 생각될 땐 스님의 이 말을 기억하자.‘내가 쉬면 세상도 쉽니다.’잘 살고 싶어서, 지금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돌아보고 잠시만 멈추자.그러면 비로소 보일 것이다.
입상 고*윤 행정학과 도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독후감: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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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책을 읽게 된 동기
처음 혜민 스님의 ‘멈추면,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읽기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책의 제목에서 뭔가 거창한 철학적 의미를 찾은 것도 아니었고,혜민 스님에 대하여 관심이 있어서도 아니었다.제 1도서관 3층 북카페에서 독후감 공모전 포스터에 적혀있는 글귀를 보고,그 글귀로 인해 책을 읽게 되었다.‘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봄으로써 자신의 온전함과 존귀함을 발견할 수 있는 책을 소개합니다.’ 나는 스스로 자존감이 낮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것은 그동안 내가 살아온 길과 관련이 깊을 것이다.사소하게는 게임을 하더라도 나보다 잘하는 사람 앞에서는 위축되어 당연히 진다고 생각했고,크게는 취업을 생각할 때,어떠한 노력을 해서 어디에 취직해야겠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취업을 할 수 있을까?’,‘취업을 해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왜?나는 항상 실패하고 지는 것을 먼저 생각할까?’머릿속으로는 도전적으로 한 번 부딪혀 보고,걱정은 나중에 하자고 한다.하지만 몸은 이미 도전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긴장되었으며 어쩌다 일이 잘 풀리면 ‘어?왜 이러지,난 잘 못하는데’하며 불안해했다.
또한 나의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과한 신경을 썼었다.남들에게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하여 내 자신의 삶이 아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았다는 느낌이 든다.다들 대학교에 가니까 나도 반드시 가야하고,좋은 학교에 가야 인정받는다는 생각으로 공부하였다.공부 이외에 일상생활에서도 다수가 좋아하는 것들이니까 나도 따라서 좋아하기도 했다.2년 전 전역을 하고 한동안 의미 없이 시간만 죽이다가 문득 이런 점들을 고쳐야겠다고 느꼈다.전역을 하고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그리고 이 책을 통하여 나의 낮은 자존감을 해결하고 싶어져 읽게 되었다.
Ⅱ.다른 사람과의 어울림
“기분 나쁜 일이 생겼습니까?가만히 놓아두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일을 마음속에 계속 담아두고 되새기면서 그 감정의 파동을 더 크게 증폭시키지 마십시오.흐르는 감정의 물결을 사라지지 못하도록 증폭시키면 자신만 괴롭습니다.(멈추면,비로소 보이는 것들, p.39)” “과거의 기억 때문에 괴로운가요?지금 현재에 마음이 온전히 와 있으면,마음에 과거의 자국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당신의 마음을 현재로 온전히 돌려 ‘그냥 있음’을 고요속에서 충분히 만끽하십시오.시간이 사라집니다.(멈추면,비로소 보이는 것들,p.43)” 사람은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그 중에서는 좋은 관계도 있고,안 좋은 관계도 있다.나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들이 자주 떠올랐다.지금 같이 자취하고 있는 친구와의 불화,군대에서 사이가 안 좋았던 사람들이나 기분 나쁜 기억들,학창시절 당황하거나 화났던 일들이 떠올랐다.그중에는 정말 화날만한 상황도 있었지만 과반수 정도는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었다.그런데 바쁘지 않아서 시간이 여유로울 때나 잠이 들기 전에 문득 그런 기억들이 떠오르곤 한다.처음엔 ‘아…다시 생각해보니 그 땐 참,당하고만 있었네.’,‘아,생각해보니 화나네.’이렇게 시작이 되다가 나중에는 ‘난 잘해줬는데,왜 난 준만큼 못 받는 거지?’,‘언젠가는 복수하고 만다.받은 만큼 돌려준다.’하는 식으로 처음엔 별거 아닌 작은 생각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이상하게 파괴적인 쪽으로 굴러가곤 했다.
그러다 사람의 생각이란 게 정말 몸과 관련이 깊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부정적인 생각을 3,4일 동안 하고 나면 몸살이라도 난 것처럼 기운도 없어지고 너무 피곤해졌다.살아오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이젠 습관이 된 것 같았다.항상 안 좋은 일을 계속 곱씹고,파괴적인 생각을 머릿속에 담아 두었다.사실,과거에 매이지 말고 ‘지금을 살아라.’,‘오늘을 살아라.’하는 말들은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었다.거의 관용적인 표현처럼 남발되고 있었기에 맞는 말이지 하고 늘 넘어가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먹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그래서 혜민 스님의 말처럼 부정적인 생각을 놓아 버리고 현재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마음을 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묻는 이들이 많아요.‘마음을 비워야지….’하고 마음먹고 마음을 비우려 하면 오히려 더 마음이 혼란스러워집니다.왜냐하면 ‘비워야지….’하는 것도 사실은 비워야 할 생각이기 때문입니다.그렇다면 어떻게 생각을 쉬어 마음을 비울 수 있을까요?정답은,올라오는 그 생각들을 가만히 지켜 보면 돼요.지켜보는 순간,생각은 쉬고 있습니다.(멈추면,비로소 보이는 것들,p. 191)”현재에 집중하라,마음을 비우라는 말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 알게 되니 비로소 마음이 맑아졌다.예전엔 아무리 ’현재에 집중하자,마음을 비우자‘되 뇌어도 10분 뒤엔 부정적인 생각으로 흘러가곤 했다.그런데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대로 바라보기만 했더니 어느 정도 마음이 평안해 졌다.생각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에 익숙하지가 않아 다시 부정적인 생각이 스멀스멀 떠오르기도 하지만 숙련이 된다면 정신건강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Ⅲ.내가 하고 싶고,잘하는 일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내내 주입식 교육을 받았고 고3때 성적에 맞춰 적성과는 상관없이 대학교 전공을 선택했으며 방학 땐 어학 공부나 각종 자격증을 따기 위해,남들이다 하는 스펙 쌓기를 했습니다.그런데 그러다 보니 한 번도 나 자신이 무엇을 재미있어하고 무엇에 의미를 느끼는지 제대로 경험해본 적이 없어요.그러니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이런 경우,다음 세 가지를 해보세요.첫째,…(중략)… 지금부터 정말로 다양한 경험을 최대한 많이 해보세요.…(중략)… 둘째,다양한 책들을 많이 보세요.…(중략)… 셋째,연애를 열심히 하세요.…(중략)… 이 세 가지를 열정을 가지고,다른 사람 눈치 보 지 않으며,느낌이 오면 그냥 행동으로 옮기세요.그러면 돼요.그러면 자기 스스로 그 과정 속에서 알게 돼요.(멈추면,비로소 보이는 것들,p.91~92)”
‘멈추면,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읽기 전에 다치바나 다카시의 ‘청춘표류’를 읽고 있었다.혜민 스님의 20대 청춘에 대한 생각은 다치바나 다카시의 것과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청춘표류’를 읽으면서 그동안의 내 삶을 반추해 보았었다.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춰서 살아왔었다.지금 생각해 보면 웃기지만 남들이 ‘니가 어떻게 그걸 하냐?’말하면 그들의 말에 따라 내가 실패 했을 때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었다.입시에서도 남들이 명문대 타령하고 취업에 유리한 학과를 많이 찾으니 나도 따라서 묻어갔었다.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가?보다는 내 점수에서 최대한 남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학교,학과를 선택했다.사실 고3 시절에도 내가 잘하는 것,관심 있는 것을 단지 시험 과목에서만 찾았으며,깊게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왜 공부를 하는지 깊게 생각해본 적 없이 막연히 좋은 대학교와 학과에 가기위한 목적으로 공부를 했었다.문제는 대학교에 입학하고 난 뒤에 생겼다.막상 대 학교에 입학을 하고보니 ‘이제 왜 공부를 하지?’하는 의문이 생겼다.취업을 위해서?그다음에는 승진을 위해서?,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그 다음에는?그러다가 1학년 때는 머리 아픈 건 그만 생각하고 놀자하는 심정으로 공부에서 손을 놓았다.깊게 생각을 해본 때는 대학교 2학년에 복학을 하고 난 뒤이다.2학년 1학기도 1학년처럼 그저 흘러갔다.그러다가 2학기에 문득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건데 하염없이 시간만 축내고 살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왜 부산대 행정학과에서 공부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었다.친구와 이야기도 해봤지만 명확한 답을 얻지 못했다.이미 대학교에 입학한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다른 과에 전과를 하는 것,수능을 다시 보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그저 열심히 이 길을 따라가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했다.수능을 다시 보기 위하여 부모님을 설득할 자신도 없었고 내가 관심 있는 분야를 찾지도 못했는데 대학교를 옮겨봐야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이러한 방황 속에서 ‘청춘표류’와 ‘멈추면,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읽고 어렴풋하지만 내 길을 찾는 방법을 배웠다.두 책의 공통점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맞는 길은 아니라는 것이다.나부터가 그런 길에는 흥미가 없다.닭장 속의 닭이 오직 알만 낳다가 죽는 것과 공부만 열심히 해서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 다를 바 없어보였다.개개인의 재능과 흥미를 배제하고 단지 안정적이고 많은 사람들이 택하는 길이기 때문에 나도 따라서 간다고 생각하니 답답함이 느껴졌다.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찾는 과정은 여러모로 용기가 필요하다.실패하고 시간을 허비할 지도 모른다는 걱정,한심하게 생각할 주변의 시선 등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청춘표류’에서도 주인공들이 자신만의 길을 찾아 성공하기까지는 많은 금전적,정신적인 어려움이 있었다.하지만 안이하게 살고자 하면 군중 속에 머무르라던 니체의 말처럼,그저 남들이 하니까, 안정적이니까,남들이 인정하니까,나의 특성을 무시하고 스스로를 대중 속에 우겨넣는 것은 연기하는 삶인 것 같다.
Ⅳ.자존감에 대하여
“당신은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그대로 존귀하고도 온전한 사람입니다.이 존귀하고 온전함을 보지 못하는 것은 내가 나 자신에게 만들어 부여한 나에 대한 고정관념,그것에 대한 집착 때문입니다.나 자신의 존귀함과 온전함을 발견하십시오.(멈추면,비로소 보이는 것들,p.47)”
나의 자존감은 낮은 편이었다.다른 사람들이 만든 고정관념으로 나를 평가했었다.자라오면서 공부,운동,일처리 같은 것에 대해 남들이 비판하는 것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해서 그들의 말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졌었다.새로운 옷을 사더라도 튀는 옷보다는 너무 평범해서 다른 사람들이 신경을 쓰지 않는 옷을 사곤 했다.원하는 옷을 샀다가 ‘갑자기 왜 스타일을 바꿨냐?’거나 이상하다고 하면 괜히 위축되었기 때문이다.차라리 아무 소리 안 듣게 남들과 비슷한 것,남들보 다 못한 것들을 샀었다.그러면 마음이 편했었다.원래 자리를 찾아온 것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보니 나에게 발전이란 없었다.언제나 남의 기분이나 기준에 맞춰 살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없었다.자존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여러 책을 읽었다.조금씩 자존감이 높아 졌던 것 같다.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전의 나와는 많이 변하였다는 것이 느껴진다.혜민 스님의 말처럼 ‘나’는 그 자체로 존귀하고 온전하다.굳이 남과 비교하여 나의 의미를 찾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행복의 지름길.첫째,나와 남을 비교하는 일을 멈추십시오.둘째,밖에서 찾으려 하지말고 내 마음 안에서 찾으십시오.셋째,지금 이 순간 세상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느끼십시오.(멈추면,비로소 보이는 것들,p.46)”나와 남을 비교하여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고,내 스스로 나를 못나게 느끼는 것들이 다 의미없는 행동이었다. 사람마다 살아온 인생이 제각각이고 특성도 다르다.심지어 쌍둥이라도 똑같을 수는 없다.남들과 나는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과 세상이 만들어 놓은 잣대로 나의 점수를 매기는 행동을 멈추고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가지고 사는 것은 나 자신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이었다.남들의 기준에 맞지 않더라도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진정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임을 배웠다.
Ⅴ.책을 읽고 난 후
‘멈추면,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읽고 얻은 가장 큰 선물은 마음의 평화였다.그동안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미움으로 스스로를 괴롭게 하고 있었다.따지고 보면 미워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고 ‘나’만 괴로울 뿐이었는데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어도 쉽게 감정이 풀어지지 않았다.지금도 이따금씩 친한 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곤 한다.그럴 때면 그저 떠오르는 생각을 바라보기만 한다.그 생각에 빠져들지 않고 무슨 생각이 나더라도 그저 바라본다.시간이 지나서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지고 나면 그저 흘러가는 생각에 불과했다는 것이 느껴진다.불편한 생각들이 사실보다 과장되기도 했고,지나간 일에 신경 쓰기보다는 현재에 머무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며,최고의 선택이기 때문이다.어차피 과거는 내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으니 휘둘리지 말고 현재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현명한 것 같다.
미래에 대해서도 나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직접 앞으로의 내 삶에 대해 고민을 해보니 다치바나 다카시,혜민 스님이 이구동성으로 말한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었다.스스로 관심이 없거나 잘하지 못 하는 일은 최선을 다할 수 없다.왜 해야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그렇다고 타인을 위하여 일하는 것도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그러니 단지 안정적으로 살기 위하여,돈을 많이 벌기 위하여 사는 것은 진정으로 나를 위하는 길이 아닌 것 같다.다른 사람의 말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잘하는 일을 한다면 열정적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다.아마 책을 읽기 전의 나였다면 무기력하게 공무원,회사원을 준비하였을 것이다.그러한 직업들이 나쁘진 않지만 나에게 열정이나 의욕이 생기지는 않았었다.이제는 나만의 길을 찾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할 것이다.그래서 이번 부산대학교 종개원 상담부에서 실시하는 ‘제4차,5차 참만남을 통한 치유와 성장의 집단상담’을 신청하였다.집단 상담을 통하여 내 고민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것이며 접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을 해볼 것이다.
‘멈추면,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읽고 책에서 많은 지혜를 얻었다기보다는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두루뭉술하게 얼버무리고 넘어갔던 생각들을 더 명료하고 구체적으로 만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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