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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화 (외)(범우비평판한국문학 34-1)(범우비평판한국문학 34-1) 작가 김성수 출판 범우 라임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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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화」는 ‘쥐불’이라는 뜻으로, 쥐와 해충을 없애기 위해 논밭에 놓는 불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른들이 주도하던 쥐불은 어린애들 놀이로 전락한다. 사람들의 관심거리는 보다 자극적인 노름(투전)이다. 추운 겨울 농한기에 심심한 이들의 유희로 시작했던 노름은 ‘돌쇠’가 아내의 은비녀에 손대는 것에서, 어수룩한 ‘응삼이’가 소 살 돈을 날려먹는 정도로 판이 커진다. 이로 인해 이웃 간의 분위기는 냉랭해진다.
    작품은 갈수록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농촌의 모습을 보여준다. 땅 주인은 점점 부유해지고, 소작농들은 농사짓던 땅마저 없어져 나무를 하거나 낚시를 해서 근근이 먹고 산다. 농사를 지을 수가 없으니 자연히 쥐불은 필요하지 않다. ‘농민’이라는 지위마저 상실한 상황에서 노름은 더 이상 ‘불량한 취미’ 정도가 아니라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이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 된다. 이웃의 돈을 뺏어야만 고기를 먹고 쌀밥을 먹을 수 있다.
    화자는 자유연애를 옹호하는 동시에 조혼을 반대한다. 이는 본인의 의견과 관계없이 조혼을 했던 작가의 개인적 경험과 연결된다. 또한 소설은 농사짓는 땅, 쥐불과 같은 옛것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외부의 것들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기득권이 본인들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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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농촌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관심이 많이 가네요. 기회가 되면 꼭 읽어보겠습니다.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 패강랭(외)(범우문고 283) 작가 이태준 출판 범우사 라임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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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준의 「패강랭」은 1930년대에 쓰인 소설이다. 작품은 소설가 ‘현’의 입장에서 서술된다. 십여 년 만에 평양을 찾은 현은 부벽루를 찾는다. 평양은 빌딩들로 가득하고, 그는 여인들의 머릿수건은 보이지 않음을 어색해한다. 땅 노름을 해서 돈을 벌었다는 부회의원 ‘김’은 일본어가 익숙하다. 한국어 대화 중에도 수시로 일본어가 튀어나온다. 선생을 하는 친구 ‘박’의 모습에서 자신의 소설을 떠올리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다니는 학교에서만 지싯지싯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전체에서 긴치 않게 여기는, 지싯지싯 붙어 있는 존재 같았다. 현은 박의 그런 지싯지싯함에서 선뜻 자신을 느끼고 또 자기의 작품들을 느끼고 그만 더 울고 싶게 괴로워졌다.

    ‘패강(浿江)’은 대동강의 옛 이름이다. 대동강으로 대표되는 평양은 소설의 제목처럼 이미 얼어있다(冷). “서리를 밟거든 그 뒤에 얼음이 올 것을 각오하”라는 말처럼 시련이 찾아와서 ‘폐허’가 되었다. 가사를 읊다가 전축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춰 ‘댄스’를 추는 모습이 이질적이다.
    현은 낭만주의자이다. 예전에 인연이 있었던 기생 ‘영월’을 찾아 그 얼굴이 상함을 안타까워한다. 부정적으로 본다면 그는 고인 물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잃어버린, 지나간 것들을 마음에 담고 있다.
    평양에서 머릿수건, 댕기 같은 ‘고유한 문화’는 이미 금지되어 사라졌다. 남자들의 취미인 술과 담배는 당연하게 여기는 반면, 여자들의 물건은 사치품으로 여기고 ‘금령’을 내린다. 머릿수건이나 댕기를 쓰는 건 경제적이지 못하다고 말하나, 이는 비논리적이다. 기호품인 술, 담배에 비해 훨씬 덜 소모적이지 않은가. 기득권 남성들이 서구화를 핑계로 여성들의 소소한 물건마저 빼앗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머릿수건과 댕기를 통해 당연했던 일상이 파괴되는 상황을 형상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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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양의 모습을 나타내며 그 속에서 낭만적이면서도 고인 물같은 현이란 인물을 중심으로 어떤 이야기가 진행될지 관심이 가네요.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 경희 외(범우비평판한국문학 36-1 나혜석 편) 작가 나혜석 출판 범우 라임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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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아홉 살 경희는 중산층의 신여성이다. 그녀는 공부만 할 줄 아는 게 아니라 청소나 바느질도 잘 하고 재봉틀 솜씨도 뛰어나며 김치도 곧잘 담는다. 여학생에 대한 노부인들의 편견을 깨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종 시월이의 일을 나눠서 할 만큼 정도 많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집안일을 분담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에는 성별, 계급을 떠나서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경희의 가치관이 깔려있다.
    작가 나혜석은 주인공 경희의 ‘성장’을 강조한다. 경희는 계속 부지런히 움직이며 새로운 할 일을 찾아내며, 내면적으로도 많이 성장했다. 결말에서 경희가 결혼을 거부한 뒤 감정이 파도처럼 몰아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기존 체제의 강요를 거부하는 데에는 일단 성공했으나,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며 괴로워한다. 그녀의 머릿속이 바스라진다. 글은 일부 기독교적인 분위기로 마무리된다. 구어체보단 문어체에 가까워서 조금 딱딱하다고 느꼈다. 어린 인물의 대사가 나이 많은 어른의 말투라서 조금 어색했다. 또한 대화나 사건 진행이 아닌 화자의 내면 서술로 이어지고 설명하는 부분이 많았다.
    『경희』에는 ‘여성’이 많이 등장한다. 경희의 아버지나 오라비 등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야기 진행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은 대개 여성이다. 이전 시대의 소설들에 비해 여성 캐릭터에 대한 깊이가 확연히 깊어진다는 점이 특징이다. 전근대적인 여성들과 달리 경희는 상대가 어른이더라도 할 말은 똑 부러지게 하고 결혼을 거부하는 등 운명을 개척해 나간다. 또한 경희는 계속 변화하는 입체적 인물이다. 이런 점에서 경희는 발전적인 인물이다. 이는 나혜석의 개인적 삶과도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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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인수기 작가 백신애 출판 논리와상상 라임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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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신애의 『광인수기』는 마치 편지글 같은 ‘나’의 독백으로 진행된다. 비 오는 다리 밑에서의 현재와 20여 년 동안의 결혼생활이 번갈아가며 이어진다. ‘나’는 비록 학교는 못 갔지만, 『소학』 등의 한문 공부를 했다. 그러나 ‘고등보통학교’를 나와 일본에서 유학하는 남편과 대비되어 ‘무식쟁이’ 소리를 듣고, 끝내 ‘미치광이’ 취급을 받으며 정신병원에 감금된다. ‘구여성’의 모습은 제대로 된 가방도 아니고 대문 밖으로 집어던져진 ‘옷보퉁이’를 들고 쫓겨나는 모습에서 극대화된다.
    소설은 ‘광인’의 목소리로 서술되어 오히려 자유롭다. 말이 다소 횡설수설하거나 앞뒤가 안 맞더라도 독자는 그러한 문장을 조금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나’가 호소하는 대상은 ‘하느님’으로 설정되어 있으나 기독교적 색채가 진하지는 않다.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신’의 의미로, 절대적 존재를 가리키는 정도로 보인다.
    예전부터 여성의 생활공간은 ‘집(가정)’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남성이 사회활동을 하는 동안 함부로 나갈 수 없다. ‘집’은 늘 머무르는 평화로워야 할 공간인 동시에 일종의 감옥으로 작용했다. 여성은 이 제한된 공간에서 벗어나면 소외된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것이다. 지배층인 남성은 이처럼 생활공간을 설정함으로써 여성이 체제 속에 갇혀 있도록, 순응하도록 한다.
    이로 인해 여성은 가족에게서조차 소외된다. 『광인수기』는 여성이 어떤 방식으로 버려지는지 이야기한다. ‘나’는 나름 잘 사는 집의 딸로 태어나 한문 공부를 했다. 반면 남편은 일본 유학을 했고, 자식들 또한 학교에 다니며 신교육을 받는다. 가족 중에서 홀로 구시대적 인물인 ‘나’는 자연스레 남편과 자녀에게서 소외된다. 시댁에서 내쫓기고 친정에서도 내쳐진 ‘나’는 갈 곳이 없다. 그녀가 갈 수 있는 집이 아닌 공간은 찾기 힘들다. 그녀에게 집은 더 이상 평화로운 일상의 공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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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금 - 강경애 장편소설 작가 강경애 출판 책꽂이 라임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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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경애의 『소금』은 가난한 하층민 여성의 삶이 얼마나 비극적인 불행으로 이어지는지 보여준다. 조선에서 농토를 갖지 못한 이들은 만주로 이주하여 중국인 지주 ‘팡둥’의 땅을 빌려 농사짓는다. 그렇다고 만주에서의 생활이 안정된 것은 아니다. 결국 온 가족이 죽고 주인공 혼자만 남는다. 그녀는 차마 죽지 못하고 몰래 소금 장사를 하려 하지만, 그마저 순사에게 걸려 잡혀가는 장면으로 소설은 끝난다.
    주인공의 삶은 ‘소금’을 통해 구체화된다. 소금은 생활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친다. 고향에서는 소금으로 양치를 할 정도로 소금이 넉넉했지만, 만주에서는 소금이 비싸서 많이 사지 못한다. 그래서 장이 싱겁고, 반찬이 싱겁고, 밥은 잘 넘어가지도 않아 고춧가루를 넣어 애써 삼킨다. 남편은 반찬도 제대로 못한다며 주인공을 구박한다. 또한 그녀는 조선 땅에서 소금을 사서 만주에서 팔아 그 차익으로 생계를 유지하려고 시도하나, 국가에서 소금을 전매하는 상황에서 갖은 고생만 하다 실패로 끝난다.
    소설은 화자의 시선으로 서술되지만 정작 주인공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봉식어머니’, 며느리, 아내 등으로 불릴 뿐이다. 비주류인 하층민 여성, 구여성은 이름조차 갖지 못한다. 또한 주인공은 ‘공산당’에 남편과 아들을 잃는데, 이를 통해 작가는 ‘이념성’이 평범한 이들의 일상을 파괴하는 것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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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단편 수상작품집 2020 작가 엄성용 출판 마카롱 라임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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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 실린 다섯 편의 글 중 인상 깊었던 작품 두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작품은 엄성용의 「롸이 롸이」이다. 소설 속 배경은 미세먼지가 극심해진 상황으로, 마스크나 방독면이 없으면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의 책인데, 미세먼지로 인한 소설 속의 장면들과 현재의 상황이 절묘하게 겹쳐진다. 읽으면서 마스크가 필수가 된 요즈음의 상황과 세부적인 설정이 많이 비슷해서 놀라웠고, 섬뜩하게 소름이 돋기도 했다. 다소 남성 중심적인 서사는 아쉬웠으나, 배경 설정과 사건의 전개는 현실적이고 현실 반영 이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전설에 바탕을 둔 설정이 흥미롭다. 스릴러물을 좋아한다면 추천한다.

    두 번째 작품은 희림의 「용옹기이」다. 기차를 타고 부산에 내려 온 주인공이 우연히 헌책방에서 비싸게 거래되는 ‘용옹기이’라는 고서를 발견한다. 소설은 주인공이 이 책을 신주단지 모시듯 품에 품고서 서울로 돌아가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부산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여 보수동 책방 골목, 자갈치 시장, 용두산 공원, 부평 깡통시장 등 익숙한 지명이 나온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과 함께 숨차게 뛰어다니는 기분으로 즐겁게 읽었다.
    언어유희를 통한 창의적인 고서의 제목, 혼자서 첩보물을 찍는 듯한 주인공의 행동, 일방적인 오해가 빚어낸 사건 등 흥미로운 요소가 많다. ‘기-승-전’에 걸쳐 체계적으로 고조되는 긴장과 ‘결’에서의 허무한 결과가 상반되어 웃음을 유발한다. 탄탄한 서사의 끝에 이어지는 일확천금을 바라던 주인공의 절망은 요행을 바라나 갖은 고생 끝에 실패하는 현대판 우화 혹은 민담적인 결말이다. 소설은 짧은 단편 안에 완결성을 갖추고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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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작가 Rowling, J.K 출판 문학수첩 라임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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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지금까지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있다. 7권에 이르는 전체 시리즈가 모두 재밌지만, 그 중에서 1권을 제일 좋아한다. 특히 해리 포터 시리즈는 크리스마스와 할로윈 등의 소재에서 드러나는 계절감이 사랑스럽다.
    영화와 함께 감상하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작품에는 긴 테이블에 다양한 음식이 가득 올라오는 연회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영화가 ‘아 맛있겠다.’ 라면, 책은 ‘와! 이런 메뉴를 먹는구나!!!’ 하면서 구체적으로 배고파진다.
    최근에는 교육 계열의 진로를 준비하는 동안, 다양한 과목을 흥미에 따라 듣고 개인의 특질과 특성에 따른 기숙사를 배정하는 마법 학교를 보며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나 바람직한 교육자의 모습, 올바른 교육상과 목표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종국에는 정의가 승리하는 서사도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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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도 해리포터 시리즈 중 1권을 가장 좋아하는데 책과 영화로 여러번 보아도 질리지 않는 두근거림을 주는 것 같아요. 저는 학생의 입장으로만 대입해봤었는데 교육자로서의 관점으로도 감상해볼 수 있겠군요!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 교육자의 관점으로 해리포터에 관한 서평을 볼 수 있어서 새롭네요.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 저도 최근에 다시 영화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어릴 적 접했을 때와는 다른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지금도 관련한 상품들이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 화랑의 후예, 밀다원 시대 (김동리 탄생 100주년 기념 소설그림집) 작가 김동리 출판 교보문고 라임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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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 ‘이중구’는 서울에서 부산으로 피난 온 소설가다.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오면서 중구는 자꾸 기울어지고 미끄러져서 떨어질 것 같다고 생각한다. 부산을 ‘땅 끝, 끝의 끝, 막다른 끝, 허무의 공간, 벼랑’ 등으로 표현하면서 ‘기차’를 자신 및 다른 예술가들의 처지와 동일시한다. 반면 서울은 ‘자유의 수도’로 인정받는다. 중구는 본인과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 즉 피난민인 예술가들이 모이는 ‘밀다원 다방’을 가장 편안한 장소로 여긴다. 꽤나 넉넉하게 사는 지인의 집에 머물기를 거부하는 그에게 밀다원은 거의 유일한 안식처가 된다. 가족을 챙기지 않고 홀로 도망치듯 떠난 가장은 눈칫밥 먹는 떠돌이가 된다. 그는 내내 죄책감과 외로움, 괴로움에 시달린다.
    작품에서는 크게 3번의 뱃고동 소리가 등장한다. 뒤로 갈수록 뱃고동은 점점 더 커지고, 중구는 미칠 것 같다고 생각한다. 바닷가에서는 일상적인 소리이나, 외지인인 그의 귀에는 듣기 싫고 거북한 소음이다. 후반부는 날짜를 언급하면서 빠르게 지나간다. 상사병에 음독자살한 ‘박운삼’의 시로 끝을 내면서 슬픈 여운을 남긴다.
    특히 이 책은 삽화가 나와 있어 몇 십 년 전의 공간적 배경을 상상하기 용이하다. 본교가 소재한 부산 지역을 배경으로 삼아, 사투리와 보수동, 광복동, 남포동 같은 지명이 친숙했다. 또 전쟁이 나면 모든 것들이 무너지고 없어지는 아노미 상태일 것 같으나,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인 필자의의 상상과는 다르게 소설의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논설위원 일을 하고, 문학을 찾고, 다방에 꼬박꼬박 모이는 것처럼 일상은 계속 이어진다. 소설은 남성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이 엘리트는 사회적 지위와 직업을 잃으면서 망가진다. 또한 본문에서 같은 어구 혹은 문장이 반복되면서 인물이 도돌이표와 같이 불행에 갇혀 쳇바퀴를 돈다는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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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 오는 날 작가 손창섭 출판 문학과지성사 라임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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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창섭의 『비 오는 날』은 한국전쟁과 피난지 부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동욱’과 ‘동옥’ 남매는 고향을 떠나 월남해서 부산으로 피난 온 뒤 다 무너져가는 요양원 건물에서 산다. 소설은 남매의 거처를 찾아가는 고향 친구 ‘원구’의 시선으로 서술된다. 남매가 사는 곳은 ‘집’이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하다. 방은 ‘무덤 속 같’이 어둡다. 『비 오는 날』이라는 제목처럼 장마가 40일 동안이나 계속된다. 끝없이 내리는 비는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킨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곰팡이처럼 우울하고 축축하다. 이 이름 비슷한 남매의 사이는 영 껄끄럽다. 오빠 동욱은 불구인 동생을 건사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늘 동생에게 짜증을 부리고 신경질적이다. 서로에 대한 원망이 쌓인다. 이들의 상황은 ‘삶’이 아니라 ‘연명’할 뿐이다.
    동욱은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영문과 전공자로, 고급 인력이다. 충분히 능력이 있으나 마땅히 할 일이 없어 무기력하다. 동욱의 상황은 능력을 써먹을 수 없는 무능한 지식인의 상황을 보여준다. 원구는 동옥의 다리가 주는 ‘슬픔’을 느끼며 ‘중독’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성이자 장애인인 동옥은 사회에서 소외되는 비주류다. 원구는 동옥을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생각하지 않고, 대상화하고 타자화한다. 동옥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영향을 받아 변화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과 동옥을 분리하려 한다. 장애가 없는 성인 남성인 자신과, 신체적 불구에 어린 여성인 동옥은 다르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 동욱 남매가 다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원구가 다리를 ‘허전거리는’ 장면에서 동옥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비슷하게 걷는 동옥과 원구를 통해 원구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끝을 알 수 없는 허무한 마무리, 남매가 모두 사라져버린 결말은 전쟁 당시의 혼란하고 막막한 상황과 닮았다.
    고향을 떠난 이들은 삶의 터전을 잃으면서 당연히 누렸던 모든 것들을 상실한다. 없어지는 것들은 교회와 대학, 집 등 셀 수 없이 다양하다. 작가는 전쟁이 파괴한 일상을 생생하게 구현한다. 고향을 떠나니 당연했던 게 전부 사라진다. 소설 『비 오는 날』을 촉각으로 설명한다면 우울하고 피폐한 끈적임일 것이다. 과도하게 높은 습도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든다. 특히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축축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통해 소설 속 날씨가 끼치는 효과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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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능 공부하며 감상했던 소설인데, 당시 시대 상황을 반영한 작품이라는 것을 아는 상태에서 암울한 결말까지 읽고나니 가슴이 더 먹먹해져왔던 기억이 나네요... 어째서인지 전후 젊은이들의 상실감, 무력감을 아주 조금은 공감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서평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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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포 가는 길(황석영 중단편전집 2)(양장본 HardCover) 작가 황석영 출판 문학동네 라임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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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과 길 위의 사람들>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은 교과서에서 자주 읽었던 소설인데, 전문을 읽으니 보다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소설은 ‘영달’을 중심으로 서술되는 듯하지만, 결론적으로는 고향에 가려다가 고향이 개발 때문에 공사장으로 변했다는 소식을 듣고 허탈해하는 정씨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제목 “삼포 가는 길”에서도 나타난다. 처음에 정씨는 갈 곳이 없는 영달보다는 ‘내 신세가 그래도 낫다’는 우월감을 보인다. 그의 발언에는 돌아갈 곳이라도 있는 자신의 처지가 그나마 더 좋다는 생각이 숨어있다. 반면 영달의 고향에 대한 언급은 나오지 않는다. 계속 떠돌아다니고 있다는 상황만 나온다. 결말에 이르러 정씨와 영달은 결국 같은 신세가 되고 만다. 정씨에게는 결코 반갑지 않은 동질감이 생긴다.
    주인공들은 어디론가 가는 ‘길’ 위에 있다. 지나가는 동안 보이는 풍경에 대해 생각하고, 많은 대화는 눈 오는 길을 걸어가면서 이어진다. 여기서의 이동은 일반적인 ‘여행’이라고 보기 힘들다. 여행은 보통 새로운 장소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행위이다. 그러나 소설 속 이동은 있었던 곳에서 떠나고 벗어난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들은 안착하지 못하고 부유하고 있다. 또한 더 이상 고향은 안정감 있는 공간이 아니다. 이렇듯 작품은 길 위에서 떠돌아다니는 인물을 통해 196~70년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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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진기행(세계문학전집 149) 작가 김승옥 출판 민음사 라임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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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옥의 『무진기행』은 고향과 고향을 떠난 이들에 대한 소설이다. ‘나’(윤희중)은 명산물이 안개인 ‘무진’이 고향이다. 무진은 모든 것이 선명하고 분명한 서울과 대비된다. 안개처럼 흐릿하고 축축하며 답답한 곳이다. ‘나’에게 고향은 “어둡던 나의 청년”이자 “시체가 썩어가는 듯한” 악취가 나는 곳이다. 보통 고향이라 하면 따뜻하고 온화하고 편안하고 익숙함을 떠올린다. 일반적으로 흔히 생각하는 고향에 대한 이미지와 많이 다르다. 이는 고향을 찾았을 때의 그의 부정적인 경험들과도 연결된다.
    그와 어머니의 모습은 이상의 소설 『날개』와 겹쳐진다. 『날개』의 주인공 또한 아내의 힘으로 삶을 이어간다. 숨이 붙어는 있으나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연명하는 꼴이다. 두 남자는 모친 혹은 아내와의 관계 속에서 무기력한 존재이다. 무생물 같은 상태다.
    그와 어머니의 관계는 아내와의 관계로 이어진다. 그는 아내 및 장인의 힘으로 제약회사 전무가 된다. ‘나’는 바람으로 수면제를 개발해서 제약회사 전무가 되는 상상을 하는데, 이는 스스로의 힘으로 지위를 차지하고 싶어 하는 그의 내면을 보여준다. 아내에 의해서 그의 자리가 결정되는 것에 대한 반발심이 담겨 있다. 여기까지 ‘나’는 관계에서 주체가 되지 못한다. 그는 ‘하인숙’과의 만남에서의 약간의 주체성을 획득한다. 여기서도 완벽한 주체는 아니다. 하인숙에 비해서 조금 더 능력이 있다고 가정될 뿐이다. 다시 말해, ‘나’가 하인숙을 서울로 데려가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에 그친다. 하인숙이나 ‘나’나 우열을 가릴 수 없이 한심해 보이는 인물이다. 이미 한 번 결혼했던 아내의 돈이 필요할 뿐, 음악을 하는 젊은 여자가 낫다는 논리를 펼친다. 불륜을 저지르면서 당당하고 죄의식 같은 건 없다. 원래 있던 가족을 다 버리고 평화로울 것 같은가? 정직하게 이루어진 결혼도 무너지곤 하는데, 시작부터 불안정한 관계는 당연히 곧 망가질 게 뻔하다.
    소설은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보여준다. 『무진기행』의 아내는 남편보다 훨씬 더 능력 있는 인물로 상정된다. 아직까지 여성이 남성과 비슷한 지위를 획득하지는 못했지만, 과거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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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진 기행이 출판됐을 당시 읽을지 말지 고민하다가 결국 안 읽었었는데 이렇게 서평을 보니까 읽어지고 싶네요.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 사씨남정기(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고전) 작가 송성욱 출판 현암사 라임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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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씨남정기>라는 제목을 봤을 때는 처음 읽는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읽어 보니 예전에 한 번 읽었던 내용이었다. 언제, 어떤 계기로 읽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읽었다는 기억만 희미하게 남아 있어 새로운 마음으로 읽어 보았다.
    작품의 인물은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분류할 수 있었다. 모든 등장인물은 주요 인물인 사정옥, 유한림, 교채란과 주변 인물인 납매, 설매, 십랑, 동청, 냉진 등으로 나뉜다. 전자는 사건의 진행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인물은 양반 혹은 그에 가까운 신분이다. 후자는 주인공 급은 아니나 소설의 전개에 영향을 미치는 인물로, 대부분 신분이 낮고 주요 인물에게 예속되어 있다. 이와 같은 설정에서 신분제 사회의 이분법적 특징이 드러난다.
    악인으로 등장하는 교씨는 절세미인, 총명함, 교활함 등으로 묘사된다. 사씨가 충고 한 마디를 하자 바로 유한림에게 거짓말로 모함하여 일러바친다. 거문고와 노래에도 소질이 있어 보이며, 엄청난 임기응변 능력을 선보인다. 또한 교씨는 유한림과 혼인한 후에도-첩의 위치이긴 하나-정부(情夫) 동청을 두고, 동청이 죽자 그의 심복 냉진과도 관계를 가진다. 결국 교씨는 기생으로 전락한다. 교씨를 명문가의 여식이 몰락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인물로 생각해 보았다.
    내용적인 면에서는 서술의 흐름이 빠르다는 것이 특징이다. 사씨의 아들 인아가 아직 완전히 크지 않을 정도로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앞서 나왔던 복선 등의 장치를 빠른 속도로 회수한다. 전체적인 내용이 악인이 반성하고,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받아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아서 좋았다. ‘죽음’으로 확실하게 벌을 받는 것이다. 뻔한 해피엔딩이었으면 재미가 반감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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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 특히 우리나라 고전은 잘 읽어보지 않았는데 이 작품은 제목이 비교적 익숙한만큼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또 빠른 전개, 다양한 사건과 복선들, 뻔한 결말이 아니라니 흥미롭게 읽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서평 감사합니다!
    • 학교에서 배울 당시에는 수업 시간이기도 하고 고전 문학은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편견을 가졌어요. 하지만 전체를 읽고 남긴 서평을 보니 한 번 관심을 갖고 제대로 읽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 그럴 땐 바로 토끼시죠 작가 지수 출판 카멜북스 라임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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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스타그램에서 ‘김토끼’라는 작가의 그림을 알게 되었다. 따뜻하고 다정한 마음을 담은 단순하고 귀여운 그림에 금세 팬이 되었다. 열 컷의 작은 그림 말고도 줄글로 작가님의 생각을 알고 싶어서 책을 찾아보게 읽게 되었다. 제목도 정말 깜찍하지 않은가?
    소설이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면, 에세이는 실존하는 타인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지수 작가는 비밀로 보관하고 싶을지도 모를 이야깃거리를 통해서 긍정성을 전달한다. 자신은 최선을 선택하기보다는, 최악을 제외하고 차악을 좇아서 살아 왔지만 잘 살고 있다는 작가의 고백이 인상 깊게 남는다. 위선이나 기만 없이 반짝반짝한 문장들이 좋은 책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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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이 재치있고 귀여워요. 그림체도 그에 꼭 어울리는 것 같구요. 글이나 그림이나 매체만 다를 뿐 생각을 표현한다는 건 똑같은데, 저런 만화를 그리는 분은 어떤 글을 쓰실까 저도 궁금해집니다.
    • 인터넷에 저 토끼가 그려진 네컷 만화를 본 것 같은데, 간결하지만 깊은 통찰이 느껴지고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어요. 진솔한 작가의 문장들을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 에세이를 통해 타인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점도 매력적이지만 우선 제목이 귀여워서 내용이 어떨지 정말 궁금해지네요.
    • 인스타그램으로 몇 번 글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이 책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 열녀의 탄생(돌베개 한국학 총서 11)(양장본 HardCover) 작가 강명관 출판 돌베개 라임 님의 별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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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서는 다양한 모습의 열녀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그 중 전쟁 속 여성의 삶, 특히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나타난 열녀의 양상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노객부원>, <동래할미> 등의 다양한 문학작품에서 전쟁과 여성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왜적의 잔악성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당사자의 목소리를 통해서 전란을 피하면서 있었던 현실적인 고생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특히 두 작품에서는 전란으로 인한 고통에 늙음까지 더해져 더더욱 서럽다. 전쟁에서 생존했음을 마냥 기뻐할 수도 없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는 임진왜란 때의 다양한 열녀의 사례를 소개한다. 이 책에서는 보다 더 이론적인, 이데올로기적인 정절을 강조한다. 잔인하고 기괴한 죽음을 표본으로 삼아 다음 세대를 가르치는 교과서로 이용하는 것이다. 당사자의 목소리는 사라진다. 여성의 시선은 없고, 기록한 남성의 시선으로 사건을 전달한다. 잔혹한 내용의 서사를 계속 전승시키면서 끔찍한 방식의 정절을 강요하고 학습시키는 셈이다.
    유교를 기반으로 한 조선 사회에서 여성은 소외된 존재였다. 여성에 관한 기록에서도 평소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성격은 어땠는지에 대한 내용은 없다. 정절을 잘 지켰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해당 여성 중심의 인간관계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조선시대의 여성은 주체적 삶을 누리지 못하고 영원히 객체로 남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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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양한 작품 속에서 열녀에 대해 알아볼 수 있어서 좋겠지만 단순히 남성의 시선으로 기록되고 결국은 절정을 지켰냐로 기술되는 여성들의 기록이 슬픈 거 같아요.
  • 아Q정전 작가 루쉰 출판 선학사 라임 님의 별점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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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쉰은 중국의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이자 교육가로 일본에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의 작품에는 ‘신해혁명’을 배경으로 한 것들이 많은데, 널리 알려진 『아Q정전』 역시 신해혁명이 관련되어 있다.
    ‘아Q’는 성도 정확하지 않고 본적도 정확하지 않은 하층민이다. 아Q는 자존심이 무척 강했으나 늘 얻어맞고 다니기 일쑤이고, 자신이 만만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한다. 그는 힘없고 비굴한 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다.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는 비열한 방법으로 싸우고, 부스럼 자국조차 영광스러워하고 뿌듯해한다. 자신은 배운 사람이라 여기며 상대를 깔본다. ‘정신적인 승리법’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소설 속 인물은 전반적으로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아Q가 자학하는 것 외에도 마을 사람들은 이미 사람을 때리면서 그것에 익숙해져버렸고, 아Q가 부르고 다니는 노래의 가사도 짙은 폭력성을 띤다. 아Q는 자신과 자오 가문을 동일시하고 변발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데, 이런 것을 통해 그는 봉건적인 가치관을 벗어나지 못한 인물로 표현된다. 또한 중화사상을 탈피하지 못했기에 다른 문화를 수용할 줄도 모른다. 따라서 아Q가 좀 더 발전적인 인물이 되지 못한 것이다. 또한 아Q에게는 이증성이 나타나는데, 자아에 대한 생각이 없었기에 혁명에 대한 생각이 극과 극으로 바뀌는 것으로 형상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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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Q정전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어왔지만 제대로 서평을 접한 것은 처음인 것 같네요.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 무정(한국현대문학전집 7) 작가 이광수 출판 현대문학 라임 님의 별점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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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의 『무정』은 우리나라에 일본과 서구의 물질적·정신적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던 시기의 한국을 잘 보여준다. 작품 내에서도 일본어 단어를 그대로 옮겨 쓰는 표현들도 많고, 등장인물들의 옷차림을 묘사하는 부분이나 일본이나 미국 등 외국으로 유학을 가는 등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이광수는 ‘자유연애론’을 주장하였는데, 이른바 ‘성춘향과 이 도령’식의 사랑에서 벗어나게 된다. 『무정』에서도 이전까지와는 다른 연애의 형태와 결혼관이 등장한다. 부모의 의견뿐만 아니라 결혼 당사자들의 의사를 중요시하는 것에서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인상 깊게 남은 인물로는 ‘선형’을 꼽았다. 그는 전형적인 ‘온실 속의 화초’의 모습을 보인다. 너무 좋은 환경에서만 살다 보니 세상이 다 자기 주변과 같은 모습일 것으로 안다.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생각난다. 순진하다면 순진한 것인데, 마냥 순수하다고 하기엔 어리석다. 자기 나름의 이상은 있으나 그것조차 희미한 생각일 뿐이다. 과도하게 이상적이고 실체는 아무것도 모르는 인물이다.
    『무정』의 시점은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우나, 한 장면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이 서술자를 통해 완벽히 다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무정』은 근대소설의 시발점으로 꼽힌다. 많이 접해 본 현대소설과 비교하여, 작품 전반에 걸친 감정선 등이 많이 다르게 느껴졌다. 이처럼 근대소설은 고전과 현대의 과도기적 문학이라는 의의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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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햄릿(세계문학전집 3)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 출판 민음사 라임 님의 별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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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위 찬탈이 불러온 일가의 몰살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To be, or not to be.)”라는 문구로 유명한 『햄릿』은 원래 희곡이며, 여러 편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연극과 뮤지컬로 만들어졌으며, 판소리와도 결합되었다. 『햄릿』은 덴마크에서 중세 때부터 있던 전설을 바탕으로 만든 이야기라고 한다. 원래 전설의 결말은 햄릿이 복수에 성공하고 왕이 되는 해피엔딩이다.
    작품을 읽은 후 씁쓸하고 피폐하다는 감상이 가장 먼저 남았다. 사건과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결말에 다다르니 살아있는 인물이 없어 허탈하다. 햄릿의 아버지인 선왕이 죽고, 폴로니어스 가족이 전부 죽고, 햄릿의 복수 자체는 성공하나 본인도 사망하여 왕손마저 끊긴다. 결국 다른 나라의 왕자에게 왕위를 남기는 결말이 허무했다. 원래 전설은 행복하게 끝난다는데, 왜 셰익스피어는 이 글을 하필 비극으로 각색했을까 의문이 들었다. 한편, 극 속의 연극을 설정하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면서 왕과 왕비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인물 설정에서 아쉬웠던 부분은 오필리어와 거트루드 왕비 두 사람이 평면적이었다는 점이다. 먼저 오필리어의 경우, 햄릿과 사랑하는 관계라는 점 이외에는 별 특징이 느껴지지 않았다. 줄 달린 꼭두각시 인형마냥 불쌍한 인물이다. 햄릿과 오필리어의 관계가 어땠는지 전후사정을 좀 더 설명해줬다면 좋을 것 같다. 다음으로 거트루드 왕비를 살펴보자. 작품의 전반적 배경은 전형적인 중세로, 왕비가 새 왕이 된 클로디어스와의 결혼을 거부하면 바로 죽여 버렸을 것이다. 왕비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제공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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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도 처음에 햄릿을 읽고 씁쓸한 느낌을 되게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다시 읽으면 읽을수록 이를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복수의 허무함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고 되게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더라고요. 명작은 괜히 명작이 아닌 거 같아요.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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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소설에 빠지다 작가 조혜란 출판 마음산책 라임 님의 별점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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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널리 알려진 고전소설에 대하여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보다 상세한 부연설명을 덧붙인 책이다. 읽는 동안 마치 어렸을 때 읽던 옛날 이야기책 같았고, 해설 부분이 있어 당시의 시대적 흐름이나 상황을 알 수 있어서 작품만 읽는 것보다 이해도 잘 되고 쉽게 다가왔다. 그리고 작가가 여성의 관점에서 서술하여 기존의 지식 혹은 평소의 생각 너머 색다른 시각으로 잘 알려진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정규교과과정에서 자주 등장하는 박씨전을 비롯하여 이생규장전, 강도몽유록, 열녀함양박씨전 등의 여러 소설을 통해 중세의 여성의 삶과 전쟁의 참상을 보여준다. 특히 여성 영웅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을 “양반 남성들의 판타지, 그 이면”이라는 주제로 풀어낸 단원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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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소 소설과 자기계발서 혹은 과학적인 책들은 두루 읽으면서도 고전소설은 늘 기피해왔습니다.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어려웠으며 특히 재미가 없었거든요. 이 책을 계기로 다시 한 번 고전소설을 읽어봐야 겠어요. 감사합니다.
  • 맨박스 작가 Porter, Tony 출판 한빛비즈 라임 님의 별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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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니 포터의 『맨박스』는 작가 본인의 경험과 다른 ‘보통 남자’들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그가 오랫동안 ‘남성에 의한 여성 폭력’을 멈추기 위해 남성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면서 느꼈던 점들과 바람직한 남자다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제시한다. “맨박스”라는 단어는 지금까지 남성들이 갇혀 있었던 규범 내지는 틀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다시 말해서, 기성세대에 의해서 그 아래 세대에게 강요된 남자다움, 남성성 등을 말한다.
    책을 읽기 전에는 미국은 한국보다 개방적이라서 성차별이 훨씬 적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교 문화에 바탕을 둔 우리나라에 비해 그 정도는 덜할지 몰라도, 책을 통해 미국에도 성차별이 독보적으로 없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자 아이에게는 많은 금기들이 적용된다. 마음대로 울어서도 안 되고, 감정을 드러내서도 안 되며,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서도 안 된다는 말도 안 되는 규칙들. 여자애, 남자애이기 전에 어린 아이이며, 남성, 여성이기 전에 한 인간이다.
    『맨박스』는 완전무결한, 티끌 한 점 없이 완벽한 양성평등의 이상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현재 상황에서 부족한 점을 이해하고 있다. 여러 사람들의 고백을 들려주는 부분에서도 아직은 맨박스에서 확실하게 벗어나지 못한, 약간은 ‘꼰대’ 같은 생각도 넣어 놓았다. 그들이 자신이 ‘꼰대’임을 인정하는 모습을 통해 이 사회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한 이 책은 무작정 남자와 여자는 평등해야 해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남자들을 가둬왔던 ‘맨박스’를 소재로 삼음으로써, 남성들이 여성 폭력을 없애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전달하는 게 이 책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성차별, 가정 폭력, 여성 폭력 등의 문제가 단순히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주체가 되는 남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요즘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사람도 많고, 이에 반감을 드러내는 사람도 많다. 이 책은 성별을 떠나서 모두가 한 번쯤 읽어보면 자신의 생각을 돌아보는 데에 도움이 될 책이다. 성차별이 어느 한 쪽의 문제가 아니라는, 시각의 전환을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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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저드 베이커리(10주년 기념 리커버 한정판)(리커버:K)(양장본 HardCover) 작가 구병모 출판 창비 라임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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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생 때 구병모 작가의 소설 『위저드 베이커리』를 처음 읽은 뒤 지금까지도 구병모의 다른 책들도 즐겨 읽고 있다. 사건의 진행이 속도감 있고, 흡입력이 좋으며 멋진 상상력을 보여주어 꾸준히 찾게 된다.
    그의 소설에서는 두 가지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 많은 작품에서 청소년, 미성숙한 개인을 인물로 내세운다. 예를 들어 가족 혹은 소속 집단과의 관계에서 결핍과 결여가 나타나는, 어딘가 부족한 아이들이다. 등단작인 『위저드 베이커리』의 주인공도 모두 청소년이다. 혹 연령대가 성인이라 하더라도 한 사람 몫의 무언가를 하기에는 모자라다. 이와 같은 연령대의 설정은 성장의 가능성과 변화를 내포한다. 해당 인물이 서사가 진행되면서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결말에 이르러서는 등장인물의 성장으로 종결된다.
    둘째, 구병모의 작품은 그로테스크한 소재를 자주 다룬다. 이러한 특징은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형태의 기괴함으로 나타난다. 그의 작품세계는 이상하지만 동시에 찬란하고 선명하다. 『위저드 베이커리』에서는 저주 대상의 머리카락을 넣은 부두 인형 마지팬, 아기의 간을 넣었다는 빵 등이 등장한다. 미성년의 아이가 겪기에는 다소 잔인하게 느껴진다.
    특히 『위저드 베이커리』는 아동학대와 가정폭력이라는 예민하고 어려우나 많은 관심이 필요한 사회적 문제를 주제로 삼아 조심스럽게 잘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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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만 들어봐서인지, 제목처럼 밝고 아기자기한 분위기의 내용일 줄로만 알았어요... 상상력이 가미되어 있지만 현실적인, 성장에 관한 이야기, 사회적 문제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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