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 준비해온 대답 작가 김영하 출판 복복서가 백구마리백구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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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행을 싫어한다 말하는 사람들은 여행에 필수불가결하게 따라오는 단점들을 싫어할 뿐이지 여행을 싫어할 순 없습니다. 만약 여행을 싫어한다 말하는 사람들에게 단 1초도 줄을 서 기다릴 필요가 없거나, 타국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한 끼를 쫄딱 굶거나, 알 수 없는 방언을 쏟아내는 외국인 앞에서 보디랭귀지로 진땀을 뺄 필요가 없는 여행을 보내준다면 자칭 ‘여행 혐오자’들은 곧 여행을 사랑하게 될 것이죠. 여행을 정말 싫어한다는 말은 현대인으로서의 삶을 정말 싫어한다는 말입니다. 현대인들은 구조적으로 크고 작은 여행 속에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직장이나 학교로 통근하는 매일 아침도 짧은 여행이고, 저녁거리를 사러 시장에 다녀오는 발걸음도 짧은 여행입니다. 그러나 이런 크고 작은 여행들은 현대 사회가 그렇듯이 크고 작은 불편함을 항상 수반합니다. 진정으로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런 불편함마저 사랑할 줄 아는 긍정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오래 준비해온 대답>의 작가인 김영하는 불편함을 사랑함을 넘어서 스스로 불편함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김영하 작가가 이 책을 쓰던 즈음에, 그는 그의 표현 그대로 ‘나이 마흔에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성공의 풍요 속에서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아직 사회에 채 발돋움하지 않은 저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는 이 모든 것을 버리고 캐나다의 한 대학 교수직을 자청했습니다. 그리고 캐나다로 떠나기 전 두 세달 가량 붕 떠버린 시간에 자신이 가진 대부분의 것을 정리하고 아내와 시칠리아로 떠났습니다. 요즘 들어서야 미니멀리즘이라며 자신이 가진 대여섯 개의 물건들과 옷가지를 버리고 그것을 모두 합친 것만큼 비싼 하나의 물건으로 대체하는 것이 유행이라지만 김영하는 미니멀리즘의 유행 전부터 자신을 붙들고 있던 세간살이를 다 정리해버린 셈입니다. 작가는 아내와 함께 기차를 통해 시칠리아로 이동했습니다. 시칠리아의 열차는 신기하게도 열차가 그대로 페리에 실린 뒤 해협을 건너 섬에 내립니다. 그러나 걸핏하면 연착하거나 아예 공지도 없이 취소되곤 했죠. 그러나 시칠리아는 굳이 시간에 맞춰서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느긋한 섬입니다. 김영하가 들고 떠난 여행안내서에는 ‘모두가 모두를 아는 섬’이라고 시칠리아를 소개합니다. 책에 나온 일화를 하나 들면 이해가 쉬울 듯 합니다. 한 번은 김영하 작가가 환율이 비교적 좋은 시칠리아 우체국에서 환전을 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직원이 이탈리아인만 우체국에서 환전이 가능하다고 이를 거절했습니다. 아쉬워하던 김영하 앞에 그 동네 토박이가 등장해 그를 도와주겠다 말합니다. 보통은 관광지에서 이런 이유 없는 호의는 무언가 나쁜 일로 끝나기 마련이지만 이 사내는 우체국 직원 한 명 한 명에게 인사를 나누며 그의 신분증을 제시하고 이 사람에게 환전을 해주라 말합니다. 우체국 직원은 하는 수없이 김영하 부부에게 어느 호텔에서 묵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김영하가 호텔이 아니라 바르톨로 빌리니씨의 집에 묵고 있다 대답하자 우체국 안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택시 기사 바르톨로! 그 뒤로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죠. 낯선 사내가 베푼 친절로 김영하 부부는 잠시 시칠리아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고, 그 사내는 환전이 끝나자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이처럼 시칠리아에서 누군가가 곤란에 처해 있으면, 또 다른 누군가가 prego (이탈리아 말로 “신경 쓰지 마세요.” 라는 뜻)라며 다가와 그 문제를 해결해 주고 슬그머니 사라집니다. 시칠리아는 이런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 섬입니다. 차가 멈추면 누군가와 인사를 하기 위한 것이고 클락션이 울리는 것도 누군가와 인사를 하기 위한 곳. 시칠리아처럼 책도 요란하지 않고 느긋하게 작가의 생각과 여행을 기록합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여행은 커녕 외출도 꺼려지는 요즘, 책으로나마 시칠리아의 여유를 느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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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의 첫부분에 허를 찔린 기분입니다...ㅎㅎ 누군가 저에게 여행을 좋아하냐 물으면 백이면 백 싫어한다고 답을 해왔습니다. 사실은 여행이 싫은 게 아니라 여행을 가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 귀찮았던 것이고, 여행을 갔다 돌아오면 맞는 나의 현실이 싫었던 것이죠. 그래서 여행과 관련된 책은 한번도 읽은 적이 없는데, 시칠리아 여행중에 열차가 페리에 실린다는 이 한문장이 이 책으로 저를 이끄는 것 같습니다. 여행을 사랑하게 되는 것도 이 한문장처럼 작고 사소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좋은 책 추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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